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 오브 라이프 - The Tree Of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태초 내가 존재한 것은 아니다. 아빠와 엄마는 결혼 8개월 만에 날 낳았지만 난 정상적인 혼인관계에서 잉태된 허니문 베이비였다. 10월의 어느날이 예정일이었으나 그보다 앞서 나온 건 누가 말한 것처럼 엄마 몸이 약해서거나, 초산이어서, 또는 내가 빨리 나오고 싶어해서는 아니었다. 결단코 나는 이 세상에 더 빨리 나오고 싶었던 적이 없다. 내가 나올 시점을 정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태어나기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주어지는 삶은 고통스럽고, 살아가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드므로. 나는 아마도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생명의 나무, 번역 제목으로 <트리 오브 라이프>는 바로 그 지점, 나도 없고 당신도 없는 절대적 시점, 나는 없고 내가 잉태되지도 않은 바로 그 생명의 태초부터 시작한다. 시작줄기를 알 수 없는 폭포수와 원인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서 서서히 이루어져온 화산폭발로 우주의 기원, 인간의 태초를 보여준다. 애초에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보여주는 영화다. 색감의 미학과 친절하지 않은 내러티브, 간혹 들어차는 생략과 여백의 아름다움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영화다.  

느끼지 못할 뿐이지 영화는 분명히 드러냈다. 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알고 걸어가는, 본인이 어느 지점에 얹힐지를 아는 영화다.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왜 왔으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언제부터 해왔는가. 시점에 관한 영화지만, 우주와 지구, 미래와 현재, 생과 사, 현실과 초월 등 이 모든 것들을 짚어내는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어느 것도 불명확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시작부터 기이하고 갸우뚱한 초현실학적 화면으로 장면장면을 지루하게 이어져가던 영화가 어느새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의 존재이유를 묻는다.

성인 잭(숀펜)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후 기억나는 어린시절과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을 동시에 떠올려 기억의 맨 처음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다. 보는 우리도 동시에 올라탄다. 거기에 의식 강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오브라이언(브래드 피트)과 상냥하고 다정한 어머니가 있다. 보통의 가정, 보통의 부모. 보통의 시대. 잭은 본래 자신이 있던 곳에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그들의 첫 아이로 잉태된다. 문을 열어서, 넘지 못할 산을 오르고,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서, 우주의 무한한 공간을 헤쳐 하필이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사람에게로 온다. 그들의 자식이 된다. 이후 평범한 부모는 행복과 사랑으로 잭을 낳아 기른다. 노래를 불러주고, 안아주고, 키스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귀에 속삭인다. 사랑스러운 아이야, 무럭무럭 자라라. 마치 나무가 커가는 것처럼 그도 자라난다. 쌔근쌔근, 아장아장, 뚜벅뚜벅. 동생이 생기고, 동생에게 빼앗긴 사랑을 샘내고, 동생을 주도하여 온 동네를 뛰어다닌다. 

아버지는 엄격하다. 그는 그가 아는 모든 것에 한해,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 모두를 아들들에게 가르친다. 식사예절, 싸우는 방법,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 공놀이, 잡초뽑기, 나무 기르기, 말대꾸하지 않는 법. 아버지는 자신의 시행착오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싫어 선택한 방법이지만 잭에게 이 모든 것들은 살아가는 데에 자신감을 잃게 하고, 반항기만 길러주는, 욕망을 누르기만 해야 하는 엄청난 감옥이 된다. 어느새 어린 잭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익숙하고 편안하지 않은, 능가해야 하고 짓밟고 싶은 반항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어느날 그가 직장을 잃고 그 커다란 날개를 꺾어버리기 전까지.  

영화는 줄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들이 커가고 아버지가 늙어가는 동안 갓 심은 작은 나무도 함께 커간다. 뿌리를 내리고 커다란 심지를 박고 무성한 잎을 뻗어내며 치렁치렁 그늘을 내어줄 때까지 나무는 자란다. 생명도 자란다. 아들은 자라고 아버지는 늙어간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잭은 아들의 역할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내내 불안정하지만 한편으로 누구보다 더 순수하고 정 많은 아이로 자란다. 대부분의 이 세상 아들들이 그런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가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으나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그는 이해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단 한 명의 아들이 된다. 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우주와 생명의 빈 공간에 계신 것은 역시 하느님, 신이다. 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아버지와 자식을 내려주며, 생명에 물과 사랑을 주어, 무럭무럭 크게 한다. 생명의 탄생은 나무의 생명과 같은 것.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주제는 '생명'이다. 아무도 의미없이, 이유없이, 노력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다. 모두 의미있고, 이유있고, 노력에 의하여 이 세상에 오는 것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아니,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잉태되기 전부터도 우리는 모두 예정되어 있던 생명이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비어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를 우리의 상상과 생명의 존귀함으로 직접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난해하고 모호하고 신비로울 수 있다. 신비로움이란 감정은 애초 숭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다. 생명의 귀함을 각자 한 번씩 생각해야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 더 좋은 건 역시 작품의 아름다움과 낯섬을 경험하게 하는, 드라마를 SF로 승화시킨 감독이 빚어낸 영상, 즉 촬영기법에 있다.  

p.s.몇 년 안 본 사이 브래드 피트 참 많이 아저씨가 됐구나. 여전히 멋있지만, 그 멋짐도 숀펜의 카리스마에 눌리고, 아역배우의 뛰어난 기와 눈빛에 눌려서, 말이 권위적 아버지지 전혀 권위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대사없는 초반 30분과 후반 10분인데,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영화 평점을 바닥까지 내리고픈 관객들이 많은 걸로 볼 때, 이 영화는 상업영화 범주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고, 2011년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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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0-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내용은 완전 그레이트 대박 마음에 드는데요. 아이리시스님의 나레이션이 깔려 있는 듯한 영화 소개라 잘 읽고 봤네요. ^^ 이런 내용 전 참 좋아해요. 삶과 죽음에 대해 말이죠.
인간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아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알기도 힘들구요. 매일 현실의 눈 앞만 보이고 그것만 쫓아서 살다보면 언젠가 죽을 문턱에 와 있다는 사실이 참 허탈하기는 해요. 하지만 어떤 생사관을 지닌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과연 끝인가? 그럼 나는 왜 태어났는가?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왜 시작을 했는가 마치 뫼비우스의 끈처럼 생각은 그 끝을 모릅니다. 사실 이것이 제 인생의 연구 주제이기는 하지만 매일 쳐 들어오는 주민들을 상대하다 보면 하루를 바라보고 사는 하루살이 같다는 느낌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어느 시점에서 아이리시스님의 서재를 알고 아이리시스님과 절친이 되는 이 만남과 인연...아~ 뭔가 신기하지 않습니까~~

아이리시스 2011-10-12 22:06   좋아요 0 | URL
루쉰님, 매일 쳐들어오는 주민상대라니, 이거 뭔가 되게 영화틱하잖아요.ㅜㅜ 저는 칸영화제 취향인가 봐요. 칸영화제 출품작들은 다 좋더라고요.ㅋㅋㅋ 제대로 개봉 안하는게 문제지만. 우린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는데, 그 중에 우리가 만난 것, 그것도 서재에서 만난 건 더욱 더 신기한 인연이죠! 절친이 된 것도. 매일 전장에 나가는 루쉰님, 화이팅. 그래도 저는 야근하며 떡볶이나 피자 먹고, 커피나 주스도 마시는 생활, 그리워요. 진짜 시키면 무지 싫을 것 같지만요.(이런 이중성, ㅠㅠ)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더 연구해요! 그리고 논문써요, 우리.^____________^

프레이야 2011-10-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아주 기대중인데 아직 못 보고 있어요.ㅠ
브래드는 숀에게 밀렸군요.^^
전 '나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우주적인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님의 리뷰로 미리 보는 영화, 좋으네요.
아주 색다른 화법일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10-13 12:44   좋아요 0 | URL
'나무'가 이렇게 생명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그래서 간혹 나무무덤을 만들어주나 봐요. 정말 나무가 쑥쑥 커가는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어요. 모든 것을 흡수하고 빨아들이니까요. 범우주적인 나무. 프레이야님 서재에서 제가 훨씬 더 많이 좋은 영화들 보죠. 좋았어요, 늘. 색다른 화법, 나중에 꼭 보세요.^^

근데 [레스트리스]는 개봉하는데 [멜랑꼴리아]는 개봉 안하나 봐요. 저는 트리에와 커스틴 던스트가 더 기대되는데..^^

stella.K 2011-10-1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제법 거창합니다.
혹시 부산영화제 상영작인가요?
글치 않아도 빵 피트 요즘 뭐하나 했더니 여기 나오는군요.ㅋ
숀펜은 턱이 너무 깍아지른듯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연기는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빵 피트는 숀펜과 같이 출연만 안했어도 나름 빛났을지도 모르는데
선택을 잘못한 걸까요?ㅋ
대사 없는 초반 30분, 후반 10분이라...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견딜만한가 의문이네요.
이런 진지한 영화 나름 관심은 가는데,
실제로 보면 어떨지 살짝...?!^^

아이리시스 2011-10-13 12:39   좋아요 0 | URL
스물두살 때 <21그램>을 보러갔었는데 그때 숀펜을 알아서, 그런데 남은 안늙고 나만 나이 먹어요, 흑흑. 하하, 빵 피트. 제가 오랜만에 영화봐서 그런 줄 알았는데, 피트 정말 오랜만에 나온 건가요?ㅋ
근데 이 영화, 딱 영화제 영화예요. 비중으로 볼 때 피트가 주연이면 숀펜은 조연인데, 영화에서 둘이 만나지도 않고 만날 일도 없고, 맞대결하지 않아요. 그래도 내용 때문인지, 존재감 때문인지, 피트가 밀리는 느낌이예요.

이거 부산영화제 상영작 맞는데, 2주후 27일에 개봉해요.^^

페크pek0501 2011-10-1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를 우리의 상상과 생명의 존귀함으로 직접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난해하고 모호하고 신비로울 수 있다. 신비로움이란 감정은 애초 숭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다" - 이 표현, 좋고(좋코)~~~

영화 리뷰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저는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리뷰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잘 보고 갑니다. ^^

아이리시스 2011-10-15 01:40   좋아요 0 | URL
책은 수준인데, 영화는 그야말로 취향 같아요. 대사가 없어도 영상으로만 전해지는 게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서 함부로 추천은 못하겠어요. 그건 제 성격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본 걸 누군가에게 보라고 하고 막 그것에 대해 얘기나누는 취미는 제게 없어요.( '') 저는 항상 제가 모르는 글을 읽고, 모르는 책의 리뷰를 읽고, 모르는 책이나 영화에 대해 얘기해주고, 제가 안읽은 책이나 모르는 분야, 안본 영화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해요. 오스트리아 빈의 빨래방에서 빨래가 돌아가던 한 시간 동안, 제가 유럽가기 직전에 봤던 빨래방을 배경으로 한 일본영화를 얘기하니까 친구가 유심히 들어주는 것 같은 것. 저는 그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아요. 그래서 이야기할 거리가 생겨요. 공감을 요구하거나 내가 좋은 걸 강요하지 않게 돼요.

