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인 파리 - Midnight in Paris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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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파리가 존재하는데 세상의 어디든 딴 데 살겠다는 건 늘 내겐 이상한 것이었다. 파블로와 마티스와의 저녁식사. 파블로는 위대한 미술가였지만 마티스는 위대한 화가였다. 파리는 여름이다. 자기 연인을 마주하고 앉는 건 어떠했던가. '막심'에서 그 최고 시간대에 방금 만난 미국 작가와 사랑에 빠졌다. 이름은 '질 펜더'. 말로 듣던 순간의 마법이 내게 벌어졌다. 피카소와 헤밍웨이 둘 다 날 사랑함을 안다. 하지만 뭐든, 설명이 안 된다. 설명이 안 되는 이유로 마음으로는 '질'에게 끌린다. 아마 그가 순수하고 격식없기 때문에. 슬픈 인생이 늘 그렇듯 그는 '이네즈'란 여자와 결혼할 예정이다. 난 꿈을 꾸었다. 그가 와서 내게 작은 선물로 귀걸이를 주고 같이 자는 꿈을. (아드리아나의 책)

 
   

 

  

파리로 여행 온 소설가 지망생 '질 펜더' 그러니까 '길'은 여느 때처럼 파리의 길을 걷다 한 노점상에서 아드리아나의 책을 발견한다. 프랑스어를 해석하기 위해 며칠 전 만났던 뮤지엄 큐레이터를 찾아가고, 그녀는 친절하게 벤치에 앉아 그에게 책을 읽어준다. 파블로와 헤밍웨이 둘 모두에게 깊은 사랑을 받던, 최고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그녀가 사실은 그를 사랑하고 있었음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 사실을 '길'이 알게 된 순간이기도 하고.   

이네즈와의 결혼을 앞두고 그녀의 부모님과 함께 파리로 여행 온 그에게 파리는 가이드를 앞세워 손을 마주 잡고 나들이 다녀야 할 곳이 아니다. 이네즈의 친구 커플을 만나 넷이 베르사유나 미술관에 갔을 때도 길은 폴의 그림해석에 반기를 들고, 이네즈가 가고 싶다는 장소, 파티, 약속 모두를 거절하려 열심이다. 마지못해 따라 나설 때도 있지만 그에게 메뉴얼식 틀에 박힌 파리관광은 별 매력이 없다. 와인시음으로 잔뜩 취한 걸음을 하고 이네즈가 가자는 댄스파티를 거절한 후 혼자 걷던 길은 어느 거리에서 자정을 맞이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 그만의 파리가 시작된 것.

   
 

"두 세계에 있는 거요. 별 이상한 거 없소." (달리) 

 
   

장난감처럼 생긴 자동차 한 대가 '길'의 앞에 멈춘다. 그더러 얼른 올라타라고 부축이는 일련의 사람들. 여러 사람의 환대에 무슨 영문인 지도 모른 채 올라탄 그가 도착한 곳은 장 콕토가 주최한 파티. 먼저 말을 걸어온 사람은 젤다. 그녀는 스콧 (피츠제럴드)가 미친듯이 끌려들어가고 있는 중의 매력적인 여자다. 자유롭고 거침없고 아름답다. 스콧을 통해 헤밍웨이를 만나고, '향수 가게에서 일하는 남자(옛 것과 추억의 물건이 있는 곳)'에 관한 자신의 소설을 이야기하며 평가를 부탁한다. 헤밍웨이는 단박에 거절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그게 나쁘면 나쁜 글이 싫으니까, 그게 좋으면 질투가 나 더 싫소. 딴 작가의 의견은 필요없는 거요. 작가들은 경쟁을 하오." (헤밍웨이) 

 
   

좋은 주제가 아니라고 자책하듯 늘어놓는 길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형편없는 주제는 없소. 스토리가 진실하고, 산문체가 깔끔하고 솔직하고, 억압받으며 용기와 품위를 단언하면." (헤밍웨이) 

 
   

헤밍웨이는 마침내 거트루드 스타인을 소개할테니 그녀에게 읽혀보라며 데려간다. 그곳에서 그녀와 한 초상화를 놓고 언쟁하던 파블로와 파블로가 그린 초상화의 모델이자 애인이자 아름다운 여인인 아드리아나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코코샤넬의 패션을 배우고, 짙은 검은 눈의 홀린듯한 유태계 이탈리아 화가에게 이끌려 파리에 왔다고 했다. 여기 머문 시간을 아름다운 6개월이라고도 했다.  

  

'그들의 파티장'으로 시간여행을 한 다음날 길은 이네즈를 데리고 거기에 가기로 마음 먹는다. 같은 거리에 나가 오랜 시간 기다렸지만 자동차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네즈는 투덜대며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참 사랑스럽고 지혜롭다. 길과 이네즈는 많이 다르지만 바로 그 다름이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예쁜 커플이다. 길의 제안에 이네즈가, 이네즈의 제안에 길이 자꾸 태클 건 이야기만 했기 때문에 행여 하는 노파심에 털어놓는다. 이네즈가 돌아간 직후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퍼지고 그때 어김없이 자동차가 나타난다. 길은 자정에만 나타나는 자동차, 자신의 환상적 여행이 자정의 시간열차를 타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는 매일밤 바로 그 거리에 나가서 자정을 기다린다. 어김없이 자동차가 오면 거기에 올라타서 자기 소설을 평가해주는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난다. 달리와 엘리엇, 헤밍웨이와 파블로, 운명의 뮤즈 아드리아나를 만난다.  

이네즈 친구 커플, 이네즈 부모님과 미술관, 식당, 파티에 가지만 길의 온 신경은 다른 시간에 가 있다. 환상처럼 펼쳐지던 마법 같은 순간의 시간여행이 현실성을 획득한 것은 이 세계의 길이 파리의 노점상에서 아드리아나의 책을 발견한 순간이다. 늘 가족모임과 이네즈의 계획에서 빠져나가는 길을 이상하게 여기고 미행을 붙이는 장인, 아드리아나의 마음을 확인하자마자 이네즈에게 선물했던 보석을 훔쳐 그녀에게로 가려는 길, 들통날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보석을 제자리에 넣고, 아드리아나를 위한 보석을 새로 산다. 가장 황홀한 순간, 이 영화는 파리를 통해 사랑을 말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말한다. 지금 누구를 사랑하고 있어요? 당신은 어떤 책을 쓰고 있나요? 언제가 가장 행복할까요?

   
 

"우린 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우주 속 우리 자리에 질문해요. 예술가의 임무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에 대한 해독제를 찾는 거예요." (거트루드 스타인) 

 
   

 

마침내 다시 아드리아나를 만난 길은 그녀와 함께 또다른 시간여행을 떠난다. 이번에는 마차를 타고. 다시 도착한 '막심'에서 아드리아나와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얘기했던 '아름다운 시대'를 만난다. 1871-1914년의 서유럽 평화번영시기. 길과 아드리아나는 '아름다운 시대'에서 로트렉, 고갱, 드가를 만나고 고갱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대는 텅비고 상상력이 없어요. 살았다면 차라리 르네상스 시대가 낫죠." (고갱)   
   

 

하지만 아드리아나는 이 '아름다운 시대'가 '황금 시대'라고 믿어버린다. 급기야 본인의 현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도. 자신이 온 1920년대를 '현재'라서 지루하다는 아드리아나와, 그녀가 '황금 시대'라 믿는 지금보다 르네상스 시대가 더 낫다는 '아름다운 시대' 예술가들. 마침내 길은 깨닫는다.   

   
  "그게 작가들의 문제죠. 당신들은 말이 그득해요. 하지만 난 감정에 충실해요. 그래서 난 파리에 남아 살래요. 가장 아름다운 때에." (아드리아나)   
   

아드리아나와 길의 논쟁이 바로 소설과 글을 쓰는 내내 길이 직면해왔던, 맞닥뜨렸던 실존과 환상의 문제였다. 길은 비로소 아드리아나와 자기가 다르다는 것, 자기가 원해온 것,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알아차린다. 자신의 어리석음과 과거 또는 미래를 향한 갈망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내가 정말 가치있는 걸 쓰고 싶다면 내 환상은 없애야죠. 내가 과거에 행복했겠다는 건, 그건 환상인거죠. (길)  

 
   

 

길과 아드리아나는 작별한다. 각자 자신들이 살고 싶은 시대에 살 자유가 있기 때문에. 현재로 돌아간 길은 이네사에게 파리에 계속 머물겠다 선언하고 이네사와 파국을 맞는다. 파리의 자정에 강변을 새로운 느낌으로 걷던 그는 콜 포터의 앨범을 팔던 가브리엘과 만난다. 그리고 파리의 빗속을 가볍게 걷는다. 영화는 끝나지만 두 사람의 뒷모습과 파리의 역사는 새로 시작될 것 같다.  

파리의 빗속은 눈부시게 예쁘고, 파리에 울리는 자정의 종소리는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누군가와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거리의 걸음마다 빛이 분출하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한 것이 파리였는지, 예술가들이었는지, 소설인지, 그림인지, 현재인지 모를만큼 모든 것이 이 세계에 녹아있다. 파리가 더 예쁜 게 낮인지 밤인지 나 역시 모른다. 오래 전 아저씨는 파리가 짧은 시간 여행하기에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오랜 시간을 살기에는 그다지 감동을 느낄 수 없는 도시라고 했었다. 프랑스에는 워낙 예쁜 도시가 많아서 휴가철이면 정작 파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남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다. 서울보다 훨씬 작고 좁은 도시라는 것도 안다.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해서 오늘날에도 수많은 예술가들의 낙원이라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파리는 그냥 파리다. 홀린 듯한 이 기분은 뭘까. 여전히 남아있는 여운을 어떻게 떨칠까.  

나는 그냥 당신과 파리를 걷고 싶을 뿐이었다. 사소한 것들이 가끔 큰 틀에서 어긋난다던 길의 이네사와의 관계 고백은 나와 당신에게도 해당되는 말. 파리는 슬픈 눈으로, 아름다운 불빛으로, 따스한 웃음소리로, 축축한 공중전화박스로, 쌀쌀하고 어두운 벤치와 수없이 많은 와인상점으로 기억될 뿐이다. 여전히 그립고 낯선 곳.  

