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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온 아이
에오윈 아이비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눈에서 온 아이]는 알래스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의 첫 작품이다. 먼저 놀라운 점은 이 소설은 평생 소설을 써 온 능숙한 작가의 그것 이상으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표현력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잭 런던의 소설들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20세기 초엽의 알래스카를 생생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이 소설이 100년 전에 씌여지기라도 한 것처럼. 전체적인 스토리는 청소년에게 딱 맞을 듯싶지만 남녀노소 누구라도 푹 빠질만한 사랑스러운 소설임에 틀림없다.
보일락 말락 하게 현실과 동화 사이를 오가며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다음 내용이 어떻게 이어질지 가슴 졸이게 만드는 환상의 실타래를 풀어나가고 있다.
소설의 초반부는 적막함과 절망으로 시작한다. 따뜻하고 풍요로운 고향을 등지고 개발되지 않는 야생의 알래스카에 정착한 잭과 메이블 부부는 50대가 넘어선 나이임에도 자식 하나 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 사실은 10년 전에 메이블이 남자 아이를 사산한 이후로 아이가 없었다. 아이가 없다는 사실과 주변의 수군거림에 견딜 수 없어진 메이블이 남편 잭을 졸라 알래스카까지 왔지만 대자연은 자신의 품을 그리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삶은 고단했고 경작지를 개간하는 일은 더디기만 했다. 결국 잭은 광산에서 일하며 겨울을 날 계획을 세울 정도였지만 다행히도 인심 좋은 이웃 조지와 그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잭과 메이블 부부는 약간의 위안을 얻게 된다. 조지는 잭에게 알래스카의 겨울을 살아남으려면 무스 사냥에 성공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득한다. 훌륭한 사냥꾼인 조지의 막내아들 개렛은 이미 짝짓기 철이 지나서 무스 사냥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사냥에 서툰 잭은 겨울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도 무스 사냥에 성공하지 못한다.
첫눈이 내린 어느 날 저녁 잭과 메이블은 마당에 눈사람을 만든다. 잭이 얼굴을 깎아서 어린 소녀처럼 만들고 메이블은 장갑과 목도리로 눈사람을 장식한다. 그날 밤늦게 잭은 밖에 나갔다가 눈사람이 부서져 있고 목도리와 장갑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눈사람이 있던 곳에서부터 숲으로 이어지는 어린아이의 작은 발자국을 발견한다. 그 뒤고 잭과 메이블은 자신들 오두막집 주위를 맴도는 연한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소녀와 붉은 털 여우를 자주 만나게 된다. 그 신비로운 소녀는 눈 덮인 숲 속에 발자국조차 거의 안 남길 정도로 가볍게 뛰어다니며 잭과 메이블에게 죽은 동물이나 야생 열매 같은 것을 선물로 가져다 주기도 한다. 메이블은 자신이 눈사람에게 입혀주었던 털 장갑과 목도리를 두른 그 소녀가 눈사람에서 생겨났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잭은 소녀의 도움으로 500kg은 될법한 엄청난 수컷 무스를 잡고 개렛과 함께 그 무스를 손질해 오두막집으로 가져와 겨우 겨울을 버틸 수 있었다. 겨울 동안 눈 소녀 파이나는 잭과 메이블 부부의 오두막집을 왕래하지만 저녁이 되면 부부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꼭 깊은 숲 속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눈과 함께 소녀는 메이블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사라진다. 걱정하는 잭과 달리 메이블은 눈 소녀 파이나가 다음 겨울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봄이 되어 농사철이 되었지만 잭은 밭을 갈다가 크게 다쳐 꼼짝도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걸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상황에서 호탕하기 그지없는 조지의 아내 에스더와 그녀의 아들 개렛이 모든 살림을 도맡아 해주며 밭농사까지 책임져 준다.
첫눈이 내리는 날 눈 소녀 파이나는 다시 잭과 메이블 부부의 오두막집의 문을 두드린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어하는 잭과 달리 메이블은 첫눈이 올 때를 준비하며 파이나의 새 외투를 완성시켜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눈 소녀 파이나는 겨울 동안 오두막집을 찾아오다가 봄이 되면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잭과 메이블 부부는 어느 정도 그 상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6년이 흐른 어느 해 겨울 개렛은 파이나의 붉은 털 여우를 쏘아 죽인다. 그리고 오소리를 잡기 위해 점점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다가 올무에 잡힌 백조의 목숨을 빼앗는 파이나를 목격하고 무엇인지 모를 감정에 괴로워한다. 그러나 점점 파이나에게 빠져드는 개렛은 그녀에게 강아지를 선물하면서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둘은 매일같이 얼어붙은 강줄기를 따라 눈덮인 숲 속으로 들어가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잭과 메이블은 아직 어린 나이지만 임신을 하게 된 파이나를 위해 결혼식을 준비하며 둘만의 오두막을 지어줄 계획을 세운다. 아름다운 결혼식이 끝난 후 파이나는 사내아이를 낳고 온 정성을 다해 아이를 돌본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파이나를 낳고 일찍 죽었듯이 파이나도 온몸이 불덩이같이 뜨거워져 사경을 헤매게 된다. 잭과 메이블 그리고 개렛은 파이나에게 겨울 외투와 신혼 이불을 둘러서 오두막 밖에 눕힌다. 영하 20도의 차가운 바깥공기와 겨울 하늘의 별을 보면서 파이나는 겨우 살아난 듯 보이지만 메이블이 잠깐 잠든 사이 파이나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개렛은 파이나를 찾아 겨울 산속을 헤매지만 메이블은 러시아 동화 속의 눈 소녀처럼 파이나가 눈으로 돌아갔다고 믿는다. 잭과 메이블은 슬픔 속에서도 사내 아기를 돌보며 파이나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삶을 이어간다.
알래스카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신비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동화같은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