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23
염운옥 지음 / 책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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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6일 금요일





    “기나긴 평화가 이어지고 있으며, 질병이 창궐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허나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로 북적인다. 게을러빠진 자들이 수천이나 되는데, 이 나라는 손쓸 길을 못 찾는다. 난국을 막지도 못하고, 대안을 찾지도 못한다. 어쨌든 우리 국민에게는 참으로 짐스러울 따름이다.”(Throughe our longe peace and seldome sickness... wee are growen more populous than ever heretofore;... many thousandes of idle persons are within this realme, which, havinge no way to be sett on worke, be either mutinous and seeke alteration in the state, or at leaste very burdensome to the commonwealthe.)


    영국 지리학의 상징인 리처드 해클루트가 남긴 글이다. 검색하다가 알게 된 것을 번역해 이곳에 옮겨봤다. 원문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는 16세기였다. 거리가 대체 얼마나 군중들로 인산인해였기에 이 노학자는 경멸조의 글을 썼던 것일까. 심지어 잉여(surplus) 인구를 다른 곳으로 보내버려야 한다고까지 말한 사람이다. 리처드는 인구가 줄어들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난 2년 후인 1618년, 영국은 스웨덴, 프랑스, 덴마크 등과 함께 프로테스탄트 제후동맹 편에 서서 신성 로마 제국과 싸웠다. 종교전쟁의 명목으로 시작해 패권전쟁으로 비화되며 무려 30년 동안 벌어진, 그래서 이름도 ‘30년’인 이 전쟁으로 영국 인구는 급격히 줄었다. 아니, 유럽 인구 자체가 현저히 줄었다. 리처드의 유령은 웃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유럽은 또다시 인구 급감의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다.


    하지만 권력이 인구를 조절해야 한다는 생각은 리처드만의 것은 아니다. 연원을 따지려면 우리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설교까지 들어야만 한다. 맬서스 이후 드디어 ‘인구’라는 거대한 집단을 직시하게 된 사람들은, 기계문명의 발전과는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역으로) 갈수록 피폐해지는 사회 속에서 국가가 타개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우생학(優生學)이다. ‘우생’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사회에는 이미 ‘루저’, ‘금수저’, ‘우월’ 등의 단어가 매체를 거쳐 급속도로 퍼져 있다. 들여다봐야 할 학문이라 생각했다. 우생학 비판의 첫 걸음을 위해 나는 한 주 간 염운옥의『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를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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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는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이다. 그렇다. 우생학, Eugenics는 영국에서 태어났다. 진화론을 생산해낸 나라가 영국이었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제도를 다녀온 후 (그 전에도 그랬지만) 불안증 탓에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었던 찰스 다윈 대신 진화론을 설파한 사람이 토머스 헉슬리였다. 토머스의 ‘과학적 자연주의’는 우생학 개념을 도입한 프랜시스 골턴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과학이 신앙을 대신하고 국가의 복지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 여기서 프랜시스의 우생학이 시작됐다. 1883년 출간된 『Inquiries into Human Faculty and Its Development』에는 “정신과 육체의 양면에 있어 차세대 인류의 질을 높이거나 낮추는 작용 요인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사회 통제 아래 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학”이라는 우생학의 정의가 실려 있다.


    바야흐로 19세기 말. 저물어가는 대영제국은 Pax Britanica의 명성을 잃어가는 중이라며 우울한 망상에 빠져 있었다. 언론에서는 연일 ‘인종퇴화’를 떠들어댔고, 이러다가 제국에 하층 계급들만 넘쳐날 수도 있겠다는 걱정스런 분위기가 이 골목 저 골목으로 퍼져나갔다. 프랜시스는 ‘부적격자’라 명명된 이들이 늘어나는 건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이 아닌 문명화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다윈도 이러한 ‘역선택’의 문제를 알고 있긴 했다. 이를 Survival of the Unfit이라 한다.) 이어지는 주장은 안 봐도 뻔하다. 인간의 형질을 개량하여 ‘천재의 세상’을 만들자. 찰스는 이런 유토피아적 망상을 비판했지만, 인간 유전자 조작과 우월, 천재 생산 등을 꿈꾸는 자들은 오늘날에도 많다. 최근 중국에서는 과학계의 두뇌들이 모여 천재 유전자를 찾고 있다.


    영국이 당시 개방적 신분사회였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각 사회 계층의 유전적 소질을 향상시킨다. 그 중 능력을 지닌 타고난 형질의 사람들이 전문가 엘리트 집단으로, 즉 상위 계층으로 진입한다. 다분히 매력적인 생각이다. 우생학에 심취한 이들은 실제로 “전문가 엘리트 집단에 의한 과두제 지배”(염운옥,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42쪽)를 꿈꿨다. 반면 라마르크주의, 즉 용불용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환경개혁을 통해 형질개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사회개혁운동가들이 그 선상에 있었다. 사회진화론자로 명성을 떨친 허버트 스펜서가 공리주의 편에서 도덕을 외친 건 당연했다. 넓게 보자면, 우생학의 맞은편에는 환경론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개념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본인은 환경론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우생학을 ‘부정적 우생학(negative eugenics)’의 방향으로 끌고 간 것은 프랜시스의 개념을 이어받은 개혁적 후발 주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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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운옥은 우생학의 세 갈래를 살펴본다. 그 첫 번째가 긍정적 우생학이다. 지원과 장려를 통해 인구의 질적 개선을 이룩한다는 취지에서 ‘긍정적’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당시 영국은 인구퇴화론(반멜서스주의)의 영향으로 인종쇠퇴를 “인종의 자살”이라는 선정적인 문구로 표현했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인구를 무기로 활용했다. 대영제국도 국력의 감소를 두려워했다. 실제 통계에서도 출산율 감소가 나타났다. 각계 인사들이 사회의 개혁을 주장하며 다양한 논리들을 설파했다. 점진적 사회주의의 초석으로 평가받는 페이비언주의 진영에는 조지 버나드 쇼, H.G. 웰스, 버트런드 러셀, 존 케인즈 등 후대가 기억하는 명사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모성수당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산과 육아로 여성이 노동을 할 수 없으면 국가가 원조해줘야 한다. ‘헨리 하벤’이라는 사람은 독일이 출산 후 6주 간 75%의 임금을 지불하니 영국은 8주 간 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국 독립노동당은 자녀의 생활비까지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여성참정권 운동으로 유명한 엘리노어 래스본, 메리 스톡스 등 페미니즘의 선구적 여성들은 가족수당협회를 설립해 여성의 특수성을 주장했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서비스”(염운옥의 책, 73쪽)라는 것이었다. 훗날 이들은 모자(母子)를 포함한 가족수당을 제안했다. 당시 정부는 ‘평균가족’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최저생활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는데, 가족수당협회가 보기에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제도였다. 이 선구적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 가족수당은 가족을 부양하는 남성의 임금을 보조하는 가족임금과는 다르다. 아내와 자녀에게 직접 수당을 지급하면 남성에게서 ‘부양’이라는 책무를 제거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남성과 여성의 임금이 같아질 수 있다. 상당히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엘리노어의 노력으로 영국 우생협회는 가족수당협회와 손을 잡았다.


    시대의 화두는 두 개였다. 양육과 본성. 우생협회는 당연 후자였다. 하지만 우생협회의 여성 인사들이 우생학의 취지와 모자 복지를 함께 가져가려고 노력한 덕분에 양육과 본성의 조화를 역설하는 이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양육과 관련된 영국 최대의 행사는 National Baby Week였다. 포스터를 찾아봤다. 아테나를 연상케 하는 어머니가 낫을 든 해골을 오른팔로 막고 있고, 그 앞에는 두 아이가 몸을 움츠린 채 겁에 질려 있다. 포스터의 문구는 Save The Babies다. 또 다른 삽화에는 유아의 사망 원인들이 열거되어 있다. 위에서 아래로 보자면, 가난(Poverty), 무관심(Ignorance), 알코올 중독(Drink), 불결(Dirt), 그리고 질병(Disease) 순이다. 우생학 관련자들이 모자 복지 확충에 왜 손을 들어줬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National Baby Week와 같은 전시회나 무료 교육, 검진 등에 참여하는, 즉 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들보다 상대적으로 우수하며, 따라서 그 자녀도 우수 개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생학자들은 하층 계급에서도 우수한 자를 찾을 수 있다고 봤다.


    물론 강경파들은 달랐다. 찰스 다윈의 넷째 아들인 래너드 다윈은 우생협회장을 18년 간 지낸 거물이었는데, 중간 계급의 돈으로 하층 계급의 출산율을 올리는 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는다는 유전의 법칙을 명심해야 한다.”(염운옥의 책, 87쪽)는 것이 래너드의 입장이었다. 우생교육협회도 신여성들의 출산과 양육을 장려하려는 모성기금을 운영했었지만, 이는 다분히 차별적 접근이어서 설득력은 점점 떨어졌다. 연이은 인구 감소도 강경파의 위축에 한 몫 거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인구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개혁적 인물들이 가입했다. UNESCO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줄리언 헉슬리는 강경론자들과는 달리 일단 모든 인간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고 유전 여부를 판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균등한 기회를 가족수당이 마련해줄 수 있을 거란 뜻이다.


    1930년대 말이 되자, 정부는 가족수당 정책으로 빈곤을 해결하고 저임금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앞서 페미니스트들이 높이 들었던 남녀평등의 깃발은 정부의 손에 없었다. 대신 열등처우에만 집중했다. 처우제한 원칙, 즉 빈민 구제를 받은 이들이 일반노동자보다 나아지면 안 된다는 1834년 영국 구빈법의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긍정적 우생학의 개혁적 주장은 정부 정책에 고스란히 스며들 수가 없었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우생학은 “이런 방식으로 오늘날 복지 서비스의 근간이 되는 모성 보호와 모자 복지, 출산 장려 정책을 지탱하는 담론 속에 얽혀 들어갔다.”(염운옥의 책,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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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생학’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부정적 우생학’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단종법(斷種法), 즉 장애를 지닌 이의 생식 능력을 박탈하는 법은, 듣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결과부터 말하겠는데, 영국 우생협회의 단종법 제정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는 참으로 다행인 일이다. 이 개념이 대륙으로 건너가 나치즘과 만나 부정적 우생학의 ‘꽃’이 폈다. 나치는 신체장애, 동성애자, 정신질환자, 공산주의자, 로만/집시,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유대인 등을 ‘육신이 나약한 자’로 규정, 혹독한 노동과 인체 실험, 고문의 늪에 빠뜨렸다. 나치가 세운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이들의 신체 한계를 측정하는 비인간적인 실험이 연일 계속됐다.


