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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공포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닌데 등골이 서늘하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는 나를 발견한다. 누구세요? 다가오지 마세요. 찌를 거예요. 퍽. 했는데 정신 차렸더니 내가 나를 찌른 형상의 필름이 오래도록 계속된다. 아무도 없는 밤에 만나는 거울 속의 나처럼 낯섦과 낯익음의 반복이 끝없이 이어지는 듯하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비교적 주제가 뚜렷한, 한 방향으로만 달리는 기차같다. 돌아나올 수 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는 순간순간이 몽롱함과 모호함의 지존이다. 수식어를 이 따위로 붙일 생각은 없었지만 [읽고 있을 때보다 읽고나서 더 두려운] 소설임이 분명하다. 새벽에 키보드를 두드리다 말을 잇지 못해 조용히 잠이 든 내가 과연 나였을까? 이쯤하면 알 수 있겠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전달 되겠지. 맞다. 우리의 현실은 모두 공포다.  

이야기는 남자 K가 토요일 아침 잠에서 깨는 데에서 시작한다. 절대 맨몸으로 자는 법 없는 남자가 알몸으로 침대에서 깬 자신을 발견한 것. 뿐만 아니다. 매일 쓰던 스킨이 다른 제품으로 바뀌어 있질 않나, 심지어 아내의 얼굴과 딸의 얼굴, 딸이 키우는 강아지조차 낯설게만 느껴진다. 어쨌거나 토요일이다. 출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남자는 오늘 처제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결혼식장에는 지금껏 돌아가신 걸로 알았던 장인이 떡하니 앉아 있고, 어젯밤의 기억이 한 시간 반 정도 사라져 있다. 휴일을 앞두고 친구 H와 만나 진탕 한 잔 했던 게 문제였다. H에게 전화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면 휴대폰이 있어야 하는데 휴대폰조차 잃어버렸다. 불가사의한 일 투성이였다. 아내가 아내 같지 않고 타인의 카섹스 장면에서 아내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휴대폰을 주웠다며 돌려주러 나온 대머리 남자에게서 낯익은 향기가 느껴지는 일련의 하루. 어제 내가 모르는 일이 생겼던 것일까. 남자는 아내와 딸을 결혼식 뒤풀이에 남겨두고 혼자 빠져나와 친구를 만나러 간다. H는 의사다.  

   
 

"어째서 실제의 아내는 가짜처럼 느껴지고 통화를 한 아내의 목소리는 진짜로 느껴지는 걸까. 이런 이중성이 자네의 고민이 아닐까. 자네는 가족을 제외한 모든 풍경, 인물, 사물들에 대해서는 분명한 분별력을 갖고 있어. 마릴린 먼로를 알고 있고, 이순신을 알고 있어. 그런데 가장 가까워야 할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 거리에서 만난 몇몇의 특별한 사람은 가짜고, 가상현실이라고 느끼고 있지. 혹시 지금 나도 가짜라고 느껴져." (pp.144-145) 

 
   

모든 문장에 물음표가 사라져 있다. K의 고민에 친구 H는 이어 말한다.  

 

"자네의 망상은 매우 특이해. 일찍이 인도 출생의 세계적인 뇌연구가인 찬드란이란 사람이 카프그라 증후군에 대해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환자는 자네보다 훨씬 증상이 심각해서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가짜고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극심한 망상에 빠져 있었지. 이런 특이한 증세는 찬드란이 논문으로 발표한 후 유명해졌지만 실제로는 아주 극소수에게만 일어나는 희귀병이니 자네의 망상과는 종류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 그런데 한 가지 다시 묻겠는데, 자네 혹시 어젯밤 가벼운 교통사고나 어딘가에 부딪쳐서 머리에 충격을 받은 거 아냐." (p.145)

 
   

아내와 딸, 자신과 스킨, 자명종 울림소리, 휴대폰을 주운 남자, 죽은 줄로 알았던 장인, 그리고 공기. 평소와 달리 낯설게만 느껴지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하고 혼란스런 남자는 자신의 휴대폰을 주웠다는 대머리 남자가 말한 휴대폰을 처음 주운 장소로 탐험을 시작한다. 잃어버린 어젯밤 기억을 찾을 수 있을까,를 기대하면서.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체온을 느낄 겨를도 없는,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던 남자들은 생면부지의 여자와 입을 맞추고, 포옹을 하고, 귓가에 속삭인다. 나는 너를 사랑해. 그것은 하소연이자, 애원이자, 절규이자, 비명이며, 타는 갈증이자, 목마름이며, 결핍이자, 상처이며, 통곡이자,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낯익은 물에 빠져 죽기 직전의 익사 상태에 이르렀을 떄 심폐기능을 소생시키는 인공호흡과 같은 것이다. 낯익을 사람들이 거식증에 걸려 영양결핍으로 죽어갈 때 식도 속에 관을 집어넣고 액체로 된 유동식을 흘려 넣어 영양분을 공급하는 구명호스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관계이며, 소통이며,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며, 탈출이며, 존재의 증명이며, 해방이자 자유이며, 한편으로는 어둠이며, 죄악이며, 자해이며, 허무이며, 절망이며, 폭력이며, 파괴이자 자살행위인 것이다. (pp.159-160)

 
   

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려 헤매던 남자는 정체모를 남자의 전화를 받고나서 성인방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달의 요정 세일러문을 코스프레한 예쁜 여자를 만난다. 위 문장을 이해할 수 있다면, 소설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유없이 성인방이 등장했을 리 없고, 오늘날 성인방의 역할론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그곳은 굉장히 낯익은 이 도시의 단면이기도 하니까. 애초 목적이 있어 들어간 곳이 아니므로 달의 요정 세일러문과 남자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인방을 나온 남자는 또다시 오래 전에 헤어진 누이를 찾기 위해 전 매형을 찾아가기로 한다. 전 매형과 누이를 차례로 대면한 후, 누이를 향해 느낀 욕정을 참회하기 위해 신부를 찾아간 남자가 마지막으로 대면한 것은 바로 K2 자신이었다. 어젯밤 자신의 끊긴 행적을 찾아 나서 3일간 돌아돌아 찾은 것이 본인인 셈. K2는 K와 같으며 또한 같지 않았다. K는 혼란을 느낀다. 

아내는 돌아온 K를 나무랐다. 딸과 강아지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아내 말에 의하면 자신이 한 달만에 돌아온 거라고 했다. K는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자신을 찾은 것이다. 낯선 아침을 시작으로 낯선 자신의 모든 것을 샅샅이 훑다 비로소 낯익은 자신으로 돌아온 것이다. 참 오래, 많이도 돌고 돌아서. 아내는 반가워했다. 그것만으로도 K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원래의 자신이라는 걸. 

   
 

레인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내는 한 달 이상 K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의 별거로 보류했던 부부간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강제로 성폭행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K는 레인저의 아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성적 행위로 표현되고는 있지만, 부부간의 인연은 우표와 같아서 처음에는 혀끝의 침만으로도 잘 붙지만 시간이 지나면 접착제를 따로 발라야만 봉투에 붙일 수 있듯이, 이렇게라도 성행위를 해야만 부부간의 접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결국 K와 아내는 서로 육체적 물물교환을 나누고 있는 것이며, 날마다 수금을 하는 고리대금업자의 외상 장부에 일수 도장을 찍는 재계약 행위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이틀 동안 K가 아파트의 또 다른 아내에게서 느꼈던 냉동된 시체와 같은 차가움, 해부실의 시체를 시간하는 변태성욕자 같은 섬뜩함, 세일러문처럼 살아 있는 인간의 피부가 아니라 실리콘으로 모조한 말랑말랑한 인조피부의 감각, 무화과 잎으로 엮어 가린 사타구니 속에 매달린 K의 위축된 성기와는 달리 세탁소 아내의 몸은 따뜻하였고, 친밀하였으며, 익숙하였다. (pp.352-353)

 
   

그는 정말로 돌아온 것일까. 이 낯섦을 향한 여행이 다시 시작되지는 않을까. 누구세요? 나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할 날들이 오는 건 아닐까. 언젠가 남편이, 아내가, 엄마가, 아버지가, 옆집 아저씨가, 옆집 아줌마가, 온통 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을까. 세상에 비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존재할 뿐. 그것도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내가 존재하는 것일뿐. 

그런 의미에서 [달의 요정 세일러문]의 가사는 절묘하다. 이런 가사였다.   

   
 

미안해 솔직하지 못한 내가 

지금 이 순간이 꿈이라면 

살며시 너에게로 다가가 

모든 걸 고백할 텐데. 

전화도 할 수 없는 밤이 오면 

자꾸만 설레이는 내 마음 

동화 속 마법의 세계로 

손짓하는 저 달빛 

밤하늘 저 멀리서 빛나고 있는 

꿈결 같은 우리의 사랑. 

세일러문의 목소리는 의외로 맑고 청아하였다. 야밤에 창문 밖에서 부르는 세레나데와 같은 sweetheart의 mood를 띠고 있었다. 세일러문의 노래 소리는 이어졌다.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어. 

기적의 세일러문. (p.267)  

다정히 감싸오는 저 달빛은 

나를 보는 당신의 눈빛 

수없이 많은 별들 중에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건 

결코 우연이라 할 수 없어. 

