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속에 잊혀지지 않는 노래가 있다. 무의식 저편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어느 순간 조금씩 새어나오는 그런 노래가 있다. 내게는 김건모의 1집에 실린 [ 잠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 가 그 중의 하나이다. 특별히 김건모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비와 관련된 노래도 금과 은의 [ 빗속을 둘이서 ] 를 더 좋아한다. 아마 그때의 특별한 경험이 없었다면 김건모의 그저 그런 노래정도로 잊혀졌을 것이다.

훈련소를 입소하던 스물세살의 초봄, 나의 손에는 한장의 X-RAY 사진이 들려있었다. 나의 평발 사진. 국민학교시절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접게 만든 평발 사진이었다. 군지정 병원에서 촬영한 것으로 군의관한테 보이고 재검을 받으면 분명 면제일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들고간 것이다.

훈련소대 배정이 있기전 재검받을 사람을 지정했는데 아마도 열명정도였던것 같다.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 몸무게가 적거나 많은 사람, 디스크, 관절염, 시력, 평발....기타 등등. 말그대로 초라한 패잔병처럼 우린 따로 마련된 버스를 타고 군병원으로 갔다. 재검후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은 한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복귀였다. 그때 인솔했던 상병이 " 죽을 각오하고 들어가라 " 고 측은한 표정으로 살벌한 말을 했었다.

복귀하던 버스 창밖으로 바라보이던 어두컴컴한 풍경속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 훈련장이 폐허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김건모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 이렇게 비가 오는 밤이면/ 내 지친 그리움으로 널 만나고/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난 너를 찾아 떠나 갈꺼야 ] 이 구절이 나올 즈음에 버스는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모두들 비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겁자라는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다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개 끌려가듯 한다는 말이 있다. 네발로 버티는 개의 목에 메인 목걸이에 목덜미가 밀려 온통 얼굴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처절한 모습, 그때가 바로 그런 심정이었다.

훈련소 복귀, 몸서리쳐지던 첫날밤의 얼차례는 상상에 맡기고 싶다. 무엇보다 비겁자라는 말을 외치는 것이 가장 비참했다. 하여간 초죽음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을때 밤이 깊을수록 더욱 맑아오는 정신속에 내무반 밖의 빗소리에 맞추어 김건모의 노래가 환청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끊임없이 REPEAT 버튼을 누리고 있는듯 했다. 이 비가 그치고나도 난 누군가를 찾아 떠나지 못하겠지~ 하는 한숨속에 스물세살의 초봄은 저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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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11-05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훈련소로 끌려가는 그 심정, 그것도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우중충한 날에, 기억에 깊게 각인되고도 남겠네요. 저는 장나라의 '고백'을 들으면, 고요한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빛, 그리고 그 공간에 울려퍼지던 팬플룻 소리가 떠오릅니다. 음악과 얽힌 가장 강렬한 기억이죠^^

sweetmagic 2004-11-05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많지만 특히 김건모 노래는 아름다운 이별이요 ...첫사랑이랑 헤어지려 할 때 마술처럼 라디오에서 나온 음악이예요 ....첫 시작 부분 피아노 반주 부터 애를 끓이더니...아...눈물나데요 ...첫 사랑은 학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선생님(당시 대학생) 이었데요~~ 저 고딩때 이야기 지요 ㅎㅎ.... " 눈물이 흘러 이별인 줄 알았어 힘없이 돌아서는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만큼 너도 힘들다는 걸 알아 ~~ 불라불라 " 그랬다니깐요... " 그때 군대 간다고 헤어졌던 첫 사랑 나중에 다시 같은 대학 같은과에서 만났지요 우헤헤 ~~

미네르바 2004-11-05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비오는 밤이에요. 잉크냄새님 잠못 들려나? ^^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일 것 같네요. 스물세 살의 초봄은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시간들이었군요.^^

저에게도 정말 잊혀지지 않는 노래가 있는데...

