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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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11.11.25
 


  드러나지 않은 세계는 많다. 인터넷만 해도 그러하다. 우리가 아는 인터넷 세상은 빙산의 일각이다. 바다 속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 세계의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는 검색되지 않는 이른바 ‘딥웹(Deep-web)’이라는 세계에는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추잡스럽고 혐오스러우며, 아마 에코도 <추의 역사>에서 결코 다루고 싶지 않아했을 기괴한 사상과 이미지들이 펼쳐져 있다고 한다. “나는 인간을 과연 얼마나 잘 아는가?” 어떻게 사람이 그런(악한) 행동을 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봤을 때, 우리는 대개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도덕과 광기 사이를 우윳빛의 얇은 장막 하나가 위태롭게 가리고 있다.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로 우리의 인간성을 실험한다. 많은 이들이 이 픽션을 두고 인간성을 옹호하는 편과 주제 사라마구의 설정에 고개를 끄덕이는 편으로 나뉜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크게 주목받은 시기는 2008년 이 소설이 영화로 개봉했을 때였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가타부타를 따질 논제가 아니다. 세계의 곳곳에서 이것이야말로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추악한 미시(微示)의 역사가 진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 진정성을 갖고 그것들을 상기해 도덕을 각성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큰 충격을 줘야 했고, 되도록 ‘사실’에 가까워야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두려움을 준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시작장애인 체험을 한 적이 있었다. 체험이라고 해봤자 서로 웃고, 떠들고, 복도에서 넘어지고, 얘가 쟤를 밀었네 하며 싸우는 것이 전부였지만. 전체 감각의 대략 8할을 시각에 의존한다는 인간에게 있어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단순한 지각이 아니라, 더 나아가 “안다.”, 그리고 “믿는다.”로 이어지며, 특히 후자의 경우는 생존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중대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더군다나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처음으로 시각을 잃은 서른여덟의 남성에게는 뭔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윳빛 장막만이 보일 뿐이다. “보이는데, 보이지 않는” 감각적 현상이 그에게 준 공포는 차라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보다 훨씬 강하다. 환한 백색 상태가 그를 “삼켜버리는”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사라마구의 표현처럼 “이상한 영역”이 된다. 

  ‘확인 불가능’의 모든 낯선 영역에 대해 남자는 히스테리를 부리게 되는데, 불신에서 비롯된 피해망상으로부터 서서히 시작되는 거의 모든 반응들은 그의 주변 사람들마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만든다. 그리고 이 기괴한 증상이 하나 둘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확인되기 시작할 무렵에는 “나도 걸리면 어쩌지?”라는 사회적 공포가 퍼지게 된다. 사라마구가 의사의 심리를 묘사한 부분은 독자들의 숨통을 옭아맨다. 그는 어제 서른여덟 살의, 눈앞이 우윳빛처럼 환한 증상을 보이는, 그리하여 신경증을 부린 남성의 증상이 자신에게 옮아진 것에 대해서 공포를 느낀다. 아내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녀를 거칠게 밀어내며, “저리 가, 나한테 가까이 오지 마, 당신도 나한테 옮을지 몰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건부에 연락을 하나, 대부분의 픽션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본래 중대한 일은 중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윗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법이다. 의사의 직감은 진실이었지만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이,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위력을 갖고 있을까? 하지만 의사의 걱정은 그다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상급 부처에서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의사는 격리조치 된다. 그 때, 아내가 뛰어나와 “방금 나도 눈이 멀었거든요.”라며 동행을 요구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최초의 희망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용기는 고통을 가져왔다. 앞으로 펼쳐질 역한 광경과 사람에 대한 불신, 그리고 고립감 때문에 그녀는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자신 역시 눈이 멀기를” 바란다. 

  격리된 병실은 “공기 자체가 무거워져, 강하고 잘 사라지지 않는 악취를 내뿜고 있는 것” 같았고, “공기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상황이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행동이라고 해도 끔찍한 악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최악의 순간에서도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방관이 일어나고, 강간이 일어나고, 권위에 대한 쓸모없는 저항이 일어나며, 질서를 세우자는 이들과 “네가 무슨 상관이냐!”며 화를 내는 사람들이 싸운다. 어떤 것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데, 문제는 그들이 “눈을 뜰 수 없을 것이다.”라는 불확실한 상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 뒤, 거의 바닥에 가까운 회의와 절망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식량문제와 위생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병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의사의 아내는 고군분투한다. 

  도덕과 위선과 위법이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고, 할퀴고 싸우는 곳에서는 도덕도 잔인해진다. 첫 번째 사람이 격리소의 병사가 쏜 총에 맞아 죽은 뒤, 사람들은 훨씬 강해져야 한다고 다독이거나, 혹은 더 예민해졌다.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의사의 아내는 남자의 시신을 묻기 위해 삽을 가지러 병동을 빠져 나온다. 그런 그녀에게 삽의 위치를 에둘러 말하는 병사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녀를 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화가 난 그녀는 삽을 금방 짚더니 들어가 버린다. 병사가 놀라며 웃는다. 상사는 원래 “맹인들은 길 찾는 방법을 금방 배우는 법이야.”라며 자신 있게 설명한다. (영화에서 그녀는 병사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린다. 악랄함에 대한 경고이다.)

