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풍경

 

 

 

 

세잔느는 " 풍경이 내 가운데서 성찰하고, 나는 그 의식이 된다 "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세잔느의 눈이 생빅투와르 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풍경 생빅투와르 산이 화가 세잔느의 눈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바로 보여진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수없는 풍경에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그 무한한 풍경 가운데의 어느 한 순간의 풍경이 느닷없이 어느 순간의 나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언젠가 어느 명승지에서 오히려 풍경을 만나지 못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일반적인 아름다운 경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경치들은 나의 시각을 자극했지만 그것들은 그냥 흘러가버렸다. 내가 이름 없는 한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은, 내가 풍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어느 순간의 나를 주박하고 마는 것이다. 

- 허만하 <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 p20~21 -

2.상처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내 초로(初老)의 가을에, 상처라는 말은 남세스럽다.그것을 모르지 않거니와, 내 영세한 필경(筆耕)은 그 남세스러움을 무릅쓰고 있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언어는 마치 쑥과 마늘의 동굴 속에 들어앉은 짐승의 울음처럼 아득히 우원하여 세계의 계면(界面)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이 세계가 그 우원한 언어의 외곽 너머로 펼쳐져 있는 모습이 내 생애의 불우(不遇)의 풍경이다.

- 김훈 < 풍경과 상처 >  p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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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2-25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는 하고 싶은데... 뭐라 입을 뗄지 몰라 하는 저를 보라지요.
님은 풍경에...대해..그렇군요..
저는 음악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지요.. 아주 가끔 있는 일인데요...비 오는 날 사람이 별로 없는 한산한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원래는 이 속(음악)에서 살았는데.. 똑 떨어져... 이 부박한 세상으로 튀어나온 게 아닌가...하는 생각 하지요.... 에고...써놓고보니,,, 에그머니 이게 뭔소리야 싶어 부끄럽네요 ^^;;

잉크냄새 2005-02-2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옮기기는 했지만 읽을때 끄덕끄덕 하면서도 온전히 저의 느낌이 되어 살아나지는 않더라고요. 어떤 극적인 전환점이 있던지, 더 오래 나이들어 보아야 슬며시 그런 느낌이 다가올라나 싶네요. 이상하죠. 비내리는 버스차창밖의 풍경은 남녀노소를 떠나서 그런 묘한 기분으로 다가오거든요. 이십대 초반에는 비가 내리면 가끔 버스를 타고 목적지없이 흘러가곤 했죠.^^

미네르바 2005-02-25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두 책을 참 좋아하지만,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지금보다도 더 나이를 먹고, 더 삶의 경험이 풍부해지면 제대로 이해할까요? 그래도 가까이 두고 가끔씩 펴 보는 책들이네요.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분명 상처를 경유해서 바라본 풍경은 다르게 해석되겠지요. 그럼, 상처없는 풍경은 심심할려나??? ^^

잉크냄새 2005-02-2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풍경과 상처>는 지금 읽고 있는데 글이 어렵네요. 악전고투하며 읽고 있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고 있어요.

파란여우 2005-03-0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글을 읽는 자체만으로도 상처죠..하지만 글은 잘 쓰잖아요
잉크님! 책을 읽으시면서 부디 상처 받지 마시길^^

잉크냄새 2005-03-0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나 주인공에게 완전히 몰입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고로 김훈의 글을 읽는다고 상처받거나 할일은 없을겁니다. 걱정마시길...^^
 



1.치마 저고리 입고 달에게 무엇을 빌었는가

여장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행하여진 풍습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것으로 보아 우리 고향에만 내려온 풍습일지도 모른다. 년령대를 보면 보통 국민학교를 졸업하기전까지의 아이들로 구성되었다. 보름날 달이 뜨기 전, 어머니의 한복을 몰래 꺼내들고 바닷가로 집결했다.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달이 뜨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수평선에서 떠오른 보름달이 바다위에서 출렁이기 시작하면 급하게 치마를 입고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 수건을 두른후 일렬로 늘어서서 한해의 소원을 빌며 절을 하곤 했다. 족히 십여명이 넘는 숫자였다. 그때 빌었던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종교의식처럼 경건한 무엇인가가 가슴속에 살며시 자리잡았던 느낌은 아직도 남아있다.