    영국 국민들은 섹슈얼리티와 결혼 등 사적인 문제를 공론화하는 걸 꺼렸다. 다소 보수적이라 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 성향 덕분에 대중은 우생학의 주장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우생협회의 선전 능력은 탁월했고, 10명 중 4명이나 되는 많은 여성 회원들이 박람회, 강연회, 영화 제작 등에 앞장섰다. 아이러니다.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페미니즘과 우월한 인류를 탄생시키려는 우생학이 제휴했다. 따라서 염운옥은 이렇게 말한다. “우생학의 역사를 인신에 해를 가하는 ‘악’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획득하려는 산아 제한 운동을 ‘선’으로 그리는 이분법적 역사 서술은 가능하지 않다.”(염운옥의 책, 96쪽)


    우생협회의 단종법이 여성들의 지지를 받은 이유는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영국 사회에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는 여성협동조합 길드에서도 피임 보급을 주장했다. 지금 이를 논해보자면, 첨예한 윤리의 칼날을 피해갈 길은 없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여성의 심리. 우리는 개인의 선택(피임)에 대해 비난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여성들은 단종법을 지지함으로써 자신의 ‘낳지 않을 권리’를 남녀 장애인의 ‘낳을 권리’를 부정하면서 주장한 셈이었다.”(염운옥의 책, 125쪽)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당시의 영국보다는 대중의 편견이 여러 방향으로 교정되고 있다는 걸 쓰라린 마음으로 복기해봐야 한다.


    다시 말하거니와 단종법은 실패했다. 허버트 스펜서를 위시한 환경론의 영향이 컸다. 유전만으로는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다. 의사들의 직업윤리도 향상됐다. 강제 단종의 실시를 두고 비난 여론이 있었다. 그런 말을 한 인물은 의회에서 난타를 당했다. 노동당과 운동 진영에서는 계급 차별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자발성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계층에게 단종은 강제와 같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영국은 특이하게도 계급 사회이지만 의회 민주주의가 전체를 지탱하고 있었다. 우생협회는 자발적 단종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영국 국민들은 단종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고, 영국은 단종을 통한 전체주의 노선을 걷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온건윤리에 우생학 운동이 흡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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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우생학은 ‘예방적 우생학’이다. ‘예방’이라는 단어에서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 우생학은 질병, 특히 성병과 싸운다. 그녀/그들은 성병을 “인종의 독”이라 불렀다.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에는 당시 런던 인구의 10%가 매독에 걸렸을 거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그만큼 심각한 문제였다는 뜻이다. 그러자 우생학자들은 성병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면서 섹슈얼리티의 국가 차원 통제를 강력히 주장했다. 반면 페미니스트들은 성병의 전염을 남성의 부도덕을 규탄할 기회로 삼아 과장된 전략을 사용했다. “Vote for Women and Chastity for Men!” 당시 페미니스트들의 문구였다. 1890년대 이후 급감하던 출산율을 상쇄시키려면 어떻게든 국가가 성병을 관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앞서 든 성병의 예로 매독을 언급했었는데, 그 위력은 상당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이런 구절이 있어 번역해봤다. “유럽이 처음으로 매독을 명확하게 기록한 1495년, 매독 환자들은 머리에서 무릎까지 온통 고름으로 뒤덮였고, 얼굴에서는 살점이 떨어졌으며, 수개월 안에 목숨을 잃었다.”(제레드 다이아몬드, 필자 번역, 『Guns, Germs, and Steel』, 210쪽)


    예방적 우생학은 부모의 책임의식을 강조했다. 강경파들이야 자연선택의 법칙이라며 “죽을 만한 사람들은 죽어도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칼렙 살리비로 대변되는 예방적 우생학 진영은 국가의 개입을 촉구했다. 여론도 그쪽 편이었던 모양이다. 정부는 여론에 밀려 국가 차원의 조사를 했고, 무료 진료소과 특효약 개발이 효과를 보면서 매독 감염자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빌 네빌 롤프’라는 우생주의자는 혼외아 중에도 적격인 경우가 있을 수 있으니 법의 보호를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생학에서 새로운 도덕이 탄생했던 것이다.


    예방적 우생학은 엄밀히 말해 정통 우생학이 아니었다.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쏟아낸 측도 우생협회였으니. 하지만 오히려 이런 온건한 분위기 덕분에 가톨릭교회의 공감을 살 수 있었으며, 유전과 환경 양쪽 모두를 고려하는 태도로 여성들의 지지로 받았다. 앞서 말한 칼렙 살리비는 여성 참정을 지지하고 (아서 코난 도일, 버트런드 러셀 등과 함께) 이혼 허용 사유 확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예방적 우생학의 최대 목표는 이렇다. “태아에게 있어서 외부 환경을 구성하는 모체를 매독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환경 요인을 배제하지 않는 ‘예방적 우생학’이 대처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염운옥의 책, 156~156쪽)


    성병 관리와 함께 우생주의가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성교육과 결혼 전 건강진단 계획 의무화다. 우생협회는 가정에서보다는 학교에서 성교육을, 그것도 전문가들의 통제 하에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소년에게 우생학 원리를 교육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협회 측에서 보면 대단히 답답했겠지만 영국 정부의 입장 표명은 늘 소극적이었다. 결혼 전 건강진단 계획 의무화도 실패로 돌아갔다. 염운옥은 이 제도를 부정적 우생학이 아닌 건전한 일부일처제 문화 정착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당시 사람들은 우생협회의 법 제정에 냉담하게 반응했다. 협회도 목소리를 많이 낮춘 편이었다. 원래 강제적으로 하자고 했다가 반박을 받자 자발적 검사를 권장한다고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은 우생협회가 사회 불안을 조성할 뿐이라고 되받아쳤다. 물론 이는 우생학에 대한 촌철살인이었다. “우생학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표현이었다.”(염운옥의 책,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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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우생학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생학 운동은 여성들의 활약으로 모성주의 페미니즘과 결합했다. 양육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 그녀들은 우생학 쪽에 서있었지만 프랜시스 골턴처럼 환경론 역시 무시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 점이 오히려 우생학 논리를 무너뜨리는 모양새가 됐으나, 여성들의 적극적인 대외 활동으로 우생학은 대중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모성수당, 가족수당 등의 긍정적 우생학 개혁 논의들은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회복지제도 논의의 한 축이 되었고, 열등을 강제로 지워버리려는 부정적 우생학의 단종법은 영국 특유의 개인주의와 환경론, 노동당 진영의 반발에 밀려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우생학 운동은 그치지 않았다. 이후 교육과 결혼제도에 개입한 우생학은 우생(優生)의 논리를 후대에게 그대로 전해줬다. 1970년대에는 ‘자유방임주의’ 우생학이 등장해 개인이 선택적으로 중절할 수 있다는 시대 분위기가 조성됐고, 1990년대에는 맞춤아기의 등장이 예견됐다. 이제 우생은 개인적 자발로 옮겨왔다. 여기서 질문해본다. 이 윤리적 난제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것일까? 염운옥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인류에게 주어진 가치를 상기시킨다. 생명 평등의 수호.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쪽의 편에 설 것이다. 가장 본질에 가까운 도덕과 윤리의 가치는 쉽게 훼손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기술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기술자들에게 끊임없이 되묻는다. 다행이다. 하지만 개인의 형편과 행복추구권 등을 고려하면 장애아를 낳았거나 출산을 두려워하는 부모에게, 특히 “키우기 싫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양육을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난은 받겠지만, 우생이 이미 개인적 자발의 단계로 옮겨온 오늘날 윤리적 난제에 대한 확답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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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2-27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프랜시스 골턴의 이름을 들어보는군요. 저는 그 사람을 스티븐 제이굴드가 쓴『인간에 대한 오해』라는 책을 통해 만났는데, 그가 `우생학`에 대해 그토록 확고부동한 신념과 놀라운 추진력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고 애썼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더군요. 그의 주장대로라면 `인종 사이의 차이` 뿐만 아니라 `인류와 다른 생물종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완전히 생각을 달리해야 되지 싶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오만` 그 자체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탕기 2016-02-27 21:14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저 역시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유전`이라는 개념이 인간평등의 가치가 지금보다 덜 했던 시기와 맞물려 그런 주장이 널리 퍼질 수 있었던 환경을 고려해봐야겠지만 말이죠.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때보다는 지금 우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맹목을 저지르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프랜시스가 우생 개념에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당대 핫이슈인 진화론의 엄청난 위력 때문이었겠죠. 환경적 요인을 무시하진 않았으니, 프랜시스보다는 후대의 강경파 우생주의자들이 비난 받을 여지가 더 큰 것도 같습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스티븐 제이굴드의 책을 구해서 읽어봐야겠군요. 근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원서와 번역본으로 비교해서 읽어볼 생각이었는데, 그 사이 스티븐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 비가 온다고 하지만 마음은 풍족한 주말 보내십시오. 좋은 말씀 늘 고맙습니다.
 
번역의 탄생 - 한국어가 바로 서는 살아 있는 번역 강의
이희재 지음 / 교양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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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4일 수요일





    작가의 삶을 사는 사람은 번역을 해야 한다. 좋은 작가는 우리의 문장을 바다 건너의 수많은 문장들과 비교하여 정신을 살찌운다.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말에 능통해야 한다. 우리말에 능통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번역이다. 사려 깊은 번역을 하는 이들은 외국의 문장을 어떻게 하면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바꿀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한다. 그 고민이 우리의 말을 풍부하게 만든다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렇듯 언어를 수호하는 자여야 한다.