  “우리는 결국 공포 때문에 미쳐버릴 거야.”라고 의사는 생각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눈먼 깡패’들이 식량조달을 독점하면서 각 병실의 여인들을 ‘바치지’ 않으면 식량을 주지 않겠다는 엄포를 내린다. 엄포는 총성 한 방이면 충분했다. 남자들 중에는 “뭐하느냐? 희생하면 되지 않느냐?”는 이도 있고, “나의 아내는 보낼 수 없다.”는 이도 있었으며, 여자들 중에는 “나는 갈 수 없다.”는 이, 그리고 “내가 가서 식량을 가져오겠다.”는 이도 있었다. 여기서 사라마구는 남성의 추악함 앞에서 여성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보여준다. 병동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구역질나는 이 ‘사건’이 병동의 역한 공기를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그러나 ‘눈먼 깡패’들이 한 여인을 죽이자, 의사의 아내는 ‘반란’을 도모한다. 모든 죄악들이 불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의사의 아내가 도와준 이들은 무사히 병동을 빠져나온다. 그런데 바깥을 지키고 있어야 할 군인들은 없고, 철문이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들은 이제 해방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낳은 상황에서 탈출해 그들은 “보이지 않는 중”의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병동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은 제각각 무리를 나눠 도시를 방황한다. 거처를 찾은 이들도, 거리에서 죽은 이들도 있다. 의사의 아내는 자신의 집으로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들은 눈이 먼 뒤 처음으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식량’이 아닌 밥을 먹는다. 한 사람씩 눈을 뜨고, “한 명만 더 있으면 눈이 보이는 사람이 다수가 되는” 상황 앞에서 그들은 행복과 희망을 느낀다. 그리고 서서히 사람들이, 그녀의 집에 있던 사람들 말고도 거리 도처에 있던 사람들이 “눈이 보여, 눈이 보여!”라고 소리치는 장면 속에서 그녀가 조용히 창가로 걸어간다. “이제 내 차례구나.”라고 그녀는 체념한 듯 거리의 기쁨을 바라본다. 하지만 사라마구는 비극이 이어지길 원치 않았다. 

  다음 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도시는 다시 세우면 되고, 밭은 다시 일구면 된다. 그러나 마음은 어떻게 됐을까? 한 차례의 죄악이 휩쓸고 지나간 곳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은 더 현명해졌을까? 사람 사이의 관계는 소원해졌을까, 아니면 더욱 돈독해졌을까? 이 세상이 통째로 들려 절망의 웅덩이에 푹 담겨져 있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절망의 빛깔을 얼마나 많이 씻어낼 수 있을까? 자신만 볼 수 있다는 잔혹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본 의사의 아내는, 아니 독자들은 인간에 대해서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인간은 수많은 거장들의 손을 거쳐 도덕의 심판대에 오르곤 했다. 하지만 사라마구의 설정은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전쟁보다 더 극한으로 인간을 집어넣는다. 그곳에서 바라본 “원래의 자리”는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는, 백척간두의 모습과 전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라마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녀는 눈이 멀지 않는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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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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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1.11.25
 


  옛날 옛적에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었다. 사실 그가 한 말은 맞는데, 그가 만든 말은 아니고, 다만 델포이 신전의 문간 위에 새겨져 있던 것을 인용한 것으로 판명됐다. 출처야 어쨌든 서양에서는 훗날 데카르트가 소크라테스의 조언을 들어 ‘나 자신’을 아는 방법으로 ‘의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알다시피 이 지점에서부터 서양의 근대화가 시작된다. 정감이 정복되고, 합리가 머리를 들어 신이 의심 당하고, 과학이 유럽 대륙을 통째로 움직이게 할 초특급 엔진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왜 이 무렵에서부터 동서양의 기술과 제도적 격차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답은 사실 여러 정황을 판단해야 하므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결과가 그러했다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독서와 교육을 통해 학습한 내용이다. 

  진중권氏는 서양의 근대화 사례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폐단들을 소상히 드러낸다.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소위 “비교하면 다 나와.”라는 따끔한 일침의 모음이고, 한국의 미래를 예단하는 계발서이다. 그가 설명의 근거로 삼는 수많은 학문들은 이 얇은 책을 충분히 지지해준다. 잘못된 점들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노출시키는 진중권氏 특유의 ‘공격력’ 강한 문장들 역시 독서의 속도를 배가시켜준다. 마력이 강한 책이다.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육체를 길들이는 ‘규율’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진중권氏의 지론이며, 이는 박노자氏의 책에서도, 강준만氏의 책에서도, 아니 한국의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대다수의 학자들의 책에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규율은 강제력이 강하다. 때문에 우리의 신체가 어떤 규율에 의해 고정되면 그 이후의 삶은 규율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생존의 미학’으로 점철된다. 국가의 입장에서 국민들을 ‘규율화’시키면 세 가지 이득을 얻는다. 정치, 국방, 그리고 경제이다. 오늘날에도 1주일에 40시간 이상을 일하는 우리나라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노동예찬’이라는 기이한 현상이 간혹 일어나는데, 병폐의 잔재라 할 수 있다. 

  신체가 기계로 변신했으니, 근대적인 노동계약이 아닌 “노예해방 이전의 상태” 속으로 빨려 들어간 노동자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혹사당한다. 오늘 아침 <한겨례>의 오피니언에 박노자氏의 칼럼이 있어 반갑게 읽었는데, 그가 공격하고자 하는 사회의 폐단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노동운동이었던 ‘희망버스’ 사건 이후에 송경동 시인이 구속된 현 체제의 무법(無法)을 놓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인가? 담론적 대결에서 희망버스를 이길 수 없으니 지배자들은 ‘구속’이라는 노골적 폭력에 호소하고 말았다.”고 일갈한 칼럼이었다. 이제 막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외치며, 오류투성이인 자본주의 사회 앞에서 간절한 호소를 내뱉는 단계까지 왔는데, 지배자들은 아주 간단하게 구속을 전략으로 내놓을 수 있는 사회이다. 지금이라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대놓고 규율을 운운하는 영역은 많이 줄었어도 조금 더 세련된 형태의 규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업 면접형 인간’이야말로 올바르고 성공한 인간이라는 편견이 지배적인 사회이다. 

