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손
복거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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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전문적인 정보나, 대담, 혹은 그 사이사이에 빈약한 소설적 장치처럼 등장하는 별 의미 없는 대화들을 훑어 읽을 수밖에 없다면, 독자는 과연 얼마나 감동을 받을까? 소설을 평가할 때, 독자는 작가가 지닌 수많은 지식들의 편린, 그 물결치는 비늘들의 아름다움보다는 작가의 주도면밀한 전략과 감성적이고 기발한 표현들에 더 높은 배점을 매길 것이다.


  이에 비춰봤을 때, 복거일의 <보이지 않는 손>은 그야말로 <무정(無情)>처럼 지루한 ‘계몽주의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생각이 여기에만 미쳤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에 홀린 사람마냥 나는 하품을 거두며 이 책을 한 장 한 장 음미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소설’이라는 틀에서 이미 벗어나 ‘이립’에게 공감을 느끼고 있었다.

 

 

 

*    *    *

 

 

 

  독서에 앞서 그가 이 소설을 쓴 맥락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좋다. 자전적 소설의 뉘앙스가 강하기 때문이다. (내가 강의시간에 들은 바를 정리해본다.)


  복거일은 87년에 <비명(碑銘)을 찾아서>라는 ‘대체역사’장르소설을 쓴다. 작품의 전제는 이렇다. “일제의 통치가 당시(87년)까지 계속 이뤄졌다면 어떠했을까?” 독재정권과 일제 총독부 사이의 묘한 대응이 이뤄진다. 여하튼 이 소설이 한 극작가의 손을 거쳐 <2009 로스트 메모리즈(2001, 감독 이시명)>로 만들어졌다. 시나리오는 99년에 완성됐다. 복거일은 극작가로부터 미리 전화를 받았으나, 전화내용으로는 어떤 구두계약도 없었다. 이런 상황을 모른 채 영화를 본 복거일은 엔딩크레딧에 ‘원작 복거일’이 삽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왜 상의하지 않았나?”라는 항의를 했다. 그러자 영화사 측에서는 원작자명을 엔딩크레딧에서 삭제했다. 복거일은 소송에 들어갔으나, 결과는 패소였다.


  저작권법은 대단히 첨예하다. ‘사상표현이분법’이라고 해서, 표현의 형식만을 보호하지 내용, 즉 아이디어, 사실, 방법, 주제 등은 보호받지 못하는 법이 있는데, 사실 성문화되어 있진 않고 판례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복거일이 돈 얼마 받겠다고 소송을 걸진 않았을 것이다. 지적재산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사회에 인식시키고자, 승소 판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일 텐데, 안타깝게도 그의 패소는 자전적 소설 <보이지 않는 손>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소설의 후미(後尾)는 흐지부지 끝난다. 한 법률회사의 여직원이 ‘명랑한 목소리’로 주인공 현이립에게 “네. ‘원고 패’라고 나왔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복거일의 표현대로 ‘기괴한 심상’이 만들어진다.


  여기서 그가 말한 ‘기괴한 심상’이라는 것을, 독자들은 아마 허무하게 바라볼 것이다. 복거일과 현이립이 당한 일을 그대로 겪어본 사람이라면 - 나는 잘 모르겠으나 - 분노할 수도 있다. 법은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법은 우리들의 훌륭한 ‘수호자’가 될 수 없다. 주인공 현이립은 소설 초반에 재판장과 영화사 측 변호사로부터 일종의 모멸감을 받는다. 저 둘은 친한 듯하다. (이 점에 대해서 교수님의 코멘트가 있었다. 여성법조인은 거의 다 남성법조인과 결혼을 해야 한다. 즉, 판사와 변호사의 관계는 거의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변호사는 변호해줄 생각이 없는 듯하다. 현이립은 순간 법으로부터 멀어져 있다는 생각에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그의 나이는 이미 황혼 위에 서 있고,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는 갖춰야 한다. 일침만 놓고 나왔다.

 

 

 

*    *    *

 

 


  소설 구조 자체는 간단하다. 전반부의 모멸과 후반부의 ‘기괴한 심상’ 사이에 현이립과 그의 주변 인물들 사이에 오고 가는 대담이 전부다. 큰 틀은 저작권법의 취약점, ‘이상한 판결’ 등으로만 볼 수 있겠으나, 사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대담들이다.


  앞서 내가 말한 이 소설의 지루함이란 대개 이 대담들이 던져준 것이다. 어렵고, 생소하거나, 사상적으로 닿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내용은 민족주의적 사상을 지지하는 독자들로부터 심한 배척을 받을 수도 있다. 지식의 향연을 싫어하는 독자에게는 탁상공론 내지는 지적 부르주아들의 ‘오징어 땅콩 이야기’ 정도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사설로 신문에 발표해도 될 내용들을 왜 소설 속에 삽입했는가?”라며 ‘당의정(糖衣錠)’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수도 있다. 수긍할 수 있는 비판들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가졌던 지루함과 위의 비판들로부터 복거일을 변호해보고자 한다.

 

  평소 글에 대해 생각하는 학생으로서 나는 글 속에 전문지식들을 삽입해놓는 작업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혹은 기능)를 갖는지에 대해 이렇게 추측하고 있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상당한 수준의 위안을 준다. 어떤 참조도 없이 지식의 옷을 입은 글을 쓸 수 있다면 “나는 이 정도 쓴다.”고 자위(自慰)하게 된다. 또한 사회현실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는 이유로 짜릿한 해소감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위의 두 감정, 즉 안도감과 해소감은 대다수의 쾌락이 그렇듯 작가에게 별 효용이 없다. 둘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따라서 작가가 지식의 자수가 놓인 작품을 내놓았다면 우리는 위의 일반적인 감정 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해봐야 한다. (저런 감정들은 얼마나 옹졸한가 말이다. 분별 있는 작가라면 애당초 사설로 쓸 글과 작품화할 글 사이의 차이를 알 것이다.) 위의 두 감정은 개인적 차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작가가 저런 감정 따위에 굴복되는 일은 없다. 굴복되는 순간 생명은 끝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작가는 그의 생명줄인 독자와의 유대감에 신경을 써야 한다.


