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의 가치사전 -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
박민영 지음 / 청년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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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7

 

 

  나는 올해로 만 스물여섯이다. 보통이면 대학 졸업할 나이에 아직도 3학년이다. 국문학 전공은 나에게 여전히 맞지 않는 레고조각처럼 낯설기만 하다. 대학의 공부와 생활은 이모저모로 나의 기대에서 한참을 벗어났다. 군대에 가서 생각을 정돈하기 전까지 나는 거의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핑계는 대지 않는다. 의지박약이었다. 그 때 쓴 글들은 모두 불살라버렸다. 때문에 나의 옛 글은 대학 초년생 무렵까지 썼던 시를 엮은 시집과 제대 이후의 글들로 확연히 구분이 된다. 얼마 전, 나는 이곳의 한 블로거와 함께 ‘자폐적 글쓰기’에 대해 코멘트를 나누다 응원을 하겠다는 요량으로 이런 말을 했었다.


  “천편일률적 글쓰기보다 차라리 안으로 굽어진 글쓰기로부터 뭔가를 얻어내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다, 나 역시 그 때가 무척이나 창피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트라우마는 쉽게 지울 수 없다던가. 새벽녘 한창 예민해질 때에 나는 감성적 사유를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밑도 끝도 없는 어둠 속의 존재가 그리도 두려운 것이다.


  자폐적일 때에는 쾌락도 추구하지 않는다. 반복적, 혹은 습관적 쾌락은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때문에 당시 나는 기쁜 적이 없었다. 무색, 무취, 아니면 건조된 육포 정도였다. 혈기왕성하지도 않았고, 나이에 걸맞은 패기도 없었다. 자폐적 글쓰기라는 것은 진정 공포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때 나는 몰랐다. 바로 그 지점에서 조금만 더 의욕적으로 생각했더라면 더 많은 성찰을 할 수도 있었다. 내가 빠진 물은 별로 깊지 않았었더라. 하지만 익사할 줄로만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굳이 군대가 아니었어도 물 밖으로 힘껏 뻗은 손으로 내가 원래 있던 곳의 공기를 한 줌 쥐어보고, “아, 저곳이다.”라고 외치며, 이윽고 큰 호흡과 함께 얼굴을 물 바깥으로 내밀 수도 있었다. 불교의 표현대로, 그것은 손등과 손바닥의 차이였다.


  손목을 꺾어 양면을 모두 본 어떤 사람의 책을 나는 몇 해 전 읽게 되었다. 그런 책이 있다.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 때문에 서문을 읽자마자 잠시 책을 덮게 되는 그런 책 말이다. 저자도 기형도 시인의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라는 시구를 나처럼 떠올린 경험이 있다고 했다. 낙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쾌락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했다고 했다. 나는 하지 못한 것. 아, 그는 과연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아픈 경험을 뒤로 하고, 나는 아무 것도 보장되지 않은 독서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 장씩 읽어갈 때마다 나는 위로를 받았다. 그가 위로할 목적으로 책을 썼는가? 천만에! 하지만 나는 반가운 이 책의 속표지 위에 크게 사인을 하나 그려 넣었다. 날짜를 보니 2009년 6월 25일. 제대한 지 막 반년이 되가는 때였다. 그로부터 얻은 3년의 위안을 다 털어놓기에 이 자리는 너무 작진 않은가. <즐거움의 가치사전>이라는 책에 대한 나의 이야기이다.

 

 

*   *   *

 

 

  내가 읽은 박민영氏의 책은 <이즘>이 처음이었다. 미학을 공부할 때, 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려는 심산으로 산 몇 권의 책 중 하나였다. 하지만 크게 인상적인 책은 아니었는지, 나는 <즐거움의 가치사전>을 산 뒤 책장에 꽂고 나서야 비로소 의 저자가 바로 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둔감함이 준 뜻밖의 놀라움이라고 해야 하나. 독서에 애착을 갖게 하는 것들은 그만큼 사소한 것들이구나 싶었다. 사실 이런 반가움이 나를 추동한 것은 아니었다. 쾌락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저명한 사례들을 근거로 펼쳐나가는 ‘박민영식(式)’의 명료한 문장은 든든한 벗이 되기에 충분하다. 나처럼 시도 때도 없이 글로써 배설을 일삼는 사람들이라면 탐낼 만한 내공이 들어 있는 문장이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관하리라.


  그가 적어놓은 항목들은 무척 많다. 따라서 전문적인 책이 아니다. 가령 이렇다. 근래 들어 읽고 있는 세 권의 책은 모두 심도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도 10도>는 종교분쟁 중에서도 제목과 같은 ‘위도 10도’의 분쟁국가 사례를 토대로 한 현장감 넘치는 책이다. <과잉연결시대>는 <위도 10도>보다는 한결 쉽다. 인터넷을 체험한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해할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파산, 각종 금융사기, 리먼 브라더스 파산,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등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전문적인 글임은 부인할 수 없다. <휴버먼의 자본론>은 제목에서 이미 전문성을 드러내고 있다. 나는 사례와 개념을 검색해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Wikipedia와 Google을 화면에 띄워놓는다. 미술을 공부했을 때와 똑같다. 하지만 <즐거움의 가치사전>은 제각각 단편적 내용들의 옴니버스 형식이라 설명이 깊지도 않을뿐더러 전체적 맥락을 공유한다. 요컨대, ‘쾌락의 종합’이다. 주제는 이렇듯 단순하지만 생각은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독자, 즉 생각의 주체와 말이다. ‘나’와 벗어난 사례는 하나도 없다.


  연결의 감도는 서로 다를 것이다. 누구는 독실한 신앙을 갖고 있어 ‘신앙’의 장(章)에서 감명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마냥 감명을 받을 수는 없다. 저자는 인문주의자이다. 비판도 항상 견지한다. 그가 종교에 대해 한 말은 도킨스와 세이건이 그의 두꺼운 책에서 했던, 혹은 수많은 강의에서 했던 주장의 축약본이다. 따라서 박민영氏는 해당 챕터의 주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에게 문제를 재고하도록 요구하며, 필요할 경우 더 공부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식으로 권력, 노동, 자유, 민족애, 독서, 미술, 스포츠, 애완동물(‘반려동물’이라 부르는 것이 더 좋으리라.), 쇼핑, 섹스, 매춘, 동성애, 효도 등 우리와 전혀 무관할 수 없는 거의 모든 문제들을 관통한다. 독자는 저자의 노력에 혀를 내두르며 “나는 왜 이런 생각들을 깊이 있게 해보지 않았던 것인가?”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왜일까? 우리가 철학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질문의 대답은 박민영氏의 서문에 명료한 문장으로 적혀 있다. 부분만 발췌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한 문단을 통째로 옮겨보고자 한다. 분명한 만큼 당연한 말이다.


  “이 책의 집필에는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러나 자료 수집에는 거의 30년이 걸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지식이 총동원되었다는 의미이다. 힘에 부치는 작업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할 수 없는’ 작업 성격 때문이었다. 그것이 특정 분야가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는 나의 욕심에 불을 붙였다. 굳이 밝히자면 나는 ‘전문가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이다. 특정 분야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전문가는 결코 사회 전체를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분업화된 사회일수록 오히려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자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두루 알려고 하는 이의 실천을 나는 주변에서 거의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어떤 이가 요리도 잘 하고, 첼로를 잘 켜며, 운동에도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데, 그가 저명한 교수라면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다 잘해?”라며 놀라곤 한다. 여기에다 그가 생물학, 철학, 종교학 등에 모두 능통해 박사 학위를 무려 너덧 개 정도 지니고 있는 이면 놀람은 경외로 바뀐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질문을 하나 해보자. 우리는 정말 저 다양한 것들에 능통할 수 없는 사람들일까? 일부만 천재이거나, 일부만 탁월한 의지의 소유자라 ‘super-talent’의 경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일까? 과연 그것은 소수의 특권일까?


  루트번슈타인 부부의 공저 <생각의 탄생>도 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진 책이었다. 박민영氏가 말한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자’란 <생각의 탄생>에서 줄기차게 주장된 ‘전인(全人)’이다. 단테와 알베르티가 그러했다. (참고하건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우리가 정의하는 ‘전인’이 아니다. 그는 언어적 능력이 다소 부족했다. 하지만 ‘예술적 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땅하며, 적어도 그 방면에서는 우리도 알듯이 역사 상 가장 탁월했던 인물 하나라 손꼽혀도 어색하지 않다.) 다방면에서 고루 뛰어나다는 것은 남들보다 넓은 시각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저자가 1년이나 걸렸다고 했던 집필의 시간이 평생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자와는 달리 ‘전공자’이다. 대학을 나온 이라면, 그리고 논문을 써본 이라면 전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항간에는 “직장 다닐 때에는 거의 쓸모없는 것” 정도로 회자되곤 하는 것. 그리하여 최근 대학에서는 미래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전공논문을 폐지하고 인문학 수강을 독려한다. 이에 대해서는 짧게나마 다른 책 리뷰에서 언급한 바 있으니, 중복은 되도록 피하겠다.


