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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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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6일


    푸념. 우선 옮긴이의 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독자가 푸코와 라캉, 르장드르에 대해 사전 지식을 갖고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삶이 사회화되는 과정에 대한 지적 호기심, 성찰의 욕구가 있다면 읽을 수 있다.” (909쪽) 저자 사사키 아타루도 (특히 라캉 부분에서) 거듭 말한 바인데, 독자의 자질이라는 것이 있다. 단순한 지식의 양을 일컫는 말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를 언급한 것이리라. 시각은 위험하다. 물론이다. 무엇이 시각을 구축했느냐의 여부가 문제다. 따라서 이 책은 사전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나 같은 이는 읽을 만하긴 하지만, 반면 여기서 언급될 라캉, 르장드르, 푸코 등 우리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세상을 기저에서부터 뒤흔들고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색안경을 낄, 그런 태세를 얼마든지 갖추고 있는 이들이 읽을 만한 하진 않다. 그것은 옮긴이 안천의 저 문장 중 후자에 해당한다.


    나는 어느 정도 욕구를 충족했다. 또 다른 욕구가 결핍을 낳는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여기서 시작될 여정은 여타의 독서로 도움을 받을 테니. 그러나 이 충족에는 피할 수 없는 푸념의 묘한 맛이 섞여 있다. 피하고 싶은 맛은 아니나, 굳이 사서 맛보고 싶은 맛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사회화되어 있는지는, 내가 이 사회에 어떻게 끼어들어가 있는지는 저들의 시각을 빌려 알게 되었다. 그 맛이 씁쓸하다. 그 전략적 장치들이, 아주 오래된 기술들이 만든 픽션의 견고함 속에 내가 들어 있다. 그 역사의 도박장 속에. 이걸 남에게 설명하기도 사실 뭐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개인’으로 취급된 적은 적었던 듯도 하다. 내게는 번호가 붙어 있고, 관리되는 상황이고, 규율 속에서 장기간 ‘조정’ 받은 적도 있었다. 자유롭다는데, 그걸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 속에서 함께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유수 인문학자들의 날카로운 일갈로 “그래, 우리 사회는 그런 거였어.”라고 무릎을 친 적도 있다.


    그래서? 어디로 가자는 건가? 만약 내가 가다머였다면 분명한 어조로 “우린 우리 시대 바깥을 볼 수가 없어.”라고 대답하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었으니 “그건 아주 오래된 세계의 판본에 지나지 않아.”라고 반문할 것이다. 새로운 것은 없다고. 그런데 이렇게 알아본 결과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한다는 것일까? 저자가 ‘이로(理路)’라고 칭하며 제시한 이 두꺼운 논거들이 분명하게 말하는 바, 끝은 없다. 이제 ‘○○의 종말’이라느니 끝이 보인다느니 새 시대를 준비해야 된다느니 하는 말 따위에 나는 속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 유치한 선언은 아마 그런 만큼이나 확고하게 오래도록 내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종말이라고 말한 자들이 선언한 새 시대도 르장드르의 표현대로라면, 또 하나의 ‘판본’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그걸 판본임을 모른 채 “오, 새 시대여, 내게 축복을!”이라고 외치는 게 살기에도 더 편하고. 하지만 이 책은 위험하다. 끝이 없다는 말만큼이나 우릴 막막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그렇지만 『야전과 영원(夜戦と永遠)』을 40여 장의 이면지에 꼼꼼하게 적어 곱씹고 고민하며 읽어온 나의 이로(理路)를, 아니, 정정한다, 나의 ‘이로(泥路)’를, 그 진흙탕길을 다시 한 번 돌아봐야겠다. 쓰다보면 이 책을 덮은 나의 첫 번째 막막함이 그래도 풀어지진 않을까, 이런 또 하나의 막막한 희망이다. 이 막막함은 상당히 물리적이다. 그렇다. 여기까진 술술 써내려왔는데, 이제부터 뭘 써야하는 것일까. 여기까지의 나와 이 아래의 나 사이에는 어떤 서어(齟齬)가 있을지도 모른다.




*   *   *




    말년의 라캉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털어놓은 ‘보로메오 매듭’을 시작으로, 우리는 들여다보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처음으로 돌아간다. “당신의 처음은 무엇인가?”라는 도통 의미를 모를 질문을 받는다 하자. 물론 의미를 모르겠다는 건 ‘처음’의 정확한 지점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라캉은 그걸 <거울>을 보는 시점이라 말한다. 거울을 보지 않은 말을 모르는 이, 그것은 인판스이다. 전제 군주, 그것도 아주 포악한. 미술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히에로니뮈스 보스의 세계”(44쪽)라고 설명하면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시기가 있냐는 거다. 저자는 그걸 소행적 도출일 수도 있다고 분명히 경고한다. 나도 사실 라캉의 이 분석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환희와 증오에 대해서는 딱히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만화 <호문쿨루스>를 본 사람은 생각해봤을까? 주인공은 욕망이 발달한 부분이 유독 크거나 눈을 달고 움직이는 기이한 세계를 보는 눈을 갖게 된다. 나는 저 원초성이 거울 앞에 선 이에게 그려지는 이미지이며, 주인공의 눈은 그 거울의 면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은 접고, 다시 정리하자. 방금 논한 건 상상계의 일이다. 내 모습을 사랑하면서도 저 정지된, 죽은, 결여된 이미지를 보고 “바로 ‘너’가 ‘나’라니!”하며 놀란 가슴에 자아(소타자)를 공격하게 되는 이 막다른 골목 말이다. 이건 어떻게 끝나는가? 우린 저기서 살고 있지 않지 않은가? 여기서 상징계가 나온다. 판사의 판결봉. 대타자가 선언한다. ‘너는 ○○○이다.’ 상상계가 진짜의 개입, 즉 실정법의 개입으로 쓸모없는 망상이 되어 사라져버린 건 당연하다. 정신분석이 다루는 게 사회 속에 있는 걸, 개인의 병은 그리하여 사회의 병인 걸, 하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선언에서 더 이상 더 갈 길이 없다. 라캉은 인간의 법을 언어의 법이라 결론한다. 그런데 저 둘은 닮았다. 법과 언어의 상징계에서 대타자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언이란 “너는 죽는다.”이고, 이미지와 애증의 상상계에서는 아예 거울 속의 소타자 자체가 죽음의 이미지다. 소타자에 대한 질투와 시니피앙의 무한 엔진, 그 용광로 같은 열광도 닮았다. 메커니즘이 유사하다.


    그렇다면 실재계는? 이건 없는 세계다. 세계는 상징화를 통해 구성되는데, 이것 때문에 못하게 된 것, 상실된 것, 그것이 실재계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우연을 기다려야 한다. 외상과의 우연한 조우가 있으면 주체는 주체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조우’를 뭐라 부르는가? 라캉의 네 접점 중 세 개, 즉 대상 a의 잉여 향락, 팔루스의 향락, 대타자의 향락이다. 향락은 쾌락과 다르다. 긴장을 재생산하며 지속하는 것이다. 라캉이 그 예로 든 그리스도교의 성인(聖人)들의 행동은 다소 충격적이다. 떨림과 긴장이 교차하는, (굳이 쓰자면) 똥 먹기, 나병 환자 씻긴 물 마시기, 이런 것. jouissance란 곧 죽음의 충동과 같다. 여기서 절대적 향락을 주목하자. 이 신화적인 향락은 근친상간, 살인의 금지와 딱 붙었다. “그건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고 싶다.”라는 긴장. 금지는 하라는 것이기도, 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충동을 치수(治水)하는 게 계율이다. 합법적 향락 만들기 프로젝트.


    팔루스의 향락도, 대상 a의 잉여향락도 모두 향락의 조정기, 즉 레귤레이터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것은 신체 기관에 대한 향락, 권력에 대한 향락, 그리고 찌꺼기에 대한 향락이다. 이런 것들이 합법적이라고? 물론이다. 팔루스의 향락은 상징에 대한 향락이다. 페티시즘과 무한 권력욕이 비합법적인가? 찌꺼기라도 향락하자는데, 가벼운 도착 행위, 여자옷 입기나 남자옷 입기나, 아니면 유니폼을 갖춰 입은 이 일상이나 그런 것들이 죄가 된단 말인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이 ‘코스프레’ 사회가? 아니다. 그럴 일은 없다. 단, 라캉이 이런 향락들을 모두 뒤로 하고 언급한 고귀한 향락이 하나 있다. 바로 여성의 향락, 대타자의 향락이다. 이 단어만은 끝까지 기억하고 이로를 따라가야 한다.


    우선 르장드르의 비판은 견지해놓자. ‘여성의 향락’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도교적이다. 그들의 신은 남자가 아닌가. 여기서 <여성>은 지극히 제한적 용어다. 사실 나는 이런 사람을 실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현실에 없는 건 아닌가 생각까지 해봤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법열에 든 여성을 본 적이 없다. 신을 사랑한다고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그게 신앙의 확증이요, 과시요, 또한 희열이라면. 그러나 정말 신을 사랑하여 저 베르니니의 조각상에서처럼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신비로운 그 표정을 한 여성은 못 봤다. 신과의 연애. 그 불온함. 신을 연모하는 그녀들의 말은 상징계에 속하지도 않아서 라캉은 그걸 ‘라랑그(Lalangue)’라는, 잘 모를 용어까지 고안해내며 “언어는 바깥을 내포하고, 언어 바깥에서 비로소 언어가 된다.”(207쪽)라고 말한다. 사실 이 의미를 잘 모르겠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안다는 뜻도 아닌 게, 그건 어쩌면 언어가 닿지 않는 곳이 있으리라 생각하는,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원제 : Die Weld Des Schweigens)>를 읽고 난 후 내가 갖게 된 어떤 감각적 추정, 아니 경외심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추억은 접고, 여하튼 이 향락을 추구한 신비주의자는 마리아가 되려고 했고, 그것은 사회와 세계를 낳는 진정한 혁명. 여기까지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정신분석은, 라캉은 여러 비판을 받지만 그래도 이 ‘여성의 향락’을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건 용감한 시도였다는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죽음의 냄새로 가득한 라캉의 방에서 창문을 열고자 ‘표상과 시체 : 하이데거·블랑쇼·긴츠부르그’라는 괄호의 장을 마련해 “표상은 시체다.”, “우리는 인형이다.”, “이것이 니힐리즘인가?”, “우린 원래 그렇다.”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새 인형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어느 정도 환기시킨다. 답답했던 라캉의 장에서 그렇게 작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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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로 넘어왔으니, 당연 르장드르는 정신분석을 맹비난하는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 아니다. 딱 옳다. 그러나 계보적 구축과 규범 시스템을 밝혀낸 공로는 인정한다. 그리고 사실 르장드르가 자신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도그마 인류학’의 그 ‘도그마’를 추출해내는 지점도 정신분석 비판의 안에 있었으니, 둘의 관계를 독자인 우리가 아주 삐딱하게 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럼 대체 도그마란 무엇인가?


    우선 르장드르도 상상계와 상징계의 붕괴를 말한다. 대타자와 소타자, 시니피앙과 이미지의 구별이 없으니 라캉의 저 <거울>이란 건 말과 이미지가 섞인, 아주 치밀하게 조립된 장치일 것이다. 그런데 라캉이 광학적 기능을 한 <거울>을 말했다면 르장드르는 더 나아가 그걸 사회와 엮어버린다. 사회=<거울>. 이미지는 그냥 비춰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거울> 면에 텍스트와 함께 직조‘되어’버린 것으로, 거울은 곧 텍스트가 된다. 우리도 텍스트다.


    그러면 남는 질문은 “대타자도 <거울>로 볼 수 있는가?”이다. 우리를 제어하는, 우리를 선언하는 자를, 아니, 신을? 신이 눈에 보일 리는 없다. 보인다면 우리와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대타자에게 “너는 ○○다.”라고 선언할, <거울>로 비춰줄 대타자는 없다. 신의 <거울>에서 보이는 건 세계다. <거울>을 봤는데 세계가 보인다니! 이런 (르장드르의 표현대로라면) ‘미친’ 상태는 분명 신화적이다. 따라서 신이라는 건 모든 거울보다 앞서 있는, 앞서 존재하는 <거울>이다. 이걸 르장드르는 <절대적 거울>이라 부른다. 이게 그의 도그마다. 인과성도 없다. 근거도 없다. 설명도 필요 없다. 그런데도 인과성과 근거와 설명이 개시되는 것. 이것이 바로 도그마적 <거울>이다. 인간은 여기서 만들어지며, 이것의 구체화가 엠블럼이고, 엠블럼이 우릴, 군중을 움직이게 한다. 아니, 우리가 엠블럼이다.


    이 도그마를 알았으니, 진짜 이런 게 우리에게 있는지 알아봐야할 차례인데 사실 별로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 있다. “근거율은 예술이고, 근거는 미적·감성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295쪽)라는 말은 별 설명 없이 도그마적으로 설치된 엠블럼이 우리의 생사를 좌지우지하기까지 하는, 예로 들게 되면 아주 비근해지는 역사적 사례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이건 도저히 논리적이지 않아도 되므로 ‘자명한 일’ 역시 아니다. 왜 ‘1’을 ‘1’이라고 세는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최초의 시니피앙을 도입하는 것, 그 공허한 장소를 염두에 주는 것. 정치 기술들은 분명 이런 도움을 받고 있다. 근거율과 인과율이 분할되어 있다. 르장드르의 이 말은 법의 말로 분류된 우리 사회가 “그건 왜 그런 겁니까?”라고 묻는 순간 사상누각이 되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제시한다. 그러니 증거가 되는 텍스트에도 우리는 반문할 수 있다. 아, 진리는 없는 것일까? 그리하여 텍스트만 있는 것일까? 르장드르는 그래서 책 제목도 『텍스트의 아이들』이라 한 것일까?


    법의 말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수취(收取)하는, 르장드르의 이로를 따라 엄밀히 생각해보면 맞긴 하나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모래 같은, 나약한 이 모습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르장드르가 하나의 ‘판본’에 지나지 않는다며 일격에 산산조각, 그 파편으로 만들어버리는 유럽의 긴 역사를 목격해야 했다. 사실이다. 난 그를 전혀 몰랐다. 라캉이나 푸코는 대학에 '들어는 본' 정도였고, 푸코는 약간 읽기도 했지만 르장드르는, wikipedia 검색도 순탄치 않은 그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무너져버린 ‘도그마 인류학에서의 아버지’라는 개념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게 무너져버리는 모습에 무섭기도 했다. 아주 교묘한 책략과 “아버지가 아이를 낳는다.”라는 픽션과, “닮은 자가 닮은 자를 낳는다.”라는 오래된 법의 문구를 인용한 르장드르의 의도가. 흡사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모든 이가 죽어도 “<거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존재해야 한다.”(341쪽) 왜? 그게 삶을 다듬으니까. 이 위험하고도 피비린내 나는 도박판이, 다름 아닌 역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서움은 안도, 절반 정도의 안도로 바뀐다. 결론은 이거다. 르장드르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 저 판본을 만든, 도그마의, 텍스트의 힘을 무시하는 자가 원리주의자다. 그는 전제적인 폭군이 된다. 나-텍스트의 경계도 구분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귀결된다. 오늘 우리는 그 모습을 본다. IS는 지난해 가장 뜨거운 단어였다. 그런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소격하는 자, 소격을 천명하는 자가 필요하다. 그렇다. 해석하는 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꾸란>이 “죽여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진짜 아무나 죽이라는 건가? 텍스트와 우리 사이에는 소격이 있어야 한다.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법자의 세상이 된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르장드르의 ‘도그마 인류학’에 따르면 우리는 제정되는 주체, 재설정되는 주체, 그렇게 무한 반복되는 주체들이다. 이렇게 주체가 만들어지는, <거울>과 주체의 관계를 ‘의례’라 부른다. 우리는 이 의례가 없으면 진짜로 ‘말’이라는 걸 할 수가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게 반드시 말일 필요는 없다. 춤이어도 된다. 언어적인 것만을 법이라 여기는 건 너무 유럽적이다. 이런 분위기는 <중세 해석자 혁명>이라 부르는 것에서 출현했다. 르장드르는 여기서 그레고리우스 7세의 개혁에서부터 법학자의 국가, 즉 법치국가의 출현에 이르는 역사를 설명하며 문자화된 법이 갖게 된 절대적인 위력을 보여준다.