기적의 세일러문. (p.376)

 
   

내가 누구처럼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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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7-0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내용의 소설이었군요. 섬뜩하면서도 아주 예리한 칼날 같아요. 세일러문의 가사도 다시 되짚어 보니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정작 먼 것들은 익숙하게 느끼면서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갑자기 낯설게 인식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니 사실은 그렇게 이미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이리시스 2011-07-02 09:17   좋아요 0 | URL
네. 이런 내용입니다. 쓰다지쳐 흐지부지하게 된 일련의 사건들이 몇 개 더 있는데요. 대강 이런 내용의 소설이랍니다. 블랑카님. 주제가 명확하고 문체가 쉬워서 읽긴 편했는데 생각하면 할 수록 쉬운 내용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아.. 문체 자체는 아주 사실적이고 명확한데 말이에요. 내용이..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7-0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제목이 왠지 마음에 드네요.
내용은 약간 섬뜩하지만, 그래도 결국 돌아 돌아 나 자신을 찾았다니 다행이예요...

그리고 저는 아이리시스님이 김태희처럼 보여요...
이건 왜 그런걸까요?~

아이리시스 2011-07-02 09:21   좋아요 0 | URL
현맘님. 다시 시작되는 걸로 끝났어요. 영화에서 마지막 결말을 되풀이되는 한장면 삽입하듯이요. 그리고 현맘님. 어떻게 아신 거예요, 대체. 저는 김태희예요~ 김태희 맞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저께 김태희가 광고하는 프렌치카페 카페믹스 샀어요. 김태희가 광고하는 냉장고도 사고 싶었지만 그건 그냥 S사껄로 엄마랑 동생이 골라왔더라구요. 우린 옛날부터 S사 매니아예요. 다 크고나서야 그러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지 뭐예요. 따라가기 싫어서 버텼더니 둘이 가서 골라왔지 뭐예요. 새 냉장고를 무려 18년만에 샀대요. 이 집에 무려 18년을 살았다네요. 흐흐. 구식 냉장고가 끌려나가서 좀 슬펐어요. 꺼이꺼이. 울어주진 못했어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루쉰P 2011-07-0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도 그렇고 소설의 전체적 분위기도 그렇고 마치 카프카의 아우라가 느껴지네요. ^^ 뭐랄까 저는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지만 작가가 그 이야기를 이끌어 만한 힘이 없다는 것이 느껴지면 읽다가 손을 놔 버리는 스타일입니다. 카프카도 하루키도 읽고 팽개치고의 반복이었죠. ^^ 암튼 리뷰를 이렇게 열심히 올리시다니 요즘 문장의 혼이 살아나신 듯 합니다. ㅋ 그러나 저러나 아이리시스님이 누굴까요? 전 단편적인 정보 밖에 없어서 대답을 못 하겠네요. 정말 누구신거죠?

아이리시스 2011-07-02 09:24   좋아요 0 | URL
루쉰님. 저는 카프카를 안읽어서 모르겠어요. 소설평가단 한 분이 하루키 같다는 리뷰를 쓰셨던데요. 저는 정말로 잘 모르겠어요. 누구랑 비슷하다고도 못 느꼈고 딱히 제 스타일의 소설이라고도 못 느꼈지만 최인호 작가님이 시도한 새로운 소설이라는 것만 알았어요. 예전에 [상도]는 읽었는데 워낙 어렸어서 기억이 안나네요. 그건 정말 엄청났었죠. 루쉰님 말대로 읽고 팽개치고를 반복하며 취향을 찾아가는 거겠죠. 소설은 다분히 취향적이니까요. 또 어떤 작가의 한 작품이 좋다해서 그 작가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말이에요. 제 경우엔 애정이 좀 더 가긴 하지만 모두 좋은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7-01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다중인격장애(해리성 장애)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데
내 안에 여러명의 내가 있다면, 나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만일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과연 기억을 잃은 나는 예전의 나와 동일한 나인가 부터
대체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감으로 깊게 연결이 되네요. 아, 공포란 말, 딱 공감해요.

아이리시스님은,,, 꽃다운 아이리시스 님처럼 보여요, 아님 혹은 지렁이?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이리시스 2011-07-02 09:28   좋아요 0 | URL
지렁이라니, 버럭!!! 나쁜 의미가 아닌 건 알겠는데 제가 왜 지렁입니까? 꿈틀꿈틀합니까, 제가?ㅎㅎ
해리성 장애, 도플갱어, 인지 장애 등등 여러 이론이 나오는 것 같긴 한데 작가가 딱 뭘 얘기하는지는 감을 못 잡았어요. 저는 개성없이 비슷비슷해져가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경고랄까, 그렇게 읽혔어요.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 다중인격장애를 소재로 한 소설들도 재밌는데 말이에요.

마녀고양이 2011-07-02 11:02   좋아요 0 | URL
지렁이는 땅에 숨을 쉬게 해주잖아요.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분홍색이 얼마나 이쁜지..

(머, 아이리시스님을 놀리려는 의도 맞습니다.. ㅋ)

아이리시스 2011-07-02 20:52   좋아요 0 | URL
핑크. 핑크. 으흐흐. 그러네요! 지렁이도 핑크였어요. 핑크 좋아하지만 지렁이가 핑크라니. 핑크 싫어질라 그래요.ㅠㅠ

VERTIGO 2011-08-26 2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하에서 상품화되는 과정에 너무 많이 노출되서 생긴 병이 아닐까요? 과장하기,낯설게 만들기의 상품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을 표현한 소설이던지,아니면 공황장애 아닐까 싶네요. 비현실감은 공황장애의 특징이니까.

아이리시스 2011-08-27 15:22   좋아요 0 | URL
VERTIGO님 반가워요. 맞는 말이에요. 상황에 맞게 다른 자아를 만들고 대처해야 하는 현대인들의 비애이기도 하구요. 공황장애 또한 맞을지도 몰라요. 이 소설은 틀림없이 현대사회에 병들어가는 개인의 현실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있어요. 그래서 두렵구요.
 

 

 

어제 저녁 내 눈에 들어온 책은 에세이 두 권.  

하나는 프랑스 여자들을 말하고, 또 하나는 동유럽 여행기인데 둘은 내가 좋아하는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동시에 읽어줘야 하는 의무감을 갖게 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유와 구속이 공존하고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손꼽는 1순위 대륙 유럽. 중에서도 동유럽. 더불어 문화, 예술, 자유를 표방하는 파리지앵의 도시 파리는 참기 힘든 궁합이 분명하다. 둘은 서로에게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지만 정작 제3자인 나는 둘 사이에서 널을 뛰는 멜로의 여주인공 즉, 양다리의 여왕이었다.  

그리고 두 권의 책은 어젯밤 모래 한 줌을 억지로 움켜쥐고 흘리지 않으려 애쓰는 안쓰러운 나를 다독여주었다. 동유럽으로의 여행과 프랑스 여자들과의 만남이라니. 죽기 전 마지막으로 빌어도 좋을 소원이라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곧 죽어도 좋았다.

 

 

 

 

카미유 클로델의 비극적 외사랑과 천재적인 예술적 소양 그리고 로댕으로부터 배신당한 후 억눌린 재능으로부터 나온 광기가 다시 태어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라면, 작가이자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로서 자유와 살아있는 나비의 대명사였던 프랑수아즈 사강은 지금 내게 꼭 필요한 로망이다.   

[슬픔이여 안녕]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는 것보다 그녀에게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녀를 동경해서라기 보다 나와 정 반대의 성향을 지닌 자유로움 그 자체를 동경해서인 것 같다. 열아홉에 쓴 단 하나의 소설로 일약 스타작가가 된 그녀는 어린나이에 모든 고독과 영광을 경험해서인지 죽을 때까지 마약과 도박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  

담배 한 개비 피워보지 못하는 나와는 정반대라야 정반대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클로델이 동경이라면 사강은 더 동경이고, 영부인의 자리를 버리고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아 날아간 세실리아는 더더 동경이다. 손아귀 권력과 타인의 동경을 위해 불행마저 서슴없이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과감히 내려온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평생 알 수도 없겠지. 나는 영부인이 아닐 테니까. 에잇.   

 

 

 (프랑수아즈 사강 作)

 

 

하지만 더 대박은 세실리아의 자리에 이탈리아 최고의 패션 모델이자 가수인 카를라 브루니가 왔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지금도 뉴스에서 간혹 사르코지 대통령 옆 또는 한걸음 뒤에 조신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함께하는 걸 볼 수 있는데, 나는 이 여자가 평생 사회생활을 안 해도 먹고 살 만큼의 경제력을 갖춘 부모 아래 유명세를 노린 테러를 피해 프랑스에서 명문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어서 잠시 팽하다 말았다. 윌리엄 왕자의 케이트 미들턴처럼 신데렐라는 아니었구나. 언젠가 조지 부시는 사르코지 부부와의 만찬 자리에서 브루니를 본 순간 사르코지가 왜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는데,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 시작은 누구나 그렇다지요. 사르코지 대통령도 임기가 거의 끝나가는데 그들의 마지막은 과연 처음보다 아름다울까요? 저의 밤이 당신의 낮보다 아름다운 것처럼.

또한 이자벨 아자니. 난 줄리엣 비노쉬를 더 좋아하기에 가볍게 패스하려 했지만 워낙 대단한 이 여자의 필모그래피가 한 줄로라도 그녀를 저장하고 싶게 하는 걸 무슨 수로 막으리. 워낙 유명한 영화들이니 존재만으로도 장악의 기운이 뻗치는 듯. 개인적으로 [여왕 마고]는 거의 10년을 벼르던 거라 다음 기회에. 응? [카미유 클로델]은 정말 좋았어. 그래, 좋았지. 자자, 다들 영화 보세요. 