  독자는 불특정다수의 노드(node)이다. 그들이 작가 자신이 내놓은 지식들로부터 논할 수 있는 이 사회의 문제들을 함께 토론했으면 하는 대상이라면, 작가는 일종의 지적 유대감을 통해 독자들과 공동체의식을 형성하는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작가는 정서적 유대감까지 충분히 바라게 된다. 쉽게 말해 “내가 쓴 이 작품에 여러 지식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내가 소설에 넣어둔 사회문제를 풀 때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이오.”라며 작가가 독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점을 파악했을 때야 비로소 독자들은 지식의 지루함을 물릴 수 있다. 보다 더 적극적인, 앞으로 기울어진 독서 자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을 수 있다. 앞서 누군가가 ‘당의정’을 말했다고 했는데, 그의 입장에서 보면 “문학이란 과연 무엇인가?”라고 되물어야 한다. 그는 문학은 사설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일 것이다. ‘개념적 돌파’, ‘패러다임 쉬프트’, ‘테크노크라트’, ‘주변부지식인’, ‘문제제기자’ 등 어려운 용어들이 많다. 도킨스 이야기도 나오고, 닐스 보어, 우주론 등이 나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이립 주변 인물들이 하나 같이 과학에 일가견 있는 연구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복거일의 장치일 뿐이다. 문제는 그가 왜 그런 말들을 굳이 소설에 집어넣었는가 하는 것이다.

 

  주인공 현이립은 소설가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소설만 쓰는 사람은 아니다. 박학다식하며, 정의롭기까지 하다. 그가 살아오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당신이 뭔데?”였다는 것으로 보더라도, 그는 행동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행동할 수 있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여기서 ‘지식인’이라는 단어가 중요하다. 책에는 여러 이론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거칠게 묶어서 현이립의, 아니 복거일의 자기인식을 도식화시키자면 우선 ‘주변부지식인’이라는 개념과 ‘문제제기자’라는 개념을 가운데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은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전체를 조망하고, ‘문제해결자(예컨대 정책담당자)’와는 달리 사회의 문제를 제기한다. 사실 이 정도 생각은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정도에, 즉 추상적 인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도식을 소설에 적용하면 복거일이 하고자 하는 말이 상당한 현실적 호소력을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이립은 주변에 있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에게 모욕을 준 - 혹은 현이립 스스로가 모욕을 받았다고만 느끼고, 정작 그들은 전혀 모욕을 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 - 법조계 사람들은 중심에 있고, 문제를 해결한다. 현이립이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은 중심부이다. 그곳에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이동할 뿐, 전체적으로 보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 법이 있다. 엄밀히 말해 이 소설에서 말하는 법이라는 것은 저작권법이다. 이것의 문제 때문에 현이립이 패소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웃사이더.


  복거일은 작품의 특징에 대해 노골적으로 언급한다.


  “지식인이 지식인들을 위해 쓴 소설이었다.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지식들로 채워진 소설. 큰물에 떠내려와 길을 막은 바위처럼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소설.(pg.195)


  그렇다면 이 소설은 성공이다. 불편하고, 지루하며, 읽고 싶지 않은 구절들은 몇 장마다 한 장씩 등장한다. 이런 종류의 성공은 소설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단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독자들에게 외면 받으면서도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하게 된다는 역설적인 특징이야말로, 그런 까닭에 스스로 빛을 내는 모습이야말로 소설의 능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이런 생각을했다. 한편으로는 복거일이 보여준 반성적 성찰의 집요함에 대해 혀를 내두르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지루한 소설로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인가를 물었으나, 그 물음은 오래 가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의 지식을 공유하며 현안에 대해 토론할 자세와 수준이 되어 있지 않음에 대해 안타까워했다는 것이다.

 

 

 

*    *    *

 

 


  소설은 이런 면에서, 즉 이런 기능에서 장르의 경계를 불문하고 한껏 몸집을 불려나가는 것 같다. 그것이 현대의 흐름이라고 해도, 억지스러운 감정들을 쏟아내며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향유시키는 종류의 소설이 <보이지 않는 손>과 같은 소설들보다 관심을 더 많이 받는 것이 사실이다. 현실 자체에서 도피하여 새로운 감정, 혹은 진한 감정을 맛보고자 하는 것이 소설 독서의 가장 든든한 이유라고 한다면 그러한 관심은 분명 이해가 된다. 교시보다야 쾌락이 더 나은 것이다.


  그러나 복거일의 소설을 읽음과 동시에 독자들은 ‘소설 독서’라는 삶의 영역에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 ‘현실’과 대면하게 된다. 소설이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복거일의 이 작품은 다른 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겠으나, ‘어떤 현실’을 기반으로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가?”의 차이로부터 문학의 새로운 - 하지만 전혀 낯선 것은 아닌 - 기능에 대해 우리는 숙고해야 할 시간을 점점 더 자주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도전하라는 신호임과 동시에 도전해야 한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소설은 패소로 끝났지만 “현실은 그래서야 되겠는가!”라는, 물음표 대신에 높은 탑처럼 서 있는 느낌표에 대한 연대감이기도 하다. 법이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했을 때, 우리는 법에 대항해야 한다. 방패를 든 존재에게 창을 겨누는 것이다. 이를 사회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일이야말로 사설과 르포의 기능일 텐데, 복거일은 그것을 문학의 힘으로 표현해보려고 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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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8 16: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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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8 16: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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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1 0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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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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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이 책을 덮은 건 자정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는 무렵 즈음이었다. 아무도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나의 방에서, 나는 아무도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작은 음량에 나의 심정을 한껏 실어 길게 발음했다.
  욕이다.
  굳이 쓰진 않겠다. - 욕을 달고 사는 사람은 못 되니.


  생각해보니 나의 심경을 대변해줄 발언이 소설에 있어 옮겨본다. 혹 이 누추한 공간을 찾아 나의 글을 읽어주는 이가 있다면, 밑의 구절 중 내가 어디를 밑줄 친 진한 서체로 쓰고자 했는지, 십분 헤아려줬으면 한다.


  “선생님들, 저는 배우지 못하고 아는 것도 없지만 그 어린게 얼마나 아팠을지, 얼마나 서럽고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내가 지금이라도 쫓아가서 그놈들 부자지를 잡아서 다 찢어버려도 속이 시원치가 않을 거예요.”


  230쪽부터는 좀처럼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예수는 이 세계에서 부활할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진리고 나발이고.’ 나는 이렇게도 생각했다.


  “영화 보셨어요?”
  어머니께서는 흐릿하게 답하셨다.
  “소설로 읽었지. 그런데……”


  나는 이 여섯 개의 방점들로부터 나의 글을 열려고 한다. “부자지를 잡아서 다 찢어버릴 그놈들”을 서울광장 한복판에 세워두고자 하는 마음으로. 미간이 펴지질 않는다.
  <도가니>를 읽었다.

 

 

*    *    *

 

 

  지난 해, 수능 때 한 여고생이 자살했다. 뉴스가 나갔다. 사설도 반응했다. <한겨레>에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 결성을 촉구하는 한 대학생의 짧은 글이 올라왔다. 예전에도 이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지젝을 떠올리며, 속으로는 그게 사회 전체의 간곡한 연민의 눈길을 받을 만한 사건이 안 되는 현실이라는 점을 굳이 들춰냈다. 나는 대체로 회의론자였던 탓이다.