2. 휘엄청 밝은 달빛 아래 각설이 타령은 울려퍼지고

여장을 하고 치루어진 의식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세숫대야를 들고 모였다. 동네를 돌며 밥을 얻어먹는 의식이 남은 것이다. 세숫대야의 종류는 보통 두가지로 구분되었다. 깨끗한 세숫대야는 밥과 나물이 담기는 것이요, 지저분한 세숫대야는 각설이 타령의 장단을 맞추는 꽹과리와 징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동네 집들을 모두 돌며 구성진 각설이 타령 한방이면 보통 밥과 나물이 나오곤 했다. 가끔 물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각설이의 집요함에 당해낼 재간은 없었던지 결국은 굴복하고 말았다. 밥과 나물이 한 세숫대야 그득해질때까지 돌아다닌후 휘엉청 밝은 달빛 아래서 즉석 비빔밥을 만들어 먹곤 했다. 온갖 종류의 밥과 나물, 그리고 각 집마다의 고유의 특유한 음식맛을 한방에 해결하곤 했다.

3. 달에게 던진 것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표준말로는 쥐불놀이인 놀이를 고향에서는 '망우리'라고 불렀다. 보통 남양분유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내고 철사로 손잡이를 만들어 윙윙 소리나도록 돌리곤 했다.  고향에는 하천이 있다. 그 하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 마을은 언덕배기 고수라든지 해변가 고수를 명목으로 전쟁놀이가 한창이었다. 그러다 보름이 다가오면 정전협정이라도 맺은듯이 조용히 망우리 놀이를 준비했다. 여장과 세숫대야 의식이 끝난후 하천 주변 언덕으로 모였다. 어느 한사람이 불을 붙이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하천 양쪽 언덕에서 불길이 솟는다. 시리도록 밝은 보름달이 토해낸 선혈들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동안 준비한 나뭇가지가 다 타고 보름달이 하천 중간 정도에 이르면 어디선가 하나의 망우리가 달을 향해 치솟는다. 그리고 양쪽 언덕에서 돌아가던 망우리들이 일제히 달을 향해 마지막 힘을 토해낸후 달빛 아래 하천 위로 조용히 사그러들었다. 마지막으로 달을 한번 흘낏 쳐다보고 돌아서던 가슴속이 알수없는 희열로 충만하곤 했다.

망우리를 마지막으로 돌려본것은 20대 초반이다. 당시 꽤나 힘든 시기를 보낼적이었다. 고향의 언덕길을 거닐던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몇 안되는 꼬마들이 돌리던 망우리였다. 어둠이 어스름 내리기 시작한 강가에서 돌아가는 불의 향연을 바라보면서 주요한의 < 불놀이 >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아마 그처럼 < 불꽃의 고통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 > 는 열망이었는지도 모른다. 망우리 하나에 1000원을 흥정하는 꼬마에게 받은 망우리를 돌리며 " 안녕 " 이라고 소리치며 달을 향해 던져올렸다. 나의 고뇌와 아픔이 담겨 던져올려진 마지막 망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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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2-2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장을 한다는 말과 세숫대야에 밥을 얻어 먹는다는 건 정말이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예요! 신기하군요^^(물론 세수대야는 깨끗이 씻었겠죠?)
쥐불놀이는 저도 방학 때 시골가서 해 본 것 같아요. 빙빙 놀리면 불꽃이 발갛게 살아나던......불놀이 해도 어른들이 말리지 않고 밤새 즐겁게 놀았던 기억나요^^

호밀밭 2005-02-23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장은 저도 처음 들어보네요. 대보름이 예전에는 놀이 중심이었을 텐데 지금은 음식 중심으로 남은 듯해요. 저한테는 그래요. 나물 먹는 날로만 기억되거든요. 대보름에 대한 추억이 있는 님이 부럽네요. 마지막 망우리에 대한 부분 마음에 남아요. 오늘 달을 한 번 보아야겠어요. 멋진 글 잘 읽었어요.