  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진중권氏의 공격은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는” 한국사회의 문제였는데, 어제와 오늘, 이런 문제에 경종을 울리는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작가 공지영氏가 강자에게 약한 우리 사회에 대한 자신의 분노와 의지를 트위터에 표출해 화제가 되었다. 공지영氏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버지에게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문자가 왔다. 걱정 되시나보다. 내가 힘 있는 자들에 맞서고 있으니. 노무현 대통령 연설 떠오른다. 언제까지 우리는 ”옳은 일 하다간 너만 다친다“는 말을 물려주고 살 건가? 울 딸, 울 아들, 엄마가 있다. 쫄지 마!”라는 글을 올렸다. 진중권氏는 “거대한 것은 우리에게 분노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래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가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리라.) SNS의 세례를 받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무엇인가 각성할 수 있는 전환점이 사회에게 주어진다면 그것을 잡고 사회 전체를 흔들어 놓을 수 있는 힘을 알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최근 들어 행동적 실천의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고, 여야 정치구도에 대한 회의로 말미암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박원순氏의 서울시장당선, 안철수氏의 제 3당 참여여부를 놓고 벌어진 찬반논란 등)과 ‘마이너스 협상’이라고 알려진 한-미 FTA와 관련된 시민들의 시위가 이를 입증한다. 이제 우리의 시대는 바야흐로 “거대한 것에도 분노할 줄 아는” 용기를 서서히 인식해가는 듯하다. 

  이어서 진중권氏는 단기속성으로 서구를 따라잡으려다 생긴 온갖 병폐들에 대해서 설명한다. 근대화 과정이 짧아서 생긴 ‘정념의 제국’인 우리나라는 서양이 보기에는 대단히 기괴할 정도의, 소위 ‘오바(over)’를 많이 하는데 그런 일상은 한 통신회사의 광고처럼 “성질 급한 한국사람”을 양산해왔다. 황우석 사건을 예로 든 그는 우리나라가 소수의 합리적 사고를 가진 이들을 다수의 감정적 동향을 가진 이들이 억누르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일갈하면서 감정을 형성하는 미디어의 ‘왜곡’에 대해서도 한 소리를 한다. 미디어의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고, 상상력은 음모론을 만들어낸다. 음모론에 기초한 추측성 기사가 기정사실화된다. 이 때문에 루머가 현실이 되는 철로에 사람들이 너도 나도 몰리는 것이다. 이런 ‘쏠림 현상’이 진실을 보조할 수 있다면 어떤 사회적 혁명도 가능할 텐데, 아쉬울 뿐이다. 

  한국의 ‘평등’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진단하는 그의 글도 인상 깊다. 우리나라에서 평등은 신분제 폐지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전 인민 평등화”라는 과정을 통해 달성되었는데, 이는 부자가 ‘못 가진 자’와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명품을 사도 서민들은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명품을 사는 어리석은 사회를 낳았다. 요즘 서민들은 아울렛에 관심이 많다. 일산에도 몇 군데 있긴 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약 명품 할인행사가 한다고 하면 소위 “짝퉁 아니야?”라는 의심을 하면서도 한 번 쯤 사보고 싶은 것이 서민들의 인지상정, 그리고 일상다반사가 아니겠는가. 상황이 이러하니, 여전히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수직’이고, 예절 역시 수직의 예절이 발달해 있는 반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동등한 수평 예절은 어색한 도덕이 되어버렸다. 

  사실 에티켓이라는 것은 서구에서 들어온 것으로 우리나라 사정에 알맞게 조정되지 않는다면 “한국인은 참 에티켓 없다.”는 열등감에 빠지기 십상이고, 진중권氏도 그것을 간파했다. 에티켓이란 “불쾌를 불쾌로 느끼는 미적 취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에티켓은 문화와 장소, 그리고 집단 간에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불쾌로 여기는 것을 서구에서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는 사례는 캐보면 상당히 많을 것이다. 진중권氏의 독일 유학 경험이 그 사례들을 대체할 수 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는 호주에서 잠시 머무를 때에 ‘서구인’과 ‘동양인’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동양인들은 서구인들의 에티켓을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아무래도 백호주의에 대한 반감을 동양인들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를 열등감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여타 다른 문제들과 우리나라의 현상들이 재미있게(‘어른이’라는 단어에서 웃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설명되어 있지만 자세히 따지자면 워낙 분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저자가 얼마나 많은 고찰과 준비를 하고 낸 책인지 알 수 있다. 인정에 기초한 ‘초근접거리’문화의 쇠퇴를 아쉬워하는 따뜻한 마음씨까지 들어 있으니, 마냥 소문난 독설가라고만 그를 평가할 순 없을 것이다. 그가 미래사회의 여러 모습을 진단하기 전, 마지막 일갈을 적어 놓은 부분이 특별히 인상적이어서 옮겨보는데, 이는 이 시대의 모두가 알고 있는 문제이고, 극복해야 하는 폐단이 아닐까 싶다. 크게 두 가지 문제이다. 하나는 ‘수치심의 윤리’이고, 다른 하나는 ‘공포의 보수성’이다. 

