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윤동주 -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읍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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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윤동주의 서시의 한 구절을 입버릇처럼 달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날 부터인가 그 구절을 입에 담는 것이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지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가 나 자신의 자화상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스스로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이가 있겠는지요. 못난 자신이 한없이 미워지기도 하고 한없이 측은해지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 또한 나이기에 어느 순간 밀물처럼 그리움이 몰려들기도 합니다. 먼 훗날 어떤 모습으로 나의 얼굴이 우물에 비칠지라도 그 모습 결국 사랑하고 보듬어야하는 것도 내 자신일 겁니다.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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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1-03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자화상은 그저 평범하기를 바랄뿐입니다...

stella.K 2004-11-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되고 잉크님 페이퍼 보니까 좋으네요.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직 미완성이라...그렇네요. 늙어 죽을 때쯤 완성되려나? 주름 밖에 더 남으려나...알라딘도 미완이겠죠?^^

진주 2004-11-03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의 미완성 정도가 심각해요 ㅠㅠ 제 서재는요, 글쓰기가 아예 안 된답니다. 리뷰나 페이퍼는 다 안 되구요. 방명록에만 글이 올라가요. 에구..답답해요.....ㅜㅜ

Laika 2004-11-0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이 저랑 같은 상태군요...저도 글쓰기가 안되요...남들이 다 페이퍼 올리길래...저만 안되는줄 알았네요...ㅠ.ㅠ

미네르바 2004-11-03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윤동주님의 자화상도 좋고, 별헤는 밤도 좋고, 서시도 좋고... 다 외웠던 시들이지요. 우리의 삶이란,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지만 결국 미완의 모습으로 소멸되어가겠지요. 그 미완의 모습을 사랑해야 하는 것 역시 살아있는 자의 몫이구요.

잉크냄새 2004-11-04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인생은 미완성이라고 하나 봅니다. [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써가야해 / 인생은 미완성 그리다 마는 그림 그래도 우리는 아름답게 그려야해 ] 우리 모두 미완성의 모습이지만 세상 어딘가에서 아름답게 살아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