  두루 견문이 있어 시각이 넓다는 것은 그 시대의 역사적 인식에 대해서도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일 것이다. “대중은 무지하다.”라는 말은 곧 “우리는 모두 전공자이다.”라는 말과 진배없는 것이지 않을까? 타인의 개입이 아니면 다른 분야의 것이 요구될 때 우리는 무능력자가 된다. 물론 세부적인 전공기술이,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중추가 되는가를 묻는다면 가령 이렇다. 나의 일부 국문학적 지식이나 미술적 지식이 그것만으로 온전한 지식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식이 삶의 지혜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할 수 없다. 요컨대 이것들은 하나로 연결되어야 한다. 관심의 사신들을 파견하고, 돌아온 그들로부터 견문을 얻어들은 뒤 모든 것을 종합해 각각의 것들을 ‘하이퍼링크’할 수 있는 역량은 전공에서 나오지 않는다. 박민영氏의 말마따나 그것은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에서 나온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전공자가 아닌 전인을 꿈꿔야 한다는 것도 일맥상통한 주장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며 얻어가야 하는 교훈도 바로 그것이다. 각각의 장과 그 장에서 설명된 사례들은 충분히 재미있다. 어렵지 않게 보따리에 넣을 수 있다. 얼마든지 대화와 작문에서 활용할 수도 있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직접적인 도움도 되리라. 하지만 그건 저자의 집필의도에서 벗어난 독서에 그친 것이다. 비유해본다. A씨는 에로티시즘에 대한 전공자이다. B씨는 권력에 대한 역사를 아주 잘 알고 있다. C군은 막 흡연에 관한 전공논문을 쓰려는 대학원생이다. 이들을 ‘쾌락’이라는 큰 나무에 가지로써 삼고, 멀찌감치 서서 그것을 바라보는 일을 한 사람이 바로 이 책의 저자이다. 이 책은 다름 아닌 원경(遠境)을 조망하는 시선, 혹은 버드아이(Bird-eye)이다.


  <즐거움의 가치사전>을 덮고 나면 독자들은 “쾌락에 대해 조금은 알 것 같아.”라는 만족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조금의 이해’에서 오는 만족감이 바로 전인이 될 수 있는 기로에 섰다는 생리적 반응이다. 더 나아갈 것인지는 독자의 의지에 달린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박민영氏는 각 장마다 의지를 발휘할 수 있는 명언들을 남겨뒀다. 명언은 의지의 마약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저자는 “인간에게 즐거움을 주는 모든 것”을 쓰고자 이 책을 남겼으나, 독자는 쾌락의 실체를 통해 무언가에 열정을 가지려는 찰나에 놓이게 된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의 꿈이 샘솟는 소리가 나는 들린다.


  얼마 전, 나는 한 지인으로부터 카뮈가 그르니에의 책에 실어놓은 서문의 한 구절을 전해 들었다. 카뮈는 스무 살 무렵에 그르니에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회상했다. 훗날 그의 책을 읽을 독자들이 너무나도 부럽다고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즐거움의 가치사전>에 담긴 저자의 진의, 그리고 쾌락의 다양함 속에서 각기 얻을 깨달음을 생각하며, 나는 이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들이 카뮈만큼이나 부러워진다. 그들은 또 무엇을 얻을 것이며, 그것은 나의 것과 얼마나 다르고, 나는 그로부터 또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기쁨은 우주적이다. 몸에 갇혀 있지 않고, 정신을 뛰어넘고, 신의 '말씀'보다도 가까우며, 모든 것을 초월해 나의 온몸을 전율케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또 누가 이 책의 한 구절에서 무엇을 얻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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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8 14: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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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8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15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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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3

 

 

 

[사진출처] guardian.co.uk

 

 

  정확치 않은 기억으로는, 그 때는 아마 겨울이었다. 한창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소설을 읽겠노라고 벼르던 어린 시절. 카뮈, 가오싱젠, 쿳시, 그라스, 지드, 야스나리. 하지만 이들의 글은 얼마나 어려웠던가. 많은 것을 느끼기는커녕 나의 모자람만 반복적으로 확인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를 너무 앞당겨 경험한 기분. 처참하진 않았다. 동경은 오히려 커졌다. 단, 문제는 문학에의 열정이 식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문제를 앞에 두고 펜을 굴리며 잠시 공황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체력과 의지가 탁월하지 못한 나는 장애물을 만나면 한참을 머리로 씨름한다. 아니, 씨름만 한다. 문학에도 기초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노벨문학상’이라는 후광만을 바라보다 제 눈 먼 줄을 모르게 된 꼴이라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슨 근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동경한 것은 계속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끈을 만든다. 다행이도 나는 그 끈의 어느 즈음에서 유독 애착을 갖게 된 한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알게 되었다. 십 수 명의 사람들과 차례대로 만나 멀찌감치 서 추상적인 이야기만 나누던 차에 어떤 단짝을 만난 기분이다.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이다.

 

 

*   *   *

 

 

  무언가로부터 충격을 받아 어떤 잔상이 생기는 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솔제니친의 이 작품에서 나는 그 충격을 경험했다. 그것도 첫 장에서부터. 솔제니친은 구구절절 뭔가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을 “기상을 알리는 신호 소리”, “레일을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로 시작한다. 두텁게 낀 성에가 소리를 돕는다. 곧바로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이 모든 낯선 상황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별 수고로움 없이 전개된다. 솔제니친이 직접 겪은 체험이 낳은 가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낯섦’이 소설을 익는 내내 ‘익숙함’으로 변하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요컨대, 본래 나는 슈호프 같은 사람이었던 것일까? 노련한 솜씨로 취사부로부터 국을 네 그릇이나 빼돌리고 그 중 하나는 적어도 나에게 오지 않을까 기대하는 그 사람 말이다. 어떤 경험으로도 이 책의 이야기를 공감하지 못한다. 수용소 생활을 직접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것도 시베리아의 수용소를. 그러나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때론 해군 중령 죄수처럼 영창 갈 걸 알면서도 대꾸를 해보거나, 아니면 저열한 페추코프처럼 킁킁거리면서 어디 콩고물 떨어진 곳은 없나 눈치만 살피는 것이다. 그 모든 사람들이 나의 일면들에 속속 자리를 잡는데, 단 한 사람만은 될 수 없을 듯하다. 반장 추린 말이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는 말은 전쟁터가 아닌 수용소에 더 적합한 말이지 않을까. 강한 자도 총을 맞으면 죽을 수 있으니. 반면, 솔제니친의 이 소설에는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다.”라는 비공식적인 정답이 여러 죄수들의 행동과 입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나치게 정직하거나, 열심히 하거나, 혹은 도덕적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눈치를 잘 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반원 전체의 목숨을 좌우하는 반장의 말을 잘 따라야 하고, 적절한 뇌물은 필수이다. 강하면 부러지는 곳이 다름 아닌 수용소이다. 형기가 “전혀 줄어들 기미가 없는(pg.76)” 이곳에서는 추위를 피하고, 먹을 것을 쫓고, 휴식을 갈구하는 삶에 맹종하게 된다. 그리하여 “당장 내일이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pg.76).”이라, 슈호프는 굴종하지 않는 해군 중령 죄수의 미래도 결국 죄수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며 넋두리로 생각해본다. 이런 상황에 우리가 빠지게 된다면 머리와 온 몸의 감각은 오직 하나만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앞이 캄캄한 곳에서 본능적으로 하게 되는 행동. “발밑만 보고 걸어 다니는(pg.82)” 것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의 수용소가 마냥 시베리아의 칼바람 같은 것은 아니다. 이곳도 엄연히 하나의 공동체이다. 누군가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할 관계라 해도 인정(人情)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낯선 환경이 읽는 이에게 금방 익숙해지는 까닭. 온갖 부류의 죄수들의 ‘온갖 이야기’는 또한 우리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극대화되어 있다.”는 것만 빼곤 어떤 것 하나 본질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없다.


