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사기열전 1 - 인물들의 흥망사 완역 사기 시리즈 (위즈덤하우스)
사마천 지음, 신동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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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란 책을 쓸 때 그의 상황이 너무 빈궁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 어린아이가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을 섰다고 한다. 옆에서 아이가 밥 달라고 칭얼거리며 죽어가는 상황에서 책을 쓴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그런데 이보다 더 비참한 상황에서 책을 쓴 사람이 또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다. 그는 한나라 무제 밑에서 신하로 있으면서, 당시 흉노족에게 투항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가 왕의 진노를 산다. 그리고 당시로서 가장 치욕스러운 궁형에 처하고, 감옥에 갇힌 후 환관이 된다. 이런 치욕스러움 속에서도 그는 삶을 이어갔고, 이런 삶 속에서 [사기]라는 역사서를 남겼다. 과연 그가 이런 치욕을 견디면서 쓰고자 했던 역사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에서 사기 전권을 새롭게 완역하여 출간한 사기 5권 중(사기본기, 사기표, 사기서, 사기세가, 사기열전)에서 사기열전의 1권이다. 사기열전은 사기 130권 분량 중에서 반 절 이상인 70권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내용이 방대하다. 이번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한 사기열전 1권은 사기열전의 반 절 분량만을 담고 있음에도 10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을 가지고 있다. (정확히는 마지막 페이지가 955페이지다.) 사기열전 1권은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기인 백이와 숙제의 기록인 '백이열전'을 시작으로 한나라의 개국공신인 번쾌, 역상, 하우영, 관영 등을 다루고 있는 '번역등관열전'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H 카'는 역사란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 아니라고 말한다. 역사란 여러 가지의 사실 중에서 역사가가 그 시대와 상황에 필요한 사실들을 수집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결국 역사란 그 역사를 기록한 역사가의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마천 역시 방대한 중국 역사와 인물들 중에서 자신의 관점으로 걸러내어 역사와 인물들을 기록했다. 사마천의 관점은 무엇일까? 이 책의 첫 번째 내용인 '백이열전'에 어느 정도 힌트가 있다. 백이와 숙제라는 인물은 주나라의 역성혁명을 인정하지 않고 산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죽었다. 사마천은 이런 백이와 숙제를 칭송하기보다는 인(仁)을 행하는 군자가 이런 상황에 처해지는 시대상을 안타깝게 이야기한다.

 

 

노자는 [도덕경] 제79장에 이같이 말했다. "천도는 사사롭게 가까이하는 바가 없고, 늘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 그렇다면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인을 쌓고 행실을 깨끗이 했는데도 굶어 죽었다. 또 공자는 일흔 명의 제자 가운데 오직 안연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했으나 안연 역시 늘 가난해 술지게미와 쌀겨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요절하고 말았다. 하늘이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준다면 어찌해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춘추시대 말기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 간을 회 쳐서 먹었다. 포악무도한 짓을 자행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천하를 횡행했지만 끝내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 이는 도대체 이는 어떤 덕행에 따른 것인가? 이는 여러 사례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만 언급한 것이다.
근래의 사례를 보면 하는 일이 정도를 벗어나고, 법령이 금하는 일을 일삼는데도 편히 즐기며 그 부귀가 대대로 이어지는 자가 있다. 반면 걸을 때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할 때도 때를 기다려 하고, 길을 갈 때도 옆길로 가지 않고, 일을 할 때도 공정하지 않으면 분발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자가 부지기수로 많다. 이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것이 이른바 천도라면, 그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른 것인가? (P25-5)
 

 

그래서인가 [사기열전]에서는 대부분 왕을 도와 나라를 일으킨 충신들을 언급하지만, 대부분은 왕이나 간신들에 의해 배신을 당해 버림받거나 죽임을 당한 일들이 기록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또 하나의 인물이 '노자한비자열전'에 등장하는 한비자이다. 한비자는 한나라 왕을 섬겼으나 그의 충고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고,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그를 시기한 이사의 간계에 의해 사형을 당한다. 반대로 간계를 통해 왕을 농락하고, 권력을 잡은 '오자서'나 '여불위'같은 인물들의 성공담도 등장한다. (물론 모두들 말로는 비참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진한 교체기의 인물인 장이와 진여의 이야기를 다룬 '장이진여열전'이다. 장이와 진여는 젊은 시절부터 우의를 맺었고, 어린 진여가 장이를 아버지처럼 섬겼다. 둘은 진나라가 천하 통일을 한 후 두 사람을 위험인물로 간주해 잡으려 할 때도 둘이 함께 피난하며 서로를 도왔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여러 군웅들이 할거 할 때도 이들은 여러 명의 왕이나 장군에게 의탁하며 서로를 의지했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세력이 생기자 서로를 견제하게 되고, 결국은 서로를 죽이려는 사태까지 가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장이가 유방의 밑으로 가게 되었다. 유방이 한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초나라와 싸울 때 진여의 도움이 필요해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진여는 "한나라가 장이를 죽이면 따르겠소"라고 말한다. 목숨까지 내어줄 것 같던 친구를 이제는 죽여 달라는 것이다. 사마천은 당시의 매정하고 씁쓸한 세상의 분위기를 '장이진여열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어쩌면 사마천 역시 이런 당시 세상의 매정함을 처절히 경험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장이진여열전' 마지막 부분에서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장이와 진여는 현자로 알려진 자들이다. 이들은 빈백과 종까지도 천하의 준걸이 아닌 자가 없었다. 각기 자신이 사는 나라에서 경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당초 장이와 진여가 빈궁한 때는 서로 죽음을 무릅쓰고 신의를 지켰다. 어찌 서로를 돌아보며 의심하는 일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나라를 움켜쥐고 권력을 다투게 되자 마침내 서로를 멸망시키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어찌해서 전에는 서로 사모하며 믿는 것이 그리도 진실하더니 뒤에는 그리도 심하게 서로를 배반하며 뒤틀리게 되었는가? 권세와 이익을 좇아 사귄 탓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명성이 높고 빈객이 많았을지라도 이들이 걸어온 길은 오나라 시조 태백이나 오왕 수몽의 아들 계찰의 행보와는 사뭇 달랐다. (P767)


[사기열전]을 읽으면서 이 책의 방대함과 사마천의 날카로운 역사비판 의식, 그리고 인물평가에 감탄을 한다. 그럼에도 아직 사마천의 [사기]의 일부분만을 맛본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사마천의 [사기]의 완독을 꿈꾸며 [사기열전]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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