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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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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9
 


  언젠가 밀레의 작품을 보며 낭만적인 전원(田園)의 풍경을 볼 수 있는가, 아니면 (즉각적으로 보이는 것 외에 조금 무리해서라도) 농민들의 고통을 볼 수 있는가를 놓고, ‘화가의 시선’이라는 주제를 다룬 칼럼 하나를 읽은 기억이 있다. 빈곤한 수집 욕구 탓에 그 기사를 다시금 구해보진 못했지만 글쓴이가 하고자 한 말의 진의를,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생각해보면 밀레의 의도가 어찌됐든 현재 그것이 전시되어 있는 오르세 미술관에 가서 이 걸작을 보는 사람들은 전원의 낭만이나 농민의 고통을 특별히 의도해서 받아들일까? 다시금 생각해보건대, 작가의 의도는 완벽하게 소통되는가? 지난 시간동안 미술을 공부하며 느낀 바이지만 오래 전의 작품들(소위 ‘Old Masters’의 작품들)은 적게는 한 세기에서 많게는 수 세기나 되는 소통의 간극 때문에 ‘현대적 감상’ 속에서 의도가 왜곡되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며, 현대미술은 감상 자체를 자주 왜곡시키므로 따지고 보면 미술은 의도와 소통의 불협화음인 셈이었다. 대표적인 예들은, 특히 현대인들의 메마른 감성과 짝지어진 예들은 제임스 엘킨스의 <그림과 눈물>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비단 회화, 조각 등 미술사적 작품들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언젠가 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일화를 듣고 무릎을 탁 친 적이 있다. 시인 박목월이 자신의 시로 낸 문제 10개를 풀었는데, 4개밖에 맞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연 시에 ‘답’이 있을까?” 싶은 의구심을 고등학생 무렵부터 지금까지 줄곧 (시인을 꿈꿔왔다는 이유로) 갖고 있었던 나에게 이 이야기는 진위여부를 떠나 많은 것을 의미했다. 어찌 보면 예술과 문학을 통틀어, 그리고 그 외의 더 많은 것들 중 대중들에게 ‘보임’, ‘읽힘’, ‘들림’ 등으로 소통하는 것들은 무릇 의도와 수용 사이의 몇몇 차이를 보이는 것이리라, 생각하게 된다. 이런 생각은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서도 확인되는 바, 다만 그녀의 책은 보다 신랄하고, 충격적이다. 

  손택의 책은 울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한 남성 변호사가 울프에게 “당신의 견해로는 ‘우리’가 전쟁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 물었다. 울프는 이 ‘우리’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음을 상기시키기 위해 답장을 보냈다. 단지 추측된 것일 뿐인 (‘우리’에게) 공유된 감정을 가졌다고 해서 과연 우리는 ‘우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3년간 블로그를 하면서 필자 역시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를 수도 없이 썼는데, 그때마다 그것이 지칭하는 대상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상상 속의 독자들이었다. 이런 경우에는 그나마 괜찮다. 대상이 적을뿐더러, 나의 블로그는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이 찾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성 변호사와 울프의 사이를 오고 간 그 ‘우리’라는 단어는 얼마나 적절했을까? 대개 서양에서 집필된 서양인의 책에서 그것이 ‘우리’라는 말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의 문화를 공유하는 이들, 대개 강대국이며 전쟁을 오랫동안 겪어보지 않은 이들을 가리킨다. 한편, 그 책이 반전(反戰)운동을 표방한다면 ‘우리’란 전쟁을 증오하는 이들에게 더 적당한 지칭어가 된다. 하지만 우리가 반전을 원한다고 해서 전쟁이 줄어들고 있는가?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해체된다. 

  잠시 어학연수 차 시드니에서 생활했을 때, 나는 시드니 시청 앞 사거리에서 ‘No War’라고 간단하게 적힌 나무표지판을 들고 매 보행신호 때마다 도로 한복판으로 나와 어떤 노래를 부르며 반전시위를 하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기억으로는 내가 그곳을 찾을 때마다 본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런 ‘사소한’ 풍경은 잊혔을 것이다.) 그는 분명(혹은 아마) 반전주의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행신호가 들어오면 그는 다시 시청 앞 나무그늘로 돌아가 앉아서 표지판을 조금씩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이따금 시청 건너편의 버스정류장 근처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사람들의 무반응은 그에게도 사뭇 익숙했던 모양이다. 마치 필리핀에서 일어난 한국인 광부 피랍사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의 가려한 소식, 일본의 지진과 미국의 토네이도,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의 연쇄 부도 소식들을 아침식사를 겸해 보고 넘기는 것이 일상다반사인 것처럼. 그도 이 점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은 보들레르의 일기인데, <타인의 고통>에도 인용된 문구이다. 
  “군주들, 국가들, 사적 개인들이 저지른 온갖 전쟁, 범죄, 절도, 호색, 고문, 사악한 행위, 온 세상에 판치는 잔악 행위 등등. 문명화된 인간은 매일 이 메스꺼운 전채로 아침식사의 식욕을 돋운다.” 