 

처음에는 예술가들을 따라 가보고 싶었다. 소설가와 예술가 그리고 음악. 하지만 금새 마음이 변했다. 예술가보다, 파리보다, 나와 현재가 더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이 곳이 파리는 아니지만, 1920년대도 아니고, 1890년대(아름다운 시대)도 아니고, 르네상스 시대도 아니지만, 바로 이 곳, 여기가 나의 황금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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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02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까지... 지금 과제 때문에 바빠서 죽을 지경이지만, 주말에는 꼭 이 영화 볼 거에요!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은데, 이번에는 파리가 땡기네요.
[빨간 머리 앤]을 읽으며 프린스 에드워드 섬에서 꼭 오래오래 살아야지,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
영화 보고 나서 우리 더 이야기 나눠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11-03 13:39   좋아요 0 | URL
얼른 과제를 끝마쳐야 해요. 맘껏 즐기려면. 저는 [빨강 머리 앤] 만큼 [들장미 소녀 캔디]도 좋아요. 프린스 에드워드 섬은 캐나다죠? 제 친구 중에도 캐나다를 흠모하는 애 하나 있는데.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호주 다녀와서 다시 캐나다에 가자고 노래하던.. 그러나 지금은 취업해서 잘 지내고 있어요. 목표를 현실로 만드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미드나잇 인 파리] 주말에 보는 거예요?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지던데, 그래도 파리와 시간여행은 여전히 낭만적이에요. 수다쟁이님이 막 좋아할 지는 확신이 없지만, 저는 [러브 송 포 바비 롱] 구해가지고 그거 볼거예요. 수다쟁이님이 얘기한 [레이디호크]는 자막이 계속 없어.( '')

마녀고양이 2011-11-0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파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완전 꿈 같은 이야기, 아무래도 나 이젠 바닥인가봐요,
너무너무너무 암울해요-, 호홋.

2011-11-03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03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 가고 싶다아.......ㅠ.ㅠ
바쁠 때 그래요. 그냥 여기서 다 스톱!하고 그냥 훌쩍 떠났음 좋겠어요.
파리는 왠지 항상 축축한 느낌이예요. 왜 그렇죠? ㅎㅎ
정작 그 곳은 매연도 심하고 거리도 더러워서 상상외로 낭만적이지 않은데
두고두고 생각나고 가고 싶은 곳이 되어 버렸어요...

아이리시스 2011-11-03 22:55   좋아요 0 | URL
그죠? 가고싶죠? 저도요...........ㅠㅠ
하지만 저는 로마를 좋아해요. 두 군데 중에 골라라 하면 저는 로마로 갑니다. 파리는 예쁘고 낭만적이지만 다른 세상 같지는 않은데 로마는 다른 세상, 다른 시대, 다른 도시에 온 것 같아서요. 자꾸 유물,유적이 나와서 처치곤란이라 지하철 공사를 안하는 로마. 사실은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거지만요. 원래는 더 심오하고 주관적인 이유가 있지만 그건 비밀로 할게요.ㅋㅋㅋ

저는 어느 순간 파리 하면 현맘님이 딱 생각날 것 같아요. 너무 어울려요. 왤까, 히히히히히히.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03 23:52   좋아요 0 | URL
심오하고 주관적인 이유...비밀로 하다니. 궁금해서 죽을지도 몰라요..ㅋㅋ
파리하면 왜 제가 떠올라요? 거참...더러워서 어울려요? (샤워는 아직도 고민중..ㅋㅋㅋ)

아이리시스 2011-11-04 00:09   좋아요 0 | URL
열거하면 너무 많아서 구차해보일까봐 그냥 심오하고 주관적인 이유로 통일한 건데 두 가지만 알려드리면, 하하하. 저는 고대 그리스, 중세 로마에 대한 환상과 피렌체 예술가들에 대한 환상과 지적 갈망이 큰데, 그리스는 되도안한 국민투표로 주가폭락을 다시 몰고 오고 있으므로 패스. 너무 염치 없어요. 산토리니로 신혼여행 가고 싶은 소망 바꾸려고 합니다. 캘리포니아, 아하하. 미드에 [The O.C]라고 있는데 그걸 좋아해서요. 해변도 좋고 타락도 좋고 거기서는 뭘 해도 다 좋겠더라고요.ㅋㅋㅋ

또 하나는 [로마의 휴일]과 젤라또 때문인데, 아..... 전혀 심오하지 않다, 수습 불가능.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씻어요. 더러워서 닮았다는 건 아니에요. 더러운 걸로 치자면 제가 가본 유럽 중에는 피렌체가 으뜸. 아 거긴 진짜 청소해주고 싶었어요.( '')

그나저나 오늘 알라딘 너무 많이 들어왔어요. 화장품, 포스트잇, 교재, 책 그런 것들 보다가 갑자기 초콜릿이랑 레깅스 스타킹, 라면 그런 걸로 옮겨가는 중. 정작 돈은 한정되어서 주문도 못했어요. 푸하하.

아이리시스 2011-11-04 00:23   좋아요 0 | URL
아참, 현맘님. 요즘 뉴스 보니까 미국도 이란에게 전쟁 걸려고 제동중인 것 같던데. 바로 [세계는 왜 싸우는가]에 나오는 시리아와 레바논의 헤즈볼라의 보복이 두려워 망설이고 있다 뭐 그런 내용. 전쟁은 안했으면 좋겠어요. 이란이 위험한 나라(석유와 핵 보유국)가 된 게 그들의 욕심 때문인지 미국,영국,중국 등의 서방 선진국 때문인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오바마는 부시와 다른 외교를 할 줄 알았는데 밖에서 보는 제 눈에는 그저 미국 대통령일 뿐이에요. 한 나라를 이끈다는 게 도덕,의지,열정만 가지고는 안되는 일. 뭐 남의 나라 걱정할 여유없고..................... 이 긴 댓글의 이유는 캘리포니아도 안되겠다............. 뭐 이런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입니다.ㅋㅋㅋ 라오스 어때요, 라오스. 몽골도 좋고. 저는 푸켓,보라카이,발리,하와이,팔라우 이런 데는 식상할 것 같아서 오래 전부터 혼자 정해놨어요. 푸하하하. 진짜 웃기죠? 웃기면 됐죠, 뭐.ㅋㅋㅋ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04 20:50   좋아요 0 | URL
우리 여기서도 수다를 했군요..ㅎㅎㅎ
오바마건, 부시건...미국에서 대통령이란 결국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할 수 밖에 없는 자리겠죠.
미국이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건 진짜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예요.

아이리시스 2011-11-04 23:47   좋아요 0 | URL
수다, 저만 한거죠.ㅋㅋㅋ 신혼여행의 로망이 곧이어 미국과 오바마에 대한 까임으로.. 저는 비판이란 걸 할 수 있을만큼 미국 잘 모르는데요. 미국 미안..( '') 그래도 보내준다면 당장 가겠어요. 현맘님은 타국에서 살기 힘들다 하시지만. 저는 가보고 결정하겠습니다, 푸하하.

동생이 갑자기 전화해서 밥 해놓으라고, 갑자기 쳐들어와서 밥 달라고 해서. 간만에 계란말이를 만드는데 이게 진짜 힘든 요리예요. 저는 식당도 못할 듯.ㅋㅋㅋ 마음이 텅빈 것 같아 쉴틈 없이 먹고 있는데 몸무게가 심히...............

yamoo 2011-11-04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이거, 파리시를 보기 위해서도 한번쯤은 봐주어야할 영화 같아욤. 배우들이 갠적 취향과 좀 멀어서 고민이 되긴 하지만 말입니다^^

아이리시스 2011-11-04 01:45   좋아요 0 | URL
야무님, 저 아직 안 자고 있어요.( '') 제가 야무님 서재가 익숙해가지고 인사도 없이 덜컥 댓글을 썼다고 다음날 생각했어요. 한 번은 남겼겠지 싶기도 했는데 아니어서 살짝 민망했어요^^;

배우하니까 얘긴데 저 남자 5세+훈이랑 닮았어요. 여자는 윤미래를 닮아서 계속 둘이 안고 있는 상상을ㅋㅋㅋ 몰입이 안되더라고요. 사진에서도 티나지 않아요? 진짜 똑같아요, 제 눈에는.

파리 시는 초반이 다고, 계속 시간여행을 하는데, 제가 페이퍼에 온갖 줄거리를 다 까발렸기 때문에.. 보실 분들에겐 죄송해요. 푸하하. 야무님 취향의 배우들은 어떤 분입니까?

페크pek0501 2011-11-04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정말 가치있는 걸 쓰고 싶다면 내 환상은 없애야죠." - 그런데 모든 건 환상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에요. 원하는 직업조차도 그 직업에 대한 환상이 없다면 직업에 대한 꿈도 없을 듯해요. 사랑이라는 것도 환상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

도대체 님은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열정적으로 글을 쓰시는지?... 여기서 그 열정을 얻어 갑니다. 저도 오늘 글을 써야겠어요. 날씨도 흐린데... ㅋㅋ

아이리시스 2011-11-04 17:05   좋아요 0 | URL
페크님이 원래 저 예뻐하시기 때문에 엄마 마음으로 봐주셔서 그래요. 별로 멋진 글도 아니고 쓸 때 막 쓰고 돌아서서 내심 후회하고 그런 스타일.

직업도 그래요. 저는 제 환상을 완벽하게 채울 수 있다고 믿어지는 일을 골랐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아닐 거란 걸 언제나 알고 있어요. 글도, 사랑도, 직업도 모두 어느 정도의 환상을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것. 맞는 말 같아요. 저마다 어느 정도의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도요. 이게 열정인지는 모르지만 페크님께 드릴게요. 행복과 함께.

여긴 날씨 좋아요, 아직까지는.^^
 
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섬은 한 장의 사진이었다. 환하게 웃는 흑백사진 속 배경, 거기에 섬이 있었다. 비록 모니터상이었지만 매료되는 건 순간이었다. 섬은 이 세상이면서 동시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공간. 그때부터 여자는 아무도 모르게 마음 속에 섬을 간직했다. 어디에 존재하는 줄도 모르면서. 섬이 왜 좋은지, 섬에 가두고 싶은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제 안에서 서서히 무너지던 것들이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면서. 그에게 도착을 전할 때, 당연한 그의 자연스런 인사에 상처받던 날처럼 하염없이 서러워졌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었다. 여자는 말했다. 아저씨는 나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원래 행복한 사람 같아요. 내가 해줄 게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행복해요.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대답을 듣는 대신 여자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메신저를 끄고나서 섬을 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그러니까 섬은, 하물며 '섬'일까. 여자는 종종 생각한다. 여기도 저기도 아닌, 어느 낯선 곳, 섬은 그 이상이하도 아니란 것을.  