    유럽과 아메리카, 그리고 일본의 문학이 항상 정상의 고도에서 회자되는 까닭은 그 세계의 작가들이 번역으로 거대한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열매가 아무리 저항해본들 비옥한 토양은 늘 풍작일 수밖에 없다. 충실한 보통독자가 되라는 어려운 과제를 내준 한 교수는 우리 문학의 한계가 번역의 부족에서 왔다고 했다. 번역하는 자와 문학하는 자의 분리, 직업화, 저들 사이에서 돌고 도는 (교수의 신랄함을 빌리자면) 보잘 것 없는 문학상들, 권위와 인기에의 천착, 어쨌든 극한 신자유주의인 우리의 빈약해진 풍토, 외면하는 독자들…… 그 외에도 계속 꼽을 수 있다. 인용할 책들은 서재에 많고도 겹겹이 쌓여 있다. 하지만 우선은 문학의 무궁한 영감이자 정신의 자궁인 번역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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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한 나는 어떤가? 발을 빼는 모양새이긴 하나, 다행이도 나는 작가가 아니다. 독자다. 그런 경지를 탐내는 건, 필사와 되새김질의 실천으로 내게 큰 공명을 일으켜주신 한 충실한 독자의 표현처럼 “북한산 인수봉도 올라가 보지 못한 주제에 감히 히말라야의 눈 덮인 고봉들을 쳐다보는” 것일 뿐이다. (이 표현은 원래 Oren 님의 것으로, 이 공간에 버무려놓은 것에 양해를 구한다.) 하지만 독자이고자 노력하는 나에게도 번역은 하나의 보람된 실천일 수밖에 없으며, 함량미달인 작가들을 골라 문학의 숲에서 베어내는 척도가 될 수밖에 없다. 독자의 단련도 쉬운 일은 못 된다.


    미술과 철학 공부를 위한 단순한 번역이 내게 장편의 실천이 된 건 순전히 톨킨 때문이다. 나에게 그는 ‘절대적인’ 작가다. (내가 absolute, アブソリュート란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만의 번역으로 그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수년째 원서에 빌붙어 살고 있다. 톨킨을 둘러싼 여러 작가와 추종자들의 2차 창작물도 ‘번역 바구니’에 들어 있다. 그동안 매진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더욱 채찍질하는 것은 나의 일상이다. 언젠가 톨킨을 이 자리에 복기할 기회가 있으면 그 번역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여하튼 원서와 2차 창작물 번역 덕분에 영문을 우리 문장으로 자연스럽게 바꾸는 고민이 몸에 뱄다.


    한창 번역하던 무렵 알게 된 책이지만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은 지금도 수시로 펼쳐본다. 물론 번역에 통달한 이들에게 별로 새로울 내용은 없고, 독자들 중에는 원서를 능히 소화할 수 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영어를 배웠으면서도 번역의 내공은 충분하지 않은, 그래도 좋아하는 원서를 꼭 한 번 날것으로 읽고자 하는 나 같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을 주는 책이다. ‘저자 본인의 실전 감각과 내공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책’이라는 심심한 문장만으로는 이 책을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



*    *    *



    저자는 『번역의 탄생』에서 타원의 궤도를 보여준다. 직역에서 출발하여 그 맞은편에 있는 ‘우리말에 친숙한 번역’을 거친다. 두 지점을 돌고 돌면서 번역은 성장한다. 어느 한 쪽만을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희재는 책의 말미에 이를수록 ‘우리말에 친숙한 번역’을 옹호하지만 직역이 한국어를 살찌운 비료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지나치진 않는다. 영화와 시, 소설 번역 경험이 있는 이들, 그리고 외국어에 능한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이런 신선한 표현은 직역해서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어.” 각주를 달고 싶은 욕심을 참지 못한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하지만 직역을 자주하면 할수록 원문을 지나치게 우러러보는 버릇에 복종할 수도 있다.


    국영의 방송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내가 몇 가지 실망스럽다고 느낀 것 중 하나가 일본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문화였다. 차음어의 권위가 굉장히 높았다. 바꾸려고 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 말하는 습관인데, 그녀/그들은 선배들이 무분별하게 들여와 여과 없이 사용했던 용어들을 자랑스럽게 후배들에게 가르쳤다. 현장이 워낙 빨리 돌아가는 분야이고 그만큼 소통이 중요한 곳이라, 한편으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말을 다루는 사람들인 만큼, 나는 그녀/그들에게 ‘뭔가 다르겠지.’라는 기대를 했던 것일지도. 그녀/그들만의 은어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요즘은 그 용어들이 개그의 콘셉트로 주요 방송에 여과 없이 나온다. 문제는 그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나는 쓸데없는 말을 항간에 심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에 비해 정적인 공간에서는 번역의 대가들이 우리말을 수호하고 시대정신을 ‘낫우어’준다. (‘고치다’의 잘못된 표현으로 ‘낫우다’가 있다. 내가 이 말을 굳이 쓰는 건, 순전히 이윤기 선생 때문이다. 발음이 따뜻하여 혀에도 익었다.) 원문을 우리에게 친숙한 말, 혹은 우리가 기억하면 좋은 우리말로 풀이하는 번역은 수많은 고비를 넘어야 하는 산행의 가역(苛役)이리라. 번역에 신경 쓰는 나에게 ‘전설의 레전드’로 기억되는 두 번역 사례가 있다. 하나는 톨킨의 방대한 『The Lord of the Rings』를 번역한 김번, 김보원, 이미애의 번역이며, 다른 하나는 거듭 읽어도 원래 우리말로 된 소설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드는 이윤기 선생의 번역이다.


    전자의 사례는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특히 국내의 톨킨 팬들은 지금까지도 고유명사 번역을 놓고 싸운다. 예컨대 주인공의 가문인 Baggins를 ‘배긴스’라 음역할 건지, 아니면 세 역자의 선례대로 ‘골목쟁이’라 받아들일 건지 하는 논란이 있다. 나는 후자의 편인데, 이 경우도 한계는 있다. 우리말로 도무지 풀이하지 못하는 The Water는 어떤가? 정관사가 붙어 있으니 이미 눈치 챘겠지만, 이건 강 이름이다. 호빗들의 고향인 샤이어를 동서방향으로 흐른다. 저걸 그냥 ‘물’이라 번역하는 역자는 평생 독자들의 비난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말로 풀자니 마땅한 단어가 없다. ‘물 강’이라고 하는 것은 ‘강물’이라는 단어를 배신하는 일이며, 그런 식의 번역은 쓸모없다. 그 때문에 세 역자는 ‘워터 강’이라 음역했다. 이것이 우리말 풀이의 어려움이다. 대체 어디까지는 우리말로 풀 수 있는가? 이 질문에서 출발한 사려 깊은 역자들의 도움으로 우리말 풀이는 점점 그 경계를 넓힌다. 그렇게 보면 이윤기 선생의 훌륭한 번역들은 우리말 풀이의 확장에서 더 나아가 외국 소설을 우리네 정서에 녹인 경지에 이르렀다. 부끄러운 고백인데, 나는 선생께서 번역하셨던 예의 소설들을 두 번 이상 읽어야만 했다. 번역에 감탄하며 읽다보니 나중에 가서는 그 작품을 도무지 회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   *   *



    그렇다면 이희재가 제시하는 ‘우리말에 친숙한 번역’은 무엇일까? 번역을 하며 바라봐야 할 사각지대들이 400여 쪽에 걸쳐 소개되어 있으니, ‘번역’이라는 운전을 하는 사람이 사고 한 번 내지 않을 방법이란 애당초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운전 안내서’가 아니다. 언어와 문화를 향한 깊은 혜안이 들어 있어 “번역은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예의 책들과는 경중을 달리 한다. 그렇지만 실용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족할 수 있다. 수많은 예시들이 나와 있으며, 사전에는 없는 저자만의 단어풀이들도 나중의 번역에 쏠쏠한 도움을 줄 수 있으니.


    원문을 너무 우러러보지 말라는 충고로 시작하는 『번역의 탄생』은 한국어를 가운데에 둔 ‘우리말 중심’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어,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 세계 각지의 언어들이 한국어와 병치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어는 이러저러하나 다른 말은 이렇고 저렇다는 비교가 계속 이어지고 사례들이 덧붙여져 있지만, 그 사이 한국어는 중심이 아닌 주변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그렇게 움직이면서 논지의 중심에 서있는 것이다. 번역은 바로 그런 행위이다. ‘외국어→한국어’의 방향이 아닌, ‘한국어→외국어’의 방향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반쪽짜리 번역에만 매달리던 나 같은 부족한 독자에게 다른 눈의 근육을 길러준다고 할 수 있다.


    주로 한국어와 영어가 엇갈린다. 저자는 ‘영어→한국어’ 번역인 경우, 목적어 자리에 있는 행동을 품은 명사는 동사로 풀어주고, 형용사는 부사로 풀어주는 번역 전략을 활용한다. 주어 자리에 “삼라만상이 다 올 수”(이희재의 책, 72쪽) 있는 영어를 우리말로 풀 때는 능동적 표현을 고려해야 하며, 과잉수동문도 지양해야 한다고 권유한다. 부사의 활용 부분에서는 고유어 공부를 부단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준다. 예컨대 completely를 ‘완전히’라고 기계적으로 번역하는 것보다는 ‘감쪽같이’, ‘새카맣게’, ‘홀딱’, ‘쫄딱’, ‘흠뻑’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다. 이는 번역이 아닌 보통의 글쓰기에서도 실천으로 단련해야 한다.


    “딱딱하고 어려운 내용을 담은 명사에 접미사 ‘-적’이 많이 붙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합니다.”(이희재의 책, 137쪽) 하지만 그가 권하는 건 지양이다. 的. 부끄럽지만 아직까지도 내가 글쓰기에서 고집하는 번역투다. 최후의 보루라고 본다. 남발하는지만 경계할 뿐이다. 인문학의 손길에 이렇게 저렇게 접힌 색종이 같은 삶을 내가 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으니, 알면서도 일부러 나는 的을 붙이기도 하고 그 반대로 떼어버리기도 한다. 제 8장에 이르면 나처럼 가슴 뜨끔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희재는 제 9~11장에 걸쳐 ‘간결한 번역’이라는 걸 제시한다. 물론 그도 지적했듯이 문체의 형식을 고집하는 일부 파격적 작가들의 글이 있긴 하나, 대부분은 내용 중심인 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후자는 간결하게 번역할수록 좋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다 보면 영어 원문에 군더더기가 너무 많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뻔히 아는 내용인데도 일일이 밝힌다는 것이 일종의 논리 강박증처럼 느껴져서 답답해집니다.”(이희재의 책, 186쪽) 번역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 더부룩함을 안다. 이희재는 문장의 군살을 빼기 위해 the와 a/an을 번역하지 않는 방법을 여러 사례에 걸쳐 알려준다. 기지의 정보든 미지의 정보든, ‘그’, ‘어떤’, 혹은 ‘한’이라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우리말만의 장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섬세한 의미 표현을 살리는 번역이다. 친족어 번역은 물론이고 감정 표현의 결을 살리는 번역에까지, 역자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대단히 많다. 특히 전자의 경우 uncle, cousin, aunt 앞에서 족보 따지다가 눈물 흘린 경험 있는 사람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물어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도 잘 모르는 친족어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다.) 의미 표현은 명사에도 적용된다. 고유명사는 암호와도 같다. 따라서 역자의 역량에 따라 설명의 문장을 뒤에 충분히 넣어 원문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한 예로, “journey to Canossa.”가 “무릎이라도 꿇으라면 꿇겠다.”라는 문장으로 번역된 걸 보고 나는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국어에 정통하여 속담들을 다수 알고 있는 역자들은 이런 의미 표현의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다.


