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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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는 흔히 도시적인 감성으로 표시된다. 짧고 담담한 문제 속에서 현대인이 도시 속에서 느끼는 단절감과 고독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버스데이 걸]이란 소설은 이런 하루키의 색채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짧은 단편인 이 책은 '카트 멘시크'라는 독일 출신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과 함께 매우 세련된 감각으로 출간되었다. 도시 속에서 느끼는 단절감과 다른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마치 [애프터 다크]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인 여성은 스무 살의 생일을 맞이한다. 그녀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로 음식을 나르고 있었는데, 스무 살의 생일 하루만은 아르바이트를 쉬기로 한다. 그러나 대신 일하기로 했던 친구가 몸살이 걸려 별 수 없이 스무 살의 생일날도 변함없이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별로 특별한 계획도 없었던 그녀는 실망감도 없이 일을 한다.

"실제로 그녀는 그다지 실망하지도 않았다. 함께 생일날 밤을 보냈어야 할 보이프렌드와 며칠 전에 심각한 말다툼을 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교제해온 상대로, 다툼의 원인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하게 얘기가 꼬이면서 오는 말에 가는 말로 응수하는 거친 말다툼이 한바탕 이어진 뒤, 지금까지 두 사람을 이어주던 유대감이 치명적으로 손상되고 말핬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녀 안에 돌덩이처럼 딱딱해져서 죽어버린 것이 있었다. (P 10)"

그녀가 일하는 레스토랑은 보통 레스토랑과 다름이 없다. 단지 특이한 것이 있다면 레스토랑과 같은 건물 빌딩 604호에 레스토랑의 주인이 살고, 그 주인에게 매니저는 매일 저녁 6시 식사를 배달해 준다는 것뿐이다. 비가 쏟아지고 손님이 별로 없던 스무 살의 그녀의 생일날, 하필이면 매니저는 배를 움켜잡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다. 그녀에게 오늘 저녁 하루 사장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을 부탁하고... 저녁 6시 604호로 찾아간 그녀는 한 노인을 맞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에게 특이한 부탁을 한다. 스무 살의 생일을 기념해서 그녀의 소원을 한 가지를 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단 한 가지이고 되돌릴 수 없으니 신중히 선택하라는 말고 함께... 노인의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그 소원이 그녀의 삶을 바꾼다. 과연 그녀는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그 소원은 그저 노인의 장난이었을까.

하루키의 소설은 현실세계와 현실 이면의 세계를 오가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현실 이면의 세계는 아주 우연히 들어가게 된다. [태엽갑는 새]에서 주인공은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다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1Q84]에서는 육교 다리를 내려가다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애프터 다크]에서는 호텔 방의 한 공간에서 잠을 자다가 들어가게 된다. 하루키 소설의 현실 이면의 세계는 하루키가 만든 상상의 공간이지만, 현실과 다를 것은 없다. 현실 속의 모든 것이 그대로 재현되고, 현실의 사람들도 그대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 속에서는 무언가가 상실되어 있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그 세계 속에 갇히게 된 것이다. 하루키는 이런 소설적 장치를 통해 현대인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그렇다면 [버스데이 걸]의 주인공 역시 스무 살에 우연히 들른 604호실에서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스무 살 이후 그녀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짧은 소설이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어려 가지 암시들이 등장한다. 먼저 스무 살을 담담히 맞는 그녀의 자세이다. 또한 생일은 축하하는 노인의 말 역시 의미심장하다.

"생일 축하하네. 노인은 말했다. 아가씨의 인생이 보람 있는 풍성한 것이 되기를. 어떤 것도 거기에 어두운 그림자를 떨구는 일이 없기를. (P34)"

오랜 시간이 된 후 스무 살의 생일날을 회상하는 그녀의 대사에도 이런 암시가 등장한다. 스무 살의 생일날 빌었던 소원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귓볼을 긁적였다. 예쁜 모양의 귓볼이다.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야. (P 57)"