특히 빅토르 위고의 숨겨진 둘째 딸 아델의 일대기를 다룬 [아델 H 이야기]는 줄거리만으로도 사로잡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이쯤에서 너무 잘난 부모를 둔 자식은 많은 걸 누리는 것과는 반대로 본인의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는 거구나 싶어진다. 아버지의 명성을 넘기 위해 홀로 싸워야 했을 아델이 오늘날 부모의 영광 아래 덕 보려는 자식들이나 부모 등골 빼먹는 자식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아서 씁쓸해진다. 

 

여배우가 몇 나오고 워낙 유명하긴 하지만 프랑스 영화를 썩 즐기지는 않는 관계로 여기까지. 차라리 목숨 걸고 투쟁하다 죽어간 잔다르크 페이지가 난 훨씬 맘에 든다. 아름답자고 만들어져 카메라 앞에서 정해진 대로 움직이는 배우들을 혁명가와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는 법. 그 외에도 보부아르는 빼놓을 수 없는 작가. 무엇보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와 따로 평가받기를 바라지만 여자로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동맹자적인 관계와 사랑을 빼먹을 수 없다. 사랑하면 소유하고 싶고 소유하고 나면 갖고 싶어지고 가졌다 싶으면 달라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 이들은 남과 여, 음과 양을 넘어 인간으로서 존재로서 진정 이해받고 이해했으니 죽어서도 부러울 게 없을 듯. 커플이라는 건 한 사람만 변해도 깨지기 마련인데. 이 커플과는 너무 대조적이라 부럽다, 부러워.

 

애초에 제자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로댕은 그녀의 개성과 뛰어난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제자를 받아들인다. 카미유는 그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존경심과 더불어 사랑하게 된다. 부모의 사랑에 목말라하던 카미유는 스물네 살이나 차이가 나는 로댕에게서 아버지 같은 강력한 존재감을 발견한 것이다. 이미 중년에 접어든 로댕에게는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며 그의 아이를 낳아 키우는 로즈 뵈레라는 연인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사랑에 눈이 먼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후 10년 동안 열렬한 사랑을 하는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적 동지이기도 했다. 카미유는 그의 제자였지만 협력자였고 동시에 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였다. 이때 그녀를 모델로 한 많은 작품과 서로에게 영감을 받은 작품들이 탄생한다. (pp.34-35)

 

나도 누군가에게 뮤즈가 되고 싶다. 이제보니 로댕은 주몽 다음으로 여자 등쳐먹어 성공한 남자 되시겠다. 물론 자신의 성공이 절반 이상이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은 누군가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지 못한다. 그 절반의 성공은 오로지 카미유의 희생과 눈물과 외로움으로 이뤄졌을 것이다. 정신병원 감금 30년.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어쨌거나 하나는 확실히 알겠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내던지겠다고 약속하는 남자의 마음은 거짓이라는 걸. 물론 로댕은 카미유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도 없다. 그에게 카미유는 특별하긴 했어도 그저 그의 곁에 있는 많은 여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여자들은 남자를 믿지 말아야 한다. 믿었으면 책임도 자기가 져야 한다. 카미유가 고독과 광기에 몸부림 치다 가족들 손에 이끌려 정신병원에 감금돼 생을 마감한 것처럼 자기를 버릴 수 있는 사람만 남자에게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해야 한다. 남자는 자기가 가진 그 무엇과도 여자를 바꾸지 않는다. 그의 곁에 남는 사람이 내가 되면 좋겠지만 대부분이 그 반대인 것 같아 슬프다.  

이렇게 쓰는 지금 나는 또 하나 알겠다. 남자에게 예술은 여자보다 강하다는 걸. 아니, 예술가에게 예술은 여자보다 강하다고 해야 말이 맞나. 

 

 

 

 

이건 현재 첫 번째 챕터 [프라하] 편만 읽었다. 유럽여행 당시 나는 프라하에 대한 다분한 갈망이 있었고 비엔나에서 프라하까지 버스로 다섯 시간이 채 안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도 있었지만 체코는 유로화를 쓰지 않는 국가라 과감히 패스했다. 동유럽권은 솔직히 두렵고 겁도 났다. 왠지는 모르겠다. 프라하는 슬펐다. 먼 훗날 그곳에 가면 카를교에 서야 할 텐데 뛰어들어 죽고 싶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어 차라리 안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할슈타트와 부다페스트, 크로아티아는 아쉬웠지만. 그런데 바로 첫 챕터에서 프라하를 온통 훑어준다. 앗싸, 프라하 갈 필요 없네.  

난 그냥 프라하 성을 상상하다 시간이 되면 카프카와 흐라발을 읽어주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 장은 크로아티아인데 기대된다. 이상하게 동유럽은 슬프다. 역사를 많이 알지도 못하고 직접 겪은 것도 아닌데 그나마도 온전히 마음으로 전해지니 이상한 일이다. 기운이 다르다. 프라하. 부다페스트. 어딘지 모르게 고독의 향기가 묻어있는 지명의 도시들 아닌가. [굴라쉬 브런치]는 워낙 유명했어서 따로 설명이 필요없는 에세이지만 동유럽에 관한 일기라는 점에서 이곳저곳 섞인 발랄한 여행일기보다는 애틋하다.  

 

 

 (흐라발 作)   

 

 

 

 (카프카 作)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나처럼 쿤데라가 최고.  

 

 

 (쿤데라 作) 

  

 

예술은 넓고 읽을 책은 많고 볼 영화도 많다. 그보다 더 많은 게 할 일이고 그보다 더 하고 싶은 게 글쓰는 일이고 그보다 더더 하고 싶은 게 뭘까. 우선 책을 쌓았다. 높을 수록 좋았다. 배가 고팠다. 읽어 치운다. 내 안에 쌓이는 건 분명 양식인데 그보다 먼저 위안을 얻는다. 정체모를 것들을 자꾸 배워간다.  

책을 읽으면 배가 든든해지진 않지만 세상이 자꾸 내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서 좋다. 특히 존재의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쓴 글들이 좋다. 그들은 내가 겪는 감정들을 다 겪었을 것만 같다. 그러니까 위로다. 책을 몇 박스 사고나면 해소되는 지랄맞은 물욕은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치우다 보면 잊을 수 있을까.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장바구니를 한가득 채워둔 걸 보면.  

허락되지 않는 시대에 허락되지 않은 것들을 꿈꿨던 프랑스 여자들에게는 있고 우리에게 그리고 나에게 없는 것. 자의식. 너무 강해도 본인을 망가뜨리고 약해도 본인을 망가뜨리는 무서운 것. 실체없는 그것을 향해 똑바로 서서 배워야 할 것이다. 어째서 프랑스 여자라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라고 말하려면. 말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우리나라 여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너무 모른다. 일도 사랑도 투쟁도 가정도 모두 같은 농도로 필요한데 그걸 체득하고 지킬 줄 모른다. 그걸 찾아가는 법을 동유럽으로 떠난 한국 여자에게서 배웠다. 멋진 번역가를 꿈꾸는 그녀에게서 엿봤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것이다. 내게도, 당신에게도. 그리고 오늘은 또 지나가고 있다. 바싹한 토스트에 싱싱한 방울 토마토와 시원한 우유를 곁들여 먹는 것 말고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또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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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5-18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올해의 여름휴가는 한 달동안 유럽으로 가려구요.
 라고 - 아주 태연하게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택도 없지요. 헤에.
 프랑스 소설은 별로이지만 사강은 좋아요, 영화도 무척 좋아해요.
 연휴 내내 프랑스 영화만을 보기도 했는걸요. 그런데 난, 외국배우의 얼굴을 분별해 낼 수가 없어요.
 그 배우가 그 배우같아요. 그래도 유일하게 기억하는 배우가 있는데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나쁜 피의 남자 주인공이예요. 아아, 그러니까 그의 얼굴은 수 천가지의 표정이 존재해요.
 어느 누구의 얼굴에서든 그를 기억해낼 수 있어요. 이름 대신에 그의 얼굴을 난 아주 잘 외울 수 있어요.
 그리고 벨벳 골드마인은 정말 최고였어요. 아직 보시지 않았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취향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성이 짙고 드라마틱도 하거든요.
 남자 주인공은 너무 멋지구요. 락앤롤은 매춘이라는 그 대사는 정말 최고였어요!
 

June* 2011-05-18 17:48   좋아요 0 | URL
 
 몰락의 에티카는 아직 읽지 못했어요.
 여기저기 괜찮다고, 좋다고 칭찬이 자자해요. 느낌의 공동체 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분도
 계시더라구요 ^^
 

아이리시스 2011-05-18 17:55   좋아요 0 | URL
알았어요, [나쁜피]랑 [벨벳 골드마인] 꼭 볼게요.
당분간은 여유가 없지만 예전부터 좋다고 들어서요.

그리고 실망하지 마요, 여름휴가를 한 달동안 유럽으로 가는 사람 몇 있겠어요?
꿈꾸다 보면 언젠가 가 있을 거예요. 그럴 거예요.

평론공부 하고 싶던 적 있어서 특히 영화평론집 보면 저는 너무 설레요.
근데 저는 많이 주관적이고 줏대가 없고 온정적이라서 직업으로 삼으면 못했을 거예요. 다행이죠.
이 담에 책 주문할 때 넣어야 겠어요. 좋다고 하니까.^^;;

June* 2011-05-19 11:20   좋아요 0 | URL
 
 아마도, 평론이라는 것은 객관적이어야 하는 거지요 ?
 주관적이고 줏대가 없고 온정적이더라도 평론이 직업이 되어버리면
 아무렴, 달라지지 않겠어요 ? ^^
 
 여름 휴가는 전국일주로 정했어요. 아이리시스님이 머무는 곳은 빼놓구요.
 그곳엔, 시댁이 있거든요. 헤에.
 