    그 결말은 그리스도교의 교회법에서 세속화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단, 우리가 아는 그 세속화는 아니다. 종교와 떨어진 그것이 아니라, 여기서의 세속화는 “종교 자체의 본성과 관련된 광대한 연극적 총체의 일부”(377쪽)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 말자. 그리스도교의 규범 공간이 더 오래 살아남고 싶어서 알리바이를 깔아놓은 것 정도로 생각하자. 유럽이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던가? 역사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아!’ 할 것이다. 신앙의 자유가 어디 진짜 자유던가? 세속화된 근대국가에 종교가 없던가? 이 정도로 말이다.


    여기서 결론이 나온다. 국가는 찰나다. 명운은 끝났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절대적 준거>가 만들어낸 한 형식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 형식주의는 사회과학의 위력과 함께, 기능주의의 추상과 함께 <국가>라는 개념이 소탕되는 소란을 틈타 같이 소멸된다. 그리고 실제로 국가의 멸망을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우리를 ‘지배’하는 건 반드시 <국가>일 필요는 없다. 이 세계화의 시대에. 그것은 ‘매니지먼트’가 맡아도 된다. 그리고 매니지먼트는 국가를 비난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떳떳해진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면 우리 앞에 놓인 문제는 이거다. 매니지먼트는 믿을 만한가? 필연적인 결론인가?


    아니다. 저자는 살만 루시디 사건을 조망하는 벤슬라마를 잠깐 거쳤다가 다시 르장드르로 돌아오면서 매니지먼트의 보편성은 인정될 수 없다는 논조를 강력하게 조명한다. (벤슬라마도 중요하다. 원리주의-종교의 구별에 대해 논하기 때문이다. 이는 푸코의 말미에 다시 등장하는 문제이므로 기억해주는 것이 좋다.) <중세 해석자 혁명>이 가동시킨 텍스트의 정보화를 신봉하는 그들은 계보 원리는 몽땅 국가에게 떠넘겨놓고는 <법 권리>까지 밀어내려고 하는데, 이것이, 그러니까 과연 민영화가 재봉건화와 다를 바가 뭐가 있다는 것인가? ‘경영자-상사-부하’가 ‘주인-종자’와 뭐가 다른가? 우리도 그렇게 툴툴거리는데.


    게다가 이들은 “물음의 제도의 폐지를 고하고”(407쪽) 있다. 근거율이자 <거울>이자 소격인 ‘왜’, ‘사랑’, ‘자유’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건 국가주의자의 말이 아니다. 국가는 죽어도 된다. 하지만 해석은 살아야 한다. 텍스트는 얼마든지 픽션이 된다. 그것은 도박이다. 역사의 도박이다. 끝나지 않는 도박. 이 도박장에서 우린 살아남아야 한다. 절멸 금지. 이 도박장에서의 춤, 즉 법과의 열광적인 춤은 바로 사회와 세계를 낳는다는 라캉의 ‘여성의 향락’과 닮았다. 갱신의 희망은 얼마든지 남아있다.




*   *   *




    드디어 푸코다. 아니다. ‘갈팡질팡하는’ 푸코다. 저자와 함께 그 변화를 따라가는 과정에서 나는 어떤 종류이겠는지를 잘 모를 감동 같은 걸 받았다. 진하진 않다. 푸코를 비난하는 쪽에서 들려온 이 세계의 목소리를 아주 모르는 바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도 옹호해야 할 부분과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부분을, 가만히 멈춰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판단은 우리 몫이다. 하지만 일단 그 이로는 따라가야 한다. 초기의 푸코에서 후기의 푸코에 이르는 긴 길을 사사키 아타루는 정말 그대로 걸어간다. 설정했다가 폐지했다가 그럼에도 계속 고집을 이어가기도 하고, 아이처럼 맨손으로 정치 문제에 덤벼들었다가 ‘된통’ 당하는 그 모습을 거의 여과 없이 보게 된다.


    곁가지를 다 쳐내는 위험을 감수하자면, 푸코는 주권권력, 규율권력, 생명권력의 구분과 이후 그 구분이 ‘통치성’이라는 개념으로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이로를 갖고 있다. 초기의 푸코는 주권권력을, <주권=법 권리>의 개념을 일관되게 비판했다. 너무 낡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가 『감시와 처벌(원제 : Surveiller et punir)』에 제시한 권력은 규율권력이었다. 고문, 살해, 추방의 의례도 아닌, 죄와 관련된 기호를 각인시켜버리는 상징 설치도 아닌, 바로 감옥에 넣어 신체를 훈련시키는 규율. 이 책에서 푸코는 결론짓는다. 권력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만인을 본다. 권력의 기계. 장치. 기계. 정교함으로. 벤담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감옥은 실패하지 않았는가? 범인들이 더 이상 안 들어오던가? 아니다. 그건 범죄를 필연적인 요소로 설정하여 그 비행성을 감시하도록 한다. 아주 교묘하다. 그 positive가.


    이런 까닭에 푸코가 정신분석을 그렇게도 비판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주권적 메커니즘이 지배하는 ‘가정’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뒀으니 “너희들은 낡았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규율 권력의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정신의학의 여러 전략들을 꼬집는데, 아홉 개나 되는 항목을 읽고 있으면 주변에 정신의학 전문가나 지지자들이 있는 건 아닌지 눈치를 보게 되는 문구들이 산재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사사키 아타루는 갑자기 선언한다. “푸코는 옳다.”(542쪽) 권력의 주구(走狗), 앞잡이, 개 정도로 정신분석이 격하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인류학과 사회학 역시 같은 범주에 집어넣고 비판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제시된다. 근친상간, 인육식, 그의 상징과 같은 마리 앙투아네트 사건, 자위박멸 캠페인, 핵가족 고안(등장이 아니다. ‘고안’이다.) 등등. 정신분석은 부르주아에게, 사회학은 서민 계급에게 명령하며 사회를 만들어간다. 푸코는 분명하게 말한다. “금지는 틀림없이 지식인이 발명한 것입니다.”(557쪽) 그런데 규율에는, 푸코가 말한 그 권력에는 바깥이 없으니 안에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회는 이제 안으로, 미시적인 수준으로 봐야 한다. 그 안에서 투쟁의 울림소리를, 전쟁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던 푸코가 돌연 ‘생명 정치’라는 걸 발견하는 순간이 온다. 그건 그가 인종주의와 마주한 순간에 찾아온 개념으로, 인종주의-국가의 연결이 일어난 시에이예스의 ‘나시온(민족) 투쟁의 국가화’가 연관되어 있다. 홉스 비판에서 인종주의까지 연결되는 건 당연한 절차인 듯하다. 사회가 전쟁인데, 그 전쟁이 실제 어떤 판도로 일어나고 있는가를 고찰한 거니까. 그런데 이 ‘생명 권력’이라는 것이 묘하다. 규율 권력처럼 신체에 관여하여 훈련시키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 큰 규모를 상대하기 때문이다. 바로 인구이다. 이 생물학적 집단에 관여하는 생명 권력은 폭주할 수도 있다. 원자 폭탄의 사례, 유전자 조작과 바이러스 생산의 사례. 이 권력은 대체 누굴 ‘죽일 수’ 있는가? 바로 인종주의가 여기 개입한다. 이어 나치스가 나오는 건 불 보듯 뻔하다. 전면적인 죽음으로 가는 국가. 자살 국가. 르장드르도 이런 국가는 없어야 한다고 했다.


    궁금하다. 과연 저 두 권력의 교차점에는 뭐가 있을까? 바로 성(性)이다. 신체와 인구의 교차점이지 않은가. 바로 이 성이 규격화 권력의 대상이요, 항상 감시 받는 대상. 성은 억압받지 않는다. 주권권력과 관계가 없으니까. 그리고 성 담론이 활성화되는 역사적 사례가 소개된다.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 ‘진리 말하기’가 되는 현상까지도. 여기서 푸코가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권력의 법적·부정적 표상과 결별”(621쪽)하자는 것이다. 그건 네거티브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푸코는 흔들려 있다. 주권권력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주권=법 권리>를 논하며 나치스를 비판하던 그 모습은?


    푸코가 ‘통치성’이라는 것에 주목한 1978년 2월과 그 이전의 푸코는 분명 다르다. 통치성은 주권권력, 규율권력, 생명권력에 이르는, 그가 영토-신체-인구로 나눠 서로 다르다고 했던 세 시기에 고루 들어 있다. 통치술이 문제가 된다. 모든 시기가 그랬던 것이다. 주권과 영토를 중심에 둔 그리스의 신은 이제 그리스도교 사목의 ‘목인’이 되어 16~18세기 통치술의 출현 배경이 된다. “모든 양을 위해 일부 양을 희생하는 사목”(653~654쪽)인 국가이성이 있고, 또 하나로는 사법·군대·외교 이외의 모든 것을 의미하는 폴리스가 있다. (여기서의 폴리스는 아직 police, 경찰이 아니다.) 이윽고 출현하는 자유. 경제학, 자유주의, 자유의 출현으로 통치는 이제 자연에, 아니 경제에 철저하게 준거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 ‘자유주의’라는 새로운 통치성은 ‘작은 국가’를 표방한다. 국가가 손대지 못하는 대상을 지정하는 것이다. 이제 진리는 사법의 권한이 아니다. 시장에서 형성되니까. 진리는 가격이니까. 그런데 이런 자유주의도 실은 조작이다. 우리도 그건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자유가 우리를 옭아매는 저 단어의 ‘역겨운’ 역설 말이다. 자유는 만들어진 것이다. 세큐리티 시스템이란 바로 그걸 효율적으로 만드는 장치다. 그것은 일상의 위험을 언급하여 우리를 규율적 생명장치인 자유의 안에 가두는 한편으로는 위험을 감수하고 “자, 어서 시장으로 나와라.”라고 설득한다. 자유의 생산은 통제의 생산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신자유주의라는 것은 다름 아닌 시장의 가능성을, 그 힘을 확고하게 만드는 장치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것 밖에 없다. 과연 시장에게 국가나 사회를 만들 만한 강력한 힘이 있는가? 구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시장의 교환 기능은 이제 필요 없어졌다. 교환은 다 하니까. 신자유주의에서 시장은 그것보다는 경쟁의 장소가 된다. 가치냐, 균형이냐 하는 것 따윈 버려둔다는 것이다. 우리도 알지 않은가? 경쟁과 독점, 그 특권적 형식이 뒤범벅되어 있어 아주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때론 그 성공의 신화를 우러러보게 만드는 이 시대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민영화의 폐해를. 우린 그 위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직면할 수밖에 없다. 왜? 자유가 이미 강제됐으니까. 창업가의 사회다. 벤처. 그렇다. 여긴 벤처의 사회다. 용감히 도전하라. (그 뒤는 알아서 하라.) 이건 통치술의 효과다. 사회가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다고? 픽션일 뿐인데. 저자는 푸코의 입을 빌려 헛소리는 집어치우라고 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그것은 픽션이기에 전복될 수 있다.


    규율적 생명정치. 실은 이것은 르장드르가 말한 의례 역사의 한 판본에 불과했다. 유럽의 판본. 푸코도 이를 깨닫고는 규율적 생명정치가 “거의 다 종교적 의례를 그 기원으로 한다.”(699쪽)고 수정했다. 이제 푸코는 새로운 권력이 나와 낡은 권력을 소멸시킨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여러 통치술이, 여러 장비가 마련된 역사의 도박장을 그린다. 그리고 이란혁명 때 시아파를 지지한 까닭에, 그 믿었던 이란이 끔찍한 사형을 연이어 실시한 까닭에 푸코는 엄청난 비난을 받지만 이미 깨달은 뒤였다. 낡은 것은 없다. 이슬람의 혁명적 힘을 가능케 한 그 종교의 빛이 정치무대에서는 사라져버림을.


    여기까지 온 푸코가 향한 곳은 저 먼 그리스였다. 사목 권력도 안 되더라는 것이다. 제한 없는 복종을 강제하던 그 통치와는 다른 통치가 필요했던 까닭일까. 푸코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중시한 그리스·로마의 통치에서 철학과 영성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 고무되었던 것도 같다. 여기서 생존의 기법, 자기에의 배려, 자기도야=문화=숭배, 이런 말들이 나오며 사회적 실천과 국가 통치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곧 폐지한다. 그런 고대의 문화도 실은 트렌드였으며 처세술이었음을 지적하면서. 저항과 혁명을 그것이 보증하던가? 그게 매니지먼트 문학과 뭐가 다른가? 자기계발이니, 정신세계이니. 이제 푸코에게 남은 유일한 문제는 소격을 유지시키는 몽타주의 여부다. 그 장치가 있어야 원리주의가 아닐 수 있다. 르장드르와 벤슬라마가 다시 소환되며, 원리주의-종교의 명확한 구분 가능성이 언급된다.




*   *   *




    괄호와 결론과 보론. 『야전과 영원』의 후미를 이루는 이 세 개의 장에서 나는 다소 난잡한 형상을 목격했다. 지금도 그 광경 탓에 떨리는 마음을, 가누지 못할 것 같은 심정을 강제로 달래는 중이다. 이렇게 글로 쓰면서. 괄호는 들뢰즈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범한 실수와 이를 『천 개의 고원』의 서문에서 시인하는, 즉 그 무엇도 끝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모습이 묘사된다. 동요하는 자본주의에서 혁명이 가능하다고 제시된 그 분열병적인 미래주의, 혁명 프로그램은 실은 불가능했던 것임을. 오직 투쟁은 라캉의 ‘여성의 향락’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결론에서 다시 소환된 들뢰즈로부터 우리는 언표-가시성의 분리와 그 둘의 강제적인 조우를, 역사상의 우발적 형성과정을 듣게 된다. 이건 르장드르가 앞서 말했던 텍스트와 다르지 않다. 제 3자와 같다. 다이어그램, 기계, 장치, 몽타주 등으로 불리지만 가시성-언표의 이 관계는 잡다한 문맥에서, 잡다한 다이어그램에서 마구잡이로 (하지만 대단히 세심하게 고안된 계획에 따라 치밀하게) 가져와 섞어 구축되는 새 다이어그램의 정착을 보여준다. 그것이 소멸한다고? 다시는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옆으로 날아간다.”(767쪽) 이 표현이 딱 적절하다. 이미 존재했던 건물(가시성)이 범죄행위에 대한 언표와 조합되어 감옥이 되는 것은 ‘감옥 만들기’ 다이어그램에만 속하는 과정이 아니니까.


    저자는 이렇게 멀게 돌아온 이유를 여기서 말한다. 푸코와 르장드르와 들뢰즈와, 이 셋과 라캉의 물고 물린 비판의 구도는 “그들을 모두 불러 모아 한 식탁을 준비하기 위해”(770쪽)서였다고 말한다. 무슨 식탁? 내부에서 내부를 만들어내는 <바깥>의 식탁. 창조라는 도박의 행위. 다이어그램의 새로운 고안. 아니, 그것보다는, 나는 이 표현이 참으로 마음에 드는데, <밤>의 한복판에서 추는 텍스트와의 열광적인 춤 무대, 그 영원한 야전. 라캉을 빌리자면 바로 ‘여성의 향락’의 식탁. 소격의 진리를 견지한 자들이 펼치는 무한의 도박장. 그 역사를 본 것이다.




