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가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6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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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일까? 서로 같은 집에 살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리고 서로를 위해주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여기에 아무런 혈연이 없으면서도 어쩌다가 서로 모여서 살게 된 가족이 이야기가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좀도둑 가족 (국내 개봉 : 어느 가족)]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원작이 소설로 출간되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자신의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소설로 출판하고 있다. 비록 영화로는 보지 못했지만 소설로 먼저 만나봤다.

빈집만이 넘치는 일본 도시의 재개발 지구에 한 가족이 살고 있다. 이들이 여기 살고 있는 것은 원래 집 주인인 하쓰에 할머니 외에는 비밀이다. 하쓰에와 하쓰에의 배다른 두 딸 노부요와 아키, 그리고 노부요의 남편 오사무, 그리고 오사무의 아들 쇼타, 그리고 매 맞아 울고 있어 그냥 데리고 온 유리라는 여자아이까지... 이들이 어떤 관계인지 잘 모르지만, 혈연으로 얽혀있는 가정은 아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각자의 삶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하쓰에는 젊은 시절 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 그녀는 남편이 남겨두고 간 허름한 집에서 자신을 버린 남편의 사진과 향을 피우는 불당을 차려 놓고 산다. 근근이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노인연금으로 살아가면서 파친코는 꼭 들리지 않고 간다. 노부요는 남편으로 폭력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술집에서 일을 하다가 오사무라는 남자를 만나 동거하게 되었다. 그리고 둘은 우연히 하쓰에의 집에 살며 그녀를 어머니라고 부른다. 쇼키는 오사무가 데려왔다. 일을 하기 싫어하는 무능력한 오사무는 쇼키를 데리고 근처 슈퍼마켓을 돌며 생필품을 훔치고 있다. 노부요 역시 세탁소에 일하며 손님들이 옷에 넣어둔 물건들을 슬쩍하며 살고 있다. 노부요와 자매는 아니지만, 하쓰에를 어머니라고 함께 부르는 아키는 퇴폐업소에서 일하며 아무런 미래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온몸이 멍 자국이고 화상 자국인 '린'이라는 여자아이가 있다.

처음에 이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이곳에 모여 산다. 그러나 조금씩 서로를 향한 정(情)이 생기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며, 서로를 돌보기 시작한다.

"노부요는 현관에서 가져온 철제 석유통 속에 불붙인 신문지를 넣었다. 그리고 린이 처음 이 집에 온 날 입고 있던 옷을 던져 넣었다. 노부오는 린을 위에서 안듯 무릎으로 감싼 책 재를 바라보았다. 윗옷 소매에 붙은 흰 리본이 순식간에 휩싸이더니 까맣게 변색되었다. 노부요는 린을 뒤에서 안듯 무릎으로 감싼 채 재를 바라보았다. -때리는 건 말이지...... 린이 나빠서가 아니야......- 노부요는 천천히 말해 주었다. -사랑하니까 때린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야- 노부요는 삼십 년 전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어투가 어딘가 자신의 엄마를 닮아 있었다. - 좋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 노부요는 린을 꼬옥 안아주었다. 뺨과 뺨이 찌부러질 만큼 힘껏 끌어안았다. 노부요는 뺨에 한 줄기 눈물이 흐르는 걸 느꼈다. 옷을 태우는 불 때문인지 눈물이 따뜻했다. 린은 뒤돌아 노부요의 얼굴을 보며 작은 손으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이 아이가 무척 귀엽다든지 안쓰럽다든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이 아이를 안고 안기는 것만으로, 자신을 구성하는 세포 하나하나가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더는 이 아이를 내버려 두지 않아. 노부요는 맹세했다. (P 135-136)"

이들은 세상의 시각에서 보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아닐 수도 있고,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부도덕한 일을 하는 불량 집단일 수가 있다. 실제로 소설 말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피가 아닌 정으로 맺어진 이들은 서로가 예전의 가정에서 느끼지 못했던 따스한 사랑을 이 좀도둑 가족에서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사실 부부 사이도 피로 맺어진 관계는 아니다. 그러나 서로 함께 살고 서로의 연약함을 품어주면서 피로 맺어진 관계보다 더 끈끈한 관계가 되는 것 아닐까?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가슴 뭉클한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고 나니 영화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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