뒤에서 남자가 갑자기 안았을 때 여자는 놀라지 않았다. 베르사유에 다녀온 날이었다. 갑자기 내린 비에 하루종일 젖었다 말랐다 했던 것 같다. 이후 여자는 그를 생각하면 섬이 떠올랐다. 섬 같은 사람. 화이트 초콜릿처럼 달콤한 목소리를 가진 남자. 첫인상. 그후로도 오랫동안 여자는 남자와의 첫만남 따위를 회상하지는 않았다. 회상될만큼의 이야기가 없었다. 멈춰진 시간, 정지된 화면, 희미한 이미지. 말이 통하지 않는 파리의 작은 지하철역. 드물게 해가 쨍쨍하던 겨울날 오전 아니 오후. 그보다 더 낡은 공중전화. 몇 개의 나라를 거치느라 늘어날 대로 늘어난 짐이 든 노랑 캐리어. 베네치아에서 산 가면. 로마의 과일, 음료, 호두. 기다리던 시간. 설렜던 감정. 퐁네프 다리. 콩코르드 광장,,

아저씨, 나 비행기 놓쳤어요. 여자는 당황한 목소리로 낮에 떠나온 남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자와 여자는 정확히 열 한살 차이였다. 열한살. 남자가 스무살 때 여자는 아홉 살이었고, 여자가 스물 아홉이면 남자는 마흔이 될 터였다. 그래도 띠동갑은 아니네. 이름모를 네덜란드산 맥주를 마시던 남자가 희미한 미소로 말했다. 하루종일 파리시내를 헤매느라 샤를 드 골 공항에서 길을 잃었던 여자에게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구원이었다. 늦었는데 돌아올 수 있겠어? 어서 와서 자. 밥은 먹었어? 비행기는 연착되고 있었지만 보딩자체가 늦었던 승객을 배려해주지는 않았다. 같은 처지의 일본여자가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갈 거야? 나는 돌아갈 곳이 있어. 여자는 말한다. 늦은밤, 남자는 라면을 끓였고, 탁자 위에 맥주를 한가득 꺼내놓았다. 대체 비행기를 왜 놓친 거야? 어디 갔었던 거야? 나도 모르겠어요. 지도가.. 지도가.. 여자는 울지는 않았다.  

남자의 목을 잡고 매달린 건 여자였다. 왜 울어. 남자가 말했다. 잘 있어요, 아저씨. 우리 부산 아가씨, 울지말고 뚝. 언제 서울에 올 거예요? 데려다줄게. 남자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올 때보다 가방이 더 무거워졌어. 한국에 도착하면 전화해. 였다.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전화. 놓고 돌아와야 옳았을 미련. 다시 섬. 그때 여자는 혼자 섬에 갔다. 시차와 국제전화, 쓸쓸함, 그런 것들을 버리려고 간 것은 아니었다. 기다려요? 남자는 아니, 하고 대답했다. 나직하고 쓸쓸한 목소리란 걸 여자는 알아챌 수 있었다. 언니는 왜 떠났어요? 춤을 추고 싶어했어. 연극배우였거든. 애기도 있잖아요. 한국에서 부모님이 키우고 있어. 아, 네.. 

기다려요?  

아니.   

그의 진심을 이제와 내가 알 수는 없다. 그건 그때의 욕망이고 열정이었을 뿐. 여전히, 과거형.

가장 못한 것이 오직 다르다는 이유로 널리 쓰일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것도 없고 가장 못한 것도 없다. 이때에 좋은 것이 있고 저때에 좋은 것이 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것이란 없음을 나도 잘 알지만 이 세상에 일단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이 세상 속에 일단 얼굴을 내밀기로 작정만 하면, 우리는 더할 수 없을 만큼 기묘한 악마의 유혹을 받게 된다. 목숨이 붙어 있는데 왜 안 살아? 왜 제일 좋은 걸 안 골라? 하고 귀에다 속살거리는 악마 말이다. 이렇게 되면 곧 뜀박질을 하고 여행을 떠나고.. 그러나 <이제 막> 욕망이 만족되려고 하는 순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인가. (p.32)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만큼 그가 나를 기억해주리란 보장이 없어 슬펐다. 지금은 아니지만.

말없이 어떤 풍경을 고즈넉이 바라보고만 있어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버리게 된다. 문득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들어앉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그것은 다만 저 절묘한 순간들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그렇게 하기로 굳게 마음 먹은 것은 저 투명한 하늘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p.33) 

 나는 그냥 나.

나는 저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또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가장한 모습의 나를 알아보지 못하시나요? 당신은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고양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p.43)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게 사랑은 아니었을 거란 걸 나도, 당신도, 그때도, 지금도, 잘 알고 있듯.

사실 언제나 똑같은 내용이긴 하지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려고 할 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 이외에 다른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은 마음속에서 모든 순간들과 모든 존재들을 하나로 합쳐주는 것입니다. (p.64)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공기를 그저 공유하고 있었을 뿐이지요.

그는 우리들에게 지극히 드물게 작용되는 범우주적인 사랑의 법칙에 복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존재를 사로잡아 그의 겉모습을 다듬고 형상을 굳혀놓았던 그 법칙 말이다. 전에 그는 태양이 뜨겁고 밤이 싸늘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이 세상 어디에서나 화해한다. 모든 것에서 그는 영접받고 축복받을 것이다. 저를 맞아들이는 장소의 형태와 결합하여 차츰차츰 그 형태와 분간할 수 없도록 하나가 되어버릴 것이다. 완강한 저항이 철저한 복종으로 변했다가 어떤 새로운 생존 속에서 다시 반항으로 소생할 것이니 이 소용돌이와 평화의 교차가 우주적인 삶을 구성한다. (pp.72-73)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의 양면을 모두 보고싶어하는 것이 인간.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 쪽만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p.90) 

 추억은 추억. 추억은 힘이 없어요. 추억은 한 순간의 강렬한 희열일 뿐이죠.

가장 달콤한 쾌락과 가장 생생한 기쁨을 맛보았던 시기라고 해서 가장 추억에 남거나 가장 감동적인 것은 아니다. 그 짧은 황홀과 정열의 순간들은 그것이 아무리 강렬한 것이라 할지라도-아니 바로 그 강렬함 때문에-인생 행로의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찍힌 점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순간들은 너무나 드물고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것이어서 어떤 상태를 이루지 못한다. 내 마음속에 그리움을 자아내는 행복은 덧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항구적인 어떤 상태이다. 그 상태는 그 자체로서는 강렬한 것이 전혀 없지만 시간이 갈수록 매력이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는 그 속에서 극도의 희열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그런 상태인 것이다. (p.101)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사랑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괴로워해서 무엇하겠는가? 잔혹하게 그리워하면 무엇하겠는가?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터이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말했듯이 이 짤막한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두자. (pp.175-176)

하지만, 여전히 여행을 할 겁니다. 추억이 밥먹여주지는 않으니까. 추억을 가둘 수는 없고, 추억 속에서 열망을 훔칠 수는 없으니까. 태양과 바다와 꽃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나에게는 섬이 될 것 같다. 몇 번의 악수, 몇 번의 포옹, 몇 번의 키스, 몇 번의 눈물, 몇 번의 그리움. 그런 것들이 모조리 몇 번의 '착각'일 뿐이었을까. 나는 아직도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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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10-16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궁금하게 만드는 리뷰에요.
아이리시스님 잘 지내셨죠?

아이리시스 2011-10-16 01:49   좋아요 0 | URL
꿈섬님, 저는 잘 지냈어요.
여전히 바쁘시고, 여전히 열심이셔서,
아까 가서 페이퍼도 보고 댓글도 남기고 왔어요.^^

2011-10-16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6 0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1-10-16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험 공부할 때 이 책 읽어봐야겠어요. 요즘 시험공부할 때 머리 식힐 겸 편안한 내용의 에세이집을
읽으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에세이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공부가 뒷전으로 밀릴까봐 걱정이네요 ^^;;

아이리시스 2011-10-17 17:58   좋아요 0 | URL
시험공부할 때 읽을만큼 편안한 내용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만 시루스님에게는 괜찮을지도 모르겠어요. 몇 번이고 곱씹어 읽어야 할 에세이인 것 같아요. 공부 뒷전으로 밀리면 안되죠! 안돼안돼~~

알로하 2011-10-17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다운 책이죠. 한번씩 답답할 때 꺼내서 아무데나 펼쳐본답니다. 제가 좋아하는 부분은 아무도 모르는 곳의 기차역에 내리는 상상을 하는 부분이예요.

아이리시스 2011-10-17 18: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무도 모르는 곳의 기차역에 내리는 상상은 보통때도 많이 하는데! 생각만으로도 좋아요. 요즘은 간이역이 정말로 많이 없어져서(거의 없어져서) 낭만이 사라졌지만, 서울-부산을 한 시간 반만에 잇는다는데,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이 나란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가 봐요. 너무 빠르고 정확한 것들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고, 저와 알로하님은 여전히 아날로그적 낭만을 그리워하니까요. 요즘 더 심해진 것 같아요.ㅜㅜ

2011-10-17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17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1-10-17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어짜피 혼자만의 섬으로 태어났는데,
굳히 섬까지 찾아갈 필요 있겠어요? 우리의 할 일은, 비슷한 동료 섬에 배타고 왔다갔다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아이리시스님 글이 왜 점점 몽환적으로 느껴지지요,,
치열한 내 삶과 엄청 대비되는 이 페이퍼. ^^

아이리시스 2011-10-18 00:12   좋아요 0 | URL
마고님 요즘 엄청 바빠요?ㅜㅜ 저는 마음이 바쁜데,,-_-^ 그럭저럭 살아갈만한 세상이거든요. 푸하하. 동료 섬에 배타고 왔다갔다 이거 좋다,,, 그런데 섬에 가끔씩 가야 해요. 아무도 없으면 실제로 엄청 무서울테지만,, 섬에 가서 버려야 한다니까!

추억은 몽땅 몽환적인 거예요. 추억은 오로지 꿈속으로 밀어넣고 지금을 살아야 해요. 그게 가끔 슬퍼요. 밤에 배고프면 어떻게 해야 해요?ㅠㅠ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p.532) 


아프간 태생이지만 전쟁즈음 아프간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 의사로 살아가던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출간 당시 중동,아랍문화권에 무지했던 우리에게 핵폭탄급 서사를 들려주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전쟁. 정서는 달라도 우리도 아는 혼란이다. 옆나라 식민지도 되어봤고, 같은 민족에게 총칼을 겨누어도 봤으며, 여전히 지구 유일 분단국가에 산다. 중동의 슬픔, 중동 여자의 삶과는 이데올로기 자체가 다르지만 우리도 알 만큼은 안다. 전쟁의 서러움과 더러움을 굳이 학습하지 않아도 생생할 만큼 우린 전쟁과 가깝다. 그리고 여기, 전쟁중인 나라를 남자로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여자로 살아가는 일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두 편의 작품이 있다.