호밀밭 2004-11-05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픈 기억이 있는 노래네요. 노래는 그런 것 같아요. 마음이 우울할 때 들었던 노래들이 더 잘 기억에 남으니까요. 그런데 남의 추억담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노래들은 그 사람을 떠오르게 하거든요. 앞으로 이 노래를 들으면 잉크냄새님이 떠오를 것 같네요.

파란여우 2004-11-05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에 맞는 음악들이 한 두개정도는 있죠. 금과 은의 <빗속을 둘이서>는 우리 세대 노래인데...아하, 잉크님의정신연령을 깜빡했지 뭐여요^^..어머나, 그리고 호밀밭님도 오랜만이어요.반가워요..호호호^^

잉크냄새 2004-11-0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흐르고 나니 그다지 아픈 기억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단지 지금도 그 노래를 들으면 그때 버스안이 떠오르죠. 갈대님은 역시 팬플룻이 빠지지 않는군요. 매직님은 순정소설같은 느낌이네요. 미네르바님의 노래도 궁금하네요. 호밀밭님 정말 오랫만에 보네요. 반가워요. 여우님 저의 정신연령으로는 개구락지송 정도랍니다.
 


자화상

- 윤동주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윤동주의 서시의 한 구절을 입버릇처럼 달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그 구절을 입에 담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가 나 자신의 자화상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스스로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이가 있겠는지요. 못난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기도 하고 한없이 측은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 또한 나이기에 어느 순간 밀물처럼 그리움이 몰려들기도 합니다. 먼 훗날 어떤 모습으로 나의 얼굴이 우물에 비칠지라도 그 모습 결국 사랑하고 보듬어야하는 것도 내 자신일 겁니다.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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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1-0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자화상은 그저 평범하기를 바랄뿐입니다...

stella.K 2004-11-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되고 잉크님 페이퍼 보니까 좋으네요.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직 미완성이라...그렇네요. 늙어 죽을 때쯤 완성되려나? 주름 밖에 더 남으려나...알라딘도 미완이겠죠?^^

진주 2004-11-0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미완성 정도가 심각해요 ㅠㅠ 제 서재는요, 글쓰기가 아예 안 된답니다. 리뷰나 페이퍼는 다 안 되구요. 방명록에만 글이 올라가요. 에구..답답해요.....ㅜㅜ

Laika 2004-11-0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이 저랑 같은 상태군요...저도 글쓰기가 안되요...남들이 다 페이퍼 올리길래...저만 안되는줄 알았네요...ㅠ.ㅠ

미네르바 2004-11-03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윤동주님의 자화상도 좋고, 별헤는 밤도 좋고, 서시도 좋고... 다 외웠던 시들이지요. 우리의 삶이란,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지만 결국 미완의 모습으로 소멸되어가겠지요. 그 미완의 모습을 사랑해야 하는 것 역시 살아있는 자의 몫이구요.

잉크냄새 2004-11-04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하나 봅니다. [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써가야해 /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해 ] 우리 모두 미완성의 모습이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아름답게 살아가야죠.^^
 