  모스크바 사람인 체자리는 슈호프의 반원들에게 어렵지 않은 작업을 배당받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그 어떤 이들보다 쉬운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엄동의 바깥에서 땀 흘릴 정도로 일하는 죄수들이 그를 원망할 수 있을까? 반장도 체자리는 존경하는데 말이다. 슈호프는 오히려 그에게 친절하게 행동하면서 그로부터 조금의 빵이나 국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의 소포를 지켜주고, 몰래 숨겨 왔던 만능칼도 빌려주면서 따뜻하게 배를 덥힐 수 있다면 그 무엇이 아쉬울까. 연차가 별로 안 된 해군 중령 죄수도 말은 명령조로 하지만 작업장에서는 녹초가 될 때까지 열심히 일한다. 알료쉬카와 같은 온순한 죄수는 말 그대로 ‘보물’이다. 하이에나와 같은 페추코프도 때론 불쌍해 보인다. 진짜 죄수든, 억울한 죄수든, 일단 그들의 편에 서면 모든 것이 이해되고, 그들이 증오하는 간수들은 정말 악마처럼 느껴진다.


  반원들은 카리스마 있는 반장 추린의 비호를 받는다는 까닭에 서로 주동(主動)이 되어 도맡은 일을 끝까지 하고자 한다. 작업장에서 누군가가 돌아오지 않아 수용소 문을 코앞에 두고도 대기해야 할 때에 죄수들은 욕지거리를 한 바가지씩 내뱉으며, 슈호프의 말마따나 그를 죄수들 한복판에 세워둔다면 “송아지 새끼처럼 갈기갈기 찢어(pg.141)” 살점 하나 안 남기고 처참히 죽여 버릴 듯 군다. 하지만 이내 수용소 문을 통과하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랬던 그들이 식당 앞에서는 다시 추위와 굶주림에 굴종한다. 그들은 마치 베를린을 탈환한 옛 ‘붉은 군대’를 연상케 하듯 식당으로 돌진하려는 장면을 연출한다. 모든 이들이 제각각 쓸모가 있고, 행동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식당의 풍경이다. 솔제니친은 그 풍경을 “경건하다.”고 묘사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빵과 국. 그것도 대부분이 썩은 재료로 만든 것들이다. 그러나 누구도 식사의 순간을 방해하지 못한다. 따뜻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 “한 번 견뎌보자.”라는 의지가 생기는 까닭이다. 복잡한 삶 속에서 잇달아 좌절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든든한 속은 늘 우리의 뚝심을 격려하지 않던가. 야만적이라 여길 법한 이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이가 있을까. 살벌한 군부 시절을 겪은 어르신들이라면 그 서슬 퍼런 시간을 그나마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회상해볼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그리고 ‘우리(한국사람)’에게 각인되어 있는 역사의 한 토막도 짧게 소설에 등장한다. 슈호프가 담배를 구하기 위해 라트비아인의 방에 찾아갔을 때, 마침 그 방의 죄수들이 6.25 전쟁(중공군 개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장면 말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도 ‘우리’를 익숙하게 만든다.


  “다른 놈들이 오늘 죽는다면 나는 내일 죽을 거란 말이다!(pg.195)” 
  독일의 유명한 축구선수 중에 한 명이 이와 비슷한 말을 했었더라. 오래된 분데스리가(독일의 프로축구 최상위 리그) 축구팬이라면 알 법한, 소위 ‘사냥개’라 불렸던 (지금은 은퇴한) 그의 투지와 관련돼 한동안 명언이라 회자된 것인데, 그가 말하기를 자기가 누군가에게 한 대 맞는다면 자신은 그의 엉덩이를 두 대 걷어찰 것이라고 했다. 야만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자신의 손해는 늦춰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손해 보는 세태에서 인정이 식고, 마음이 인색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무엇이 모범이고, 무엇이 도덕인가를 더욱 열심히 논하려는 이때에 우리가 늘 보고 듣는 비리와 혐의들이야말로 진정한 야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언젠가 “도덕은 얇다.”고 말한 적이 있는 듯하다. 역으로 말하면 그것은 도덕의 실천이 어렵지 않다는 희망이기도 하지만 당장은 그저 식어버린 사회를 묘사한 것과 다르지 않다. 수용소의 삶은 점점 익숙해지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체감된다.


  묻는다. 신념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솔제니친은 그 부분도 빼놓지 않는다. 불평하는 법 없고, 올곧게 친절한 알료쉬카가 취침 전 슈호프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독자들은 두 개의 목적을 발견한다. 둘 다 맹목적이긴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맹목의 손가락이 어딜 가리키고 있는가가 다르다. 우리는 대개 둘 중 하나이다.
  “왜 영혼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냐구? 알료쉬카, 기도라는 건 죄수들이 써내는 진정서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세. 말해 봤자, 꿩 구워먹은 소식이 될 뿐이고, 거절당하기 십상이란 말이야!(pg.200)
  알료쉬카도 지지 않는다. 하지만 슈호프는 이미 담배를 태우며 생각에 잠긴 뒤였다.
  “자넨,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감옥에 들어왔으니까. 하지만 난, 무엇 때문에 여기 들어왔지? 1941년에 전쟁 준비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pg.204)
  그리하여 슈호프는 그저 집에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논쟁은 결국 큰 의미 없이 끝난다. 어제 한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슈호프는 체자리를 도와준 대가로 받은 비스킷 하나를 알료쉬카에게 넘겨준다. 그가 신앙을 강하게 주장해도 슈호프는 알료쉬카가 ‘좋은 놈’임을 안다.


  유난히 ‘운수 좋은 날’이었던 슈호프의 하루는 이렇게 끝난다. 내일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상을 알리는 신호 소리”와 “레일을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창에는 두텁게 낀 성에가 이곳이 시베리아임을 알려줄 것이다. 단순한 이곳의 삶에서 “삶”을 쫓는 이들의 묵묵한 전쟁은 몇 십 년이고 계속될 것이다. 책은 얇다. 하루치 분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제니친이 하고자 하는 말은 그가 직접 겪은 8년의 형기를 통해 알게 된 진실이다. 이 책을 가장 밑에 365권 쌓아놓고, 그 위로 여덟 겹을 더 쌓아야 한다. 상상이 불가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 하나 옮겨놓고, 글을 접는다.
  “토끼들의 즐거움이다. 그래, 우리를 보고 놀라는 개구리들도 있다고 좋아하는 그런 즐거움 말이다.(pg.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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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내의 충돌 현대의 지성 127
디테 젱하스 지음, 이은정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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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깊게 읽기] 문명 내의 충돌 (1~4편)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어제 시리아에서는 또 한 번의 차량폭탄테러사건으로 인해 7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이하 NYT)>紙 홈페이지의 1면에는 거의 매일 아랍의 정치격변과 테러, 이라크, 이란, 파키스탄 등에서의 미군 피해, 미군 철수 등이 헤드라인으로 올라온다. 근 몇 주 동안 위와 같은 뉴스들을 제치고 1면을 장식한 사건은, 내 기억으로는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김정은의 집권 외에는 없었다. 미국이 아랍에 얼마나 깊게 개입되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근래 들어 NYT가 보도하는 거의 모든 아랍 관련 국제사건들은 비극이다. 각 기사들에는 익명을 요구한 인터뷰이들의 부정적인 의견도 빠지지 않는다. 작년은 2001년 참사의 10주년 되는 해였다. 나아진 것은 없는 듯하다.


  작년 여름학기에 나는 요한 갈퉁의 평화이론을 바탕으로 하는 강의 하나를 들었다. 강의를 통해 나는 간디의 비폭력 평화운동을 근간으로 하는 창조적인 대응책들을 배우게 되었다. 납득은 되었다. 하지만 행동으로 이어가는 방향에 대해서는 함구할 수밖에 없었다. 생산적인 내용은 기대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강의의 레포트 주제로 나는 체첸의 내전을 선택했다. 그와 관련된 이론을 알아보기 위해 집어든 책이 바로 젱하스의 <문명 내의 충돌>이다. 그가 왜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는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반년만에 다시 읽어 나의 이해는 더욱 넓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음 어딘가가 씁쓸하면서도 한없이 공허했다. 이 책은 10년도 더 전에 발행된 책이다. 평화주의자인 젱하스는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의 제안은 거의 실천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10년 뒤의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 한 달에 걸친 깊은 독서를 마치고 리뷰를 쓰려던 지금, 나는 어제 시리아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를 망연자실하게 상기하게 되었다. 일개의 어린 독자가 세계의 문제를 다룬 책을 통해 그 한복판에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장벽이 느껴진다. 공허해진 이유이다.