제가 보는 리뷰는 대부분 제가 읽지 않는 분야의 리뷰예요. 그래서 저는 리뷰 보는 것으로 만족하거든요, 언제나. 내가 읽어도 처음 쓴 다른 사람보다 잘쓸 자신 없어서.^^

주말 잘 보내세요, 페크님. 이 얘기하려고 너무 말을 길게..^^
 
[천 명의 백인신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그 사람들도 아무 잘못 없었어. 작년에 헨리 대위와 버펄로 사냥꾼들은 새파 강가의 남부 샤이엔 족을 급습해서 천막촌을 태우고 그 주민을 남김없이 죽였지. 갓난아기를 갓 불에 던지고. 군은 원하는 짓은 어떤 짓이나 다 해. 신병들을 갓 뽑아다가 겨울에 알지 못하는 적을 상대로 싸우면서 고초를 겪게 해봐. 겁에 질린 자들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 특히 명령이 떨어지면." 

"인디언들이 죽이는 사람도 죄 없는 사람들이야. 결론은 늘 그렇지만 이 나라에는 인디언과 백인이 함께 살 수 없다는 거야. 한 가지 확실한 건 백인들은 물러가지 않은 거라는 거.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디언들은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거지."
(pp.445-446)

 
   

 

 

비로소 빠져나오자, 내가 딪고 서 있는 땅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보인다. 비정성시(非情城市). 여기는 오색찬란한 슬픔이 깃든 비정하지만 성스러운 대한민국이고, 다녀온 곳은 1800년대 후반의 인디언 본거지다. 인간은 본디 질기디 질겨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땅에도 기어이 뿌리 내리고 만다 했었나. 이미 결론 내어진 싸움을 두고 오래 애를 태웠더니 먹먹해져 가슴을 쓸어내린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때 언제였는지, 어느새 휑하다.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차고 나간다. 좋아하지 않는 서부 영화 한 편이 간절해진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세대가 교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온한 대평원의 쨍쨍한 태양 아래 보송보송한 발바닥으로 하염없이 치달린 것마냥 피곤하다. 모두 처연한 꿈결처럼 아련하다. 가만히 인물을 하나씩 입으로 불러내본다. 아, 이런 삶도 있었지. 표면적으로는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속은 한때 거대했던 미국 역사를 아우르는 들장미 같고 들풀 같은 백인 여자들과 강인하고 올곧던 샤이엔 족의 찬란한 일대기. 오랫동안 영광스럽게도 읽었다. 참 먼 길을 걸어왔다. 저절로 고개 숙여질 만큼 앙상하고도 힘찬 길을. 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보름달 아래 미친 듯이 휘몰아친 우리 모습은 얼마나 요란했을까. 왈츠와 지그와 폴카, 그리고 예쁜 프랑스 처녀 마리 블랑슈의 캉캉까지, 어떤 춤으로 시작했건 상관없었어. 모든 동작이 점점 빨라져서 마침내 색깔과 동작과 소리가 하나로 뒤엉켜 버렸으니까. 사람들은 번식기 새들 같았어. 깃털을 일으키고, 수컷은 가슴을 부풀리고, 암컷은 뒤집힌 엉덩이를 공중으로 쳐드는. 우리는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또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어. 음악 속에는 뇌조의 북 치는 듯한 울음이 들리고 지구의 규칙적인 박동이 울렸으며, 노래 속에는 천둥, 바람, 비의 소리가 들렸지. 이건 대지의 춤이었어. 하늘의 신들은 자기 창조물들을 보며 아주 즐거웠을 거야. (p.198)

 
   

 

 

샤이엔의 '온화한 주술' 족장 리틀 울프는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세상을 뒤흔들 만한 제안을 내놓는다. 천 명의 백인 신부를 선물로 주면 말 천 마리를 주겠다는 것. 철저한 모계사회이던 샤이엔 족은 백인 사회와의 결합을 위해 본인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한 마디로 정략결혼. 당황하던 미 행정부의 어이없음도 잠시, 놀랍게도 제안은 받아들여진다. 행정부는 이름하여 '인디언 신부 계획'의 물밑 작전을 시작하며 자원자가 부족할 경우 감옥, 감화원, 채무 감옥, 정신병원의 여자들에게 완전한 사면과 무조건 석방을 약속하며 채우기로 한다. 속셈은 단 하나. 여자들이 인디언족의 삶을 완전히 교화시켜 놓는 것. 리틀 울프의 제안이 있은 지 불과 6개월, 네브래스카 준주에 위치한 캠프 로빈슨으로 떠나는 기차에는 시카고 북쪽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메이 도드가 친구 마사와 함께 타고 있다.    

 

이야기는 메이의 일기로 진행된다. 인디언들을 만나러 가는 길, 만난 이후, 샤이엔의 여자로 사는 삶, 그 이후. 비교적 담담하고 못견디게 자세하여 종종 목이 메일 지경이다. 대자연을 이토록 생생하게 복원한 것도, 저마다의 캐릭터와 얽힌 사연을 이다지도 매끄럽게 연결시킬 줄 아는 작가는 이미 넘버 원. 제안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제안을 수용한 것은 허구이기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메이는 시카고 대부호의 딸이지만 별볼 일 없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도덕성 상실'이란 진단을 받고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 지옥같은 삶을 살았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란 인디언 신부 계획 뿐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한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참지 않으며, 때에 따라 지혜롭고 영리한 백인 여자 메이는 이 거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파견된 부대의 존 버커 대위와 사랑에 빠진다. 인디언에게로 인도되는 바로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랑은 싹텄고, 첫날밤은 치뤄졌고, 일생일대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지만 결코 약혼녀 있는 독실한 가톨릭교 대위를 곤란하게는 하지 않았다. 메이는 존을 사랑하는 만큼 자유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의 곁을 떠나 백인 신부의 길을 계속 간다. 마침내 샤이엔 족과 조우했을 때에 메이는 첫 눈에 리틀 울프의 세 번째 부인으로 낙점된다. 프라이버시라고는 전혀 없는 부족 생활, 가족 공간 틈에서 탄탄한 근육에 말수가 적은 진중한 남자 리틀 울프와의 접촉을 간절히 기다리던 차, 백인 여자 메이에게 꿈같고 보석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서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어. 아니면 꿈같은 일이 일어났어. 꿈이었을 거야. 남편이 나와 함께 천막에 있었으니까. 그는 아직도 소리 없이 춤을 추고 있었어. 모카신을 신은 발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 했고, 모닥불을 돌며 조롱박 딸랑이를 흔들었는데 그것도 소리가 나지 않았어. 남편은 그렇게 혼령처럼 춤을 추며 내가 누워 자는 곳을 빙글빙글 돌았어. 나는 점점 몸이 달아올랐어. 그의 춤을 보니 배 속이 짜릿해지고 가랑이 사이에서 욕망이 간지럽게 끓어올랐어. 꿈에서 나는 앞가리개 천 밑에서 그의 남성이 뱀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보았어. 그는 춤을 추었고 담요에 배를 대고 엎드린 나는 그 자리에서 폭발해 버릴 것처럼 얕은 숨을 쉬었어. 내가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는 비켜나서 내 뒤로 오더니 이제 벌거벗은 내 엉덩이에 깃털을 댄 듯 나를 간지럽혀서 나는 더욱더 흥분했어. 그런 뒤 나는 엎드린 채 엉덩이를 들어올려 나를 바쳤고, 간질거림이 거세어지자 다시 담요에 납작 엎드렸어. 몸속을 채우고 싶은 열망이 고통스러울 만큼 커졌지. 하지만 그는 계속 내 뒤에서 소리 없이 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가볍게 춤을 추었어. 꿈 속에서 내 목에서 어떤 소리가 났어. 다른 사람이 내는 것 같은 소리, 내가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였고 나는 엉덩이를 더 높이 올려서 천천히 돌렸어. 그건 자연 현상이었어. 다시 깃털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살과 살이 가볍게 닿았고, 이빨이 목을 가볍게 물었어. 따뜻하고 건조한 뱀이 엉덩이에 내려와서 다리 사이에 놓인 채 박동치다가 내 다리를 벌리고 내 몸을 열더니 천천히 고통 없이 들어왔다가 물러났고 다시 들어왔다가 물러나서 나는 그것을 영원히 잡아 삼켜 버릴 듯 몸을 뒤로 밀었어. 그런 뒤 그것이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고, 나는 목에서 다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몸이 덜그럭거렸고, 더 이상 독립적인 의식을 가진 개체가 아니라 무언가 더 오래고 원시적이고 진실한 것의 일부가 되었어. 동물처럼, 이라고 존 버크는 말했지. 그 말뜻을 알았어. 동물 같았어.  

거기서 꿈은 끝났고 새벽에 깨어 보니 머릿속에 다른 기억은 전혀 없지만 나는 여전히 담요에 엎드려 있고, 여전히 사슴 가죽 혼례복 차림이었지. 나는 그것이 꿈,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에로틱한 꿈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마술처럼 내 안에 아기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도 알겠어. (pp.200-201) 

 
   

 

인디언 남자든 백인 여자든 흑인 여자든 상관없이 결합은 진정 아름다운 것. 꿈결 같은 기억처럼 몸안에 남아있는 느낌. 

 

미개인 사회의 규칙. 여자와 남자의 역할 분리. 남녀차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수없이 많은 것들 사이에서 메이는 아주 쉽고 빠르게 인내하고 변화시킨다. 메이 뿐 아니라 백인 신부 계획에 참여한 수많은 여자들 역시, 시행착오와 부딪침 속에서 깊은 평화와 만족감을 느끼며 샤이엔 족의 삶에 적응하려 애쓴다. 이들의 삶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부조리한 단어 하나로 이들을 묶어둘 수 없다.

   
 

'나는 얼마나 기이할 정도로 행운아인가.' 