*   *   *




    그렇다면 과연 그 도박판에 뛰어든 사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이것저것 가져다가 새 다이어그램을 만들고는 “새 시대가 열렸다!”라고 선언하는 식으로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에 한해서 말하자면, 돈만 있으면 될 것이다. 사실 그 이상을 생각하는 건 어렵다. 하지만 푸코가 본 이상적인 도박 참가자는 따로 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디오게네스를 가로지르는 사유에서 그가 건진 것은 견유학파다. 형이상학, 즉 다른 세계의 문제를 탐구하는 정신이 있다. 다른 하나는 ‘생존의 문체론’으로, 이는 삶의 다채로움을, 다른 삶의 문제를 본다. 들뢰즈를 봤으니 하는 말인데, 이는 가시성과 언표의 문제이니 서로 떨어져 있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견유학파는 이 둘을 동물성=단련으로 연결시켜버린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푸코가 ‘초역사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까지 이 견유학파를 들여다봤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전회였을까. 초역사적 견유학파. 어느 시대에나 있다는 그 개들. “진리를 난폭하게, 폭력적으로, 파렴치하게 표명하는 삶의 양태에 관한 사상”(796쪽)인 그것이 우릴 다른 삶으로 이끈다. 이 집요한 개들이. 저항의 초역사성이. 타자의 감시와 자기의 감시가 같은 개의 삶이, 반항하는 주권자인 개의 감시를 통해서 우리는 저 도박판에서 씻겨 나갈 뻔한, 수도 없이 그럴 뻔 했던 소격의 진리를 수호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이고 주석과 후기를 끝으로 책을 덮었다.


    이건 무엇일까? 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문자들을 타이핑하며, 그저 마음을 좀 달래보겠다는 심산으로 서문과 본문과 이 맺음말 사이의 하루 이틀 간격의 서어를 반복하면서, 인정하긴 싫은 마음이긴 하나 도박을 해온 것이란 말일까? 그렇다. 나는 다이어그램을 만들 줄 모른다. 뭘 내걸어야 상대와 승패가 걸린 역사의 한복판에서 서있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이라고 생각하고, 내가 느끼는 안심에 대해 굳이 변론해야겠다. 『야전과 영원』으로 갖게 된 새로운 눈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 읽은 이들이 여기까지 나의 진흙탕길[泥路]을 따라와 줬다면, ‘무슨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는가?’라는 들리지 않는 질문에 나처럼 대답할 마음이 있지 않을까? 개처럼 살겠다고. 집요한 개로 <밤>을 살면서 텍스트와 영원한 <춤>을 추겠다고. 언젠가 이 말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오겠다는 심산으로, 아직 나는 어리다며 유보해본다. 나는 대체 어디로 초대된 것일까.





p.s 몇 가지 오타로 보이는 것이 있어 지적한다. ① 인명 표기의 오류다. Emmanuel Joseph Sieyès의 음역이 두 개로 나뉘어 있다. '시에예스가' 579쪽에 나오고, 586쪽에는 '시에이예스'라고 되어 있다. 서로 다른 인명의 병기는 혼란을 줄 수 있다. 물론 시에예스든 시에이예스든 이 책에서는 딱 한 번만 짧게 나오지만. ② 집단명 표기의 아쉬움이 하나 있다. 보통 우리는 '수니파'라고 한다. sunnah에서 연원한다면 '수나파(703쪽)'라고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단명은 보통 'sunni'라고 한다. 더 엄밀히 표기하자면 '수니파'보다는 '수니 이슬람'이라고 밝혀주는 것이 더 좋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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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철학의 역사 - 위대한 전술과 인물들, 개정증보판
조나단 윌슨 지음, 하승연 옮김 / 리북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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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3



    소심한 사춘기 소년이던 내가 학년을 거듭할수록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었고 군대에서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축구 덕분이었다. 축구는 내게 ‘조직 속의 역할’이라는 것을 직접 체득하게 해줬다. 개인기와 스피드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만 숭배하던 어린 나에게 팀을 위해 일정부분 희생하는 법과 팀에 녹아들기 위해 끊임없이 마음 쓰는 법을 알려줬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리고 알면 알수록 축구는 어려워졌다. 신체와 본능을 믿는 직감적 축구에서 타인을 믿는 보다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면 이제 그 타인들과 어떻게 움직이느냐하는 문제에 부딪힌다. 그래서 축구는 전술로 완성된다. 축구팬들은 금요일 밤만 되면 ‘치맥’을 시켜놓고 느긋하게 자신의 팀을 응원하지만 필드에서는 두뇌와 육체의 전쟁이 펼쳐진다.


    대체로 그런 듯하다. 아는 만큼 보이게 된다. 지질학자들은 등산을 할 때 대다수의 산객들이 지나치는 암반의 표면을 보면서 근처 지역의 나이를 들여다보게 된다. 별자리를 아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밤하늘에서 더 많은 것을 본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수많은 책들이 연결되어 있는 거미줄 같은 책의 세계가 마음속에 그려진다. 만약 누군가가 “축구에 대해 아는 만큼 볼 수 있으려면 뭘 먼저 알아야 하죠?”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축구전문가들은 전술을 조금 공부해보라고 권할 것이다. 화려한 플레이와 웅장한 사운드가 TV 모니터에서 반복적으로 나올 때마다 우리의 눈은 그러한 것들에 홀리기 마련이지만 축구는 기본적으로 ‘누구를 어디에 배치시켜 어떤 지역에서 어떻게 움직이게 하느냐’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축구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이래 거의 140여 년 가까이 이어져왔다. 실패에서부터 일보 전진하는 우리의 삶과도 닮았다. 또한 축구의 지략가들은 전술을 예술, 과학, 문화 등과 같은 경지로 이끌었다. 축구를 제대로 보려면 그걸 알아야 한다.


    8~90년대 독일과 이탈리아 축구에 관심을 가졌던 지금의 4~50대 우리나라 해외축구팬들은 사실 소수였다. 유럽 축구를 중계해주는 다양한 채널도 없던 그 시절에 그들이 해외잡지와 별로 양도 많지 않던 소식통으로 바다 건너의 선진 축구에 관심을 가졌던 건 정말 대단한 열정이 아니면 할 수 없던 일이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나와 같은 2~30대 해외축구팬들은 정말 복 받았다. 남아 있는 영상과 축구계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차붐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을뿐더러, 우리는 박지성, 이청용, 기성용, 손흥민, 그리고 이승우로 이어지는 한국 축구의 아이콘들을 직접 TV와 경기장에서 목격할 수 있다.


    선진축구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시대보다 높다. 그런 이 시대의 축구팬들, 그리고 축구를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일반인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적절한 안내서가 필요하다. 딱딱한 전술 이야기와 훈련법에 대한, 너무 전문적인 것 같은 인상을 풍기는 그런 책 말고, 소설처럼 지루하지 않은 책. 조나단 윌슨의 <축구철학의 역사(원제 : Inversting the Pyramid)>가 딱 적격이다. 옮긴이 하승연 씨는 ‘축구오덕’이다. 대단한 열정을 갖고 번역했다. 두꺼운 책인데다 조나단이 예로 든 수많은 축구 일화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연 생소할 수밖에 없는데, 술술 읽히도록 완역해냈다는 점이 읽는 내내 가슴 뜨거워지게 했다. 같은 ‘축구 유전자’를 공유하는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이 책은 축구가 드리블 위주의 초보적 단계에 지나지 않았던 19세기 후반부터 시작해 최근 전 세계 축구 감독들에게 과제처럼 내려진 “바르셀로나 이기기”와 그것을 성취한 “바이에른 뮌헨 이기기”의 판도까지 훑어나간다. 열정으로 쓴 책이고 열정으로 번역된 것이니, 나 역시 모르는 것들을 하나둘 검색해가며 그림 그리고 메모하는 열정으로 읽었다. 완독한 이라면 그 누구든 축구경기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조나단의 책은 축구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명저다.




*    *    *




    말했던 것처럼 초기의 축구는 지금 보면 거의 엉망진창인 수준이었다. 아니, 비꽈서 말하자면 ‘영국적’이었다. 패스나 수비, 조직력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드리블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끝이었고, 행여나 공이 멀리 가버리면 골키퍼까지 뛰어가서 공을 잡으려고 아등바등했다. 놀랍게도 골키퍼가 공을 잡는 걸 페널티지역 안으로 규정한 건 1912년의 일이다. 그러니 축구가 제도적으로 도입되고 약 3~40년 동안 경기장의 광경이 어땠을지 상상하면, 축구규칙을 잘 모르는 여자연예인이 예능프로의 축구경기에서 핸드볼을 해놓고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마냥 웃으며 바라볼 것만도 아니다. 그러던 축구가 어떻게 지금처럼 기술과 전술, 체력과 열정의 치열한 전쟁터로 변한 것일까. 조나단은 그 과정을 이따금 유머를 써가며 장대하게 펼쳐놓았다.


    “축구의 사라지지 않을 매력 중 하나는 축구가 하나의 통일된 유기적 게임으로서 경기장의 한 부분에 조그만 변화가 생겨도 다른 곳에서 예상치 못한 심대한 결과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나단 윌슨, <축구철학의 역사> 74쪽)


    볼을 그냥 앞으로 내지르는 것(흔히 말하는 ‘똥볼’을 차는 것)과 볼을 앞으로 내지르되 그걸 우리 편이 계속 소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개념 자체가 다르다. 전자는 걷어내는 것이므로 볼 소유를 상대팀에게 넘겨줘서 우리 팀이 계속 수비의 부담을 안게 하는 최악의 수다. 후자는 그 반대다. 하지만 과격한 신체 운동의 남성성을 미덕으로 삼던 영국 사람들은 좀처럼 패스앤드무브(짧은 패스 위주의 점유율 축구)를 할 줄 몰랐다. 할 수는 있었지만 그게 뭐가 멋있냐고 생각했다. 이런 축구가 지금의 형태에 아주 조금이나마 근접할 수 있었던 건 추상적 개념으로 축구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동에 무슨 추상이냐고 묻겠지만 그게 엄연한 사실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이는가? 얼마나 아름답게 움직이는가? 영국이 전 세계에 축구를 퍼뜨렸지만 그걸 받은 남미 사람들은 ‘길거리’라는 한정된 작은 공간에서 축구를 하며 어쩔 수 없이 개인기술들을 연마했고, 그게 필드에 나왔을 때는 일대의 파장이 일어났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는 충격적이었던 다이빙 헤딩, 힐패스, 바이시클킥 같은 건 모두 Made In Latin America이다. 노동자들로 구성된 우루과이 올림픽 대표팀이 1924년 파리로 가서 기술축구를 선보이자 유럽은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그게 유럽에 곧장 이식된 건 아니었다. 때가 때였는지라 파시즘 속에서 유럽 열강을 자처하는 나라들은 폭력적 축구를 미덕으로 여겨 상대팀 선수들을 부상 입히곤 했다. 그 시대의 이탈리아와 스페인 축구는 악명 높았다. 정도가 심해 그들을 일컬어 ‘라 푸리아(분노)’라 불렀다. 파시즘은 그걸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미화했다. 1950년대 전 세계를 주름 잡았던 헝가리가 그런 축구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기라도 하듯 완벽에 가까운 기록을 세워갔지만 오랜 성공 가도 속에 안일해져 이후 축구는 삼바, 혹은 카포에이라를 접목시킨 것처럼 화려한 기술축구의 천재들로 구성된 브라질에게 그 주도권이 넘어갔다.


    브라질의 축구 열정은 우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보여줬던 것 이상이다. 우리의 열정도 대단하긴 했지만 사실 브라질 사람들에게는 축구가 곧 삶이다. 우리도 일본을 원정에서 꺾으면 ‘대첩(大捷)’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국가적 승리까지 그 의미를 끌어올리지만, 브라질은 대표팀이 지기라도 하면 팬들이 자살을 하거나 선수들이 살해 위협을 받는다. 종교적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에게 밀려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그들은 공화국 건립 이후 브라질이 겪은 가장 큰 참사라며 대성통곡했다. 당시 결승전이 열린 브라질 축구의 심장 마라카낭(Maracanã)에는 (공식적인 FIFA의 기록은 173,850명이지만) 20여 만 명의 관중이 들어차 있었다. 브라질이 기억하기 싫은 순간이긴 하겠지만 그 시절에 축구에는 처음으로 ‘공격형 풀백’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측면 수비를 보다가 공격 시에는 전방까지 쭉 전진하는 이 특이한 개념은 이후 전술 변화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UFO슛으로 유명했던 호베르투 카를로스, AC 밀란의 전설로 얼마 전 자선경기에서 박지성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 카푸, 현재 레알 마드리드의 핵심선수 중 한 명인 마르셀루 등이 이 개념을 충실히 이행한 역사적 선수들이다.


    이렇게 세계는 변화하는데 영국은 무슨 고집을 그렇게나 부렸느냐, 이게 조나단의 기본 입장이다. 비판조로 쓰인 부분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영국 나름대로 보수적 시스템 내에서 새로운 응용전술을 내놓긴 했다. 최전방에 다섯 명을 배치한 2-3-5 포메이션에서 한 단계 나아간 W-M 포메이션 중 영국 나름의 방식으로 진화한 사례들이 몇 있었다.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3개 구단을 돌며 모두 리그 우승을 차지한, 스코틀랜드 축구의 오래된 영웅인 고든 스미스의 히베르니안, 박지성 팬들에게는 익히 알려졌을 전설 보비 찰튼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현재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 핫스퍼의 옛 시절이 일례들이다. 이때부터 영국도 패스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간은 어떻게 창출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공간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가 보면 그때의 축구는 너무 느리다. 나도 가끔 Youtube에 들어가 전설들의 활약을 검색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도발적인 생각이 났다. ‘저렇게 공간을 내주면 나라도 들어가서 패스하고 슛하겠다.’ 과거 축구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과연 오늘날 숨 쉴 틈조차 없는 압박축구의 전쟁터에서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만큼 현대축구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 속에서 현실에 적응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우리가 본격적으로 (이 책에서) 들여다봐야 하는 건 축구와 압박이 접목된 토탈풋볼(totaalvoetbal)의 시대부터다. 물론 1930년대에 스위스 축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오스트리아 출신의 카를 라판이 ‘베로우(verrou, 빗장)’ 시스템을 선보인 적도 있었고, 1940년대에도 소련 리그에서 시도된 적이 있지만 압박이 중시되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 봐도 꽤 최근의 일이다.


    이런 말이 있다. ‘골을 넣으면 경기를 이기지만 골을 먹지 않으면 우승한다.’ 현대축구에서 수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명언이다. 이것이 명제이므로 축구를 연구하는 이들의 과제는 그 반대가 된다. 골을 넣으면서 우승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래서 최전방 공격수부터 상대팀을 압박하는 ‘전방압박’이 요구되었다. 상대팀 공격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오프사이드 라인 자체를 끌어올리고, 공격과 수비의 간격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실은 무시무시한 전술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줘야 한다. 그래서 스포츠 과학과 영양학의 발달이 축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들 말하는 것이다. 만약 저 말대로 아마추어 동호회 축구인들이 경기를 하면, 체력이 비교적 좋다는 가정 하에 말하건대 골키퍼를 제외한 선수 전원이 10분 내에 토를 하면서 쓰러질 수도 있다. 그런 축구를 네덜란드에서 해냈고, 그 중심에는 지금도 가장 위대한 축구 선수 중 한 명으로 회자되는 요한 크루이프가 있었다. 1970년대 초에는 쉴 새 없는 로테이션으로 상대팀을 압박하고 상대팀 진영에서 재차 공격을 시작하는 토탈풋볼의 네덜란드가 세계를 제패했다.


    그에 비해 브라질의 ‘아트풋볼’은 좀 특이하다. 이건 아마추어들이 따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단히 특출 난 선수가 있다면 말이다. 펠레, 제르송, 토스탕, 호베르투 히벨리누 등 오늘날 브라질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고 말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해낼 그 역사적 영웅들은 축구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천재들이었다. 그래서 브라질은 그들에게 “알아서 뛰어라.”라는 지시를 내리고는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를 두고 ‘아름다운 플레이’라는 뜻의 조구 보니투(jogo bonito)라는 말이 태어났다. 이런 경우는 현대축구에서 두 번 다시는 없었다. 압박이 강박적으로 강조되면서 앞서 말한 천재들의 단독 플레이, 심지어는 유기적 플레이마저 허락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가 그렇게 플레이하지 못할 바에야 상대팀 천재들을 필드에서 죽이면 되는 거였다.


