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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의 책에 대해 정성껏 혹은 혼을 다해 말하는 일이 어느새 좀 어려워졌다. 쉽게 읽기와 단편적 쓰기만 가능하다. 읽기와 사색, 글쓰기 사이에서 방황하며 줄세우려한지 한 해 두 해도 아니지만 그동안 나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 심지어 왜 읽는지마저도 희미한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려 발버둥쳤다. 시간이 멈춘다. 문장과 책으로 쌓인 벽이 허물어진다. 이 바람을 타고 식민지 청년들이 목숨처럼 읽었던 모든 작가와 책들이 불어온다. 어쨌든 작가 이정명이 윤동주를 말한다면 그건 반드시 읽어야한다는 뜻이다. 윤동주의 시(詩)에도 생(生)에도 관심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뜻이며 당장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언젠가 <절정>이라는 특집극을 보고 이육사(李陸史, 1904-1944) 시인에 대해 썼었는데 이 삶은 그보다 더 무겁단 말인가. 아는 게 별로 없다. 오히려 다행인가. 시를 읊조려본다. 그는 스물 아홉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한다. 두 시인의 삶이 다르지 않다. 시작부터 먹먹하다. 또 이 시대인가. 윤동주(尹東柱, 1917-1945)의 삶은 더 팍팍하고 더 불꽃 같고 더 짧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노래하던 그는 이제 없다. 잔혹하고 끔찍한 상상력으로 복원하는 일제의 만행과 생체실험, 그의 마지막 1년을 그려내는 이 소설이 소설이 아니라서 막막하다. 읽을 수 있을까. 그의 삶을 끌어안기에 이 계절과 시대가 가혹하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序詩))
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형무소, 삶 뒤에 남겨진 것들의 헛헛함과 팍팍함, 무겁고 퀴퀴한 공기가 전부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날선 짐승처럼 고독했던 한 간수(스기야마 도잔)가 1944년 겨울 어느 날 나체로 천장에 목매달린 채 발견된다. 징병되어 형무소로 온지 3개월 된 신참 와타나베 유이치에게 그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라는 은밀한 지시가 내려지고, 아직 스물이 채 되지 않은 앳된 소년의 형무소 구석구석 탐험기가 시작된다. 슬프고 우울하고 고독하고 미치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제3수용동에는 악질 중의 악질로 손꼽히는 조선인 죄수들이 산다. 그들이 대단한 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제 나라를 찾겠다는 투쟁이 겁나 제국 스스로가 이름 붙인 것이다. 모든 기록과 서류를 검토하던 와타나베는 거칠고 난폭한 최치수 일당을 스기야마의 살인자로 내정한 다음, 그의 삶과 수감생활을 하나하나 캐지만 전쟁통의 여느 인생이 그렇듯 뭐하나 뚜렷한 게 있을 리 없다. 수용동 내의 모든 이야기는 진실이 아니라 사실로 쓰여진다. 불리한 진실은 소각되고 유리한 진실이 탄생한다. 다만 그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차례로 소동을 일으켜, 들어간 지 3일이면 영혼마저 잃어버린다는 독방으로 기어들어간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 눈여겨본다. 최치수에게 다가간 와타나베는 스기야마와 최치수 본인에 대해 묻고 들으며 전쟁을 나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영혼마저 내놓은 간수 스기야마의 삶과 죽음에 대한 조각난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간다. 그러던 중 간사한 기회주의자 소장에 의해 살인자는 최치수로 낙인 찍힌다. 그는 없는 죄를 인정한 채 사형당한다.
누구의 삶이 더 가엾고 슬픈지 논하기에는 시대가 어지럽다. 전쟁에서 승리국이 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일본국과 다른 나라들. 가해자가 누구고 피해자가 누구든 전쟁 안에서 영혼을 잃어가기는 매한가지다. 영혼을 잃으면 곧 생명을 잃는 것과 같다. 와타나베는 마흔이 넘은 스기야마의 고독한 생과 마지막을 추적해가는 한편, 최치수를 비롯한 조선인들에 대한 엄청난 소음을 듣는다. 그는 헷갈린다. 혼란스럽다. 시와 문장과 별과 책을 사랑하는 민족, 힘겨운 노역장에서 잠시라도 틈이 생기면 늘 머리를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미소마저 띄고 있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했길래. 나중에 모든 것이 꿈과 희망을 나누는 시간이었다는 걸 안 순간 그는 전율한다. 영혼까지 하얗던 민족, 전쟁의 적국이 아닌 식민국임에도 제국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민족, 조선인들의 모든 문장과 시, 책의 중심에는 매순간 히라누마 도주(윤동주)라는 인물이 존재했다.