그렇다, 미개인 사회의 그 모든 낯섦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새 세상은 오늘 아침 말할 수 없이 달콤해 보였다. 나는 원주민들이 대지와 전원에 묻혀 사는, 교묘하고도 완벽한 방법에 감탄했다. 그들은 봄풀처럼 이 평원 정경의 일부인 것 같다. 그림의 뗄 수 없는 일부로 여기 속해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p.210) 

 
   

시간과 사랑. 그들을 가까워지게 하고 한 가족으로 묶는 끈은 단 두 가지 뿐이었다. 진심으로 두 가지만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리틀 울프에 대한 나의 감정이 존 버크에 대한 감정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존 버크와의 일은 내가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열정, 지성과 육체, 몸과 마음, 영혼의 결합이었다. 나는 세 번의 사랑으로 벌써 세 번의 인생을 산 것 같은 느낌이다. 첫 사랑 해리 에임스와 나눈 불꽃같은 육체적 사랑은 정신병원 독방 생활의 어둠 속에 꺼져 버렸다. 그런 뒤 별똥별처럼 환상적인 새 사랑이 그것을 다시 점화시키고 지나갔다. 그렇다, 해리 에임스가 내 여성성을 끌어낸 예측 불허의 밝은 불꽃이었다면, 존 버크는 강렬하게 타오른 나의 별똥별이었다. 그리고 이 남자 리틀 울프는 내게 온기와 안전을 주는 오두막 모닥불이다. 그는 나의 남편이고 나는 그의 착하고 충실한 아내가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p.223) 

 
   

 

사람과 사람, 남과 여, 어른과 아이, 어머니와 아이, 친구와 친구. 모든 관계들이 아름답지만 사랑이 제일이다. 사랑으로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메이는 따뜻한 마음과 충실한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모두를 진정시킬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백인 여자와 인디언 남자의 오붓한 동거는 샤이엔 족에게 꽤 낭만적으로 보였다. 이때까지는. 마시는 알코올. 술. 술이 들어오기 전날까지는. 술만 마시면 미쳐버린다 했다. 신도 주술사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했다. 버펄로를 잡기 위해 늑대를 죽일 수 있는 약을 놓던 샤이엔 족이 되려 약을 먹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그들이 알아차리는 사실과도 같다. 샤이엔 족을 샤이엔 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늑대가 아니라 술, 백인 사회 또는 문명 사회가 유통시킨 바로 그 문명의 알코올이었음을. 늑대는 샤이엔 족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그들은 당장 늑대잡는 약 사용을 중단한다. 그들에 의하면 자연은 어떠한 경우에도 위대한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사이만큼이나 백인과 샤이엔 족의 사이 역시 멀었지만.  

   
 

"망할 놈의 술만 빼면,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이야. 처음에 이 사람들한테 납치당했을 때는 죽을 만큼 괴로웠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 본래 인종은 거의 잊었어. 꼭 동화 속을 사는 것 같았지. 그리고 그 동화를 깨뜨리는 건 백인의 세계야. 어젯밤에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내 경우는 샌드 크릭에서 그랬고." (중략) 

"여기 생활이 그렇게 좋았다면 왜 백인 세상으로 돌아갔니, 거티?" (중략) 

"하지만 내가 백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기도 했어.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 (p.276) 

 
   

동화 속 세계를 깨뜨리는 건 역시 백인의 세계. 그건 분명한 말이기도 했다. 미국 지질학자들이 인디언들의 땅인 블랙 힐스의 금광에 대한 희망적인 보고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채굴꾼들은 모여들기 시작했고, 대중들의 인디언 몰아내기 요구가 먹혀 들어갔다. 백인 개척민들의 안전을 위해 블랙 힐스에서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것. 그 작전은 은밀하고도 어김없이 진행된다. 마치 본래 자신들의 땅인 듯. 약속도, 대화도, 설득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위 또는 마구잡이 식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려는 존 버크 대위와 반항하는 메이의 다툼은 이미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예감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했다. 인디언들의 일상적 터전과 소소한 행복이 유지 되기를. 순진한 바람은 소설 속에서조차 오래 가지 못했고, 그들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비참하고 어이없는 방식으로 도망하거나 배반하거나 죽어갔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살아남아 미래를 바꾸어 나갈 것이다. 화해를 청할 것이고, 소통을 원할 것이고, 수용하는 법과 거래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메이의 일기는 반 세기 동안 오래된 빛에 갇혀 있었다. 메이의 딸이 아들을 낳고, 아들이 또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녀가 증조 할머니라고 불릴 때까지. 메이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용기있고 당차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백인 여자는 우둔하고 잘난 척만 하면서 남자 밝히고 쇼핑중독자일 거라는 편견을 단번에 날려주는 오래된 신 백인여자라고 해도 좋겠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에 적응하고,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생활문화에 살며시 내려앉는 것. 더불어 후회와 원망조차 하지 않는 것. 그녀는 예뻤다. 총명하고 똑똑하고 지혜로웠다. 지금 내 인생에서 그녀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나 또한 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차가운 바람 속을 달리면서 이들에 대한 나의 충성은 내 가슴속에서 뛰는 심장에 의해 봉인되었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원했다 해도 내가 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p.379) 

 
   

그래, 맞다. 심장 속에 봉인되어 있는 각인 같은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웬만하면 자발적, 순종적, 점진적인 게 낫다. 모두 안고 갈 수 있어야 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에 의하면 의지여야 하고, 나에 의하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행위'여야 한다. 즉, 녹아들어감 또는 흡수. 흡수라는 단어 참 좋다. 튀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도 마음에 든다. 인디언들의 세계는 내게조차 정말로 동화 속 같았다. 대평원을 질주하는 기분과 한없이 바다 속으로 침잠하는 기운이 동시에 들곤 했다. 광활한 땅에 자신들만의 뿌리를 세우고 싶었던 인디언들에게 평화를 선물하노니 부디 편히 잠드소서.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촌스럽고 칙칙한 표지에 비해 정말로 흡인력 높은 한 편의 서사극이다. 대장정의. 아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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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9-27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나는 절대로 ( 정말 절대적으로 ) 완독하지 못할 듯 한 책이예요 . 헤 .
 굿모닝 !
 

아이리시스 2011-09-27 12:50   좋아요 0 | URL
두 번은 읽고 싶지 않은 책이고, 500페이지나 되고 또, 피하고 싶은 역사죠. 헤.
굿 에프터눈 !

알로하 2011-09-2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간만에 와봤는데 댓글 달아주셔서 마음이 따뜻했어요!ㅋㅋ 블로그 관리 전혀 안하니까 혼자하는 느낌으로 하거든요. 이 책은 리뷰만 봐도 압도적이네요. 인디언과 관련된 내용은 항상 맘이 아픈데 이 책은 좀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을까요?ㅠㅠ

아이리시스 2011-09-27 18: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주 안오신 거군요. 소설 리뷰가 계속 올라올 것만 같은 기분에 혼자 들락날락 했는데 이제야 나타나시고, 알로하님. 이름도 예쁜 알로하님. 자주 와요, 알았죠?^^

혼자하는 느낌으로도 좋아요. 인디언의 역사는 슬프지만 이 책은 멸망이 아니라 녹아들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슬프지만 아프지 않아요. 출판사에서 더 예쁜 표지로 본격 마케팅을 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서사가 살아있고 마음도 건드리는, 다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근사는 영화 한 편 본 것 같거든요.^^

2011-09-27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27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군요. 천 명의 백인 신부라니.
왠지 묵직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메이는 정말 지혜롭고 사랑스럽네요.
그리고 어쩌면 인디안들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순리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대평원을 질주하는 기분> <한없이 바다속으로 침잠하는 기분>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옛날에 고등학교 때인가. 러시아 무슨 제국의 드라마인지 영화를 본 적이 있었어요.
광활한 땅을 배경으로 하는 그 몇 부작의 이야기가 저로 하여금 몇 장의 일기를 쓰게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아..그리고 펄벅의 <대지>를 읽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이리시스 2011-09-27 18:47   좋아요 0 | URL
<대지>랑 비슷한 느낌일 거란 거 알 것 같아요. 영화로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 같은 느낌이고 음.. 잘 기억나지 않아요.ㅜㅜ 예전에는 스케일이 큰 이야기들이 좋았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가 이 소설은 좀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별 다섯 개예요. 메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고작 스물 다섯 살이었을 뿐인데도!

인디언 멸망사 인문학책 한 권 있는데 그거 읽을까 하다가 제 관심은 언제나 단편적이니까 그냥 또 휙- 하고 날려버렸어요, 현맘님. 하하.

2011-09-27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9-27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정성스런 리뷰네요. 읽으면서 밑줄 긋기까지 일일이 하시는 거에요? 저는 게으르고 귀찮아서 밑줄 긋기 같은 거 안 하고 휘리릭 넘어가게 되는데 ㅎㅎ... 저 책 표지 보고 파울로 코엘료의 표르토벨로의 마녀인가요? 그 책이 생각났어요. 읽다 말았지만... ( '')~ 아참, 아이리시스님, 저 신간평가단 합격했어요! 호호호, 뭔가 책임감이 불끈 솟는데요? 아이리시스님은 지원 안 하셨어요?

아이리시스 2011-09-27 19:54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쓸 책은 포스트잇 좀 붙여놔요, 수다쟁이님. 게으르고 귀찮아서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행위거든요. 그래도 이제 좀 자연스러워졌어요. 사실 이렇게 쓰면 뭔가 많이 쓴 것 같지만 내용이 많이 띄엄띄엄해져요. 이게 더 정성스러워 보이지만 더 쓰기 쉬운 거예요.

신간평가단 소설분야 됐어요? 축하해요! 나는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ㅋㅋㅋ 이따 보면 알겠죠.^-^

참, 수다쟁이님한테 보여줄 사진! 이게 여기랑 똑같은 블로그인데, 사진이 안 퍼와져가지고. 선물이에요.ㅎㅎㅎ (진짜 실망하지 말기!)

http://blog.naver.com/nmk0827/130070408438

비로그인 2011-09-27 21:57   좋아요 0 | URL
음..... 저 실망 안 했...어.. 요... ㅋㅋㅋㅋ ( '')~
가장 큰 용기는 진실과 직면하는 거에요. 정말 맞는 말이네요. 어렵게 들리는 말이고.
수잔 서랜든이 탭댄스 추는 장면이랑 마지막 미치와의 여행 장면은 잊혀지지 않을 거에요.
오늘은 할 일도 많고, 일찍 자야겠네요. 행복한 꿈나라 여행 되세요, 아이리시스님!

아이리시스 2011-09-28 00:06   좋아요 0 | URL
아........... 실망했구나. 그래서 일찍 자는구나. 미안( '') 담에 좋은 선물 줄게요. 하하하.

페크pek0501 2011-09-2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촌스럽고 칙칙한 표지에 비해 정말로 흡인력 높은 한 편의 서사극이다. " 흡인력이 높다니 읽고싶어지네요. 리뷰를 봐서도요. 그런데 500쪽이라...

오늘 알라딘에서 구입한 책 세 권이 배달되었는데, 그중 한 권이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에요. 이게 700쪽이 넘네요. 난 요즘 게으름뱅이인데... 이걸 얼마 만에 읽을지, 내가 궁금해져요. ^^^ 그래도 책이 배달되어 오늘 엄청 행복했어요. ^^^

아이리시스 2011-09-28 00:06   좋아요 0 | URL
<도덕감정론>을 리뷰도서로 받을 뻔 하다가 다른 조라서 안 받은 적 있는데 그때 저한테 온 책도 제게는 충분히 버거웠지만, 굉장히 유익할 것 같고 또 버거워 보여요. 하지만 좋은 책 같아요. 언급되는 걸 많이 봤는데 내용에 혹했어요. 이야, 부지런히 읽으시고 저 가르쳐주세요.^-^

아메리칸 인디언을 다루는 영화 많잖아요. 그래도 백인 여자의 인디언 문화체험 일대기는 생소해서 재밌어요. 전체 틀이나 줄거리는 새로울 게 없을 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자연묘사가 워낙 뛰어나요. 행복한 페크님, 굿나잇!