    여기서 이희재는 토박이말의 활용을 강조한다. 사전편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제 18장에 가까워질수록 글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저자의 어조가 가장 열정적인 제 18장은 사용빈도를 고려한, 그리하여 언어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사전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를 보면 그가 백과사전형의 미국식 웹스터 영어사전보다는 언어의 변천을 담은 영국의 옥스퍼드식 영어사전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전자의 사전이 미국 현실에 기반을 두려는 의식에서 비롯됐다면서 긍정적인 평가도 한다.) 그런 저자가 영한사전 편찬에 바라는 바는 많다.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것이리라. 그는 일곱 가지로 나눴지만 실은 들여다보면 아홉 가지로 늘어나는데, 사전 의존도가 높은 동아시아의 번역가들이 어떤 번역을 꿈꾸고 있는지 우리 독자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사전편찬과 번역은 다르다. 그의 말마따나 번역가는 우리말 대응어를 만들어내기라도 해서 번역해야 한다. 개념을 찔러 사전의 틀을 넘는 것이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우리말 대응어는 말 그대로 ‘풀이말’다. 후자가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말이 원어의 진입 장벽을 낮춰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풀이말 사전 편찬의 수준이 높다. 저자도 그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내게 많은 가르침을 주신 (지금은 재야에서 노년을 보내고 계신) 한 방언학 교수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우리가 보면 낯설고 촌스러우며 인위적인 것 같아도, 이런 작업을 실험적으로나마 시도해볼 가치는 다분하다. 사실 이는 번역의 과제만은 아니다. 전문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장벽 낮추는 일, 흔히 말하는 ‘대중과 소통하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가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언어적으로 말이다.


    제 20장에 이르러, 드디어 시 번역이 나온다. 번역의 정수. 형식의 개량까지도 가능한 분야이며, 이를 잘 번역한 작가들은 흔히 대단한 정신의 경지에 오른 몇 안 되는 이들로 우리 독자들의 항간에 회자된다. 역량이 한참 모자란 나는 공부를 위해서는 논픽션을, 취미로는 픽션을 번역해봤지만, 시 번역은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어휘력은 둘째 치고, 영시의 경우 압운(rhyme)만 해도 골이 아프다. 톨킨 번역으로 수백 여 장을 써왔지만 그 사이 빈 칸들이 있으니, 그건 모두 시와 노래다. 하물며 높은 문학적 평가를 받는 대가들의 시를 번역한다는 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해낼 수 있는 것일까. 머리로는 짐작이 되지 않고, 마음으로는 그저 끝없이 좇을 뿐이다.



*   *   *



    번역은 기계의 일이 아니다. 원문의 논리를 도입하는 일이다. 함부로 번역하는 건 위험한 일일 수밖에 없다. 저자가 ‘즉물적’이고 ‘맹목적’이라고 표현한 무비판적인 수용이 이제는 번역 문화에서 자취를 감춰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자기 눈으로 자기 현실을 분석하는 방정식”(이희재의 책 402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시대정신을 높이 쌓는 방법이므로. 번역이야말로 정신의 요람이요, 정신의 거울이다.


    노 교수께서 말씀하셨다. 말은 움직이는 생물이다. 입에서 기어 나와 귀로 들어가니, 말에 따라 마음과 몸이 움직이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대학시절 노트 모퉁이에 적힌 이 구절에서, 나는 들여다볼 것이 무수한 들판의 향기를 맡는다. 어찌됐든 우리는 독자, 읽는 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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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
    from Value Investing 2016-02-24 22:06 
    탕기 님께서는 '번역 공부'까지도 일부러 따로 하시는군요.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탕기 님의 이 글을 읽다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마주치게 된 '시 번역은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었다'는 대목을 읽고 나서야 마침내(?) 안타까운 마음과 더불어 제게도 약간이나마 '덧붙일 말들'이 몇몇 떠오르는 걸 느낍니다. 굳이 제목을 붙이자면 '평범한 시인들의 소동' 정도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싶습니다. 어쩌면 시는 '번역' 뿐만 아니라 애시당초에 '창작' 부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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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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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7일 수요일







[소다테아게넷(育て上げネット)에 소개된 책 무업사회(無業社會)]

출처 : http://www.sodateage.net/





    오늘 통계청의 발표가 있었다. <1월 고용동향>을 보면 1월 청년실업률이 2000년(11%) 이후 최고치인 9.5%를 기록했다. 사실 1월 실업률은 2~4월의 실업률이 얼마나 되는지 내다볼 수 있는 부정적 지표의 기준이 되곤 했다. 졸업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지만 경기침체의 좁은 문에 머리를 들이밀지 못하는 실업자들 역시 그만큼 생기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그들은 ‘무능력자’일까? 취업의 문턱에서 주저하는 무기력한 이들일까? 아니면 실업자들을 구조적으로 양산하고 방치하는 사회의 문제인 것일까?


    여러 논의들이 있다. 그 중 일본에서 청년무업자들을 돕는 구도 게이(工藤 啓)와 젊은 학자 니시다 료스케(西田亮介)는 공저『무업사회(無業社會)』에서 이 대규모 문제를 시스템의 문제로 환원한다. 『무업사회』는 취업하지 않은 상태의 청년들에 대한 게으른 이미지가 투영된 사회를 비판함과 동시에 일본 사회의 시스템적 한계 역시 비판하는 책이다.



*   *   *



    무업사회는 “누구나 무업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무업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로부터 빠져나오기가 힘든 사회”(구도와 니시다의 책, 26쪽)를 일컫는 용어다. 이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직업의 문은 그 안으로가 아니라 밖으로 열려 있으며, 직업의 둘레에는 여러 깊은 구렁텅이들이 있는 모습이 된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어느 시대에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저자는 분명하게 말한다. “현재 청년 세대 앞에 놓인 상황은 과거의 어느 세대도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180쪽)이며, 따라서 기존 세대들은 그녀/그들이 단지 게으르고 정신이 박약해서, 그리하여 도전 정신이 없어서 직업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 것으로 곡해하곤 한다. 하지만 시대가 다르다. 지금은 지속적인 고도성장과 베이비붐으로 물적·인적 상승이 동반되던 옛날이 아니다.


    일본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하다. 저출산과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거품이 빠지면서 일본 사회가 겪었던 충격은 대단했다. “고도경제성장기와 같이 개인과 사회의 계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32쪽) 일본은 장기 채무 잔고가 약 1천조 엔에 육박한다. (우리나라는 이달 5일 기준으로 국가채무가 600조 원을 돌파했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청년 세대를 납세의 주체로 만드는 건 거의 흥망이 걸린 문제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과 같은 저출산 저성장 국가들은 일단 정점을 찍은 이후 한없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재정파탄으로 인한 온갖 사회 문제들이 수면 위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 성장이 국제 경기 악화로 멈췄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저출산이 동반되어 인구 피라미드의 하체가 약해지는 상황이 덧붙여진 사례는 없었다. 국가는 무업사회를 분명한 문제로 보고 있으며,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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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업자 개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무업상태가 지속되면 인간관계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고립되다 보면 동기부여도, 자극도 받기 힘들다. 지나치게 실패에만 신경 쓰게 된다. 무업기간이 길어져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립은 심화되며, 두 저자에 따르면 무업기간이 3년 이상일수록 취업 방법을 모색하려는 무업자의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듯도 하다. 그런 그녀/그들이 어쩔 수 없이 모이는 곳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다. 대학 도서관에는 별도로 취업준비생들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매캐한 고민의 냄새가 가득한 곳. 흡연실에서는 한숨을 연기로 뿜어대는 이들이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간다. 그곳은 공부의 공간이자, 돈이 그다지 필요 없는 무료의 공간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대학은 잠들어도 도서관은 낮과 밤이 분명치 않다.


    아무 일이나 하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중소기업에는 일자리가 넘쳐나니 그곳에라도 들어가서 일단 일을 시작하라고 조언해주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제각각 개성에 따라 재능과 적성에 걸맞은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98쪽) 있다. 일하다가 골병드는 것이 가장 무식한 일이라고 어른들에게 들어왔다. 무리한 취직이 한 사람의 삶을 망칠 수도 있다. 어른들도 어느 매체든 설문조사를 할 때면 이렇게 대답한다. 직장 우울증 때문에 살기 힘들다고. 그래도 참는 그녀/그들의 생활력은 나 같은 청년이 보면 참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청년의 입장에서 본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세대는 중등교육 과정부터 충분히 겁을 먹어왔다. 우리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학원들의 대나무 숲에서 날카로운 바람을 맞아가며 함께 성장한 세대다. 무엇을 배웠으며, 무엇을 알게 되었는가.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너무 빠르게 성장했다.


    구도 게이와 니시다 료스케는 고도성장 정지 이후 일본에 등장한 ‘약자로서의 청년 세대’(145쪽)라는 표현을 쓴다. <취직 빙하기>라는 무시무시한 용어는 90년대 말부터 일본에 있었고, 이후 2000년대부터는 고립무원(SNEP) 세대가 증가했다. 당시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취업지원을 해주기 위해 기관 산하 여러 단체들을 운영했는데,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 성과가 거의 없는 모양이다. 두 저자는 회사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지만 사실 구도 게이가 운영하는 소다테아게넷(育て上げネット)과 같은 지원 단체에서 도움을 받아도 막상 취업 이후의 상황은 또 다르니 문제다. 아마 구도는 열심히 키워 떠나보낸 딸/아들 같은 청년들이 다시 튕겨져 돌아오는 사례들을 수없이 보며 사회의 장벽을 무수히 탓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청년 무업자를 대상으로 상담이 가능한 공적 기관은 거의 없다.”(116쪽) 이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충분치 않은 국가의 관심을 지적하는 말이다.