소설의 중심에 목표없이 명분만 있는 '전쟁'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전쟁 때문에 황폐하게 메말라가는 두 여자의 삶을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수작이지만 반쪽짜리 해피엔딩으로 도저히 희망을 바라볼 수 없을만큼 암울하다. 마리암과 라일라. 누가 그들에게 살인이라는 죄를 물을 것인가. 바로 얼마 전, 전쟁 후 뒤틀린 여자의 삶을 주제로 하는 또 한 편의 작품을 보았다. 영화 <그을린 사랑>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먹먹함에 전율이 일어난다. 아픔과 절망은 호락하지 않았다. 우린 괜찮은 나라에 살고 있구나. 오랜만의 상대평가.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을린 사랑>이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간 내전이 배경이다. 그리고 원래 나는 <그을린 사랑>이 아니라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 관한 페이퍼를 쓰려고 했다. 말이 내전이지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선진국들의 중동 식민정책이나 마찬가지라는 건 오늘날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 중동의 공산주의가 북한의 그것과는 다름이 명백한데도 오랜시간 지구촌은 중동을 악의 세력 즉 거대한 테러리스트 조직으로 굳건하게 이미지화했다. 교묘히 기획된 서양의 식민정책 아래, 나약한 중동은 언제나 서양세력에 맞서 싸우는 권력(이슬람 추종자)과 서양에 세력을 기탁하는 권력(기독교 추종자)이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 종교다툼 정도로 인식시켜온 것이 사실이다.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  

 

 

 

 

 

 

 

 


현재까지도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전쟁(이슬람교와 기독교의 대립)은 사실상 서양이 중동국가를 잠식하는 과정일 뿐이다. 근 60년 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대립은 물론이고, 레바논, 파키스탄, 아프간, 시리아, 이란, 이라크 등 많은 중동국가에서 일어나는 전투와 학살이 사실상 같은 맥락에서 처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미국은 일찌감치 이스라엘의 손을 들면서 상상불가능한 엄청난 힘을 보태주었다. 그 와중에 한국처럼 외교적으로 단단하지 못한 나라는 늘 이리저리 휘둘려 왔다. 미국의 명분은 유태인에게 새 보금자리를 찾아준 것이지만, 사실상 멀쩡히 자기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의 민족성과 국가성을 완전히 몰살하고 가자지구로 몰아내다시피 한 행위라서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정당성을 찾을 수 없다. 논란이 빈번한 9.11테러, 오사마 빈 라덴 사살, 탈레반 척결, 수많은 중동국가의 공산주의화 정책, 끊이지 않는 내란과 전쟁, 혁명, 이로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수의 국제난민들. 뫼비우스의 띠처럼 지구촌으로 퍼진 중동분쟁은 단지 중동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지구촌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학살이다. 더 자세히는 서방국가가 중동국가에 행하는, 종교전쟁의 탈을 쓴 학살.   

 

그렇다면 이슬람은 중동세력, 기독교는 서양 즉 미국세력을 의미하는 다툼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내전이라 이름 붙여도 사실상 내전이 아닌 셈. 새 식민지를 건설하는 거대한 물밑작전이자 중동을 삼키겠다는 선진국의 야욕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이란, 이라크처럼 석유보유국에는 그나마 관심을 보여도, 이미 망가진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에 인도주의를 발휘하는 국가들이 전 세계 어느 하나 없는 걸 봐도 중동을 잠식한 전쟁은 이미 심각한 사태를 넘어섰다. 실제로도 레바논에는 자원이 거의 없는 걸로 알려졌고, 팔레스타인 땅에는 이스라엘을 세우면 그만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슬람권의 반발이 심해져 이슬람에 이슬람이 더해지고, 기독에 기독이 더해져 각자의 세력만 커지고 있다. 이슬람 젊은층은 전 세계 각지로 퍼져 유럽계 이슬람은 날이 갈수록 늘고 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이 이슬람화 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전쟁은 이미 한 국가와 국가의 싸움이 아니라 대륙과 대륙의 싸움이자 지구촌의 세력다툼이다. 석유. 이 모든 상황은 석유를 대체하는 획기적 자원이 지구촌 각국에서 쏟아져 나오기만 한다면 과연 종식될 것인가.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속에는 우리의 조선시대를 능가하는 여성탄압이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중동국이 그렇듯,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는 이해하기 힘든데, 불합리와 부조리가 대부분이라(물론 문화자체를 두고 타인의 눈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는 일이고, 그런 행동 또한 지양해야 하지만) 지금 현재도 국제기구와 NGO 등의 부단한 인식노력이 있는 걸로 안다. 여성에 대한 차별, 교육, 할례 등등. 오빠가 간통하면 집안 여동생이 죽어야 하는 그런 비정상적 법들.(법도 아니지 관습)  

   
  "저는 선생님을 존경하지만 아이가 어리석은 생각을 하도록 하시면 안 돼요. 정말로 저 아이를 아끼신다면, 어미와 함께 집에 있는 게 팔자라는 걸 깨닫게 하셔야 해요. 바깥에는 저 아이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배척당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요. 선생님, 저는 알아요. 안다고요." (p.31)   
   

딸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하는데 엄마가 하는 말이다.  

 

나나는 하라미(사생아)로 마리암을 낳았다. 잘릴은 마리암을 예뻐하여 시간날 때마다 선물을 찾아와 놀아주고 안아주지만, 그는 결국 다른 처자식들이 있는 남자다. 나나는 철저히 숨겨진 여자로 살면서, 그의 사랑은커녕 딸의 탄생 또한 영광스럽지 못하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 오로지 딸 마리암만이 나나에게는 인생이고, 세상이고, 위로이자 안락이다. 하지만 마리암은 공부를 하고 싶고 아버지에게로 가고 싶다. 마침내 그녀가 아버지에게 가기 위해 엄마를 버렸을 때, 엄마는 스스로의 삶을 버림으로서 마리암에게 복수한다. 딸을 볼모로 자신의 처지를 이겨내야 했던 나나의 삶이 서글프지만, 딸의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엄마가 아니라 딸의 미래를 주저앉히는 엄마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마리암은 결국 잘릴의 집으로 가지만 아버지의 원래 가족들 때문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다. 서른살이나 많은 남자 라시드에게 던져지는 마리암의 인생은 예나 지금이나 호락하지 않다. 그녀는 고작 열다섯 살이었다.  

 

많은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고, 공산정권과 그것을 무너뜨리기 위한 또다른 유해 정권이 내전을 벌이는 통에 죄 없는 민간인들이 다치고 죽고 희생되는 상황이지만, 그래서 이 곳에는 의식이 깨어있는 현대적인 남성과 여전히 구시대적인 라시드 같은 남성이 존재했다. 마리암의 비극은 라시드가 구시대적인 남자라는 데에 있었다. 한켠에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여자들의 나체가 실린 잡지를 넣어두면서 한켠으로는 여자는 남자의 소유일 뿐이며, 아내의 얼굴은 남편만 볼 수 있고, 밖에 나갈 때에는 아무도 못 보게 머리에 터번을 두르고 남편과 함께라야 한다는 이슬람 율법을 옳다고 생각하는 남자. 그가 라시드였다. 라시드는 원래 무뚝뚝한 남자였지만, 그가 아들이라 굳게 믿었던 아이가 유산되고나자, 확 달라진다. 폭력적이고 제멋대로에 전형적인 이슬람 문화를 숭배하는 남자로. 남자가 최고, 여자는 남자의 '것'에 불과하다 믿는 바로 그 태도를 본격적으로 나타내게 된다.

같은 동네에는 라시드와는 다르게 자유와 평등을 고수하는 부부가 산다. 아들 둘을 전쟁통에 내보냈다 잃어버리고 딸 라일라만 남았다. 엄마는 아들들의 죽음에 충격받은 나머지, 무기력하게 정권이 바뀌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살아간다. 아버지는 라일라의 배움과 사랑, 딸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적극 지지해준다. 라일라는 얼굴도 모르는 오빠들을 잃었지만 친구이자 사랑하는 타리크와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낸다. 전쟁이 이 모든 것들을 밀어내기 전까지는 라일라와 마리암은 전혀 다른 곳에 사는 여자들처럼 상반된 배경의 삶을 살아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라일라는 진정한 사랑을 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는 법을 아는 것, 그리고 꿈꾸는 것. 두 여자의 차이였다. 그건 여자의 인생에서 퍽 중요하고, 어쩌면 그녀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일지 몰랐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내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갖는 것. 라일라에게는 주어졌지만 마리암에게는 세상 떠나는 날까지 주어지지 못했던 일.   

 

   
  살인이나 약탈과 같은 추한 것들의 와중에서, 나무 밑에 앉아 타리크와 입을 맞추는 것은 무해한 일이었다. 사소한 일이었다.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방종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입을 맞추게 내버려뒀다. 그리고 그가 몸을 떼자, 이번에는 자신이 몸을 기울여 그에게 입을 맞췄다. 심장이 뛰고, 목이 떨리고, 얼굴이 얼얼하고, 뱃속 깊은 곳에 불이 난 것 같았다. (p.239)   
   

어렵지 않게 타리크와의 첫 사랑을 나눈 그녀가 가두고 싶어했던 시간은 이후로 오랫동안 가두어지지 못했다. 이내 심각한 내전이 일어났고, 그들이 있는 동네에서 벗어나야 했다. 먼저 타리크의 가족이 떠났고, 그녀의 가족이 떠나려 했을 때, 로켓탄 폭격이 바로 라일라의 집에 떨어져 그녀는 부모를 잃었다. 이제 그녀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이제야 겨우 제몸을 추스르려 했던 공허한 눈의 엄마도, 자신이 하는 일마다 응원과 사랑을 보내주었던 다정한 아빠도. 그녀를 구한 건 하필 마리암의 남편 라시드였다. 라일라가 라시드의 두 번째 아내가 된 건 뱃속의 아이를 지켜야 했던 엄마로서의 비장함이었다. 그즈음 한 사내로부터 타리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들의 인생은 라시드에게로 귀결되어 있었다. 누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일라는 예쁜 딸 아지자를 낳았고, 그녀로 인해 처음에는 데면데면했던 두 여자 사이에 우정 비스무리한 것이 삭트기 시작했다. 여자로서 여자를 이해하는 삶. 동지적 삶. 같은 시대,국면,내전을 이겨내는 삶. 같은 남자의 아내로 사는 삶. 같은 것이었다. 마리암은 여자로서의 인생과 자신으로서의 인생을 모두 내려놓는 삶을 사는 중이었다. 라일라는 그런 마리암이 두려웠다. 훗날 제 인생도 그렇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두 여자는 위험한 탈출을 시도한다. 잡혀온다. 라시드는 돌처럼 딱딱한 공산주의 수장보다 더 무섭고 잔인하게 그녀들을 가두고 때렸다. 탈출실패. 그녀들은 받아들인다. 라시드가 가게를 잃고 돈줄이 끊겨서 밥을 못 먹게 되어 아지자를 고아원에 보냈을 때, 운명적이게도 타리크를 만난다. 그녀는 다시 꿈을 꾼다. 여자로서의 마지막 꿈. 라시드의 아들을 사랑하지만 아지자에게 아빠를 찾아주고자 한다. 그리고 다시 탈출시도. 마리암이 라시드의 등에 삽을 꽂아넣을 때까지 마리암과 라일라는 위태하다. 마침내, 자유로워진다.   