  서양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신(神)을 전통적인 도(道)가 대신하고 있었다. 이는 일본과는 다른 윤리관을 우리에게 심어줬다. 하지만 일본의 수치심, 일본인들이 심지어는 ‘자학(自虐)’이라고까지 부르는 윤리관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뭐든지 빨리빨리 서구를 따라잡으려고 정신적 공백을 남겨뒀던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반성의 주체가 되었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전 세대들의 미흡한 태도 때문에 전근대적 사회의 특성을 고스란히 답습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 우리도 일본인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수치심은 “남 보기에”라는 어구로 압축된다. 모든 행동과 양심이 타인의 시선으로 말미암아 옭아매어지는 것이다. 윤리가 수치심으로부터 도출되면 사회의 안정은 유지되겠으나, 진정한 자기반성은 줄어들고, 타인의 시선이 누군가를 죽이는 심리학적 현상들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공포의 보수성’은 이렇게 정리된다. 무언가를 대할 때, 우리는 ‘무서움’과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갖게 된다. 무서움은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다. 반면, 즐거움은 놀이로써 대하기 때문에 구성원들을 개별화시킨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미래상이 도출된다. 공포는 획일성을 지향하며, 놀이는 혁신과 창안을 낳는다. 획일성은 우리를 보수적으로 만드는데, 그 이유는 사교육 문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왜 아이를 비싼 돈 들여가며 과외시키세요? 형편도 좋지 않으실텐데?”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남들도 다 시키니까요. 안 시키면 불안해요.”라고 답한다. “남들도”라는 말에서 우리는 일련의 ‘편승’ 심리를 느끼게 된다. 남들이 다 하는 걸 안 하면 불안하니까 그 공포 때문에 ‘편승의 광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남들이 안 하는 걸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실제 안철수氏의 지적처럼 혁신적 시도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니 우리나라에서 “놀자!”는 말은 철없는 소리로 들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잘 노는 사람들”이라 일컬으니, 그것이야말로 ‘철없는 소리’가 아닐까? 

  책장을 넘기다보면 <개벽이>라는 사진을 보게 될 것인데, 나는 거의 죽도록 웃었다. 미래사회를 진단한 부분은 현대인의 특징을 여러 기술과 예술문화의 현상에서 뽑아낸 부분이라 앞의 여러 장보다는 읽기 훨씬 편하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여전히 비판은 유효하다. 낸시랭 부분이 그러하다. 이전에도 낸시랭에 대해 이 공간에서 잠깐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녀는 상당히 성공한 아티스트이다. 그녀가 실제 그런 사람(소위 된장녀)인지, 아니면 전략적인 퍼포먼스인지 그녀가 설명해주지 않는 이상 우리는 제대로 판단할 수 없고, 그녀는 우리의 ‘무지’를 이용해 판단과 감각을 거의 ‘바보’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낸시랭을 보고 있으면 “내가 판단의 주체가 맞는가? 아니면 판단은 외부에서 삽입되는가?”라는 회의에 빠지곤 한다. 예술은 워홀의 전략에 따라 자연스럽게 상품이 되었다. 하지만 낸시랭의 전략은 우리의 판단을 자연스럽게 객체화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예술의 문외한이니, 사회적 보수이니 하는 말만 되풀이하는 칼럼과 코멘트들만 보게 된다. 안타깝다. 

  진중권氏의 일갈이 종료되고, 마치는 글에서 그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디자인’할 것을 권장한다. 우리의 미래상은 이러하다. 유희, 유목, 예술가, 그리고 기획. 유희는 경직된 사회 소통의 물꼬를 터 엘리트 사회를 전복시킬 힘이 있는 유쾌한 반전이 될 수 있다. 유목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우리는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는데, 이는 왜곡되어 심각한 교육적 붐으로 번지지 않는 이상 매우 바람직한 ‘바람’이다. 그리고 ‘신민’으로 번역되는 Subject에서 ‘Project’, 즉 자신을 기획하는 단계에 이르자는 진중권氏의 주장은 이 나라의 현대인들이 “제대로 근대화되지 못한 한국사회”에서 탈출할 수 있는 지침서가 된다. 우리나라를 한 번 뒤집어 놓고 생각하면 “위는 아래가 되고, 아래는 위가 되는”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과 같은 신비로운 일이 일어날 것인데, 그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온갖 폐단 속에서도 꿈꿀 수 있는 자만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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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1994-2005 Travel Notes
이병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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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책을 펴보니, 맨 첫 장 검은 바탕 위에 ‘보안성검토필’이라는 종이 스티커가 붙어 있다. 아, 그랬다. 군대에서 읽은 책이다. 나와 유독 친했던 한 후임과 중국, 인도, 네팔의 지도를 펼쳐놓고 군생활의 말년을 여행계획 세운답시고 엄청난 종단&횡단의 루트를 짰던 추억이 떠오른다. 여행을 꿈꾸는 것은 참으로 설레는 일이다. 타지에서 느낄, 하지만 아직 느끼지 않은 이질감이 무서움을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 인연들, 그리고 풍경들이 나의 생에 어떤 선물이 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에 이르기까지. 이병률氏의 제목처럼 그건 “끌리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른다. 시를 좋아했던 내겐 더욱 그러하다. 또한 책 곳곳에 실린 사진들도 참으로 아름다워 눈요깃감으로도 좋지 않은가! 