 

 

*    *    *

 

 

  <문명 내의 충돌>은, 지난 네 편의 심층독서에서 파헤친 것과 같이 ‘간문화적 철학’을 위한 태도를 소개하는 장이다. 기존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그들의 사고를 넓혀갔다면 현대의 철학자들은 사고의 경계에 서서 이론이 아닌 행동과 사건의 앞에 대면해야 한다. ‘간문화(間文化)’라는 문자만 보면 그것은 별로 대단치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두 문화의 깊은 역사와 현재의 모습, 체제, 특수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대한 정보량과 학문 간 토론, 심층이해, 현장방문 등을 필요로 한다. 석학들도 그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젱하스가 말한 “무의미한 학술대회”는 지금도 개최되고 있을 것이다. 이 철학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추상적인 문제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의 길을 여는 학문이며, 따라서 행동과 직결된다. 이 철학은 제도가 될 수 있다. 젱하스는 이 철학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이해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자신의 저서를 통해 간곡하게 소개한다.


  매일 뉴스를 통해서 우리도 접한다. 세계는 갈등의 전쟁터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해 연일 언론이 보도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국제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평화보다는 갈등을 더 직접적으로 체감한다. 살인, 방화, 성폭력, 테러, 비리 등의 보도가 빠지는 날이 없고, 이것들에 우리는 거의 신체적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혀를 차고,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입술을 삐죽 내밀거나, 아니면 한숨을 쉰다. 이렇게 우리를 치떨게 만드는 사건들은 우리가 갈등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다원적 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는 바는 일치된다. 갈등을 중재해줄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의 정착이나, 소통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지도자의 등장이다. 법은 사소한 모든 것을 다룰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것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목도한 우리는 법을 탓한다. 그러나 그건 법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갖게 되는 한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재하고자 하는 열망이며, 사회적 합의이다. 우리나라는 그런 힘도, 그럴 수 있는 지도자도 부재한 상태이다. 따라서 우리는 젱하스의 이 말에 동의할 수 있고, 동의해야 한다.
  “갈등을 통해 점점 강화되는 다원성을 위한 적절한 표현방식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그렇다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여러 집단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다원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유일신 종교들은 이 태도에 대해 소극적이며, 다원성을 기초로 하는 종교인 불교와 힌두교에서도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이해를 방해하는 요인들은 많다. 종교적 특성을 누구나 먼저 꼽겠으나, 현대사회에 들어 그것의 영향력은 감소(종교최소주의 사회)해 있으니, 다른 요인을 하나 더 들자면 그것은 바로 권력의 문제이다. 한 가지 예로, 내가 강의과제로 제출하기 위해 조사했던 체첸의 내전에서 이 권력의 문제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상황이 유독 복잡한 지역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으나, 체첸의 대(對)러시아 항쟁의 근간(根幹)에는 상황에 알맞게 사용할 수 있는 종교(이슬람)가 있다. 권력이 종교를 손에 쥐고 있을 때, 그 밑의 사람들은 다원성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 여기에 민족주의와 낙후된 경제상황이 더해지면 상황은 극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일반적 이해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원성의 개념은 유럽이 백 년은 넘는 오랜 시간동안 온갖 시행착오와 피, 고통, 부정적인 역사를 감수해가며 얻게 된 근대화의 결론으로, 그것은 곧 ‘민주(民主)’라는 개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것을 ‘서구화’라고 칭했을 때, 동아시아는 서구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룩한 곳으로 손꼽힌다. 젱하스는 이 성공의 배경에는 바로 경제적 발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정치적으로 성장한 국민이 경제적인 혜택을 보장받지 못한다거나, 혹은 경제적으로 성장한 국민이 정치적 참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동구권의 실존사회주의, 이슬람 세계, 다원적 인도 사회 등에서 발생했던 문제를 결코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한 사실이다. 이 모든 실패의 사례들은 다원성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던 ‘대항 프로젝트’의 토양에서 자라난 쓰디쓴 열매였다. 젱하스는 ‘아시아적 가치’도 그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고 분명하게 분류한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역사는 보수적 가치를 버리고 과감한 혁신을 통해 수준급의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와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가 유럽보다도 놀라운 정도의 역사를 쓴 것은 그도 인정한다.


  문제는 여전히 문화 간 대화가 시도될 여지가 없는 사례들이다. 우리는 그것이 어떤 사례들인지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사례를 바라보는 눈은 거의 일괄적으로 서구의 것인데, 젱하스는 이것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서구 사람들은 (헌팅턴의 용어를 쓰자면) ‘문화 간 충돌’을 바라보기에 앞서 이미 서구의 우월을 가정한다. 이에 젱하스는 이렇게 말한다. “유럽의 발전 경로가 근대화주의자들의 지속적인 승리였고, 전통주의자들은 항상 전망이 없이 후퇴하는 싸움만 했다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그 근거로 제 2차 세계대전 후 보통선거권을 가진 나라는 겨우 3개국이었고, 여성선거권은 20세기에 소극적으로 부여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든다. 오늘날 서구가 자랑하는 그들의 근대화가 마치 오래전부터 항구적으로 누려온 것이라는 환상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근대화의 산물을 영양분 삼을 수 있었던 후손의 자만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를 물리고 그들의 역사를 되돌아본 다음, 타문화를 대할 때, 적어도 이슬람을 대할 때에 그들(과 우리)이 가져야 하는 태도는 “실제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다. 매우 새삼스러운 말처럼도 들린다. “시리아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한 것이 실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인가?”라고 주장하고픈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젱하스는 단호하게 말한다. 근본주의에 대한 유사한 비판이 계속되는 세태는 비생산적이라고. 이슬람의 민주적 대표자들과 열린 대화가 필요하다고. 공산주의 붕괴 이후 ‘적’의 이미지가 이슬람에게 전가되었다는 항간의 ‘괴담’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고. 관심의 편향이 ‘서구 대 이슬람’의, 마치 십자군 전쟁 이전부터 시작된 것처럼 가공된 기나긴 피의 역사에 대해 숱한 환상을 만들어냈다. 사실 이와 같은 편견은 두 세력 사이에 공존의 역사가 있었던 장에 직접 들어가 본다면 억측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 금방 들통 나고 말 것이다. 가령,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처럼 성지 예루살렘에서 공존하는 각 종교 세력과 교파들의 암묵적 합의가 오늘날이라고 해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과연 두 세력의 역사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한 편견 때문일까?


  자만과 편견을 물리고, 눈을 돌릴 수 있게 된다면 젱하스는 이런 것들을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먼저, ‘서구 대 이슬람’ 이외의 문제 중 가장, 아니 ‘서구 대 이슬람’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그가 진단한 인도 내부의 문제이다. 인도의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는 여러 종족, 종교와 정치적 갈등을 일으키며 거의 모든 갈등의 근본을 양산하고 있다. 파키스탄과의 대외적 문제뿐만 아니라, 인도 내부의 문제도 시한폭탄과 같다. 이를 통해 젱하스는 ‘문화 내부’의 문제 역시 간과하면 안 된다고 본다. 이는 미국도, 아랍도 마찬가지이다. 두 세력을 상징하는 두 종교는 비폭력을 원칙으로 하지 않기에 폭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할 수 있다(이와 관련해서는 <위도 10도>의 선교 내용과 이슬람의 ‘지하드’를 참조하거나, 르네 지라르의 저서들을 읽어보면 좋다.)고 하지만 비폭력을 원칙으로 하는 힌두교와 불교 사이의 갈등(스리랑카)은 얼핏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내부의 문제는 부패한 엘리트들의 권력쟁탈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갈등은 종교의 여부를 떠나 어디에서든 존재할 수 있다. 갈등을 양산할 수 있는 조건만 충족되면 된다.


  이러한 갈등은 동아시아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있더라도 그 사례들은 주요 사건이 일어나는 지역보다 현저히 적고, 사회적 위력도 작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비교적 평화로운 상황(막상 들여다보면 젱하스의 설명처럼 평화롭지만은 않다.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도 그러하고, 한중일과 대만의 첨예한 갈등, 러시아의 개입, 남중국해 관련 문제 등도 우리가 자주 접하는 긴장이다.)을 유지하는 까닭은, 거듭 설명하지만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상관관계 때문이다. 젱하스는 이슬람 사회가 동아시아를 본받아야한다고까지 말한다. 반대로 실존사회주의의 실패로부터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얻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주장들은 젱하스가 ‘근대화’라는 것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는 말한다. “근대의 역동성과 매력은 바로 운동과 반대운동, 그리고 그것의 확산을 통해 볼 수 있는 다양성에 있다.” 이 다양성은 “잘 쓰면” 건설적 합의를 통해 광범위한 평화상태를 유지하게 해주고, “잘못 쓰면” 내전의 씨앗이 된다. 서구는 “잘 쓰게” 되기까지 숱한 내전을 겪어왔다. 대신 그 상처는 다원성에 대한 이해, 성찰적 태도, 제도적 고찰 등의 여러 해결책을 발제할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키워줬다. 진지하게 세계 문제를 다루는 서구의 학자들은 그들의 역사를 교훈 삼아 다른 곳의 근대화도 이뤄지길 간절히 소망하는데, 이 점에서 젱하스는 요한 갈퉁과 만난다. 그리고 그가 비판한 헌팅턴과도 조우한다.