 

   
 

"이 지식과 이 기도가 내가 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야. 그것은 내가 갖고 있는 유일한 재산이야." (p.402) 

 
   

전쟁은 계속되고, 남편을 죽인 두 아내의 최후는 뻔하다. 마리암은 급히 라일라와 아이들을 타리크와 같이 떠나도록 한다. 모든 죄는 자신에게 있음을 상기시키며, 마지막까지 라일라의 행복을 빌어준다. 라일라는 행복했을까. 물론 새 가정을 꾸려 안전한 곳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간혹, 혹은 자주, 그녀의 발목을 잡는 어두운 삶의 그림자.  

 

   
 

하지만 라일라에게는 타리크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러한 불안감은 이겨나갈 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이 사랑을 할 때, 라일라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이 같이 사는 삶이 일시적인 축복이고 곧 그것이 다시 산산이 부서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누그러진다.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p.522) 

 
   

그녀는 타리크를 설득해 전쟁과 내전이 막바지로 치닫는 아프간으로 돌아가려 한다. 다른 곳에서 몸이 '안전'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을 안정시킬 수가 없어서이다. 그녀는 아프간이 고향이다. 폭탄이 떨어지고, 로켓탄이 온 마을을 초토화시켜도, 여기가 고향이다. 마음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곳이다. 마리암의 희생은 라일라의 깊숙한 곳에서 아픈 용기로 승화된다. 라일라를 결국 제 고향으로 오고 말게 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소설이 끝난 후 그에 주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이다. 라든가.  

그들은 카불로 돌아온다. 라일라는 마리암의 고향집을 찾아가 꽃한 송이 놓고 그녀의 영원한 행복을 빈다. 그녀의 희생으로 그녀가 살아있다.  

 

   
  그들이 카불에 처음 왔을 때, 라일라는 탈레반이 마리암을 어디에 묻었는지 몰라 괴로워했다. 그녀는 마리암의 무덤에 찾아가 머물다가 한두 송이의 꽃을 놓고 왔으면 싶었다. 그러나 라일라는 이제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안다. 마리암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그녀는 이곳에 있다. 그들이 새로 칠한 벽, 그들이 심은 나무, 아이들을 따뜻하게 해주는 담요, 그들의 베개와 책과 연필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 있다. 그녀는 아지자가 암송한 시편, 아지자가 서쪽을 향하여 절하면서 중얼거리는 기도 속에 있다. 하지만 마리암은 대부분, 라일라의 마음속에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천 개의 태양의 눈부신 광채로 빛나고 있다. (p.562)   
   

아픔이 대대로 이어지지 않기를 빈다. 잘마이는 결국 타리크에게 익숙해지겠지만, 그가 커서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또다시 비슷한 비극들이 일어나 그들이 절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누군가의 피와 눈물로 얻은 아름다운 희망을 밟고 살아가는 일. 개인의 선택은 아니다. 바꿀 수 없는, 바뀌지 않을 듯한 수많은 불합리한 체제 속에서 제도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꿔온 건 결국 투쟁과 희망이었다. 마리암은 갔지만 라일라는 살아갈 것이다. 이 땅에서, 죽을 때까지. 아이들을 키우고,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사랑이 희생하게 하고, 사랑이 살아가게 한다. 사랑이 찬란한 태양이다. 사랑이 천 개가 될 때 찬란한 태양이 되어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것이다.  

여전히 전쟁중인 중동, 아프간 외 수많은 국가들. 무엇을 위한 투쟁이며, 또 전쟁인가. 그들이 자문해야 할 문제, 우리에게도 질문할 가치가 있다. 무엇을 얻기 위해 누구를 죽이는가. 결국 모두 행복해지는 길인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폐허의 잿더미, 그 속에 아직도 우리가 있다. 누군가의 희망을 절망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티끌처럼 작은 나조차도 반성될 만큼 소설이 처량하고도 아름답다. 선진국들이 품은 탐욕이 계속되는 한, 전쟁도 계속되겠지. 이슬람 문화도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여성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될 날은 언제일지. 지구촌만이라도 다같이 행복해지면 안되나. 곧 화성에서 외계인이 제 땅 내놓으라며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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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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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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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 00: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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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4 0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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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 오브 라이프 - The Tree Of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태초 내가 존재한 것은 아니다. 아빠와 엄마는 결혼 8개월 만에 날 낳았지만 난 정상적인 혼인관계에서 잉태된 허니문 베이비였다. 10월의 어느날이 예정일이었으나 그보다 앞서 나온 건 누가 말한 것처럼 엄마 몸이 약해서거나, 초산이어서, 또는 내가 빨리 나오고 싶어해서는 아니었다. 결단코 나는 이 세상에 더 빨리 나오고 싶었던 적이 없다. 내가 나올 시점을 정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 태어나기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주어지는 삶은 고통스럽고, 살아가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드므로. 나는 아마도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생명의 나무, 번역 제목으로 <트리 오브 라이프>는 바로 그 지점, 나도 없고 당신도 없는 절대적 시점, 나는 없고 내가 잉태되지도 않은 바로 그 생명의 태초부터 시작한다. 시작줄기를 알 수 없는 폭포수와 원인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은 곳에서 서서히 이루어져온 화산폭발로 우주의 기원, 인간의 태초를 보여준다. 애초에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보여주는 영화다. 색감의 미학과 친절하지 않은 내러티브, 간혹 들어차는 생략과 여백의 아름다움까지 철저하게 계산된 영화다.  

느끼지 못할 뿐이지 영화는 분명히 드러냈다. 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알고 걸어가는, 본인이 어느 지점에 얹힐지를 아는 영화다. 인간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왜 왔으며,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언제부터 해왔는가. 시점에 관한 영화지만, 우주와 지구, 미래와 현재, 생과 사, 현실과 초월 등 이 모든 것들을 짚어내는 영화이면서도 동시에 어느 것도 불명확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시작부터 기이하고 갸우뚱한 초현실학적 화면으로 장면장면을 지루하게 이어져가던 영화가 어느새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의 존재이유를 묻는다.

성인 잭(숀펜)은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후 기억나는 어린시절과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을 동시에 떠올려 기억의 맨 처음으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다. 보는 우리도 동시에 올라탄다. 거기에 의식 강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 오브라이언(브래드 피트)과 상냥하고 다정한 어머니가 있다. 보통의 가정, 보통의 부모. 보통의 시대. 잭은 본래 자신이 있던 곳에서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그들의 첫 아이로 잉태된다. 문을 열어서, 넘지 못할 산을 오르고,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서, 우주의 무한한 공간을 헤쳐 하필이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될 사람에게로 온다. 그들의 자식이 된다. 이후 평범한 부모는 행복과 사랑으로 잭을 낳아 기른다. 노래를 불러주고, 안아주고, 키스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귀에 속삭인다. 사랑스러운 아이야, 무럭무럭 자라라. 마치 나무가 커가는 것처럼 그도 자라난다. 쌔근쌔근, 아장아장, 뚜벅뚜벅. 동생이 생기고, 동생에게 빼앗긴 사랑을 샘내고, 동생을 주도하여 온 동네를 뛰어다닌다. 

아버지는 엄격하다. 그는 그가 아는 모든 것에 한해, 그가 보고 듣고 느낀 것 모두를 아들들에게 가르친다. 식사예절, 싸우는 방법, 상대를 제압하는 능력, 공놀이, 잡초뽑기, 나무 기르기, 말대꾸하지 않는 법. 아버지는 자신의 시행착오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싫어 선택한 방법이지만 잭에게 이 모든 것들은 살아가는 데에 자신감을 잃게 하고, 반항기만 길러주는, 욕망을 누르기만 해야 하는 엄청난 감옥이 된다. 어느새 어린 잭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익숙하고 편안하지 않은, 능가해야 하고 짓밟고 싶은 반항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어느날 그가 직장을 잃고 그 커다란 날개를 꺾어버리기 전까지.  

영화는 줄곧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들이 커가고 아버지가 늙어가는 동안 갓 심은 작은 나무도 함께 커간다. 뿌리를 내리고 커다란 심지를 박고 무성한 잎을 뻗어내며 치렁치렁 그늘을 내어줄 때까지 나무는 자란다. 생명도 자란다. 아들은 자라고 아버지는 늙어간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잭은 아들의 역할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내내 불안정하지만 한편으로 누구보다 더 순수하고 정 많은 아이로 자란다. 대부분의 이 세상 아들들이 그런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가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으나 자신이 아버지가 되었을 때 그는 이해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단 한 명의 아들이 된다. 아버지가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우주와 생명의 빈 공간에 계신 것은 역시 하느님, 신이다. 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아버지와 자식을 내려주며, 생명에 물과 사랑을 주어, 무럭무럭 크게 한다. 생명의 탄생은 나무의 생명과 같은 것.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주제는 '생명'이다. 아무도 의미없이, 이유없이, 노력없이, 이 세상에 온 사람은 없다. 모두 의미있고, 이유있고, 노력에 의하여 이 세상에 오는 것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아니,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잉태되기 전부터도 우리는 모두 예정되어 있던 생명이다.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비어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를 우리의 상상과 생명의 존귀함으로 직접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난해하고 모호하고 신비로울 수 있다. 신비로움이란 감정은 애초 숭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다. 생명의 귀함을 각자 한 번씩 생각해야 하지만 영화가 주는 메시지보다 더 좋은 건 역시 작품의 아름다움과 낯섬을 경험하게 하는, 드라마를 SF로 승화시킨 감독이 빚어낸 영상, 즉 촬영기법에 있다.  

