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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평점 :

오래 전에 미국 드리마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었던 [뿌리]라는 드라마가 리메이크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직 새로 리메이크 된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오래 전에 처음 드라마로 완성된 작품을 본 기억이 난다. 아프리카에서 끌려 온 쿤타킨데와 그의 후손들이 겪는 고난을 그린 이 드라마는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이 원작이다. 알렉스 헤일리는 이 소설로 인해 퓰리처 상까지 수상했고, 그의 작품은 미국 흑인 사회에서 뿌리 찾기의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는 마치 다큐멘터리와 같은 형식으로 자신의 조상인 쿤타킨타와 그의 후손들이 당한 고난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조상의 삶을 묘사하는 소설이 있다. 바로 옥타비아 버틀러의 [킨]이란 소설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흑인 여성 작가이면서도, 드물게 SF 장르에 도전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이 [블러드 차일드]라는 단편집을 통해 이미 그녀의 독특하고도 예리한 SF세계를 접한 적이 있었다. [킨]이란 작품의 그녀의 장편소설이면서도 이전의 이전의 소설과는 다른 배경을 다루고 있다. 미래사회가 아닌, 과거 남부의 노예사회, 그것도 자신의 조상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간예행 방식으로 과거로 가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다나가 팔 한쪽을 잃은 채 병원에서 깨어나며 시작한다. 경찰관들은 그녀의 남편 캐빈을 유력한 용의자로 구금해놓고 있는 상태였다. 그 뒤로 이야기는 그녀가 어쩌다가 한 팔을 잃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와 캐빈은 둘 다 소설을 쓰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둘이 결혼해서 새 집으로 이사한 날 다나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지며 어지러움을 느낀 후 어딘지 모를 곳으로 순간이동을 한 것이다. 그곳에는 빨간머리의 한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다나는 그 아이를 물에서 구해 인공호흡을 했고 겨우 목숨을 구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엄마는 다나가 자기 아들에게 뭔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고 여기며 다나의 등을 마구 때린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빠는 총신이 무시무시하게 생긴 총으로 다나를 위협한다. 그 순간 다시 다나는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갑자기 사라졌다가 거실의 다른쪽에서 나타난 다나를 보면서도 다나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그녀의 남편 캐빈은 다나가 사라졌던 시간이 겨우 2초정도였다고 말해준다. 그날 저녁 다나는 또다시 어지러움을 느끼며 빨간머리 소년의 집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소년은 아버지에게 채찍질을 당하고 분풀이로 집에 불을 지른 후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겨우 불을 끄고 보니 소년은 몇 년 더 훌쩍 자라있었다. 그리고 그 손년을 통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다나를 더욱 충격에 빠뜨리게 된다. 다나는 1815년의 메릴랜드로 시간과 공간을 여행했으며 빨간머리 소년 루퍼스 와일린은 다나의 조상 중 한 명이었다. 다나가 알기로 루퍼스는 앨리스라는 흑인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 다나는 그 아이의 후손 중 한 명인 셈이다.
과연 어떤 힘이 다나를 과거로 보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두 번의 시간여행을 통해 짐작하게 된 것은 루퍼스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빠질 때 다나가 시간을 거슬러 루퍼스를 구하도록 보내진다는 것과 다나의 목숨이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였다. 만약 루퍼스가 앨리스를 만나기 전에 죽는다면 다나 역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다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루퍼스를 위험에서 건져내고 엘리스와의 사이에서 헤이거라는 아이를 낳게 도와야 한다.
그러나 루퍼스가 살고 있는 시대는 백인 농장주가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던 끔찍한 시대다. 흑인여성인 다나는 루퍼스가 생명의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과거로 돌아가게 되고 그 때마다 노예들의 비참한 생활을 직접 체험할 뿐만 아니라 루퍼스의 아버지 와일린씨에게 채찍질을 당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루퍼스는 엘리스와 친구로 지내다 언젠가부터 그 이상을 원하게 되었지만 엘리스는 다른 흑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자유를 찾아 도망치다 붙잡힌다. 초죽음이 되어 돌아온 엘리스는 루퍼스와 다나가 정성껏 간호한 덕에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지만 한층 더 루퍼스를 증오하게 된다. 그러나 흑인 노예인 엘리스는 좋던 싫던 결국 루퍼스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나가 루퍼스의 생명을 여러 번 구해주었기에 루퍼스와 루퍼스의 아버지 와일린씨는 다나를 흑인 노예로 대하는 동시에 루퍼스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루퍼스는 다나를 여자로 바라보게 되고 농장의 흑인 노예들은 다나가 농장의 안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하게 된다. 사실 엘리스와 다나는 자매처럼 비슷해보였고 루퍼스는 이상하게도 다나를 자기 옆에서 떨어지지 못하도록 속박하기 시작한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다른 소설들에서는 은연 중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인 [블러드 차일드]라는 소설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외계인이 인간을 인간 소년을 자신의 생명을 잉태하는 숙주로 삼고 있는 끔찍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그럼에도 숙주가 되는 소년이 외계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중적이다. 그는 자신을 지배하고, 숙주로 삼으려하는 외계인 트가토이에게 어머니와 같은 따스함이나, 연인과 같은 마음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 이런 이중적인 감정은 [킨]이란 소설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나에게 자신의 조상인 루퍼스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그것이 옥타비아 버틀러가 직면한 불합리한 세계의 모순일 것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에게 이 소설은 단순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다루는 소설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녀가 살았던 세상은 여전히 흑백갈등이 존재하는 세상이었으며, 그녀는 그런 세상을 떠날수도 완전히 증오할 수도 없었다. 다만 그녀는 자신만의 시간여행이라는 방법을 통해 그런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 한다. 소설에서 다나는 흑인노예의 신분으로 과거 속에 살면서 자신의 조상인 루퍼스가 관대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희망하며 그에게 책읽기를 가르쳤다. 그리고 와일린씨의 감시를 피해 흑인 아이들에게도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글을 읽고 쓸 안다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세상에 만연한 폭력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