    축구의 역사는 각 시대별로 정점에 올라가 있다고 평가받는 구단이나 국가의 축구를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를 고뇌하는 역사다. 그리고 전혀 재미없는 축구를 하면서도 이 과제를 성실히 수행해 놀라운 신화를 만들어낸 나라들이 심심찮게 나오곤 한다. 1998년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브라질을 꺾은 노르웨이가 대표적인 예다. 노르웨이의 상징 격인 에길 올센 감독은 193cm나 되는 플로(Tore André Flo)의 헤딩을 믿고 전방으로 롱볼을 계속 투입하게 했다. 브라질은 말도 안 되는 높이로 계속 대포를 날리는 노르웨이를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고, 카푸, 로베르토 카를로스, 둥가, 히바우두, 호나우두, 베베투 등 최강의 라인업으로 상대했지만 1-2로 패하고 말았다. 축구 전문가들은 충격에 빠졌다. 비슷한 예로 그다지 강하지도 않았던 그리스가 EURO 2004 우승국이 된 적도 있다. 이가 없으면, 축구에서는 잇몸으로도 상대팀을 충분히 물고 늘어질 수 있었다. 전술에 대한 고뇌, 즉 필드의 철학 때문에 가능한 기적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압박이 강조되고 상대팀의 천재적인 선수들, 주로 ‘10’이라는 번호로 상징되는 이들을 막기 위해 현대축구는 자연스레 수비를 강화하는 진일보를 택했다. 아니, ‘진일보’라는 표현을 쓰면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축구전술의 대가들 중에는 아름다운 축구는 1980년대 이후 끝났다고 선언하는 이들이 많다. 심미주의와 낭만주의의 몰락. 더 이상 축구는 신비롭지가 않다. 아름다운 축구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며 지금도 여러 칼럼과 인터뷰에서 현대축구를 비판하는 요한 크루이프는 축구가 윙어를 윙백으로 내리면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주장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쉽게 말해 수비 일변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창의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창의력이 떨어진 건 아니다. 축구천재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크루이프가 비판하는 건 그들이 활동할 실질적인 공간이 필드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 위주의 축구가 축구의 미를 죽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0년대에 들어서서 FIFA는 좀처럼 골이 시원시원하게 터지지 않는, 그래서 재미없어지는 축구 때문에 고민을 해야 했다. 고민 끝에 수비와 관련된 규정들을 더 엄격하게 만들었다. 백태클을 금지한 것이 바로 이때다. 이러한 규정들에도 불구하고 현대축구에서 살아남아 우승하는 팀은 대체로 수비가 강력한 팀이었다. 아리고 사키의 AC 밀란은 전설이다. 수비와 공격 사이의 공간을 무려 25m까지 줄여버린 이 말도 안 되는 전술은 코스타쿠르타, 바레시, 말디니, 레이카르트, 안첼로티, 도나도니, 굴리트, 반 바스텐 등 최강 라인업을 통해 실제로 구현됐다. 이탈리아 리그는 그래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유럽 최고였다.


    축구에서 이제 ‘아트’는 죽었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재미없는 축구를 한다고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는 루이스 판 할 감독은 90년대 네덜란드 아약스의 부활을 외치면서 옛 요한 크루이프 시대의 토탈풋볼을 가져와 현대식으로 개량한 인물이었다. 재밌는 건, 당시에도 재미없다고 비난을 받았다는 거다. 하지만 규율과 의사소통, 팀 빌딩의 삼위일체를 중시하는 판 할 감독의 강점은 수비에 있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골 넣는 것 이외의 일을 시키면서 거의 전 포지션의 선수가 만능의 역할의 소화했다. 팀이 기계처럼 돌아갔다. 더불어 재미는 없어졌다. 지금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비슷하다. 리빌딩 과정에서 구설수에 거의 매일 오르곤 했던 판 할 감독이지만 맨유는 지금 리그 2위다. 그리고 가장 적게 실점한 팀이다.


    유럽에서는 이런 흐름이 이어졌다. 남미는 어떠했을까? 그곳에는 낭만주의가 아직 숨 쉬고 있진 않을까? 라틴인데? 그런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남미도 이상적인 축구의 해답을 기본적으로는 압박에 찾았다. 현재 잘 나간다는 감독들에게는 ‘멘토’와도 같았던 마르셀로 비엘사는 공간을 내주지 않는 축구를 추구했다. 당연히 압박을 중시했으며, 여기에다 세트피스 훈련을 하면서 프리킥과 코너킥 등 정지 상황을 잘 활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압박을 해서 볼을 빼앗되 공격상황에서는 황소처럼 무섭게 적을 향해 돌진하는 기술적 축구를 덧입히려고 했다. 그는 현대 공격축구의 대명사 같은 인물이다. 그가 이끌던 칠레 대표팀의 경기를 본 국내 축구팬들은 분명 그 칭호에 동의할 것이다. 비엘사는 남미 특유의 즉흥성(repenitizacion)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팀은 무시무시한 공격을 감행했다. 문제는 그 전술을 매 경기 쓰는 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런 걸 ‘만화축구’라 부르곤 한다.


    잠시 축구에도 ‘아트’가 귀환했던 적이 있었다. EURO 2000은 그래서 많은 축구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대회였다. 프랑스는 지단, 뒤가리, 앙리, 조르카에프를, 네덜란드는 젠덴, 오베르마스, 베르캄프를, 그리고 포르투갈은 피구, 루이 코스타, 주앙 핀투를 보유했었다. 압박의 시대에 숨을 쉰 적이 있는 보헤미안들이다. 그들의 플레이는 지금 봐도 정말 아름답다. 아니, 지금 그들처럼 아름답게 축구하는 톱스타들은 거의 없다. 이들을 ‘마지막 10번’이라 불러도 괜찮을까. 남미도 현대축구에 역행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 상징은 후안 리켈메다. 한 시대 전에 태어났어야 했던 그는 필드의 고독한 시인이었고, 10번을 질식시키는 유럽 축구에는 맞지 않았다. 우루과이의 레코바도 비슷한 선수였다. 이러한 10번을 ‘엔간체’라 부른다. 미드필더와 공격수 사이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마라도나 이후 다시 나타난 유형의 선수들이다. 이것이 불가능한 유럽에서는 피를로가 나타났다. 안첼로티 감독은 수비수와 미드필더 사이에 이 천재적인 선수를 배치시켜 팀을 후방에서부터 추진했다. (그런 피를로를 질식시킨 ‘현대축구 압박’의 대명사가 박지성이다. 팬들은 기억할 것이다. 퍼거슨 감독의 지시에 따라 박지성은 피를로를 거의 지워버렸다. 맨유는 피를로를 묶어놓고 승리했다.)


    축구의 천재는 상대팀의 수비와 미드필더 공간 사이에서 탄생하는 듯하다. 메시와 사비, 이니에스타, 메수트 외질, 에당 아자르 등 우리가 봤었고 현재 목격하고 있는 세기의 천재들은 다 그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줄 알았다. 현대축구는 ‘안티풋볼’의 오명을 쓰더라도 그들을 막아내려는 유혹을 상대팀 감독들에게 계속 심어준다. 그러다보니 전형적인 10번의 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위치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골잡이는 골만 넣지 않아도 됐다. ‘공격수’라는 개념은 더욱 세밀하게 나뉘어졌다. 시스템에 녹아 골 이외의 공헌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전방압박, 연계플레이, 수비 시 깊숙이 내려오는 헌신까지. 그렇게 폴스나인(False 9)이 태어났다. (사실 몇몇 정상급 구단이나 국가에나 적용가능한 말이지만) 이제 정통 스트라이커는 없어도 된다. 제공권을 노리는 키 큰 스트라이커도 필요 없다. 최전방에서도 세밀한 연계 플레이를 하며 상대팀 수비진을 농락하면 된다. 이를 4-6-0, 좀 더 쉽게 표현하자면 ‘제로톱’이라 불렀다. 이건 가장 최근에 일어난 전술적 변화 중 하나다. 페르난도 토레스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스페인 대표팀은 천재 파브레가스를 최전방으로 올려 세웠다. 그러나 그건 가짜였다. 미드필더의 패스플레이가 상대팀의 문전까지 이어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면서 나는 제멋대로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저건 축구의 정점이다.’ 물론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이후 지금까지 축구는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으로 나뉘어 있다. ‘티키타카’는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때 유행어처럼 번진 적이 있는 스페인어다. 짧은 패스를 수도 없이 하면서 볼을 계속 소유하는 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바르셀로나는 정말 최고였다. 5초 안에 볼을 되찾지 못하면 바로 수비로 전환된다는 점에서는 판 할 감독의 수비 축구와 비슷했지만 그들에게는 다름 아닌 메시가 있었다. 높은 위치의 압박은 비엘사가 가르쳐준 것이었다. 바르셀로나는 볼을 지배하는 만큼 골도 참 많이 넣었다. 그 어떤 팀도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볼 소유 시간을 늘릴 수가 없었다. 반대발 윙어가 배치되면서 드리블에 이은 패스와 슛 시도가 늘어났고, 메시는 폴스나인으로 뛰었다.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들은 키가 175cm를 넘지 않았다. 그런 왜소한 선수들이 세계 정상이 됐다. 그런데 이걸 바이에른 뮌헨은 ‘직선적 버전’으로 해냈다. 롱볼 플레이와 체격의 우위를 섞었더니 현재 세계 최강의 팀으로 군림했다. 같은 리그의 도르트문트는 그런 뮌헨을 상대하기 위해 최전방에서부터 맞불을 놓는 ‘게겐프레싱’ 전술을 썼고, 이를 도입한 위르겐 클롭 감독은 지금 세상에서 제일 ‘핫한’ 감독이다.




*    *    *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종말을 외쳤다. 그러나 지금까지 누구의 말도 적중한 적이 없다.” (위의 책, 564쪽)


    꼭 크루이프를 겨냥한 발언 같지만, 사실 크루이프 말고도 옛날의 축구가 죽었다고 외치는 사람들은 많다. 예술에서도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는 절대주의까지 가자, 러시아의 그 텅 빈 무채색의 그림을 본 서유럽과 미국 예술가들은 “이제 뭘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예술의 종말을 외쳤었다. 그러나 예술은 이어지고 있고, 축구도 그렇다. 앞으로 전술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는 알 수가 없다. 전술의 대가들은 바이에른 뮌헨과 바르셀로나와 같은 최정상 구단의 축구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조만간 그걸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의 선수들과 함께 필드에서 자신들이 성공했음을 입증할 것이다. 축구는 그런 식으로 변화하며, 또한 현실에 적응하는 거대한 세계다. 그리고 매 시대마다 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효율과 아름다움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축구는 푸른 잔디 위에 펼쳐진 인간사의 집약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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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 닫힌 종교에서 열린 종교로, 종교다원주의의 도전
길희성 지음 / 휴(休)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2015.11.20



    일본 작가 나카무라 히카루(中村 光)의 만화 <세인트 영 맨(원제 : セイント☆おにいさん)>은 천만 부 이상 팔린 성공 덕분에 2013년 5월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도 상영됐다. 도쿄의 타치카와(立川)에 사는 룸메이트인 예수와 부처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09년에는 데츠카 오사무 문화상을 수상했고, 앙굴렘 국제코믹페스티벌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둘은 지구에서 휴가를 즐긴다. 예수는 쇼핑을 좋아하고, 부처는 만화를 좋아한다.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맥주도 마시며, 블로그도 한다. 예수가 목욕탕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가 하면, 흥분한 부처의 이마에서는 빛이 난다. 개그와 유머가 주가 되긴 하지만 슬라이브 오브 라이프(Slice of Life) 류의 소소한 분위기 속에 그리스도교와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가 녹아 있기도 하다.


    앞으로 오랫동안 종교와 인간에 대해 이모저모로 알아볼 계획이었던 근 몇 년 사이, 내가 <세인트 영 맨>을 보고 좋은 인상을 받은 건 당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오기 힘든 작품이다. 조직과 체계를 갖춘 종교보다는 조상을 숭배하는 신토(神道)를 따르거나 무종교인 경우가 훨씬 많은 일본이기에 큰 히트를 칠 수 있었을 것이다. 2006년 일본의 Dentsu Communication Institute가 실시한 조사를 보면 52%에 이르는 일본인이 신토, 혹은 무종교였다. 일본인들에게 ‘종교’라는 것은 개인적 신앙이 아닌 체계적 조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2위는 35%의 불교였고, 4%는 조직화된 신토 신앙, 2%가 그리스도교였다. 종교적으로 보면 혼합주의(Syncretism)인 일본은 분명 종교의 조직화가 탄탄한 우리나라의 독실한 신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종교 현상을 갖고 있다.


    내가 <세인트 영 맨>을 몇 번이고 돌려봤던 이유는 일본의 혼합주의(혼교주의)에 공감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각 종교의 이런저런 가르침들을 자신에게 적절하게, 혹은 유리하게 취합하는 일은 때때로 아전인수 격이 될 수 있어 위험하기도 할 것이다. 일련의 앎과 수련이 요구되기에 명사들의 가르침이 필요한 주의란 뜻이다. 한편으로 혼합주의는 절대가치가 해체된 오늘날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인문학적 정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거대 조직인 종교는 카렌 암스트롱이 <신을 위한 변론(원제 : The Case For God)>에서 말한 것처럼 여러 방면에서 공격을 받는데, 이는 절대적 진리의 포기(주로 유일신교의 교리 포기)와 그간 사회에 끼친 해악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공격이다. 혼합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종교란 진리를 가치개방사회에 녹여낼 수 있는 카리스마와 호소력을 가진 종교,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종교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종교는 비판받을 점이 많다. 종교계 내부의 양심적 인사들의 비판이 심심치 않음도 이를 대변한다.


    카렌 암스트롱의 <신을 위한 변론>에 이은 독서였다. 그녀는 현대의 종교가 어쩌다 이 지경의 궁지에까지 몰리게 되었는지 장구한 역사를 자신의 책에서 풀어냈다. ‘모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역설 속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상에 주목하기도 했다. 비움(케노시스)과 침묵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나는 궁금했다. ‘그렇다면 비움의 종교는 어떤 모습이며, 앞으로 나는 종교에게 어떤 점을 바라야 하는 것일까?’ 신자로서 묻는 게 아니었다. 나는 신자가 아니다. 가톨릭 냉담자다. 내게는 종교가 보호하지 못하거나 그렇게 하기 꺼려하는 민주주의의 도덕적 가치가 종교의 진리보다 훨씬 중요하다. 개방성은 갈수록 문을 닫아가는 듯한 ‘열린 현대사회’의 아이러니 속에서 늘 강조되어야 한다. 나는 울타리 밖으로 나오는 종교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예컨대 법정 스님, 김수환 추기경, 달라이 라마 등.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종교다원주의를 정확히 봐야 한다. 길희성의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는 앞선 나의 질문에 답한 책이다. 화합을 원하는 원로학자다운 둥근 필체가 곳곳에서 보인다. 하지만 종교 조직과 일부 몰상식한 신자들을 향한 날선 일갈도 많다.