p.s.몇 년 안 본 사이 브래드 피트 참 많이 아저씨가 됐구나. 여전히 멋있지만, 그 멋짐도 숀펜의 카리스마에 눌리고, 아역배우의 뛰어난 기와 눈빛에 눌려서, 말이 권위적 아버지지 전혀 권위적이지 않게 느껴졌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대사없는 초반 30분과 후반 10분인데,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영화 평점을 바닥까지 내리고픈 관객들이 많은 걸로 볼 때, 이 영화는 상업영화 범주에는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고, 2011년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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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10-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내용은 완전 그레이트 대박 마음에 드는데요. 아이리시스님의 나레이션이 깔려 있는 듯한 영화 소개라 잘 읽고 봤네요. ^^ 이런 내용 전 참 좋아해요. 삶과 죽음에 대해 말이죠.
인간이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아 참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리고 알기도 힘들구요. 매일 현실의 눈 앞만 보이고 그것만 쫓아서 살다보면 언젠가 죽을 문턱에 와 있다는 사실이 참 허탈하기는 해요. 하지만 어떤 생사관을 지닌다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면 과연 끝인가? 그럼 나는 왜 태어났는가?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왜 시작을 했는가 마치 뫼비우스의 끈처럼 생각은 그 끝을 모릅니다. 사실 이것이 제 인생의 연구 주제이기는 하지만 매일 쳐 들어오는 주민들을 상대하다 보면 하루를 바라보고 사는 하루살이 같다는 느낌을 많이 봤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어느 시점에서 아이리시스님의 서재를 알고 아이리시스님과 절친이 되는 이 만남과 인연...아~ 뭔가 신기하지 않습니까~~

아이리시스 2011-10-12 22:06   좋아요 0 | URL
루쉰님, 매일 쳐들어오는 주민상대라니, 이거 뭔가 되게 영화틱하잖아요.ㅜㅜ 저는 칸영화제 취향인가 봐요. 칸영화제 출품작들은 다 좋더라고요.ㅋㅋㅋ 제대로 개봉 안하는게 문제지만. 우린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태어났는데, 그 중에 우리가 만난 것, 그것도 서재에서 만난 건 더욱 더 신기한 인연이죠! 절친이 된 것도. 매일 전장에 나가는 루쉰님, 화이팅. 그래도 저는 야근하며 떡볶이나 피자 먹고, 커피나 주스도 마시는 생활, 그리워요. 진짜 시키면 무지 싫을 것 같지만요.(이런 이중성, ㅠㅠ)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 더 연구해요! 그리고 논문써요, 우리.^____________^

프레이야 2011-10-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아주 기대중인데 아직 못 보고 있어요.ㅠ
브래드는 숀에게 밀렸군요.^^
전 '나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우주적인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님의 리뷰로 미리 보는 영화, 좋으네요.
아주 색다른 화법일 것 같아요.

아이리시스 2011-10-13 12:44   좋아요 0 | URL
'나무'가 이렇게 생명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요. 그래서 간혹 나무무덤을 만들어주나 봐요. 정말 나무가 쑥쑥 커가는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어요. 모든 것을 흡수하고 빨아들이니까요. 범우주적인 나무. 프레이야님 서재에서 제가 훨씬 더 많이 좋은 영화들 보죠. 좋았어요, 늘. 색다른 화법, 나중에 꼭 보세요.^^

근데 [레스트리스]는 개봉하는데 [멜랑꼴리아]는 개봉 안하나 봐요. 저는 트리에와 커스틴 던스트가 더 기대되는데..^^

stella.K 2011-10-13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제법 거창합니다.
혹시 부산영화제 상영작인가요?
글치 않아도 빵 피트 요즘 뭐하나 했더니 여기 나오는군요.ㅋ
숀펜은 턱이 너무 깍아지른듯해서 부담스럽긴 하지만
연기는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빵 피트는 숀펜과 같이 출연만 안했어도 나름 빛났을지도 모르는데
선택을 잘못한 걸까요?ㅋ
대사 없는 초반 30분, 후반 10분이라...
굉장히 특이하면서도 견딜만한가 의문이네요.
이런 진지한 영화 나름 관심은 가는데,
실제로 보면 어떨지 살짝...?!^^

아이리시스 2011-10-13 12:39   좋아요 0 | URL
스물두살 때 <21그램>을 보러갔었는데 그때 숀펜을 알아서, 그런데 남은 안늙고 나만 나이 먹어요, 흑흑. 하하, 빵 피트. 제가 오랜만에 영화봐서 그런 줄 알았는데, 피트 정말 오랜만에 나온 건가요?ㅋ
근데 이 영화, 딱 영화제 영화예요. 비중으로 볼 때 피트가 주연이면 숀펜은 조연인데, 영화에서 둘이 만나지도 않고 만날 일도 없고, 맞대결하지 않아요. 그래도 내용 때문인지, 존재감 때문인지, 피트가 밀리는 느낌이예요.

이거 부산영화제 상영작 맞는데, 2주후 27일에 개봉해요.^^

페크pek0501 2011-10-1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어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를 우리의 상상과 생명의 존귀함으로 직접 채워야 한다. 그래서 난해하고 모호하고 신비로울 수 있다. 신비로움이란 감정은 애초 숭고함과 난해함 사이에 있다" - 이 표현, 좋고(좋코)~~~

영화 리뷰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저는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리뷰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잘 보고 갑니다. ^^

아이리시스 2011-10-15 01:40   좋아요 0 | URL
책은 수준인데, 영화는 그야말로 취향 같아요. 대사가 없어도 영상으로만 전해지는 게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그래서 함부로 추천은 못하겠어요. 그건 제 성격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본 걸 누군가에게 보라고 하고 막 그것에 대해 얘기나누는 취미는 제게 없어요.( '') 저는 항상 제가 모르는 글을 읽고, 모르는 책의 리뷰를 읽고, 모르는 책이나 영화에 대해 얘기해주고, 제가 안읽은 책이나 모르는 분야, 안본 영화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해요. 오스트리아 빈의 빨래방에서 빨래가 돌아가던 한 시간 동안, 제가 유럽가기 직전에 봤던 빨래방을 배경으로 한 일본영화를 얘기하니까 친구가 유심히 들어주는 것 같은 것. 저는 그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아요. 그래서 이야기할 거리가 생겨요. 공감을 요구하거나 내가 좋은 걸 강요하지 않게 돼요.

제가 보는 리뷰는 대부분 제가 읽지 않는 분야의 리뷰예요. 그래서 저는 리뷰 보는 것으로 만족하거든요, 언제나. 내가 읽어도 처음 쓴 다른 사람보다 잘쓸 자신 없어서.^^

주말 잘 보내세요, 페크님. 이 얘기하려고 너무 말을 길게..^^
 
[천 명의 백인신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 명의 백인 신부
짐 퍼커스 지음, 고정아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그 사람들도 아무 잘못 없었어. 작년에 헨리 대위와 버펄로 사냥꾼들은 새파 강가의 남부 샤이엔 족을 급습해서 천막촌을 태우고 그 주민을 남김없이 죽였지. 갓난아기를 갓 불에 던지고. 군은 원하는 짓은 어떤 짓이나 다 해. 신병들을 갓 뽑아다가 겨울에 알지 못하는 적을 상대로 싸우면서 고초를 겪게 해봐. 겁에 질린 자들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어. 특히 명령이 떨어지면." 

"인디언들이 죽이는 사람도 죄 없는 사람들이야. 결론은 늘 그렇지만 이 나라에는 인디언과 백인이 함께 살 수 없다는 거야. 한 가지 확실한 건 백인들은 물러가지 않은 거라는 거.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인디언들은 이 싸움을 이길 수 없다는 거지."
(pp.445-446)

 
   

 

 

비로소 빠져나오자, 내가 딪고 서 있는 땅이 한없이 초라하게만 보인다. 비정성시(非情城市). 여기는 오색찬란한 슬픔이 깃든 비정하지만 성스러운 대한민국이고, 다녀온 곳은 1800년대 후반의 인디언 본거지다. 인간은 본디 질기디 질겨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땅에도 기어이 뿌리 내리고 만다 했었나. 이미 결론 내어진 싸움을 두고 오래 애를 태웠더니 먹먹해져 가슴을 쓸어내린다.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때 언제였는지, 어느새 휑하다.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차고 나간다. 좋아하지 않는 서부 영화 한 편이 간절해진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세대가 교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온한 대평원의 쨍쨍한 태양 아래 보송보송한 발바닥으로 하염없이 치달린 것마냥 피곤하다. 모두 처연한 꿈결처럼 아련하다. 가만히 인물을 하나씩 입으로 불러내본다. 아, 이런 삶도 있었지. 표면적으로는 아메리칸 인디언 멸망사, 속은 한때 거대했던 미국 역사를 아우르는 들장미 같고 들풀 같은 백인 여자들과 강인하고 올곧던 샤이엔 족의 찬란한 일대기. 오랫동안 영광스럽게도 읽었다. 참 먼 길을 걸어왔다. 저절로 고개 숙여질 만큼 앙상하고도 힘찬 길을. 그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보름달 아래 미친 듯이 휘몰아친 우리 모습은 얼마나 요란했을까. 왈츠와 지그와 폴카, 그리고 예쁜 프랑스 처녀 마리 블랑슈의 캉캉까지, 어떤 춤으로 시작했건 상관없었어. 모든 동작이 점점 빨라져서 마침내 색깔과 동작과 소리가 하나로 뒤엉켜 버렸으니까. 사람들은 번식기 새들 같았어. 깃털을 일으키고, 수컷은 가슴을 부풀리고, 암컷은 뒤집힌 엉덩이를 공중으로 쳐드는. 우리는 앞뒤로 왔다갔다 하고 또 빙글빙글 돌면서 춤을 추었어. 음악 속에는 뇌조의 북 치는 듯한 울음이 들리고 지구의 규칙적인 박동이 울렸으며, 노래 속에는 천둥, 바람, 비의 소리가 들렸지. 이건 대지의 춤이었어. 하늘의 신들은 자기 창조물들을 보며 아주 즐거웠을 거야. (p.198)

 
   

 

 

샤이엔의 '온화한 주술' 족장 리틀 울프는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세상을 뒤흔들 만한 제안을 내놓는다. 천 명의 백인 신부를 선물로 주면 말 천 마리를 주겠다는 것. 철저한 모계사회이던 샤이엔 족은 백인 사회와의 결합을 위해 본인에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한 마디로 정략결혼. 당황하던 미 행정부의 어이없음도 잠시, 놀랍게도 제안은 받아들여진다. 행정부는 이름하여 '인디언 신부 계획'의 물밑 작전을 시작하며 자원자가 부족할 경우 감옥, 감화원, 채무 감옥, 정신병원의 여자들에게 완전한 사면과 무조건 석방을 약속하며 채우기로 한다. 속셈은 단 하나. 여자들이 인디언족의 삶을 완전히 교화시켜 놓는 것. 리틀 울프의 제안이 있은 지 불과 6개월, 네브래스카 준주에 위치한 캠프 로빈슨으로 떠나는 기차에는 시카고 북쪽의 한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메이 도드가 친구 마사와 함께 타고 있다.    