  <여행생활자(유성용氏)>와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최갑수氏)>, <미애와 루이, 318일간의 버스여행(최미애氏)>, <김홍희 몽골방랑(김홍희氏)>, <아메리카 로드(차백성氏)>,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아리프 아쉬츠)>, <거대한 시간의 도시에서 나를 보다(권삼윤氏)> 등 여행에세이들을 손에 잡히는 데로 구해 읽고도 뭔가 더 읽어야 성이 찰 것 같았을 때, 나는 이병률氏의 산문집을 샀다. 군대에서 나는 (전에 말한 <허삼관매혈기>를 포함해서) 이 책 저 책 많이 빌려줬었는데, 이 책만은 관물함 속에 넣고 홀로 홀짝홀짝 넘기면서 봤다. 내가 쌓고자 하는 추억의 앞에서는 조금 이기적이어도 괜찮겠지 않겠느냐는 심보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어디어디를 갔는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가 무엇을 봤고, 어떤 생각을 했으며, 결국 나는 그의 글에서 뽑아낸 소중한 글귀들을 내 인생에 어떻게 심어놓을 수 있을지, 그것이 나에게 있어 중요했다. “배워야지.”라고 잔뜩 벼르고 이병률氏의 에세이를 펼쳐든 것은 아니지만 이미 첫 대목에서부터 열정을 일컬어 “몸을 맡겨 흐르는 것이다.”라고 표현한 구절이 나의 삶을 반성하도록 꾸짖었다. 모든 것에 대한 의심 없는 시선과 사랑이 <끌림> 안에는 가득 차 있기 때문에 그의 열정에 ‘몸을 맡겨 흐르다 보면’ 그의 체험과 나의 체험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곧 있으면 다가올 1초 뒤의 나의 시간들이 연상된다. 용기에 찬 환상들, 아니 계획들. 그러나 힘을 준 계획 앞에서 나는 늘 무너지지 않았는가. 소심하게. 그러나 이병률氏는 말한다. 계속 가라고. “차곡차곡 쌓은 환상을 넘겨보려면” 가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때론 그것들이 조용히 허물어지는 것도” 봐야 된다고 한다. 하기야 삶은 무너진 탑 쌓기라고, 그렇게 회자되곤 하더라. 

  여행 에세이들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이병률氏도 “한 여행자의 개인적인 경험 혹은 인상은 함께 동행하지 못한 사람에게 허황된 허사에 그치기 쉽다.”고 했다. 하지만 하나의 글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느껴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에 비록 겸손한 저자들이 ‘허사’라 부르는 감정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독자는 나름의 꿈을 자신의 인생에 새겨 넣게 된다. 다양한 여행 경험을 한 이들의 생각을 짐작해보는 난해함에 빠져보기도 하면서 감성의 스펙트럼도 넓힐 수 있다. 그리고 <끌림>은 순전한 개인의 경험만이 투영된 에세이가 아니다. 나는 그 점이 참 좋아 관물함에 넣고 조금씩 꺼내 읽었던 것이다. 생각의 깊이, 삶의 가르침, 소중한 지혜, 우리의 일상에 있어 자주 잊히는 것들에 대한 상기. “문밖에 길들이 다 당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주인이었던 많은 것들을 모른 척하지는 않았던가.” 우주를 사랑하면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내 것처럼 느껴지고, 미술을 사랑하면 모든 화가들이 다 나의 사랑처럼 느껴진다. 사람이 무언가를 느끼고 안다는 것은 이렇게 자신의 안으로 집어넣는 것. 그리고 그것이 모두 마음속에 들어가 자리를 잡아 충만한 상태가 되면, 하이데거의 말처럼 남에게 그것을 나눠줄 수 있는 개방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니, 한 작가의 10년이 넘는 여행과 그 경험담이 쏟아져 나와 제각각 소박한 지혜를 알려주는 이 책을 내가 그리도 좋아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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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15: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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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2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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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6 1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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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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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이주헌氏는 ‘미술’이라는 척박한 분야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국내파 저자이다. 그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가 대중을 만족시킬 줄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많은 것을 읽고 배웠다. <지식의 미술관>을 펴보면 온갖 밑줄로 낙서를 한 흔적이 있다. 다만 나는 이번 리뷰에서 이 책의 타이틀을 빌려 우리나라 미술도서 시장의 흐름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고자 한다. 물론 이 글에서 짚어보는 <지식의 미술관>의 한계점과 그의 서문이 갖는 태도의 시대성이 그의 다른 책에까지 모두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재차 밝힌다. 

  미술은 우리나라에서 단편적인 교양으로 취급받고 있다. 따라서 왜 그 작품이 명작인지는 주변지식의 종합으로만 판단하도록 권장된다. 하지만 이것이 원래 미술의 모습은 아니다. 단지 하나하나 정보를 쪼개어 경제성을 살리는 전략이 이 시대의 편의에 의해 대세가 된 풍토일 뿐이다. 미술은 본래 지식이 아니다. 미술의 지식은 주석 이상도 아니다. 또한 지식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이 시대의 대중들이 가진 속성에서도 추론되는 바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미술애호가들에게 지식일변도로 치닫는 우리나라 미술문화계의 이해가 왜 잘못된 것인지를 상기시키는 역할만을 이하 글들에 심어놓았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나도 그의 팬이다.  