*    *    *




    인간이 만물의 정점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특별히 우월하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물에서 살 수도 없고, 날지도 못하며, 시각과 청각은 형편없다. 다만 한 가지 특징은 독보적이며 결정적이라고 확증할 수 있다. 사고(思考)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처럼 앉아 과거를 들여다보고 현재를 고민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존재는, 과학이 확인한 결과 아직까지는 인간밖에 없다. 과거 인간의 조상들은 발톱과 털을 포기하는 대신 조직화의 길을 택해 그에 필요한 두뇌의 힘을 기르는 진화의 경로를 밟기로 작정했던 모양이다. 유전자의 선택이다. 그 결과 인간은 고뇌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것은 한 가지 피치 못할 잔인한 운명과 대면하게 했다. 존재와 의식을 구분할 수 있는 인간은 그 괴리 속에 ‘자기분열’이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함정에 송두리째 빠져버렸다. 이제 인간의 한 개체가 평생을 다해 이뤄야 할 목표는 분열된 자기의 재통합이다.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욕구와 종교의 관계를 역설한 바 있다. 헌신적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을 물색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내심 하면서도 이상하게 현대사회는 자기성찰이 사치인 분위기다. 길희성은 이를 ‘의미의 위기’라 불렀다. 방법은 쉽다. 질문을 계속 던지는 것이다. 어려운 점은 그럼에도 확답을 구하고자 하는 과욕을 버려야 한다는 것. 인문학적 정신과 동일하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사회이기에 권위와 확일, 그리고 순응의 사회로 변질되어간다. 쉽게 내 편 네 편 가르는 것도 그런 연유이리라. 왜 사람들 중에는 질문하는 것을 두고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 툴툴거리는 이들이 있는 것일까? 대부분은 그보다 생계가 더 중요하다 생각하는 까닭일 것인데, 물론 우린 밥을 먹어야 살지만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분열된 자기’를 살려야 할 의무도 있다. 반쪽을 포기한 인생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은 뒤늦게 질문을 던지고 두려워한다. 후회도 한다. 힐링과 자기계발 열풍의 이유다. 자기의 삶을 묻는 50대 베이비붐 세대들의 도서 소비량이 확연히 늘었다. (교보문고의 지난 10년 간 연령∙성별 도서 구매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40~50대의 도서 소비량이 6~9% 증가했다. 1위를 차지한 40대 여성의 경우는 자녀교육 차원에서 학습서를 구해 큰 폭으로 오른 것이지만 50대는 자기계발에 집중했다. 20~30대가 취업과 경제적 이유로 독서를 포기했다는 분석은 못내 씁쓸하다.)


    또 하나 인간의 최대 고민거리는 죽음에서 비롯된다. 길희성은 죽음을 ‘곱하기 제로’의 존재라 했다. 도루묵이라는 거다. 죽음은 인간을 근본적 물음으로 끌고 간다. 타인의 죽음마저도 비극임을 아는 인간 특유의 감성 능력은 복이면 복이고 족쇄면 족쇄다. 카렌 암스트롱은 그 타인의 범위를 인간이 잡아먹어야 하는 동물에게까지 끌고 가서 종교의 태초를 해석했다. “종교적 삶이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비극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에 뿌리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41쪽) 그러면 우리는 인간 본연의 공포 앞에서 물어야 한다. 평소에는 외면하며 살 수 있지만 언젠가 자신이 밟게 되는 종착지에 대한 물음은 “죽음마저 넘어설 어떤 지고선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길희성,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35쪽)이다. 이건 내세에 대한 확신이 아니다. 다음 삶이 있든 없든 피해갈 수 없는 그 존재를 초월할 수 있는 정신적 태도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의미한다.


    종교는 인간의 본성을 잘 설명해주는 하나의 현상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유지되고 있다. 현재 과학기술로 내다볼 수 있는 가장 먼 미래는 11천년 기 정도다. 즉, 11,001년 무렵까지다. 그 이후는 과학모델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돌려 ‘대략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고 추측할 수만 있다. 영화 <아마겟돈>이나 <딥임팩트>의 가상이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도 지구의 평화로운 연대기는 약 6억 년 정도면 산산조각 날 확률이 높다. 오존층이 상당 부분 없어져서 대량멸종이 불가피하며, 무엇보다도 그때가 되면 달이 궤도에서 이탈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패턴을 생태계가 감당해내야만 한다. 광합성을 하는 식물의 99%가 멸종한다. 물론 이 시기에는 인간이 지구에 없을 것이다. 타행성에 정착하든 그렇지 못하든 언젠가 인간 종은 지구에서의 자리를 내줘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지구가 종교 발상지의 상징으로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렇게나 중요한 종교의 오늘날 모습은 왜곡된 부분이 많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성급한 일반론으로 종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길희성이 책에서 언급한 대표적인 폐단은 기복신앙이다. 간절한 마음이야 짐작을 할 수는 있지만 내게 이해가 안 되는 그 마음의 하나가 수능기원 기도에 뛰어드는 학부모들의 마음이다. 원래 가지고 있는 종교이기도 하고 대입이 워낙 중요한 사회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은 분명하다. 산을 타는 나는 사찰에 들러 잠시 쉬어가는 그 시간과 사찰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고3들이 수능이라는 걸 막상 실감하지 못하는 시기인데도 매년 4월이 되면 벌써부터 합격기원 기도를 올린다는 플랜카드가 여기저기 걸려 있는 모습을 본다. 지지난 가을 도봉산 망월사에 물을 마시러 들렀다가 본 학부모들의 기도행렬은 가히 장관이기도 했다. 어느 종교나 마찬가지다. 종교가 왜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었는지는 기복신앙을 내세우는 그들의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에 뛰어든 그들의 긍정적인 면을 간과할 수는 없다.)


    길희성은 일갈한다. “기복신앙을 주로 내세우는 종교는 존재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존재해서도 안 된다.”(위의 책, 47쪽) 심지어 그는 종교에서 복을 찾는 이들을 두고 예수와 부처의 뜻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 비판했다. 이른바 ‘종교무식사회’라는 것이다. 나도 묻고 싶다. 그들은 어째서 예수와 부처가 소원을 들어줄 거라 믿을까? <세인트 영 맨>의 가상처럼, 약간의 각색으로 저 두 성인이 우리말을 배워서 할 줄 안다고 하자. 워낙 큰마음을 가진 터라 우리의 현실을 금세 알아차리고는 기복에 빠진 모든 이들을 위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안타까움이 크게 자리 잡지 않을까. 자신들에게 소원을 들어달라는 기도는 애당초 그 시절에는 있지도 않았으니까. 참된 종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행복은 보이지 않는 초월적 실재와의 완전한 합일이다. 자녀가 대학에 합격하는 것, 부자 되게 해달라는 것, 올해는 시집장가 가게 해달라는 것은 항구적 행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참된 종교는 또한 욕망의 크기를 작게 줄이는 심신의 도야 역시 주문한다.


    게다가 기적 자체를 바라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이따금 강렬한 체험을 해 신앙에 빠졌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게 된다. 그러나 길희성은 기적을 ‘차별적 경험’으로 본다.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라는 태도다. 참된 종교의 가르침은 세상 모든 일을 기적으로 보게 만든다. 모든 것을 경외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그렇게 마음을 비우는 정신은 보지 않고도 믿는 위대한 신앙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건 ‘기적’이라는 것이 정말 무엇인가에 대한 다른 시선이다.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대(원제 : Vreme čuda)>는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닥친’ 기적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비극적으로 풀어낸 독특한 시각의 작품이다. 너무 독특한 나머지 ‘이단소설(異端小說)’의 악명을 받을 소지까지 있어 번역을 맡은 이윤기가 별도의 장을 마련해 변론하기도 했다. 기복을 한다는 건 어쩌면 ‘나는 신앙적으로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 있다.’라는, 별로 드러내지 않아도 될 자신의 속마음을 겉으로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길희성이 이런 우리 사회의 왜곡된 모습과 대비한 것이 서구의 불자들이다. (그는 ‘백인불자’라는 단어를 썼는데, 인종적 차원에서 달리 들릴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물론 그는 그런 맥락에서 쓴 건 아닐 테다.) 서양이 불교를 받아들이게 된 까닭은 대부분이 개개인의 마음공부를 위한 소소한 의도 때문이었다. 당연히 기복신앙이 아니다. 양서를 꾸준히 읽고, 불교의 수행법을 실천하며, 검소하게 사는 이들이다. 불교가 서양으로 전파된 건 꽤 최근의 일이지만 우리의 불교가 이를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 까닭일 것이다. 한 종교관련 교양강의를 맡았던 교수는 내게 베르나르 포르의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를 추천했다.


    기복은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신의 절대성’에 근거한다. 위험한 신앙이다. 신을 객관적 대상으로 삼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길희성은 어리석은 맹신과 독선적인 확신 사이에 올바른 신앙을 위치시킨다. 맹신과 확신이 더해진 광신을 최악으로 꼽는다. 문자주의도 위험하다. 언어초월적인 신을 격하시키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카렌 암스트롱도 말했다. 아니, 그녀가 책에서 언급한 여러 신학자와 철학자들도 동의한 바다. 신에 관한 모든 언어는 상징이다. 문자주의를 표방한 미국의 복음주의는 쉬운 교리를 원했기 때문에 그냥 언어에만 의존하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이를 일찍부터 깨달았던 위대한 현자들은 ‘신’이라는 말 자체의 사용을 지금의 우리처럼 남용하지 않았다. 다석 유영모는 신을 두고 ‘없이 계시는 분’이라 표현했다. 틸리히는 ‘존재의 근거(Ground of Being)’라 불렀다. 신은 암호화되어 있다. 그 비밀을 찾기 위해서는 영성의 대가들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한편 확신과 맹신을 경계하는 자세를 늘 유지해야 한다. 신에 대해 안다는 건 정보를 취득하는 게 아니다. 목표는 합일. 길희성은 이렇게 말했다. “깊은 영성의 소유자에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의 암호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어디서나 신을 만난다.”(위의 책, 89쪽)


    사실 위와 같은 삶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다르다. 책을 읽으면서도 괴리감에 고민할 수밖에 없는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영성을 중시하는 삶은 마치 모든 것을 피해 나만의 초월을 위한 소극적 삶처럼도 보인다. 초월의 자세가 이상하게 제한된 자세로 보이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한 명의 구성원이지 않은가. 가족을 위해서 해야 할 일도 있고, 발전과 정의를 위해 이 사회에 기꺼이 희생해줘야 할 일정한 부분도 분명 맡게 될 터이다. 물론 저자도 그렇다. 이순이 넘은 길희성도 그 고민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고백했다. 특히 강화도에 한 영성센터를 여는 과정에서 큰 내적 갈등을 겪었던 모양이다. ‘도피는 아닐까?’ 둘 중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고민에 있어 유교의 거대한 우산 아래 당연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떠올리기 쉽다. 나를 먼저 다스려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의 중책을 맡을 수 없다는 생각. 그러나 생각해보면 수신 자체도 끝없고 때론 답 없는 무궁(無窮)의 차원에 있다. 그것만 추구해도 모자라는 판에 언제 사회에 뛰어들어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그래서 후자를 더 강조하는 사람들의 수도 만만치 않다.


    답이라고 못 박긴 뭐하고 그걸 ‘해결책’이라 둘러 표현해보자면, 그것은 아마 둘을 동시에 추구하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 길희성은 이걸 ‘평화롭기’와 ‘평화 만들기’의 동시적 추구라 부른다. 맞는 말이다. 나를 알아가는 공자의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사회를 알아가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은 각각의 다른 주제 속에서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직적 운동이 더해져야 하며, 별도의 결단력과 훈련, 그리고 그에 따른 분명한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종교가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이 결합된 카리스마적 성인이 필요하다. 말로만 신자들을 깨우쳐주는 일과 평화를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이다. 아마 그래서 함석헌이 <간디자서전>의 서문 격으로 쓴 1961년 2월 ≪사상계≫에 발표한 한 글에서 “나는 이제 우리의 나갈 길은 간디를 배우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적은 것이리라.


    간디는 종교를 뛰어넘었다. 정(正)의 의미에서 본 혼합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뜻으로써 열려 있는 사회를 꿈꾼 그에게 가치다원화의 사회는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았고 우려할 만한 세태도 아니었다. 간디에게 최고의 적은 맹신이었다. 그리고 그 적에게 목숨을 잃었다. 종교가 작금의 상황을 제대로 직시한다면 앞으로 상생하기 위해 종교 간의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스스로도 진단할 것이다. 그리고 독점적인 진리의 가치를 포기할 것이다. 종교가 절대적 가치를 구축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값비싼 대가가 필요했다. 도덕적으로 타락했고, 순수를 상실했다. 권력의 도움을 받았고, 권력의 도움이 되었다. 현대인은 그러한 근대적 종교를 외면한다. 종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순수와 진정성을 회복해 권력 없이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하며, 창조적 발전을 위해서라도 상대 종교와의 대화를 꾸준히 시도해야 한다. “모든 종교가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의 척도란 존재하지 않는다.”(위의 책, 145쪽) 또한 민주주의의 근본정신과 가치와도 대화해야 하고, 종교비판을 받는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하기도 해야 한다.


    길희성이 이 책의 제목에 사용한 ‘같은 산’이라는 단어는 표면만 놓고 보면 혹 종교다원주의의 현실과 배리된 단어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그가 그런 비유를 쓴 이유를 들여다보면 납득할 수 있다. 그는 도덕실재론자이다. 종교적 진리 역시 실재한다고도 생각한다.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점이 있다는 것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도덕주관론(정감주의)의 위험성이다. 도덕이 상황마다, 혹은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이 사상은 ‘살인’이라는 최악의 문제에 대한 우리의 비판력을 흐린다. 달라이 라마도 이런 점에서는 그와 노선이 같다. 비교적 최근의 저서인 <종교를 너머(원제 : Beyond Religion)>에서 그는 이타심과 배려 같은 인간의 도덕적 가치들이 과학의 도움으로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임을 입증 받고 있다면서 이른바 ‘현세적 도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물론 달라이 라마가 말한 ‘현세’는 ‘세속’과는 다르다. 오히려 “모든 종교에 대한 깊은 존경과 관용”(달라이 라마, <종교를 너머>, 27쪽)을 뜻한다. 그는 분명 초월적 도덕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희망 담긴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반대의 의견도 있어 옮겨본다. 이도 무시할 수 없는 시류이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가 과학의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모든 과학계의 도움’으로까지 확장시킬 수는 없다. 근대의 중요한 가치들이 현대사회에서는 무너졌다. 도덕도 예외일 수는 없다. 프란츠 M. 부케티츠는 <도덕의 두 얼굴(원제 : Wie Viel Moral Vertragt Der Mensch)>에서 절대적 도덕론에 극렬히 반대했다. 굉장한 비난조로 쓴 책이다. 아예 작별하자며 도덕의 독재와 결별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도덕주의자들의 치켜든 손가락이 인간의 이기심을 지적하지만, 인간 행동에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프란츠 M. 부케티츠, <도덕의 두 얼굴>, 53쪽) 모로 봐도 이는 도덕 창시의 상징과도 같은 소크라테스의 손가락을 겨냥한 발언이다. 권위주의와 결탁한 도덕, 그런 도덕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책무의 과중함에 대한 염증은 이렇듯 과학계의 예리한 목소리로 표출되기도 한다.


    한편 길희성이 종교적 진리의 실재를 주장하는 까닭은 신앙주의의 위험성이다. 종교적 경험은 주관적인 환상일 수도 있다. 저마다 다르게 체험된다는 뜻이다. 역사와 문화만 놓고 봐도 그렇다. 체험의 순간이 기억될 수 있는 건 언어의 개입 덕분이다. 우리말로 기억되는 체험과 영어로 기억되는 체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번역에 애먹진 않으리라. 그럼에도 지금까지 제시된 참된 종교의 가르침을 보면 초월의 무언가, 즉 객관적 진리가 제시되었다. 과연 각 종교들은 동일한 목표를 지향했을까? 종교를 넘나드는 독서를 하거나 영성수련, 혹은 각 종교를 방문해 체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이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예수와 부처와 공자의 말이 큰 맥락에서는 상통한다는 점. 이들은 야스퍼스가 ‘기축시대’, 우리 독자들에게는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으로 몇 년 전 알려졌던 그 사상과 철학의 시대에 살았던 성인들이다. 이들이 제시한 도덕적∙영적 수준은 유사했다. 한편 고등종교들만 놓고 보면 일원론을 표방한다. 수많은 현상들에는 하나의 원리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원리는 인격체로 표현되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영성의 측면에 있어 ‘합일(合一)’을 하나같이 강조했다는 점에서 위의 종교들을 묶을 수 있다. 교리 상의 유사점을 하나씩 열거해볼 수 있다고도 한다. 길희성은 여기서 희망을 찾는다.