이전의 하루키의 소설처럼 알듯 모를 듯,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모호함이 이어지는 소설이었지만, 소설 속의 주인공이 느끼는 세상과의 단절감과 고독감은 더 깊이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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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특별판)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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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미로 찾기 게임이 매우 인기였다. 신문이나 잡지에 입구와 출구만이 확연히 눈에 띄는 복잡하게 그려진 미로들이 있었다. 미로만 보면 볼펜을 들고 입구에서부터 출구까지 선을 그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상대방의 마음을 열어 젖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과정을 미로찾기에 비유하자면 이처럼 복잡한 미로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 있다. 바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오래 전에 출간되었지만 최근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시 재출간된 작품이다. 하는 일마다 어리숙하지만 자신이 짝사랑 하는 여자 후배의 뒷모습만은 기가막히게 알아보는 남자 선배와 하는 일마다 똑뿌러지고 불의를 보면 못참고 자신만의 특급무기인 친구펀치를 날리는 여자 후배의 로맨스 이야기이다. 남자는 첫눈에 반한 검은 머리의 여자후배를 좋아하지만, 그녀에게 직접 다가가지 못하고 그녀가 가는 곳마다 나타나서 우연을 가장해서 그녀와 인사를 한다. 이렇게 많은 만남을 가지면서도 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이리하여 나는 가능한 한 그녀의 시야 안에 머무릭 위해 신경을 써왔다. 밤의 기야마치와 본토초에서, 여름의 시모가모 신사 헌책쇼ㅣ장에서, 나아가서는 나날의 행동 범위에서 - 중략- 이제 그것은 우연이라고 할 횟수를 훨씬 넘어 '너희들은 운명의 빨간 실로 칭칭 묶였어!'라고 만인이 보증설 만한 횟수에 달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의하하다. 내가 이렇게 모든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나타날 수는 없지 않은가. 편리주의도 정도가 있지. 그러나 중대한 문제는 그녀가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지닌 보기 드문 매력은 커녕 내 존재 그 자체에 말이다. 이렇게 늘 마주치는데도. '뭐,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어'라는 대사에 목에 피가 날 정도로 반복하는 내게, 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 선배, 또 만났네요!' 그게 다였다. 그녀와 만난 뒤로 벌써 반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P 188)"

그렇다고 남자가 쉽게 여자 후배와 마주치는 것은 아니다. 남자가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매번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봄의 밤거리를 활보하는 그녀를 만나고자 바지까지 잃어버리는 꼴부견을 당하기도 하고, 헌책방에서는 이상한 책방에 끌려가 그녀가 원하는 책을 얻기 위해 매운 것을 먹는 내기를 하기도 한다. 또 대학 축제에서는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들 연극 무리에 뛰어 들기도 하고, 감기로 인해 지독한 감기로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번 그녀를 만나서 조금씩 그녀의 마음을 얻어간다. 이런 과정에 대한 묘사가 시종일관 유머스러우면서도 기상천외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소설의 내용이 마치 하나의 미션을 완성해 가는 게임과 같기도 하다.

특이한 건 이 과정에서 매우 비현실적인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3층전차를 타고 가짜전기부랑이라는 괴상망측한 술을 만드는 이백이라는 할아버지를 만나기도 하고, 기르던 잉어가 하늘로 날라거 폭싹 망한 도도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며, 자칭 헌책방의 신이라고 말하는 꼬마를 만나기도 하고,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일년 동안 빤스를 갈아입지 않는 빤스총반장이라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남자는 이 모든 미로같은 사건과 사람들을 헤치고 그녀의 마음으로 돌진한다. 그리고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는다.

"선배는 아마데 강 거리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겨울 햇살이 마치 봄날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습닏. 선배는 그 햇살 속에서 턱을 괴고 앉아 어쩐지 낮잠 자는 고양이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배 밑바닥에서부터 따스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공기처럼 가볍고 작은 고양이를 배위에 올려놓고 초원에 누운 기분일까요. 선배가 나를 알아보 웃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나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리하여 선배 곁으로 걸어가면서 나는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이렇게 만나 것도 어떤 인연. (P 391-2)"

작가의 환타지적 생각이 마음껏 소설에 펼쳐져 있고,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젊은 청춘남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에 마음이 같이 들뜨기도 한다. 이런 소설의 이미지들이 만화 영화로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벌써 부터 기대가 크다. 영화도 기대가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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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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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의 초반부에는 주인공들이 옷장을 통해 나니아라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소설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을 읽으면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경험을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최근에는 이런 경험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 감수성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소설의 흡입력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아직도 나를 소설 속의 새로운 공간으로 빨아들이는 책들이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라는 책이 그랬다. 읽는 내내 내가 소설 속의 여름 별장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그 숲속의 길을 운전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기다리던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읽어 보았다. 제목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이다.