  손택은 오랜 고찰 끝에 뉴스와 신문, 인터넷 포털사이트, 소셜 네트워크 등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우리가 놀라우리만치 무관심하거나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으로 ‘무능력’을 꼽았다. 과연 ‘우리(손택은 대체 이 ‘우리’가 누구라는 것인가를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마치 울프처럼 상기시켜준다.)’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온갖 반전포스터와 나치 반대 포스터, 가령 그로스(George Grodz : 1893~1959)와 하트필드(John Heartfield : 1891~1968)가 만든 포토몽타주 작품들이 나온 1930년대 중반은 그것이 비록 정치적 소산이라고 해도 인류가 반대해야 하는 사건과 대상을 정확히 지정하여 엄청난 양의 비난이 예술의 세계에서 쏟아진 시기였다. 그러나 결국 제 2차 세계대전은 일어나지 않았는가. 손택도 똑같은 말을 했다. “묵시록이 전쟁을 격퇴했으나, 그 다음 해에 전쟁이 벌어졌다.” 

  손택의 초점은 사진, 타인의 고통, 그리고 우리의 행동과 관련된 공감능력으로 모아져 있다. 하지만 사진도 하나의 소통하는 수단이자 주체(혹은 객체)이므로 서두에서 필자가 언급했던 ‘불협화음’의 대상이 된다. “좀 더 극적인 이미지들을 찾아 나서려는 충동이 사진 산업을 등장시켰으며, 사진 산업은 곧 충격이 소비를 자극하는 주된 요소이자 가치의 원천이 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여겨지게 된 문화의 일부”가 된 오늘날, 특히 전쟁사진은 여러 가지 반응으로 회자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매그넘이 설립된 1947년 파리에서 카파, 칭, 브레송 등 오늘날 전설로 기록된 작가들이 밝힌 자신들의 사명은 전쟁사진에 대해 우리가 단선적인 반응을 보여야 한다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듯하다.
  “전쟁의 시기에서든 평화의 시기에서든, 광신적 애국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난 채 공정한 목격자의 한 명으로서 자신들의 활동하던 시대를 기록할 것.” 
  ‘공정한’이라는 표현은 여기서 반전과 등가어(等價語)이다. 전쟁이란 모름지기 ‘광신적 애국주의’에서 태어나 ‘전 인류를 위한 것, 혹은 민족을 위한 것’이라 포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손택은 “분쟁의 정체를 폭로해 주는 사진작가들이 모아 놓은 자료들은 대단히 유용”하다고 했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항의 정신이라고 여겼다. 문제는 (그녀가 말미에 밝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그것에게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손택은 독자들을 고통의 세계로 끌고 들어간다. 여러 사례들이 소개되지만 그녀의 질문은 단 하나이다. 과연 ‘우리(여기에서도 ‘우리’는 명확치 않다.)’는 고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서 ‘고통’은 ‘타인의 고통’을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필자가 지난 3년간 공부한 미술사의 대부분, 특히 19세기를 포함한 그 이전의 서양미술사에 담긴 대부분의 작품은 성화(聖畵)였고, 그것 또한 대부분의 주제가 사람들을 교화시키기 위한 기독교적 에피소드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독 순교, 예수의 수난 등이 신자들의 신앙심을 상기시킬 수 있는 자극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주제였음은 굳이 증명치 않아도 되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성스러움의 가호를 받는다는 면에 있어 보다 다른 차원의 고통으로 수용(왜곡)되어 왔다. 

  문제는 그것이 세속의 영역으로 들어왔을 때였는데, 칼로, 한스 율리히 프랑크,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야의 예를 들며 손택은 “감정에 상처를 입히는 병적인 잔인함” 앞에서 사람들이 “큰 노력”을 요구받는다고 했다. 하지만 사진이 발명된 이후, 등장한 ‘작품’이라 회자되어 왔던 사진들 중 일부가 연출이었다는 후문이 드러났을 때 우리가 갖는 실망감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듯하다. 그리고 피사체와 사진작가, 그리고 피사체와 ‘우리’ 사이의 밝혀지지 않은 거리와 관계, 아니 사실 규명될 수 없는 관계가 ‘우리’를 피사체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효과도 사진은 갖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은 ‘실제’가 될 수 없다. 1862년 10월, <뉴욕타임스>의 논평이다. “브로드웨이를 가득 메운 산 자들은 앤티텀에서 죽은 자들에게 별반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만약 이제 막 전장에서 죽은 채 돌아온 자들이 길가에 뉘여 있었다면, 사람들은 서로 밀치며 달려가 정신없이 저 대로를 뒤졌을 것이다. 그리고 한 무더기의 여성들이 모여 들어 조심스럽게 한 명씩 꼼꼼히 살펴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진들이 자아내는 멜로드라마에 저항하지 못한다.” 즉, 우리는 반응하나, 그 정도가 미심쩍은 것이다. 

  게다가 사진은 몇 가지 부정적인 면을 그동안 비판받아왔다. 이는 사진에 반응하는 ‘우리’가 아닌 사진 그 자체나 작가의 의도에 대한 비판이다. 독일의 소설가 윙거를 인용한 구절이다.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매우 꼼꼼히 보존하려는 행위와 자신이 지닌 무기로 적들의 위치를 정확히 몇 초, 몇 미터 단위까지 추적해 그들을 섬멸하려는 행위는 모두 똑같은 사고방식에서 수행된다.” 윙거는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와 사진을 찍는 행위를 등가물로 봤다. 