*   *   *



    왜 일본의 상황은 그렇게 된 것일까?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건 우리와 거의 다르지 않은 사회구조적 배경이다. 두 저자가 ‘일본형 시스템’이라 부르며 지적한 폐해들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신규졸업자 일괄채용, 종신고용, 연공서열형 임근, 기업별 노동조합 등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적 경영은 우리와 다르지 않으며, 나 역시 튕겨져 나왔다가 재진입이 어렵다고 토로하는 주변의 청년들은 여럿 만나왔다. 기업문화에 맞춰 취업준비를 하게 되기 때문에 다른 문화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며, 심지어 그런 문화에는 들어갈 가치가 없다고 무시하는 이들도 있다. 고학력자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복지도 문제다. 가입을 강요당하지만 정작 가입 후 자기 책임이 큰 연금제도는 사회경제 발전을 배경으로 설립된 것. 발전이 더뎌지는 와중에는 임기대응으로 방편을 칠 수밖에 없다. 부모님께서도 연금의 폐해에 대해 불만이 많으시다. 모든 어른들이 이 불만에 공감할 것이다. 소수의 특권을 지닌 이들이 아니라면. (오늘도 ‘갑질’ 기사 하나가 뜨거운 논란거리다.)


    국가는 복지를 위해 어떻게든 수입을 늘려야 한다. 워낙 엉뚱한 곳에, 전시행정이나 해외투자 같은 국민의 비난 대상이 되는 분야에 지출하는 양이 터무니없이 많아 일단 그런 행태들을 감시하는 국민이 되어야겠지만, 국민은 일단 국가에게 납세의 의무를 지니고 있는 구성원이다. “국가가 해주는 게 뭐가 있어!”라든지 “헬조선!”이라고 하면 딱히 반박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일단 개념 자체는 그렇다. 따라서 국가도 적극적으로 청년무업 문제에 관여해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 문제에 대한 논의는 NPO 선상에서만 활발하다. 이들은 부분적인 해결책만 내놓을 수 있을 뿐이다. 그 사례들은 『무업사회』에도 충분히 실려 있다. 긴급구제, 취직독려, 재진입시스템 구축 등의 대규모 정책은 국가가 도맡아야 한다. 아니, 적어도 NPO보다는 훨씬 규모가 큰 단체가 맡아야 한다. 실천할 의지가 있는 단체가 맡아야 한다. 두 저자는 해결 방안이 그것 “이외에는 없다.”(174쪽)고 단언한다. 더불어 청년무업자들에 대한 우리의 부정적 인식에도 변화를 촉구한다.


    정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 예로 일본 아베 내각 1기 때에는 ‘재도전 담당 장관’이라는 신선한 정책이 제시된 바 있었다고 한다. 흐지부지되긴 했지만, 두 저자는 그와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제스처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르진 않은 듯하다. “칸막이 행정의 폐해를 제거”(184쪽)해달라고 부탁하는 저자들의 목소리에서 어딘가 김이 빠지는 풍선 사회의 모습이 보인다.



*   *   *



    이 책에 모두 싣지 못하는 NPO의 현장은 구도와 마츠오 사아키 교수의 대담에서 분명히 느껴진다. 구도와 같이 “현장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189쪽) 이들의 노력으로 직장에 잘 정착한 이들의 사례도 이 책에 실려 있다. 하지만 왜 그러한 움직임은 국가 주도로 실천되지 못하는가. 기업에는 애당초 기대하지 않는다. 기업은 ‘국민’이라는 주체에 대한 책무를 이행하지 않고 국가 밖으로 빠져나가도 상관없는 단체다. 기업윤리와 국가윤리는 다른 차원에 있다. 반면, 국가는 국민이 탄 배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은 정치가 ‘정치만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되는 것처럼 그 공간을 감싸고 있다. 『무업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답답한 분위기는 충분히 우리들의 것일 수 있다.


    『무업사회』에는 수많은 통계들이 나온다. 0과 1로 이뤄진 데이터들. 하지만 구도 게이는 그 뒤에 숨겨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그 응축된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본(人本)의 취지인 것이다. 국가가 이런 말을 하고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시대를 바라는 건, 정치와 사회를 잘 모르는 지나친 순진한 바람일 뿐일까. 모르겠다. 무수한 비난들 속에서, 나는 되도록 이 사회를, 이 시간과 이 공간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긍정일 수가 없다. 기대를 저버리는 정책자들의 무능과 근근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그리고 우리 시대의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실천들 사이에서 바라볼 뿐이다.


    구도 게이는 한 사람의 청년을 취업시키는 많은 시간과 노력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까지 많은 수고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나의 대답은 늘 ‘그렇다’이다.”(298쪽) 그처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고자 재야에서 노력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분들의 노고에 고개를 숙이듯 이 책을 덮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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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 위의 까치 -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읽기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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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5일 월요일




    들라크루아는 허풍쟁이였던 모양이다.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옥상에서 떨어뜨린 물건이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그걸 그려내지 못하는 이는 화가라고 부를 수 없다고. 머릿속의 물건이 아니라, 실제 낙하 중인 물건을 눈에 담아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게 말이 되는가? 눈으로 좇기에도 벅찬 그 짧은 시간, 말 그대로 ‘순간’이 아닌가 말이다. 그동안 대체 뭘 그리라는 것인가?


    사실 들라크루아는 떨어지는 것이 ‘물건’이 아니라 ‘남자’라고 했다. 그가 남긴 진짜 말은 이렇다.


    “창문에서 뛰어내린 남자가 있다. 그가 4층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그 사이에 그를 그려낼 수 있을 만큼(※ 영어로는 draw가 아니라 sketch로 번역됐다. 그리는 속도가 빠르다는 뜻) 숙련되어 있지 않다면, 당신은 결코 걸작을 만들어낼 수가 없을 것이다.”


    화가란 어떤 사람인가? 수많은 철학자, 평론가, 미술학자들의 정의가 있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화가들이 있었다. 미술을 공부하면서 나는 ‘나에게 화가는?’이라는 질문에 답하려고 했다. 안에서 찾으려고 했다. 그것은 미술을 바라보는 나를 다듬어줄 작업이었다. 그런 와중에 들라크루아의 말을 만났고, 어렴풋이 아틀리에의 지독한 유화 냄새가 코에 스쳤다.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은 방에서 수 년 간 미술을 공부하던 한 청년에게 화가는 그런 존재였다. 춤추듯 날아가는 창밖의 새 한 쌍을 우연히 본 화가. 그녀/그는 황급히 화구(畵具)들을 챙겨 들판으로 뛰어가거나 골목 굽이굽이를 하늘만 바라보며 돈다. 고백하건대, 나는 수많은 완성작들보다는 대가들의 드로잉과 스케치를 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흑연의 매캐한 광물 냄새에서 피어오르는 눈의 세계. 내가 보는 미술은 그렇다.



*   *   *



    그림을 읽어야 하는 입장에서 늘 생각하는 건 도대체 알 수 없는, 번뜩이는 창조의 순간이다. 물론 창조의 작업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얼마간 시도 썼었고, 지금은 글도 쓴다. 부모님 덕분에 일찍 음악을 배워 선율을 다룰 줄 알고, 따지고 보면 그림을 아주 못 그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글을 빼면, 도무지 오랜 반복과 깊은 숙련을 해본 것이 없어서 책에 실린 모습 이면의 예술이 내게 속살을 드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생각해보니, 글도 모르겠다. 독자의 삶으로 적잖은 걸 읽고 생각하고 썼지만 도대체 나는 무엇을 알고 그런 작업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 그마저도 모르겠다. 요컨대, 창조가 궁금한 것이다. 그 앞에서는 흡사 관음증 환자처럼 어디 들여다볼 구멍은 없는가, 기웃거리게 된다. 모든 작업은 극도로 은밀하다. 정말 은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렇게 된 거, 그림을 ‘읽을’ 수밖에 없게 된 거,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작정했던 것이다. 대학 도서관의 도판들은 너무 작았다. 차라리 확대할 수 있는 모니터로 보는 것이 나아 그렇게 했더니 몇 주 사이에 그냥 눈이 침침해졌다. 그렇게 몇 년을 하다 보니 화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눈 여겨 본다는 말은 쉽게 쓸 만한 것이 아니다. 작은 색점 위에, 아니 정확히 위는 아니고 그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살짝 빗겨나간 또 다른, 아랫것보다 조금 더 밝은 색점이 있다. 그것을 멀리서보면 화폭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화가가 그 오랜 옛날에 봤던 빛이다. 빛줄기이자, 그 빛을 튕겨낸 한 물체의 표면이다. 미술은 내게 본다는 것의 여러 의미들 중에서 가장 묵직한 뭔가를 알려줬다. 화가는 어두운 우물 속에서도 빛을 볼 것이고, 글자에서도 그림을 찾을 것이다. 어차피 ‘쓴다’는 것은 ‘그린다’는 것 안에 포함되는 말이니까.


    미술은 이렇게 의미하는 바가 많다. 한 번 보고 아름답다고 느껴 그 감정을 여러 번 누리고자 전시관을 찾거나 도록을 사서 보는 것도 좋다. 아니, 좋은 일이다. 그런 사람은 그럴 줄 모르거나 그럴 수 없는 사람보다 더 풍성한 과일 바구니를 손에 쥔 사람이다. 다채로운 향은 삶의 사계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미술에서 감정만 느끼거나 향기만 맡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또 다른 일이 있다. 바로 미술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는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닌 ‘읽는 것’을 통해 가능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의 노력과 조금의 도움이 필요하다.