페크pek0501 2011-09-2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추천을 눌렀는데 왜 10에서 12가 될까요? 두 개가 추가되는 게 신기하다는 ...^^^

아이리시스 2011-09-28 00:05   좋아요 0 | URL
다른 분이랑 동시에 눌렀거나, 카운트가 늦게 뜨는 걸까요? 추천버튼은 아이피가 같으면 두 번 안 되는 것 같던데.. 어쨌거나 페크님이 두 번 추천해주신 거^^ 하하.

2011-09-28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8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9-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거 완전 저를 위한 리뷰예요. 혼자만의 착각이라해도 할 수 없어요. 도서관 다녀오는 길에 클릭했다가 걸으면서 계속 읽었다는!! 제가 원래 이동 중에는 뭘 안 읽는데(멀미나서요) 이 리뷰는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꼭 책을 읽어보겠다는 약속은 아니라는거~^^;;

아이리시스 2011-09-28 19:17   좋아요 0 | URL
제가 포핀스님 위해 쓴 거예요, 이제 알았구나. 아하하.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어떤 책 대출해왔어요? 책 사고 싶은데 집에 책 많아서 그냥 있는 거 읽을래요. 가을 도서관은 청량할 것 같아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도서관은 대학도서관이라서. 거기 열람실은 일반인이 들락날락 거려도 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어요. 대출 가능한 도서관은, 우리 집에서는 너무 멀거든요. 저는 너무나 게으르고. 책은 무겁고.

포핀스님도 메이의 매력과 광활한 자연에 푹 빠진 거예요. 어떡하지.. 아아, 이 리뷰는 도저히 끊을 수 없었구나, 포핀스님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lazydevil 2011-09-2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없습니다. 무슨 말을 더 덧붙이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09-30 02:13   좋아요 0 | URL
제가 좀 호들갑일 수도 있겠어요. <늑대와 춤을>이나 <라스트 모히칸> 같은 영화를 못 봤어요. 서부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왜 그 영화들이 나와야 되는지도 몰랐구요. 어쩌면 이 영화들이 제가 말한 이 광활한 자연, 인디언 문명사, 인간과 인간의 소통. 이런 것들을 두 시간 만에 아주 잘 보여줄 것 같기도 해요, 레이지데빌님. 그럼 저는 완전 호들갑에 뒷북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이 책은 정말 좋았어요. 추천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게는 너무 좋았어요.^^
 

올초, 또는 지난 겨울.

추석쯤 상견례 하고 날 잡을 거야,

말했던 그녀는 그즈음 심심하면 거제로 내려갔다. 사랑에 빠졌을 때 친구 따위는 아웃오브안중 되는 거 그거 여자라면 대부분 알 만큼 안다. 나도 당연히 안다. 맹세코 그래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당하는 기억과 상처주는 기억은 원체 다른 법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처음에는 주말을 보내고 올라오는 낭만 데이트였다가 점점 부산 다녀왔어 할 정도가 되었고, 꼭 그래서는 아니라도 얼굴 못본 지 한참이나 되었다. 사는 게 원래 그렇다. 나이 들면 저마다 감당해야 할 무게가 너무 무거워 친구를 일으켜 세울 힘이 종종 부족해진다. 우린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서로 일으켜주며 평생 갈 수 있을까. 언젠가 우리도 제 무게마저 감당못할 날들이 오겠지. 저마다의 행복 속에서 친구의 서글픔 따위 까맣게 잊는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살아가는 일은 그런 거니까.   

선착장에서 배로 한 시간 반이 걸린다며 몇 번이나 전화를 했다. 대단한 정성이라며 나는 종종 비웃었고,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았다. 사랑의 이름으로 못 할 일이 없다며 되려 행복해했다. 니가 웃으면 나도 좋아. 정도는 아니지만 아파하는 모습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말해주었다. 여기 공기 좋으니까 내려와, 거제일주 하자. J랑 같이 와도 좋아. / 됐거든.  

 

당시 우린 밥먹듯 통화하며 서로의 일상을 보고하는 사이였는데 때로 떨어져 있어야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이상한 사이이기도 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서 뒹굴거리며 떡볶이에 맥주 마시다가 <귀여운 여인>과 <로마의 휴일> 보며 질질짜는 짓 따위는 안해도 되었다. 가끔은 했는지도 모르지만. 다행이었다. 내 생각에 그건 우리 청춘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아무리 사랑에 상처 받아도 로맨틱한 프로포즈 받고 예쁜 드레스 입고 멋진 남자와 결혼하고 싶었다. 바로 그 멋진 남자에게로 시집가고 싶었다. 그런 바람 때문에 여전히 두 영화가 적어도 내게 낭만적임 또는 로맨틱함의 절정으로 남아있는지도.(^^) 그녀에게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누가 시집을 가거나 말거나, 다 잊고 시험에 몰두했는데 갑자기 기억난 건 이 사진 때문이다. 영화를 뒤적거리는데 사진이 나왔다. 얜 왜 예쁜 얼굴을 안 찍고 뒷모습을 찍은 걸까. 첨에 든 생각은 이거였고 이후 좀 더 농도 다른 생각이 몰려왔다. 이건 작년 사진도 아니고 아마도 더 이전 사진일텐데 그러니까 지금보다 몇 살 더 어렸을 때일텐데 나지만 전혀 나 같지가 않다. 팔다리 길고 손가락도 길고 볼륨 별로 없는 게 나 맞긴 맞는데 사진 속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꿈을 꾸었는지, 2년 뒤 이런 생각을 할 거라 예상했는지 전혀 모르겠다. 한 살 더 어릴 때가 예뻤구나. 온누리 여자의 마음이란 이런 것. 물론 과거의 나보다 지금이 더 나답구나 싶은 여자도 있고 과거따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 나는 지금이 예뻐. 라는 여자도 당연히 있겠지만. 나는 그때 참 예뻤구나. 더 어릴 때는 더 예뻤겠지. 어른들이 젊은 사람을 보면 내가 볼 때 별로 예쁘지도 않고 딱히 변함 없는데도 어째서 예쁘다고 하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나 요즘 그런 거 느끼는 스물아홉 증후군앓이 중. 이건 어쩌면 평생 직장 찾는 취업 스트레스 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일지도 몰라. 취업은 고작 시간을 팔아 돈을 사는 일에 불과하지만(꿈도 사고) <그때 참 예뻤구나>의 문제는 존재 자체의 심오하고 찬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사진은 그녀가 찍어주었다. 몇 장은 찍히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멍청한 표정으로도 찍혔다. 신나서 이 옷 저 옷 입어보는 중이었지 싶은데 아마 나도 모르는 새 마네킹 취급을 당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디카가 내꺼였으므로 사진은 고스란히 내게 남아있다.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당장 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지만 전화하면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겠지. 어쩌면 전화번호 바꿔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내일 전화해야지. 친구야, 시집 가도 안 미워할게. 사랑해줄게. 너는 사랑스러운 아이니까. 어느 남자에게나 넘칠 만큼 사랑받아도 괜찮을 만큼.   

 

읽다 만 책 속에 보통이 있었다. 읽다 만 책이 너무 많아서 쌓고 또 쌓고 또 쌓여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몰라 몽땅 안 읽어본 책 취급하기로 맘먹는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안면 없는 책이 될 것도 같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의 재출간본. 제목을 왜 바꿨을까. 5초 정도 생각하다 패스한다. 배경 일일이 신경쓰는 타입 아니고, 어차피 읽지 않았고, 소장하지 않아서 문제될 게 없다. 오래 전에 받았고 그보다 덜 오래 전에 우연히 읽기 시작했는데 끝을 보지 못했다. 사랑에 시간을 비워두지 못할 만큼 늘 맘이 급하고 예민한 상태였기에 사랑노래가 자주 지겹고 애석하게 느껴졌다. 키스는 더 그랬다.  

대학 때 참 예쁘고 똑 부러지던 동생이 있었다. 같은 과 재학중 수업이 같아 함께 구내식당과 매점, 캠퍼스와 도서관, 강의실을 누비며 그 아이는 말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여행을 가자는 바람에 레이스 달린 예쁘고 야한 속옷 세트를 샀어요. 당시 스물 둘. 자기와 나이 차가 좀 있는 남자여서 어린 애처럼 보이기 싫었다고 했다. 여자로 보이고 싶어 준비해갔지만 남자는 사랑을 나눌 생각이 없더라고도 했다. 지켜주고 싶다나 뭐라나. 그녀는 자신이 여자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처 받았다고 했다. 정말 좋아했구나. 내가 말했다. 언니 그거 알아요? 키스만으로도 젖게 만드는 남자. 자기가 좋아하는 그 남자가 그만큼 키스를 잘한다는 얘기였겠지만 그건 굉장히 뭐랄까, 다른 사람은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느낌을 느껴본 어린 여자가 말하는 거대한 고백처럼 여겨졌다. 나도 어렸는데 뭘 얼만큼 알 수 있었을까. 남자들에게 말해주어야 하나. 사랑하지 않으면 여자에게 키스를 해서는 안된다고. 그 키스 한 번이 당신을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폭풍같이 커다란 늪일 수도 있고, 그녀를 죽고 살릴 수도 있으며, 실제로 그애는 죽고 싶어했다고.   

 

물론 그애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 키스만으로도 여자를 젖게 만드는 남자가 스물 두 살의 어린 여자애를 사랑했을 리 없기 때문이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나누는 말들에 대해서는 기억이 전혀 안나지만 키스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종종 그애 생각이 난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똑똑한 여자애였다. 자유분방해 보이면서도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숨길 줄 모르는 아이라 말은 안했어도 속으로 내가 내내 걱정했었다는 걸 그애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졸업식에서도 못 봤고 이후로도 연락을 못했다. 연락은 물론 인연도 끊어졌다.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보통씨, 그렇다면 나를 위해 쓴 책이란 말인데 주제가 점점 삼천포로 가고 있다는 생각 안들어요? 어쨌거나 읽지 않아도 모아온 당신이니까 이번에도 모아두고 나서 읽어볼게요. 고마워요. 나를 위해 종교를 말해주어서.( ") 

어차피 당신이 하는 모든 일들은 나를 위한 거겠죠.  

 

세상의 모든 여자들은 이렇게 믿고 싶다. 특히 상대가 남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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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6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6 1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09-1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박이다.... 아이리시스님 얼굴 봤네,
어우 청순에 미인형, 내가 완전 부러워하는 형이잖아요. 팔뚝도 가늘구, 난 그게 젤 부러워요, 홍홍.

어릴때는 정말 친구에게 신경쓰고 힘든 사람에게 신경쓸 에너지가 있었죠,
나이들면서 확실히 각박해지는거 같아요, 그래도 잘 늙으면 어릴 때보다 더 현명하고 따스하게
사람들과 보듬고 지낼 지혜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 중이예요. 그런거 같아요,
나이 들면서 같은 나이라도 엄청 동안과 노안이 있는 것처럼, 마음도 동안과 노안이 있지 않을까...

