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범우사상신서 9
E.H.CARR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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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0

 

 

  많든 적든 우리는 누구다 한 번 쯤은 스스로 역사가가 되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미술사를 공부할 때 그러했다. 카라바조를 좋아하는 나는 그와 나란히 두고 공부할 만한 화가로 렘브란트를 삼아 삶을 추적해본 일이 있었다. 그렇게 여러 외국 사이트들을 검색하며 도판을 확인하고, 국내 서적들과 논문들을 참조하여 정보들을 모은 뒤, 나는 2년 전 이런 글을 썼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어렸을 때, 렘브란트는 라틴어 학교에 다녔다. 레이던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다. 그는 14세에 대학교를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당시 레이던에서 활동하던 역사화 화가인 야콥(Jacob van Swanenburgh)에게서 그림을 3년 동안 배웠지만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화가는 야콥보다 더 유명했던 피터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이었다. 라스트만이 중요한 이유는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직접적인 연결, 즉 키아로스쿠로 부분에 있어서 가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는 이탈리아 유학을 간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유럽에 가본 적도 없다. 반면, 라스트만은 로마를 직접 방문한 유학파 중 한 명이었고,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카라바조와 엘스하이머의 키아로스쿠로 작품들을 보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다. 라스트만에게서 6개월을 수학한 그는 그 무렵 카라바조의 독특한 스타일에 대해서 충분히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작품을 만족할 만큼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내가 피터르에게 주목한 까닭은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명암(明暗)의 강렬한 대비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라스트만에게 반 년 동안 공부한 렘브란트가 카라바조를 알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렇게 사실들을 통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지극히 초보적인 과정에서도 나는 상당한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이러한 희열에 중독되다보니, 나는 점점 세세한 정보들에 집착하게 되었다. 어떤 때에는 그러한 집착이 예술정신에 가까이 다가가는 이상적인 방법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보다 더 파고 들어간다는 일종의 - 그에 훨씬 못 미치겠으나 - ‘학자적 정신’ 때문에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현기증을 느끼게 되었다. 회의가 찾아왔고, 결국 나는 작품에 대한 ‘학문’을 잠시 내려놓고 예전의 작품 ‘감상’으로 돌아갔다.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1961)>를 읽는 중 내가 책의 첫 머리서부터 ‘움찔’했던 까닭은 위의 경험 때문이었다.

 

 

*     *     *

 

 

  에드워드는 역사가들이 무엇을 역사로 다루는가에 대해 우선 언급하면서 한 부류의 역사가들을 비판한다. 사실 그냥 역사가가 아니라 “사이비 역사가”라고 비난했다.
  “무미건조한 사실을 기초로 한 역사와 사실의 바다 속에 흔적도 없이 가라앉아 버릴 하찮은 사실들을 더 많이 아는 것으로 자긍심을 느끼는 사이비 역사가들에 의해 세분화된 전문성의 논문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사실’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사실은 아무리 모아도 지나침이 없다.”는 일종의 지적 신앙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는 나에게도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에드워드에 따르면 역사는 지나치게 많이 모아진 사실들의 총체가 아니다. 그는 계속 강조한다. 약간 나의 식으로 가미하자면, 역사는 역사가에 의해 선택된 사실들을 재료로 삼은 일종의 요리이다. 레시피와 역사가의 ‘손맛’에 따라 역사는 달라진다.


  나는 최근 한 교수에게 장자(莊子)를 배우고 있다. 스케일이 크고, 생각의 전환이 잦은 도가(道家)의 사상에 나는 자주 무릎을 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소위 ‘장자적 깨달음’ 외에 교수의 여러 코멘트들에 집중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편집자’에 대한 것이었다.