아이리시스 2011-05-19 12:0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시댁이 있단 말이죠? 여기 부산에?
부산남자랑 서울여자랑 사는 거예요? 서울에서?^^

전국일주 멋지네요. 저도 꼭 해보고 싶은 건데, 특히 전라도와 강원도 그리고 섬마을에 가고 싶어요.
어제 문화기행을 떠나는 여행에세이를 발견했는데 꼭 들고 가고 싶은 책이었어요. 평소 생각한 여행지와는 많이 다르지만요. 저는 산으로 꽃보러 가는 거 그런 거 싱거워서 별로였는데, 나이가 들긴 들고 있어요. 산도 좋고 절도 좋아요. 지난 여름엔 하동으로 갔는데 올 여름에도 짧지만 다녀와야 겠어요.^-^

June* 2011-05-19 16:06   좋아요 0 | URL
 
 네, 서울에서요.
 부산 남자와 소박한 집에서 살고 있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경기도에서 살구요. 명절때마다 부산을 다녀오는데 기회가 되면 꼭,
 부산에서 살겠노라고 매번 다짐을 하고 올라와요.
  

아이리시스 2011-05-19 17:00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부산이 맘에 들어요? 저는 생의 전부를 여기서 살고 있어요. 좋거나 싫다고 말할 수가 없을 만큼 오래 살아서 별 감흥이 없어졌어요. 전에 책 받을 때 주소가 서울이어서 서울이라고만 생각했어요. 그건 사무실 주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어요.

Forgettable. 2011-05-20 09:13   좋아요 0 | URL
아이리시스님 [나쁜피]에 젊은 시절의 줄리엣 비노쉬 나와여 ㅋㅋㅋ 진짜 장난아니게 이쁨 ㅠㅠ 그리고 남자 배우는 드니 라방인데 최고에여. 하하

저 아직 파일 있는데 혹시 원하시면..... 메일로 쏴드릴까여? ㅎㅎ

아이리시스 2011-05-20 13:56   좋아요 0 | URL
뽀님. 우리 오랜만이죠?
아참, 맥북이 말썽이예요. 메일에 저장해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날아가지 않나요?
제가 구해보고 없으면 말씀드릴게요, 그때 보내주세요.^^
줄리엣 비노쉬가 나온다고 들어서 당시 손꼽아둔 것 같긴 해요. 그렇게 예뻐요?
꼭 봐야겠군요, 히히히히히.

잘잘라 2011-05-19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병원 감금 30년!!!
할 말을 잃어요.
ㅜㅜ

아이리시스 2011-05-19 12:13   좋아요 0 | URL
로댕의 냉대에 실망해서 혼자 서보려 했지만 여자라 잘 안됐대요. 로댕과도 싸우고 사회의 편견과도 맞서야 했다나봐요. 여자가 나체조각을 한다는 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시대였으니까요. 웃긴다, 여자 나체가 없으면 자기들이 어떻게 종족번식을 할 거라고. 체쳇.

그러면서 서서히 미쳐갔어요. 로댕이 그녀를 사랑하고 감싸줬으면 그녀는 괜찮기도 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면서 무너져가는 걸 가족들이 못 봐서 정신병원으로 보냈대요. 아참, 카미유는 아들을 지독히 편애하는 엄마 밑에서 자랐대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교육시킨 건 아버지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엄마의 사랑결핍과 로댕의 사랑결핍에 늘 힘들었을 거예요. 로댕과 카미유는 정말로 유명한데 1:100에서 문제로 나왔을 때 한 개그맨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해서 충격 받았어요.

음.. 모를 수도 있죠. 저는 야구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걸요. 이런 것도 어찌 보면 오만이예요. 내가 아는 걸 남이 모르면 무식한 거고 남이 아는 걸 내가 모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요. 반성중이었어요..

pjy 2011-05-1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럽,,,아, 가고싶군요~

아이리시스 2011-05-19 16:45   좋아요 0 | URL
저두요. 유럽 도시들을 밤새도록 줄줄이 비엔나로 댈 수 있어요. 아이슬란드랑 아일랜드가 요즘은 좋아요. 참, 친구가 아일랜드에 갔는데 엽서를 보내주기로 했어요. 공부하러 간 거라 바쁠텐데 제가 생떼를 썼어요. 이주나 걸린다니까 한참 후가 되겠지만요. 그 엽서에 유럽공기가 묻어오지 않을까 싶어요. 일상이지만 생소한 일이라 그애 사진을 자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그애가 미니홈피에서 쪽지로 [난 지금 원스의 나라 아일랜드에 와 있어.]라고 했는데 막 두근두근 했어요.^^

pjy 2011-05-20 01:13   좋아요 0 | URL
영화취향도 편협하고 음악도 별루라 원스는 잉? 이러지만 아일랜드라~ 성질 좀 드러운 다혈질사람 많은 곳? 이러구 있습니다ㅋ 유럽공기라......아........

아이리시스 2011-05-20 13:44   좋아요 0 | URL
아일랜드에 승질 드러운 사람들이 사나요? 저는 그저 풍광만 떠올렸을 뿐이랍니다.. 아무렴 어떻고, 어디면 어때요, 흐흐흐, 갈 수만 있어도 좋겠어요. 아무 생각 없이 놀다올 수만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5-2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홋, 프랑스 여자처럼 말이죠
느낌이 우아하고 날씬한 프랑스 여자처럼 되고 싶어서 샀다가
20페이지 읽고 때려치웠다는거 아녜요. 그렇게 못 될거 같더라구요.

그나저나 여행 가고 시퍼요. 저도 런던 관련 여행 에세이 읽다 말다 하는 중인데. ㅠㅠ

저는 프랑스 문학이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데요,
그네들은 한마디로 할 수 있는 문구를 10페이지로 꼬아놓을 수 있는 섬세함(재주)를 가졌다 싶기 때문이구요, 또 하나는 그렇게 말 많이 다다다다~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사벨 아자니의 투명한 아름다움은 정말 멋져요.

음, 그런데 케이트 미들턴이 신데렐라인가요? 엄청 부자 집안이던데, 다만 귀족 작위만 없구요.
저는...... 누군가의 뮤즈가 되기를 절대 거부합니다! ㅋㅋ, 그건 하나의 책임 같잖아요~

아이리시스 2011-05-20 13:53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구나. 귀족 작위가 없어서 그 여자를 신데렐라라고 난리를 피운 거예요? 하긴 설마 나처럼 서민이기나 할라구, 라고 생각하긴 했었어요. 근데 브루니가 더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대단한 집 딸인지 몰랐어요. 대단하다기보다는 돈 많은. 그래서 이 책에 브루니와 사르코지는 순진한 커플이 아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만 봐도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너무 잘 안다,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하더니 브루니 임신했다잖아요. 적어도 임기 후 헤어지진 않겠어요! 성폭행 미수 저지른 IMF 총재가 다음 대권에 나갈 후보였다는데 까였으니 한 번 더 사르코지에게 기회가 갈 지도 모르구요. 프랑스 여자들처럼 못될 것 같다에 저도 동감.

프랑스 문학과 영화에 대한 마고님 생각에 저도 동의하는 것 같아요. 너무 재밌다면서 본 건 아니지만 할리우드의 속행이나 한국의 통속성과는 차별화 된다고 생각하며 저는 본 것 같아요. 저도 다다다다 거리는 어감의 불어 싫어해요.

뮤즈는 책임이기도 하군요, 전 그저 팜므파탈이고 싶단 얘기였는데~ 역시 마고님의 시야란 역시^^

cyrus 2011-05-26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요,, 요즘 영국 여자들의 글에 푹 빠져 있어요, 최근에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 재미있게 읽었구요,
지금 읽고 있는게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집 읽고 있어요. 아무래도 영국이라는 나라가 습한 기후라서 그런지
이 두 작가의 글에도 영국적인 색채가 강하더라구요,, 오늘과 같이 비가 오면서 습한 기운이라고 해야되나요? ^^

아이리시스 2011-05-26 18:28   좋아요 0 | URL
시루스님 <제인 에어>에 빠져있는 글 읽었는데 좋아요. 버지니아 울프는 나도 전에 [자기만의 방] 샀어요. 에세이집도 보고 싶어요. 영국적인 색채 그거 좋네요. 저는 정원 펼쳐져 있고 팔랑거리는 치마, 그런 거 떠올라요. 근데 대체 그런 건 어디있는 거예요? 영화가 학습시킨 것 같아요.ㅋㅋㅋ 그러니까 [제인 에어] 읽고 싶어요. [테스]도 읽고 싶고. 그냥 책 펴서 읽으면 되는 거죠, 참?ㅎㅎ

버지니아 울프가요.

["사랑하는 당신, 당신께 말하고 싶어요. 당신이 내게 완전한 행복을 주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당신보다 더 잘해줄 수는 없었을 거예요. 믿어주시겠죠. 하지만 나는 이걸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요. 나는 당신의 삶을 소모시키고 있어요. 이 광기가 말이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병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완벽하게 행복했다는 거예요. 모두 당신 덕이에요. 아무도 당신만큼 잘해주지는 못했을 거예요. 맨 처음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에요."]

라고 쓴 편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네요. 방금 검색했다가.. 되게 예쁜 마지막 사랑이예요. 그죠?