    조이한과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에 이어 옛 공부를 추억하며 두 번째 책을 추천한다. 진중권의 『교수대 위의 까치』다. 그러고 보니 또 진중권이다. 추궁해도 어쩔 수 없다. 추천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나는 기존의 이야기들을 밋밋하게 재탕하는 책들은 읽지 않는다. 다행이도 미술은 오래도록 붙잡고 있었던 분야라 관련 신간이 나오면 들춰보는데, 몇몇 국내 저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근래 들어는 도판을 많이 넣어 책값만 올리고 내용은 그 값을 전혀 못하는 책들이 많다. 미국과 일본에서 번역되어 들어오는 책들의 높은 수준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가뜩이나 신간이 적다는 게 이쪽의 문제인데. 아쉬움을 달래며 서재를 돌아다녀본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을 따라하고 싶은 건 아니나, 나에게도 믿고 읽는 저자들이 생긴 모양이다. 이 추천은 미술을 훑는 이들보다는 좀 더 깊어지는 눈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   *   *



    어떤 분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나는 너무나도 어려운 현대미술의 이론과 미학을 보고는 ‘그래 네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렇게나 악명이 높은지 한 번 보자.’라는 생각에 악에 받쳐 미술공부를 시작했어요.” 현대미술은 물론이고 미술 다방면의 책을 낸 분의 조언이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미술 공부를 할 적에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못했다고 해야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그분은 미술을 ‘뚫어’보려고 공부를 시작하셨지만 나는 경우가 달랐다. 호주 어학연수 시절에 본 풍경화들의 경이로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해변의 수도승(Der Mönch am Meer)>을 봤을 때 느낀 감정 같은 것. 앙(仰), 숭(崇), 존(尊) 등의 오래된 신성한 느낌. 시드니의 성 메리 대성당에 들어갔을 때 나에게 달려들던 그 압도의 순간들. 요컨대 미술은 분명하게, 아주 선명하게 인상을 남기고 떠나갔다. 미술이론을 공부하게 된 건 훨씬 후의 일이다.


    하지만 내게 다가왔던, 미술을 전혀 모르던 어린 고등학생에게 쏟아졌던 어떤 감정들은 미술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공부를 하며 알게 됐다. 나의 체험은 진중권의 이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은 작품으로부터 정서적 감동을 받거나, 지각적 쾌감을 얻거나, 지성적 자극을 받거나,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 영성의 울림을 얻기도 한다.”(진중권의 책, 15쪽) 가장 후자의 경험은 시대가 지날수록 (전혀 특권인 것이 아닌데도) 소수의 특권처럼 회자될 것이지만 제임스 엘킨스의 『그림과 눈물(원제 :Pictures & Tears)』을 읽어보면 대단히 낯설거나 동떨어진 것은 아닌 듯도 하다. 여하튼 나의 경우는 정서적 감동에서 시작해 지각적 쾌감을 얻었고, 지금은 지성적 자극을 받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정서적 감동에 머물기를 좋아하며 원한다.


    『교수대 위의 까치』는 그런 이들이 2번 지각적 쾌감에서 3번 지성적 자극으로 넘어가도록 독려할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양서(良書)’라고 부르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일단 진중권의 미학책은 제외하자. 그의 다른 책들을 읽어본 거의 모든 독자들은 동의할 것이다. 쓸모없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간략하게 쓰는 것 같은데 잘 읽어보면 요약이 아니다. 할 말을 다 하면서도 분명한 임팩트가 매 장 있다. 전문적인 미술사/미학 원서들에는 저자 자신의 주장을 보호하기 위한 수많은 사례들과 (기존 권위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한 장치인) 에두른 말들, 그리고 중언들이 많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이 책은 군더더기가 없다. 그렇다고 인용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 표지에는 ‘진중권의 독창적인 그림 읽기’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자칫 그가 아주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보는 것처럼 선전이 되어 있는데, 이는 곡해의 소지가 있다. 그가 펼치는 사유의 놀이는 다른 학자들의 이론과 기존의 시각 이곳저곳에 걸쳐 있다. 그만의 놀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일단 이 책을 읽기 전에 여기 실린 작품들을 눈으로 직접 보라.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린다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아니, 미술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매력이 없는 퍼즐조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담컨대 그런 신기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도 다 단련의 일이다. 굉장히 두꺼운 고서를 판독하는 파놉스키의 사진을 언젠가 본 일이 있는데, 그 모습은 한 학자가 작품을 둘러싼 세계와 그 의미망을 알아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독과 겨루는지를 보여준다. 진중권은 그 고독의 시간이 빚은 오랜 전통 위에 서서, 자신이 지적으로 호기심을 가졌던 여러 작품들을 배열해놓고 우리를 열두 장의 놀이 무대에 초대한다. 그렇다면 그 놀이에서 그는 전적으로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가? 그럴 순 없다. 누구나 이길 수 있는 무대다. 단, 그처럼 충분한 근거를 카드로 지니고 있어야 한다. 독자들은 그 놀이법을 알게 된다. 그것도 무려 열두 번에 걸쳐서. 모든 판을 옮겨놓을 수는 없으니 그 중 가장 오래 발붙여본 무대만 골라서 밑에 적어본다.



*   *   *



    화가도 사람이다.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 그래서 그림에 숨긴다. 화가도 사람이다. 시대 속에 산다. 그 시대의 눈을 떠나지 못하므로 표현도 얼마간 제약을 받는다. 그래서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하고도 쉬운 말을 간과하지 않으면 그리다 만 것 같은 작품도 뭘 그리려고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제 1장에 소개된 <조롱당하는 그리스도>의 해석은 우리에게 교훈을 줄 만한 훌륭한 사례다. 내게 백의(白衣)의 화가로 기억되는 프라 안젤리코는 이 그림 속에 여러 개의 ‘주인 없는 손’을 그렸다. 실수일 리는 없다. 그가 실수할 리는 없다. 실수라고 생각하는 관람자도 아마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그렸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답은 “다 그리지 않아도 당시 사람들은 알아봤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것이지만 진중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중세인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것을, 오늘날 우리는 스크린 위에 고해상의 동영상으로 투사한다. 이를 우리는 ‘발전’이라 부르나, 그 발전이 얼마나 바람직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영화의 해상도가 높아질수록 외려 관객의 상상력은 줄어드는 게 아닐까?”(진중권의 책, 33~34쪽) 상상은 피안(彼岸)을 바라보는 자의 것이리니……


    제 6장으로 가면 ‘역행하는 미술’이라는 희한한 현상을 볼 수 있다. 피카소는 괴상한 화가였다. 기존의 대가들과 다른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대가들과는 ‘다르게’, 어떻게든 빤하지 않게 그리려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그렸다. 그의 중심에는 ‘아프리카’라는 단어가 있었다. 아프리카 공예품들을 전시한 곳에 가서 그가 받은 쇼크는 현대미술의 중대한 사건을 예비했다. 오른손을 버리고 왼손으로도 그렸다. 자신을 화가의 반열에 올려준 첫 번째 계단인 유년의 뛰어났던 회화 실력을 완전히 잘라내려고 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는 비단 피카소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20세기 초반의 기이한 현상과 함께 화가들이 주목한 건 그야말로 괴짜였다. 정신병원의 환자들이 그린 작품에서 영감을 받거나 직접 마약을 하기도 했다. 다르게 그린다는 건 그 정도로 어렵고도 심각한 문제다.


    진중권은 카로토가 그린 한 점의 작품에서 시작해 ‘진화론적 사고’를 전복시킨 20세기 회화까지 단숨에 뛰어간다. 우리의 손에는 미술사학자인 리글의 ‘의지(wollen)’라는 단어가 쥐어진다. 기억하자. 화가에게는 능력이 아닌 의지가 중심이 된다. 만약 A와 같이 그렸다면 그건 A밖에 그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A처럼 그리고자 했기 때문이다. 129쪽에 나온 뒤뷔페의 작품은 현대미술을 비난하는 일부 대중들에게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될 만하다. 하지만 미술은 이제 더 이상 재현(representation)이라 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를 대체 언제까지 우려먹을 셈인가! 현대미술의 현상은 고전미학의 시체를 밟고 올라선 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화가를 ‘의지를 가진 존재’로 바로 볼 수 있다면, 그리고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현대미술의 도래 이후 지금까지도 우리가 쉽게 하지 못하는 그 일을 해낼 수만 있다면, 현대미술은 우리에게 훨씬 넓은 품을 열어줄 것이다. 하지만 결단코 그것은 우리에게 다가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낯섦을 잃으면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이 어려우니 쉽게 설명해주겠다고? 그런 어리석은 말이 또 어디 있는가.



*   *   *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광인의 배(여기서는 푸코에 대한 지식이 살짝 도움이 되지만 몰라도 상관은 없다.), 화가와 주체 사이의 표현 이야기, 풍경화가 역사화로 뒤바뀐 이상한 해석 이야기, 트롱프뢰유, 도상과 엠블럼, 해석 논쟁의 장 앞에서 현대의 새로운 장을 마련해준 고야의 <개>를 둘러싼 이야기…… ‘보는 것’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에게 미술 이외의 이야기들과 함께 잘 버무려져 있다. 엮고 풀어나가는 저자의 방식이야말로 ‘독창적’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이 책에서 각 장을 여는 작품들 중 서양미술을 교양 삼아 배우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건, 조르조네의 <템페스트(La Tempesta)>, 파르미자니노의 <목이 긴 성모(Madonna dal collo lungo)>, 티치아노의 <신중함의 알레고리(Allegoria della Prudenza)> 정도일 것이다. 판화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뒤러의 작품이 알려진 정도까지. 간간이 유명한 작품들이 양념처럼 나와 이해를 돕긴 한다. 이렇듯 정통 미술사에서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그리하여 대중에게 별로 알려주지 않았던 작품들을 골라 그 위에 지적 호기심의 그물을 쳐놓은 진중권의 솜씨에도 감탄할 수밖에 없다. 일개 독자가 그에게 ‘솜씨’라는 표현을 쓰니 발칙해 보이지만, 아마 미술 공부한 사람들은 동감할 것이다. 이 작품들을 이런 식으로 마름질해서 소개하는 건, ‘스투디움’ 속에 ‘푼크툼’을 씨줄과 날줄로 엮는 건 무릎을 칠 만한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재단의 기술을 지닌 저자는, 국내로만 한정해놓고 보자면 거의 없다. 『천천히 그림 읽기』 추천글에서도 쓴 말을 여기서도 다시 하겠는데, “단순한 지식 나열에다가 화려한 컬러도판들, 깔끔한 도표 정리와 가독성 좋거나 특이한 폰트들로 치장한 작금의 미술 상식책들”은 우리의 폭을 넓혀줄 수 없다.


    “때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 작품에 대한 표준적 해석을 넘어서는 직관을 제공해줄 때, 관객은 남이 찾아놓은 의미를 재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된다.”(진중권의 책, 22쪽)


    내가 미술 상식책에 의존하는 공부를 오래 전에 관둔 건, 미술이 그보다 훨씬 깊은 우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철학자도 아니면서 이런 말 쓰긴 창피하지만, 나에게도 분명한 전회(轉回)가 있었다. 그렇게 한 바퀴를 구르고 나니 한 손에는 어떤 종류의 무기가 들려 있었다. 해석의 권위에 대항하는 무기. 물론 기존의 해석들은 훌륭하다. 더할 나위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작품 하나에서 읽어낼 수 있는 세계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게 해주며, 그래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곳은 함부로 넘보지 말라.”라고 엄중히 경고하는 듯도 하다. 세상을 깊이 알아본다는 것이 호기심만으로는 도저히 버틸 만한 작업이 아니듯이.