  또 하나는 피사체와 직접적 관계를 맺는 사람의 권리와 관련된 문제이다. 손택은 2002년 초에 파키스탄의 카라치에서 일어난 미국 저널리스트 다니엘 펄 살육사건을 예로 든다. 펄은 납치범들에게 잡혀 있다가 자신이 유대인임을 자백하도록 강요하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줬지만 처형당했다. 그 장면이 동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올라왔고, 논쟁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한 비극을 겪은 바 있다.) 논쟁은 미망인에 대한 권리(이는 분명한 예의이다.)와 대중의 알 권리 사이를 교묘하게 가로질러갔다. 

  다른 하나는, 아마 전쟁을 겪지 않았거나, 문명권에서 대체로 양호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훨씬 의미하는 바가 큰 논점일 것인데, 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촬영된 기근, 대량학살, 장애 등의 사진은 한편의 비극적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손택의 말마따나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이 사진을 통해 전 세계로 조장된다. (그러나 실은 문명화된 ‘그들’의 안방에서도 유사한 사건은 지속되어왔다.) 물론 실제 그런 일들은 일어나고 있으나, 그것이 과연 보편적인 일이겠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평범한 답조차 쉽게 구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폭풍>에 실린 구절 하나를 곱씹어봐야 한다.
  “영국 놈들은 절름발이 거지한테는 단 한 푼도 주지 않지만, 죽은 인디언을 구경하는 데에서는 한 푼의 열 배도 아깝게 여기지 않으니 말이야.” 고통과 충격에 익숙해지는 인간의 정신적, 신경적 반응도 간과할 수 없다. “충격은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충격은 점점 엷어지는 것이다. 혹시 그렇지 않을지라도, 그런 사진들을 더 이상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사진이 ‘시각적 등가물’로써 ‘우리’의 기억들, ‘우리’가 잊으면 안 된다고 여기는 역사적, 집단적 교훈들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6.25 전쟁과 같은 민족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기는 대다수의 남한 사람들(북한의 전형적인 도발에 발끈하며 다시금 민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주전파도 우리나라에는 얼마든지 있다.)에게 폭파된 한강의 다리, 끔찍한 전투의 장면 등은 분명 우리의 교과과정에서 지우면 안 되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반면, 인천상륙 작전과 관련된 사진에서는 남한군과 미국군의 우세함, UN가입국들의 참전에 대한 아련한 연대감, 세계의식 등이 상기된다. 이는 전쟁에 대한 연민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다. 다른 이데올로기에서 만들어져 전혀 다른 기능을 하는 사진이라는 뜻이다. 손택은 미국의 경우를 고발하며, 그녀를 비판하는 미국의 ‘애국주의자(혹은 보수주의자)’들이 공격할 여지를 남긴다. 그녀의 신랄한 문장은 이렇다.
  “미국인들은 저곳, 그리고 미국이 개입되지 않는 곳에서 행해진 악을 사진으로 찍기를 더 좋아한다.” 괄호 속의 말은 더 신랄하다. “미국은 그야말로 독특한 나라이다. 건국 이래로 사악한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려는 그런 나라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사례만 조금 바꿔 생각해보면 ‘우리’도 미국과 비슷한 경우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로렌스 바이틀러의 <린치당한 토머스 쉽과 에이브럼 스미스>라는 충격적인 사진이 책 139페이지에 실려 있다. 미국인들은 나무에 매달린 두 구의 주검을 바라보며 기념사진 찍을 때처럼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는데, 검열과 애국정신의 압력 속에 쉬이 꺼내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가장 ‘반(反)한국적’이라는 비난을 들은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도 타민족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핍박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그나마 이주노동자들이 ‘빨리빨리’문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전부이다.) 다행이도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에는 아예 ‘인종주의’가 하나의 대주제 중 하나로 분류되어 상세히 논의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애국과 도덕, 시민의식 사이의 애매모호한 혼동과 왜곡이 존재한다. ‘우리’는 사진을 그렇게 보고, 사진은 ‘우리’에게 그렇게 어필하는 것이다. 

  손택은 충격적 사진(분명 그것은 우리에게 윤리적 감각을 상기할 것을 제시한다.)들을 보는 ‘우리’의 개인적 자세에서 그것을 생산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 가령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는 사진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만드는 문제들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접근한다. ‘우리’는 분명 매우 스펙터클한 사회의 구성원이다. 그런 ‘우리’에게 어필하려면 사진도 스펙터클해야 한다. 손택이 인용한 워즈워스의 서문 중 하나에 도시로 집중되는 사람들은 ‘감수성의 붕괴’를 겪어야 할 것이라 적혀 있는 것이 실현된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들, 특히 이미지들이 쏟아지고 있는 문명권의 삶에서 사람들은 차라리 (무의식적으로, 스스로) 무감각해진다. TV의 여파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사진이, 그 어떤 이미지가 우리에게 ‘환상’이 아닌 ‘실제’로 다가올 수 있을까? 아니, 이런 상황을 바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일까? 사진을 둘러싼 낭만적인 반응들은 혹 거짓이 아닐까? 막상 사진이 상기시킨 것들 앞에서 ‘우리’가 무능력한데, 연민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진전시회는 길어봤자 2~3시간, 책은 덮으면 끝, 모니터도 끄면 끝이다. 이미지는 상기시켜야 그 기능을 할 가능성을 갖는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부족한 연민, 사건 앞에서의 괴리와 무능력은 우리의 ‘관심’과 결부된다. 손택의 말처럼 ‘우리’는 ‘그들’이 겪은 바를 겪지 않았다면 결코 이해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이것을 아는 것이 양심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속적인 관심을 보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사건들이 보도되지 않는다는 까닭에 묻히거나 ‘증발’하고 있겠지만 1인 대 대중의 소통이 점차 증가하고, 기술적으로도 용이해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관심과 시선의 확장을 긍정적으로 내다볼 여지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칸트가 ‘절대선’이라 말한 것이 막연하게나마 있다면 바로 그것에 대한 희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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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회 - 평등이라는 거짓말
대니얼 리그니 지음, 박슬라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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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07 