  평화는 중재의 능력에서 비롯되는 현실적 상태이다. “평화를 바랍니다.”라는 추상적 말로 끝날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운동이며, 이동이다.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와 체제, 그리고 이해이다. 행동에 앞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이 이해가 어떻게 갈등의 지역에 단비처럼 내릴 수 있느냐이다. 이 점에 있어서 <문명 내의 충돌>의 독서는 공허하게 남는다. 내일 당장 9.11 테러와 비견될 만한 참사가 벌어져 세계가 냉각된다고 해도, 안타깝지만 별로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다. 이 책은 나에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애당초 하지 못하게 했다. 이럴 때 독자는 압도당한다. 독서가 늦어진 까닭도, 핑계대보자면 그 때문이다. 문득 세계 저 어딘가의 미래를 소망해본다. ‘아랍의 봄’이 정말 봄이 되어 평화에 대한 열망과 중재의 힘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으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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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자들 - 셰익스피어에서 월트 디즈니까지, 위대한 예술가 17인의 창조 전략
폴 존슨 지음, 이창신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2011.12.20

 

 

  나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하루에 거의 한 편씩 시를 쓰곤 했다. 나는 시와 애증관계에 있었고, 그것은 나의 계륵이었다. 방문을 닫고 얼마간은 소설만 쓴 적도 있었으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같이 형편없었다. 시간이 지난 뒤에 차츰 알게 되었다. 가끔 작가들 앞이라면 부끄러웠을 정도의 저자세로 작품을 대하고, 미술을 “배운다.”는 취지로 각종 지식을 섭렵하기도 했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나는 늘 예술을 접하고 있었다. 세상에 공개되어 오랜 시간의 공격, 수많은 눈들의 검열을 거쳤으나 지금껏 명작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은, 혹은 막 그런 위치에 오르고 있는 작품들은 모두 용기의 산물이었다. 나에게 재능이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무명들의 인정을 안 받아본 것도 아니고, 이름은 낮으나 공식적 자리에서 상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에조차 자만할 수 없었다. 늘 굶주려 있었거나, 아니면 더 솔직하게는 용기가 없었던 것이리라. 사춘기의 얄팍한 고민에서부터 아직 접해보지 않은 철학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시를 통해 성찰하고자 했고, 그로 인해 분명 보이지 않는 장애를 극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얼마간 달성한 것들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어느 날 일기에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겠다.”며 작정하고, 창작의 어려움에 대한 잇단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시로부터 밀어낸 것은 요컨대 부족한 사랑과 형편없는 집중 때문이었다. 용기가 있었다면 시를 더 사랑했을 수도, 시에 훨씬 더 깊게 미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용기는 재능과는 아주 다른 것이다. 용기의 비가 내리지 않으면 재능의 텃밭에선 작물이 두터운 땅을 뚫고 나올 수 없다. 나에게는 잡초만 무성했던 것이다. 잡초를 뽑고 난 뒤 공부한 것이 미술이었고. 그러나 밭의 주인이 해마다 준비해뒀던 옛 씨앗들을 잊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따금 시를 읽을라치면 먼저 작가의 뛰어남에 혀를 내두르고, 나중에는 “왜 용기의 비는 내리지 않았던가?”며 후회를 한다. 그렇다고 내가 비를 내려달라 소리쳐 애원한 적이 있기는 했는가? 결국 나는 그것을 진정으로는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착실한 독자보다는 더 참여적이긴 해도 예비문학도의 발치에는 가지 못하는 정도라고, 나는 몇 해 전 끈을 묶었다. 그래놓고 남은 미련이 나를 시의 더욱 은밀하고도 가까운 독자로 만들어준 것이리라.

 

 

 

*   *   *

 

 

 

  위의 단락들은 폴 존슨이 쓴 <창조자들>의 서문을 다 읽고, 막 초서를 읽으려던 참에 적은 것이다. 굳이 리뷰를 위해 정리한 생각은 아니지만 써놓고 보니 서문이 됐다. 어떤 독서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장(場)이 되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경향이 뚜렷한 듯하다. 실력을 갖춘 누가 봤다면 괄시했을법한, 그래도 시를 꿈꾸던 나의 옛 경험이 <창조자들>을 읽는데 상상 외의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다. 미경험자가 아니기에 폴이 그의 책에 적어놓은 문학, 미술, 혹은 음악 관련 개념어들과 창조에 관한 관념어들이 살에 달라붙듯 다가왔고, 나 스스로 “나는 저들 중 누구와 가장 가까운 성향이었을까?”를 물어놓고 답을 찾기 위해 열정적으로 독서할 수 있었다. 그들과 나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겠거니와 숱한 독자들의 비근한 오류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꿈꾸던 것에 대한 향수를 대신하여 자기평가를 했던 것이니, 이런 생각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쾌락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핑계를 하자면 그렇다. 하지만 깊게 따졌을 때, 나는 이들과 견줄 구색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폴이 소개한 인물들 중 나는 미술을 공부한다는 까닭에 뒤러, 터너, 그리고 피카소에 주목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평 중 처음 듣는 것을 제외하자면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어 다소 실망했고, 오히려 나의 관심은 문인들에게 있었다. 요컨대, 나는 문학도의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문인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아주 안 읽은 것은 아니다. 다만 돌이켜보면 나에게는 인생의 대종(大鐘)을 울릴 정도로 큰 영향을 준 작가가 없었다. 몇몇이 기억날 뿐이었다. 시를 외우려는 열정도 없었기에 나는 김소월, 윤동주, 한용운의 절절하면서도 한국미 넘치는 그 구절들조차 암기한 것이 하나 없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유종호氏가 일러준 대로 좋은 글을 쓰고자 하면 짤막하게나마 동시(童詩) 정도는 암송해서 좋은 리듬감을 갖춰야 한다는데, 나는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게을리 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소설의 기억나는 구절을 대라고 하면 외지 못하나, 그래도 나이폴, 위화, 솔제니친 등을 “좋아한다.”고는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식으로 이래저래 변명거리를 찾아봤자 쓸모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나 스스로를 문외한이라 불러도 어울리는 표현이다.


