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속에 잊혀지지 않는 노래가 있다. 무의식 저편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어느 순간 조금씩 새어나오는 그런 노래가 있다. 내게는 김건모의 1집에 실린 [ 잠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 가 그 중의 하나이다. 특별히 김건모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비와 관련된 노래도 금과 은의 [ 빗속을 둘이서 ] 를 더 좋아한다. 아마 그때의 특별한 경험이 없었다면 김건모의 그저 그런 노래정도로 잊혀졌을 것이다.
훈련소를 입소하던 스물세살의 초봄, 나의 손에는 한장의 X-RAY 사진이 들려있었다. 나의 평발 사진. 국민학교시절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접게 만든 평발 사진이었다. 군지정 병원에서 촬영한 것으로 군의관한테 보이고 재검을 받으면 분명 면제일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들고간 것이다.
훈련소대 배정이 있기전 재검받을 사람을 지정했는데 아마도 열명정도였던것 같다.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 몸무게가 적거나 많은 사람, 디스크, 관절염, 시력, 평발....기타 등등. 말그대로 초라한 패잔병처럼 우린 따로 마련된 버스를 타고 군병원으로 갔다. 재검후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은 한명을 제외하고는 전원 복귀였다. 그때 인솔했던 상병이 " 죽을 각오하고 들어가라 " 고 측은한 표정으로 살벌한 말을 했었다.
복귀하던 버스 창밖으로 바라보이던 어두컴컴한 풍경속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멀리 훈련장이 폐허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라디오에서 김건모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 이렇게 비가 오는 밤이면/ 내 지친 그리움으로 널 만나고/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난 너를 찾아 떠나 갈꺼야 ] 이 구절이 나올 즈음에 버스는 쥐죽은듯이 고요했다. 모두들 비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비겁자라는 딱지를 이마에 붙이고 다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개 끌려가듯 한다는 말이 있다. 네발로 버티는 개의 목에 메인 목걸이에 목덜미가 밀려 온통 얼굴을 일그러뜨릴 정도로 처절한 모습, 그때가 바로 그런 심정이었다.
훈련소 복귀, 몸서리쳐지던 첫날밤의 얼차례는 상상에 맡기고 싶다. 무엇보다 비겁자라는 말을 외치는 것이 가장 비참했다. 하여간 초죽음이 되어 잠자리에 들었을때 밤이 깊을수록 더욱 맑아오는 정신속에 내무반 밖의 빗소리에 맞추어 김건모의 노래가 환청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누군가 끊임없이 REPEAT 버튼을 누리고 있는듯 했다. 이 비가 그치고나도 난 누군가를 찾아 떠나지 못하겠지~ 하는 한숨속에 스물세살의 초봄은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