동안과 노안이란 표현, 조금 어설픈데 무슨 말인지 내맘 잘 알자나요, 아이리시스님? 쪽~~~~~~~~~쪽쪽쪽쪽
(뽀뽀 백번 해도 감사한 마음 다 표현못 할 나의 예쁜 아가씨~)

아이리시스 2011-09-16 13:04   좋아요 0 | URL
마고님, 안녕. 페이퍼 왜 안쓰는 거예요, 버럭!! 인사시기를 놓쳤잖아요. 사진이 예뻐서 저 때의 내가 너무 부러워서 안 올리고는 못 배기는 간절함, 그런 게 문득 솟아났어요. 용기도 났어요. 그리고 저 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니까요. 히히. 저 팔뚝 안 가늘어요. 지금을 보여주고 싶다, 진짜..^^ 그런데 손가락도 길고 팔다리도 긴 편이라 많이 먹고 들어가는 편. 갑자기 자뻑모드 -_-;; 나라도 나를 이렇게 대접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변명모드 -_-;;

공감해요. 나이 들면서 같은 나이라도 엄청 동안과 노안이 있는 것처럼 마음도 당연히 있죠. 그리고 그 마음이 같은 나이임에도 동안과 노안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마고님 보면 생각나는 건데 추석연휴 끝나자마자 수요일에 폭락했던 장이 어제,오늘 큰 폭 올라오고 있어요. 거참, 저는 이제 손 뗐는데 남 좋은 일 보고 있는 기분도 썩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정글싸움이기도 하고 말이죠. 히히. 저 올해 많이 크고 있어요.

나의 예쁜 아가씨~ 호호호호. 완전 행복해요. 뽀뽀 백번 해줘요. 기다릴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좋은 하루 되세요.^^

비로그인 2011-09-16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인연이라는 게 있을까요? 아이리시스님의 친구 이야기를 들으니까, 조금 막연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필요에 의해 서로를 찾는 순간들이 더 많은 것 같다는, 씁쓸함도 입에 남구요. 그래도 살다보면 언젠가 그런 인연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오겠죠? 내일 친구분이랑 거하게 회포를 푸셔요. 나중에 섬생활하는 게 (섬소년?) 제 꿈인데 거제도도 한 번 놀러가봐야겠네요. 거제일주, 좋을 것 같아요.

보통은 이름만 들어본 아저씨에요. [불안]이라는 책을 수학여행 가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욕 좀 먹었어요 ^^) 그 이후로는 만나보지 못했네요. 책상 위에 수도자처럼 앉아 있는 사진이 뇌리를 스치는...

아참, 두 장의 사진에 제목을 붙여봤어요. 한가한 동네 옷집에서의 패션쇼 현장. ㅎㅎ
저는 언젠가 피터팬 복장을 하고 사진을 남기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09-16 13: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느 정도 그런 게 있어요. 나이들수록 필요할 때만 찾는.. 그래도 아직은 필요에 의하지 않고도 투정부리고 진상 떨 수 있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다행이고 행운이에요. 수학여행 가서 [불안]을 읽다니, 하하하. 말없는수다쟁이님도 엄청 책을 사랑하셨구나? 완벽한 문학소년이었네요.

저기 친구가 하는 옷가게 였어요. 타겟이 30대 이상이어서 우리가 입을 옷은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아니지만요. 거제에 아예 눌러살고 잇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제가 다사다난해서 아직 전화를 못하고 있고, 날이 너무 더워요.-_-;

피터팬 복장 언제 할건데요? 네? 미리 좀 알려줘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tella.K 2011-09-16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련된 부산 아가씨였군요.
반갑사옵니다.^^

아이리시스 2011-09-16 13:1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세련이라는 말은 좋은 뜻을 다 포함하고 있는 단어 같아요. 짧은 말 속에 뭔가 꽉 찬 의미가 든 듯해서 좋아요. 오늘은 오랜만에 펄 매니큐어를 발랐어요. 엄마도 발라주구요. 저는 핑크를 좋아하는데 오늘은 그레이펄 이예요. 세련된 손동작을 해야 할 것 같은 날이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하루 되세요, 스텔라님.^^

페크pek0501 2011-09-16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 제목이 제 마음을 끌어당기네요. 여기서 스텔라님도 보네요.^^^

보통의 책은 다 읽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두 책은 읽지 못했어요.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예요. 이 책으로 많이 배웠어요. 흥미롭고 배울 게 많아요.

오늘 님의 사진도 보고 나이도 알게 되고... 제가 운이 좋은 것 같은데요.

우정과 연애...연애가 시작되면 연애 이외엔 모든 게 시시해져 버려서 친구도 멀어지죠. 그런데 그런 것 다 거치고 아주 늙게 되면 다시 소중한 존재가 되는 게 친구가 아닐까, 하는 생각 들어요. 60, 70대의 어머님들을 보면 알게 되죠.

좋은 하루 되세요.

아이리시스 2011-09-16 18:46   좋아요 0 | URL
네ㅡ 펙님, 보통 좋죠? 저도 생각해봤는데 감명깊게 맘속을 뚫고 지나갔던 책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뿐인 것 같아요.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불안>, <일의 기쁨과 슬픔>, <공항에서 일주일을> 그리고 위에 있는 <너를 사랑한다는 건>도 읽었던가 읽다 말았던가 한데 덜 좋아서는 아니지만 첫 책이 제일 남아요. 펙님도 그런가봐요. 그래도 여전히 보통이 읽고 싶어요. 이번책은 종교라 어떤 식으로 풀지 더 궁금한데, 표지가 대체적으로 맘에 안든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ㅋㅋㅋ

우정과 연애론은 저도 동감입니다. 우정이 멀어질 때면 연애가 가까워지고, 연애가 멀어질 때면 우정이 간절해지는. 그래서 늙어갈 수록 동반자가 중요한 것 같고, 마지막까지 함께 가야 할 친구도 소중해요. 관리라는 말 그렇지만 둘 다 잘 관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하루 보내셨어요?

June* 2011-09-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u - ♥
 

아이리시스 2011-09-16 18:47   좋아요 0 | URL
준님, 추석연휴에 뭐했어요? 잘 지냈어요?

cyrus 2011-09-1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이쁘시네요.(+_+) 아이리시스님의 실제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나중에 사진을
삭제하시는건 아니시겠죠? ㅎㅎ 예전에 한번 양철나무꾼님이 서재에 실제 모습을 사진으로 올리셨다는데
저는 늦게 들리는 바람에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

여자의 심리는 정말 복잡미묘한거 같아요. 모태솔로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지만.. ^^;;
남자의 행동에 대해서 동생분이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랜 기간동안 무르익었으면 남자의 행동이 동생분에게 받아들이기 어려울테지만요.
모든 연인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제 주위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사귄지 100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 몸으로 사랑을 확인하더군요.. ^^;; 그러다가 얼마 못가 깨지게 되고요.

아이리시스 2011-09-16 20:14   좋아요 0 | URL
삭제는 하나마나 누가 확인이나 하나요, 뭐! 정.말. 이쁜 것 까지는 아니지 않..을까요? 후덜덜. 나무꾼님은 저도 아쉬운데, 그래서 막 조르는 중이거든요. 단계별로 졸라볼까 하구요.ㅋㅋㅋ

아 맞다, 키스 잘했던 그 남자는 동생을 여자로 본 건 아니었대요. 여행을 둘이 떠난 건 맞는 것 같은데 그애 말로는 아무리 예쁜 속옷을 입었어도 침대에서는 물론 손조차 손도 안대더라고 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는 건 그냥 우리 생각인 것 같고, 어떤 남자는 그랬다나봐요. 남자는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중이었대요. 그러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앞에 여자가 되고 싶었던 그애는 거절당하기 위해 떠난 여행인 걸 몰랐던 거예요. 남자는 처음부터 밤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은 거지요. 여행을 가니까 당연히 1박 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하여튼 그애에겐 굉장한 성장통이었던 것 같아요. 사랑에 관한. 이후 연하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그 얘기도 종종 해줬는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예쁘고 똑똑한 여자는 모두 도도하고 지혜롭고 튕길 거라 생각하는데 그애는 예상을 벗어나는 여자였어요, 제가 생각해도요. 우리가 친해진 건 정말 우연이었는데 내 과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자신감이 과하고 성실한 구석에다가 이해 안 가는 행동도 종종 했어요. 그게 참 예뻤어요. 자신감이 넘치는 듯 하면서도 수줍어하는 모습이 이중적이면서도 신비롭잖아요.

아, 몸으로 확인하는 사랑. 그건 현 시대 10대와 20대가 가장 공감하는 내용 아닐까 싶어요. 확인하는 속도에 따라 사랑의 기간도 정해지는..^^

아이리시스 2011-09-16 20:21   좋아요 0 | URL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키스는 왜..................(-_-;) 키스는 되고 잠은 안잔다니 무슨 마음인 거예요? 시루스님. 남자를 대표해서 한 번 말해봐요, 큭큭.

cyrus 2011-09-16 22:36   좋아요 0 | URL
ㅎㅎ 아이리시스님도 못 보셨군요.

댓글을 읽고나니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리고 마지막 댓글은...
그냥 모른척 하고 넘어가주세요 =3=3=3

아이리시스 2011-09-17 01:28   좋아요 0 | URL
네, 그냥 넘어가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꿈꾸는섬 2011-09-1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너무 예쁘다고 쓰려다가 정말 예쁘다로 바꿔 쓸게요.
정말 팔다리도 시원시원하고 완전 부러운 몸매까지 소유하고 계시군요.
저도 가끔 예전 사진보다보면 낯선 느낌 받는데......
전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키스하는 남자들은 거의 없다고 보는데, 키스는 아무하고나 안 하지 않나요?
예전 알던 XY의 말이 돈 주고 관계를 가져도 키스는 절대 못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그 사람 말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냥 제 생각에도 키스 아무나하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게다가 젊은 날의 관계는 지속될 수도 깨질 수도 변수가 너무 많잖아요.