  사실 초서, 셰익스피어, 엘리엇, 트웨인 등 영어문학의 최고봉들이라 평가받는 거인들의 원어(原語)본을 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지라, 폴이 그들을 평하거나 인용한 부분의 역자 번역 구절을 읽어도 큰 감명을 받은 것은 없었다. 받지 못한 것이 당연했다. 내가 아무리 카라바조에게 감명해서 그의 작품 중 그가 몰타에서 그린 <세례요한의 참수>를, 누구 못지않은 열정으로 소개한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그 그림을 보지 않은 이에게, 그리고 카라바조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이에게 그 감동이 전해지겠는가. 초서가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로부터 기법 면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설명 부분에서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라틴어를 배워야 하는 것일까? 셰익스피어가 방언을 포함해서 약 24,000여개의 단어와 표현을 만들었다는데, 나는 그 수에 혀를 내두를 정도에 족하면 될까? 아니면 그것들을 다 찾아봐야 할까? 또한 그는 뛰어난 음악적 감각을 지녀 그것을 자신의 작품 속에 넣었다고 하는데, 영시를 접한 적이 거의 없고, 더군다나 영시를 읽을 정도의 언어능력도 안 되는 내가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만 할까? 그것들을 나의 경험과 비교하여 유추해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읽는 이들은, 아마 나와 대부분 같은 처지일 것이라는 가정 하에, 폴이 열거한 사례들을 하나의 거대한 그릇에 담은 뒤 그것으로부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찾아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혹시 모른다. 누군가는 바흐에 정통한 이라, 폴이 말하는 모든 정보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할지. 혹은 다른 누군가는, 예컨대 퓨진에 대해 잘 알고, 건축을 해본 경험도 있어 무릎을 치며 뿌듯해할지. 하지만 대개 우리는 영문학애호가임과 동시에 미술애호가, 거기에다 패션의 역사와 감각을 꿰뚫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을 아주 좋아하고, 더불어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는 동시에 악기를 아주 잘 다뤄 음악을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여기에다 일본 회화사까지 정통한, 소위 말하는 전인(全人)이 아니다. 세세한 정보들에 과도하게 집중한다면 앞 문단에서 내가 말한 온갖 불이해(不理解)의 좌절을 겪게 된다. 나는 엘리엇과 제인 오스틴에 대해 잘 모르는 까닭에 대학 논문 몇 편(우리나라에는 엘리엇학회가 있다.)을 찾아 읽었는데 오히려 두 번째 불이해의 공격을 허용했다. 도움이 아주 안 된 것은 아니나, 폴의 의도로부터 더 멀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대체 창조자들이란 어떤 이들이란 말일까? 폴은, 요컨대 그들이 뭘 썼고, 그렸으며, 만들었는지는 결과적인 이야기이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자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몇 가지 공통점을 찾아낼 수도 있고, 반대로 차이점도 찾아낼 수 있다. 모든 것을 종합해서 결론을 내리는 것은 무척 힘들겠지만 폴은 이들의 헌신, 미침, 용기, 고독 등을 말한다. 위고처럼 워낙 탐욕적이었던 이도 있고, 트웨인처럼 탐욕을 인정하며 그보다는 웃음을 더욱 추구한 ‘쇼맨’도 있고, 엘리엇처럼 욕망을 억제하면서 은밀하게 작품 속에 드러내는, 하지만 일상은 거의 청교도와 같았던 이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광적일 정도로 집착했으며, 그런 헌신적 창조의 밑바탕에는 그것을 가능케 할 정도의 방대한 지식이 들어가 있었다. 뭘 배우든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었고, 선택한 배움은 늘 도움을 줬다. 엘리엇은 엄청난 독서량과 학습능력, 그리고 문학에 대한 집중으로 그 방면에 있어서는 가히 대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구사한 단어들 중 일부 외설적인 것들은 그가 젊었을 때에 (아이러니하지만) 푹 빠져 있었던 보들레르에게서 온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는데, 여하튼 그의 보수적인 삶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반면, 셰익스피어와 초서는 글쓰기와 단어에 도취돼서 명예를 얻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저속한 단어들을 엄청나게 쏟아내곤 했다. 이는 모두 삶의 유희를 높게 평가하고, 한편으로는 현실주의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트웨인은 어떠했는가? 그의 매력적인 재담은 그를 미국의 서부개척이 낳은 ‘근대의 호메로스’로 만들어줬다고 하는데, 그 모든 것의 기반은 이야기꾼들 사이에서 겪은 그의 경험이었다. 이로써 그는 진정으로 독자가 원하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그것은 모두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체득한 탁월함이었다. 트웨인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가 가장 존경하는 톨킨에 비춰 보자면 톨킨이 <호빗>을 통해 펼쳐놓았던 빌보와 드워프들, 베오른, 그리고 골룸 사이에 오고 간 “나름 재미있는” 대화들은 트웨인의 발치에도 못 미칠 정도이다. 특히 <반지의 제왕>은 퍽 지루한 면도 있다. 하지만 트웨인은 톨킨과 같은 일은 하지 못했다. 거의 20년이라는 시간을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집중적으로 투자한 전무후무한 일은 그의 시대 이후 환상소설가들에게 “뭘 해도 톨킨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을 겪게 만들지 않았던가. 다시금 그가 조명되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는 트웨인보다는 톨킨의 위력이 더욱 가시화되기도 하는 중이다. 하지만 트웨인의 글이 분명 더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맞다. 어쩌면 폴의 표현처럼 “너저분하거나 어설프거나”, 그렇지만 오로지 재미있는 것들이 말 그대로 독자들에게 훨씬 재미있게 다가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트웨인이 삼류의 저속한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 정정해서, 최고의 대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이 대단한 일인 것이다.


  예술의 기능은 다양하다.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접해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톨킨을 읽으면 그의 세계로 ‘점프’하게 되고, 롤링을 읽으면 어느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혹시 저 변기가 마법부로 통하는 비밀의 길이 아닌지 실제로 의심하게 되며, 위화를 읽으면 뿌리 깊은 인간애를 느낀다. 그리고 모든 대작들은 읽는 중에 재미있고, 읽은 후에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개인에게 가까운 주제라면 더욱 기억에 남게 되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게 된다. 심지어 신체도 바꿔놓는다! 작가의 순수한 동기가, 혹은 탐욕적 동기라도 좋은데, 어쨌든 창조의 항로를 거쳐 독자의 부두에 정박하고, 결국 길고 짧은 문장, 밝고 어두운 색채, 높고 낮은 음 등으로 수입되면, 비근한 비유이겠지만 우리에게는 거대한 삶의 인프라가 구축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열렬한 독자에게는 자신이 왜 그토록 예술에 몰두하는지에 대한 비밀을, 반대로 예비 예술가들에게는 자신이 예술을 하려는 철학과 동기를 재점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창조의 비밀 중 하나가 용기라는데, 그런 비밀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을 것만 같은 우리의 삶에, 대관절 용기는 무슨 말인가 싶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서문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가장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장애가 오히려 엄청난 용기와 의지력을 일깨웠다. 혐오와 자기 비하의 삶은 최고의 창작품을 무수히 쏟아 내면서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꽤 유명한 프랑스 화가 툴루즈-로트렉와 관련된 평 중 일부이다. 우리는 마음속에 그 못지않은, 스스로 돌이켜봤을 때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과 같은, 하지만 남이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산을 넘기 위한 방법이 하나밖에 없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아마 우리가 기억하는 “내 생애 첫 번째 대성통곡 때에 부모님께서 해주신 말”이라든지, 교과서에서 본 “교과서적인 삶”의 비밀과 관련해서, 혹은 그 외의 숱한 경험들로 말이다. 그것은 용기이다. 베토벤, 미켈란젤로, 르누아르도 마찬가지였다. 삶을 긍정으로 보든, 총체적인 멜랑콜리로 보든 그것은 큰 상관이 없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심장을 뛰게 만드느냐에 있다. 그리하여 용기가 생기고, 그 순수한 힘이 우리를 어디론가 이끄는가가 문제이다. 대단히 지루한 말일 수도, 그리고 별 차이가 없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차이는 크다. 폴이 말한다.
  “창조는 즐겁기보다는 인내해야 하는 괴롭고 혹독한 경험이며, 차라리 창조자가 아니길 바라는 때도 많다는 게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삶의 에너지는 소비된다. 이와 같은 예술가의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몫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때론 그들 못지않은 엄청난 에너지를 어딘가에 쏟아 부어야 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 에너지로 만든 용기가 우리를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폴은 그들이 “열심히” 일했다고 말한다. 이 부사에 대해 우리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그들의 삶과 비교하여 얼마간 읽은 클레이 셔키의 <많아지면 달라진다.>를 복기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과연 어디에 에너지를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 엘리엇의 회고처럼 만약 우리가 삶의 시간을 일말이라도 낭비하지 않고자 하는 자기훈련에 뛰어난 이들이라면 우리가 TV에 한 눈을 팔거나 인터넷에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시대를 움직일 어마어마한 것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놀라운 집중력에 대해서 부러워하거나 그것과 비교하여 자기 자신을 폄하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을 인정하지 않고, 우리는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은 일상과 예술의 대조적 삶 중 하나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창조라는 것은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그건 용기가 부족한 이들이 변으로 내놓을 수밖에 없는 정말 창피한 핑계가 아닐까. 상기된 기억을 인질로 삼아 추궁해보고, 지금을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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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1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2 0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4 0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5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할까?
마르틴 우르반 지음, 김현정 옮김 / 도솔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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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7 

 

  “Scientia est potentia.
  러셀은 이 말이 베이컨이 아닌 이전 시대의 사람이 한 말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으나, 그 역시도 베이컨이야말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인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새로운 의미가 시대를 완전히 바꿔놓진 못했다. 어떤 면에서 그는 도덕적으로 변변치 못한 인물이었고, 다른 어떤 면에서는 과학을 제대로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를 낮게 평가하는 이들도 있으나, 대체적인 시대의 평은 그를 ‘새로운 귀납법’과 고전경험론의 아버지 즈음으로 정의한다. 뉴턴이나 갈릴레이가 그랬듯이, 아마 저 격언은 반(反)신학적이고, 파격적인 발언이었겠으나, 베이컨도 종교적 믿음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그가 철학을 신학과 자연철학으로 나눴으나 신학을 부인한 정도가 오늘날 도킨스 정도까지 되진 못했던 것이다. 