  토론과 연대의 힘을 못 믿는 것은 아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충분치 못한 규모이다. 수많은 이익집단들의 싸움 속에서 정의가 불특정다수를 위한 태양처럼만 보이는 것이 문제이다. 생각하기 싫으면 우리는 이 불특정다수를 편의상 ‘우리’라고 부르고 만다. 범인(凡人)들은 생각하는 지성, 실천하는 지성을 요구하고,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생각하고 실천하며 베푸는 지성은 힘의 주변에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떨 때, 나는 차라리 이런 생각도 했었다. ‘대규모의 민란(民亂)이라고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나 우리의 ‘적’은 - 만약 이렇게 불러도 된다면 - 멀리 있지 않다. 웹툰 <이웃사람>을 보다가 나는 작가 강풀이 우리사회의 ‘적의 정체’를 꿰뚫어봤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 극단적 픽션이 시쳇말로 “레알(real)”이었듯이 수많은 “픽션 같은 레알”들이 여기에 존재한다. 한 강의에서 들은 교수의 일침이 잊히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SF소설은 성공하지 못할 거예요. 현실이 SF인데.”


  회의는 의외로 짙었고, 나는 아직도 나의 어딘가에 있는 방풍되지 않는 창문이 나를 시리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렇다. 우리가 비근하게 써서 별 의미도 없어진 이 부사 ‘그럴수록’, 이 단어를 도구로 삼아 더욱 연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강인호와 서유진에게 필요했던 것은 진정한 의미의, 어느 정도 힘을 가져 이씨 형제 측과 대등한 싸움을 해볼 수 있는 연대였다. 적어도 그런 의식은 필요했다. 연대는 분노해야 했다. 에셀이 우리에게 그러라고 했었다. 작년의 대유행이었던 슬로건. 분노하라. 하지만 이 용광로 같은 불길 속에서 우리는 제각각 버틸 만큼만 참는다. 그러다 제 형체가 훼손될 것 같다 싶으면 본능적으로 몸을 빼낸다. 데일 것 같으니까. 불사른 이들의 죽음과 그들이 토로하는 이 세계의 부조리만 살아남는다. 그것들은 시지포스의 바위처럼 불멸한다.


  이쪽이, 그러니까 ‘우리’가 정의롭다고 믿는 쪽이 분노한다면, 저쪽은 - 이강석, 이강복, 박보현, 윤자애, 황변호사, 교인들 - 증오한다. 이 감정의 차이는 크다. 한쪽에서는 “저 죽일 놈”이라고 한다. 다른 편에서는 그들이 정말 죽을 것 같으니까 궁지에 몰린 쥐처럼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며 칼날을 내민다. 비교해 봐도 강력한 건 후자이다. 소설에는 자크 프레베르의 시가 나오는데, 그 중 ‘성냥’이 ‘우리’의 연대를 의미한다면 후자는 그걸 불어서 단숨에 꺼버리는 부조리의 생존력이다. 철학자들도, 어른들도, 그리고 나도 생각하건대 저 세 글자 ‘부조리’는 우리가 죽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예정된 월급을 꼬박꼬박 받아서 사는 계획적이고 소시민적인 기쁨을 누리자는 결심”을 가졌던 강인호는 불멸의 세계로 뛰어들면서 이리저리 정신적 구타를 당한다. 정신을 못 차리니 ‘길거리의 미니스커트’들로부터 망측한 일도 당한다. 그에게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차마 말 못할 진실을 보는 것은 “듣는다는 것[聽]”을 의미한다. 그것이 엄청난 일일 줄이야. 서유진의 말마따나 이건 ‘광란의 도가니’이고, 이 나라는 ‘발정난 나라’이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좋은 나라 아닌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그지 같은 줄은 몰랐어.” 우리는 상식을 앞에 세우고 청문회를 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상식에는 ‘거짓말’도 포함되어 있다. 장경사의 말이다.
  “사방에서 거짓말을 하며 서로서로 눈감아주고 있어요. ……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직도 정의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 한번만 눈감아 주면 다들 행복한데, 한두 명만 양보하면 - 그들은 이걸 양보라고 부르죠 - 세상이 다 조용한데, 그런데 당신은 지금 그들을 흔들고 있어요.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변화를 하자고 덤빈단 말이지요.”


  그렇다. 우리에게 ‘상식’이란 “이건 아니잖아.”라며 한 사건에 대해 우리가 증거로 내밀 수 있는 종류의 정의로운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변화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믿음일 것이다. 세상은 빠르다는데, 과연 우리는 얼마나 이 세상이 변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누군가가 그랬다. 여성운동은 여성이 시작했고, 노예해방운동은 노예들이, 제 3세계 운동은 제 3세계가, 그리고 학생운동은 학생들이 시작했다고. SNS와 Youtube 등 범세계적 매체를 통해 여기저기서 혁명이 성공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고무적인 시선을 보낸다. 그러나 지금의 이집트를 보고 있으면 우리의 찬사가 너무 섣불렀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본다. 상식의 ‘오념(汚念)’을 바꿔보자고, 나는 서유진이 장경사에게,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진의 안개 낀 거리를 바라보며 분명하게 말한 구절을 들여다봤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변화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믿음. 이에 대항하는, 세상은 더러워도 나는 더러워지지 않겠다는 무변화(無變化)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 나는 굴원(屈原)이 떠올랐다. 어른들이 나에게 굴원의 어부처럼 말한다면 나는 과연 서유진처럼 답할 수 있을까. 세상에 대드는 것 같아 주변에서는 날 아니꼽게 보지 않을까. 그럴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바로 이거다. 남들이 날 튕겨낼 것 같으니까 되도록 노련하게 붙어있는 것이다.


  “저래서 배운 사람은 쓰면 안 돼.”
  나는 군대에서 한 원사에게 들은 말이 돌연 생각났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거짓말의 종류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배워야 한다. 배워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처럼 약삭빠르게 진실을 변호할 줄 알아야 한다. 안 그러면, 너무 착하면, 거짓말이 우리의 코를 눈뜬 사이에 베어갈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J.S.밀은 <자유론>에서 교육을 그토록 강조했다. 교육을 위해서라면 ‘선의의 독재’도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이 소설의 법정에서 농아들이 힘없이 떨어져 나가고, 어느 때에는 다섯 명이나 한꺼번에 구속되는 광경을 보면서 배운 자들의 권력과 그 음흉한 속내을 다시 한 번 혐오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게 되었다. 저들은 심지어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칸트식으로 말하자면 진실에 대해 예를 지키면서도 거짓말에 버금가는 악랄한 진실을 유포할 줄 알지 않던가.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그러나 위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진실의 편에 서려는 사람들이 견뎌야 하는 고독을 잠시나마 물릴 수 있는 ‘진실’이다.
  “언제나 공포는 상상할 때 더 크다.”