아이리시스 2011-09-17 01:31   좋아요 0 | URL
꿈섬님, 안녕. 추석연휴 잘 보내셨죠? 인사를 깜빡하고 못 여쭤서 마음이 막.. 엉엉엉.
완전 부러운 몸매.는 착각하시는 거구요, 키스는 저야말로 정말 신기해요. 다른 남자와의 키스를 내가 각색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어요. 하하하. 돈 주고 관계를 가져도 키스는 절대 못하겠다는 말은 저도 들었는데 아마 처음에는 만나볼까 했는데 나중에 아니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키스도 아무나 하고 하면 큰일나죠. 아, 어떡해.......(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루쉰P 2011-09-1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리뷰의 읽는 즐거움이 이렇게 좋을 줄이야 ^^ 알라딘에는 미인이 많습니다. 뇌색적 미인인 양철나무꾼님과 시크한 베리베리님 이렇게 2대 얼짱으로 나름대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고, 같은 부산 쪽에 꼬마요정님이라 하는 분은 동생 분의 미모로 유추해 보아 미인라 여겨져(동생 사진을 올리셨거든요. ㅋㅋㅋ) 트라이앵글 미인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이리시스님의 사진을 뵈니 알라딘 미인 사대천황으로 정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 네 분의 순위는 없으니 안심하시고 (순위 정했다가는 위험한 사태가 ㅋㅋㅋ) 암튼 오늘은 아이리시스님의 리뷰를 읽고 문득 연락 끊긴 제 생각도 나네요. 아 보고싶다...
근데 불교의 사대천황은 이미지 찾지 마세요. 엄청 무서버요. -.- 그런 의미의 사대천황은 아닙니당...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09-19 18:19   좋아요 0 | URL
아아, 루쉰님, 이거 리뷰 아니잖아욧!ㅋㅋㅋ 미인은 모르겠고, 사대천황은 또 바뀔 것 같은데요. 막 루쉰님 머릿속에 순위 매겨진 거 아니에요? 하하하. 위험하지 않을 거예요. 일단 저는 루쉰님 보호해줄게요. 그러면 이제 정갈한 글씨로 쓴 메모와 사진을 함께 보내줄래요? 저도 사대천황 시켜줄게요.ㅋㅋㅋ 언제 근무하는 거예요?

알로하 2011-10-1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예쁜 아이리시스님이라고 불러야겠어요.ㅋㅋ29앓이, 겪고 있는 1인으로서 격하게 공감해요! <키스하기 전에~> 이책은 왠지 보다가 말았던 책이네요. <왜 나는 너를~>은 재밌게 읽었는데 이상하게 <키스하기 전에~>는 심심하더라구요. 사랑, 전 이제 스스로가 사랑치에 가깝다는 걸 깨닫고 있어요. 내가 안다고 생각한 것들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들도 다 진실은 아니더라구요. 사랑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인생 자체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이 드니까 이게 29앓이의 한 증상인가 싶기도 하고요.

아이리시스 2011-10-12 17:47   좋아요 0 | URL
아아, 그러니까 정말 신기한 우연이게도! 우리 친구란 말이죠?^-^ 그렇구나, 어쩐지! 우리 너무 심하게 앓지는 말고 지나가요. 나중에 이 순간도 추억이 되게요. 제 소원은 사랑치도 좋고 다 좋은데, 제발 별일 없이 잘 지나가는 거예요, 지금이. 꼭 내가 끝날 것만 같은 기분이 아직도 간혹 들어요. 가을 지나고 겨울 오면 더 심해질 지도 모르는데, 알로하님, 힘내요. 우리 힘내자구요. <키스하기 전에~> 저거 잘 안 읽혔어요. 그러니까 보통은 잘 쓰고 다양하게 쓰지만, 이상하게 쭉 잘 읽히는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

댈러웨이 2012-11-1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글 안 읽고 사진만 보다가 가요. 또 보러 올거에요. 별에다가 색칠할 거에요.



땡큐.땡큐.땡큐. 오늘 노래 올려줄께요. 페이퍼 쓰고 있는데, 제 방식이 맘에 안들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없기를 바래요. 하. 심장이 뛰어요. 나 여잔데??? --;

아이리시스 2012-11-14 21:24   좋아요 0 | URL
으히히히 댈러웨이님 이러면 사람들이 누가 ㅎㅎㅎ 썼지, 클릭해서 본단 말이예요(키득키득) 지금도 저렇게 아리따우면 좋겠지만 저 때는 제가 생각해도 아리따웠던 것 같고 지금은 네버! 저렇지 않아요. 별에다가 색칠하지 마요.

앗싸! 그냥 남자해요. 조만간 꽃하고 +@ 해가지고 사들고 저 보러 와요--;;
땡큐. 오늘 노래 잘 들을게요. 댓글이 없으면 안 들은 게 아니라 심취한 걸로..
 

 

 

당파싸움은 조선후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심이 되는 줄기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왕실의 왕위다툼 정도로 인식됐는데 조선후기 들어오면서 공신들의 힘이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세력 바람에 따라 당대의 줄기가 이리저리 휘기도 한다. 피바람이 불고 왕이 끌려 내려오고 허수아비 왕이 올라가기도 한다. 고려나 조선전기에 비해 조선후기는, 서민 위주의 정책들이 많고 문화적으로도 한글소설, 판소리, 사설시조 등이 널리 퍼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왕실정치는 그들 중심으로만 돌아갔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을 하루에 몇 번씩 읊으며 조선시대 역사의 맥을 짚어갈 때 나는 알아야 하는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을 분별없이 수용했다. 어느새 야사는 시대의 디테일을 연결시키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 되어버렸다.

 

 

 

 

 

 

 

 

 

역사는 그를 두고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불운한 세자라 불렀다. 어째서 세자가 다른 곳도 아닌 뒤주에 갇혀 죽어야 했는지 오늘날 그 정도는 상식이다. 놀라운 건 이유를 파헤치고 들어가보면 현 정치상황이 보인다는 것. 지금의 정당정치와 조선후기 당파싸움은 형태가 거의 흡사하다.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 이후 북학론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으로, 아내 강빈과 정치적 뜻을 함께한 형 소현세자 대신 왕위를 계승한 봉림대군이 효종이 되면서 조선후기 당파싸움이 본격화 된다. 눈을 씻고 봐도 그들의 싸움에 백성이 없다. 우리가 공부하는 역사란 늘 승자 중심, 높은 자 중심, 권력 가진 자 중심이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왕권을 누가 계승할 것인가, 실세는 누가 쥐게 되는가, 훗날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등 세 가지로 압축된다.    

그래서 왕실에는 피바람이 일상이다. 실제로 왕권이 강했던 시기는 손에 꼽을 정도고 늘 왕조차 안심할 수 없을 만큼 흔들렸다. 조선역사에서 그렇지 않은 부분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고려나 조선전기에는 태종, 세조 같은 찬탈로 왕이 된 이들의 궁궐 내 싸움이었고, 왕권이 그때만큼 강하지 않은 조선후기에는 측근세력들이 활기친다. 오로지 권력과 힘. 두 가지를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지리하다. 효종과 현종 때에는 그나마 덜했다 볼 수 있다. 청과의 싸움에 온 나라가 목매고 있었으니 주전론과 주화론(북학론과 북벌론의 대립)이 팽배했을지언정 내부적 다툼은 덜할 수밖에 없었다. 집밖에 나가 싸워 이기려면 가족끼리 똘똘 뭉치는 수 밖에 없다. 붕당정치가 시작된 시기는 임진왜란 즈음 선조나 양난 이후 광해군 시점부터지만 당시에는 안팎으로 흉흉했기에 당파들은 별 의미가 없었다. 시간이 좀 흘러 인조,효종,현종 때에는 비교적 다양한 세력이 공존할 수 있었다. 북벌 다툼은 있었으나 그 바람은 안이 아니라 바깥을 향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향한 구밀복검(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면서 속에는 칼을 차고 있음)을 알아챌 수 없었다.    

 

 

 

 

 

 

 

 

 

앞서 선조 때 척신 정치의 잔재 청산에 대한 개혁문제로 소극적 기성사림과 적극적 신진사림의 갈등이 발발한다. 훗날 이조전랑직을 계기로 김효원을 주축으로 하는 신진사림(동인)과 심의겸을 주축으로 하는 기성사림(서인)으로 나뉜다. 또한 정여립 모반사건과 정철의 건저의 문제 등으로 동인이 강경파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분리된다.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또 편먹기는 얼마나 쉬운지 오늘날에 견주어볼 때 모르는 바도 아니면서 참 대단했구나 싶다. 현종 때에는 효종과 효종비의 죽음에 대한 복상 기간과 궁중의례 적용문제로 서인과 남인의 입장차가 생기는데 1차는 서인이 이기고 2차는 남인이 이긴다. 이를 예송논쟁이라 한다. 예송논쟁 후 잠시 남인이 실권을 잡게 된다. 이후 왕권이 바뀌어 숙종이 오를 때까지 북인과 동인,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 집권하며 꽤 균형적인 붕당정치가 운영되는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숙종 때 경신환국을 계기로 판세는 뒤집힌다. 왕위에 오른 숙종이 당시 집권세력인 남인을 신뢰하지 못해 다시 서인을 불러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숙종 때 집권하게 된 서인은 왕위계승 문제로 다투다 다시 (보수)노론과 (진보)소론으로 갈라진다. 기사환국(경종의 왕위계승 문제)으로 잠시 남인에게 실권이 넘어가기도 하지만 장희빈 소생의 경종 다음으로 경종의 배다른 동생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오래도록 집권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당시 평균수명에 비해 유난히 수명이 길었던 영조 재위기간이 50년 이상이었으니 거의 일당독재화 되었던 셈이다. 영조와 노론의 입장이 늘 같았는지는 모르지만 노론의 입김이 워낙 세서 영조 또한 노론의 눈치를 살피는 현실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 소생인 영조가 재위기간 내내 왕좌에서 쫓겨날까 불안해한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때문에 노론의 의견에 반대하면서 소론과 남인의 편에 섰던 사도세자는 늘 노론의 음해에 시달렸다. 사도세자가 왕좌를 노리기 위해 그랬는지, 정말로 옳은 소리를 내기 위해 그랬는지에 대해 여러가지 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자의 뉘앙스는 후자 쪽이다. 사도세자는 철저히 피해자로만 그려진다.  

또한 사도세자는 아내 혜경궁 홍씨가 서인 집안이었기에 장인 홍봉한을 주축으로 한 세력에 늘 견제당했다. 혜경궁 홍씨 또한 지아비가 아닌 가문의 편을 들면서 사도세자는 늘 외로운 싸움을 강행했다. 언제나 가지지 못한 쪽은, 간절한 쪽은 소수인 적이 많다. 영조 또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픈 의지와 욕망이 강한 임금이었기에 노론 못지않게 사도세자의 속마음을 의심했다. 아버지로서의 영조와 이 나라 최고 통치권자의 영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숙종 때 명분 뿐인 탕평책을 시행하면서 다음 왕인 영조도 이어갔지만 서인 중 노론이 거의 모든 정치를 장악하고 있어 사실상 공평하게 힘을 실어주는 붕당정치는 어려웠다.   