이 이야기는 혹독하게 스러져가는 전쟁중의 어느 형무소에서 스기야마 도잔이라는 한 일본인 간수의 영혼을 구원한 조선인 시인에 대한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뉠 수밖에 없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문장'과 '시(詩)'라는 빛으로 슬프도록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던 한 남자와 한 남자의 뜨거움에 관한 것이다. 글이 뛰어난 동주는 온 편지가 검열을 당해 자신들처럼 이 형무소 안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소각될 때, 서러움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종이 위에 쓸 줄 알았다. 독방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하염없이 두드리던 최치수 일당은 유약한 외모 속 강인한 생명력을 먼저 알아보고는 음모에 끌어들이려 한다. 하지만 동주는 굴복하지 않는다. 아니, 그의 동조는 목적은 같되, 방법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를 바보라 놀리던 최치수가 어느새 동주를 맹신해 저지르지 않은 죄를 모두 인정하고 떠날 만큼 제3수용동의 동주라는 인물은 크고 빛났다. 자기가 가진 모든 빛을 동주에게 얹어주고 떠난 최치수도 마찬가지였다.
동주는 수감동 안 모든 죄수들이 눈물로 쓴 편지를 소각되지 않도록 대필했고, 이를 세상으로 내보낼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스기야마였다. 뼛속까지 악마인 줄로 알았던 스기야마는 날마다 날아드는 동주의 편지글 속에서 봐서는 안될 것을 본다. 두 영혼이 통한 것이다. 그것은 금기시 된 영역이자 지양되어야 할 우정이었다. 그들은 아주 오래,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희미한 문장과 시로서 우정을, 영혼을, 전쟁을, 이를 제외한 수많은 것들을 나누고 이겨왔다. 스기야마는 동주의 천재적인 시적 재능을, 동주는 스기야마의 악마 같은 외면 속에 가려진 전쟁의 상처와 개인적 나약함을 통찰했다.
수용동 안에 들어온 제국병원 의료진과 미도리라는 간호사, 간호사가 연주하는 오래된 피아노, 형무소 안의 유일한 꽃과 희망이던 피아노 반주 맞춰 노래하는 성가단은 조선인을 비롯한 모든 수감동에서 '별'처럼 여겨지는 죽지 않은 하나의 인간성이다. 누구도 말살하지 못할 내면 깊은 곳의 순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온갖 고문과 매질로 독방 생활을 자처하면서 지키고자 했던 무엇 때문에 동주는 하루하루 쇠약해져 갔다. 그즈음 이전까지는 없던 의료진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잊혀져가는 기억과 가눌 수 없는 육체, 잃어가는 영혼을 두눈으로 확인할 뿐인 일련의 일들로 스기야마는 갈등한다. 소각해야 할 시(글)와 더 깊이 탐구하고픈 시(글) 사이에서 고뇌하는 스기야마는 나중에 와타나베가 그런 것처럼 동주를 감싸고 보호한다. 죽음을 막아주고 시를 쓰길 부탁했으며, 살아남길 희망했다. 하지만 이들의 간절함과는 반대로 모든 것은 서서히 부서진다. 단 하루라도 조국으로 돌아가 햇살 아래 바람을 맞으며 별을 바라보고 싶었을 이들의 한숨과 눈물과 희망이 행간마다 너울댄다. 꿈처럼 아득하다. 돌아오지 못한 영혼이, 말살되어간 육체와 영혼과 모국어와 문장들이, 자신이 쓴 시로 단 한 권의 시집을 출판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냉전시대에 희생당한 청년의 꿈이 바스러져 간다. 문장과 단락과 페이지마다 살아숨쉬는 이들의 영혼이 아우성치기라도 하는 듯.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아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시는 감동에 감정을 더한다. 릴케와 고흐와 프랜시스 잠과 스탕달과 도스토예프스키와 괴테, <몬테 크리스토>와 <삼총사>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와 작품들이 이 소설을 관통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제3수용동에 수감된 이들에게는 단 한 권도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과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하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영혼마저 팔았을 그들에게 책은, 불꽃처럼 사라져가거나 냉혹한 손길에 소각될 가지지 못할 유일한 희망일 뿐이었다. 그들의 머리 위에는 별이 없었다. 형무소 안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도 없었다. 안과 밖이지만 전쟁 속에 갇힌 건 같았다. 동주는 단 2년을 선고받았을 뿐인데도 영영 민족과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짐승같은 타국 땅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 그들의 머리 위에는 별이 빛나고 있지 않았다. 그 순간에 별은 어디를 비추고 있었을까.
한 권이 아니, 두 권의 문장 전체가 시처럼 반짝인다. 그들은 죽어 시가 된 것인가. 다소 아스라이 그려진 실제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하지만 진짜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는 끔찍한 이야기를 언급할 자신이 없다. 와타나베가 밝히고자 다가간 진실은 우리(조선인)만이 피해자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망적으로 수용하고 있었으니까. 대체 스기야마와 미도리와 와타나베가 이미 벌어진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뭐가 있었겠으며, 있었다한들 가능했을까.