  침묵의 카르텔을 농아들의 어눌한 비명소리로는 깰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슬픔이다. 두 번째 슬픔은 더 슬픈데, 그것은 우리가 대체로 저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어쩌면, 이건 정말 조심스럽게 꺼낼 수밖에 없는 말인데, 이 사회가 다름 아닌 자애학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의 침묵에 채찍질을 가해본다.

 

 

 

*    *    *

 

 

 

  오늘은 늦게까지 비가 오락가락했다. 천둥도 쳤고, 바람은 이따금 깜짝 놀랄 만치 차가웠다. 나는 <도가니>를 생각하며, 신촌을 지나 연대 앞에서 버스를 탔다.


  연신내 즈음에서 신호 때문에 버스가 멈췄고, 나는 창밖을 무심코 내려다봤다. 무진의 안개 같은 혼탁한 구정물이 도로 위에 고여 있었다. 오직 바다만이 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더러운 혼융의 세계를 청렴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비는 그치고 서쪽에서 강한 햇살이 들어와 그쪽 창가의 승객들은 하나둘 버스의 커튼을 쳤다.


  어쩌면 말이다. 지극(至極)할 수 없는 태양이 상식의 세계, 혹은 정의의 정토(淨土)이고, 우리는 그것의 광휘를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툭 던져봤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연둣빛의 아름다운 소설 표지를 바라보며 그 속에 들어 있는 도로 위 구정물 같은 세계에게 비명을 질러본다.


  너, 이 책 안에만 있어라. <도가니> 안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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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14: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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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1-06 15: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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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6 2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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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의 역사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2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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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4

 

 

  태어난 지 얼마나 되었고, 지금까지 얼마나 공부했고, 또한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를 논하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내가 무슨 자신을 부릴 수 있을까. 양(量)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러니 나는 언제나 내가 넓혀가는 ‘나’의 영토의 경계에 서서 늘 변화하는 최대치를 바라보는 수밖에 없다. 이 사실을 나 스스로를 변호할 수단으로 삼아보고 말하건대, 움베르토 에코의 <추의 역사>는 바로 이 순간까지 내가 읽었던 여러 책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다.


  읽고 난 후의 애착이 아니다. 읽을 때의 애착을 나는 일일이 기록했었다. 짧은 챕터는 3장 정도이다. 원문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도판이거나 참조할 구절들의 나열이다. 에코 자신도 추의 사례들을 주로 제시만 했다. (그래서 이따금 나오는 분석들이 중요하다.) 여러 사례들 사이를 앞뒤로 연결하며 독자들은 스스로 아라크네가 되어야만 한다.


  어려운 책이다. 바꿔 말하자면 세세하게 공부하려고 접할 수 있는 책으로는 아주 매력적이다. 그가 예시로 소개한 수많은 사례들만 놓고 보더라도, <미의 역사>와 비교했을 때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단언할 수 없다. 나는 그 가치를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들로 음미하기 위해 한 챕터를 나의 글로 10~13장 정도 늘여 쓰고, 또 다른 도판들을 인터넷에서 찾아 연구하는 즐거운 강행군을 감행했었다. (내가 지난 <케테 콜비츠> 리뷰에 적었던, 미술사 공부할 적 세세한 것들에 열광했다고 한 시기가 바로 <추의 역사>를 읽던 때였다. 나는 디테일들을 아침 삼아 먹곤 했었다.)


  몇몇 독자들은 앞에서부터 몇 장 넘기다가 루벤스의 메두사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잘려나간 메두사의 머리 주변에 미꾸라지와 거미 등이 있는 것도 그러하고, 눈을 아래로 무섭게 뜨고 있는 그녀의 표정도 점점 익숙해지다가 유치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자극으로부터의 적응은 의외로 빠르다. 나는 현대미술을 공부할 무렵에 지금 생각해도 역겹기 그지없는 작품들을 여러 개 본 적이 있는데, 다시 보면 별 것 아닌 미미한 자극만 받을 뿐이다.


  한창 미술블로그를 할 때, 나는 <추의 역사>를 나의 글로 편집하고 에코의 관점과 사례들을 보다 자세하게, 그리고 내가 찾은 다른 예시들과 함께 소개하는 포스팅을 10회 정도 했었다. 나는 매번 포스팅 위에 “비위가 좋지 않은 분은 읽지 마세요.”라는 빨간색 경고문을 썼었다. 내가 그 전까지 올리던 포스팅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글을 읽는 이웃블로거들과 누리꾼들은 이내 적응했다. 어느 미술팬은 별다른 자극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었다. 그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 온갖 것들에 노출된 적이 있을 현대인들은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를 보고 깜짝 놀라 뒤로 놀라 넘어졌다는 - 이는 바사리의 기록인데, 과장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물론 바사리는 소위 ‘뻥튀기’를 즐겨 쓴 전기작가이자 화가이지만 - 일화의 주인공이 되진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추’라는 것은 달가운, 혹은 친근한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어떤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위치란 안방보다는 화장실, 세면대보다는 변기 근처일 것이다. 비유가 조금 단순했으나, 다들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 비근함이란 우리가 그것을 대했을 때, 자극의 세기가 어찌 되었든 간에 거의 일차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거나 시선을 다소간 회피하려고 하는 추의 핵심을 관통한다. 의식적으로, 혹은 후천적으로 추는 극복될 수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편리한 기술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추가 돌연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충분히 비명을 지를 수 있다.


  움베르토의 이 책은 앞서 말한 것처럼 수없이 나열된 도판들을 하나둘 넘겨보는 것으로도 그 가치가 있다. 뭔가 보는 걸 좋아하는데, 미술사는 잘 모르겠는 독자라면 먼저 도판들을 쭉 살펴보는 것을 권한다. 그러다가 문득 “도대체 이것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왜 이것들 앞에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갖게 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그/그녀는 움베르토의 서문을 천천히 읽어보고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독서란 그런 것이 아닌가. 질문을 던져 놓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질문한 자의 예의도 아닐 것이고. 그렇게 오랜 여정을 움베르토가 만든 길 위에서 보내다 보면 그 수많았던 추가 한순간 모든 시선을 나 자신에게 소급시켜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추를 바라보고 있는 나’이다. 나와 ‘그것’ 사이의 거리이다. 저마다 다른 형태의 추들이 나와 갖는 관계이다. 움베르토의 말마따나 아프리카의 제의용 가면은 우리의 눈에 섬뜩하게 보일 것이다. 11페이지를 보라. 아프리카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라면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불길하다는 생각을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상대적 차이는 우리들이 이미 시대정신으로 다 체득한 상대주의의 산물이다. “너와 나는 달라.”에서 나오는 인식 말이다. 굳이 이를 위해 추를 예로 삼지 않아도 된다. 미술비평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것인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부시맨들에게 감동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예도 있다.