소설은 주인공 다다시가 아내와 이혼을 하면서 시작된다. 다다시는 출판사의 중간 직책 정도 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증권회사 연구원이라는 잘 나가는 아내를 두고 있었다. 아들은 이제 다 커서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그런 다다시의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이혼을 요구해 왔고, 다다시는 아무런 변명 없이 집과 가구를 모두 놔둔 채 혼자 집을 나온다. 소설 초반에는 왜 이혼을 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다시는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집을 구하다가 근교의 오래된 낡은 집을 구한다. 집주인인 소노다 씨는 나이 든 여성으로서 혼자 생활을 하다가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 집을 헐 수가 없어서 집을 잘 관리해 줄 세입자를 구했고, 다다시가 적임자가 되었다. 다다시는 낡은 목조주택을 고쳐 가면서 그곳에서 다시 추억을 쌓아간다. 그러다가 아내와의 이혼의 원인이 되었던 가나라는 여성이 근처에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다다시는 가나와 우연히 마주치며 다시 가나와의 관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끊아지는 것도 아닌, 그렇게 유지만 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타인들이 말하는 혼자만의 '우아한?" 생활을 즐긴다. 결국 소설은 그렇게 느리게 흘러가며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은 언뜻 보면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지루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만한 그의 뛰어난 묘사력이 소설 곳곳에 존재한다. 특히 전편과 마찬가지로 인물에 대한 묘사력이 매우 뛰어난다.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그 인물을 옆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많이 있다. 이 책에서는 아내와 가나를 묘사하면서 전혀 다른 두 여성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이 힐은 인도를 급히 걸으라고 만든 게 아니란 말이야!- 아내는 긴자의 미유키 거리를 걸으며 너무 빠르다, 더 천천히 걸어라, 하고 내게 불평을 했다. 결혼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내가 신는 힐은 굽이 높고 가늘어서 엘리베이터 홈 이나 길도랑의 격자에 끼면 부러지거나 안 빠지거나 했다. 콘크리트 위를 걸으면 가죽 밑창이 순식간에 찢어졌다. 그러니 건물 밖으로 나오면 차를 타는 게 옳다고 아내는 내게 가르쳤다. (P 39)"

 "가나는 주황색이나 녹색 같은 선명한 색깔이 어딘가에 들어 있는 옷을 곧잘 입었다. 묘하게 품위 있는 코디네이션으로 세상의 유행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자연스럽게 입었다. 하지만 그를 처음에 매료한 것은 머리 모양도, 패션도 아니고 그녀의 눈이었다. 가나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아주 약간 밑에서 올려다보듯 한다. 눈동자 아래, 흰자위 부분이 살짝 벌어지는 것이다. 일과 관련된 미팅을 할 때도 그녀가 꼼짝 않고 쳐다보면 내 감정이며 비밀까지 꿰뚫어보는 느낌이 들었다. (P 51)"

특히 주인공이 살고 있는 낡은 목조 주택에 대한 묘사는 주인공의 감정과 함께 썩여서 특유의 소설적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나는 북쪽으로 난 이 창문이 좋았다. 옆집에서 보이지 않도록 사이에 가시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나무만 보인다. 창문에는 차양을 깊게 쳤다. 지붕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내뻗은 서까래가 차양을 지탱한다.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았더니 이층 어느 방에서나 창문으로 차양이 보인다는 게 생각 외뢰 신선했다. 서까래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래된 집에  산다는 게 실감 났다. 보자챙처럼 내민 차양은 집 내부의 연장 같고 나무도 불그스름하게 변색되어 마치 잘생긴 귀를 몰래 엿보는 기분이 든다. 아주 짧은 커트머리였을 때 가나의 귀. 저번에 국숫집에서 만났을 때는 머리가 가려 보이지 않았다. 가나의 귓바퀴는 얇고 커브가 작은 데다 고양이처럼 언제나 차가웠다. 아아...... 틀렸다. 차양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다면 비누를 봐도 계단 난간에 손을 얹어도 문 손잡이를 잡아도 가나를 떠올리지 모른다. ( P63)"