  세속에 침투된 용량으로만 따지자면 종교는 점점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는 지구와 환경이 매우 흡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 2의 지구(케플러 22-b 행성. 평균 온도 섭씨 22도에 크기는 지구의 약 2배 정도)’를 찾아냈다는 과학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그러자 일부 편향적인 무신론자들이 신랄한 코멘트를 달았는데, 대부분이 기독교와 관련된 것으로, 가톨릭에 대한 공격은 그 정도가 상대적으로 덜했지만 개신교는 그 정도가 대단히 노골적이었다. 그 중에는 몇몇 자유주의자 성향의 개신교도들이 변론을 달아놓은 것이 있었지만 수적으로 상대가 되질 못했다. 이 ‘가상의 종교피해자(‘종교혐오자’보단 나은 것 같아 임의로 이렇게 불러본다.)’들은 “제 2의 지구에서 생명체가 발견되면 기독교의 교리가 틀린 것이라는 과학계의 주장이 사실로써 입증되는 것 아닌가?”라며 흥분했다. 그들이 종교로부터 어떤 피해를 구체적으로 받았고, 각 피해들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혹은 반대로 그들이 그저 근래에 들어 공격당하기 쉬운 처지에 놓인 종교를 비난하는 반(反)종교주의자들의 논리에 무임승차한 것은 아닌지, 한편으로는 과학을 지나치게 맹신하는 것은 아닌지, 나로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Kepler-22b’ 기사 링크 : http://www.nasa.gov/home/hqnews/2011/dec/HQ_11-408_Kepler_Habitable_Planet.html)

  개인적으로 나는 (태생이 가톨릭 신자였으나, 이 점에 있어서 스스로 매우 다행이라 여기는데) 심각한 과학주의자도 아니고, 굳건한 신앙인도 아니다. 칼 세이건과 도킨스의 논리적 설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그 옆에 꽂혀 있는 마더 테레사의 ‘사랑’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가슴이 훈훈하게 덥혀진다. 과학적 가치와 종교적 가치가 서로 방향을 달리하는 것은 자명하다. 둘은 모두 믿음이다. 이성 역시 믿음을 추동력으로 갖는다. 지적 호기심을 믿지 못하면 알고자 할 수도 없다. 이는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과 모르는 것을 믿고자 하는 것의 차이이다. 물론 둘의 차이는 현격하다. 그리고 과학의 발견과 논리는 점점 인류의 대체적인 이해를 그들의 품으로 끌어들이는 듯하다. 그렇다면 위의 사람들처럼 ‘제 2의 지구’, 아니 케플러 22-b 행성에서 지적 생명체의 흔적(전파통신 같은 것들로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하다.)을 찾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신의 증거가 없어지거나, 혹은 “신은 지구에만 있는가?”와 같은 질문에 종교가 답할 수 없어진다고 해서 종교가 몰락의 시나리오를 밟는다고 예측할 수 있을까? 과학이 종교의 자리를 대체하게 될까? 많은 지식인들이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믿음’이라는 영역이 그들의 주장처럼 종교에만 국한되어 자주 설명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이는 ‘지식의 오류’이다. 일상은 그보다 훨씬 큰 종교이다. 인간 자체가 종교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 나는 몇 해 전에 마르틴 우르반의 <사람들은 왜 무엇이든 믿고 싶어 할까?(독일어 원제 : Warum der Mensch glaubt. Von der Suche nach dem Sinn)>를 꺼내 든 적이 있다. 저자는 신학자 집안 출신의 과학전문가이다. (나는 흔히 상반되는 이력이라 회자되는 ‘독특한’ 발자취를 지닌 이들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지적 저울, 혹은 가치 저울, 그런 중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류의 양심적 지식인들이다.) 

  루이스 월퍼트의 <믿음의 엔진>에서 논의되었던 것의 상당부분이 이 책에도 실려 있다. 전개 방식도 별로 다르지 않다. 루이스와 마르틴 모두 “종교는 인간의 진화적 산물이다.”라는 현대적 견해에 일치를 보인다. 그러나 마르틴은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준다. 선택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배우며 변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믿음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안겨준다 .하지만 공포를 안겨주는 믿음은 문제가 된다. 우리가 그토록 편안해하던 믿음의 비밀을 마르틴은 여러 항목을 통해 샅샅이 밝혀낸다. 종교의 장막만 들춰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거의 모든 ‘믿음’이 나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다시금 마르틴의 선택으로 돌아가게 된다. 믿음에 대한 메커니즘을 알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인간이 다시 태어나는 때가 아닐까. 

  종교를 믿던 믿지 않던, 오늘날 사람들은 종교에 대해 너도나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종교가 어떤 방식으로 믿음의 공식을 이용해 왔는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르고 있다. 신을 믿는 것은 요컨대 우리가 우연을 믿는 것과 같다. 어떤 놀라운 일을 겪고, “이건 정말 우연이다.”라며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은 그 일과 유사한 정도의 충격을 또 다른 일이 일으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우연의 연속이며,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기적도 이와 같은 방식이다. 모세가 홍해의 바다를 갈랐다. 현대의 일부 양심적 신학자들은 그에 대한 전통적인 종교 해석을 대신해서 “당시 그곳은 별로 깊지 않았으며, 썰물 때에 마침 모세와 그의 무리들이 그곳에 당도한 것이었다.”고 말하기도 하나(예컨대 바닷길 같은 것), 약간의 상상을 보태어 이번에는 우리가 모세와 그의 무리가 되어보자.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원래 바다였던 곳에 물이 없더라.”는 ‘이상한 일’을 겪는다면 그것을 간곡한 기도의 산물이라 믿을 법도 하다. 갑자기 하늘에서 신의 양식 만나가 떨어졌다는 대목도 마찬가지이다. 누군가가 인근 마을에 몰래 가서 적잖은 음식을 얻어 왔고, 그것을 거의 굶어 죽어가던 처지의 사람들이 받아들었을 때 느끼는 안도감. 비가 내리길 간절히 기도했는데 정말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비가 내릴 수도 있다. 그것이 종교적 믿음으로 확장된 텍스트로 적혔을 때, 모든 것은 신의 기적이라는 교리가 된다. 우리가 그것을 불편해 하는 까닭은 그 종교의 부정적인 역사, 혹은 (구약만 보자면) 유대인 중심의 선민사상 등일 뿐이다. 정도가 다를 뿐이지, 우리도 여러 초등학교의 단군상 머리를 잘라 버린 일부 과격 종교단체들의 행동에 분노한다. 그들의 행동에 “분노한다.”는 것은 우리가 적게나마 ‘단군의 후손’임(아니면 민족단일주의에 기초한 여러 맹목적 사고들)을 믿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의 중도적 반론은 대부분 이해되기 힘들 것이다. 

  위의 “설명될 수 없는 상황”들 앞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을 것인지 조금만 상상해본다면 우리는 지식이 믿음에 반대되는, 혹은 맹목적인 믿음을 봉쇄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러나 어쩌면, 지식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도 같다. 연금술은 지식이었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화학이 되었는지는 간단히 검색만 해보면 알 수 있기 때문에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겠다. 지식이 신비주의와 맞닿았을 때에 사람들은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매력을 느끼게 된다. 지식에 근거한 운세는 어떠한가? 이따금 솔깃한 김에 스포츠 신문을 펼쳐놓고 오늘의 운세를 확인한 다음, 만약 그 날의 운세에 “주변을 조심하고”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다면 우리의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정말 조심스러워진다. 아니, 그것을 바쁜 나머지 잊는다고 하더라도 운세를 읽었을 때에 우리는 두 가지 반응을 대체로 보일 것이다. “거짓말이야.”, 혹은 “조심해야겠군.” 둘 다 지식에 대처하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론할 수도 있다. “당신이 말한 지식이란 무엇인가?” 고대 샤머니즘과 토테미즘도 지식이었다. 나는 그것과 관련된 전공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문학에 내재된 토테미즘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인간의 “고대(古代)인식”이 지금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강의였다. 결론은 우리에게 토테미즘의 DNA가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고대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현격하게 다르다. 문제는 ‘연결’이다.) 또한 우리와 고대인 사이에 마치 우생학적인 관계가 놓여 있다는 것도 아니다. 자연에 위험하게 노출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가지고 있었을 놀라운 감각적 지식은 지금의 우리에게 거의 없고, 반면 우리의 과학적 지식은 그들에게도 역시 거의 없었다. 결국 두 세계에서 ‘지식’이라는 것은 각각 다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의 지식이 우리에게도 있다면, 우리는 구태의연하게 ‘지식’이라는 단어를 현대적 과학의 합리적이고 근거에 입각한 지식에만 국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토템을 가졌다. 자신과 영혼이 닿아 있다는 동물. 오늘날 사람들은 반려동물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고, 물가가 치솟는 와중에도 정성껏 사료를 먹이고 병원에 데리고 간다. 문제는 믿음이다. 지식도 믿음의 도구이다. 같은 논리로 신 역시 믿음의 도구이다. 