비주, 숨겨진 우리 술을 찾아서
허시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전통술 품평가인 작가는 우리땅의 사라져가는 우리술을 찾아 전통술에 얽힌 사연과 제조법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500여가지가 넘던 전통술이 일제하의 세법에 의해 밀주라는 단속하에 현재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술은 50여가지 정도이다. 1995년 이후 개인이 술을 담그는 것이 합법화되었으나 술의 증여나 거래는 불법이라는 어설픈 법조항에 막히어 아직도 밀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통술연구회나 동호회에 의하여 조금씩 세간에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전통주의 특징은 가양주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과 김치나 된장과 같은 우리 고유의 음식처럼 발효주라는 점이다. 가양주란 한 집안에서 제조법이 대대로 내려오는 술로서 오랜 세월을 통해 한 집안의 부족한 유전학적인 요소를 보충하기에 적합하도록 변화되어오고 있다. 고승들이 고산병을 치유하기 위해 술을 빚어 곡차를 마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소주와 같은 희석식도 아니고 증류식도 아닌 우리쌀과 누룩의 배합에 의한 발효식이다. 된장, 김치와 같은 발효식이다. 그래서 작가는 전통주를 우리 고유의 음식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책에 소개된 술 몇가지를 말하자면 백화주는 사계절 동안 산과 들에 피는 백가지의 꽃잎을 따서 말려 빚는 술로서 그 향기가 술중의 으뜸이요 절창이라 할수 있다. 잎새곡주는 과거시험 보기 전에 마시던 술로서 술기운에 오히려 머리가 맑아진다고 하니 백일주로 잎새곡주를 장려하는 교육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죽력고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부상당해 압송되는 도중에 찾은 술로 유명한데 타박상에 특효가 있는 약술로서 최남선이 조선의 3대 술로 꼽은 술이다. 무술주는 퇴계의 도산서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보양주이나 개고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마시고 싶지 않다.

우리의 것을 찾는 것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 전통 음식점에서 된장을 직접 담가 된장국을 끓이듯이 술 또한 빚어서 낼수 있어야 한다. 전통술이 사라지는것, 그것은 분명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이 사라지는 것이다. 다짐컨대 술 취한 소리가 아니다. 

사족) 퇴계 이황이 가까이 두고본 < 활인심방> 에 나오는 구절이다. [ 술은 본래 피를 고르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석잔 이상 마시면 오장을 뒤집고 성격을 거칠게 만들어 미친 사람처럼 날뛰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  전통주를 사랑하되 다만 이것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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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0-27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봉준이 압송 당하는 도중에도 약술로써 찾은 죽력고라는 술이 있다는 것이 참...혁명가를 대하는 그 당시 담당자의 자세가 인본이 갖추어진 사람 같습니다. 저는 술을 잘 못하지만 맛이 정말 궁금하군요...

잉크냄새 2004-10-2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에 나온 죽력고 관련 구절중에 < 어느 누구도 녹두장군을 위로할수 없던 순간에, 오직 죽력고만이 녹두장군을 위로한 것이다 > 라고 하더군요. 약술의 의미를 떠나서 마지막 가는 길동무로 죽력고를 부른 녹두장군의 마음이 아련하게 전해지더군요.

파란여우 2004-11-10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축하 드립니다. 다 제가 추천한거라는 사실 잊지 마셔요!!^^

아영엄마 2004-11-11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리뷰 당선 축하합니다.(__)

잉크냄새 2004-11-11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감사합니다.
 

모란, 등꽃, 절굿대꽃, 패랭이꽃, 때죽나무꽃, 도장나무꽃, 산딸나무꽃, 백굴채, 자운영, 흰철쭉, 댑싸리꽃, 수국, 인삼, 층층나무꽃, 갓꽃, 후박꽃, 아카시꽃, 민들레, 당귀, 철쭉, 병꽃나무꽃, 고들빼기, 찔레꽃, 장미, 토끼풀꽃, 작약, 꽃잔듸, 이 꽃잔디는 꽃이 작아서 말려놓고 한번 기침하면 다 날아가버릴 정도니, 아주 많이 아주 오래도록 따야 했다. 수영꽃, 동백꽃, 박태기꽃, 자목련, 벽오동꽃, 사상자꽃, 백일홍, 연꽃, 석류꽃, 쥐똥나무꽃, 돌미나리꽃, 붓꽃, 개쑥꽃, 사계화, 이탈리안수수, 개망초, 냉이꽃, 금은화, 따꽃, 접시꽃, 감꽃, 엉겅퀴, 줄풀꽃, 구슬꽃, 단풍나무꽃, 싸랑부리꽃, 구절초, 싸리꽃, 초록꽃, 밤꽃, 돈나물꽃, 쑥갓꽃, 감국, 해당화, 해당화를 따기 위해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돌아다니며 울타리 너머로 꽃도둑질을 해야 했다. 하루는 그의 거동을 수상히 여긴 마을 사람들에게 에워싸인 적도 있다. 명아주꽃, 팽이채꽃, 담배꽃, 질경이, 널러초, 행운나무꽃, 코스모스, 고삼, 머루, 삐삐, 해바라기, 상륙, 당근꽃, 무궁화, 홍화, 도라지, 노나무, 마타리, 능소화, 삼백초, 각시풀꽃, 엄나무, 남천, 서광, 목백일홍, 사철나무꽃, 옥수수꽃, 봉숭아꽃, 맥문동, 부들, 족두리풀, 키다리꽃, 개나리, 원추리, 회화나무꽃, 두릅나무꽃, 참나리, 제피나무, 달맞이꽃, 달맞이꽃은 여름이면 쉽게 볼 수 있고 채취하기도 어렵지 않은데, 문제는 말려놓으면 깨알처럼 작어져버린다는 것이다.