  경계는 이미, 한참 전에 애매해졌다. 무엇이 미(美)이고, 무엇이 추(醜)인가. 안이한 직관주의로 보자면 대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아름답고, 데미언 허스트의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가능성>은 추하다.”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대상들을 그저 콕콕 언급한 것일 뿐이다. 문제는 판단의 경계이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미와 추의 분할을 시작하는가? 움베르토의 이 질문은 어떤가?


  “추를 미의 반대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움베르토가 제시한 역사적 사례들을 쭉 살펴보면서 더러는 계보학의 형사가 된 듯한 착각을 통해 쾌락을, 더러는 자세한 사실들을 알아간다는 쾌락을 느끼겠지만 그러한 이해 속에 중요한 것은 바로 오늘날의 ‘나’가 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 굳이 ‘추’ 하나만 관계 지을 필요는 없다. 미든 추든 상관없다. 이 둘을 ‘대조적 모델’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과연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혹은 우리가 이 둘을 어느 위치에 놓은 것일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질문에 우리는 꽤 쉽게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그것은 아마 움베르토의 이 말과 같을 것이다. 426페이지이다.


  “오늘날 우리가 서로 대조적인 모델들과 공존하는 것은 미/추의 대립이 더 이상 어떤 미학적 가치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와 추가 중립적으로 경험될 수 있는 두 가지의 가능한 선택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많은 젊은이들의 행위로 확인된다. 영화, 텔레비전, 잡지, 광고, 패션 등은 모두가 고대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미의 모델들을 제시하고, 우리는 르네상스 화가가 그린 브래드 피트, 섀런 스톤, 조지 클루니, 니콜 키드먼의 얼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이상들(미적으로든 성적으로든)과 일체감을 느끼는 바로 그 젊은이들이 른네상스 시대 사람들이 혐오스럽다고 여겼을 외모의 록 가수를 보고 미칠 듯이 환호하기도 한다. …… 매릴린 맨슨과 닮아 보이기 위해 종종 화장을 하고 문신을 하며, 핀으로 살을 뚫고 피어싱을 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움베르토의 생각처럼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르네상스적이다.”라고 선언할 수도 있다. 미/추의 중립성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오히려 낯선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 특성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중립성이 혹시 별다른 생각 없이 나온 것이라면 미/추에 붙어 있었던 고전적 의미의 도덕 가치들은 말 그대로 “별다른 생각 없이” 그 의미들을 잃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상실이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미/추를 구분하려고 하는 ‘나’의 애매모호한 판단에 푹 빠져 있다가도 다시 추의 본질적 특성으로 회귀하게 된다. 책의 순서상으로도 자연스럽다. 마지막 챕터에 움베르토는 그가 하고자 한 말의 핵심을 실었다. 그의 질문은 이것이다. 왜 예술은 추에 집착했었는가? 그리고 집착하고 있는가? 그는 예술의 힘이 일상의 판단에 비하면 주변적일 수도 있음을 토로하면서도 예술의 집요를 “이 세계에는 냉엄하고 슬프게도 악한 어떤 것이 있음을” 상기시키려는 시도라고 판단했다.


  추가 ‘불쾌감’, ‘혐오감’, ‘두려움’과 연결되는 것은 그렇게 인간이 문화적으로 학습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일그러지는 무언가, 2개가 아닌 3개의 눈, 폭발하는 물체의 징그러운 파편들은 모두 우리와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의 일상성을 위협한다. 그것은 비극과 궁극적으로 닿아 있다. 우리가 추도 학습인 것처럼 생각하는 까닭은 예술로 표현된 추의 구체적 대상들이 문화, 더 구체적으로는 정치와 종교의 ‘적(敵)’과 다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대상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드러나는 양상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추하다. 연민과 애착이 생기더라도 그건 부차적인 이해이다.


  다시 돌아가 보건대, 추는 ‘저기’에 있다. 내가 그것을 ‘여기’로 끌고 온다고 하더라도 내가 끌고 온 것은 추가 아니라 추를 바라보는 ‘나’에 지나지 않는다. 만족은 대부분 착각에서 온다고 하더라. 이 책을 읽은 지 2년이 다 되가는데, 나는 “나는 추를 이해했어.”라고 생각하던 옛 착각을 상당 부분 지워가고 있다. 이미 많이 지웠다. 다시금 이 책의 도판들을 보며 하나씩 회상에 잠겨보는데, 그것들은 모두 낯설어졌고, 모두 추했다. 나와 ‘그것’ 사이의 거리는 멀어졌다. 그 거리는 원래 먼 것이었다. 결국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추를 이해하고 그것과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것은 실은 <추의 역사>에 대한 나의 오마주였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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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4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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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4 2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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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범우사상신서 9
E.H.CARR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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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0

 

 

  많든 적든 우리는 누구다 한 번 쯤은 스스로 역사가가 되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미술사를 공부할 때 그러했다. 카라바조를 좋아하는 나는 그와 나란히 두고 공부할 만한 화가로 렘브란트를 삼아 삶을 추적해본 일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외국 사이트들을 검색하며 도판을 확인하고, 국내 서적들과 논문들을 참조하여 정보들을 모은 뒤, 나는 2년 전 이런 글을 썼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어렸을 때, 렘브란트는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레이던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그는 14세에 대학교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당시 레이던에서 활동하던 역사화 화가인 야콥(Jacob van Swanenburgh)에게서 그림을 3년 동안 배웠지만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화가는 야콥보다 더 유명했던 피터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이었다. 라스트만이 중요한 이유는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직접적인 연결, 즉 키아로스쿠로 부분에 있어서 가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이탈리아 유학을 간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유럽에 가본 적도 없다. 반면, 라스트만은 로마를 직접 방문한 유학파 중 한 명이었고,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카라바조와 엘스하이머의 키아로스쿠로 작품들을 보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다. 라스트만에게서 6개월을 수학한 그는 그 무렵 카라바조의 독특한 스타일에 대해서 충분히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작품을 만족할 만큼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피터르에게 주목한 까닭은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명암(明暗)의 강렬한 대비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라스트만에게 반 년 동안 공부한 렘브란트가 카라바조를 알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렇게 사실들을 통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지극히 초보적인 과정에서도 나는 상당한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이러한 희열에 중독되다보니, 나는 점점 세세한 정보들에 집착하게 되었다. 어떤 때에는 그러한 집착이 예술정신에 가까이 다가가는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보다 더 파고 들어간다는 일종의 - 그에 훨씬 못 미치겠으나 - ‘학자적 정신’ 때문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현기증을 느끼게 되었다. 회의가 찾아왔고, 결국 나는 작품에 대한 ‘학문’을 잠시 내려놓고 예전의 작품 ‘감상’으로 돌아갔다.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1961)>를 읽는 중 내가 책의 첫 머리서부터 ‘움찔’했던 까닭은 위의 경험 때문이었다.