  지난 계절학기 한 종교관련 강의의 마지막 수업시간. 교수가 맨 앞줄에 앉아 있던 남학생에게 “이제 강의도 다 끝났는데, 남은 방학 어떻게 보낼 건가요?”라고 물었다. 남학생은 이것이 자신의 대학생활 마지막 강의였다며 취업 전에 해야 할 여러 “스펙 쌓기.”를 할 것이라 웃으며 대답했다. 스펙이라. 이를테면, 책날개에 적힌 작가소개의 분량을 늘려보겠다는 것이다. 스펙을 확장시키면, 아니 책날개를 화려하게 장식하면 책이 잘 팔릴 확률은 높아질까? 자신의 노력에 비례하면 좋겠으나, 실은 그렇지 않다고 술회되는 것이 오늘의 사회이다. 삶의 건축가로써 자신의 이름을 건 막중한 사명감을 짊어진 젊은이들이 처한 문제는 비단 스펙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정작 인생의 내실을 돈독히 해줄 철학과 성찰의 기로에서 그들은 스펙에게 압도당한 ‘보이지 않는 가치’의 씁쓸함을 달래며 총체적인 이중고를 겪고 있다. 

  <나쁜 사회>는 그런 사회를 말한다. 열망하는 이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나, 기회는 적다. 이 둘의 불일치는 점점 증가(Richard Cloward, Llyod Ohlin)하고 있다. 이것이 “갖지 못한 이들”, 혹은 “할 수 없는 이들”이 절망을 갖는 이유이다. 더불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세계를 반으로 갈라 높은 곳을 하늘, 낮은 곳을 땅으로 만들었다는 이집트 신화의 내용이 와 닿는 시대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은 무형과 무색의 공간이고, 우리가 마치 그곳에 속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간극(gab)이 점점 벌어지는 현상을 일컬어 저자는 ‘마태 효과(Matthew Effect)’라고 부른다. 이는 사회학이 주목하기에 앞서 과학계에서 등장한 용어로 이것이 담고 있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성경의 마태오 복음서 13장 12절을 읽으면 바로 알 수 있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 효과가 처음으로 제시된 곳은 과학계이다. 한 학자는 자신의 연구서를 통해 “유명 대학에서 높은 연구실적을 내는 교수들은 연구실적 수준은 동등하지만 보다 덜 유명한 대학에 소속된 교수들보다 훨씬 큰 명성을 부여받는다(Diana Crane).”는 결론을 내려 기성 과학계의 명성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과학은 능률을 우선시하며, 비교적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연구가 진행되는 학문이다. 그것이 강점이지만 마태 효과에 따르면 맹신할 바는 되지 못하는 듯하다. 다른 분야에 비해 적은 것이 통계 상 사실일지는 모르나, 몇몇 대안적 공간이나 관계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인간의 분야’에서 크레인의 연구서는 보편적인 설명이 된다. 누구나 누적 우위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약간의 예외는 있겠다.  

  누적 우위의 덕을 많이 보는 성(性)은 남성이다. 여성의 사회적 성공이 드문 까닭은 성차별에 있고, 이를 일컬어 ‘마틸다 효과’라 하는데, 이것을 주장한 학자(Margaret Rossiter)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누적 열위’의 상황에 빠져 있다고 했다. 아직도 충분한 권리를 확보하지 못한 대다수의 여성들은 사회 진출의 초입에 서서 남성보다 더 많은 핸디캡을 받고 있는 것이 자명하다. 