    하지만 진중권은 분명 푼크툼을, 우리가 작품에서 느끼게 되는 그 사적인 경험을, 작품과 나 사이의 고독한 관계 속에서 느끼는 경험을 재고해보라고 한다. 재고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 아니, 그것이 우리에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은 ‘교수대 위의 까치’. 제 5장의 놀이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브뤼헐의 작품명이다. 진중권은 그 작품에서 뒤집어진 세상을 보는 브뤼헐의 날카로운 시선을 읽어낸다. “온갖 부조리와 불합리로 가득”(115쪽) 찬 세상이 기이한 모양을 한 교수대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브뤼헐이 그렇게 세상을 보기에 교수대가 3차원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모양으로 ‘그려진 것’이라는 해석이다. 나는 진중권이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작가는 세상을 보고 그림을 그린다. 우리는 그림을 보고 세상을 본다. 작가가 저마다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처럼 우리도 저마다 다르게 그림을 본다. 그리고 둘은 그림에서 만난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 과정에서 해석은 열린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본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교수대 위의 까치(De ekster op de galg)>의 교수대가 3차원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브뤼헐은 교수대의 왼쪽 기둥을 교묘하게 안에서 바깥으로 휘어지게 그려 우리의 눈에 약간의 착란을 일으킨다. 기둥 그 자체도 고르게 굵지 않아서 (자세히 보면 왼쪽 기둥의 배 부분이 머리 부분보다 미세하게 굵다.) 원근을 깬다. 그런데도 진중권은 교수대에서 부조리를 읽는다. 아니, 부조리를 브뤼헐이 그렸다고 읽는다. 그걸 잘못됐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반대다. 브뤼헐은 이미 죽었고, 작품은 해석의 눈앞에 놓여 있다. 그리고 우리의 이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부조리하지 않은가. 이 해석은 진중권의 푼크툼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면 스투디움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미술을 읽는다는 건 그런 가치를 지닌다. 이 책에서 자신의 반쪽을 찾아내길. 독자들에게 이 책을 건네는 내 마음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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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15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의 교수대위의 까치였군요. 진중권 문화평론가는 글 하나는 잘 쓰는 평론가입니다. ㅋㅋ
 
천.천.히 그림 읽기
조이한.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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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2일 금요일




    전공은 아니지만 나는 미술사를 공부했다. 미술을 통해 세상의 복잡함을 알았다. 처음에는 파고들자는 욕심이 컸다. 글로 풀었을 때의 희열도 있었다. 하지만 열의가 차츰 식었고, 많은 분들과 교류했던 미술 블로그도 접었다. 지금은 이런 조촐한 공간에 ‘읽고 씀’을 실천하고자 글을 올리며 몰아붙이고 있지만, 그 시절에는 하루에 두 세 개의 미술글을 쓰고 수백 여 장을 읽었다. 작품을 모니터로 뜯어보는 건 몹시 피곤한 일이다. 돌아봐도 굉장한 열정이었다. 그간의 미술 글들을 모으니 책으로 네 권이 됐고, 귀찮은 탓에 정리를 미뤄둔 글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글들을 읽지 않는다. 서재에 꽂아둔 수십 여 권의 미술책과 대학 도서관에서 출력한 논문들을 들춰보는 일도 별로 없다.


    관심을 두는 곳이 달라진 까닭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변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미술에게 나는 상당히 많은 걸 빚지고 있다. 우선, 미술은 역사다. 무엇보다도 일단은 ‘기술[art]’의 역사라 해야 한다. 미술을 교양 삼아 배우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냥 지나치는 시대가 구석기와 신석기다. 그쪽은 거의 고고학이 맡고 있어서 어려운 용어로 낯선 지명들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외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도 거의 없다. (또한 대학에서도 미술사 전공의 십중팔구가 중세와 르네상스에 치우쳐 있다. 인기가 많으니까. 한편, 현대미술은 머리가 좋은 미학 쪽 사람들이 주로 들여다본다.) 그 시대의 전(前)미술단계 유물들을 보면, 확실히 미술이라는 것은 기술에서 출발했다. 그 목적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천재, 창조, 독창 등이 붙은 건 근대에 와서다.


    한편으로 미술은 사고(思考)다. 이 새삼스런 말이 내겐 중요하다. 작품이 생산되는 과정에서도 그러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비평하는 사람들의 텍스트를 통해 그 시대의 사고를 읽을 수 있다. ‘보는 방식’이라 부르면 편하리라. 미술에서 접한 이 두 단어, 즉 역사와 사고를 통해 나는 철학과 문학으로 선회했다. 솔직히 작품이라는 건, 배보다 큰 배꼽일 때가 많다.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느냐, 이런 불평도 이해가 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많은 말을 배우고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술로 세상을 보는, 아니 읽는 방법을 교양 삼아 알아보고 싶은 독자들에게 『천천히 그림 읽기』라는 책은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적잖은 독자들이 읽었겠지만. 저자는 조이한과 진중권이다. 우리나라에서 미술 공부하는 이들은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다. 중세와 르네상스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임영방’이라는 석자의 이름이 소위 ‘레전드’로 남아 있듯. 저 두 사람은 서양의 현대이론들을 국내로 들여오는, 일종의 수입 경로 역할을 맡으면서도 그 분야에서 우리말로 쓴 최고의 책이라고 소개되는 여러 책들을 직접 쓰기도 했다. 혹시 미술 공부를 할 이들이 있으면 도움이 될까, 이런 생각에 옛 공부를 추억하며 『천천히 그림 읽기』를 다시 한 장 한 장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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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의 미술 작품에서 한 권의 책이 생산된다. 백 수십 여 명의 인물이 그려진 유화든, 단조로운 색면회화든. 작가가 말이 많은 경우도 있고, 이미 세상을 떠나 작품만 콘텍스트 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우리는 ‘말’이라는 걸로 그림을 보게 되는데, “말로 본다.”는 이 이상한 표현은 사실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말’이 그 언어문화 속 개인을 보호하고 있는 (그래서 우리는 ‘모국어(母國語)’라는 표현을 쓰는데) 어떤 보이지 않는 방어막 같은 거라고 보면, 그 ‘말’이라는 게 통용되지 않는 다른 문화 속의 현상 대부분은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이탈리아의 한 오래된 천장에 붙어있는, 어떤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이 손가락을 맞대려고 하는 순간을 그린 그림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농담을 하는 미술사가들이 있다. (<아담의 창조(Creazione di Adamo)>에 대한 이야기다.) 서양회화의 우월이니 하는 말이 아니다. ‘보는 것’, 즉 우리의 시각 능력에는 현저한 제한이 있다. 모르는 것을 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벽을 쳐다보는 것과 비슷한 막막함을 느끼니까.


    카를 융의 『인간과 상징(원제 : Man and His Symbols)』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윤기 씨의 번역이다.

    “문화적 상징은 아직도 그 본래의 신성한 힘numinosity 혹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 상징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깊은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심적 변화를 통해 이 상징들은 편견과 비슷한 작용을 한다. (…중략…) 따라서 심각한 손실을 감수하지 않는 한 이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카를 융의 책, 137~138쪽)


    결과적으로 우리는 말로 보게 되며, 미술사학과 미학, 그 외에 미술을 둘러싼 여러 해석학들은 그 ‘말로 봄’의 가치를 축적하고 증명해온 학문이었다. 그리고 그 가치라는 것은 “편견과 비슷한” 것들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하는 것이다. 다른 시대에는 또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명제 하나만 갖고 있으면 된다. 독자들이 미술에서 교양 이상의 무언가를 얻어가고 싶다면, 그 깨달음을 갈구하고 한 두 개 정도의 예시들을 마음속에 넣어두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미술을 공부할 때도, 혹은 훗날 도래할 어떤 충격적인 미술 현상을 접할 때도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보다 투명해질 수 있다.


    내가 조이한과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읽기』를 미술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별로 거창하지 않다. 국내에 이보다 쉽게, 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보는 방법’에 대한 역사를 잘 정리한 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분야의 책을 떠올리라고 하면 독자들은 대부분 『미학 오디세이』를 당연히 꼽겠지만, 그 책 실은 대단히 어려운 책이다. 『현대미학 강의』라는 진중권 본인의 책을 좀 쉽게 풀어쓴 버전이라고 하지만 그 분야의 용어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높은 난이도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책 『천천히 그림읽기』에 나오는 ‘보는 방법’들도 그 분야의 전문서들을 읽어보면 앞이 캄캄해진다.