 

이야기는 메이의 일기로 진행된다. 인디언들을 만나러 가는 길, 만난 이후, 샤이엔의 여자로 사는 삶, 그 이후. 비교적 담담하고 못견디게 자세하여 종종 목이 메일 지경이다. 대자연을 이토록 생생하게 복원한 것도, 저마다의 캐릭터와 얽힌 사연을 이다지도 매끄럽게 연결시킬 줄 아는 작가는 이미 넘버 원. 제안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제안을 수용한 것은 허구이기에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메이는 시카고 대부호의 딸이지만 별볼 일 없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로 '도덕성 상실'이란 진단을 받고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용된 후 지옥같은 삶을 살았다. 다시 아이들을 만나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란 인디언 신부 계획 뿐이라는 생각으로 지원한다.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해야 할 말을 참지 않으며, 때에 따라 지혜롭고 영리한 백인 여자 메이는 이 거대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파견된 부대의 존 버커 대위와 사랑에 빠진다. 인디언에게로 인도되는 바로 그 짧은 순간에도 사랑은 싹텄고, 첫날밤은 치뤄졌고, 일생일대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지만 결코 약혼녀 있는 독실한 가톨릭교 대위를 곤란하게는 하지 않았다. 메이는 존을 사랑하는 만큼 자유를 사랑했고 그래서 그의 곁을 떠나 백인 신부의 길을 계속 간다. 마침내 샤이엔 족과 조우했을 때에 메이는 첫 눈에 리틀 울프의 세 번째 부인으로 낙점된다. 프라이버시라고는 전혀 없는 부족 생활, 가족 공간 틈에서 탄탄한 근육에 말수가 적은 진중한 남자 리틀 울프와의 접촉을 간절히 기다리던 차, 백인 여자 메이에게 꿈같고 보석같은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서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어. 아니면 꿈같은 일이 일어났어. 꿈이었을 거야. 남편이 나와 함께 천막에 있었으니까. 그는 아직도 소리 없이 춤을 추고 있었어. 모카신을 신은 발이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 했고, 모닥불을 돌며 조롱박 딸랑이를 흔들었는데 그것도 소리가 나지 않았어. 남편은 그렇게 혼령처럼 춤을 추며 내가 누워 자는 곳을 빙글빙글 돌았어. 나는 점점 몸이 달아올랐어. 그의 춤을 보니 배 속이 짜릿해지고 가랑이 사이에서 욕망이 간지럽게 끓어올랐어. 꿈에서 나는 앞가리개 천 밑에서 그의 남성이 뱀처럼 부풀어 오르는 걸 보았어. 그는 춤을 추었고 담요에 배를 대고 엎드린 나는 그 자리에서 폭발해 버릴 것처럼 얕은 숨을 쉬었어. 내가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그는 비켜나서 내 뒤로 오더니 이제 벌거벗은 내 엉덩이에 깃털을 댄 듯 나를 간지럽혀서 나는 더욱더 흥분했어. 그런 뒤 나는 엎드린 채 엉덩이를 들어올려 나를 바쳤고, 간질거림이 거세어지자 다시 담요에 납작 엎드렸어. 몸속을 채우고 싶은 열망이 고통스러울 만큼 커졌지. 하지만 그는 계속 내 뒤에서 소리 없이 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가볍게 춤을 추었어. 꿈 속에서 내 목에서 어떤 소리가 났어. 다른 사람이 내는 것 같은 소리, 내가 들어 본 적 없는 소리였고 나는 엉덩이를 더 높이 올려서 천천히 돌렸어. 그건 자연 현상이었어. 다시 깃털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살과 살이 가볍게 닿았고, 이빨이 목을 가볍게 물었어. 따뜻하고 건조한 뱀이 엉덩이에 내려와서 다리 사이에 놓인 채 박동치다가 내 다리를 벌리고 내 몸을 열더니 천천히 고통 없이 들어왔다가 물러났고 다시 들어왔다가 물러나서 나는 그것을 영원히 잡아 삼켜 버릴 듯 몸을 뒤로 밀었어. 그런 뒤 그것이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왔고, 나는 목에서 다시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몸이 덜그럭거렸고, 더 이상 독립적인 의식을 가진 개체가 아니라 무언가 더 오래고 원시적이고 진실한 것의 일부가 되었어. 동물처럼, 이라고 존 버크는 말했지. 그 말뜻을 알았어. 동물 같았어.  

거기서 꿈은 끝났고 새벽에 깨어 보니 머릿속에 다른 기억은 전혀 없지만 나는 여전히 담요에 엎드려 있고, 여전히 사슴 가죽 혼례복 차림이었지. 나는 그것이 꿈, 내가 경험한 적 없는 에로틱한 꿈이라는 걸 알아. 하지만 마술처럼 내 안에 아기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도 알겠어. (pp.200-201) 

 
   

 

인디언 남자든 백인 여자든 흑인 여자든 상관없이 결합은 진정 아름다운 것. 꿈결 같은 기억처럼 몸안에 남아있는 느낌. 

 

미개인 사회의 규칙. 여자와 남자의 역할 분리. 남녀차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수없이 많은 것들 사이에서 메이는 아주 쉽고 빠르게 인내하고 변화시킨다. 메이 뿐 아니라 백인 신부 계획에 참여한 수많은 여자들 역시, 시행착오와 부딪침 속에서 깊은 평화와 만족감을 느끼며 샤이엔 족의 삶에 적응하려 애쓴다. 이들의 삶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부조리한 단어 하나로 이들을 묶어둘 수 없다.

   
 

'나는 얼마나 기이할 정도로 행운아인가.' 

그렇다, 미개인 사회의 그 모든 낯섦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새 세상은 오늘 아침 말할 수 없이 달콤해 보였다. 나는 원주민들이 대지와 전원에 묻혀 사는, 교묘하고도 완벽한 방법에 감탄했다. 그들은 봄풀처럼 이 평원 정경의 일부인 것 같다. 그림의 뗄 수 없는 일부로 여기 속해 있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p.210) 

 
   

시간과 사랑. 그들을 가까워지게 하고 한 가족으로 묶는 끈은 단 두 가지 뿐이었다. 진심으로 두 가지만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리틀 울프에 대한 나의 감정이 존 버크에 대한 감정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존 버크와의 일은 내가 평생 겪어 본 적 없는 열정, 지성과 육체, 몸과 마음, 영혼의 결합이었다. 나는 세 번의 사랑으로 벌써 세 번의 인생을 산 것 같은 느낌이다. 첫 사랑 해리 에임스와 나눈 불꽃같은 육체적 사랑은 정신병원 독방 생활의 어둠 속에 꺼져 버렸다. 그런 뒤 별똥별처럼 환상적인 새 사랑이 그것을 다시 점화시키고 지나갔다. 그렇다, 해리 에임스가 내 여성성을 끌어낸 예측 불허의 밝은 불꽃이었다면, 존 버크는 강렬하게 타오른 나의 별똥별이었다. 그리고 이 남자 리틀 울프는 내게 온기와 안전을 주는 오두막 모닥불이다. 그는 나의 남편이고 나는 그의 착하고 충실한 아내가 될 것이다. 나는 그의 아이들을 낳을 것이다. (p.223) 

 
   

 

사람과 사람, 남과 여, 어른과 아이, 어머니와 아이, 친구와 친구. 모든 관계들이 아름답지만 사랑이 제일이다. 사랑으로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메이는 따뜻한 마음과 충실한 의지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모두를 진정시킬 줄 아는 능력이 있다. 백인 여자와 인디언 남자의 오붓한 동거는 샤이엔 족에게 꽤 낭만적으로 보였다. 이때까지는. 마시는 알코올. 술. 술이 들어오기 전날까지는. 술만 마시면 미쳐버린다 했다. 신도 주술사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했다. 버펄로를 잡기 위해 늑대를 죽일 수 있는 약을 놓던 샤이엔 족이 되려 약을 먹고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그들이 알아차리는 사실과도 같다. 샤이엔 족을 샤이엔 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늑대가 아니라 술, 백인 사회 또는 문명 사회가 유통시킨 바로 그 문명의 알코올이었음을. 늑대는 샤이엔 족을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그들은 당장 늑대잡는 약 사용을 중단한다. 그들에 의하면 자연은 어떠한 경우에도 위대한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사이만큼이나 백인과 샤이엔 족의 사이 역시 멀었지만.  

   
 

"망할 놈의 술만 빼면, 아이들이 살기 좋은 곳이야. 처음에 이 사람들한테 납치당했을 때는 죽을 만큼 괴로웠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내 본래 인종은 거의 잊었어. 꼭 동화 속을 사는 것 같았지. 그리고 그 동화를 깨뜨리는 건 백인의 세계야. 어젯밤에 그런 일이 일어난 거지. 내 경우는 샌드 크릭에서 그랬고." (중략) 

"여기 생활이 그렇게 좋았다면 왜 백인 세상으로 돌아갔니, 거티?" (중략) 

"하지만 내가 백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기도 했어.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지." (p.276) 

 
   

동화 속 세계를 깨뜨리는 건 역시 백인의 세계. 그건 분명한 말이기도 했다. 미국 지질학자들이 인디언들의 땅인 블랙 힐스의 금광에 대한 희망적인 보고를 가지고 돌아오면서 채굴꾼들은 모여들기 시작했고, 대중들의 인디언 몰아내기 요구가 먹혀 들어갔다. 백인 개척민들의 안전을 위해 블랙 힐스에서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것. 그 작전은 은밀하고도 어김없이 진행된다. 마치 본래 자신들의 땅인 듯. 약속도, 대화도, 설득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위 또는 마구잡이 식으로.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시키려는 존 버크 대위와 반항하는 메이의 다툼은 이미 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예감하게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했다. 인디언들의 일상적 터전과 소소한 행복이 유지 되기를. 순진한 바람은 소설 속에서조차 오래 가지 못했고, 그들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비참하고 어이없는 방식으로 도망하거나 배반하거나 죽어갔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들은 살아남아 미래를 바꾸어 나갈 것이다. 화해를 청할 것이고, 소통을 원할 것이고, 수용하는 법과 거래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메이의 일기는 반 세기 동안 오래된 빛에 갇혀 있었다. 메이의 딸이 아들을 낳고, 아들이 또 아이를 낳을 때까지. 그녀가 증조 할머니라고 불릴 때까지. 메이는 내가 아는 한 가장 용기있고 당차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백인 여자는 우둔하고 잘난 척만 하면서 남자 밝히고 쇼핑중독자일 거라는 편견을 단번에 날려주는 오래된 신 백인여자라고 해도 좋겠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장소에 적응하고, 보지 못하고 겪지 못한 생활문화에 살며시 내려앉는 것. 더불어 후회와 원망조차 하지 않는 것. 그녀는 예뻤다. 총명하고 똑똑하고 지혜로웠다. 지금 내 인생에서 그녀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생각나지 않는다. 이미 그녀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나 또한 변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오늘 아침 차가운 바람 속을 달리면서 이들에 대한 나의 충성은 내 가슴속에서 뛰는 심장에 의해 봉인되었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원했다 해도 내가 변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p.379) 