  독서 중 몇 가지 생각을 해봤는데, 최근 열성적인 팬을 확보하며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인 <슈퍼스타 K3>에서도 마태 효과의 사례가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물론 ‘스타(star)’라는 것이 재능과 외모를 동시에 겸비한 ‘보기 드문’이들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나, 재능이 외모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이들이 단순히 “예쁘지 않기 때문”, 혹은 “잘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탈락하는 현상을 곱게 볼 수는 없다. 그 예로 <슈퍼스타 K3>의 Top4에 진출한 크리스티나는 다른 그룹(그녀는 유일한 솔로이기도 했다.)들보다 팬이 적었고, 외모도 출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탈락하게 되었다. 가창실력, 퍼포먼스, 잠재력 등 전문가들의 평가에서는 최고의 점수를 받아온 그녀는 결국 그녀를 외면한 팬들의 ‘위력’을 실감하며 아쉬운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이와 같은 여성 외모와 관련된 논란은 매우 비근한 사회적 논쟁 중 하나로 외모를 실력이라 보는 현대사회에서는 쉽게 식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근 3년간 조금씩 공부한 미술을 포함해 모든 예술 분야는 물론이고, 대학, 학술기관, 국제과학기구 등에서도 마태 효과의 암울한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다고 저자는 언급했다. 모든 마태 효과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므로, 가령 저자가 제시한 것처럼 수많은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학계에서 명성을 가진 자가 몇몇 논문들을 보증함으로써 얻게 되는 정보취급의 용이함 같은 것들은 적잖은 긍정적 효과를 내므로,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 맹신하면 안 된다. 단,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상당량의 마태 효과는 개인이든 집단이든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거의 대다수의 주체들에게 긍정적 효과 이면의(혹은 예상외의) 타격을 준다. 최근 ‘차이메리카’를 노리는 현 중국 정부가 지니고 있는 최대 난제 중 하나로 국가와 국가 간의 마태 효과를 들 수 있는데, 중앙정부 주도의 경제정책 속에서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중국의 여러 부호들이 미국과 유럽으로 대거 이민을 가는 현상 앞에 야심만만한 중국은 가만히 앉아 발을 구르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리그니는 몇 가지 분야의 마태 효과를 통해 그것이 “사회의 모든 면을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의 진실”이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강하게 인지시키고자 했다. 그 첫 번째 분야가 바로 기술인데,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의 저자로 유명한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기술은 더 많은 기술을 불러온다.”는 말로, 그가 이 용어를 알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으나, 기술 분야의 잠재적 마태 효과를 역설한 바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社의 산업계 표준화가 기술의 누적 우위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인데, <표준전쟁>이라는 책을 보면 천문학적인 이득을 놓고 표준화 경쟁을 벌이는 직류와 교류의 피 말리는 전쟁을 확인할 수 있다. 기술력이 정보의 저장과 취합을 더욱 빠르게 만들어주는 현대사회에 있어 기술력의 차이는 정보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인터넷 이용자 수가 비교적 많은 지역에서는 “누구나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이점으로 말미암아 이용자 간 정보의 격차는 줄어드는 반면, 인터넷 이용자 수의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대다수의 후진국은 점점 빠르게 벌어지는 선진국과의 국가 간 정보 격차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한 예로 세계인들이 모여 만들어가는 인터넷 대(大)사전인 위키피디아(Wikipedia)에서는 여러 언어들을 제공하는데, 영어와 유럽 대부분의 언어, 중국어, 인도어, 일본어, 한국어 등이 대체적으로 양호한 편인 반면, 세계의 주요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 방대한 검색사이트를 이용하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두 번째 분야는 경제인데, 이 분야의 누적 우위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감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누적 우위를 지연시키는 억제요인들도 있다. 인권주의와 평등주의에 입각한 대안적 경제정책이 좋은 예이겠고, 누진과세와 상속세 등 경제 상위층의 재산을 사회에 분배시키는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도 있으며, 유명인사들의 이타적인 자선사업도 있다. (단, 자선사업의 경우에는 그것을 통한 여러 이득이 축적된다는 면에서 누적 우위를 심화시키는 우회로가 아니냐는 이견으로 반박될 여지가 있다.) 리그니는 마태 효과를 다루며 자신의 철학을 확고히 하기 위해 자신은 “극단적인 사회적 불균형이 인류의 안녕과 공익에 유해한 영향을 미친다는 도덕적 전통에 입각”한 입장에 서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닌 대다수의 도덕적 철학은 사회적 현상에 반(反)하는 경우가 많듯이 우리는 리그니의 생각에 대개 동조하나, 그가 설명하는 마태 효과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개탄하게 된다. 이미 한 세기 전부터 경제와 사회분야에서는, 특히 노동이나 착취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와 베버, 엥겔스 등이 ‘자가증식적 피드백 고리’를 규명한 바 있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중심에는 “돈이 돈을 번다.”는 관습적 전통이 자리하고 있다. 리그니는 막대한 재산을 대물림 받은 사람들을 일컬어 “날 때부터 당첨 복권을 쥐고 태어난 사람들”이라 묘사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열심히 일하면 누구든 돈을 벌 수 있는 사회라면 마키아벨리가 말한 ‘Virtus’, 즉 ‘능력’을 기르기 위해 얼마든지 자유경제체제에서 역경을 헤쳐 나갈 각오를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Fortuna’, 즉 ‘운’도 있다. 그것은 리그니가 말한 ‘복권’과도 같다. 만약 능력중심의 사회에서 재산의 대물림이 금지되어 있다면 교육이 순자산의 차이를 유발(Asena Caner, Edward Wolf)한다는 주장은 그 문장 자체로써만 성립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높은 교육을 받을 충분한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순자산을 더 확보한다면 우리에게 더 많은 어필을 하는 것은 ‘Virtus’일까, 아니면 ‘Fortuna’일까. 물론 개천에서 나는 용들이 사회에서 활약 중이거나, 곧 사회에 진출할 이들의 야망과 희망을 북돋아주긴 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잡은 가능성의 끝에서 기다리는 사회적 결과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확신을 주지 못한다. 