 

 

*     *     *

 

 

  에드워드는 역사가들이 무엇을 역사로 다루는가에 대해 우선 언급하면서 한 부류의 역사가들을 비판한다. 사실 그냥 역사가가 아니라 “사이비 역사가”라고 비난했다.
  “무미건조한 사실을 기초로 한 역사와 사실의 바다 속에 흔적도 없이 가라앉아 버릴 하찮은 사실들을 더 많이 아는 것으로 자긍심을 느끼는 사이비 역사가들에 의해 세분화된 전문성의 논문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사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리 모아도 지나침이 없다.”는 일종의 지적 신앙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는 나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에드워드에 따르면 역사는 지나치게 많이 모아진 사실들의 총체가 아니다. 그는 계속 강조한다. 약간 나의 식으로 가미하자면,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선택된 사실들을 재료로 삼은 일종의 요리이다. 레시피와 역사가의 ‘손맛’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나는 최근 한 교수에게 장자(莊子)를 배우고 있다. 스케일이 크고, 생각의 전환이 잦은 도가(道家)의 사상에 나는 자주 무릎을 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소위 ‘장자적 깨달음’ 외에 교수의 여러 코멘트들에 집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편집자’에 대한 것이었다.


  장자는 그와 대척되는 공자[仲尼]를 빌려 와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방식을 즐겨 썼다. 다시 말해 그 책의 ‘공자왈’이라는 걸 공자가 진짜 한 말이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책은 편집된 지식의 장이다. 곧이곧대로 수용하면 그것을 진정한 독서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그건 그저 ‘생각 감상’일 것이다. 나는 진정한 독서라는 것은 ‘편집’의 실체를 늘 인식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에드워드가 말하는 역사에 대해서도 우리는 위의 생각을 동일하게 해볼 수 있다. 역사는 어떻게 편집될까? 역사는 과거의 일들을 오늘날의 우리가 봤을 때, 그 때 ‘과거의 일들’에게 붙여지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에드워드의 저 유명한 말이 등장한 것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제 1장의 마무리에 있는 문장 중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경구로 독립된 저 말의 실제 원문은 이렇다.
  “It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내가 본 김승일氏의 1996년 범우사 판 번역본은 이렇게 옮기고 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저 ‘대화’를 우리들이 나누는 일상적 대화와는 별개의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편집자의 가상적 대화일 뿐이다. 우리가 스스로 과거의 사실들과 대화하고자 한다면, 만약 그런 노력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역사가들과 다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대화’가 무엇에 기초해야 하냐는 것이다. 저마다의 기준으로 역사를 쓴다면 그건 그야말로 상대주의의 덫에 빠져 타인의 콧김을 맞을 뿐일 외톨이 신세가 될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이 경우는 회의주의로 발전된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본래 관점의 차이 탓에 상대성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가 말하는 위대한 역사란 이런 것이다.
  “과거에 대한 역사가들의 전망이 현재의 문제에 대한 통찰에 기초하여 조명될 때에 위대한 역사는 쓰입니다.”


  에드워드가 인용한 부르크하르트의 말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바가 있다.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이다.”

  역사가도 여러 사건들처럼, 하이데거의 표현을 잠깐 빌리자면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길 위[道上]에 있다. 이 통찰에는 시대에 대한 감수성과 과거에 대한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사실만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위대한 역사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사실을 통해 일반적인 가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가치들 말이다. ‘역사’라는 매개체를 상정한다면 역사가와 그의 책을 읽는 독자는 일반화된 가치를 서로에게 적용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피치 못하는 일이다. 언어 자체가 과학의 논증처럼 우리의 일상을 일반화시키지 않던가 말이다. 에드워드도 일반화 위에서만 역사가 자랄 수 있다고 확언했다.


  3장에서 에드워드는 역사가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 중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신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의 문제이다. (그 밖의 여러 문제들도 언급되어 있다. 가령, 사회학과의 관계, 교훈, 예측, 주/객의 문제 등이다.) 에드워드는 역사가와 신의 관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따위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 하며, 그리고 역사란 말하자면 조커 없이 노는 트럼프 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역사가는 재판관이 아니다.”는 소제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선악의 가치판단은 역사가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크로체의 인용문이다.
  “역사 이야기를 한다는 구실로, 마치 재판관처럼 한 쪽을 향해서는 죄를 묻고, 다른 편을 향해서는 무죄를 선고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 일반적으로 역사적 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주, 아베 신조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에 격분하는 까닭은 우리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그것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60여 년은 더 떨어진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통념은 에드워드의 “카를 대제와 나폴레옹의 죄를 규탄한다고 해서 누가 어떤 이득을 거둘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충분히 대답할 ‘의지’를 갖고 있다.


  에드워드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한 까닭은 특정 인물에게 도덕적 판단을 집중하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 인물에게 동조한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부도덕성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개인에 대한 찬양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역사 판단이 어렵다는 것을 에드워드는 공업화의 예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진보를 억제하고 공업화를 하지 않았던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주장할 사람은 없다. 내가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고 상당부분 수긍하면서도 결국에는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주장한 역행(逆行) 때문이다. 메트로폴리스들을 없애고 농촌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과 자연을 위해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대부분이 동조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에는 어떤 흐름들이 있고, 그 흐름이 불가피한 희생을 동반하면서도 막대한 이득을 준다면 - 희생의 입장에서는 분노할 것이지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득을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이를 인정한다.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 사람과 일치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그리고 ‘기분 나쁠 정도로 적절한’ 엥겔스의 인용문도 언급한다.
  “유감스럽게도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는 매우 어리석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난에 견딜 수 없을 때까지는 진정한 진보를 위하여 용기를 북돋우려고 하지 않는다.”


  역사 판단은 이처럼 어렵기 때문에 역사가들에게는 가치중립의 어려운 사고가 요구된다. 이 사고는 일반인들이 ‘절대 가치’라고 믿는 평등, 자유, 정의 등이 시대별․대륙별로 다르다는 기본 이해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에드워드가 말하는 진정한 역사가란 “모든 가치의 역사적 피제약성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역사 판단은 - 당연하게도 - 인과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은 “불가피한”, “면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면할 방법이 없는” 등의 말은 사용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표현은 흔히 말하는 ‘운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인과관계가 강했다는 것일 테지만 에드워드는 과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가가 우연을 쫓으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우연이 한참 유행했을 때를 살펴보면 그 시대는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실존주의 영향으로, 혹은 국력이 꺾여 역사에 대한 ‘자신감’이 실추된 상황으로 그 공통점이 모아진다. 이런 때에 역사가들의 정신은 - 에드워드에 따르면 - ‘파산’된다. 우연을 믿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고, 그는 톨스토이로부터도 변호를 받는다.