 
   

그래, 맞다. 심장 속에 봉인되어 있는 각인 같은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웬만하면 자발적, 순종적, 점진적인 게 낫다. 모두 안고 갈 수 있어야 하고,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녀에 의하면 의지여야 하고, 나에 의하면 '그렇게 되어버리는 행위'여야 한다. 즉, 녹아들어감 또는 흡수. 흡수라는 단어 참 좋다. 튀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도 마음에 든다. 인디언들의 세계는 내게조차 정말로 동화 속 같았다. 대평원을 질주하는 기분과 한없이 바다 속으로 침잠하는 기운이 동시에 들곤 했다. 광활한 땅에 자신들만의 뿌리를 세우고 싶었던 인디언들에게 평화를 선물하노니 부디 편히 잠드소서.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촌스럽고 칙칙한 표지에 비해 정말로 흡인력 높은 한 편의 서사극이다. 대장정의. 아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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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011-09-27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쩐지, 나는 절대로 ( 정말 절대적으로 ) 완독하지 못할 듯 한 책이예요 . 헤 .
 굿모닝 !
 

아이리시스 2011-09-27 12:50   좋아요 0 | URL
두 번은 읽고 싶지 않은 책이고, 500페이지나 되고 또, 피하고 싶은 역사죠. 헤.
굿 에프터눈 !

알로하 2011-09-27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간만에 와봤는데 댓글 달아주셔서 마음이 따뜻했어요!ㅋㅋ 블로그 관리 전혀 안하니까 혼자하는 느낌으로 하거든요. 이 책은 리뷰만 봐도 압도적이네요. 인디언과 관련된 내용은 항상 맘이 아픈데 이 책은 좀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을까요?ㅠㅠ

아이리시스 2011-09-27 18:40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주 안오신 거군요. 소설 리뷰가 계속 올라올 것만 같은 기분에 혼자 들락날락 했는데 이제야 나타나시고, 알로하님. 이름도 예쁜 알로하님. 자주 와요, 알았죠?^^

혼자하는 느낌으로도 좋아요. 인디언의 역사는 슬프지만 이 책은 멸망이 아니라 녹아들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슬프지만 아프지 않아요. 출판사에서 더 예쁜 표지로 본격 마케팅을 했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서사가 살아있고 마음도 건드리는, 다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근사는 영화 한 편 본 것 같거든요.^^

2011-09-27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27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이 이런 내용이었군요. 천 명의 백인 신부라니.
왠지 묵직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메이는 정말 지혜롭고 사랑스럽네요.
그리고 어쩌면 인디안들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순리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대평원을 질주하는 기분> <한없이 바다속으로 침잠하는 기분>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아요.
옛날에 고등학교 때인가. 러시아 무슨 제국의 드라마인지 영화를 본 적이 있었어요.
광활한 땅을 배경으로 하는 그 몇 부작의 이야기가 저로 하여금 몇 장의 일기를 쓰게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아..그리고 펄벅의 <대지>를 읽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어요.

아이리시스 2011-09-27 18:47   좋아요 0 | URL
<대지>랑 비슷한 느낌일 거란 거 알 것 같아요. 영화로는 <러브 오브 시베리아> 같은 느낌이고 음.. 잘 기억나지 않아요.ㅜㅜ 예전에는 스케일이 큰 이야기들이 좋았는데 요즘은 꼭 그렇지도 않다가 이 소설은 좀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별 다섯 개예요. 메이는 정말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고작 스물 다섯 살이었을 뿐인데도!

인디언 멸망사 인문학책 한 권 있는데 그거 읽을까 하다가 제 관심은 언제나 단편적이니까 그냥 또 휙- 하고 날려버렸어요, 현맘님. 하하.

2011-09-27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7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9-27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정성스런 리뷰네요. 읽으면서 밑줄 긋기까지 일일이 하시는 거에요? 저는 게으르고 귀찮아서 밑줄 긋기 같은 거 안 하고 휘리릭 넘어가게 되는데 ㅎㅎ... 저 책 표지 보고 파울로 코엘료의 표르토벨로의 마녀인가요? 그 책이 생각났어요. 읽다 말았지만... ( '')~ 아참, 아이리시스님, 저 신간평가단 합격했어요! 호호호, 뭔가 책임감이 불끈 솟는데요? 아이리시스님은 지원 안 하셨어요?

아이리시스 2011-09-27 19:54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쓸 책은 포스트잇 좀 붙여놔요, 수다쟁이님. 게으르고 귀찮아서 엄청난 인내와 노력을 요구하는 행위거든요. 그래도 이제 좀 자연스러워졌어요. 사실 이렇게 쓰면 뭔가 많이 쓴 것 같지만 내용이 많이 띄엄띄엄해져요. 이게 더 정성스러워 보이지만 더 쓰기 쉬운 거예요.

신간평가단 소설분야 됐어요? 축하해요! 나는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ㅋㅋㅋ 이따 보면 알겠죠.^-^

참, 수다쟁이님한테 보여줄 사진! 이게 여기랑 똑같은 블로그인데, 사진이 안 퍼와져가지고. 선물이에요.ㅎㅎㅎ (진짜 실망하지 말기!)

http://blog.naver.com/nmk0827/130070408438

비로그인 2011-09-27 21:57   좋아요 0 | URL
음..... 저 실망 안 했...어.. 요... ㅋㅋㅋㅋ ( '')~
가장 큰 용기는 진실과 직면하는 거에요. 정말 맞는 말이네요. 어렵게 들리는 말이고.
수잔 서랜든이 탭댄스 추는 장면이랑 마지막 미치와의 여행 장면은 잊혀지지 않을 거에요.
오늘은 할 일도 많고, 일찍 자야겠네요. 행복한 꿈나라 여행 되세요, 아이리시스님!

아이리시스 2011-09-28 00:06   좋아요 0 | URL
아........... 실망했구나. 그래서 일찍 자는구나. 미안( '') 담에 좋은 선물 줄게요. 하하하.

페크pek0501 2011-09-27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 명의 백인 신부>는 촌스럽고 칙칙한 표지에 비해 정말로 흡인력 높은 한 편의 서사극이다. " 흡인력이 높다니 읽고싶어지네요. 리뷰를 봐서도요. 그런데 500쪽이라...

오늘 알라딘에서 구입한 책 세 권이 배달되었는데, 그중 한 권이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에요. 이게 700쪽이 넘네요. 난 요즘 게으름뱅이인데... 이걸 얼마 만에 읽을지, 내가 궁금해져요. ^^^ 그래도 책이 배달되어 오늘 엄청 행복했어요. ^^^

아이리시스 2011-09-28 00:06   좋아요 0 | URL
<도덕감정론>을 리뷰도서로 받을 뻔 하다가 다른 조라서 안 받은 적 있는데 그때 저한테 온 책도 제게는 충분히 버거웠지만, 굉장히 유익할 것 같고 또 버거워 보여요. 하지만 좋은 책 같아요. 언급되는 걸 많이 봤는데 내용에 혹했어요. 이야, 부지런히 읽으시고 저 가르쳐주세요.^-^

아메리칸 인디언을 다루는 영화 많잖아요. 그래도 백인 여자의 인디언 문화체험 일대기는 생소해서 재밌어요. 전체 틀이나 줄거리는 새로울 게 없을 지도 모르지만 작가의 자연묘사가 워낙 뛰어나요. 행복한 페크님, 굿나잇!

페크pek0501 2011-09-27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추천을 눌렀는데 왜 10에서 12가 될까요? 두 개가 추가되는 게 신기하다는 ...^^^

아이리시스 2011-09-28 00:05   좋아요 0 | URL
다른 분이랑 동시에 눌렀거나, 카운트가 늦게 뜨는 걸까요? 추천버튼은 아이피가 같으면 두 번 안 되는 것 같던데.. 어쨌거나 페크님이 두 번 추천해주신 거^^ 하하.

2011-09-28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8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잘라 2011-09-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거 완전 저를 위한 리뷰예요. 혼자만의 착각이라해도 할 수 없어요. 도서관 다녀오는 길에 클릭했다가 걸으면서 계속 읽었다는!! 제가 원래 이동 중에는 뭘 안 읽는데(멀미나서요) 이 리뷰는 도저히 중간에 끊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렇다고 꼭 책을 읽어보겠다는 약속은 아니라는거~^^;;

아이리시스 2011-09-28 19:17   좋아요 0 | URL
제가 포핀스님 위해 쓴 거예요, 이제 알았구나. 아하하.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어떤 책 대출해왔어요? 책 사고 싶은데 집에 책 많아서 그냥 있는 거 읽을래요. 가을 도서관은 청량할 것 같아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도서관은 대학도서관이라서. 거기 열람실은 일반인이 들락날락 거려도 되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어요. 대출 가능한 도서관은, 우리 집에서는 너무 멀거든요. 저는 너무나 게으르고. 책은 무겁고.

포핀스님도 메이의 매력과 광활한 자연에 푹 빠진 거예요. 어떡하지.. 아아, 이 리뷰는 도저히 끊을 수 없었구나, 포핀스님에게. 항상 고맙습니다.^^;

lazydevil 2011-09-2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없습니다. 무슨 말을 더 덧붙이겠어요^^;

아이리시스 2011-09-30 02:13   좋아요 0 | URL
제가 좀 호들갑일 수도 있겠어요. <늑대와 춤을>이나 <라스트 모히칸> 같은 영화를 못 봤어요. 서부영화를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왜 그 영화들이 나와야 되는지도 몰랐구요. 어쩌면 이 영화들이 제가 말한 이 광활한 자연, 인디언 문명사, 인간과 인간의 소통. 이런 것들을 두 시간 만에 아주 잘 보여줄 것 같기도 해요, 레이지데빌님. 그럼 저는 완전 호들갑에 뒷북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도 이 책은 정말 좋았어요. 추천할 정도인지는 모르겠는데, 제게는 너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