겨울 2005-02-23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산나무에 새끼줄을 걸고, 의식처럼 집집마다 가장의 이름을 부르며 소지를 태우고, 아이들은 길게 줄을 서서 백설기를 얻어먹고, 청년들은 꽹가리와 장구, 징을 치며 동네를 한바뀌 돌고, 쥐불놀이에도 지친 이슥한 밤에는 바가지와 양동이를 동원하여 밥과 나물을 얻어다가 정체불명의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던 아스라한 기억..... 그립네요.

icaru 2005-02-23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은 어데서 구하셨대요...? 글과 그림이 잘 어울립니다~ 님은 참 유년 시절 여러 가지 소중한 추억들을 간직하고 계시네요...
저는 쥐불놀이는 직접 해보지 않고, 구경만 했었거든요...실제로 해보기엔...헉..좀 무서워보이기도 하고 그랬어요.
작년 이맘 때 쯤에 님께 귀밝이술 드셨냐고 물었던 게 생각나네요...우아..벌써 일년이 지난 거 있죠~

파란여우 2005-02-23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서범의 '불놀이야'를 떠올리는 저와 주요한의 불놀이야를 떠올리는 님은 확실히 정서의 차이가 나는군요.마지막 망우리에 오늘은 무엇을 올려 보내셨을까나요?^^

내가없는 이 안 2005-02-24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보름이 언제지, 하면서 지나갔군요. 잉크냄새님, 유년시절에 관한 소설 쓰시면 멋진 거 하나 나올 듯해요. 전 아스팔트 위에서만 살아와서 이런 이야기 나오면 무조건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꼬마 셈이 빠른걸요. 하나에 천 원을 흥정하다니, 예전의 님이라면 그냥 돌리세요, 그러셨을 듯한데. ^^

잉크냄새 2005-02-24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 / 역시 여장은 저의 동네에서 잠시동안 행해졌던 행위였나 보군요. 대보름날은 밤새워 놀다 들어가곤 했죠. 그때는 전기가 별로 보급되지 않아서 보름달빛이 정말 대낮같다는 생각을 했었죠.
호밀밭님 / 보름에 먹거리를 빼면 좀 썰렁하죠. 오곡밥, 나물...그저 두가지 만으로도 풍족한 하루였죠.
우울과 몽상님 / 님은 분명 그런 추억을 간직하신 분일거라는 생각을 진작부터 해오고 있었죠. 정체불명의 비빔밥...그립네요.
복순이언니님 / 저도 그 코멘트가 기억나네요. 벌써 일년이라니. 세월 빠르네요. 이 페이퍼의 세번째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두번 울궈먹다 딱 걸렸네요. 아~ 기억력 좋아요.
여우님 / 때가 때인만큼 주요한의 불놀이가 떠올랐죠. 보통때라면 어리버리 홍서범쪽으로 기울었을겁니다.
이안님 / 글 솜씨가 있다면 좀더 눈에 잡힐듯이 쓸텐데 말그대로 주절주절 넋두리랍니다. 제가 소재 제공하고 이안님이 쓰시는 것을 어떨런지요.^^아, 그리고 그 꼬마, 그당시는 얼마나 얄밉던지...ㅎ^^

미네르바 2005-02-24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뭔 정신으로 사나 싶어요. 대보름도 이렇게 지나가 버렸네요. 오곡밥도 못 먹고, 나물도 못 먹고... 제가 사는 동네도 지금이야 신도시가 되었지만 제 어린 시절은 시골이어서 쥐불놀이도 하고, 밤에는 커다란 양푼에다(결코 세숫대야가 아님-아무리 깨끗한 것이라도^^) 오곡밥과 나물을 얻어와서 비벼서 먹었죠. 아~ 그 맛이란... 동네 꼬마들 모두 모여 밤새고 먹으며 놀며 했는데... 너무 아득한 시간이에요. 요즘도 시골에서 그런 것 하는지 모르겠어요. 요즘은 아이들이 이런 맛도 모르고 지내니, 아이들이 불쌍해요^^ 기껏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사니...