 

*   *   *
 


  사실 미술이 부분적으로는 ‘지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유독 <지식의 미술관>이라는 제목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까닭을, 아마 이곳에 오기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나의 오래된 이웃블로거들은 알고 계실 것이다. 나는 미술도서의 저자들이 대중의 무지를 겨냥해 조금 더 겸손해져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으나, 작금의 상황에 큰 변화는 없다. 학계에서는 잰슨과 곰브리치 이상의 새로운 미술사관을 지닌 학자들의 놀라운 책이 나와야 한다며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에도 뛰어난 학자들은 많다. 하지만 서양미술을 대하는 토양 자체가 서구와는 천지차이일 수밖에 없는 까닭에 그들의 집대성된 명작이 나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핸디캡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임영방 교수의 책들은 참으로 명작이다.) 

  대중적인 저자들의 책에도 다소 획일적인 구조가 있어 아쉬운 것은 매한가지이다. 시대 구분을 통해 챕터별로 끊어 설명하는 것에도 학자들 간의 이견이 많고, 그 부분에 유독 많은 저자들이 조심성을 가지고 접근하지만 미술을 “끊어 설명하는” 전략은 예전 그대로이다. 특히 현대미술일 경우가 이런 경향이 심하다. 물론 대중들에게 교양 삼아 읽어볼 정도의 책을 내놓을 것이라면 그런 책들이 잘 팔리고, 인기도 많고, 또한 영양가도 높다. 하지만 미술은 ‘스토리’이다. 지식은 스토리의 주석일 뿐이다. 극단적인 예로, 만약 우리에게 누군가가 영화로써 한 사람의 인생을 소개한다고 했을 때, 그가 단편적 설명들을 나열한 것과 스토리를 살려 표현한 것 둘 중 어느 것에 사람들이 박수를 쳐줄까? 그나마 미술가 평전들은 대중들에게 넓은 눈을 갖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스토리가 누락된 나머지 책들은 주식(主食)이 될 수 없다. 여러 미술책을 접하며 늘 아쉬웠던 부분을 정리하자면, 나의 지론은 이러하다. 

  나는 미술공부를 하는 동안 마랑고니의 <보기 배우기>라는 문제작을 읽으면서 결코 미술이 대중화될 수 없으리라는 패배론적 관점에 빠지기도 했는데, 이주헌氏도 비슷한 말을 했다. 뛰어난 감식안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감식안을 얻는 방법에 있어서 마랑고니와 이주헌氏의 접근은 상이하다. 나는 둘 중 마랑고니의 의견이 훨씬 타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이 리뷰는 이주헌氏의 <지식의 미술관>에 대한 글이지만 (혹시나) 미술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것을 고려하여 마랑고니의 의견을 부득이하게 참조하게 되었다. 

  신랄한 어투를 자유자재로 구사해 소위 ‘안티’들을 끌고 다녔던 이탈리아의 고집쟁이 마랑고니는 그의 책 <보기 배우기>에서 대중적 저자들이 대중들을 상대로 미술을 ‘주입’시키려는 현학적 태도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원칙적 오류는 아직 보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예술작품을 보여주고 또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는 사실이다.” 때론 추상적이며, 얼토당토하지 않은 자기적 분석으로 독자들을 매혹시키거나 편견을 갖게 하는 저자들도 있으니, 마랑고니의 지적은 적절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저자들은 대중의 성향에 대해 십분 이해해야 하나, 그 부분에 있어서도 결핍이 있는 듯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대중들은 “마지못해 흥미를 보이는” 승차감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라 여기지만 막상 ‘대중’이라는 집단은 단순한 루머 하나에도 자신의 의견을 180도로 바꾸는 경향을 갖는다. 그리고 그들은 요즘 들어 교양에 부쩍 관심을 갖고 있는데, 미술이 여기에 포함된다. 즉, ‘지식의 미술관’이라는 테마는 교양인들의 지적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능력에 있어서는 탁월할 수 있어도 정작 미술을 좋아하나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진입로 역할을 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지식이 흥미 있을까? 지식이 곧 교양이라면 성립될 논리이지만 우리는 때론 교양을 경멸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지식’이라는 단어는 미술의 일면을 크게 부풀려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한다. 마랑고니는 이에 “지식으로만 가르치는 방식은 시들은 열매만을 내놓았을 뿐이다.”라고 일갈한다. 그가 내놓은 방책은 그렇다면 대체 무엇일까? “보는 습관”이다. 

  이번에는 다시 이주헌氏의 서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지식과 경험은 구슬이고 직관은 꿰는 실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림 감상의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 작품에서 ‘스토리’만 이해하고 그 이상의 호기심은 갖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말한 ‘그 이상의 호기심’이란 이런 것들이다. “시대적 조건, 당대의 역사, 작가의 성격, 취향, 신분, 철학, 작품의 미학적인 구조, 조형어법, 사조, 스타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소.” 그리고 양비론을 내놓는다. “지식의 양이 더 많다고 더 뛰어난 감상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와 “직관의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경험의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다.”라는 것이다. 둘은 모순 관계에 있다. ‘적당량의 지식’이 정답이라면 그 선은 어디에서 어디까지 그어져 있을까? 그가 내리지 못한 답을 마랑고니가 내린다. 구성요소를 학습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마랑고니는 탁월한 ‘교육자’가 된다. 