    사실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에서 저자가 강조한 부분은 영성이다. 내가 보기에 그는 종교의 변화보다는 그가 강화도에서 소수의 방문자들과 함께 추구하고 있는 영성의 변화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예를 든 것일 수도 있다.) 우선 개인의 변화가 사회 전체의 변화, 그것이 아무리 부분적 변화라고 할지라도 쉽거나 순수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한편으로는 종교와 영성의 차이를 들 수도 있겠다. 종교는 집단적 현상이므로 필연 배타성이 약점이 된다. 게다가 지금 우리 사회의 종교 세태를 보더라도 “일반적 상식과 도덕성에도 미치지 못하는 신자들로 넘쳐나는”(길희성, <길은 달라도 같은 산을 오른다>, 189쪽) 현실이다.


    하지만 영성은 대체로 개인적이다. 법정 스님은 <홀로 사는 즐거움>이란 책에서 참나(眞我)는 타인과의 무경계라고 했다. 영성은 자발적 고독이자 침묵이자 부정으로, 그 모든 것은 자기 극복을 위한 것이다. 포장된 사회적 자아가 해체되고, 집착하는 자신의 추한 모습을 직시하며, 심층의 자아로 들어간다. 이 심층의 자아가 모든 종교가 함께 붙잡고 있는 진리의 세계에 있다. 종교가 외면 받는 사회라 할지라도 영성이 무시될 수 없는 까닭이다. 앞서 말한 에리히 프롬의 진단과 그에 대한 해결책이 여기서 제시된다. 길희성은 종교 위기의 사회가 오히려 영성회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본다. 그에게 앞으로의 길은 ‘제 3의 길’이 된다.


    영성회복의 길은 제 9장 ‘영성의 대가들을 만나다’에서 제시되는데, 오래 전의 종교와 현대적 분석의 용어들이 다소 어렵게 다가오는 독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知訥)과 당나라 종밀(宗密)의 공적영지심(空寂靈知心)과 독일 가톨릭의 신비주의 계열 사상가인 요하네스 에크하르트(Johannes Eckhart)의 ‘지성(intellectus)’의 비교를 통해 둘이 실은 같은 맥락이며 잡다한 감각 대상에 휘둘리지 않은 인간성 그 자체, 본성, 혹은 본심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도의 라마나 마하리쉬(Ramana Maharshi)가 주장하는 절대적 주체인 ‘나-나(I-I)’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어려운 용어들이긴 하지만 이는 모두 영성수련을 통한 신비적 합일(unio mystica)을 이루게 된다는 뜻으로 사용된 것이다. 상대적이고 표면적인 나에서 심층적이고 절대적인 나로 들어가는 여정.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나는 나가 아니다.”라는 부정의 인식을 떠올려보면 된다.


    그러나 이건 말마따나 쉽게 당도할 수 없는 차원이다. 카렌 암스트롱의 말이다. “종교도 다른 기술들처럼 인내와 노고와 훈련을 필요로 한다. ……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의례와 수련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설명하기 힘든데, 이는 마치 스케이트 선수가 얇은 스케이트날로 빙판 위를 활주하면서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리적 법칙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카렌 암스트롱, <신을 위한 변론>, 23쪽) 길희성도 그의 얇은 책에서 영성수련에 대해서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대가들의 가르침을 받고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이기에 이는 현대적 일상의 도전받을 수밖에 없다.




*    *    *




    헤르만 헤세가 1922년에 완성한 소설 <싯다르타(Siddhartha)>는 함께 고행을 떠난 싯다르타와 고빈다가 어떻게 깨달음을 얻게 되는지 그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헤세는 싯다르타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다 환상을 경험하게 된 고빈다를 통해 모든 것은 하나이고, 죽음과 탄생을 통해 끝없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진리를 표현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존재가 미소 짓는 싯다르타의 얼굴이라는 ‘가면’으로 묘사된다. “실체는 없지만 그래도 존재하는”(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220쪽) 그것은 길희성이 자신의 책에서 역설한 모든 종교를 관통하는 진리를 일컫는 것과 같다. 그 진리를 헤세는 미소라고 생각한 듯하다. 우울증 치료 기간 동안 전혀 집필하지 못했지만 그 기간을 자기체험의 기회로 삼아 완성한 역작이라는 점에서도 싯다르타의 미소는 의미가 있다. 영성의 수련을 통해 그 길에 닿을 수 있을까. “고빈다는 완성을 이룬 자들은 이렇게 미소 짓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위의 책, 220쪽) 본연에 닿는다는 건 무엇인가,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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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위한 변론 - 우리가 잃어버린 종교의 참의미를 찾아서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준형 옮김, 오강남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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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7




   이런 시대에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한다.

   언젠가 삶의 통찰이 필요할 때, 이 책이 내게 줄 도움이 얼마나 클 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    *    *




    2015년 11월 13일은 ‘9∙11’이라는 상징적 숫자와 더불어 인류사에 기억될 날이 되었다. 2004년 3월 11일 알카에다의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 이후 유럽에서 일어난 최악의 인명 피해다. 전 세계에서 프랑스 파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우리 시각으로 18일에 있을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축구 국가대표 친선전을 보러 (테러의 위협에도 프랑스는 친선경기를 강행하겠다고 했고, 잉글랜드의 감독 로이 호지슨은 그 뜻을 존중한다고 회답했다.) 경기장을 찾을 영국인들은 프랑스를 위해 함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불러주는 캠페인을 SNS로 퍼뜨리고 있다. 세계 주요 랜드마크들은 밤이 되자 빛나는 프랑스 국기가 되었다.


    비극적인 피드백들이 연이어지고 있다. 정치에 연루된 종교의 일면만을 부각시키는 언론과 그에 휘말린 대중들은 종교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은 채 인터넷 상에서 ‘이슬람’, ‘무슬림’, ‘무함마드’, ‘알라’ 등의 용어를 무분별하게 섞어가며 통째로 이슬람을 비난했다. 나는 굳이 인용할 필요 없는 그와 관련된 수많은 댓글들을 그저께 반시간 동안 봤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난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만연해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시리아, 코소보, 아프가니스탄, 알바니아, 이라크 등은 오래 전부터 유럽의 부국으로 난민들을 유출시키는 무능한 정부였다. 시리아 난민 사이에 섞여 들어온 프랑스 파리의 테러범 때문에 난민들에 대한 이미지가 왜곡되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경제 침체로 위협을 받고 있는 유럽 각국의 국민들이 국경을 닫자는 보수주의나 자국민 우선주의, 심할 경우 극단적 민족주의에 쉽게 젖을 가능성이 있다.


    종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상황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현대인들은 종교에 대해 이중 잣대를 얼마든지 들이밀 수 있다. 첫째는 특히 정치와 연관된 종교에게 날카로운 비난이 가해지는 경우일 것인데, 잔혹한 행위에 동원되는 종교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진리를 선사할 수 있겠냐는 시선이다. 물론 여기에는 종교를 왜곡시키는 주체에 대한 사고가 우선시되어야 하겠지만 근대 계몽주의의 전파와 과학의 발전 이후 우리에게 종교는 이미 이리저리 뒤집어볼 수 있는 사회분야의 일부로 전락한 상황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여전히 종교에서 진리를 찾아보려는 진지한 시선이다. 여기에서 ‘맹신’이라는 안타까운 현상은 제외한다. 신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근대적 종교는 현대인들의 정신으로는 수용하기 어렵게 됐다. 첫 번째 시선으로 공격받는 대상이 바로 근대적 종교이다.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몇 년 사이 부쩍 ‘도킨스 류’의 서적에 빠져 지냈었다. 이른바 ‘도킨스 현상’에, 즉 브라이트 운동(Brights movement)에 강한 매력을 느꼈던 까닭이다. 샘 해리스와 히친스의 글을 연이어 읽게 된 것, 그리고 ‘Edge’의 필진들이 쓴 모음집을 읽은 것은 당연한 순차였다. 가톨릭 냉담자였던 나의 마음속에는 오래 전부터 무신(無神)과 무신(無信)이 뒤범벅되어 있었는데, 공격적인 과학적 자연주의자들, 이른바 ‘신무신론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강한 쾌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는 신이 없는 공간으로 서서히 발을 디뎠고, 졸업을 전후해서는 의지할 곳 없는 자아가 사회의 문턱 앞에서 허둥거리고 있는 모습을 직시하게 됐다. 공교로운 상황이었다. 다행이도 졸업 전 들은 인상적인 종교 관련 강의가 무려 두 개나 됐던 까닭에 나는 30대의 목표를 종교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는 것으로 잡을 수 있었다. 종교와 종파를 초월하는 방대한 문자들의 향연에서 그 문자들이 말하지 않는, 혹은 말할 수 없는 길을 찾아내겠다는 막연한 욕망 때문이었다.


    내년부터 시작할 그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알아야 하는 건 당연 역사였다. 맥락을 모른 채 특정 텍스트에서 찾은 의미를 자기 나름대로 확장하겠다고 벼렸다가 낭패를 본 적이 대학 생활 중에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니니안 스마트의 <세계의 종교>,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 카렌 암스트롱의 <축의 시대>, 피터 왓슨의 <생각의 역사(1~2권)> 등을 서재에 꽂아뒀고, 출판사에서 제공해준 저서들의 도움도 받았다. 종교의 역사가 종교 그 자체가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나, 시대를 거쳐 변화해온 텍스트와 그것에 대한 이해,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 대부분이 비난해 마지않는 정치상에서의 종교 행태를 샅샅이 살펴보는 1차적인 작업은 가공할 만한 마력을 지닌 종교의 앞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이었다. 겉만 긁는 막연한 비판서들이 아니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카렌 암스트롱의 <신을 위한 변론(원제 : The Case For God)>은 그간 종교에 대한 비판, 그리고 나의 마음 반대편에서 잠자고 있었던 갈망을 동시에 건드려준 명저였다. 일개의 보통독자인 내가 별 권위도 없이 ‘명저’라는 단어를 주저 않고 쓴 까닭을, 이 책을 읽은 사려 깊은 독자라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이해해줄 것이다. 한 달 조금 넘는 시간을 이면지에 써내려가며 정독했고, 리뷰를 제외한 모든 작업이 끝난 지금의 나는 이상하리만치 편안한 마음이다. 지적으로 갖춰졌다는 환상에서 비롯된 만족감이 아니다.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편해진다.’ 그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신을 위한 변론>은 ‘모름’에서 시작해 ‘모름’으로 회귀하게 된 인류 종교의 역사를 파헤친 기나긴 여정이다.




*     *     *




    대학 시절의 나는 한 종교 관련 강의를 들으며 종교분쟁과 폭력에 관심을 키워갔다. 전공인 국문의 이론에서 벗어나 현실적 문제와 맞닥뜨리는 생동감도 있었고,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 그리고 비극에 참여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 속 동질감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내가 당시 배운 요한 갈퉁의 적극적 평화론이 실제 세상에 참여하여 종교적 평화를 이뤄낼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한 까닭도 있겠다.) 그렇게 체첸 분쟁을 나름 심도 있게 정리해 ‘크렘린과 백학’이라는 제목으로 리포트를 냈고, 교수는 흡족해했다. 강의 말미에 나는 교수에게 종교 관련 서적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부탁의 함의는 주로 분쟁관련 비판서를 바란 것이었는데, 교수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번역된 <우파니샤드>를 읽어봐요.”


    나는 착한 학생이었다. 더군다나 폭넓은 스펙트럼의 종교적 사고를 지닌 그녀를 짧은 기간 안에 매우 존경하게 된 터였다. 교수는 개신교도이자 독일 유학파 출신의 종교비교학자였다. 그런 그녀가 내게 권한 것이 인도의 경전. 당시는 긴 휴학과 여러 부침 덕분에 늦은 대학의 나이가 돼서야 ‘대학’이라는 걸 조금은 알 것도 같은 때였다. 쉽게 말하자면 취업 준비하는 동기와 후배들 사이에서 정전(正傳) 한 권을 고집스럽고도 조용히 읽어갈 수 있는 기분이었다. 커버를 벗기니 새빨간 살을 드러낸 <우파니샤드>는 이재숙의 번역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첫 장을 펼쳤다. ‘오움―’ 이게 무슨 소리지? 표현할 수 없는 소리라고 하는데, 뭔가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낮고 장중한 목소리 같기도 하고, 종교 수련의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의 마음으로 가장 먼저 일어난 감정은 거부감이었다. 하지만 조언을 허투루 듣는 것도 거부할 일이다. 이해 안 될 문자 사이를 부지런히 눈으로 왕복하자 이런 구절이 나왔다. 이윽고 나타났다. 지금도 기억하는데, 이건 내게 다가온, 혹은 내 안에서 일어난 어떤 중대한 사건이었다.


    “아뜨만은 움직이기도 움직이지 않기도 하며 멀리 있기도 아주 가까이 있기도 하며 이 세상 안에 그리고 이 세상 밖에도 존재하도다.” (이재숙 譯, <우파니샤드>, 60쪽)


    아래 적어놓은 날짜는 2013년 2월 12일이었다. 추운 겨울의 잔인함을 두 겹의 창틀로 막아놓은 아늑하고 온기 가득한 방 안에서 나는 쪼그려 앉아 혼자 새벽의 한기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때 내가 바라본 건 창백한 검은 밤하늘에 떠있는 밝은 점들이었다. 아뜨만이 저기에도 있나? 이 우스꽝스러운 질문 뒤에 엄습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어디에나 있는 것. 초월. 무식한 나는 갑자기 신비의 뜻을 알 것만 같았다.


    “아뜨만을 아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곧 아뜨만이다. 모두가 같은 아뜨만임을 잘 알고 있는 그에게 욕심이나 슬픔이 어찌 생겨나겠는가.” (위의 책, 61쪽)


    나는 한동안 저 구절에 사로잡혀 지냈었다. 문자주의를 배격하자는 입장을 늘 고수하고 있어도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지금 다시 <우파니샤드>를 펼쳐보니 그 구절 언저리에 내가 밑줄을 쳐놓은 단어들이 세 개 있다. 증오, 욕심, 슬픔. 달리 말하자면 내가 그것들에게 고통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초월을 안다면 그런 것들을 정말 모를 수 있을까? 물론 그런 기분을 평생 거느리고 산다고 해도 몹시 불행할 것 같진 않고, 그게 오히려 자연스런 인간이라는 생각도 있다. 그러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왠지 부당한 것 같은 그 고통에 저항하고 싶어 하는 건, 내가 인간이라는 뜻이리라. 비극. 고전에서 말하는 “삶은 비극이다.”라는 뜻은 지극한 사실이었다.


    카렌 암스트롱도 동의한다. 그녀는 종교의 시작이 삶의 부당함과 고통에 맞서 의미를 구축하는 것이라 말한다. 근대 이전의 종교들은 그 의미를 구축하는 데 있어 초월, 모름, 경외 등을 늘 강조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편견이다. 지금까지 등장하여 우리에게 큰 반향을 준 종교적 현자들, 즉 카렌 암스트롱이 ‘축의 시대(Axial Age)’라고 부른 시대에 출현한 현자들은 하나같이 ‘모름’에 주목했다. (저 용어는 본래 야스퍼스의 것인데, 국내에는 <축의 시대>라 번역∙소개된 책인 카렌의 2006년 작 <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쓰였다.) 그들은 “그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아포파시스적 대답은 곧 침묵의 대답이다. 태초의 종교라는 것은 이렇듯 ‘말하지 않는 법’을 직감하고 있었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원제 : Die Welt Des Schweigens)>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다.


    “물론 인간은 정신을 통해서 말을 원초적인 것, 강력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침묵으로부터 나오는 말은 애초에 원초적인 것이기 때문에 말에게 원초성을 부여하려고 말이 스스로 많은 힘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침묵이 이미 말에게 원초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렇게 침묵은 정신을 돕는다.” (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265쪽)


    고대인들은 피카르트가 말한 ‘원초성’이라는 것을 개념이 아닌 감각을 통해 선연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비와 의심 속에 머무르는 능력은 원초성에 대한 확신으로 유지되기 마련이다. 종교의 진리를 탐구하려는 현대인들이 푸념 삼아 털어놓을 수 있는 억울함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원초성과의 거리일 것이다. 현대사회의 일상을 보라. 영성수련을 통해 체득되는 깨달음의 경지, 그 원초성에 대한 자각을 우리가 일상에서 이뤄나가는 건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봐야 한다. 태초의 종교가 어떠했는지를.