루쉰P 2011-06-27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에서 검색이 돼서 이렇게 글을 뒤늦게 찾아서 봅니다. ^^ 당선되신 것 축하드려요. ㅋ

로댕과 카미유의 얘기는 여기서 보고 알았어요. 카미유의 인생이 너무나 처연해 비 오는 이 날 왜 마음이 애잔한지를 모르겠어요. 아이리시스님의 남자에 대한 분석이 어찌 보면 맞는다고 생각이 들어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은 버리겠다고 약속을 하고 배신하는 남자라..좀 밥 맛 없어요. 아 물론 저도 남자지만 말이죠. 저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런 여성도 없어 기회가 없기도 하지만 말이죠. ㅋ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에 대해 이해를 하는 것도 알아 가는 것도 너무 힘든데, 제발 원하는 것은 사랑 때문에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많아요. 그리고 차라리 사랑을 한다면 상처를 받아도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그래서 그 사람의 인생에 제가 상처 줬던 사람으로 안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제 소원이에요.

사실 프랑스와주 사강과 다른 프랑스 배우도 그렇고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무식의 극치죠. ^^ 체코는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전 여행은 항상 용기도 없고, 겁이 많아서 가지를 못해요. 우리 동네도 잘 돌아다니지 않는 센스를 자랑하죠. 그래서 경기도 북부의 이 위성도시에서 산지 무려 27년을 살았지만 동네를 잘 몰라요. -.- 부산에서 태어나 자라서 그곳에 대해 생의 전부를 사신 아이리시스님의 말씀에는 저 역시 똑같아요. 다만 편한거죠. 이곳이 익숙하니 말이에요. 그나저나 여행을 참으로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 부러워요. 그런 활달함이요.

아이리시스님과 팜므파탈이라 어울려요. 크흑!! 근데 글을 쓰시는 걸 무척 좋아하시는 아이리시스님이 꼭 자신이 원하시는 것을 쓰쎴으면 좋겠어요. ^^

쿤데라는 저도 읽었으면 하는데 아직도 못 읽고 있어요. 존재의 밑바닥까지 쓴 글이 좋으시다는 말이 제 감슴에 확 와 닿아요. 전 인간을 밑바닥까지 파헤치는 글을 좋아하거든요. 자신이 자신을 모를 때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ㅋ

아이리시스 2011-08-13 15:05   좋아요 0 | URL
루쉰님, 이 때 댓글 쓴 줄 알았는데 일부러 빼놓은 건 아닐 거예요. 당시 컴 상태가 안 좋아서 그랬나 봐요. 예전 글 다시 가끔 보는데 이달의 당선작인 거 읽다가 발견했어요. 카미유 클로델과 사강은 꼭 알고 넘어갈 만한 여류 예술가인 것 같아요. 저도 작품구경이나 작품읽기는 거의 못했지만 저도 여자인 만큼 그런 삶들이 동경스러운 것도 사실이예요. 루쉰님은 지금도 충분히 멋진 글을 쓰시잖아요. 진심 부러워요. 우리 더 힘내요~^^
 

 

 

 

  

   
  "이 귀여운 바보 같으니, 조금도 걱정하지 마요. 내 약속하지만 아무것도 걱정할 거 없소.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척할 게 틀림없어. 알겠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증명하기가 무척 어려운 법이니까. 그가 당신에게 푹 빠져 있다니까 하는 말인데, 그는 당신을 놓치기 싫은 건지도 몰라. 내 맹세하지만 당신이 내 아내라면 나도 그것만큼은 용납하기 어려울 거요." (p.82)  
   

사랑을 나눌 때 달콤한 말을 속삭이고 정작 상대에게서 모든 것을 얻었다 싶을 때 가차없이 내버리는 것 또는, 나몰라라 하는 것. 남의 것일 때 자기 것인양 하고 싶으면서도 정작 자기 것이 되겠다 하면 저 멀리 달아나 버리는 관계. 임자있는 남자에게 임자있는 여자란 그런 존재. 거기다 이 작품은 그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여자의 방 침대에서 사랑을 나눈 직후, 문 손잡이 소리에 남편이 돌아온 줄 알고 예민해 하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어린 아이같이 달래는 불륜남. 그녀, 그러니까 여주인공 키티에 의하면 모든 것을 갖춘 따도남으로 소개되는 찰스를 벌써부터 세글자로 매도할 생각은 없지만, 본의 아니게 자꾸 그런 걸 보면 분명히 나쁜놈. 이렇게 말해놓고 정작 키티가 남편에게서 버려져 자기에게로 해바라기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게 내 눈엔 다 보여. 에잇, 나쁜놈. 암만 멋있어도 이런 놈은 사양해야 되는데 여자들이 가끔 정신줄을 놔버리는 게 문제야. 쳇, 대체 수컷들에게(더불어 암컷들에게) 사랑이란 뭐란 말인가. 

자기를 엄청 사랑해주는 남편 월터를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면서 되려 들켜서 그에게 쫓겨났으면 하고 바라는 키티. 아까 말한 그 문고리 돌리는 소리는 기우가 아니라 사실이었고, 균열은 차차 드러난다. 견디지 못한 건 월터가 아니라 그녀쪽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그가 말한다. 

   
  "나는 당신에 대해 환상이 없어. 나는 당신이 어리석고 경박한 데다 머리가 텅 비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의 목적과 이상이 쓸데없고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이류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하지만 당신을 사랑했어. 당신이 기뻐하는 것에 나도 기뻐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내가 무지하지 않다는 걸, 천박하지 않다는 걸, 남의 험담을 일삼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멍청하지 않다는 걸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생각하면 한 편의 코미디야. 당신이 지성에 얼마나 겁을 먹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당신이 아는 다른 남자들처럼 당신에게 바보처럼 보이려고 별짓을 다했어.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편해지기 위해서라는 걸 아니까. 그래도 나는 당신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어.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에 보답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당신이 나를 사랑해 주길 기대하지도 않았고 당신이 그래야 할 어떤 이유도 찾지 않았어. 내 자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때때로 당신이 나로 인해 행복하거나 당신에게서 유쾌한 애정의 눈빛을 느꼈을 때 황홀했어. 나는 내 사랑으로 당신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어.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신이 내 애정에 참을성을 잃기 시작하는 징조가 보이는지 언제나 조심했어. 대부분의 남편들이 권리로 여기는 걸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어." (pp.96~97)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이런 남자에게 왜 이런 짓. ㅠㅠ 그치만 이해한다. 헌신적인 남자에게 사랑받는 일도 좋지만 나를 미치게 만드는 남자에게 빠져 허우적대는 일도 그 못지 않은 거니까, 키티처럼. 그녀가 월터와 결혼한 건 애초 동생보다 먼저, 더 나이들기 전에, 엄마의 잔소리를 벗어나기 위해서였으니까.  

여기서 싸움의 기술, 말을 많이 하거나 먼저 분노하면 지는 법. 본성이 조신하지 못하고 흥분 잘하는 키티는 조근조근 그리고 또박또박 냉소를 날리며 내뱉는 남편에게 절대로 당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100페이지까지 읽었을 때, 그들의 싸움을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나는 할 일을 해야 했다. 거기다 나는 환상성이 강했다. 미혼이고, 달리 사랑과 결혼을 꿈꾸지도 않았다. 굳이 선택하라면 연애나 동거 쪽이 재미있겠다 생각하는 편. 평생 함께 알콩달콩도 좋지만 약간의 불확실성을 안고, 내 것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오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쪽. 물론 아슬아슬하게 저울질 할 때가 가장 클라이맥스. 철없는 나는 여전히 남편이 있는 여자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믿는다. 현실은 그와 달라야겠지만 결혼이 주는 책임감을, 기혼의 여자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선 곤란하니까. 사실 <인생의 베일>은 인생에 대한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아직은 삼각관계(그것도 무지 어설픈) 뿐이라서, 역시 읽어야 아는 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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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03-0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ㅠ.ㅠ 이 글을 읽는데 첫사랑이 생각났어요. ㅠ.ㅠ 나쁜놈!!!

아이리시스 2011-03-05 12:40   좋아요 0 | URL
에잇, 나쁜놈들! 쳇쳇, 퉷퉷!!
기다려, 걱정하지마, 사랑해 하다가 뒤통수치는 이런 나쁜,, ㅠㅠ
그러니까요,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해요, 그죠? 설령 사랑한다 해도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관계나 아무 것도 남을 일 없는 관계는 열정을 지펴주는 동기와는 반대로 백해무익한 사랑인 것 같아요. 점점 사랑에 환상이 사라지지만 그래도 찰스같은 놈이라면 제대로 복수해야 하는데. 참, 몇 장 더 읽으니까요, 본색을 드러냈어요. 자기 꽁무니 내빼기에 바빠요, 사랑이고 뭐고 없어요, 나쁜남자가 아니라 또라이 남자 전형을 보여주고 있어요. 나쁜남자는 멋있기라도 하죠, 아하하하하하하.

점심시간이고 주말이예요, 점심 맛나게 드세요.^^

sslmo 2011-03-05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옛날에 페인티드베일이랑 이 책 묶어서 페이퍼 썼던게 있는데 말이에요.
미혼의 발언은 이렇게 도발적일 수 있는 거군요~

아하하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에 매료되어 저 아직 점심 못먹었어요~^^

아이리시스 2011-03-05 14:07   좋아요 0 | URL
저는 먹었어요, 어서 점심 드세요.^^
근데, 저는 왜 아직도 알라딘에..............죽치고 있는지 몰라요, 흑흑, 날씨도 좋은데,ㅠㅠ
나무꾼님 페이퍼 보러 갔었어요, 영화 못봐서 완전 기대하고 있는데 장가계였군요. 아직 콜레라 그곳까지는 가는 도중이고, 이제 막 짐 푼 다음이라서, 계속 읽고픈데 빠져드니까 공부에 집중이 안돼서 중간에 끊느라 고생했어요. <싸인>도 계속 뒷부분이 궁금한데 이리 방황할거면, 차라리 확 보는 게 나은 거 아닌가 싶네요, 크크.