  격차의 불평등(gab inequality)은 한 학자(Glenn Firebaugh)가 만든 용어로 이는 이른바 ‘승자독식의 사회’를 설명한다. 우리가 ‘준비하는 아마추어’에서 자신이 진출하고자 하는 분야의 프로가 되는 것을 유럽 프로축구리그와 비교해서 생각해보자. 이미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적인 팀들, 가령 맨체스터 시티, 레알 마드리드, 첼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은 만약 원하기만 한다면 스타급 선수들을 매 이적 시장 때마다 영입할 수 있고, 최소한 영입의사를 타진하여 언론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유명한 팀들만 이런 호사를 누리는 건 아니다. 돈만 있어도 가능하다.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의 후원을 받는 올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승격팀 퀸즈 파크 레인저스는 그다지 인지도가 높은 팀이 아님에도 천문학적인 자금을 바탕으로 숱한 이적 루머를 뿌린바 있다. 중동의 오일머니를 보유한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리그팀들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UEFA와 FIFA 등 세계 축구의 각종 규정을 만드는 국제기구에서는 자금이 획일적으로 이동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증가하며, 하위권 팀들이 감당하기 힘든 부채를 인고해야 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재정적 페어플레이 제도를 마련했다. 구단주가 투입하는 돈이 아닌 구단의 순수 수입금(선수이적료, 상품판매, 입장료, 대회참가비, 중계권료 등)만으로 구단이 운영될 수 있게 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미지수이다. 

  여기서 마르크스의 말이 적절하게 인용될 수 있겠다. “부유한 국가는 가난한 국가를 착취한다. 심지어 후자가 교환을 통해 이득을 볼 때도 그렇다.” 독과점은 말할 것도 없고, 지역 상권을 몰아내는 대형 유통업체들의 ‘규모의 경제’는 개인의 빈익빈 부익부가 사회적 규모로 늘어난 것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것들이 순환적 인과 관계 속에서 지속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러한 현상은 악순환이 된다. 중국의 요순시대를 말하는 오늘날 사람들은 그 시대를 회자하며 의식주에 대한 걱정이 없으니 왕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며 낭만적으로 ‘경제적 순환’의 이상향을 그린다. 이것이 사회체제의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대사회의 이상향이기도 하다. 

  이러한 빈곤, 아니 악순환의 피해자인 하층민과 별다른 희망을 갖지 못하는 중산층이 빈곤에서 탈출하고자 해도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몇 가지 장애요소들은 어찌 보면 대단히 사소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근한 것들인데, 리그니는 “적절한 의료관리와 영양공급, 교육, 운송수단,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의복과 외모, 사회적 또는 언어적 능력의 부재” 등을 들었다. 이를 갖추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개인의 비용은 상당하다. 이것은 개인이 아닌 국가에도 해당한다. 예를 들어 동아프리카의 저개발국들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몇몇 경제적 주체들, 예컨대 대기업들이 정부 권력과 유착하여 국가의 경제 영토를 장악하는 과정을 우리나라의 지난 반세기와 같이 겪어야 하는데, 이는 인과적 악순환의 시작과 같다. 이렇게 권력을 차지한 경제적 주체들은 ‘준봉건적 정치제도’라는 함선에 타게 되며, 경제적 우위를 계속 유지한다. 한 다큐멘터리에서 박경철, 그리고 안철수 교수가 지적한 우리나라의 난제가 이를 반증한다. 

  이처럼 정치는 경제와 거의 분리할 수 없고, 유사한 과정으로 마태 효과가 지속된다. 영화 <천사와 악마>에서 원작자 댄 브라운은 바티칸을 “은행(Banko)”이라고 바라본다. 국가도 마찬가지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데, 기업과 다른 점은 정당화된 무력과 강제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이 점에서 국가는 가장 강력한 기업이라고 할 만하다. 국가의 정치가 경제인들의 마인드와는 다르게 작용할 수 있는 몇 가지 상황에서도 국가는 기업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렇다 할 정치적 대안이 없고, 야권이 여권을 공격하는 정세에 많은 이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하더라도 ‘차기 주자’는 반드시 당선된다. 이는 두 가지 정치적 마인드로 이뤄지는 하나의 쇼이다. 하나는 지지율이 높은 후보를 선택하는 밴드웨건 효과, 다른 하나는 지지율이 낮은 후보를 동정심 때문에 선택하는 언더독 효과이다. 이렇게 지지율을 얻으며 누적되는 우위는 결국 후보자를 당선자로 만들어주고, 당선자는 정치적 우위를 이어간다. 문제는 이것이 인종과 민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치 싸움일 경우이다.
  “형사법제도에서 나타나는 계급편향적 인식은 인종 프로파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로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편향적 태도와 관련이 있다.” 

  백인과 흑인의 불평등은 이미 유명하다. 국가는 기업이므로 누적 우위를 갖고 있는 이들을 지지한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이면서도 백인의 나라였다. 호주도 마찬가지이다. 주도적인 민족들은 거칠 것 없는 역사를 이어간다. 제국주의와 민족주의는 모두 이런 기로에서 등장한 시대적 이데올로기였다. 반면, 누적 열위에 놓인 민족들은 점점 악화되는 상황 속에서 정치적 편향을 체감하며 갱생할 기회를 거의 누리지 못한다. 이런 차이는 개인과 집단의 경제적 누적 열위의 상황으로 이어지고, 아마 그 부분에서 결정적으로 그들을 옭아맬 것이다. 