  장자는 그와 대척되는 공자[仲尼]를 빌려 와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하는 방식을 즐겨 썼다. 다시 말해 그 책의 ‘공자왈’이라는 걸 공자가 진짜 한 말이라고 여겨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책은 편집된 지식의 장이다. 곧이곧대로 수용하면 그것을 진정한 독서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그건 그저 ‘생각 감상’일 것이다. 나는 진정한 독서라는 것은 ‘편집’의 실체를 늘 인식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에드워드가 말하는 역사에 대해서도 우리는 위의 생각을 동일하게 해볼 수 있다. 역사는 어떻게 편집될까? 역사는 과거의 일들을 오늘날의 우리가 봤을 때, 그 때 ‘과거의 일들’에게 붙여지는 개념이다. 이 때문에 에드워드의 저 유명한 말이 등장한 것이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


  제 1장의 마무리에 있는 문장 중 우리가 흔히 기억하는 경구로 독립된 저 말의 실제 원문은 이렇다.
  “It is a continuous process of interaction between the historian and his facts, an unending dialogue between the past and the present.”
  (내가 본 김승일氏의 1996년 범우사 판 번역본은 이렇게 옮기고 있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호작용의 과정으로,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저 ‘대화’를 우리들이 나누는 일상적 대화와는 별개의 것으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편집자의 가상적 대화일 뿐이다. 우리가 스스로 과거의 사실들과 대화하고자 한다면, 만약 그런 노력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역사가들과 다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의 ‘대화’가 무엇에 기초해야 하냐는 것이다. 저마다의 기준으로 역사를 쓴다면 그건 그야말로 상대주의의 덫에 빠져 타인의 콧김을 맞을 뿐일 외톨이 신세가 될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이 경우는 회의주의로 발전된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에는 본래 관점의 차이 탓에 상대성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닐 수밖에 없다.) 에드워드가 말하는 위대한 역사란 이런 것이다.
  “과거에 대한 역사가들의 전망이 현재의 문제에 대한 통찰에 기초하여 조명될 때에 위대한 역사는 쓰입니다.”


  에드워드가 인용한 부르크하르트의 말도 분명하게 드러내는 바가 있다.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시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이다.”

  역사가도 여러 사건들처럼, 하이데거의 표현을 잠깐 빌리자면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길 위[道上]에 있다. 이 통찰에는 시대에 대한 감수성과 과거에 대한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한다. 사실만 알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다 위대한 역사가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사실을 통해 일반적인 가치를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가치들 말이다. ‘역사’라는 매개체를 상정한다면 역사가와 그의 책을 읽는 독자는 일반화된 가치를 서로에게 적용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피치 못하는 일이다. 언어 자체가 과학의 논증처럼 우리의 일상을 일반화시키지 않던가 말이다. 에드워드도 일반화 위에서만 역사가 자랄 수 있다고 확언했다.


  3장에서 에드워드는 역사가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개념 중 두 가지를 강조했다. 하나는 신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의 문제이다. (그 밖의 여러 문제들도 언급되어 있다. 가령, 사회학과의 관계, 교훈, 예측, 주/객의 문제 등이다.) 에드워드는 역사가와 신의 관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역사가란 자기 문제를 신의 조화력 따위에 의지하지 않고 풀어나가야 하며, 그리고 역사란 말하자면 조커 없이 노는 트럼프 놀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역사가는 재판관이 아니다.”는 소제목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선악의 가치판단은 역사가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크로체의 인용문이다.
  “역사 이야기를 한다는 구실로, 마치 재판관처럼 한 쪽을 향해서는 죄를 묻고, 다른 편을 향해서는 무죄를 선고하며 소란을 피우는 것이야말로 역사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 일반적으로 역사적 감각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주, 아베 신조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에 격분하는 까닭은 우리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있으며, 그것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60여 년은 더 떨어진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통념은 에드워드의 “카를 대제와 나폴레옹의 죄를 규탄한다고 해서 누가 어떤 이득을 거둘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충분히 대답할 ‘의지’를 갖고 있다.