사실 전작의 감동을 기대하고 읽었지만, 전작만큼의 감동은 느끼지 못했다. 소설적인 스토리나 묘사의 부분도 전작에 비해 무언가 조금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특유의 필체가 나를 소설 속의 목조주택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가끔 오래된 고향집에 가면,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생각날 때가 있다. 결국 사람은 사라지고, 사람의 감정은 사라져도, 그 사람과 함께 했건 공간은 남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공간은 그 시절의 추억과 감정을 그대로 담아둔 채 나이가 들어간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집이란 이런 느낌이 아닐까. 올해도 계속해서 아파트들이 입주를 하고, 인터넷에서는 서로 자기 집값인 높다고 아웅다웅하며 싸우고 있다. 이런 우리들에게 집은 무엇일까. 단순히 재산을 증식하기 위한 수단일까. 비록 낡은 목조주택이라도 추억과 감정이 담겨 있는 값어치 있는 집들이 많아지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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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히어로즈
기타가와 에미, 추지나 / 놀(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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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직장을 출근하거나 자기 일을 시작할 때는 누구나 열정이 넘친다. 그러나 일을 하고 사람과 부딪히다 보면 점점 그 열정들이 사라지고, 마지못해 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돈을 벌고,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그렇게 자녀들을 키운다. 때로는 이런 삶에 회의를 느끼지만 다른 길을 생각할 수는 없다. 오로지 그 길만이 내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도 즐겁게 할 수는 없을까. 조직의 시스템에 끼어 맞춰진 삶이 아닌, 스스로 기쁨과 즐거움 때문에 일을 할 수는 없을까. 이제 이런 생각들을 허황된 생각이라고 말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지만, 가끔은 아직도 이런 삶들을 꿈꿔본다.

일본 작가 기타가와 에미는 바로 이런 꿈을 꾸는 작가이다. 다들 세상은 그런 거야! 직장은 그렇게 다니는 거야!라고 말을 할 때, 이 작가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다른 삶이 있다고 말을 한다. 처음 이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라는 작품이었다. 하루의 일과가 숨이 막히고 모든 것이 옥죄며, 그래서 육체와 마음이 망가져 가는 직장인이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주식회사 히어로즈]도 직장이나 일과 관련된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자기 분야에서 열정을 잃어버리고 실패를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주인공 다나카 슈지는 한때 직장에서 성실히 일하고 인정을 받았다. 또한 사내연애를 하며 여자친구와 만들 행복한 가정도 꿈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버스에서 치안으로 몰려 구타를 당하고, 직장도 잃고 애인도 잃게 된다. 나중에 이것이 누명으로 밝혀지지만 한 번 찍힌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의 병까지 얻어 공공장소나 버스 안에서 숨쉬기 힘든 호흡곤란까지 느낀다. 이제는 세상과 사람 일에 관여하지 않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평범하고 조용히 살려 한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아르바이트 자리가 들어왔다. 주식회사 히어로즈라는 곳에서 잠시 시간제로 일하는 것이다. 이름부터 이상한 이 회사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회사일까. 슈지는 이상한 회사 이름과 이름만큼 이상한 회사 분위기에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일에서 열정을 잃어 버리고, 지치고, 낙담해 하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슈지가 처음 만난 사람은 꿈과 열정이 넘쳐 만화가 되어 지금은 일본 최고의 인기 만화가가 되었지만, 주변의 기대와 압박에 점점 무너져가는 도조 하야토라는 만화가이다. 그는 슈지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내가 그린 만화를 읽어주는 사람만 있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 나에게는 만화밖에 없으니까, 나에게 만화라는 재능이 있었다면 그 대신 다른 재능이 부족했던 것 같아. 그 무렵에는 그것조차 행복이라고 믿었지만...... 지금은 무서워졌어. 만화 말고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이 때로는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P 107-8)

두 번째 만난 사람은 인기 절정의 여자 아이돌이다. 힘들게 인기를 얻었지만 이 인기와 사랑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는 철없는 소녀이다. 그녀는 우연히 슈지와 애완동물 가게를 지나친 후 이렇게 고백한다.

"애완동물 가게는 정말 싫어. 어린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며 다가오는 모습...... 나를 사랑해 달라고 꼬리를 흔들면서. 꼭 나를 보는 것 같아. 가여워서 못 견디겠어. 이 아이들은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팔리지 않은 상품은 망가진 로봇처럼 버려지고 마는 걸까" (P 207)

"그러니까 재고가 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아양을 떠는 거야. 더 많은 사람들이 귀엽다며 쓰다듬도록. 좋아해 줄 만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거지 자신을 데리고 가 평생 귀여워해 주기를 바라면서." (P 208)