< 비주, 숨겨진 우리술을 찾아서 > p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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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10-25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화주에 들어가는 꽃들이다. 이 정도면 술이 아니라 향기에 취하지 않겠는가
송강 정철의 < 장진주사 > 한 구절이 저절로 나올만도 하다
[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꺽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

stella.K 2004-10-26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으셨군요. 전 술은 잘 못하지만, 우리나라 술에 대해선 알고 싶더라구요. 백화주라. 한번 마셔보고 싶네요.^^

파란여우 2004-10-26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에 나온 백화주는 무횹니다. 왜? '여우꼬리털'꽃이 없으니까요...우헤헤..^^

잉크냄새 2004-10-26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쩐지 한구석이 허전한 맛이구나! 했더니 여우꼬리털꽃이 빠졌군요.
[구구 빼다구주]로 바꿔야할것 같네요.^^

미네르바 2004-11-0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쁜 일 어느 정도 끝내고 알라딘에 와 보니 심히 불안하네요. 댓글 올리는 것조차 힘들고요. 님도 한동안 글을 안(못)올리셨군요.........................................................(개편된 시스템은 줄을 바꾸기도 힘들고..) 백가지 꽃으로 발효된 백화주라고 해서, 정말 백가지인지 세어보았습니다(무식하게도..) 백가지는 맞는데, 제가 아는 꽃이나 나무들은 66가지밖에 안 되네요. 더 열심히 야생화 공부를 해야겠어요^^ 그런데, 저렇게 예쁜 꽃으로 어떻게 술을 만들까요? 술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향기에 취하겠어요. 그리고 거기에 '여우꼬리털'꽃이 추가 된다면 기가 막힌 술이 되겠지요?(생각만 해도 꼴깍^^*)

잉크냄새 2004-11-0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가지꽃중에 육십여섯가지라....역시 대단합니다. 알라딘 야생화협회 수석부위원장다운 면모입니다. 술에 취하고 향기에 취하고 님들의 글에 취하고...캬~ 좋다.

진주 2004-11-14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에...저는 74개는 알겠는데...(수목원 옆에 살았던 보람이..)제게는 무슨 감투를 주실렵니까? ㅎㅎ

잉크냄새 2004-11-1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더 대단하시네요. 알라딘 야생화협회 수석위원장님이 파란여우님이고 부위원장님이 미네르바님이었는데 아무래도 부위원장자리를 두개로 해야할까 봅니다. 참고로 전 채집부장입니다.^^
 

단풍이 어느덧 사무실 창밖의 가로수들까지 물들이고 있다. 오메~ 단풍들것네! 하고 감탄사 한번 제대로 뱉어보기 전에 가을은 창너머에서 살랑살랑 손짓하고 있다. 가을 햇살, 가을 바람, 가을 향기...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가는 것이 없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고 슬며시 눈짓하며 지나간다.