살려준다는 의료진 말에 그들은 의무병동으로 옮겨져 주사를 맞았다. 처음에는 약인 줄 알았다. 나중에야 독인 줄 알았다. 어떤 이는 왜 죽는지 모른 채 죽어갔다. 굵은 주사기가 팔뚝을 뚫고 약물이 몸 속으로 흘러들어갈 때, 그가 그것이 자신을 완전히 죽이고 짓밟는 거라는 사실과 영혼을 갉아 먹히고 있다는 사실과 곧 모든 시와 기억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매 순간 가늘게 부서져내린 희망이지만 이 순간에도 희망을 찾아 주사와 피아노 반주의 노래소리를 바꾸었을 그의 마지막 희망이 내게는 다급한 절망이란 게 멀쩡한 정신을 좀먹는다. 밤하늘의 별은 당연한 것이 아닌데도 아이들의 연날리기는 일상이 아닌데도 자라는 풀과 웃지 않는 벌레와 다정하게 자장가를 불러주던 어머니의 목소리와 쓰다듬는 손길은 일상이 아닌데도 모두가 그런 줄 안다. 단 한권의 책을 갖기 위해 지하로 가는 땅굴을 파고, 자유로운 바람과 반짝이는 별 하나를 보기 위해 즉시 총알이 날아와 박힐 상황을 무릅쓴 채 나가려 했던 이들의 시간을 이제와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지 먹먹하다. 내 평온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니라는 뼈저린 사실을 왜 우린 종종 잊는 걸까. 어째서 더 죽을 힘 다해 살지 못할까. 왜 이루지 못할 일에 매달려 불평하고 왜 바꿀 수 있는 일은 쉽게 포기해버릴까. 암울한 시대도 이용가치는 있다.
겨울을 나기만 하면 또 한철을 날 수 있다던 감방 안의 작은 희망, 부스러기를 붙잡고 한마음으로 책과 책을 말했던 민족이 바로 우리다. 이제와서 위기철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잘 써먹는 위기도발, 한국공격(속터지는 독도발언), 내부결집으로 몰아가고 싶진 않다. 피를 갈아채울 순 있어도 그렇다고 출생의 비밀을 가릴 순 없다. 우린 강했고, 타국을 공격하지 않고도 그 누구보다 용기있게 싸워 영혼을 불살라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장렬하게 꺼져간 불꽃 같은 민족이다. 잘못은 글과 말과 조국과 어머니를 가진 민족의 몸과 영혼을 태워 없애기만 하면 깡그리 소각될 거라 믿었던 어리석었던 이들에게 있는 것이고, 비록 수용동 담장벽을 넘지 못했던 초라한 연이지만 연을 만들어 날려보려 했던 이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희망이 절망으로 변했대서 희망을 탓할 수 없었던 이들은 절망 속에 든 희망을 끌어안고 전사했다. 시는 종이 위에 글로 쓰는 게 아니라, 마음 속에 정신으로 쓰는 것.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린다고 있던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일본이라는 제국은 몰랐고, 하얀 정신으로 무장한 우리 민족은 알았다. 그래서 이겼다.
바람은 우리가 바람인 줄 모르는 동안에는 바람이 아닌가. 하물며 스쳐지나가는 바람은 누구에게나 말을 건넨다. 말을 건네는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없이 바스러져간 조선인들과 담장 밖에서 그들을 지켜주던 쓸쓸한 별과 갇힌 이들이 지나갈 수 있도록 모래와 흙을 하염없이 실어나르던 바람은 모두 우리 편이었다. 육체는 살아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들이 남긴 정신은 영원히 조국을 비추고 또 지킨다. 시인 윤동주의 짧은 삶과 남겨진 시는 엄청난 풍파를 겪고 살아남았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여름밤은 책 한 권을 읽기에 지나치게 짧다. 윤동주의 삶은 여름밤에 삼키기엔 너무나 크고 무겁다. 그리고 벅차다. 시가 반짝인다. 문장의 결이 종이 위에 녹아내린다. 그 날 사라진 별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바람과 별과 시가 보일 것이다. 문장은 더이상 그들을 가두지 못할 것이다. 죽음으로 찾은 자유가 오늘 밤에도 그들을 불러내 평소보다 더 밝은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살아있다고, 자유롭다고 말해준다면 나는 으스러져 울어버릴 것이다. 오늘밤은 어젯밤과 다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시는 새로 씌어야 하며, 이 소설은 누가 죽고 죽이는 지를 떠나 시대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되새기며 읽어야 한다.
그는 만으로 고작 스물 일곱 되던 해 시대를 등지고 조국을 안은 채 수도없이 많은 작가와 책을 탐하고 숨막힐 듯 아름다운 문장을 뱉어낸 천재시인이었다. 소설 속에 아름다운 문장이 쏟아지지만 모든 문장은 이 천재시인의 삶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시(詩)는 가슴에 박혀 마음결을 어루만지는 가장 고결한 언어다. 시는 용감하고 잔인하다. 뒷이야기는 훨씬 더 잔혹하지만 그게 바로 그가 속했던 시대의 유일한 진실이었다. 이토록 쓸쓸한 이야기가 당신의 가슴을 울리지 못한다면 이 시대 소설은 실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