잉크냄새 2005-02-25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 저도 양푼이었나? 아리송하네요. 하여간 양푼은 크기가 작아서 왠지 환영받지 못했을것 같아요. 머스마 열명 정도면 세숫대야 정도는 되야죠. 지금은 이런 놀이들이 모두 사라졌죠. 어차피 시대따라 변하는 거지만 나중에 추억으로 말할수 있는 꺼리는 옛날이 훨씬 풍요로왔던것 같아요.

Laika 2005-02-2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분하게 어린시절의 활기찬 추억을 잘 표현하셔서 읽는 저도 얼굴에 희미한 미소와 함께 옛추억이 떠올라요.. 참, 더위는 파셨나요? 전 그날 새벽에 큰언니에게 전화로 모닝콜해주면서 팔았다죠...^^

잉크냄새 2005-02-27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카님 / 제 더위 사세요. 시간이 좀 지났어도 사실꺼죠?^^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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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전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를 트루니에가 완전히 뒤집어서 새롭게 썼다는 소개글을 읽으면서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와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가 유럽으로 대표되던 서구문명이 동양문명과 제3세계의 문명을 선도한다는 지극히 서구적이고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쓰여졌다는 글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쟁반위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흑인 소년들을 서양인들이 포크를 들고 입맛을 다시는 삽화가 함께 삽입된 글이었다. 그런 선입견으로 이 책은 로빈슨과 방드르디의 입장을 역전시킴으로써 그러한 사고자체를 반전시키려는 글, 반대를 위한 반론의 글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반론을 위한 글이 아니다. 황폐해진 문명 자체에 던지는 메세지이며 인간 본연의 회귀를 위한 메세지이다. 철학적 소양이 심오한 트루니에가 로빈슨의 사고의 변화를 통하여 문명과 인간과 자연에 대한 철학적 메세지를 소설 곳곳에 심어놓고 있다. 특히 로빈슨의 독백처럼 서술된 항해일지는 인간존재와 관계에 대한 혼돈과 변화를 들려주는 짧은 철학적 글이라고도 할수 있다.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홀로 남겨진 로빈슨은 탈출호의 실패후에 극심하게 좌절하나 무인도에 <스페란차(희망)> 란 이름을 붙이며 헌장과 형법을 만들고 스스로 섬의 총독이 되어 서구 문명, 과거로의 회귀를 꿈꾼다. 타자 부재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던 그가 동굴속의 구멍으로 들어감으로써 자신속의 또 다른 섬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더 깊고 본질적인 관계의 인식이 단순히 타자와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닌 자아의 인식속에도 존재함을 느끼게 된다.

방드르디( 금요일 )의 등장은 새로운 사고의 전환점이다. 방드르디의 실수로 동굴이 폭발하고 다시 무인도의 초기 상태로 돌아간 섬에서 로빈슨은 방드르디의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무질서에 극심한 혼돈을 겪으면서도 차츰 그에게 동화된다. 오히려 잘 짜여진 문명보다는 자유분방한 자연속에서 참다운 질서의 의미를 깨닫는다 . 28년 2개월후 나타난 구조선 화이트버드호에서 인간의 탐욕과 무질서에 혐오를 느낀 로빈슨은 남고 방드르디는 떠난다. 그의 옆에는 또 다른 불완전한 인간, 죄디(목요일)가 남는다..