  대체 무엇을 학습하라는 것일까? 구성요소는 간단하다. 선, 명암대비 효과, 계조, 색채 등. 어떻게 작품이 그려지는지, 그 세포들을 알라는 것이다. 마랑고니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고집쟁이 할아버지의 ‘오래된 경험칙’이 바로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이주헌氏는 ‘직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것을 지식과 직접적으로 연관시켰다. 하지만 마랑고니는 직관을 작가와 연결시킨다. “미를 안다는 것은 그것에 정통한다는 뜻이다.”라는 인용문을 통해 이 이탈리아의 학자는 “형태들에 친숙해져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직관은 갑자기 용솟음치는 무언가가 아니다. 적어도 관찰자에게는 그러하다. 노(老)학자는 이것이야말로 대중들이 미술을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 확신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자국 이탈리아의 상황을 대단히 안타까워한다. 더불어 이런 것을 알지 못하는 비평가들의 현학적 세태에 대해서 쓴 소리를 마구 뱉어낸다. 원래 쓴 소리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가 하는 말이 옳은 것임에도 곤경에 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이주헌氏는 미술을 둘러싼 지식으로 기법, 주제, 역사, 위작, 미술시장 등을 알려준다. 읽어 보면 참 재미있는 내용들이고, 그가 지닌 특유의 친근감과 배려는 독자들에게 어려운 전문용어들을 쉽게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지만 그 내용들은 모두 스토리 바깥에 있는 것임을 독자들은 알아야 한다. 미술사의 주석 정도로 달려 사람들이 참조하면 되는 내용이다. 진정한 미술사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마랑고니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한편으로 국내의 저자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총동원해서(그들은 얼마나 해박한가!) 스토리로 전개되는 책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잰슨과 곰브리치의 편향된 사관(史觀)을 극복할 대작을 내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 

  내로라하는 저자들의 미술책들이 책장에 꽤 많이 꽂혀 있으나, 지식일변도로 치닫는 우리나라의 지식인문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 대다수이다. 미술은 과연 네루의 <세계사 편력>이나 자크 바전의 <새벽에서 황혼까지>와 같은 ‘후루룩’ 읽고 마실 수 있는 문장과 내용의 조화로 쓰이기 힘든 분야일 것일까? 그 중 다행스럽게도 이진숙氏의 <러시아 미술사>와 김상근氏의 <카라바조, 이중성의 살인미학>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미술을 사랑하고, 또한 미술과 최대한 동화되고자 하는 수많은 미술팬 중 한 명으로써 열망하건데, 이주헌氏가 독자들을 놀라게 할 만한 뛰어난 역작을 하나 써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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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13: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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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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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16: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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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5 2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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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01: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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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기 2012-01-08 12:28   좋아요 0 | URL
링크해주신 글 천천히 읽어보겠습니다.^^

2015-02-13 16: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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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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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11.11.24

  네이버에서 미술 블로그를 3년 정도 꾸려가며 나는 많은 화가들을 좋아하게 되었다. 후기 고딕에서 르네상스, 그리고 마니에리스모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시기를 즐겨 공부했고, 얼마간은 모더니즘에 푹 빠져있기도 했다. 하지만 책으로 미술을 접하는 것과 직접 작품을 보는 것은 때론 별개의 일이 될 때가 있기 때문에 “아는 만큼 보이는 것”만큼이나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도 있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블로거들이 코멘트로 “저도 미술공부를 하고 여행을 갔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나는 늘 “보는 만큼 알게 되는 것”이라고 답해주곤 했다. 책 속의 미술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무렵, 나는 블로그를 관두고 그간 읽은 책들을 정리할 겸, 그리고 유능한 장서가들의 글을 찾아 읽을 겸 이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상당히 만족한다. 스스로에게 보란 듯이 바닥에 ‘책탑’을 쌓아놓은 뒤, 예전에 읽었던 것들은 조금씩 재독하며 정리하고, 안 읽은 것들 앞에서는 설렘을 한껏 느끼는 하루하루가 아주 마음에 든 것이다. 조금 정착이 되었다 싶었는지 얼마 전에는 그간 읽고 공부했던 미술책들을 나름 정리해서 혹시 “이 책 살까?”라며 망설이는 미술애호가들에게 조금이나마 리뷰로 도움을 주고픈 마음도 들었다. 그 첫 번째 책으로 <반 고흐, 영혼의 편지>를 골라봤다. 

  엄밀히 말하자면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공부할 목적으로 읽은 미술책이 아니었다. 반 고흐를 본격적으로 만나게 된 때는 세잔을 공부할 무렵이었다. 하지만 후기인상파 중에서는 두 화가가 아닌 고갱을 유독 좋아했다. 미술 문외한이었던 당시 내가 느끼기에 세잔은 (그와 관련된 미학을 먼저 접해) 난해했고, 반 고흐는 동화 같았으며, 쇠라는 비현실적이었다. 고갱의 시선은 나에게 익숙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첫 만남의 느낌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다가 나는 알면 알수록 반 고흐에 집착하게 되었다. 솜씨 좋은 우리나라 저자들의 책을 읽고 난 뒤, 그리고 샤마의 글과 영상을 접하고 난 뒤에 더욱 그러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이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 있었다. 초상화를 보며 이토록 서러운 감정을 가진 적은 렘브란트 이후 처음이었다. 미술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는 그림을 그린 뒤,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정말 미친 듯이 그림을 몰아 그리면서 광기의 실체와 사투를 벌인 그는 그림 속에서 결국 나오지 못했다. 그를 아는 전 세계의 미술팬들이 그의 명성을 만들어줬다. 내가 아는 한, 그는 렘브란트와 함께 서양 사람들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화가 중 한 명이다. 경외가 아닌, 연민의 관심이라는 것이 또한 그를 대단히 특별한 화가로 만들어줬다. 