가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곤 했다. 정신없이 바쁘던 오후, 창턱을 넘어온 햇살에 이끌려 오후휴가를 내고 무작정 터미널로 달려가 알지 못하는 지명의 버스표를 끊었다. 몇명 타지도 않는 버스 뒷편 의자에 깊숙히 몸을 묻고 그냥 멍한 눈을 들어 밖을 바라보며 몇시간을 달려 아무도 아는이 없는 시골 정류장에 내리곤 했다.  어차피 모든 떠남이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 것이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괜한 외로움에 낙엽만 툭툭 걷어차면 걸었다. 부메랑처럼 일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훤히 알면서도 괜한 호기에 그렇게 떠나곤 했다.

반나절의 짧은 탈출, 그것은 떠남의 의미보다는 단순한 일상의 변화였다. 사무실의 타탁타닥 기계음처럼 정연한 자판의 소리 대신 톡톡 낙엽지는 소리를 듣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익숙한 얼굴대신 차라리 깊게 고랑이 패인 시골아낙의 얼굴을 느끼고자 했다. 백창우 시인은 < 단추 >에서

나를
옭아매는 것이
내 몸의 단추만큼은 될거다
희망을 박탈당한
불쌍한 사내

라고 했던가. 톱니바퀴처럼 자신의 자리에 끼워져야만 매무새가 나는 단추는 우리의 일상이었다. 단 하나의 일탈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단추의 운명. 오늘은 그 단추너머의 바다를 보았다. 내 몸의 단추 너머에서 출렁이는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았다.  

이번주나 다음주, 아마 이 가을의 마지막이란 느낌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어느날 오후 휴가를 내리라. 그리고 아무도 없는, 나도 모르는 곳으로 한나절의 탈출을 감행하리라. 그리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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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0-25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단추는 잘 잠가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stella.K 2004-10-25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갔다 오시면 사진 한장 부탁해요. 이왕이면 잉크님이 들어간 사진으루다. 집요하죠? >.<;;

Laika 2004-10-2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지 못하는 지명으로의 반나절 짧은 탈출"...오호~ 멋진데요...
반나절이든, 하루든, 한달이든 돌아올 일상있다는 건 여유를 주는것과 동시에 가벼운 긴장감도 주는것 같습니다.
저도 비릿한 바다내음이 나는곳으로 잠시 탈출을 상상해봅니다. ^^

물만두 2004-10-25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추 잠그고 다녀 오세요. 감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일탈 좋죠^^

진주 2004-10-25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남쪽-경상도쪽으로 발걸음을 한 번 옮겨 보시지요^^
그리고,
알지 못하는 지명의 차표-아구아구 저도 오늘 페이퍼 쓸거리 하나 생겼습니다.^^;;

미네르바 2004-10-25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절의 일상탈출...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니 부럽네요.
저도 요즘은 아이들 떠나 보내고, 빈 교실에 앉아서 할일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넋놓고 교실 창밖을 볼 때가 참 많아요. 훌쩍 떠나고 싶건만 그게 그리 쉬운가요?
저는 할 수 있다면 기차여행을 하고 싶어요. 이름도 낯선 곳의 기차표를 끊고 낯선 간이역에 앉아서 코스모스 한들한들 춤추는 것을 감상한다거나 가을햇살을 듬뿍 쐬고오면 참 좋겠다 생각하죠. 그러다 정신 차리고 다시 일을 한답니다. 가을이 가는게 아쉽다가도 빨리 가을이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잉크냄새 2004-10-2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상도는 한나절로 다녀오기에 너무 멀답니다.
알지 못하는 지명의 차표, 한나절의 일상 탈출...왠지 나그네의 객창감이 물씬 느껴지네요.
아마 가을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2007-12-11 17: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11 19: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