로빈슨이 겪는 사고의 전환시점마다 등장하는 것이 물시계가 멈추는 것이다. 시간은 방향성을 가진다. 시계 바늘은 12시를 기점으로 미래를 향하여 움직이나 결국 다시 과거로부터 등장한다고 할수 있다. 과거로의 회귀와 미래로의 지향, 두가지 성향을 모두 지니고 있다. 로빈슨은 과거회귀도 미래지향도 아닌 정지된 현재속에서 사고의 전환을 맞는다. 적어도 현재의 나의 모습에 대한 폭넓은 통찰속에서 새로운 시각이 눈뜬다고 할수도 있겠다. 나도 시계를 멈추어볼까? 결국 지각만이 존재할 것이기에 잠시 보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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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5-02-1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드르디, 죄디에 빠져 있다가...지각이 나오는 순간, 여긴 무인도가 절대로 될 수 없는 세상이란 걸...알아버렸어요.

icaru 2005-02-15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셀 투르니에를 마왕을 읽겠다고 덤볐던 게 딱 1년전이에요...
제겐 좀 낯설고도 어렵더라구요...좌절하고 싹 포기했습죠...
이것도 미셸 투르니에네요...헐...

호밀밭 2005-02-15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셸 투르니에의 작품이군요. 저도 이 작가의 작품을 온전하게 접하지 못했네요. 다 게으른 탓이지만요. 님의 리뷰 중 <오히려 잘 짜여진 문명보다는 자유분방한 자연속에서 참다운 질서의 의미를 깨닫는다.>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네요. 가끔 무인도에 남겨지는 것을 상상하면서 제가 그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도 해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미네르바 2005-02-15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번에 이 책도 샀는데, 아직 안 읽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음에 살 걸... 땡스투 누르게요..^^ 그런데, 책 제목을 보고서도, 더군다나 저자가 미셀 투르니에인데도 방드르디를 금요일이란 생각을 왜 못했을까요? 불어인데.. 슬슬 무식한 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하는군요. 님 리뷰 보니 어서 읽어보고 싶네요. 그런데 전 리뷰는 쓰지 못할 것 같네요. 비교 될 것 아니에요^^ 미셀 투르니에의 마왕도 지금 벼르고 있는데, 복순이 언니님 글을 보니 조금 엄두가 안나네요. 저도<오히려 잘 짜여진 문명보다는 자유분방한 자연속에서 참다운 질서의 의미를 깨닫는다 >라는 부분이 참 맘에 들어요.(호밀밭님 찌찌뽕~) 인간 대 자연의 모습을 비교해 주는 것 같아요. 지금 읽는 책 끝내면 얼른 이 책부터 읽어야겠네요.

잉크냄새 2005-02-1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번 잡은 책은 어떻게든 읽고 마는 성격인지라 낯설어도 그냥 읽었답니다. 미셀 트루니에가 철학자여서 그런지 소설의 많은 부분을 그런 쪽으로 할애한것 같습니다. 아마 님들의 리뷰가 저자의 의도를 더 잘 파악하실겁니다.

파란여우 2005-02-23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인도에 남겨진다면 전, 알라딘을 통째로 갖고 갈 예정입니다.(가져가 질까요? 근데?^^)=허무맹랑한 파란여우는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역시나 간결하면서 명징한 리뷰였습니다.

잉크냄새 2005-02-24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인도에는 유쾌,상쾌,통쾌한 인터넷이 안되는 걸로 보고된바 있습니다.
그리고 리뷰여왕 여우님의 응원앞에 그저 글이 부끄러워질 뿐이군요.

2005-09-0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5-09-19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두 저 물시계를 주목하긴 했는데, 전 일종의 휴식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어요. 음..잉크냄새님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까, 아..정확히 이해가 가네요. 마지막 문단이 핵심을 요약한 듯한 파이널 총정리편이군요. 흐응~

잉크냄새 2005-09-23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그날의 땡스투가 님이셨군요.^^
복돌님 / 단순히 야생이 문명을 극복한 사실보다도 그 이후 환상을 찾아 떠나 방군(?)의 뒷이야기를 유추해내시는 님의 안목, 존경스럽더이다.
 