주식회사 히어로즈는 이렇게 자신의 일에서 꿈과 열정을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꿈과 열정을 주어 자신의 삶에서 히어로즈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슈지는 이 일을 해 가면서 다시금 자신의 삶에 열정과 꿈을 회복해 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 본다. 사람이 살아가고 일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냥 돈을 벌고, 가정을 이루고, 그렇게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 전부일까? 아니면 자신의 꿈을 찾아 즐겁게 일을 하는 것이 전부일까? 이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항상 이 두 가지가 갈등을 일으키고, 대부분은 전자의 일상적인 삶이 후자의 꿈과 열정을 갉아먹는 것이 현실이다. 바쁜 직장인이나 자신의 꿈을 잃은 사람들에게 다시금 꿈을 꾸게 해 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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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이누이 루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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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안타까운 과거의 기억들이 있다. 그때 그 일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때 그 사람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혀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만약 그런 사람들에게 과거로 돌아가게 해 준다면... 그래서 그때 그 사건과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일본 작가 이누이 루카의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는 바로 이런 간절함과 안타까움이 묻어있는 소설집이다. 이 소설에는 과거의 아픔과 만나는 6편의 단편소설들이 실려 있다.

첫 번째 소설 [한 밤의 동물원]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한 소년이 한 밤중에 몰래 동물원을 찾으며 발생하는 이야기이다. 그는 그곳에서 동물원 관리인을 만난다. 그는 소년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인생에 대한 소중한 조언도 해 준다. 그러나 관리인은 소년이 보는 앞에서 불의의 사고로 죽고 만다. 소년은 관리인의 도움으로 친구들이 괴롭힘에서 벗어나 청년이 되고, 자신이 어린 시절 방문했던 동물원의 관리인이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다가 자신이 어렸을 때 만났던 관리인의 모습과 자신이 닮아 있음을 발견한다.

두 번째 소설 [시간을 달리는 소년]은 가장 멋진 구성을 보인 소설이었다. 하지메는 아빠와 젊은 새엄마와 산다. 하지메는 새엄마를 좋아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지를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지진이 나고, 겨우 하지메만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새엄마와 비슷하지만 훨씬 나이가 든 중년의 아줌마를 만난다. 하지메는 하루 동안 그 아줌마의 집에 머물며 새엄마와 하지 못 했던 것들을 한다.

세 번째 소설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은 읽는 내내 가장 안타까움으로 읽은 소설이다. 소설은 한 여성 복지사 실습생이 같은 이름의 할아버지를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이시바시라는 할아버지는 평생 한방을 노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며 살았다. 그럼에도 항상 자신을 믿어주는 아내가 있었다. 결국 아내는 암이 걸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시바시는 아내가 죽는 그 장소로 다시금 돌아가고자 한다. 그곳에 돌아가면 그는 꼭 바꾸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네 번째 소설 [뱀 불꽃]은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평범하게 나이를 들어가는 한 여성이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들과의 약속대로 15년 전의 학교를 찾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쩐 일인지 그녀는 15년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15년 전의 친구들을 만난다. 15년 후에는 세상에 없는 친구들을...

다섯 번째 소설 [did not finish]는 평생 변변치 못한 성적만 내고, 인생의 후회만 남은 스키인이 사고로 죽으며, 자신의 과거를 만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지막 소설인 [밤 산책]은 앞의 소설과는 달리 그나마 희망적인 소설이었다. 눈의 고장이 삿포로로 전근을 간 한 여성이 한 노인을 만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는 단지 주인공들의 가슴 아픈 사연에 빠져서 인식을 못했는데, 막상 읽고 나서 생각하니 이 소설에서 대부분 주인공들이 만나는 사람들이나 주인공 자신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죽은 존재였거나, 환상 속에서 만나는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무서움의 감정보다는 안타까움이라는 감정이 지배를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의 과거를 향한 안타까움이 읽는 내내 전해져서 나 자신의 안타까운 과거를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대부분 심리학이나 자기개발서 등의 책에서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를 보면 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인간이란 존재는 과거의 사건들이 모여서 지금의 자신이라는 인격체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싫든 좋든 과거를 버릴 수는 없다. 과거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가슴 아픈 과거까지도... 저자는 소설을 통해 이런 가슴 아픈 과거까지도 결국에는 삶의 일부분이었음을 이야기한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지만, 너무 아픈 과거는 아무리 부정해도 그 역시 삶의 일부분이다. 돌이키거나 바꿀 수는 없지만 그것까지도 내 삶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그렇게 아픈 과거이지만, 그 아픔 속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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