
우리나라에 최근에 몇 가지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 등으로 나라가 시끄럽고,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런 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국가적인 위기다!' '재난 매뉴얼이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그때뿐이고 금세 잊힌다는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게 된다. 왜 그럴까?
개인적으로 이런 같은 위기가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는 위기를 통해 배우려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적인 위기 상황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큰 피해를 당하면, 위기에 대응하면서 느꼈던 부족함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자료나 책으로 출간하여 이를 보완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노력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슷한 역사적 위기가 계속해서 반복되어 왔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 당시 우리는 일본을 '왜'라고 부르며 얕보았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사신으로 중 황윤길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반드시 전쟁이 있을 것이다."라고 보고를 했지만, 선조를 비롯한 조정은 이 보고를 무시한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생해 7년 동안 국토가 유린당한다. 이런 뼈아픈 경험을 당했으면 다시금 전쟁을 대비해야겠지만, 얼마 후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는 임진왜란보다 더 순식간에 국토가 유린당한다. 7년 동안의 국가비상사태를 통해 배우고 준비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허술한 역사인식이 한일합방의 슬픈 역사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서애 유성룡이 임진왜란의 7년간의 역사를 기록한 [징비록]은 우리에게 매우 가치 있는 책이다. 이번에 아카넷에서 출간된 [징비록] 완역판을 읽으며 그 가치를 더욱더 소중히 느낀다.
사실 징비록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까지 알려진 당시의 베스트셀러였다. 이 책의 번역하고 해석한 김시덕 교수는 이 책의 해제에서 임진왜란 후 징비록이 일본에 흘러간 경위를 설명한다. 당시 임진왜란은 명나라와 조선, 일본이 격돌하는 국제전이었고, 징비록은 이 전쟁을 가장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징비록을 통해 일본은 조선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다시 한 번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이 책을 오랫동안 연구했다는 것이다. 뼈아픈 전쟁을 교훈 삼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쓴 징비록이 한국에서는 외면당하고, 일본에서는 연구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같은 위기를 반복적으로 당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국가적 위기의 반복은 또한 리더십의 부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징비록]의 초반부에는 임진왜란 전에 일본에 사신으로 간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황윤길은 반드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했지만, 김성일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했다. 역사적인 해석은 둘이 당파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보고를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징비록에 유성룡은 이런 보고를 한 김성일을 변호한다.
내가 김성일에게 "그대의 말이 정사 황윤길의 말과 같지 않으니,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어찌할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그는 "저라고 어찌 왜인들이 끝내 움직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황윤길의 말이 너무 중대하여 경향 각지가 놀라고 미혹될 것이기에 이를 풀고자 할 따름입니다"라고 말하였다. (P116)
징비록은 전쟁 후의 기록이고, 유성룡의 사견이 들어갔기에 이런 말이 전부 인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전쟁 전의 안이한 태도를 김성일 개인에게만 지울 순 없다고 생각한다. 책임을 묻자면 김성일의 보고를 그대로 받은 당시의 왕인 선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징비록을 읽으며 당시의 역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민음사에서 출간한 [역사 저널 그날 시리즈]를 같이 읽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일본으로 간 사신이 황윤길과 김성일뿐만 아니라, 허성이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황윤길은 서인이고, 김성일과 허성은 동인이었다. 그럼에도 허성은 자신의 당파가 아닌, 황윤길의 의견에 따라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사신들의 주된 의견은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보고였다. 그럼에도 선조는 자신이 듣고 싶은 보고만을 하는 김성일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이것이 제왕적 리더십의 한계이다. 제왕적 리더십은 무능한 리더가 위에 있으면, 전 조직이 무능해지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의견을 내놓아도 리더가 거부하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참모진들도 리더가 싫어하는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리더는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놓는 사람을 자신에 대항하는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옳은 소리를 하면 찍힌다는 이야기다. 현대사회에서 리더에게 찍히면 퇴사 정도가 전부이지만, 왕이 다스리던 시대에는 유배를 가거나 사약을 마셔야 했고, 심지어는 반역으로 몰려 삼족이 멸하는 일도 있었다. 결국 일본의 침략을 뻔히 알면서도 왕의 결정에 아무도 반대하지 못 했을 가능성이 있다.
징비록을 읽으며, 역사적 위기의 반복이 단지 조선시대만으로 그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느낀다. 위기를 당해도, 그 위기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고, 그것을 현명하게 극복할 리더십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우리나라 상황인 것 같아 씁쓸하게 이 책을 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