참, 놀란 건, 그러니까 우리 밑줄그은 문장이 같은 거군요, 하핫. 심지어 나무꾼님은 이달의 당선작이시고~ 그러고보니까 예전에 페이퍼 읽은 기억이 났어요, 희미하게.

실제의 저는 별로 도발적인 사람이 아니예요, 생각이라도 깨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죠. 결혼한 여자가 일탈,, 멍석 깔아줘도 못할 타입이예요, 저희 엄마가 장가계 다녀와서 풍광이 좋다고 늘 자랑했는데 중국이 좋아봤자~ 라면서 심드렁했던 제가 좀 부끄럽겠군요, 영화 보면서.

좋은 주말 보내세요~^^

잘잘라 2011-03-05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다하면 정으로 산다,라고.. 어른들 말씀이죠.
사랑이 다하면 의리로 산다,는 우리 언니 말이구요.
사랑이 다할때까지 살아봐라 어디,라고 하던 저는 이러다 말것만같아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3-05 22:03   좋아요 0 | URL
아닐걸요, 포핀스님은 완전 사랑스럽고 애교넘치는 말괄량이처럼 예쁜데 설마 이러다 말겠어요?ㅎㅎ
정으로 사는 건 잘 모르겠고, 의리로 산다는 건 맘에 안들긴 하지만 수용이 되요. 저는 사랑에도 의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좋아하거든요. 강아지를 키우는 일에도 책임감과 의리가 필요한데, 하물며 사랑이라면요. 그런데 질척되는 관계는 사양이구요, 쉽게 기분에 따라 변하진 말자는 의미에서 의리는 좋은 말 같아요.^^

2011-03-05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5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05 2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05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거운 불을 품어 눈이 먼다면 그깟 뜨거운 불 안 품고 말겠어요..ㅋㅋㅋㅋㅋ
근데 뭐 내가 마음 먹는다고 그렇게 되는건 아니니까요.
어느 날 갑자기, 뜨거운게 훅~하고 지나가는거니까.

전 재작년까지도 어떤 그런 사랑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것도 도발적인건가요?
뭐..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현실적이지 않은 TV에 나오는 배우들이나 가수들을 좋아하는 것으로 결론 짓지만요.ㅋㅋ
근데 이젠 좀 귀찮아요. 늙었나봐요.

아이리시스 2011-03-05 22:1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요, 뭐하러 눈이 멀 정도로 불을 품어요? 미련하게, 푸하하하.
오늘 그런 상상을 했어요. 혼자 여행을 떠나고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오는 뻔하디 뻔한 레파토리를 또 떠올렸는데요. 늘상 그렇지만 결말이 해피엔딩은 아니예요. 탕웨이가 내한했을 때 현빈은 다정하고 멋지지만 3일만에 사랑에 빠질 타입은 아니다, 라고 했잖아요. 저는 사랑이란 게 3일만에 시작될 수도 있다는 걸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타입 같아요. 사랑이라고 착각할 만한 감정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한정된 시간과 어쩔 수 없는 조건 아래 기분이 아주 좋거나 또는 그 반대이면 누군가에게 이유없이도, 친절만으로 끌릴 수 있어요. 그런 적 있거든요. 몸은 늙어가지만 상상이 귀찮진 않아요, 거기다 저는 아직 새록새록해야 하고~크크.^^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06 08:46   좋아요 0 | URL
그럼요 그럼요~아이리시스님은 뭘 해도 용서가 되는(!!) 20대 꽃다운 아가씨잖아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3-06 15:00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게 올해로 끝~
아, 전 정말이지 '3'이 싫어요. 셋도 별로 안 좋아해요, 차라리 다섯이 낫지. 그렇다고 짝수가 더 좋은 건 아니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너무 멋없잖아요. 근데 왜 갑자기 홀수짝수 얘기를(!!!) 빅뱅 <투나잇> 듣고 있어요, 벅스가 제 카드로 제멋대로 연장결제한 걸 보름이나 모르고 있었지 뭐예요, 에잇, 쳇, 이건 사기라구요, 그래도 뭐!! 난 그런 거에 1초 정도 분노해요. 뮤비도 연속으로 다섯 번이나 본 걸요, 아하하하하, 더 멋있어지고 있어요, 푸핫. 근데 빅뱅은 주로 밤을 좋아하나봐요, 빅뱅 노래들에서 밤향기가 나요, 폴폴폴. 어쩐지 봄에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사랑스런 현맘님, 좋은 주말~^^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3-06 16:52   좋아요 0 | URL
으...내년에 서른이 되는거예요?
전 서른 되었을 때 굉장히 우울해 했었어요.
정말 내 청춘 돌리도~ 이 심정..ㅋㅋㅋㅋㅋ
괜찮아요. 아이리시스님은 제가 보기엔 아주 중심 잘 잡힌 아가씨니까.
세월따위, 나이따위, 그런것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러길 바래요!

빅뱅은요. 조그만 녀석들이 되게 쎈 척하긴 해요..ㅋㅋㅋ
아직 밤에 어울리는 녀석들이 아닌데. 좀 더 힘 빼야 하지 않을까요? ㅎㅎ
그래도 좋아요. 신나서 좋고 젊어서 좋고.
주말이 따듯해요. 아이들이랑 자전거 타고 올래요~

아이리시스 2011-03-07 01:25   좋아요 0 | URL
20대 초반으로는 안돌아가고 싶은데 중반으로는 다시 가면 좋겠다 싶어요. 몇 년 전으로만 시간을 돌리면 좋겠어요. 현맘님은 제가 더 어린 줄 아셨죠? 하하하. 저도 어리지 않죠?ㅠㅠ, 에잇, 갑자기 너무 어른이 된 것 같아요, 큭큭큭.

마녀고양이 2011-03-05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페인티드 베일> 영화 보셨어요?
인생의 베일 원작으로 만든 영화인데, 안 보셨다면 완전 강추해요!
절대 어설픈 삼각 관계라 하기 어려운 영화인데,, 그래서 소설 읽으려고 사놓고 아직 못 읽었거든요.
여하간.... 소설이 맘에 안 드시더라도 영화는 진짜 맘에 드실거예요.
얼마나 마음 저리는지 몰라요.

2011-03-05 20: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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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3-05 22:18   좋아요 0 | URL
아니요, 그렇잖아도 전에 마고님 페이퍼에서 한 번 보고 저도 기대하고 있어요. 보진 못했는데 포스트는 백 번도 더 본 것 같아요. 어설픈 삼각관계가 제 착각이란 말이죠? 후훗, 더 기대된다,, 소설 읽어보세여, 저도 뭐 어제 그 자리에서 진도 못나갔지만 소설이 맘에 안드는 건 아니예요, 좀 설레기도 하고 이상하게 마음 저리기도 했거든요. 좀 구닥따리다 싶으면서도 드라마속 남녀관계의 닭살대사는 다 여기서 따온 것 같고 막. 저는 남녀가 사귀기 전이나 결혼하기 전에는 서로 존댓말 쓰다가 사귀게 되거나 결혼하면서 자기 것인양 편안하게 말놓는 거, 그러니까 남자가 그렇게 해주는 거 너무 좋아요, 크크크. 이게.. 소개 읽어보니 키티의 성장이야기이기도 하잖아요. 영화는 진짜 맘에 들 것 같아요. 추천 감사.^^

2011-03-05 2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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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7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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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7 14: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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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7 14: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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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07 14: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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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3-06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나무꾼님도 <인생의 베일>과 관련된 글 썼었는데,, 집에 이 소설 소장하고 있는데
아직 안 읽어봤어요. ^^;;

아이리시스 2011-03-07 01:26   좋아요 0 | URL
저도 나무꾼님 페이퍼 봤어요, 시루스님도 구입하셨군요, 저도 사둔 책 집어든 건데, 읽어보고 싶었거든요, 영화도 보고 싶고, 마고님이 추천해주셔서 무한기대가 생겼어요.^^
 
<나라의 심장부에서>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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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썼으므로 내가 읽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대를 앞서 고민하는 이가 문학인이라 했었나. 그들이 맨처음 어떤 방식으로 사유하고 어떻게 생각을 만들어내고 무엇으로 쓰기 시작하는지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종종 언문일치의 벽을 깨부수고 나온 문학을 만날 때에만 세상이 만들어낸 뻔한 거짓말을 알아채곤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앞선 고민이 문학이라면, 문학이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 좀 더 뒤엔 알 수 없는 감정이 찾아왔다. 의식의 제일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쓰라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그러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흘러내린 절망을 추어올리면 그게 희망일 수도 있단 사실을.  