  이는 한 민족 내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며, 대체적으로 누적 열위의 상황에 처해진 집단은 민족의 차이와 상관없이 악화되는 환경 속에서 허덕이게 된다. 그런 까닭에 21세기의 중요 화두 중 하나로 ‘재분배’가 등장한 것이다. 리그니가 언급한 도덕적 전통에 입각하자면 양극화는 척결되어야 하는 세태 중 하나이므로 재분배는 모름지기 전 인류가 동참해야 하는 대업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수에 속하는 이들은 재분배를 촉진시키는 누진세를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진세 개혁을 주장하는 이들은 자유주의자들이라 불리나, 막상 자유주의자에 속해야만 할 것 같은 이들은 누진세 개혁을 전면적으로 찬성하면서도 그들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도덕적인 이유로 “부자가 더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보수와 자유 사이에는 비례세, 공정과세 등 대안의 담론들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문제는 많이 가진 이들이 ‘책임지는 부자(responsible wealth)’이기를 꺼려한다는 것에 있다. 리그니의 말마따나 “가난한 이들에게 1달러는 배부름과 굶주림을 가르는 중요한 자산이지만 부자들에게 1달러는 그저 푼돈”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원칙적 누진세는 중산층과 고소득층에게 유리하게 마련된 역진세로 인해 효과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는 비판을 받아오고 있다. 상위층의 세금회피 행위가 때문에 최근 엄청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강호동이 이 문제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것과 마찬가지로 최근 남미에서는 마라도나가 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 

  마지막 분야는 교육이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읽기 능력 개발에 있어 환경적 우위 또는 열위가 선천적인 능력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는 다시 말해, (가장 최악의 경우일) 선천적 능력을 가진 아이가 환경적 열위에 빠져있을 경우 그의 읽기 능력 개발은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잠정적 결과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한 학자의 주장(Craig Howley)이다.
  “취학 시기에 근소한 정보에 불과했던 읽기 능력과 관련 지식 및 기술의 격차는 전반적인 학업 성취 수준에서는 대단히 큰 격차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리그니의 말처럼 “배움이란 기존 지식을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이기에 초기에 뒤처진 학생들은 이후로도 다름없이 열세를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고, 또 다른 학자의 주장(John Coons)처럼 “인위적으로 우위를 확보한 자손들에 의해 ‘우수한 이들’의 대물림이 일어나게”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낙인이론’을 인정한다면 우등반과 열등반으로 나눠 공부하는 학교와 평준화 학교 사이의 차이를 유심히 들여다봐야 한다. 미국에서 발행된 한 <고등교육연보(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2006)>에 따르자면 미국은 “역사상 지금처럼 출신 대학이 사회계급층을 결정했던 시절이 없었던” 누적 우위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데, 대학의 서열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제 아무리 고등교육 무렵까지 평준화를 진행한다고 한들 최종 학력에 따라 사회적 결과를 이끌어나갈 가능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거시적인 시각에서 우리의 평준화는 구멍 난 양말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사실 이 분야의 누적 우위와 열위 문제는 여타 분야에 앞서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육의 제도적 평준화는 한 개인이 사회에 진출하기까지 진행되어야 하는 밑거름이다. 누구는 고졸 후 기술자가 되고, 다른 누군가는 대학 졸업 후 박사학위까지 마쳐야 하는 목표를 가지겠으나, 도로를 모두 닦아준 뒤 자신에게 맡는 도로를 선택하게 하는 것과 애당초 누군가에게 암묵적으로 “이 길은 당신이 아마도 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압력을 넣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면밀히 살펴보진 않았지만 들은 바에 따르면 프랑스가 이와 같은 제도의 표본이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직업의 귀천은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다. 직업은 “모두가 동등한 것”이라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투자와 관련해 그것의 경제적 보상까지 고려해야 하고, 분명히 기술과 능력의 상관관계의 영향을 받는 개념이다. 하지만 사회적 결과는 차치하고 우리는 길을 걸을 가능성을 보장받아야 하는 도덕적 전통의 사명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제도가 확립된다면 마태 효과를 둘러싼 비근한 두 가지의 관점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기능주의자들의 입장에서 직업에 따른 불평등한 보상은 필수적이다. 인재가 소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등주의자들은 “왜 인재가 소수일 수밖에 없는가?”의 문제를 두고, 많은 이들이 가능성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호소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두 입장을 융합하여 하나의 윤리적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인류의 경제는 분명 희소경제이며, 제로섬 게임에 입각해 있다. 그것이 인류의 생리라면 그로부터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이성적으로 극복할 대안도 적용될 수 있다. 리그니의 표현대로 “자신이 일으키지도 않은 거대한 파도를 날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들보다 불운한 사람들은 그 파도에 휩쓸려 아래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상황은 이타주의, 정부의 개입, 평등주의 등 실행 중이거나 곧 실행될 제도적 원칙들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해결 국면에 접어들곤 했다. 만약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인류에게 모두 적용될 수 있는 절대적인 선이 있다면 그것은 도덕적 원칙에 입각한 여러 제도들을 세포로 하는 하나의 큰 몸체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거인을 지속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안철수 교수가 말한 것처럼 “문제인식의 공유”가 없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다시 재기하기 부끄러워질 수도 있겠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비근하다고, 혹은 상투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후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록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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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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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0

 신촌로터리에서 만난 친구와 느닷없이 헌혈을 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먹을 것 대신 우산을 받아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집에 없을 겁니다. 비올 때에만 찾게 되는 것이라 어디 부러지고 구멍 뚫려도 새로 살 생각을 못하게 되니까 말입니다. 우산 입장에서는 족히 섭섭하고도 남을 일이나, 누가 알까요. 