  예컨대 조조(曹操)가 영화 <적벽대전>에서처럼 한 여인에게 반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 물론 책에 언급된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마찬가지인 경우이겠지만 - 역사가들이 보기에 전혀 일반적인 명제가 아니다. 그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만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고, 이렇게 구축된 일반적인 명제들은 그들이 “왜?”와 동시에 “어디로?”라는 미래지향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해준다.


  제 5장에서 에드워드는 사회적 진보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풀어준다. 사람들은 의외로 진보와 진화의 차이를 모른다. 사전적 의미만 보더라도 진보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이라는 뜻이고, 진화는 “생물이 생명의 기원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변해 가는 현상.”, 혹은 “일이나 사물 따위가 점점 발달하여 감.”이라는 뜻이다. 사회가 ‘진화’하려면 ‘사회’라는 것에 DNA의 유전형질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최선의 방식을 찾으려는 생존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진보’하는 것이다. 이전 세대에서 획득된 기술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진보가 있어야 인간 역사의 지속, 그리고 시국의 타개 등을 모색해볼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그가 제 1장에서 미리 언급했던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인 역사가 과거와 미래와의 대화로 확장된다. 그는 이 대화, 즉 역사가들의 객관적인 해석이 시대가 지날수록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에드워드는 부제 그대로 지평선이 넓혀지면서 우리의 역사가 현대 이전과 비교했을 때 큰 진전을 보인다고 역설한다. 이 책이 1961년에 나왔다는 것을 고려하자. 그는 세계의 판이 새로 형성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공업화와 교육 보급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영국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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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 역사 인물 찾기 2
카테리네 크라머 지음, 이순례.최영진 옮김 / 실천문학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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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2.10.14

※ 미술사 공부하던 당시 썼던 옛 리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이다.

 

 

  미술에 대한 사변으로 시작해야겠다. 나는 책 리뷰에 ‘책 리뷰’만 쓰는 간편한 기술은 갖추지 못한 듯하다. (시험이 코앞인데 리뷰를 차마 미루지 못한다. ‘꼴찌’하더라도 책을 읽으라는 처칠의 말을 방패로 삼아본다.)

 

  케테 콜비츠를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그 무렵, 나는 동생의 4B연필을 빌려 김충원氏의 드로잉 책에 나오는 몇몇 그림들을 따라 그리거나 아크릴 물감으로 반 고흐의 <삼나무가 있는 밀밭(Korenveld met cipressen, 1889)>을 모사하려고 했었다. 미술사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그림을 못 그려서 되겠냐는 걱정 때문이었다.


  조바심이 났던 나에게 다행이도 한 중견화가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차라리 데생을 몰랐으면 하는 것이 화가들의 바람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어린 마음은 차분하게 달래졌다.


  얕은 목표를 추구하려는 사람은 기술을 쫓는다. 하지만 심후한 경지는 마음으로 이를 수 있다. 생각해보니, 내가 최근 대학 강의로 듣고 있는 『장자(莊子)』 중 ‘양생(養生)’과 관련된 깨달음과도 닿는 바가 있다. 말은 쉽다. 마음으로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그러나 화가의 조언 덕분에 나는 새삼 그림 속에 화가의 마음이 들어 있다는, 일종의 다른 차원의 이해를 갖게 되었다.
  ‘화가는 어떤 마음으로 저 그림을 그렸을까?’


  많은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이해’하는데 애를 먹는다. 아무래도 미술작품은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보다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중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고, 집중의 ‘방법’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 여러 번 작품을 봤는데도 도무지 그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내지 못했다면 -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그건 알아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와 닿지 않은 것이겠는데 - 후자의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


  미술을 ‘현상’으로 보지 않는 또 다른 이해법이 있다는 것을 의외로 사람들은 모른다. 소위 ‘아카데믹’한 글들이 미술이해의 척도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각을 바꿔 미술을 ‘삶’으로 보는 방법은 어떨까. 작품에 대한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새로운 시각은 권장될 수 있다. 어떤 작품은 몇 년도에 만들어졌고, 무슨 기법이고, 사이즈는 몇 호 쯤 되고, 어디에 소장되어 있고, 누구의 영향을 받았고…… 이런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삶을 통째로 한편의 영화처럼 “들여다보는 것”이다. 평전은 어떤가.


  그렇게 한 여인의, 아내의, 독일 화가의, 어머니의 삶을 보는 것이다. 『케테 콜비츠』를 읽는다는 것은.

 

 

 

*     *     *

 

 

 

  케테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새삼 나는 배우자를 잘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완벽한 현실주의자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나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극단적으로 끌어가고픈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예술적으로 잘 승화되면 ‘장인정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고집’에 그칠 것이고. 내가 왜 케테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유를 들자면, 케테도 극단적으로 예술 그 자체에 머물고자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 사람은 그녀의 남편인 카를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진료해주는 의사였던 카를의 삶은 케테를 노동자와 가깝게 만들어줬다.


  이전의 그녀가 소시민의 삶보다는 노동자의 삶이 더 아름답다고 여겼다면 카를은 그녀에게 프롤레타리아의 삶이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알려줬다. 문득 생각해보건대, 나도 케테와 유사하게 노동자의 삶을 ‘낭만’에 가져다대는 부류의 사람이리라. 그런 까닭일까. 케테의 작품 속에 비극적으로 표현된 프롤레타리아의 모습을 본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는커녕 일종의 죄책감 같은 무거운 마음만 계속 키워가는 것이었다.


  케테도 그랬을 것이다. 그녀는 겉치레와 과장된 태도를 버리고 표백하지 않은 무색옷을 걸치고 다녔다. 그렇게 카를을 통해 차분해진 그녀의 삶이 한 번의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우프트만이 초연한 희곡 <직조공들(Die Weber)>을 본 것이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말은 당시 “나를 죽이시오.”라는 말과 동의어였다고 한다. 황제는 분노했지만 예술은 그칠 줄 몰랐다. 케테의 정신은 번뜩 살아났고, 그녀를 대표하는 연작으로 평가받는 <직조공 봉기(Ein Weberaufstand)>가 4년의 인고를 겪고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아쉽게도 아버지는 딸의 작품을 보지 못한 채 바로 그 해에 작고했다. 나는 그 작품을, 누구보다도 그녀의 아버지가 꼭 봐야했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어두운 화면들. 출구 없는 절망감. 생활과 노동이 비참하게 엉켜져 있는 삶. 허기. 발육부진. 감히 단순한 바니타스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해골. 칠흑과 같은 낮. 잡다한 용구. 빈곤과 곤궁, 죽음과 삶에 대한 짙은 회의를 함께 끌어안고 쇠약해져만 가는 노동자들의 모습. 이 작품은 그들의 삶을 낮은 시선으로 보여주고, 행진과 돌격, 비극적 결말까지 함께 그려낸다. 하지만 마지막 삽화에서는 끝내 그러한 삶과 비극이 결코 병약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어두운 화면에 문과 창문 사이로 가느다란 빛이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그토록 찾던 ‘희망’이라는 것.