어릴 때부터 유난히 공상이 많은 아이였다. 꼬맹이때부터 말하고 느껴온 것들을 글로 썼다면 수만장은 됐을 것이고, 알맹이가 훌륭했다면 사유의 세계라 불러도 썩 괜찮았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지루하게 읽히고 내겐 더없이 훌륭한 의식소설로 읽혔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수식을 빼고도 쿳시는 충분히 난해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의 출생과 시대가 말해주고, 나열하기에도 벅찬 작품들이 또 한 번 증명한다. 인기스타가 나오는 일본 드라마에 몇 시간 올인하다가 축구 한일전이 열릴 때면 [절대 이겨야 한다]를 부르짖는 이중성을 좀 더 고민해서 쿳시처럼 문학으로 표출시킬 수만 있다면 나도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달콤한 생각이 따랐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한계를 한계라고 인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일 뿐, 세상에 무한정이란 건 절대적으로 없는 영역인지도 모른다(여기서 '무한정'이란 <노팅힐>의 줄리아 로버츠 대사에서 따온 'indefinitely'가 아니다). <나라의 심장부에서>는 비교적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전달하는 주제가 명확하다. 전달하는 방식이나 문체가 난해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읽혀야 한다. 무척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아프리카의 황량한 사막에 핀 한 송이의 장미를 상상하며 읽었다. 오히려 척박한 땅의 질척함과 절망, 고독과 스산함 또 두려움이 제 존재를 더욱 또렷이 드러낸다. 등장인물은 몇 없다. 사유의 주인공 마그다와 그녀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여자, 아버지 농장에서 일하는 하인 헨드릭과 그의 아내 안나가 벌이는 조용한 향연이다. 그런데 그조차도 어렵다. 마그다의 의식인지 실제인지 분간해가며 읽는 노력을 중간에 그만뒀을 정도다(어차피 알 수도 없었겠지만).

마그다의 독백은 존재의 정체성을 찾아 끊임없이 유영한다.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닮아있는 마그다와 헨드릭의 관계에서 언뜻 오리엔탈리즘을 대입해 읽고 분석 보고서를 썼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떠올렸다. 메마른 식민의 땅이긴 해도 백인여자이자 농장주의 딸로 살아가는 일이 기댈 곳 없는 흑인남자 헨드릭보다 고통스럽진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여자이기에 식민의 삶이 고달프다 말한다. 그녀는 억울한 것이다. 부당을 잘못됐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보다야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의식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의 진수를 보여주는 문장을 곱씹는 일은 녹록지 않다. 뱉어냈다가 담고, 다시 밀어내고 또 주워담는 일련의 호흡은 쿳시의 문장이 아니라 마그다의 호흡이다. 의식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파도처럼 넘나드는 사유 속에서 그녀는 못 가는 곳이 없고, 안 가는 길이 없다. 욕망을 드러내는 일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고통의 밑바닥으로 침잠하는 일이란 걸 그녀에게서 배운다. 남자가 이런 감성, 대체 어디서 배웠을까?

   
  167.
(중략)
그는 내가 혼자 침대에서 뭘 하는지 얘기한다. 내가 밤에 집 안을 돌아다닌다고 그녀에게 얘기한다. 그는 내가 무슨 꿈을 꾸는지 얘기한다. 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얘기한다. 나를 여자로 만들어주고 감싸줄 남자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내가 나이를 먹었어도 어린애라고, 늙은 어린애라고, 곰팡내 나는 체액으로 가득한 사악한 늙은 어린애라고 얘기한다. 그는 누군가가 나를 여자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누군가가 내 몸에 구멍을 내서 낡은 체액을 빼줘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 일을 해줄 사람이, 밤중에 창문으로 기어올라 그녀 옆에 누워 그녀를 여자로 만들어주고 새벽녘에 빠져나올 사람이 나여야 할까? 당신 생각에는 내가 그렇게 하도록 그녀가 내버려둘 것 같아? 그냥 꿈인 척하고 내버려둘까? 아니면 완력을 써야 할까? 내가 그녀의 앙상은 무릎을 벌릴 수 있을까? 그녀는 허둥대면서 소리를 지를까? 내가 그녀의 입을 닥치게 해야 할까? 그녀는 끝까지 가죽처럼 단단하고 마르고 질길까? 내가 그 건조한 구멍으로 강제로 들어가면 결국 바이스 같은 뼈에 으깨져 흐물흐물해질까? 혹은 결국 그녀도 여자가 부드럽듯이, 당신이 부드럽듯이 여기가 부드러울까? 안나는 어둠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남자한테 달라붙는다. (pp.165~166)   
 
   


p.s. 그때 생각이 났다. 아주 추운 겨울 비엔나에 있었다. 해가 빨리 떨어지는 우기여서 어둠이 찾아오기 전에 가려고 발을 동동 굴렀다. 어쩌면 시내마다 연결된 트램을 타고 돌아다니느라 좀 여유로웠는지도 모르겠다. 벨베데레 궁전에 들어갔다. 클림트를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클림트 옆의 쉴레 그림 앞에서 나는 오래도록 발걸음을 멈췄다. 그때 나는 이상한 나라로 빨려들어가는 중의 앨리스 같았을 거라고 훗날 생각했다. 책을 덮고난 느낌이 딱 그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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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1-29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운 겨울의 비엔나, 그리고 쉴레 앞에 서 있는 아이리시스님.
전 이상한 나라로 막 빨려들어가는 앨리스를 문틈으로 지켜보는 어떤 존재쯤 될까요.

이 책..도서관 신간코너에서 본 것 같은데, 제목만 보고 정치관련 책인줄 알았다는..ㅎㅎㅎㅎ
이래서 사람은 보고 배워야 해요.

아이리시스 2011-01-30 02:49   좋아요 0 | URL
거긴 진짜 너무 추웠어요. 여행했지만 기억나는게 <서역> 뿐이라니까요, 히히.
길모르면 계속 기차역을 왔다갔다 하게 되고 지하철역 서성거리게 되고 그렇잖아요.ㅋ

정치관련으로 오해받을만 하네요. 나라, 심장부.. 아하하, 웃긴다.

쉴레의 <포옹>이죠, 저 그림.
제가 친구한테 말이죠, 성욕이 느껴지는 그림이야, 라고 했어요.
친구가 웃겼을 거예요, 이상한 나라로 막 빨려들어가는 앨리스를 문틈으로 보면서,ㅋㅋㅋ

마녀고양이 2011-01-29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지... 인용글을 보고, 멍하니 멍하니.....
아, 너무 좋아여, 글이, 문체가, 모호하게 떠다니는 말들. 정말 현실같이.

어릴 때 말이죠, 나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왜 훔쳐보지 못 할까, 왜 다른 이와 똑같은 생각을 하지 못 할까,
그게 가능하면 나는 다른 사람이 되는건가... 등의 밑도 끝도 없는 희안한 상상을 하고 살았답니다. 흐.

아이리시스 2011-01-30 03:00   좋아요 0 | URL
온통 이래요, 물론 멋진 장면이기도 하지만.
침대에서의 대화, 그것도 제3자가 자신에 대해 이런 대화를 할 것이다.. 라니 특별하잖아요. 크.

저는요, 침실에서의 얘기를 어떻게 풀어내는가에 관심이 있어요.
글로 표현하기 참 애매하고, 그래서 대부분의 문학들이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는데 이건 특별해요.
저도 모르게 접어둔 문장에 요런 장면 많아요, 종종.
저 너무 이상해요, 아하하.

모호하게 떠다니는 말들. 정말 현실같이.
빙고!!

마고 님 20대는 정말 예뻤을 것 같아요.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채정안이 이선균에게 묻잖아요, 내 20대는 어땠어? 하고.
그래서 남자가 대답하죠.
참 정신없고 바쁘게 달려가는데 눈에 보이는 건 별로 없고,
그런데 그게 참 반짝이고 빛났어, 라고.
대충 그런 내용의 대답이었는데, 누군가의 20대를 온통 알고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잖아요.
언젠가 마고 님 20대를 아는 분께 똑같이 묻고 싶어요.^^

cyrus 2011-01-29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리시스님 덕분에 이 책 읽고 있어요. 신기하게도 요즘은 노벨문학상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있는거 같아요. 알고보니 존 쿳시도 2004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더군요.
인용문이 에곤 쉴레의 그림이랑 잘 어울려요. 간혹 소설 속의 문장이나 내용을 읽다보면
그림이나 영화, 다른 소설 속의 장면 같은게 연상할 수 있다는게 참 좋아요. 이제 슬슬 이 소설을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서재 구조가 살짝 바꼈네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1-30 03:04   좋아요 0 | URL
예쁘고 특별한 배경으로 바꾸고 싶었는데 안됐어요, 크하하.

저는 존 쿳시를 재작년쯤에 김혜수가 추천해서 알았어요.
기사였는데 <추락>을 읽고 있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잊었다가 이번에 만났죠, 처음이예요.

역자의 말에 의하면 쿳시의 작품을 여럿 번역했는데 이게 제일 좋았대요.
처음으로 읽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문장이나 내용에서 그림이나 영화, 다른 소설의 장면을 연상할 줄 알게 되면 글을 잘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쓰긴 쓰되 본인이 좀 더 수월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야깃거리가 늘어나는 거니까. 저도 늘 그런 지점을 잡아낼 줄 아는 사람, 아니 글을 쓰고 싶어요.^^

시루스 님도 다 읽으시고 리뷰 꼭 써주실거죠?

sslmo 2011-01-31 0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진짜 멋진걸요.
이 책의 책속 밑줄긋기를 보는 순간, 실은 님의 리뷰가 궁금했었어요.
이쯤 되면 '리뷰를 쓰는 데 창피했다'는 '지독한 엄살이다'로 해석돼요.
찌찌뽕이네요, 저도 김혜수 때문에 존 쿳시를 알게 됐는걸요.
하지만 잊고 있다가 이 책이 시작이었어요.^^

아이리시스 2011-01-31 18:55   좋아요 0 | URL
김혜수랑 존 쿳시가 어울리는 조합도 아닌데 와우, 나무꾼님도?
그때부터 노벨수상작 읽는 배우라면서 더 좋아하잖아요, 아하하.

