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책상앞에 놓인 탁상 달력의 한 날짜가 자꾸 눈에 박힌다. '도대체 무슨 날인데 자꾸 머릿속을 맴돌까?' 한참을 흩어진 기억속을 헤매다가 서글픈 기억 한 조각을 찾고야 말았다. ' 그래 그 녀석의 기일이구나!' 참 무심하게도 살아왔고 세월도 무심하게도 흘러갔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친구들의 곁을 허망하게 떠나간 녀석...아마 그날이 체육대회 다음날이었지...체육대회가 끝나고 나에게 '몸이 좀 아파서 내일 병원 간다' 고 한 말이 마지막 대화였지...병원 입구에서 쓰러져 영영 못일어난 녀석...교과서 글씨와 똑같이 쓸 정도로 글씨 잘쓰던 녀석...등대밑 허술한 집에서 바다를 보면 크게 웃던 녀석...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 (아마 지금도 모르는 것은 매한가지지만 어느 정도 인정할수 있다고 해야겠다) 병원 영안실에서 염을 할 당시 밖으로 삐져나온 녀석의 손을 잡다 얼음장보다 차가운 한기에 움찔 놀라 손을 놓아버린 내가 싫어 밖으로 뛰어나와 ' 아~ 죽는다는게 이렇게 차가운 거구나' 하면서 흘리던 눈물... 마지막으로 학교 교정을 돌때 쓰러지신 어머님 대신 형의 영정을 들고 나온 동생 녀석이 눈물샘을 자극하더니 학교생 전원이 소리 높여 부르는 마지막 그의 이름에 '아~ 죽는다는 것은 이렇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르는 거구나' 하며 오열하다 기절해버린 기억... 

화장한 녀석의 재는 등대밑 바다에 뿌려졌다. 해가 질때까지 울먹이다 돌아선 그 자리에 대학교 시절에는 집에 갈때마다, 녀석의 기일마다 들러서 담배 한개비와 소주 한병을 부어주고 돌아서곤 했다. 누군가 나보다 먼저 다녀간 녀석들의 흔적도 보이곤 했는데...회사에 입사하면서 희미해져간 녀석의 기억이 오늘 갑자기 달력속의 날짜로 나의 가슴에 떠오른다.

올해는 한번 다녀와야겠다. 담배 한개비와 소주 한병 뿌려주고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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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ika 2004-04-2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려서 잃은 친구는 금방 잊혀질줄 알았는데, 나이 먹을수록 생각나는건 저만의 일이 아닌가봐요....저도 5월이 가까워지니 가끔씩 생각나니.....

비로그인 2004-04-20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친구를 잃은 적은 없지만, 가끔 '혹시 친구가 세상을 뜬다면..'이란 생각을 할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더군요. 직접 겪은 잉크냄새님은 심정이 어떠셨을지...기일에 잘 다녀오세요...

잉크냄새 2004-04-21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섭섭했던 모양입니다. 요즘 계속해서 꾸던 악몽도 그런 연관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님들의 글을 보니 자기 자신 혹은 주변 인물들의 죽음에 대한 상상은 보편적인 사고의 하나인가 봅니다.

비로그인 2004-04-2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에겐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뚜렷이 각인되어 있는 죽음의 기억은 없군요..
그래서 섣불리 뭐라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분명 친구가 기뻐할 겁니다. 님의 발걸음으로...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은 해 봤습니다. 여우 님처럼 내가 내일이라도 당장 죽거나 실종되면, 지금처럼 이렇게 살진 않을 텐데..좀더 좀더 인간답게 인간으로 살 텐데...
 

회사 여직원 한명이 시내 병원에 갔다가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병명을 듣고 기절하여 서울로 후송되었다고 한다.

병명은 바로 "백혈병"... 시한부 인생이란 말인가? 자신이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통보받았으니 어찌 기절하지 않았겠는가?

근데...후송된 서울 병원 의사 진단 결과...."장염"이란다...

"백혈병"과 "장염"... 증상의 차이가 어떨런지는 모르지만... 의학적인 면을 떠나서 그런 병명을 함부로 단언할수 있을까? 비록 그 병원이 돌팔이로 악명을 떨치고 있지만 환자의 입장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처사가 아닌가 싶다...

얼마전 회사 동기 녀석이 그 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았다.

그 녀석한테 살며시 물어봐야겠다..." 너 혹시 치질 아니였냐고..." 에라이~ 돌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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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4-20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여직원 하루동안 죽음과 삶,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겠군요. 다행입니다. 비록 웃지 못할 사건이어도 이후의 삶이 더 진지해지고 보람되지 않을까란 생각해 봤습니다.^^

비로그인 2004-04-20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십년감수하셨겠지만, 그래도 장염인줄 알고 있다가 백혈병인거 보단 다행이지 않나 싶어요. ^^ 별 병 아닌줄 알고 있다가, 사실 큰 병인 경우도 있으니, 건강에 늘 신경써야될거 같아요.

ceylontea 2004-04-20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처음에 백혈병이라는 소리 듣고... 그대로... 백혈병으로 믿어버리면 어찌 될까요?
정말... 중병에 걸리면.. 여러 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봐야 할 것 같아요.

잉크냄새 2004-04-2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의 문턱을 다녀온 기분이겠죠...그래도 백혈병 정도의 병명을 신중하지 못하게 말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군요.
저도 작년에 공차다 발목을 삐어서 그 병원에서 진료받았더니 발목인대가 끊어져 수술해야 한다고 했는데, 다른 병원에서 재검결과 그냥 인대가 늘어났다고 하더군요.

Laika 2004-04-21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그 병원이 문제군요.....그 병원 문 안닫고 버티는게 용하네...