  나는 예수가 (종교인들이 믿는 신앙으로써가 아니라) 매우 탁월한 인물이었다는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데, 이유는 하나이다. 그가 믿음의 메커니즘과 기능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정말 기적을 행했는지, 신의 아들인지는 내게 거의 중요치 않다. 다만 당시의 중동 세계를 고려해보건대, 삶의 비관만이 가득했을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사고를 불어넣어줬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를 종교와 닿아놓고 생각했을 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창조적 사고인가?”라며 의아해할 것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보자. (이는 이 책의 159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요한복음서 5장의 내용이다.) 절름발이에게 예수가 다가가 “낫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절름발이는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자 예수가 말했다.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거라.” 절름발이는 걸어갔다. 물론 절름발이가 순식간에 벌떡 일어나서 걸어가진 못했을 것이다. 선천적인 절름발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의사들은 이 구절에 주목한다. 환자에게 “스스로 자신의 병을 인식하고, 창조적으로 대응할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교조주의의 깊은 뿌리를 볼 수 있는 까닭은 전적으로 ‘그리스도교’라는 일부 종교에게 있을 뿐이다. 그것을 떼어놓고 ‘예수와 절름발이’로만 생각해본다면 예수는 절름발이에게 비관에서 긍정으로, (병에게의) 복종에서 (환자 스스로의) 창조로 이동할 것을 권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에는 힘들었을 것이고, 아마 영영 걷지 못했을 수도 있으나, 저 절름발이는 벼락을 맞은 듯 깨우친 후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과 생활을 했을 것이다. 예수의 추종자들은 이런 식으로 늘어갔다. 이를 플라시보 효과와 비교해보자.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칭찬은 고래도 움직인다.”와 같은 현대적 성찰의 문구와 비교해보자. 이들의 메커니즘은 거의 다르지 않다. 종교가 세속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세속이 종교를 서서히 밀어 올리기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모두 여기에 있다. 

  독자들이 특별히 주목해서 읽어야 할 챕터는 여덟 번째, “왜 불신보다 믿음이 더 위험할까?”라는 대목인데, 여기서 마르틴은 종교의 문제를 정리한다. 종교적 권력, 여성학대, 근본주의 등이 주로 언급되고, 우리는 이미 이에 익숙하다.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문제들이 곳곳에서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은 종교의 여성학대, 특히 마녀사냥에 대해 격렬히 반대하는데, 남성우월적인 역사를 전복시키기 위해서는 종교(물론 모든 종교가 그렇진 않고, 종교마다 ‘가부장적인 정도’의 차이는 있다. 예컨대 로만 가톨릭보다 러시아 정교회가 여성의 종교참여 문제에 있어서는 훨씬 가부장적이다.)부터 전복시켜야 한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에 대한 두 가지 생각을 분리해보자. 먼저 하나는 진화론에 반대되는 창조론이다. 다른 하나는 신에게 씌워진 권력이다. 과학이 창조론을 이길 수는 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승패’의 개념을 썼는데, 이유는 두 이론이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양립할 수 있는 것처럼 설립논증이 가설로써 등장했지만 도킨스와 세이건 등 과학자들의 책을 읽으면 그것이 왜 잘못된 논증인지는 금방 알게 된다. 문제는 후자, 즉 권력의 문제이다. 과학이 신에게 씌워진 권력을 이길 수 있을까? 개인적인 사료인데, 아마 이 대목에서 마르틴이 “왜 불신보다 믿음이 더 위험할까?”를, 독자들에게 한 번 생각해보도록 권유하고자 마음먹었을 것이다. 여기서의 ‘믿음’이란 물론 “신에게 씌워진 권력”에 기초한 것으로 그 어떠한 것도 “왜?”를 묻지 않는 맹목으로 이끌 수 있는 사고이다. 

  더욱 큰 문제는 근본주의에 있다. 아니, 나는 이를 “세속적 근본주의”라 풀어 써야겠다. 기독교, 이슬람, 힌두교, 유대교 등의 폭력적 근본주의자는 엄밀히 말해 종교인이 아니다. 그들이 종교를 왜곡하고 오해하는 것에 비유해보건대, 그들보다는 차라리 종교를 믿지 않으면서도 폭력을 지양하는 이들이 훨씬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반복해서 강조해야 할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종교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가령 민족의 영역에서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우파적 근본주의가 득세하면서 지금 유럽에서는 심각한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있다. 모든 문제는 “살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일어났다. 외국인들이 취직하자 자신들의 일거리가 없다며 분노하는 일부 독일의 청년들은 미국의 반유대주의와 다르지 않고, 프랑스의 상황과도 거의 다르지 않다. 팔은 대개 안으로 굽는다고 하던가. 우리나라 사람들도 심각한 취업난을 겪으며 최근 들어서는 외국인 노동자, 불법체류자 등의 인권에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문화세계, 다원주의, 지구촌 문화 등은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런 우리가 종교의 심각한 기울기를 정확히 따지고자 함은 온당치 못한 듯하다. 한편으로는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정말 가치 있고 올바른 것을 추구하도록 하는 ‘믿음의 엔진’ 중 하나를 스스로 꺼버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세계는 여전히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세계’라고까지 넓혀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 나 자신은 불확실성과 매순간 싸운다. ‘나’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나’ 있는 세상은 어떠한가? 조금 더 넓혀 생각해 ‘너’는 누구인가? ‘나’와 ‘너’를 가르는 비물질적 조건들을 생각하다보면 문득 연대감으로부터 시작된 사고의 다발들이 우주까지 폭넓게 전개되는데, 놀랍게도 우리는 그 생각의 연쇄가 서로 이어지지 않고 듬성듬성 전개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은 전적으로 무지(無知)한 존재, 다른 말로는 “알아가는” 존재이다. 무지를 극복하는 방법은 많다. 그러나 무지로부터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우리는 과거의 앎과 믿음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한 근거로써 확보한 시대의 사람들이다. 물론 우리의 후손들도 이 시대의 앎과 믿음을 두고 잘잘못을 따지겠으나, 메커니즘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는 합리적 성찰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계단에 발을 디딘 이상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앎과 믿음을 합리적으로 조화시키는 것이다. 추상적인 방법이라 여기는 회의론자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조화가 어디 즈음에 위치해 있는지 알고 있다. 자연에 대한 경탄, 존재에 대한 의심, (자연에게서 이끌어낸 교훈인) 확실성의 부정, 그리고 불확실성의 극복. 

  ‘예수’라는 이가 이미 그 길을 우리에게 제시했다. 자기극복의 창조적 사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는 방법. 그는 분명 종교가 되었고, 신이 되었고, 혹은 우상(idol)이 되었으나, 그를 추종하는 이들의 맹목이 어찌되었든 간에 본질은 이것이다. 매일 치고 박고 싸우는 두 앙숙에게 다가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은 간디에게 이르러 ‘비폭력 평화운동’이라는 이상적인 실천대안으로써 활용되었고,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가 되는 길”이며, 古이태석 신부와 마더 테레사, 슈바이처에 이르러서는 눈물겨운 희생적 삶으로 우리의 귀감이 되었다. 힌두교의 한 텍스트에 적혀 있는 것처럼 진리는 하나인데, 그것을 말하는, 혹은 실천하는 수많은 현자들이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진리'가 뭔지 대체적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편협한 유대교의 사고방식을 보다 넓혀 결국 죄목을 얻은 까닭에 예수는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마무리했고, 종교가 그의 뜻을 온전히 실행에 옮기지 못했으니, 그의 본질이 오늘날 더욱 까마득히 보이는 것은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예수의 말에서 과학을 발견하기 힘들고, 과학에서 예수의 말을 발견하기도 힘드나, (나는 위에서부터 계속 예수에 대해서만 언급했으나, 그건 이 책과 나의 종교와 대체적인 이해 때문이고, 사실 예수의 말이 되었든 다른 성인(成人), 혹은 현자들의 말이 되었든 간에) 우리는 둘 모두를 이해할 수 있는 최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역시 마르틴이 서문에서 언급했던 ‘선택’이다. 하지만 그 선택에는 어떤 일관된 이상적 방법이 있다. 마르틴이 말하는 것은 둘 모두의 겸비이다.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서로를 견제하고, 끊임없이 의심하되, 비관에 빠지지 않는 것이야말로 오래된 중용의 덕이 아니겠는가 싶다. 이 덕을 취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이라고 없을까. 잘못된 것을 알고, 우리를 되돌아보며, 한계를 인지하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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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8 15: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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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9 2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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