  에드워드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한 까닭은 특정 인물에게 도덕적 판단을 집중하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그 인물에게 동조한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적인 부도덕성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개인에 대한 찬양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역사 판단이 어렵다는 것을 에드워드는 공업화의 예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들 중 그 누구도 진보를 억제하고 공업화를 하지 않았던 것이 좋았을 것이라고 ‘확신’을 갖고 주장할 사람은 없다. 내가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를 읽고 상당부분 수긍하면서도 결국에는 공감하지 못한 이유는 그가 주장한 역행(逆行) 때문이다. 메트로폴리스들을 없애고 농촌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과 자연을 위해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대부분이 동조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역사에는 어떤 흐름들이 있고, 그 흐름이 불가피한 희생을 동반하면서도 막대한 이득을 준다면 - 희생의 입장에서는 분노할 것이지만 -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득을 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는 이를 인정한다.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이 이익을 얻는 사람과 일치하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그리고 ‘기분 나쁠 정도로 적절한’ 엥겔스의 인용문도 언급한다.
  “유감스럽게도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는 매우 어리석어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난에 견딜 수 없을 때까지는 진정한 진보를 위하여 용기를 북돋우려고 하지 않는다.”


  역사 판단은 이처럼 어렵기 때문에 역사가들에게는 가치중립의 어려운 사고가 요구된다. 이 사고는 일반인들이 ‘절대 가치’라고 믿는 평등, 자유, 정의 등이 시대별․대륙별로 다르다는 기본 이해를 갖고 있다. 그리하여 에드워드가 말하는 진정한 역사가란 “모든 가치의 역사적 피제약성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역사 판단은 - 당연하게도 - 인과관계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에드워드는 자신은 “불가피한”, “면할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면할 방법이 없는” 등의 말은 사용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표현은 흔히 말하는 ‘운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도로 인과관계가 강했다는 것일 테지만 에드워드는 과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역사가가 우연을 쫓으면 안 된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우연이 한참 유행했을 때를 살펴보면 그 시대는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실존주의 영향으로, 혹은 국력이 꺾여 역사에 대한 ‘자신감’이 실추된 상황으로 그 공통점이 모아진다. 이런 때에 역사가들의 정신은 - 에드워드에 따르면 - ‘파산’된다. 우연을 믿는 것은 무지의 소산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고, 그는 톨스토이로부터도 변호를 받는다.


  예컨대 조조(曹操)가 영화 <적벽대전>에서처럼 한 여인에게 반해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 물론 책에 언급된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마찬가지인 경우이겠지만 - 역사가들이 보기에 전혀 일반적인 명제가 아니다. 그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의미만이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고, 이렇게 구축된 일반적인 명제들은 그들이 “왜?”와 동시에 “어디로?”라는 미래지향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해준다.


  제 5장에서 에드워드는 사회적 진보에 대한 오해의 소지를 풀어준다. 사람들은 의외로 진보와 진화의 차이를 모른다. 사전적 의미만 보더라도 진보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함.”이라는 뜻이고, 진화는 “생물이 생명의 기원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변해 가는 현상.”, 혹은 “일이나 사물 따위가 점점 발달하여 감.”이라는 뜻이다. 사회가 ‘진화’하려면 ‘사회’라는 것에 DNA의 유전형질이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최선의 방식을 찾으려는 생존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진보’하는 것이다. 이전 세대에서 획득된 기술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진보가 있어야 인간 역사의 지속, 그리고 시국의 타개 등을 모색해볼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그가 제 1장에서 미리 언급했던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인 역사가 과거와 미래와의 대화로 확장된다. 그는 이 대화, 즉 역사가들의 객관적인 해석이 시대가 지날수록 더 나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에드워드는 부제 그대로 지평선이 넓혀지면서 우리의 역사가 현대 이전과 비교했을 때 큰 진전을 보인다고 역설한다. 이 책이 1961년에 나왔다는 것을 고려하자. 그는 세계의 판이 새로 형성되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공업화와 교육 보급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던 당시의 상황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우려하는 것은 대영제국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영국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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