밑줄그은 문장 되게 많은데 제가 잠결에 막 휴지조각으로 표시해놨더라고요.
일어나서 보니까 사실 다 그어야겠어서 마음에서 그만 보내주기로 했어요.
훗날 다시 한 번 읽어야지,ㅋㅋㅋ
<추락> 읽어보고 싶어요, 일단 구입부터 하고.^^

cyrus 2011-02-13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서재에 존 쿳시의 처녀작을 알고 싶다고한신 댓글을 보고 여기서 답글을 남겨봅니다.

<어둠의 땅>이라는 책인데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에요, 그런데 존 쿳시라는 작가가
정말 대단한거 같아요.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이라는 일종의
북 다이제스트 형식으로 된 책에서 보면 의외로 존 쿳시의 소설들이 꽤 많이 소개되었더군요.
<추락><어둠의 땅(원제; Dusklands 더스크랜드)><나라의 심장부에서>
<마이클 K(원제: 마이클 K의 삶과 시대)> 총 4권이 소개되었어요, 그래서 이왕이면
존 쿳시라는 작가를 알기 위해서 처녀작부터 읽어보려고 했던거에요.

아이리시스 2011-02-13 17:50   좋아요 0 | URL
존 쿳시가 출생이 특이하더라구요.
제국주의 국가 출신으로 식민지국에 살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들을 인지하고 있었어요.
초기작이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니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에 나오는 책 언제 다 읽을까 했던 적 있는데
거기에 4권이나 소개되었군요. 저도 기억해둘게요~^^
 
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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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쟁쟁. 민통선 너머 자등령, 가지런히 보존된 수목원의 깊은 숲에서 이제서야 비로소 꽃과 나무들이 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책을 덮고 한참을 귀기울이니 뜻모를 고요함에 섬뜩한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말한지도 오래지만 들은지는 더 까마득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우린 저마다 제 속을 얼마만큼이나 들여다보고 사나 싶어 불안했던 것이리라. 제 잘난 맛에 쏘다니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저만의 목소리를 내지 못해 안달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소리는 늘어났지만 정작 알맹이는 듣지 못하는 시간이 늘었다. 말은 흐르고 소리는 고였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 연주는 타인은커녕 자신의 삶도 제대로 들여다볼 줄 모르는 현대인을 닮았다. 사람들은 종종 말수가 적은 사람을 할 말이 없는 사람으로 규정짓는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수록 되려 입을 꽁꽁 닫고, 말없는 사람일 수록 그 안에 불꽃같은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사실쯤은 누구나 아는 세상임에도. 안에 든 것이 열정이든 분노든 체념이든 사랑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사람이, 시대가, 세상이 아무 소리 듣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여기, 숲에서는 들린다. 연주가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와 굳이 서울에 남겠다는 어머니를 뒤로 하고 거주지를 옮겨 시작한 일, 즉 수목원 숲에서의 꽃과 나무에 대한 세밀화 작업이 이뤄지는 이곳에서는 모든 소리가 들리더란 말이다. 들리긴 들리되 들으려고 해야 들리는 소리라 제 말만 지껄이는 어떤 사람에게도 들릴지 말지는 장담할 수 없고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지만. 특가법상의 뇌물죄, 알선수재, 업무상 배임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복역중인 아버지의 생애나 수목원의 직속 상사 안요한 실장과 그의 아들 신우, 올해 말 제대를 기다리는 김민수 중위를 비롯, 전방 사단의 부사관 생활 삼십 년, 잔반 배달업 십오 년, 숲 해설사 십여 년의 약력을 가진 이나모나 해바라기 미술학원 선생으로 자살한 이옥영의 쟁쟁한 삶 같은 건 처음부터 연주에게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을 것이다. 인즉, 애초에 그들의 삶과 연주의 삶에 다리가 놓여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숲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사람의 소리보다 꽃과 나무와 풀, 때로 숲과 곤충과 자연이 내는 소리를 먼저 듣게 되니 노력 아닌 본능은 어떤 것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소리없이 강한 것이리라. 주인공들은 모두 크게 움직이는 법이 없다. 이 소설은 간혹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주인공 같다. 보이는 것보다 들리는 것에 귀기울이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보다는 사람 자체에 주목하게 된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보다 꽃과 나무와 곤충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하나하나 관찰하다보니 모든 것이 모여 숲을 이루는 것이란 명제도 얻게 된다. 더불어 나도 단지 풍경화의 부속품일 뿐이다.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삶의 이치다. 그것은 제자리 즉 생긴 대로 또는 그대로 또는 본능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연주는 부모님을 떠나 비로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아버지가 왜 그랬을까, 어머니는 왜 저러실까가 아니라 그냥 그들의 삶을 이런 거라고 담담히 말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가족 안에 머물러서는 절대 가족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것마냥. 그것이 진실인 양.  

풍경과 풍경, 풍경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다리가 놓이는 것은 아니다. 민통선 너머 최전방 군인들에게 50년도 더 지난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그것은 세월과 세월 사이에도, 세월과 사람 사이에도 다리가 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이자 김민수 중위가 부탁한 뼈 그리기 작업 또한 그 연장선일 터. 50년도 더 지난 전쟁의 부수물인 유해복구작업은 한층 더 그 의미가 짙다. 삶이 여러 번 흘러갔다. 죽은 이는 죽어서도 나이를 먹었다. 그건 추려낸 뼈를 보고 느낀 사실이 아니라 발굴한 뼈 세트가 스스로 말해준 사실이었다. 아내와 이혼한 안요한 실장의 아들 신우의 그림그리기를 지도하는 일이나 김중위의 부탁인 뼈 그리기 작업에 대답이랄 만한 소리조차 못내고도 그렇게 흘러가버린 사실과 비슷했다. 모든 것에는 다리가 있어 저절로 건너고 저절로 흘렀다. 그게 삶이었다. 할아버지의 폐마 좆내논은 그야말로 온갖 다리를 건널 수 있는 존재인 셈이었다. 만주에서 할아버지가 타고 온 좆내논은 엄마의 꿈 속에도,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건너가는 중에도 존재했다. 한마디로 좆내논은 앞서 말한 바로 그 다리였다.  

좆내논은 또 올 것이다. 생이 다하지 않았음으로, 사람이 사람이 아닌 게 아니므로, 소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꽃과 나무는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이므로 좆내논은 또 와야 한다. 겨울 즈음 시작해 그 해 이른 겨울까지, 연주는 숲으로 들어가 모든 이들의 젊은 날을 또 숲을 알아챘다. 신우가 안실장을 떠나 엄마의 손을 잡고 돌아가버린 것이나 김중위가 부대를 떠나는 것, 이나모나 이옥영의 죽음, 그리고 아빠의 죽음까지 모든 것은 소리로 연결되어 있을 터였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숲의 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 꽃을 바라본다 해서 꽃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 터, 그건 꽃과 나무, 곤충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에 딱 들어맞는 이치가 아닌가. 때로 당신의 진심을 오해했다. 간혹 내 진심을 보여주면 당신도 그럴 거라 착각했다. 세상 모든 것이 공평하리라 믿었던 순수함은 어린 날의 치기일지도 모른다. 불공평이 오히려 세상의 비뚤어진 균형을 켜켜이 맞춰간다는 걸 그땐 몰랐다. 사람이 그럴 때에도 자연은 늘 곁에 있었다. 누군가는 오고 누군가는 떠날 때에도 숲은 늘 제자리에 존재했다. 떠난다고 생각한 건 다만 곤충이나 나무, 꽃의 순환일 따름이었다. 전부라고 생각했던 곤충이나 나무, 꽃은 숲의 일부였다. 내가 잘나 떠들어댄 모든 소리들은 결국 나와 누군가의 사이에 기거했다. 나는 결국 일부다. 그저 세상의 일부인 나는 어떤 것도 결론지을 수 없다. 다만 좆내논은 늘 우리 곁에 소리없이 존재할 것이며, 제각각 어떤 결핍이 있든 소설 속 모든 인물들, 나아가 우리는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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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9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살이 나서 머리가 너무 멍해요. 이런 날은
나에 대해 너무 침울해지지 않나요? 손가락 끝이 쑤시고. ㅠㅠ

이런 날은 말이죠...... 나의 숲은 너무나 멀어 보여여.

아이리시스 2010-12-29 19:08   좋아요 0 | URL
몸살이 나신 거라구요?
흑흑흑, 그래도 글 봤어요. 링겔투혼 그런 거군요.
방법은 땀 빼고 먹고 자는 것밖에 없어요. 얼른 나으세요~~~
좋은 글, 재밌는 글 보여주셔야죠, 그죠?

나의 숲.
아, 이번 김훈 소설은 진도가 잘 나가여.
수목원에 가고 싶게 하는 문장들이예요.
꽃과 나무, 곤충을 관찰하고 싶게 해요.
부산에도 수목원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2-2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오늘 이 책 빌려왔는데....
그래서 아이리시스님 리뷰 안 읽었어요.
읽기 시작하면 와서 다시 읽을께요..
괜히 반갑네요..ㅋㅋ 우리 통했나봐요!!

아이리시스 2010-12-29 22:10   좋아요 0 | URL
숲에 반하실 거예요,ㅎㅎㅎㅎㅎㅎㅎㅎㅎ
좀 약한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재밌어요.

아하하, 우리 통했어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