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어느덧 사무실 창밖의 가로수들까지 물들이고 있다. 오메~ 단풍들것네! 하고 감탄사 한번 제대로 뱉어보기 전에 가을은 창너머에서 살랑살랑 손짓하고 있다. 가을 햇살, 가을 바람, 가을 향기...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가는 것이 없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고 슬며시 눈짓하며 지나간다.
가끔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꾸곤 했다. 정신없이 바쁘던 오후, 창턱을 넘어온 햇살에 이끌려 오후휴가를 내고 무작정 터미널로 달려가 알지 못하는 지명의 버스표를 끊었다. 몇명 타지도 않는 버스 뒷편 의자에 깊숙히 몸을 묻고 그냥 멍한 눈을 들어 밖을 바라보며 몇시간을 달려 아무도 아는이 없는 시골 정류장에 내리곤 했다. 어차피 모든 떠남이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 것이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괜한 외로움에 낙엽만 툭툭 걷어차면 걸었다. 부메랑처럼 일상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훤히 알면서도 괜한 호기에 그렇게 떠나곤 했다.
반나절의 짧은 탈출, 그것은 떠남의 의미보다는 단순한 일상의 변화였다. 사무실의 타탁타닥 기계음처럼 정연한 자판의 소리 대신 톡톡 낙엽지는 소리를 듣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익숙한 얼굴대신 차라리 깊게 고랑이 패인 시골아낙의 얼굴을 느끼고자 했다. 백창우 시인은 < 단추 >에서
나를
옭아매는 것이
내 몸의 단추만큼은 될거다
희망을 박탈당한
불쌍한 사내
라고 했던가. 톱니바퀴처럼 자신의 자리에 끼워져야만 매무새가 나는 단추는 우리의 일상이었다. 단 하나의 일탈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단추의 운명. 오늘은 그 단추너머의 바다를 보았다. 내 몸의 단추 너머에서 출렁이는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았다.
이번주나 다음주, 아마 이 가을의 마지막이란 느낌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어느날 오후 휴가를 내리라. 그리고 아무도 없는, 나도 모르는 곳으로 한나절의 탈출을 감행하리라. 그리고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