    예컨대 이 책의 제 1장에 설명된 미술 형식 분석에서는 당연히 19세기 대가인 뵐플린이 나오는데, 그의 『미술사의 기초개념(원제 : Kunstgeschichtliche Grundbegriffe)』은 그걸 국내에 소개한 박지형 씨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재미없을뿐더러,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아듣기 힘들다. 이는 비단 뵐플린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른 어떤 분야의 미술해석이든 상관없이 그림을 전문적으로 ‘읽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쪽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순전히 교양의 후광을 등에 업은 탓이리라, 나는 지금껏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는 약간의 환상이 덧씌워져 있다. 이 책은 그 환상을 좇는 이들이 실망하지 않고 미술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책이다. 단순한 지식 나열에다가 화려한 컬러도판들, 깔끔한 도표 정리와 가독성 좋거나 특이한 폰트들로 치장한 작금의 미술 상식책들에서는 사실 별로 얻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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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식 분석, 도상해석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여성주의, 기호학, 그리고 현대미술 이론들이 등장한다. 거의 시대순과 일치하게 나열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형식 분석과 도상해석학은 전통이 백년은 훌쩍 넘은 것들로, 다른 해석학들에 비해 유치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그렇게만 치부하지는 말고 해석자 자신의 관점에, 그리고 분석할 텍스트에 충실하려고 한 흔적이구나, 이렇게 살짝 눈감아주면 어떤 독자라도 그 시대의 해석 방법에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전자에서는 빙켈만, 뵐플린 등이 나오고, 후자에서는 파놉스키가 나온다. (최근 여러 알라딘 독자들이 파놉스키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 시대에는 단연 미(美)라는 것이 중심이 됐다. 그리고 그 미는 고대 그리스와 필연적으로 연결됐다. 그런 시대에서 창조, 천재, 독창 등의 근대적 개념들이 어떻게 등장한 것인지를 보다 깊게 알아보고 싶으면 오타베 다네히사(小田部胤久)의 『예술의 역설(藝術の逆說)』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일본이 미학 이론 생산과 번역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다.) 제 1장과 2장에 나오는 작품들은 서양미술의 상징처럼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읽으면서 위화감을 느끼거나 할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도상해석학을 접하게 되면 중세 미술의 수많은 작품들을 보는데 도움이 된다. 그 유명한 곰브리치는 이 학문에 대해 “당연해 보이던 재현적 의미는 곧 사라지고, 미술가가 창안한 형상이 늘 어떤 의미를 뜻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에케하르트 캐멀린 편집, 이한순 外 옮김,『도상학과 도상해석학(원제 : Ikonographie und Ikonologie)』, 311쪽) 갖게 된다고 했지만, 사실 해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다. 상세한 논쟁에 대해서는 우리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관심 있는 사례들만 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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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정신분석학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학문은 예술작품을 “예술가가 가진 동성애, 근친상간 혹은 살인충동 등을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방식으로 승화”(조이한·진중권의 책, 124쪽)시킨 것으로 본다. 근대미술사는 유수의 철학자와 비평가들의 힘을 빌려 미술이 비로소 본격적인 학문으로 한 가닥 분화를 일으킨 역사다. 그 시대에 예술가들은 천재의 반열에 오르게 됐는데, 이 흠숭의 분위기는 프로이트 이후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여전히 예술과 천재성은 항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을 거쳐 예술은 ‘광기의 산물’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이중의 의미를 갖게 됐다. 미쳐서 멋있거나, 아니면 그냥 미쳤거나. 현대예술은 분명 광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저걸 들여다보려면 부득이하게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물론 두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중요한 건 그런 작품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제 4장은 작품 활동에 영향을 끼치는 ‘바깥의 것’들에 대한 이론, 즉 사회학적 관점에 따른 미술이론을 소개하는 장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근래에 이를수록 점점 그 후광을 지워가는 작업을 해왔다. 심지어 르네상스를 허구라고 일컫는 이도 있었다. 그런 이론들이 6~70년대에 이르러 서양에서는 주류 연구자들을 배출했음에도 여전히 르네상스의 빛은 강하다.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전통의 힘은 무시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미 ‘르네상스’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너무나도 확고해졌다. 그와 반대로 르네상스를 샅샅이 분석하는 이들은 그 놀라운 작품들이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구체적으로 그 주변을 연구하면서 작품을 하나의 ‘생산물’ 정도로 본다. 그 내용이 제 4장에 나온다. ‘위대한 작품’이라는 표현보다는 “계약서에 따라 제작된 작품”(146쪽)이라는 표현이 훨씬 예술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연구는 예술을 내적으로만, 마치 자생력이 있는 하나의 유기체인 것처럼 보는 일련의 시각을 거부하면서 오히려 예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줬다. 그리고 이렇게 예술의 ‘바깥’을, 아니 ‘환경’을 이해해야 예술이 왜 그 당시 그런 모습을 하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린 때때로 마치 그 자체를 존숭하려는 사람처럼 예술을 마냥 우러러 보기만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예컨대 수학과 자연과학의 발달이라든지, 그에 앞서 이슬람 문화에서 유럽으로 고대 그리스의 유수 저서 번역본들이 들어왔다든지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그 위대한 르네상스는 불가능했다. 이는 르네상스를 하나의 단절된 역사로 보는 시각을 철저하게 금하는 최신 연구의 시각이다. 두 저자도 말한다. “사회학적 접근 방법은 우리가 예술에 대해 가진 협소한 생각을 깨뜨려 주는 장점이 있다.”(167쪽) 이와 관련된 최고의 저서는 백낙청 씨께서 국내에 번역·소개하신 아르놀트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원제 : Sozialgeschichte der Kunst und Literatur)』다. 이 책 자체가 우리나라 비평계에 끼친 영향은 두세 번 곱씹어도 지나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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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페미니즘이 다시 우리나라 독자들 사이에 중요한 화두로 던져졌다. 혐오(嫌惡)에 대해서 보다 많은 이들이 생각해볼 기회이며, 소수와 권리, 그리고 젠더가 자신의 본래 뜻을 이 사회의 장벽 너머로 던질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TV 매체에서도 그러한 움직임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방송작가 아카데미를 다녀본 경험으로 보건대, 역시 TV는 너무 많은 제약을 갖고 있는 매체다.) 여하튼 이런 환경 속에서, 나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르테미시아 겐틸레스키, 안젤리카 카우프만 등 저 까마득한 옛 화가들과 수많은 곡해의 중심에 선 현대 전위 예술가들의 위상에 대해 재고할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물론 이 예술가들은 모두 ‘여성’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떤 작품이 ‘여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그건 작품에 대한 치명적인 결함으로 간주된다. 반면 여성의 작품이라도 ‘남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그건 최고의 찬사로 여겨진다.”(181쪽)


    지금은 창작의 환경이 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균등화되어 있다. 아니,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작가, 예술가, 가수 등의 앞에 ‘여자/여성’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남자/남성’이라는 말에는 괄호를 치는 사람들이다. 의식적으로 신경 쓰지 않으면 절로 그런 말을 쓰게 되니까. 따라서 여성 예술가들이 남성 예술가들과 같은 공간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큰 지위를 누릴 수 있는 (비록 남성보다 그 가능성이 훨씬 떨어지긴 하지만) 환경이 아무리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남녀 두 성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에 기인하는지”(211쪽) 생각하는 각고의 노력을 통해 커튼 한 장을 더 치워버려야 한다.


    제 5장에 나온 여성주의 관점의 시각은 바로 제 3장의 정신분석학적 관점과 비교하면서 봐야 한다. 1980년대 여성예술가의 상징적 존재였던 신디 셔먼이 그러했듯이, 여성예술가들은 신체를 작품 속에 넣어 표현하면서 여성성을 규정하는 정신분석학, 달리 말하자면 그런 관념을 통해 남성성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려고 한 그 학문을 부정했다. 또한 정말 오래도록, 그리고 지금까지도 값이 매겨지는 여성의 신체를 거부하려는 움직임으로 그 신체를 혐오하게 제시했다. 급진적인 페미니즘 전위 예술가들이라면 거의 그렇게 했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최근 독자들 앞에 제시된 젠더, 인종, 소수 등의 문제를 함께 고민했던 모든 예술가들의 공통분모이기도 했다.


    그런 것들은 보기 힘들다. 당연하다. 기존의 것을 해체하는 작업은 눈으로 보기에도 힘들뿐더러, 그걸 받아들이는 것도 거의 어렵다. 하지만 유수의 학자들이 지금도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는 전통적 미술사에 대한 책을 읽거나 그런 작품을 보는 것보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더 중요한 건 제 5장의 내용일 것이다. 근현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의 양태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저항의 모습, 즉 운동성을 띠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 많은 예술가들이 매체의 도움, 전시회의 성공, 세미나 개최 등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저항하는 이들은 고독할 수밖에 없다. 생각하는 독자인 우리들에게는 그녀/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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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호학으로 미술을 보는 관점은 제 6장에 소개되어 있는데, 이 분야는 거의 암호 해독이다. 흡사 영화 『다 빈치 코드』에 나온, 이런저런 정보들을 모아 역사를 기억해내고 단서를 찾아가는 흥미진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쉬운 분야가 아니다. ‘알레고리’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수준이면 족하다. 그보다 더 들어가려면 서구 문화의 전통 자체를 통째로 들여다봐야 한다. 하나의 상징이 수많은 상징들과 얼개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시공을 넘나든다. 또한 기호학은 필연적으로 언어학과 연결되기 때문에 기표, 기의, 지시, 함의 등의 전문용어를 소화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해석 분야 중에서는 가장 학문적이라 할 수 있다. 미술 전문가들 중에서도 이 분야를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소개해줄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마지막으로 제 7장. 현대미술이다. 개략적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맛보기로 몇 가지 사례들만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허술한 마무리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로 보는 것이 좋다. ‘현대미술’이라는 단어는 워낙 많은 걸 담고 있다. 만약 조이한과 진중권이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을 다하려고 했다면, 이 책은 뒤에 『미학 오디세이』를 덧달고 나왔을 것이다. 둘은 관심 삼아 보려는 독자들에게 알맞은 수준으로 마무리했다. 강조해야 할 것이, 이 장에서는 우리가 ‘저항’이라는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운동이다.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극과 극으로 나뉠 단어다. 전시관에 걸린 작품이 무슨 운동을 하는가, 시와 소설은 그저 시와 소설일 뿐이다, 이런 불평을 하는 이들도 오늘날 수많은 독자/관객들 중 한 부류를 이루고 있으니까. 나 역시 예술을 혁명에 가져다대는 것에 움찔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하는 건, 우리가 주변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도덕에 맞도록 행동을 옮기는 것, 즉 수많은 흐름 속에서 저항하는 것이 지니고 있는 힘이다. 그 힘은 분명한 운동성을 갖는다. 마음이 불편하다든가, ‘이건 아니야.’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다든가. 예술은 그걸 우리에게 보여주거나 들려주거나 읽게 한다. 그녀/그들이 하나의 운동을 생산해내기 위해 쏟아 부은 시간과 정성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 그걸 철칙으로 알고, 그 창조적 작업을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예술에 대해 실망하면서 불평하는 이유는 알겠지만, 예술이 우리와 함께 저항에 동참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 자체를 마음속에서 지우지 않았으면 한다.


    우스꽝스러운 것도 많다. 저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든지, 저런 쓰레기를 (실제 쓰레기를!) 작품이라고 전시한다고, 그래서 돈을 번다고 분통을 터뜨리든지. 그러나 그녀/그들은, 특히 제 7장 이후 지금까지 예술의 궤적을 그려오고 있는 이들은 십중팔구 우리의 기대를 벗어난다. 벗어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거칠고 불편하고 낯선 것들이 끊임없이 생산된다는 것은, 우리 주변이 너무나도 확고한 모양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비유하자면 ‘고체 사회’라 해도 될 것인데, 예술은 바로 우리의 그 경직된 도형 같은 주변에 균열을 내고 물이 새게 하는 가장 근사하고도 합법적인 (때론 비합법적이기도 한) 수단이자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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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2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2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