*^^*에너 2004-04-2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병원에가면 작은 병도 큰병으로 알고 오겠네요. 무서운 병원...
그 병원 문 닫을 날이 멀지 않았을 듯....

icaru 2004-04-24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웃으면 안되는 거지요??..
병명을 확대하는 그 병원...심장이 강하지 않고서는 안 다니는 게 좋겠네요~~
 


눈 물


        -  이영춘 -




누군가가 그리워 울었던 한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 기억들 그리워 운다

해질녁 저문 저 산 뒤로
발자국도 없이 누가 다녀갔나

뻥 뚫린 가슴 한 켠으로
수많은 발자국 혼자 가고 있다

누군가가 그리워 울었던 한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 기억들 그리워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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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2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처음과 마지막이 특히 찡하네요. 사무치게 슬펐던 그 기억들,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것이 다행인지...슬퍼할 일인지...

비로그인 2004-04-20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가 그리워 울었던 한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 기억들 그리워 운다

.......결국은 무뎌지는 인생이 슬픈 거군요....
시간이 흘러~~~그 기억들이 그리워 울지 않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stella.K 2004-04-20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좋네요, 사진도. 이거 퍼갈께요.

잉크냄새 2004-04-20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은
때론 흩어진 기억 하나에 살며시 울음 우는 것이다...

박가분아저씨 2004-05-12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마다 오월은 다시 오건만
그 기억들...
그리움처럼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43)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중태에 빠졌다.

마리도나의 주치의 알프레도 카에는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리그에서 자신의 전 소속팀의 경기를 지켜보다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19일(이하 한국시간) 밝혔다.

카에는 마라도나가 현재 수이소-아르헨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상태 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지만 현지 TN방송은 마라도나가 약물과다 복용으로 중태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는 이날 라 봄보네라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보카 주 니어스와 누에바 시카고의 경기를 지켜보다 쓰러졌다.

지난 86년 아르헨티나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마라도나는 지난 97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코카인 중독에 빠져 온갖 구설수에 휘말렸고 쿠바에서 약물중독 치료를 받으며 생활해왔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지난 2000년 마라도나를 '축구황제' 펠레와 함께 최고의 축구선수로 선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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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향하여 돌진하며 포효하던 골 세러머니...

신의 손이라 불리우는 핸드링 골...

하프라인부터 골키퍼까지 제껴버리던 환상적인 드리블...

86년 월드컵 당시 한국의 태권도 축구에 끄떡없던 그였는데...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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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FBI 선발 기준중 하나로 5살 이전의 기억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5살 이전의 기억, 나에게도 단 하나의 그런 기억이 있다. 물론 그것이 5살 이전의 상황이었다는 것, 그 어렴풋한 기억이 실제의 상황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훨씬 시간이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어릴적 나의 집은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 아래에 있었다. 그 언덕길에서 비탈길을 내려오면 우리집 옆으로 이어졌다. 어느날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비탈길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에 비탈길로 달려간 나의 눈에 보인 것은 비탈길을 내려오던 하얀 천조각이었고 점점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하여 뒷통수를 맞은것처럼 꼼짝없이 하얀 세상속에 갇힌것 같은 느낌에 빠져들었던 기억이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에게 우연히 그때의 기억을 말하게 되었고 온통 세상을 하얗게 감싸던 그 천이 할머니 관위에 놓여진 하얀 천임을, 바람에 나부끼던 하얀 천의 잔상이 내 머릿속을 온통 하얗게 물들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그 기억이 왜 그리도 강하게 어린 시절의 기억속에 각인되어져있는 것일까? 내 기억에는 전혀 없는 부분이지만, 할머니께서는 다른 손자들보다 나를 특별히 귀여워하셨다고 한다. 마당의 포도며, 치마속에 감추신 주머니에 나에게 줄 몇푼의 동전을 항상 가지고 계셨다고 한다. 아마도 그런 특별함이 기억의 상호연쇄작용으로 할머니에게, 그리고 나에게 작용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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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4-1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FBI에선 5살 이전의 기억 한가지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예전에 한 후배가, 자기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을 때의 그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을 때 얼마나 웃었던지...믿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했었답니다. 전 7살 이전의 기억은 없습니다.
잉크님 혹시 그 할머님께 맏손주가 되진 않았는지요? 보통 어르신들은 맏손주를 끔찍하게 여기시더라구요.

갈대 2004-04-19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적 사진을 보면 그 시절의 일들이 실제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진을 통해 과거를 인식하고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직 확실한 기억은(사진으로 남아있지 않으므로) 동네의 언덕길을 씽씽(퀵보드)를 타고 신나게 내려오다가 나자빠져서 무릎이 완전히 나갔던 사건이 있네요.

비로그인 2004-04-19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어릴적 기억이, 그렇게 각인되어 있었군요. 아무래도 할머니 돌아가신게, 잉크냄새님 마음에 뭔가 큰 영향을 줬나봐요. 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기억이 몇개 있긴 한데, 5살 이전의 기억이라...FBI는 절대 못될거 같네요. ^^

비로그인 2004-04-19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뭐라 해야 되나...
정말 묘한 여운이 남는군요. 하늘에 펄럭이는 흰 천의 자락과...그것이 자아내는 시공간 속에 붙박혀 서 있는 아이....마치 흰 천 자락만 휘날릴 뿐, 그 이외 일체의 것은 다 정지해 버린 듯한......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빛 바랜 기억 속에 흰 천이...........

잉크냄새 2004-04-19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BI 문제는 멀더나 스컬리 요원과 상담후에 알려드리도록 하죠...^^;
진짜 그런 여운이 남아서일까요? 아직도 저에게 흰색이 주는 이미지는 빛 바랜 기억속에 휘날리던 흰 천의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