  그는 기복이 심했다. 1882년 3월 중순에 쓴 편지는 이렇다. “돈에 쫓겨서 잠시 자신을 잊고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끄는 작품을 만들어내면, 그 결과는 늘 불쾌한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일은 할 수 없다.” 당시 반 고흐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대개 연필과 목탄, 분필 등을 이용해 그린 그림들인데, ‘사람’을 그린다는 느낌을 그 누구라도 쉽게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내가 사람에 작은 괄호를 친 이유는 “반 고흐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강조하고자 함이었다. 그는 사람을 어떻게 봤을까? 그는 사람을 사랑했다. 쓰러져 가는 누군가를 그림 안에 넣어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었고, 실제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도와주려고 했던 여인은 반 고흐의 무서운 집착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쳤다. 한편, 그가 경제적 이유로 여인과 헤어졌다는 설도 있다.) 이는 순수한 행동이다. 그는 같은 해의 한창 더울 무렵, 동생 테오에게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고 재차 밝혔다. 그는 색채의 강렬한 힘을 느꼈고, 진정으로 행복해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들판, 숲속, 언덕, 복권 판매소, 교회 등에 나가 사람들을 그렸다. 동생 테오에게도 온건한 태도를 보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뒤, 가족과는 다소 사이가 안 좋았지만(그는 부모님이 자신을 ‘개’라 여길 것이라 짐작했다.) 열정은 그대로였다. 그는 밀레를 ‘화가들의 아버지’라 부르며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화법을 조금 바꾸는 시도를 했다. 한 때 파리의 화가들을 일컬어 “너무 밝은 색만 쓴다.”며 불만을 드러냈던 그가 밝은 색을 탐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리에 머물며 그린 꽃 정물화들에서는 이전의 흔적이나 특징을 쉽게 찾을 수 없다. 

  그 무렵 여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는, 개인적으로 그의 편지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것이었다. 미술을 탐구하고, 수많은 책을 접하며 그것을 남에게 말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가 여동생의 활기 넘치는 삶을 위해 한다는 조언이 “공부를 하지 말고, 춤을 배우거나 연애를 하렴.”이 아닌가. 아마 화가의 삶을 살며 느낀 자유와 열정 사이에서 그가 그 자신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는 감각을 중요시한 것처럼 보이는데, 애정이 듬뿍 담긴 그 편지의 구절을 읽으며 나는 잠시 눈을 감아봤다. 그러한 반 고흐의 삶은 어떠했는가 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만 그 ‘자신’은 그를 구렁텅이에 몰아넣곤 했다. 아를에서의 삶이 그러했다. 그곳에서 일어난 고갱과의 다툼은 미술사의 전설 중 하나로 지금도 널리 회자된다. 반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대목에서 고갱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곤 한다. 반 고흐가 귀를 통째로 잘랐다는 괴담(실제로는 귓불만 살짝)도 여전히 떠돌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대체로 부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이따금 좋아질 때도 있었는데, 미술사가 샤마는 “그의 편지 중 일부는 진정성이 없는, 자기위안과 암시를 위해 쓰인 것이다.”고 주장할 정도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이때가 바로 ‘반 고흐의 노란색’이 탄생한 때였다. 1888년 8월의 편지에서 고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돈 문제가 그의 열정을 식히고, 정력을 소진시킨 것이다. 그리고 가끔 동생에게 그런 문제를 가지고 싫은 소리를 하곤 했다. 그럴수록 그는 캔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동생 테오는 그의 그림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했고, 한편으로는 편지를 보내 형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하지만 반 고흐는 지칠 때로 지쳐 가끔 일어나는 발작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았다. 동생에게는 “너무 일에 찌들지 말고 너 자신을 돌봐라. 너희 부부 모두 말이다.”라고 말하면서도 발작이 그의 그림 그리는 능력을 앗아갈까 극심한 두려움에 빠지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편지에 쏟아내는 미술에 대한 열정은, 문외한인 내가 감히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나, 이 시대의 모든 미술가들이 본받아야 하는 순수함이다. (홍경한氏가 <퍼블릭아트>에 쓴 칼럼을 보면 우리나라 화단(畵壇)에서 순수하게 미술활동으로 월수입 10만원도 건지지 못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종 아트페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평론가들은 젊은 화가들이 미술경매시장의 생리에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한 방’을 노리는 경향이 있다며 쓴 소리를 하곤 한다.) 또한 자신에게 호의적인 평론 소식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란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겸손 역시 좋은 귀감이다. 그가 최악의 상황에서 허덕일 때, 그의 작품들은 큰 성공을 거뒀다. 아이러니이다. 전화위복의 시점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1890년 7월,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리고, 29일에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정신적으로 극도의 불안과 큰 편차를 보였던 화가가 어떻게 이런 아르다운 작품들을 만들었느냐고. 그것도 단 몇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 부르거나, 혹은 천재와 광기 사이의 연관을 밝힌 여러 분석학적 도서를 접한 뒤 “아하!”하고 무릎을 친다. 하지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반 고흐의 편지에 담긴 그의 치열한 성찰과 열정이다. 그의 작품들이 천 억 원이 넘는 고가로 팔렸다고 해서 괜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 책은 충격 그 자체일 것이다. 

  책을 덮고, 일기장을 펴본다. 나는 과연 무엇에 미쳐 있는가. 그것에 관한 어떤 성찰의 글을 쓸 수 있는가. 십자로의 한복판에 한참을 서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석양의 하늘 위로 까마귀들이 하나 둘 밀밭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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