  잡아두고 싶은 추억은 매정하게 잊히고, 잊고 싶은 것들은 열정적으로 살아남습니다. 신촌에서의 기억도 서서히 희미해지는 듯합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한 권의 책도 모가 떨어지고 헤졌습니다. 제목은 <허삼관매혈기>인데,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면 “판타지 소설이니?”라는 질문이 되돌아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면 “좋은 책이니까 그냥 읽어봐.”라고 웃으며 손에 쥐어줬습니다. 언제 이 책을 처음 샀는지는 기억조차 없습니다. 광화문 교보를 안방 드나들 듯 했던 무렵이고, 아마 대학교 초년생이었을까요. 책을 좋아하지만 깨작깨작 반찬 집어먹는 것처럼 독서를 했을 때였는데, 웬일로 이 책은 단숨에 읽어버렸습다. 생각해보니 눈물도 참 많이 흘렸습니다. 울려고 샀던 것은 아니라, 뜻밖의 깨달음을 얻어 마음이 한동안 울렁거렸습니다. 군대에 가서도 많이 읽었고, 많은 친구들에게 빌려줘 읽게 했습니다. 책을 다시 건네주는 표정들은 하나같이 밝았습니다. 


   위화(余華)의 소설입니다. 그의 글은 간결하고, 해학적이고, 슬픔을  참고, 뜨겁고, 한편으로는 지극히 냉정합니다. 반찬이 몇 첩 없는 밥상 같습니다. 하지만 반찬은 모두 맛있습니다. 오미(五味)가 모두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요. 한 아버지의 뚝심 같은 자녀사랑이 중국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훑어지나가며 극적으로 펼쳐집니다. 군대에 가면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남정네들 사이에서 울음 참아가며 버겁게 읽으면서도 위화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큰 위로가 됐습니다. 그날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부모님 목소리가 더 아련해지는 날이었습니다. 앞이 막막하여 살고 싶지 않을 때가 있으면 한 번 바라보고, 시간 나면 한 번 더 읽어볼 수 있는 책이 있어 남들처럼 무사히 2년을 보내고 나온 기억이 지나갑니다.   


  아버지 허삼관은 아이들을 위해 피를 팔아 돈을 법니다. 무슨 내용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첫 대목에 묘사된 우악스러운 그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가 뽑아내는 피를 보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몸이 허약해져 쇼크로 쓰러진 뒤에도 피를 뽑으려고 하자 의사가 “망할 놈의 자식”이라며 허삼관을 욕하지만 그는 “그게 아니라, 내 아들 때문에……”라며 말을 흐리죠. 40년간 피를 팔아 집안 문제를 해결하던 그는 소설 마지막 즈음에 “당신 피는 가구 칠감으로 딱 알맞다니까.”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심한 굴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울기 시작합니다. 집안의 문제가 생기면 또 어떻게 하나. 이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이 허삼관의 아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 그리고 아내 허옥란을 찾아가 빨리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보러오라 재촉합니다. 모든 일을 다 떠맡고 가족을 키워 지금은 심한 가난에서 벗어났지만 허삼관은 연신 걱정입니다. 아이들은 그 마음도 모르고 동네창피라며 울고 싶으시면 집에 가서 우시라고 합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따끔하게 혼을 내시죠.
  “너희들은 너희 아버지가 피를 팔아 키운 거란 말이다.”
  훈계는 계속 이어지고, 내용은 절절합니다. 허삼관의 오랜 속내가 마침내 아내의 입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위화는 짠해지는 독자들의 마음을 훈훈한 허삼관의 저질스러운 농담으로 끝냅니다.  


  부모님이 겪으신 지난 시절의 역경은 저에게 한 편의 추상화와 같습니다. 들여다보기 힘들고, 들여다봐도 도무지 그 깊이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으십니다. 저와 동생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게 하시기 위해 당신께서 흘리신 땀은 드러내신 적이 거의 없습니다. 어쩌다 여쭤보면 삶의 교훈 삼아 말씀해주실 뿐입니다. 저에게는 그간 못해준 것들만 말씀하십니다.  


  어느 철학자(하이데거일 겁니다.)가 “사랑은 완전한 개방이다.”고 했습니다. 이따금 싫다며 밀쳐내고, 귀찮다고 입을 닫으면서 진심 아닌 투정들을 부려왔지만 부모님은 언제나 열려 있는 문이셨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무슨 용기가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머쓱해서 그랬던 것일까요. 점점 야위어가는 부모님의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두려움이 일어 무서운 꿈을 꾸는 때가 예보다 잦아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 마음을 헤아릴 즈음이 되면, 그땐 너무 늦었겠지만, 위화의 허삼관 이야기가 또 어떻게 다가올지 까마득합니다. 허삼관은 가족과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위화는 따뜻한 뉘앙스로 마무리합니다. 저 역시 같은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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