    카렌은 이러했던 침묵의 종교가 말의 종교로 바뀐 이래 종교가 크게 두 갈래의 길을 걷게 되는 것으로 역사를 묘사한다. 하나는 여전한 수행이고, 다른 하나는 이론의 발달이다. 나는 대학의 교양으로 처음 접한 플라톤을 뭔가 딱딱한 회색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왠지 주황빛이고, 소크라테스는 아주 새빨갛다.) 이는 잘못된 기억이었다. 퓌타고라스마저 열렬한 영적 탐구를 숭배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성이 발달했으나 훈련과 절제된 삶 속에서 거듭되는 통찰로 영성을 수련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소크라테스의 부동(不動)은 흡사 근래 들어 인기를 누리고 있는 템플스테이의 좌선(坐禪)과 닮았다. 플라톤에게 철학은 죽음의 견습과정이었다. 정치∙사회적 격변기 속에서 주요 철학 학파들은 내면의 평화에 중점을 뒀다. 종교와 배치되지 않는 고대 그리스의 합리주의는 지금 보면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합리성을 무기로 한 계몽주의가 종교를 부수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근대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분명 어떤 비밀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현대인들이 종교에서 갈구하게 되는 진리의 열쇠인지도 몰랐겠지만.


    기독교가 유대교나 이슬람과는 달리 교리를 복잡다단하게 발전시킨 것은 특이한 일이다. (반면 후자의 두 유일신교는 정행(正行)을 강조해왔다.) 물론 초기 기독교는 달랐다. 복음서는 우리처럼 신의 뜻을 해석하라고 쓴 것이 아니라 영성을 수련하라고 적어놓은 도덕적 가르침이었다. 하지만 예수 사후 이상하게 일이 돌아갔다.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로고스’, 즉 이성의 정점으로 파악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들이 2세기 즈음에 생겨났다.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기독교가 번역, 그리고 육화한 ‘로고스’인 예수의 지위 문제를 두고 골머리를 앓을 무렵에 그 종교는 완전히 ‘말의 종교’가 됐다. 지금 보면 시시콜콜한, 하지만 당시 보면 대단히 시급한 문제들이 도마에 올랐다. 학자들은 신 중심으로 생각했다. 정의하려고 했으며, 이로써 종교를 강화하려고 했다. 우리는 그 다른 편에 있던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카렌의 의도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려는 영성 노력이 필요하다는 움직임 말이다. 위(僞)디오뉘시우스의 아포파시스적 방법이 강조된다. “~도 아니다.”는 흡사 “~이기도 하고, ~이기도 하다.”는 우파니샤드를 연상시킨다.


    고대 그리스와 비잔틴, 그리고 이슬람의 지적 유산들이 유럽에 유입되기 시작하자 유럽의 신학자들도 반응했다. 전통적 가르침을 합리의 힘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장 적극적으로 빨아들인 뇌는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것이었다. 신의 존재를 열심히 증명해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웃음거리가 된 그도 실은 ‘모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성의 끝에서 우리는 모른다고 손을 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렴풋이 느끼는 비경험적인 실재들을 인정하고 기뻐하는 능력”(241쪽)이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앙이었다. 여기에 반대한 이들을 이른바 ‘자연과학’의 노선에 있다고 묘사해도 될 것이다. 유럽은 그보다 과거를 기준으로 보자면 이미 상당 수준 뒤틀려 있었다. 요한네스 스코투스는 아퀴나스가 틀렸다면서 신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양날의 검’으로 유명한 오컴은 신이 온갖 재주를 부리는 가상적 사고를 유행시켰다. 신학과 영성 사이에 큰 틈이 벌어져서 수백 년 동안 도무지 다물어질 생각을 않았다. 모름을 아는 것, 자기를 비우는 것(케노시스)은 저물어가는 태양. 영성의 길은 노을 속에 있었다.


    근대는 희망의 날개 대신 비타협의 발톱을 드러낸 맹수였다. 근대적 중앙집권국가들은 하나 같이 종교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했고, 세속기관들의 영향력이 종교기관을 압도하기 시작했으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과학혁명이 잇달아 일어났다. 프로테스탄트는 언어에 갇혔다. 가톨릭은 교리문답서와 종교재판으로 대응했다. 당시 과학과 종교의 충돌은 세간에 과장되게 알려진 것보다는 덜 심했다. 새로 등장한 과학의 발견을 이해한 사람이 무척이나 적었던 탓이다. 하지만 금서와 정죄 등 종교계의 반응이 광적이어서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식은 그 과장을 가능케 한 대표적인 상징으로 남기도 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성서 해석이라는 위험한 지뢰밭에 발을 들여놓고”(298쪽)는 파장의 너울에서 끝없이 출렁거렸다. 이후 과학은 신의 절대성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이들, 예컨대 데카르트와 뉴턴과 같은 거인들을 거치면서 점점 몸집을 키워갔다. 내적으로도 단단해진 것처럼 보였다. 정치 격변기였음을 고려해보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데카르트는 시계처럼 규칙적인 우주를 꿈꿨고, 뉴턴은 데카르트,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오를 합치더니 종교에서 신비와 미신을 배척하고 과학이야말로 신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렌이 보기에 당대의 “신은 더 이상 초월적이지 않았고, 언어와 관념의 한계를 넘어서지도 않았다.”(328쪽)


    이렇게 계몽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이성이 신의 위에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성으로 신을 알아낼 수 있겠는가. 물론 약간의 전통적 뮈토스가 섞여 있긴 했지만 자연과 신비를 분리하는 작업은 언제나 공통분모였다. 폐단은 있었다. 스스로 사고하라면서도 오직 그 방법을 과학에만 두라는 계몽주의는 과학이 아닌 다른 것을 배척하는 근대의 편협함을, 그 한계를 드러내고야 말았다. 잠바티스타 비코와 장-자크 루소 정도가 공감을 통해 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었다. 수련 없는 종교는 히스테리로 전락하기 쉬웠고, 그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이럴 때마다 반응한 것은 시인과 소설가, 그리고 철학자였다. 과학이 펼쳐놓은 이성의 그물이라면 모든 것을 다 잡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실상은 반대였고, 사람들은 마치 가슴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자기 안의 무언가가 유실되는 기분을 느꼈다. 분위기에 민감한 저 세 부류의 사람들이 그걸 제일 심하게 느낀 모양이다. 윌리엄 페일리가 그 유명한 시계공 이론을 내놓았을 때 가장 먼저 격렬히 반응한 이는 데이비드 흄이었다. 과학적인 것 같아도 너무 섣불리 결론으로 나아간 페일리의 논리가 지닌 허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그는 페일리에게 세 가지의 근거를 들며 반론했다.) 낭만주의자들이 이윽고 등장하면서 자연을 경외하는 시인들의 명작이 연이어 쏟아져 나왔다. 영문학도라면 피해갈 수 없는 퍼시 셸리, 윌리엄 워즈워스, 존 키츠가 다 그때 사람들이다. 헤겔도 처음에는 여기에 동참하는 뉘앙스였다. 신을 외부가 아닌 내부로 끌어오면서 ‘존재(geist)’라는 용어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소외감을 주는 종교로 유대교를 특정하게 꼬집어 비판하면서 근대 종교 비평의 틀을 제공하고 말았다.


    종교가 멀리 떠나가면서 사람들은 종교를 어려운 것으로 보게 됐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잘 보일 리도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복음주의다. 미국인들은 프랑스혁명을 보고 두려움에 떨었다. ‘더욱 경건해져야지. 제약이 없는 합리성이 어떤 공포정치를 가져왔던가 말이다.’ 이런 생각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쉬운 종교가 필요했다. 복음주의는 전례 없는 문자주의로 성서를 해석했다. 종교의 핵심을 도덕성의 실천으로 봤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지만 이는 우상화될 위험이 있는 신을 섬기는 결론으로 나아갔다. 19세기의 미국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이었다. 자연신학마저 주류로 들어왔다. 뉴턴과 페일리가 특이하게도 성서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유럽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오히려 프랑스혁명은 반가운 신호탄이었고, 사고를 바꾸는 반체제적 지식인들이 등장하면서 무신론이 퍼졌다. 성서를 뜯어보고, 신의 의미를 축소했다. 포이어바흐는 신을 인간의 억압적 생각이라 했고, 마르크스는 종교를 인민의 아편이라 했다. 과학적 성과들이 연이어 전통신학을 위협했다. 지구는 6천 년 보다 훨씬 오래된 노인이었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출판 당시 너무 이상한 생각이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선택’의 함의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고등비평’이라는 것이 등장해 성서의 기적은 비유일 뿐이라 주장했다. 당대 최대의 핫이슈였다. 복음주의자들은 거품을 물었지만 미국에도 계속 수입되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진영 싸움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신의 존재 여부를 왈가왈부하고 싶을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은 단연 다윈이다. 실제로 1870년대부터 종교와 과학은 마치 나란히 놓여 만날 수 없는 두 선의 철로 같은 사이로 지냈다. 노골적으로 반가톨릭적 편향도 나왔고, 브루노와 갈릴레오, 루터 등이 불운한 희생자로 재평가를 받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신앙을 망상이라 불렀다. 종교와 과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였다. 종교계는 다윈이 몰고 올 파장을 잘 몰라 과학을 여전히 수용하며 공부했지만 반종교주의자들은 다윈의 그 ‘파장’이란 것이 무엇이 되는지 자신이 직접 보여주려고 혈안이 된 듯 종교를 비판하며 다윈을 인용했다. 물론 그건 다 바보 같은 짓이었고 언론의 과장된 보도를 통해 탈종교화의 흐름만 가속화됐다. 하지만 정작 동료 과학자들조차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Gott ist tot. 니체는 <즐거운 지식>에서 우리가 신을 죽였다고 했다. 대신 우버멘쉬(초인)가 되어 허무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가 말한 신은 정확한 대상이다. 기독교의 신이었다. 이후 무신론은 거의 자명해져서 굳이 증명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다윈은 자연의 무시무시함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프로이트는 종교를 정신이상에 가까운 신경증으로 결론지으면서 마음과 무의식의 무시무시함을 폭로했다. 사람들 중에는 진화론에서처럼 국가도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살아남을 것이라며 양차대전의 결말을 지켜보려는 이들도 있었고, 황폐화된 인간 정신에 비관적인 사람들도 있었다. 세상은 이제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너무 많은 것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근대 최초의 근본주의가 미국에서 일어나면서 그간 누적되어 있던 공포가 전통을 왜곡하며 종교적으로 표출되었다. 근본주의는 언론의 공격을 받았고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그들은 다시 부흥할 1970년대까지 웅크린 채 와신상담하면서 성서 문자주의와 창조과학을 꾸려갔다.


    합리성에 대한 기대를 철저하게 무너뜨린 건 홀로코스트였다. 기술에 의한 인종 학살, 과학적 인종주의, 과학이 연루된 우생학 실험, 게르만족만 특별히 이상화된 근대적 우상 숭배. 그것은 분명 ‘악’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것의 일부, 아니 그보다는 좀 더 큰 일부에 가까웠다. 카렌은 이렇게 평가한다. “홀로코스트의 진짜 이유는 서구 문화에서 종교적 감정이 사라진 후의 모호한 상태, 그리고 사람들의 기운을 보다 선하고 생산적인 쪽으로 배출시키던 종교의 쇠퇴와 함께 고삐가 풀린 악한 기운”(423쪽)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리하여 지금의 신학에게는 무거운 책임과 의무가 족쇄처럼 채워졌다. 어둠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무지의 구름으로 들어가는 것.


    나는 4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여정에서 종교가 저물어가는 것이 아니라 태초의 인간이 지니고 있던 경외의 비밀이, 그 보석을 넣은 상자가 마침내 문을 닫아 막 자물쇠에 열쇠를 꽂는 모습을 목격했다. 분명 인간은 고통에 저항하기 위해 마음 깊이 침잠하여 의미를 구축했을 것이다. 마음으로 들어가면 나를 초월한다는 건 참으로 신비한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속된 말로 “머리가 자라면서” 점차 ‘물속의 소금’이었던 아트만을 확인하기 위해 물을 다 증발시키려고 종교를 마구잡이로 가열시켰다. 그 결과 예수의 뜻도, 부처의 뜻도, 공자의 뜻도 생각의 문제로 바뀌었다. 정작 행동하고 침묵하는 것이 참뜻인데 말이다. (침묵도 거대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다행스러운 까닭은 이 합리성의 시대에도 여전히 비움(케노시스)과 침묵에 주목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희망 때문이다. 신학계에서도 과학계에서도 불확실성으로 점차 변화하는 패러다임에 반응했고, 신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철학과 과학은 아포파시스적 접근으로 돌아갔는데, 안타깝게도 수련이 일상에서 멀게만 느껴질 법한 나와 같은 일반인들에게 그러한 사유와 행동은 어려울 뿐이었다. 이 부분에서 카렌은 신학자들에게 쉽게 쓴 명저들을 촉구한다.


    그런 것이 어렵고, 한편으로는 정치와 종교의 결합(일방적인 왜곡)으로 일어난 세태에 염증을 느끼는 까닭에 종교의 퇴조는 진리를 추구하려는 진지한 의도 이면에서 이 사회를 흐르는 강줄기를 이루기 마련이다. 그건 분명 피할 수 없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때일수록 종교가 과연 그런 세태를 주도했는지 정확히 파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카렌도 근본주의를 종교가 아닌 역사적 맥락에서 봐야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수년 전, 내가 한 달 남짓한 시간동안 체첸 관련 종교분쟁을 상세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한 결과로 알게 된 것도 바로 그러한 맥락의 중요성이었다. 정치는 공방(攻防)의 연속이다. 카드를 쥔 자들의 싸움이다. 여기에 진리를 기대할 수 없다. 종교는 다만 그자들의 카드를 강화시켜줄 재료로 왜곡되거나 남용된 것일 뿐이다. 숱하게 예로 드는 성서와 꾸란을 보자. 카렌은 “성서는 서로 모순되는 많은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언제나 선택적으로 읽힌다.”(98쪽)고 했다. IS는 이번 파리 테러의 명목으로 꾸란을 들었지만 정작 이슬람권 사람들은 이에 분노하면서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 세계를 죽이는 것이다.”라는 꾸란의 한 대목을 강조했다. 종교는 굉장히 많은 걸 다뤄왔으므로 당연히 파편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런 까닭에 종교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한 부분만 강조하며 공격하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이 된다.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아마 정보에 민감한 사람들이라면 다 들어봤을 이름들이다. 이들 신무신론자들을 나도 한때는 거의 추앙할 정도였다. 하지만 카렌의 지적을 통해 그들의 한계는 분명해진다. “창조론자들이나 지적 설계론자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도킨스의 심정은 이해할 만 하지만 근본주의적 믿음이 기독교 혹은 종교 전체를 대변한다고 보는 그의 관점은 옳지 않다.”(463쪽) 종교에 대해서 공격적인 태도만을 보이기 때문에 이는 한쪽만 보는 눈이다. 그럼에도 도킨스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왜일까? 나는 무엇 때문에 그의 신랄한 비판을 읽으며 쾌감을 느꼈던 것일까? 트렌드를 따르는 지적 호기심 탓일 수도, 근대적 신을 강조하는 일부 안일한 종교관계자들 때문일 수도, 아니면 진리에 대한 관심 이면에 있는 불신의 반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채 비판 일로에서 지적 유희를 즐긴 나의 지난날을 후회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아마 “이성이 모든 경쟁자를 파괴하려는 우상을 범할 위험성”(470쪽)을 다행스럽게도 직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잠시의 멈춤. 그런 것 말이다.