 

 

 

 

 

 

 

 

 

사도세자는 그 싸움중 음해와 시기 속에 희생되었다. 사도세자가 소론과 남인의 손을 들 때마다 눈엣가시로 여겼던 현 실세 노론은 강경하게 대처했고 하다못해 영조에게 사도세자의 비행과 정신병에 대한 거짓 상고를 올리기까지 한다. 물론 실제 사도세자가 그랬을 수도 있다. 역사의 진실을 100% 알 수는 없지만, 사도세자의 삶이 한 나라의 세자로 위엄있게 살아갔다고 보기는 힘들다. 역사적으로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왕의 아들이었던 셈. 게다가 아내 혜경궁 홍씨 또한 사도세자의 편이 아니었으므로 일평생 어깨에 짐이 두 개 얹혀진 것처럼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정 또한 사도세자의 비행과 정신병이 진짜였다고 보면 논할 의미가 상실되는 게 사실이다. 여하간 세상은 노론의 천하일색이었을 것이다. 견제세력 없는 집권세력의 횡포와 만행쯤이야 쉽게 짐작되고도 남는다.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 후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정조가 되면서, 노론 강경파 대신 소론과 남인을 등용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연민과 노론세력에 대한 견제가 그의 정치 원동력이었다. 어느 정도 붕당교체가 일어나면서 새바람이 불어온다. 이때 등장한 남인 중에 정약용과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된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같은 인물들이 있다. 정조는 양반 뿐 아니라 그동안 세력에서 배제되어 있던 서얼 출신도 과감히 등용하면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발굴했다. 정조 집권기에는 비교적 영조 때와 비슷하게 어느 정도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고, 정당 또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애썼으며, 보잘 것 없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화성으로 이전하는 등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정조의 최대 딜레마는 아버지를 따르면 어머니가 울고, 어머니를 따르면 아버지가 운다는 것이었으므로 그의 고민과 시름이 얼마나 크고 깊었던 것인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는 현명하다.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을 차차 바로잡아가면서도, 어머니의 가문에 피비린내 나는 복수는 하지 않는다. 그는 연산군은 물론이고 광해군과도 달랐다. 지금도 정조는 조선후기를 통틀어 가장 어진 왕으로 평가된다.(세종대왕도 계시긴 하지만 아버지가 태종인데다 수양대군(세조) 같은 아들을 남겼으니 업적을 벗어나서 보면 돌연변이 왕 같다) 정조가 아버지의 죽음에 관여한 노론 벽파를 배제하고 그동안 정치에서 배제되어 있던 시파와 남인에게 대거 기회를 주었으므로 정조 집권기에는 노론이 칼을 갈고 있었다. 정조의 죽음 후 할아버지 영조의 계비이자 자신의 할머니인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정약용 등 관련 인물들은 대부분 유배를 당하면서 다시 한 번 피바람이 몰아친다. 조선후기의 역사는 이와 같이 당파싸움을 빼고나면 남는 게 없다. 외부침입으로 인한 전쟁 같은 걸로 힘빼지 않아도 됐으니 왕위계승다툼 대신 백성들과 국가를 위해 에너지를 썼다면 조선사와 근대사는 물론 현대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 같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배경과 붕당정치의 숲을 생생하게 살려놓은 것이 특징이다. 비교적 사도세자의 편에서 서술했고, 뒤주에서 죽었다는 사도세자의 숨겨진 인생을 되살렸다. 내내 생각했다. 그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왕조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영조는 정확히 51년 8개월을 왕위에 있었다. 본인의 컴플렉스로 인한 불안과 자체 욕망도 컸지만, 때문에 더 큰 그림을 볼 줄 모르고 자식을 희생시킨 잘못이 크다. 형이었던 경종 독살설에 대한 의심과 아들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실망이 그의 재위기간 중 업적을 많이 가리는 것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어진 사람이라도 직접 자리에 앉혀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하물며 나라를 이끌어가는 일이 잘나고 어진 왕 하나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나는 사도세자의 백성이 되어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 모두가 '예스'라고 외칠 때 '노'라고 말하는 왕이었으니 적어도 욕망으로 꽉 찬 탐욕스런 왕이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가설이다. 

하지만 사도세자가 왕이 된다는 가설을 세우고 나서도 맘 편할 수 없는 배경들이 많다. 영조의 생명줄이 이토록 길었다면 살아생전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했을지 모르겠다. 당시 노론세력이 굉장했고, 세손 이산이 아버지와 뜻을 같이했다면 설사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다고 해도 그는 물론 세손 또한 안전했다고 보기 어렵다. 사도세자와 정조가 당시 노론세력을 완전히 잡고 진정한 탕평책을 공고히 한 채로 역사가 흘렀다면 조선후기의 왕조사는 달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정조가 죽자마자 세도정치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세도정치로 인해 흉흉해진 세상에 흥선대원군이 힘을 행사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문' 보다 '무', '글' 보다 '칼'의 성향을 지녔다는 사도세자니까 조선은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필요 없지만, 그럴 수 있어서 나는 참 재미있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타임머신을 타고 가봤으면 싶기도 하고, 권력이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해낼 수 있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조선시대 당쟁사>는 한국사 수업을 듣던 교수의 조선후기 당쟁을 공부하기 위한 추천도서,  오세영의 <북벌>은 내 관심도서, 읽은 책은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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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 개의 별_카오스와 코스모스
    from 너의 의미 2013-06-27 07:03 
    18세기 조선을, 사화와 붕당을, 숙종과 영조와 정조를, 연암과 다산을 좋아한다. 아마 조선을 통틀어 많은 사람들이 가장 흥미롭게 여기는 대목일 것이다. 그 복잡한 붕당의 흐름과 권력암투을 따라가다보면 그것이 있어서는 안될, 없어도 좋을 당파싸움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현대와 얼마나 많이 닮아 있는지 또 융합되지 못한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는지 놀라울 정도다. 무엇보다 이 시대 얘기들은 무궁무진하고 권력구도와 학문, 사상적 일대기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사
 
 
2011-09-12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3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루쉰P 2011-09-13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의 가설이라고 하지만 사도세자가 왕이 되었으면 한다는 생각은 그리 나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운 것은 그 사람이었으면 좋았을텐데라고 하는 사람이 간신배들에게 쉽게 모략에 빠지고 죽어 나간다는 사실이죠. 독해야 살아 남으니 말이에요.
지금도 정치판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도덕성이라는 뒤주에 갇혀 죽이고 또 다시 세를 나뉘어 너가 옳다 내가 옳다하며 싸우고 있으니 말입니다. 10.26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곽노현 교육감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발판으로 만들려고 하는 꼼수도 보이니 말입니다. 조선의 당쟁사처럼 권력에 대한 다툼만 있고 민생에 대한 선의 경쟁 따위는 없어진지가 오래죠. 이렇게 쓰다 보니 슬슬 열 받는 것은 사실이네요. ^^ 인간의 권력욕 그 무한한 욕망의 끝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추석 때 정신 없으실 텐데 이런 학구적인 책도 보시고 욕심쟁이 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09-14 12:45   좋아요 0 | URL
히히. 루쉰님, 좀 쉬었어요? 수고했어요.^^ 저도 학구적인 사람이 되고싶어요. 방대하고 해박한 예술,문화,역사 블로그 개척이 사실 꿈인데..^^ 저는 천성적으로 루쉰님을 존경하는 루쉰님같지 못해요.ㅠㅠ 그런데 스마트폰 엄청 힘드네요.흑흑. 사도세자는 이름만으로도 아파요. 저는 요즘 네이버블로그해요. 서양미술사 포스팅하는 지인 동생이 있는데 읽고 소화하느라 숙제같아요.ㅋㅋㅋ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경제방송 보고. 가끔 루쉰님 뭐하고 계실까 생각해요. 난 더 학구적인 여자가 될게요. 루쉰님은 자주 오기나 해요! 문제집 리뷰 다음으로 하루키를 보여줄게요.ㅋㅋㅋ 부활은 너무 아까워서 성경처럼 읽고있어요. 혹시 모를까봐서요.^^ 헤브 어 나이스 데이!!!^^
 
[스틸라이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빠의 마을은 고요하고 따스했다. 터미널에서 아빠의 오토바이(스쿠터는 아니다. 자동차에 대해 도통 몰라서 스쿠터와 오토바이의 차이를 모르겠지만 차도 있는데 굳이 오토바이에 셋이 구겨져 타는 이유도 모르겠다. 무서운데ㅠㅠ) 뒤에 올라타고 산고개 하나를 넘으면(좀 길고 구불구불하다) 아주 작은 마을에 들어서는데, 우물가 옆 샛길로 조금만 올라가면 빨간 지붕의 파란 대문집이 나온다. 오토바이로 산길을 넘는 일이 그렇게 신나는 일인지 몰랐었다. 모두들 왜 그렇게 타지 말라는 오토바이를 타다 죽어가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양동이 포함(가보기도 전에 양동이는 사라졌지만) 여섯 마리의 애기들이 대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마중 나오고, 앞집은 옛집인데 오래도록 비어있어 들풀이 허리까지 자랐다. 덕분에 풀벌레들도 많다.  

뒷집에는 아주아주 마음씨 좋고 인자하신 할아버지,할머니와 소가 산다. 할아버지,할머니의 뒷집도 비었지만 거긴 주인이 종종 와서 정리하는 것 같다. 아빠는 마을의 외딴 집을 선호했지만 당시 주어진 돈으로 그렇게 되진 않았다. 부동산에 나와있는 농가주택은 가격이 낮다 싶으면 리모델링을 해야 했고, 가격이 높은 매물은 차라리 그 돈으로 원하는 장소에 새 집을 짓는 게 나을 정도였다. 갈 수 있는 동네의 부동산을 모조리 훑었지만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시골집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허물어져 금방 스러져갈 듯한 집이라도 집은 집이었다. 어쨌든 아빠는 잠시 쉬어갈 집으로 빨간 지붕의 파란 대문집을 택했고, 전원주택을 향한 꿈은 시작되었다.  

 

읽는 내내 캐나다 퀘백 주의 작은 외딴 마을 스리 파인스가 그런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골에 친가와 외가를 모두 두고있어, 시골마을과 동떨어지지 않은 인생을 산 도시사람이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평생 몇백 번 왔다갔다 했을 친가와 외가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친가와 외가는 도시사람인 내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라 전혀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한 아빠의 마을 할머니 몇몇은 친절하고 따스했으며, 옆집에는 베트남 여자와 결혼했었지만 정신이상 증세로 부모와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다, 부인은 제 나라로 도망치고 할아버지가 아들의 아이를 키우며 다른 곳에 산다는 30대 후반의 남자가 혼자 산다. 대화 나누면 멀쩡해 보이는데 멀쩡하지가 않단다. 자식을 안되게 여긴 아버지가 집, 밭, 논을 어느 정도 물려주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는데 남자는 온전치 못해 밭과 논을 하염없이 놀리다보니 잡초와 풀이 키만큼 자라있다. 이 동네 땅값이 다른 곳에 비해 비쌌으면 비쌌지 농가치고 싼 게 아니라서 아빠가 안타까워 하실 정도다. 집에 있으면 아침,저녁으로 헛소리와 욕을 해댄다. 궁시렁궁시렁. 아빠가 이사온 첫날, 뒷집 할머니는 동네 토박이고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 하셨다. 어느새 아빠뿐 아니라 엄마와 동생과 나까지 그렇게 되었다. 그럼,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니까.  