  굵은 선과 그 선 사이의 세밀한 선들이 백지 위에 드러낸 비극. 나는 아름다움을 느낄 새도 없이 감정의 저 낮은 층위로 굴러 떨어진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처럼 나도 그렇게 되고, 작품 속 아이를 뒤에서 껴안아 보호하고 있는 어른들의 굳건한 손과 팔이 나의 뒤에서 뻗어 나온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삶의 앙상함과 흑백의 담담함이 이윽고 사위(四圍)를 감싼다. 그렇게 나는 책과 모니터 앞에 내던져져 있다. 복잡한 생각도, 철학도 뒤로 물러난다.


  나는 멋도 모르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인간이다.”
  하지만 나는 이 생각을 철회하고 싶지 않다.

 

  1914년 케테는 페터를 잃었다. 플랑드르에서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한 '어머니' 케테. 전쟁터에 아들을 보낼 무렵에 그녀는 이렇게 일기에 적었다. “다시 한 번 이 어린것을 탯줄에서 잘라내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는 태어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죽음을 향해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10월 22일 전사했다. 하지만 케테는 24일에 그의 편지를 받았고, 페터는 “포성을 들으셨겠지요?”라고 적었다. 그 포성 사이에서 죽은 케테의 전사 통보는 30일에 왔다.


  어느 날, 케테의 일기. “나의 페터야, 제발 내 곁에 머물러다오. 나를 도와다오. 나에게 모습을 보여다오. 나는 네가 거기에 있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언제나 두꺼운 안개가 앞을 가린다. 내 옆으로 오렴.” 이듬해 4월 11일의 일기. “나의 아가야, 봄이 왔다.” 그리고 그녀는 훗날 작업을 할 때면 언제나 일기장에 “나는 너와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다.”라고 적었다. 케테는 페터의 두상을 만들 때면 어김없이 울었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자원해서 전쟁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울음으로라도 끝까지 잡아놓을 것을……

 

  1918년 전쟁은 끝났다. 신문 기사에서 “전쟁의 마지막 총성이 사라졌다.”라고 선언했고, 케테는 이렇게 생각했다.
  “마지막 총탄으로 희생된 사람은 누구인가?”
  그녀는 페터의 기념비를 만들기로 계획한다. 그리고 그 작업을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오늘날 케테를 아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녀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기억한다. 그녀가 페터의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 임종, 추모 등의 소재로 판화를 제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사람이기를 꺼려했다. 그 이유는 케테 자신이 말한 것처럼 “비겁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주 유명했을 때는 1920년대였다. 그 전에도 유명했지만 사람들은 이제 케테의 이름에 프롤레타리아를 입혔다. 그런 상황을 케테는 당황스러워했다. 그녀는 스스로도 혁명론자가 아닌 발전론자이기를 원했다. 나이도 50대였다. 자신의 아들 페터, 그리고 비슷한 나이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서 고통을 받다 죽어가는 것도 보았고, 이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등 ‘악마적인 것’도 보았다. 그녀는 지쳤다고 고백했다.


  “제발 사람들이 나를 좀 조용히 내버려두었으면 한다.”
  상황은 너무나도 복잡했고, 여성으로서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다만 예술가로서 이러한 상황 모두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뿐이라고 생각했다. 정치노선은 추종하지 않지만. 노동자들을 애도하는 것은 그녀의 권리였다. 이것이 케테의 의미이기도 하다.

 

  당시 러시아혁명의 결과를 기다리던 독일은 1920년 벽두부터 침울했다. 시대가 나아질 기미는 점차 사라졌다. 때마침 혁명의 기치를 부러뜨리기라도 하듯이 러시아에는 극심한 기근이 찾아왔다. 상황은 극단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였다. 대공황도 왔다.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때의 독일로 돌아가 빵 한 조각을 사먹으려고 했다면 우리나라 돈으로 1조 14억 원을 내야만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낼 것이다.


  1933년 히틀러가 총통이 되자, 콜비츠 부부는 아인슈타인, 토마스 만의 형인 하인리히,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와 함께 독일의 모든 자유가 억압될 것을 우려하여 좌파 인사들의 서명을 단행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하인리히는 프랑스로, 슈테판은 영국으로 망명을 갔고, 콜비츠 부부는 국내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생활은 힘들었다. 그녀는 교조적인 목표를 따라가는 것을 싫어했다. 오직 ‘살과 피’를 가진 살아있는 노동자들의 운동과 그들의 정의에 대한 타는 열정을 따라가고자 했다. 하지만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명성은 결코 억압될 수 없었다. 러시아에서의 케테는 가히 신적인 존재였다고 한다. 의도와는 달리 그녀는 ‘탁월한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대명사였다. 미국에서는 그녀의 71주년을 기념해서 전시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그녀가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오기를 원한다고도 했다. 루쉰은 당시 침묵을 선고(케테는 1936년 나치스로부터 ‘개인적 전시회 금지’ 통보를 받았다.)받은 케테에 대해서 “예술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는 곳은 없다.”라는 말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고마움을 표시했다.


  케테는 당시 나치스로부터 ‘퇴폐미술가’라는 낙인이 찍힌 여러 미술가들처럼 어두운 그늘 밑에서 조각을 해야만 했다. 작품을 주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그녀의 주된 장르인 인쇄예술은 사회대변혁 시기에 유행한다. 회화보다 격동적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녀는 조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의 초기 조각 작품들은 대부분 그녀 스스로가 파괴했고, 남아있는 작품은 7점에 불구하다. 지금은 대표작이라 평가받는 <쌍둥이와 어머니(Mutter mit Zwillingen>는 제작기간만 13년이 걸렸다. 그 기간의 일기가 케테의 심정을 말해준다. “아무리 일을 해도 아무것도 되는 게 없는 절망적인 나의 상태”. 그것은 곧 자살의 심정이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괴로움. 그러다 그녀는 묘비를 꾸미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그녀는 1942년 겨울의 일기에 “죽는다는 것, 오, 그것은 나쁘지 않다.”고 썼다. 그리고 아들 한스와 그의 며느리에게는 “내 시대는 이제 다 지났다.”며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1945년 4월 22일. 그녀는 떠났다. 그녀의 죽음은 나치스의 붕괴 후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브라크는 이런 말을 했다.
  “예술가를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인간을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 있다.”
  케테는 말했다. “인간은 거기 있어야 한다.” 바로 그림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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