    도킨스와 달리 우리에게 과거의 통찰을, 흡사 아포파시스를 상기시키는 현상도 있다. 아니, 이건 거의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불확실성만을 남겨놓은 포스트모더니즘은 grands récits, 즉 거대서사를 의심하도록 했다. 근대의 전지전능한 신은 거침없는 상대주의의 공격으로 허물어졌다. 이제 신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절대성이야말로 공격적인 생각, 남을 지배하려는 생각이었다. 확실성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면서 우리는 과거의 통찰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었다. 카렌이 의도적으로 이 책의 말미를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잔니 바티모, 존 카푸토 등으로 채워 넣은 것은 연대기를 따른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뜻에서였다. 정확한 의미의 수미상관은 아니겠지만, ‘모름’에서 ‘모름’으로 회귀하게 된 인류의 사상적 역사에서 일말의 희망이 보이는 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희망이 없었다면, 카렌은 이런 말을 맺음말에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과학이 점점 불확정적인 것으로 변하고 있는 지금 신학도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좀 더 침묵과 모름을 받아들이는 신학으로 되돌아갈 때가 되었는지 모른다.”(492~4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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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 희망과 회복력을 되찾기 위한 어느 불안증 환자의 지적 여정
스콧 스토셀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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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4



    모교에서 수험생들을 격려하겠다며 재치 있는 응원 현수막을 걸었나보다. 관련 인터넷 기사를 보며 살짝 웃다보니 당연 재작년까지 늦깎이로 대학을 다니던 내 모습이 그려졌다. 낯가림이 있고 소심하지만 일단 일을 맡으면 완벽하게 해내려고 하는 터라, 대부분의 모임에서 마지막 일은 내가 하게 됐다. 발표 말이다. 성격이 또 거절은 못한다. 그렇게 학기 당 대여섯 번의 발표를 맡으면 소위 ‘장트러블’에 시달리면서 새벽 늦게까지 잠을 못 잔다. 발표 당일로부터 며칠 전부터 시작되는 긴장. 결국 잠을 줄여가며 수차례 반복 연습하고 실수를 예방하려 한다. 하지만 발표 때마다 겪는 목소리 떨림, 좁아지는 시야, 등 뒤로 흥건해지는 식은땀은 어쩔 수가 없다. 소심증과 완벽주의의 결합이 나를 배신한다.


    그렇다고 약을 먹어야 할 정도의 만성 불안증에 시달리는 건 아니다. 스콧 스토셀의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원제 : My Age of Anxiety)>에 실린 저자 자신의, 혹은 유명 인사들의 실화와 비교하자면, 사실 비교할 만한 수준도 되지 않는다. 역자인 홍한별은 학교에서 토론을 할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옆 짝꿍의 “너 볼 살 떨려!”라는 말에 자리에 주저앉은 적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도 스콧의 오래된 불안증에 비할 바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불안증을 갖고 있다고는 하나, 저자의 스펙터클하고 드라마틱한 경험담과 비슷한 추억에 시달리진 않을 것이다. 그만큼 스콧 스토셀은 불안에 대해 말하기 적합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렇다고 그가 마치 인문학자들이 현대와 불안을 진단하기 위해 내놓는 것처럼 자신만의 이론을, 소위 말하는 ‘썰[設]’을 펴는 건 아니다. (스콧은 잡지사의 에디터다.) 말 그대로 불안을 둘러싼 거의 모든 걸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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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누군가에게 “나 요즘 너무 불안해요.”라고 불평한다고 하자. 물론 이렇게 되묻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상대방이 내게 “대체 불안이 뭡니까?”라고 질문하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위대한 철학자도 아니고, 저명한 병리학자도 아닌 나에게는 그들의 문구를 대화에 응용할 만한 독서량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말문이 막힐 것이다. 왜냐하면 뭔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기에 불안은 피상적인 것도 같고, 한편으로는 분명하게 나 자신이 체감하는 실제적인 증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은 그것이 이리저리 전염된다는 것도 잘 안다. “너 다리 좀 떨지 마. 내가 다 불안해.”라고 말하거나, 앞선 면접 대기자가 한숨을 쉬면 내 마음이 건물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갈 것 같은 기세로 무너지거나. 그럴 때마다 확실하게 하고 싶긴 하다. 대체 불안이 뭘까?


    안타깝다. 히포크라테스 이후 그건 생물학적 문제로 취급되었지만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철학자들은 철학과 정신의 문제로 불안을 다루면서 수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너무 다양하게 쓰이는 단어라 별로 유용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정신심리학자도 있다. 이렇듯 불안에 대한 공통된 합의는 없다. 불안, 두려움, 우울 등등이 우리가 심리를 설명하기 위해 내놓는 단어들. 거의 의미 상 무경계다. 저자 스콧은 심지어 불안이 진짜 병, 혹은 정신질환인지에도 의문을 갖는다. 정상인지 비정상(병)인지의 구분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말이다. 최근에는 두 세계의 경계가 없다는 인문학적 사고가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으니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자신의 불안, 혹은 주변에서 체감되는 불안이 진짜 병으로 진단되어야 하는 것인지 응당 의심을 품게 될 것이다.


    불안증을 치료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약물 복용이다. 물론 약을 먹으면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도록 의사들은 운동을 꾸준하게 병행하거나 명상, 독서, 취미생활 등을 할 것을 환자에게 권한다. 하지만 불안을 약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해도 약 이외의 치료법은 없는 것처럼 그 효능이 부풀려 소개됐었다.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이 오래된 서양에서는 그럴 만도 한 일이었다. 실존을 주목하느냐 분자로 환원하느냐의 기로에서 서양 의학은 엄청난 갈등을 겪었다. (이 갈등은 스콧의 책에 매우 강한 어조로 반복 소개되어 있는데, 주로 제약업체와 주요 학파의 기득권 싸움과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스콧처럼 질문할 수 있기에 이르렀다. “불안을 순수하게 생물학적이거나 기계적인 과정으로 환원할 수 있을까?”(73쪽)


    다시 말하자면, 굳이 강조하지만 불안은 육체와 정신 모두를 괴롭힌다. 두 체계가 이어져 있음이 불안증을 통해 부정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신체가 우선 작동하고 정신이 불안해진다고 생각하는 제임스-랑게 이론도, 불안은 실존의 문제일 뿐이라는 철학적 고찰도 각각의 목소리만으로는 불안을 온전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일례로 스콧은 자신이 오랜 세월동안 구토증후군에 시달렸다고 소개하면서 이른바 ‘뇌-장축(brain-gut axis)’은 실재한다고 말한다. 위가 심리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간디, 토머스 제퍼슨, 키케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휴 그랜트, 옐리네크, 찰스 다윈, 프로이트 등이 모두 불안증 때문에 육체적 고통을 호소했던 이들이다. (나만 발표 불안증에 시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고도의 예민함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달성했다. 여기에는 정신이 작용한다. 자기비판, 완벽주의, 불안, 우울, 나태 혐오 등을 긍정적으로 사용하면 생산적인 삶을 살게 되고, 특히 불안 기질이 도덕성과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보고도 있어 이런 기질이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생각될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자주 불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최근 연예인 정형돈의 프로그램 하차로 더욱 그러한 분위기인데) 그것이 우리의 환경, 즉 ‘현대사회’라는 특수한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내의 분란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동체가 해체된 지는 이미 오래 됐고,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가 위협 받을 수 있다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선택의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진 채 살아간다.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지지대는 사실상 실존뿐이겠지만 실존의 고찰과 일상은 의외로 거리가 꽤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위로하는 책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소비에 의지하거나, 맹신에 의지하거나, 외모에 집착하거나 등등. 실존을 탐구하려는 자세가 변형된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불안은, 만약 그것이 전염된 것이 확실하다면 막연함의 경로를 타고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는 지그문트 바우만이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빌려 쓴 하몬 레온의 개념 포보포비아, 즉 '공포에 대한 공포증'이 적합한 설명이 될 것이다.


    “결국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것은 실상 템포가 빠르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기에 여러 유혹들과 위험들이 들끓고 있는 이 유동하는 근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인 바로 우리 자신들이 느끼는 그 두려움 자체에 대한 공포인 셈이다.”(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250~251쪽)


    그렇다고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사회불안이 고통 받는 당사자의 불안을 유발하는 유일한 원인일까? 정말 지그문트 바우만의 그 ‘유동하는 근대’가 우리의 자율신경계 반응을 급증시켜 고통스런 정서 상태를 일으키는 절대적인 동인이 될 수 있을까? 스콧은 사회불안증과 신경전달물질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은 있으나 뭐가 원인인지는 불분명하다고 못 박는다. 게다가 중세에는 불안할 여유가 없었는데 미국의 경우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선택의 자유가 늘어날수록 불안도 커지는”(392쪽), 즉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 심리가 불안을 유발한다는 식의 시대별 객관화는 무의미하다고까지 말한다. “불안의 형태는 바뀌었으나 불안의 경험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402쪽) 이 책을 살펴본 이들은 알겠지만 스콧은 오랜 고통을 겪은 ‘살아 있는 증거’로서 어느 한 쪽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거나 하진 않는다. 그는 좀처럼 무엇이 원인인지 확언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의 특징을 바로 저자 자신이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의 3부에는 무수히 많은 약 이름들과 흥미로운 사례들이 실려 있다. 스콧은 인지치료와 약 복용을 반복하는 과정을 수차례 겪었다. 일단 약에 대한 그의 비판적인 시각은 이 책의 말미까지 계속된다. 정신약리학에 있어 그 시작은 분명 ‘잘 모르고 하는 의학’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코카인을 사랑했다. 1899년에는 아편이 불안증의 표준 치료제였다. 1914년 전까지는 헤로인이 버젓이 판매됐다. 또한 스콧은 195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정신과 약의 판매량은 제약회사의 상술일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에 주목한다. 스콧이 중점적으로 살펴본 그 시점, 즉 1950년대는 신경전달물질과 관련된 정신건강이론이 탄생한 때인데, 불안과 우울을 바라보는 시점이 과학적으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약리학적으로 완전히 선회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시대였다. 1954년 소라진, 1955년 밀타운, 1959년 이미프라민. 모두 제조기업에 큰 이윤을 안긴 약들이다. 20세기 후반의 상징적 항우울제인 프로작은 천문학적인 성공을 거뒀다. 들으면 놀랄 만한 숫자의 미국 인구가 이 약들을 꾸준히 복용해왔다.


    3부는 어떻게 불안이 약으로 처방 가능한 ‘질병’으로 규정되게 됐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80년대 이후에는 생물학적 정신의학이 프로이트주의자들을 눌러 약이 권장∙처방되는 의료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러나 스콧은 묻는다. 안정제가 개발되자 불안장애진단이 많아졌고, 항우울제가 개발되자 우울증 발병률이 높아졌다. 이게 환자에게 정말 이득이었을까? 반반이다. 성격적으로 결함이 있어 우울하다는 통설이 “그건 병이다.”라는 한 마디로 일축될 수 있어 환자의 고통이 반감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비교적 건강한 사람인데도 점점 확장되는 정신질환 범주 속에 포함될 수 있었다. 스콧이 의문을 갖는 것이 바로 이 ‘늘어나는 범주’다. 질병목록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차트인 DSM은 사실상 정치적 문건이고, 편찬위원회 측에서도 범주의 구분이 자의적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했다고 한다.


    약물 처방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약 만능주의’의 지난 수십 년 동안 가려져 있던 그 주장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게 보도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FDA는 약물의존에 대한 보고서를 입수했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정부가 안정제로 사회를 통제하려 한다는 음모론을 제기했다. 마르쿠제는 자본주의의 소외 탓에 사람들이 약에 빠진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휘터커는 약이 정신병을 일으킨다고 말했다가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대부분 약물 처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려하는 건 약물의존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정신을 분자 단위로 축소하는 환원주의적 세계관을 경고하는 메시지들도 있다. 그러나 스콧은 무척 신중하다.


    “나는, 정신과 약을 신중하게 사용하는 일에 이념적으로 반대하지 않으면서도 제약회사의 주장에 대해 회의할 수 있고, 인구가 약을 대규모로 소비한다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우려할 수 있고, 정신과 약을 먹음으로써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 어떤 손실이 있을지에 신경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297쪽)


    불안의 유전 여부를 두고 펼쳐진 학계의 논쟁도 흥미롭게 볼 만하다. 초등학교 2학년의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의정부의 한 주공 아파트에 있었다. 물론 우리집이었다. 동생과 함께 외출을 나간 어머니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초조했었다. 오후 1~2시 사이였던 것 같다. 현관문을 살짝 열고 밖을 봤지만 복도는 휑했다. 그렇게 수십 분을 더 기다리던 소심한 소년은 결국 “엄마 오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면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런 대성통곡은 없었을 것이다. 그 날 오후, 어머니는 눈물범벅이 된 나를 진정시키려고 꽤나 고생하셨다. 이걸 ‘분리불안’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런 증상을 설명하는데 있어 가장 설득력 있는 이론이 존 볼비와 메리 에인즈워스의 애착 이론이다. 여기서 불안의 원인이 한 차례 입증된 듯했다. 놀랍게도 1950년대에는 육아와 아동심리발달이 별로 관계가 없을 거라는 통념이 있었다. 존과 메리의 주장은 지금 보면 상식 중의 상식이다. 어머니의 애정이 자녀의 정신건강에 중요하다. 어머니가 불안해하면 자녀들도 불안해한다. 어머니가 해서는 안 되는 최악의 육아방식은 과잉보호와 애정결핍의 결합이다. 이 당연한 말을 했다가 존 볼비는 정신분석학과 행동심리학 분야의 중진들에게서 배교됐다.


    그러나 육아와 불안의 상관관계는 “불안은 유전된다.”라고 주장한 제롬 케이건의 ‘억제 기질’ 이론으로 조만간 공격받았다. 불안을 유발하는 특정 유전자형, 예컨대 책에 소개된 COMT 유전자형으로 보자면 val/met와 met/met형을 가진 사람은 스트레스나 외상을 겪으면 심리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제롬은 양육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내재된 불안 유전자가 증상을 유발하는 원인이라 주장했다. 물론 그런 과학적 발견이 있었다고 해도 나는 스콧과 같은 입장이다. (그렇다고 육아방식과 연관된다는 주장에 더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넥스트 휴먼>에서 소개된 사례인데, 동일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쌍둥이라 할지라도 평생에 걸쳐 누적된 생활습관의 차이 탓에 한 명은 뚱뚱하지만 다른 한 명은 운동을 좋아하고 소식을 실천해 건강한 체형을 갖고 있었다. 유전자도 환경의 차이로 발현 여부가 결정된다. 또한 스콧의 말처럼 어느 하나의 유전자로 불안증 전체를 예측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불안의 복잡다단함을 강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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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 홍한별의 말처럼 이 책은 분명 유사경험을 제공한다. 몸이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답답하다가 의심도 되다가 뻥 뚫리기도 한다.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공유할 수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럴 것이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만약 그들 중에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에서 속 시원한 해결책을 하나 얻으려는 일말의 기대를 건 이가 있다면, 나는 그 기대를 접어두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싶다. 저자마저도 끝까지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나는 별로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은 불안을 달고 사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걸 긍정적 피드백으로 계속 밀어내려는 노력, 그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 말이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 제목처럼 불안은 곁에 두고 가는 동반자일 수도 있다. 혹은 아주 벗어날 수는 없는, 실존의 범위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일 수도 있다. 증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우리는 그걸 줄여나가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적잖은 위안은 된다. 불안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스콧은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고, 다사다난함 속에서 여러 약을 먹어가면서 불안을 안고 마감까지 끌어갔다. 그가 얼마나 많은 글을 읽고 참조하려고 했는지는 별도의 장으로 마련된 목록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개인의 불안에서 시작해서 우리의 불안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콧이 남겨준 이 한 마디, 불안의 양면성에 대한 체험적 고백은 독자들에게 용기를 준다. 해결책은 아니다. 다만 원망만 하면서 살진 말라는 지극히 교훈적인 위로다.


    “내 불안은 낫지 않는 상처처럼 가끔은 나의 삶을 막아서고 나에게 수치심을 안겨준다. 그렇지만 동시에 어떤 힘의 원천이자 은총이기도 하다.”(422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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