지금은 아빠가 계시고, 훗날 양동이가 빨간 지붕과 파란 대문집을 나섰다 실종됐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만 빼면 인생에서 별 의미없는 집일지도 모르겠다. [스틸 라이프] 속에 등장하는 스리 파인스를 만나면서 아빠의 마을이 자꾸만 생각났다. 고요하고 조용하고 쓸쓸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정답고 왁자지껄하기도 한 마을이. 이 소설은 들여다보기의 지존이다. 조각퍼즐을 맞춰가는 생생한 방식은 마을을 두렵게 느끼기 보다는 마을 사람이 되어 진실을 파헤치고 싶은 충동에 다가가게 한다.

 

아빠가 들은 바에 의하면 마을에는 언제부턴가 토박이보다 외지인이 많아졌다고 한다. 양동이를 찾을 때 작은 마을을 모두 훑다시피 했는데 비어있는 집이 훨씬 많았다. 번듯하게 지어놓은 전원주택은 어김없이 사람이 없거나 진돗개 한 마리가 지켰다. 외지인 중에서도 더 외지인이랄 수 있는 내 눈엔 그 광경이 스리 파인스와 겹쳐 보인다. 알고 싶고, 캐묻고 싶고, 녹아들고 싶고, 상관하고 싶다.  

이처럼 짙은 낙엽향과 달콤한 빵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는 평온한 마을 스리 파인스에서 가장 다정하고 친절한 심성을 지닌 제인 할머니가 숲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가마슈 경감은 사건해결을 위해 후배형사 보부아르와 니콜을 데리고 마을로 온다. 사인을 가늠할 수 없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마을 사람들을 신문하지만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에게 선량했던 제인이 살해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 혼란스럽다. 빛이 들지 않아 마약류 열매가 재배되고, 야생동물 사냥꾼들이 소리소문 없이 드나들기도 하는 스리 파인스에서 누군가 죽었다면, 그건 실수로 쏜 사냥용 활이나 총에 맞는 것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의 깊은 갈색 눈에 그녀의 적갈색 점이 있는 갈색 손에 머물렀다. 정원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해서 거칠고 햇볕에 탄 손. 손가락에는 반지도 없었고, 반지를 낀 흔적도 없었다. 그는 갓 죽은 사람의 손을 볼 때면 언제나 아픔을 느꼈다. 그 손이 잡았을 온갖 사물과 사람들이 상상이 되는 것이다. 음식, 얼굴들, 문손잡이들, 기쁨이나 슬픔을 표하기 위해 취했을 온갖 손짓. 그리고 마지막 손짓은 틀림없이 자신을 죽인 그 타격을 막기 위한 것이었으리라.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자기 눈을 가리는 흰머리를 무심결에 쓸어내 본 적이 없을 젊은이들의 손이었다. (p.54)   
   

  

마을을 둘러싼 신비롭고 쓸쓸한 공기는 의도되었다. 죽음을 두고 분노 대신 애처로움을 쓰는 것 또한 작가의 필력이다. 화가 부부 클라라와 피터, 피터의 친한 친구 벤, 심상찮은 분위기를 풍기는 크로프트 가족 등 마을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이면서도 범인이 마을 안에 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진실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노련미와 세련미를 두루 갖춘 가마슈 경감은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조심스럽게 마을로 녹아드는 방법을 선택한다. 수사의 기본적 핵심인 신문과 마을회의를 통해 사람들의 표정과 반응과 행동을 살핀다. 오랜 관찰은 마침내 숨겨져 있던 사실을 하나둘씩 끄집어낸다. 마침 제인은 미술 전시회에 그림 한 점을 출품할 예정이었고, 그림은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그림을 그리면서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제인의 의중과, 집안에 사람을 초대하더라도 일정공간 이상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 미스터리로 남는다. 이어 집문제로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조카의 태도와 벤의 어머니이자 오랫동안 병상에 있다 세상을 떠난 티머 해들리의 죽음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삶을 헤쳐 나가지 못하는 그들에게 온갖 변명거리를 제공해주잖아요?" (p.205)  
   

 

   
  "제가 알기로는 스리 파인스 사람들은 선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저 사슴길은 우리 가운데 누군가 곪고 있음을 뜻해요. 제인을 쏜 사람은 자기가 사람을 겨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그걸 사냥 사고로 보이게 하고 싶어했어요. 사슴이 지나가길 기다리다 제인을 실수로 쏜 것인 양. 그런데 문제는 활을 쏘려면 아주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겁니다. 자기가 겨누고 있는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요." (pp.224-225)   
   

 

마을 사람들은 각자 최대한 자신의 비밀과 싸운다. 들키기 싫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으나 그것들 중 단서로 집어낼 만 한 게 거의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문제다. 정황에 의해 살인사건으로 밝혀진 제인의 죽음이 고요한 마을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지도 모른다. 수사는 다시 원점에서, 제인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어째서 집을 숨겨야 했을까. 왜 그림을 이제서야 보여주려고 했을까. 집과 그림. 제인이 추수감사절 박람회 날에 그렸다는 그림 <박람의 날>로 시선을 옮기자 쓸만한 단서들이 우루루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그림은 아주아주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마을 사람들 중 가장 먼저 클라라가 그림의 비밀을 눈치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싸워온 진실을 향한 열망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살인의 방식과 이유가 궁금한 거라면 이 소설을 읽지 않아도 좋다. 그보다 덜 자극적이면서도 내밀한 그림 한 편을 영상처럼 감상하는 방법으론 안성맞춤이다.  

퍼즐은 내가 맞추는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퍼즐이 되어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있어주는 것. 그게 바로 열쇠다. 제인이 죽어간 이유. 제인이 죽은 이유. 제인을 죽인 이유는 사소하다. 범인에게는 필사적이었지만 당사자로서는 아주 미묘한 이유에 불과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죽는 이유를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범인은 진실을 가리고 싶었다. 그래서 한 일이 오히려 또렷하게 진실을 엿보여주는 꼴이 되었다. 진실을 뒤집으면 거짓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을 뒤집어도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마치 하트 퀸 카드처럼.  

   
  "아무것도요. 어쩌면 제가 바뀌었겠죠. 그게 가능할까요? 제인의 하트 퀸 카드 트릭처럼 그림도 변하는 게 가능할까요? 사실 저도 작품이 끝난 날 밤에 보면 그게 위대한 작품 같아 보이지만 다음 날 아침에 보면 쓰레기 같거든요. 작품은 그대로인데 제가 변한 거죠. 어쩌면 제인의 죽음 때문에 제가 너무 변해서 전에 이 그림에서 보았던 뭔가를 지금은 보지 못하는 거겠죠. (pp.401-402) 
 
   


 
사실 이 작품이 가르친 건 살인과 광기, 탐욕과 도덕 같은 것이 아니라 인내와 관찰이다. 1000피스짜리 그림퍼즐을 맞추는 데에 드는 노력과 시간을 인내와 관찰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하면 꽤 그럴싸한 작품이 된다. 겪어본 사람만 아는 고통이 따를 것이고, 패배를 맛볼 수도 있듯이. 가마슈 경감이 가르친 것 또한,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한사코 숨기려 한 것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모두 드러내 보인 것이 중요한 것을 감추어줄 수도 있고, 숨기려고 애쓰다 결국 숨기려 한 것만 들통나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인내와 관찰 앞에 모두 무너진다는 것. 하지만 사람들은 나아가려고만 하지 인내와 관찰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결말을 향해 치닫는 건 영화에서나 멋지면 그만이다. 실제 삶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것 이상이다.  

   
 

"그때 한 가지 인성 유형에 대해 설명하시지 않았습니까? '정체된' 삶을 사는 사람들 말이죠. 기억나십니까?" 

"예, 기억나요. 성장하지 않는, 발전하지 않는 사람들,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사람들이죠. 좀체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  

"예, 바로 그거였습니다." 가마슈가 말했다.   

"그들은 자기 인생이 진행되기를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누군가 그들을 구원해 주길 기다려요. 치유해 주길 기다리지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 (p.445) 

 
   

 

뭔가 해야겠다. 여름과 잘 이별하고 다가올 가을을 잘 맞이하는 일이라도 해야겠다. '정체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우린 이다지도 힘겹게 움직이는 것일까. 신나게 칠하던 그림을 완성한 후 붓을 내려놓으니 시원함보다 허탈감이 먼저 든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때면 언제나 쓸쓸해진다. 이 소설처럼. 제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녀로 인해 이 모든 것을 배웠으니 감사하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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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24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이 자그마치 다섯 개!! 가마슈 경감 시리즈가 있다는 건 어디서 들었는데, 읽어본 적은 없어요. 이 참에 한 번 빌려서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저는 뭔가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하면서 방학 다 보낸 것 같아요. 이제 개강하면 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지겠죠. 시간표를 아주 꽉꽉 채웠거든요. 좀 걱정되긴 하네요. ( '')~

아이리시스 2011-08-24 21:44   좋아요 0 | URL
자극적인 거 싫어하잖아요, 모두들. 저는 자극적인 걸 좋아하긴 하는 편인데 취향이 좀 변했나봐요. 잔잔하고 잔혹하지 않은 [스틸 라이프]가 괜찮았어요. 예쁜 색칠을 하고 났으니 기지개 켜고 공부 좀 할까요, 이제? 수다쟁이님. 눈 코 뜰새 없이 바빠지는 거 그리워요. 대학 때 저는 그렇게 치열하진 않았던 것 같거든요. 학교가 멀었는데 왔다갔다 하는 것만으로 지쳐서 쓰러지곤 했어요. 맘은 늘 밤새 책을 읽고 고민하고 세상을 보고 싶었는데요. 글도 쓰면서. 저는 늘 제가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을 지도 몰라요. 치열한 건 예쁘고 소중한 거예요. 해야 하는데 하면서 보내는 방학이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다른 것도 해봐요, 더 늦기 전에요. 알았죠?^^

2011-08-24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24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08-25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에 의하면 이 소설이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아이리시스님도 별이 다섯 개군요.
근데 전 왠지 읽을 자신이 없네요.
아, 나라는 인간은 기계에서도 점점 멀어지고,
그 좋다는 소설도 점점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ㅠㅠ

아이리시스 2011-08-25 19:46   좋아요 0 | URL
네, 스텔라님 별 다섯 개예요. 그런데 저는 별점에 후한 편이고 사실 최근 읽는 책 중에서 제 기준으로 평가해요. 또 꼭 읽고 싶은 것만 읽다보면 엄청 실망하는 적이 없어요. 누구나 한 번씩 소설에 대한 정체기가 있잖아요. 뭘 읽어도 재미없고 싱겁게 느껴지는..... 지금 스텔라님이 그런 건지도 몰라요. 아무리 재밌다고 해도 막상 읽으면 감흥 안가는 단계를 몇 번 겪고나면 읽고싶은 마음마저 사라져요. 기계는 얼른 적응하시고, 소설 대신 영화 보시는 건 어때요? 스텔라님 영화리뷰 좋은데............^^

stella.K 2011-08-25 21:15   좋아요 0 | URL
헙, 정말요!
저 귀가 얇아서 그말 믿습니다.룰루라라~!ㅎ

아이리시스 2011-08-25 22:22   좋아요 0 | URL
그럼 많이 써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