116666

어느 서재지인이 캡쳐해주신 숫자이다. 줄에 꿰어져 달랑달랑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낼것만 같다.

1) 6

예전에 허접한 농담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로 웃기지도 않은 것인데, 그때는 왜 그리도 낄낄거리며 웃었는지. 아마 잘 웃는다는 것도 순수하다는 말일것이다.

< 변씨가 소장이 되면 -> 변소장 , 육씨가 계장이 되면 -> 육계장 .....> 뭐 이런 시답잖은 농담이었다.

2) 66

가끔 나이에 비해 늙어보이는 사람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이에 비해 젊어보이는 것도 별로고 늙어보이는 것도 별로이다. 자기 나이에 맞게 나이들어 간다는 것, 그것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여긴다.

며칠전 업체 부장님 한분의 주민등록번호를 볼 일이 있었다. 66년생, 그분은 예전에 등장한 선전 " 세상을 다 가져라"에 나왔던 아저씨의 인상과 똑같다. 적어도 50년대생일것이라 생각했는데 66년생이라니. 그분을 볼때마다 66이란 숫자가 떠오른다.

3) 666

아마도 < 오멘 > 이란 영화로 기억한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공포스럽고 독살스러운 눈매를 가진 정나미 떨어지던 남자 아역배우의 뒷통수에 선명하게 찍혀있던 숫자, 666. 악마의 숫자라고들 하곤 했다. 묵시룩에 등장하는 이 숫자를 피켓에 적어들고 1999년이 오기전에 회개하라던 사람의 모습도 언뜻 떠오른다.

가끔 행동이 표독스러운 인간을 대할때마다 뒷통수가 궁금하곤 했다.  슬쩍 지나치며 바라본 뒷통수에 666이란 숫자는 용서가 되어도 비듬은 용서되지 않았다.

4) 6666

6자 네개로 그리던 그림이 있었다. "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 동그라미 동그라미 동그라미 / 육육은 육육은 삼십육 / 육육은 육육은 백두산 " 라고 부르며 동작에 맞추어 그림을 그리면 곰이 그려진다.

동그라미 여섯개는 얼굴 하나, 눈 둘, 입 하나, 귀 둘, 몸통 하나. 육육은 양팔, 삼십육은 가슴에 새기던 숫자 마크, 또 육육은 양다리, 백두산은 다리 안쪽선을 그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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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2-02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
요렇게 말이죠?^^(입주변은 곰답게 조금 변형시켰고, 가슴에 36은 못 썼네요)

Laika 2005-02-02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 - 저희 식구 여섯이었습니다...지금은 아들 손자(아직 뱃속에 있지만) 며느리....외손자 ... 사위...

icaru 2005-02-02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박찬미님...작품...대단하세요~! 동그라미동그라미동그으~라미..

표독스러운 인간의 뒤통수가 궁금타....666이라는 낙인보다 더 용납 안 되는 비듬이라니..

앗...저희 집 식구도 6 이었다죠...


플레져 2005-02-02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찬미님, 그림 넘넘 잘 그리셨어요!!
저희두 식구가 여섯, 시댁에 제가 시집가자 식구가 여섯, 얼마전에 티격태격한 언니가 66년생, 오멘에 나온 악마의 숫자 666, 현재 6 네개와 관련된 꺼리가 없습니당 ^^

Laika 2005-02-02 1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은 매일 새벽 6 시에 문을 열고,

미스 하이드님의 이벤트도 매일 새벽 6 시에 시작합니다. ^^


진주 2005-02-02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메~제가 여기서 그림 잘 그렸다고 칭찬 받네요 ㅎㅎ
복순이 언니님, 플레져님 고마워요.

잉크냄새 2005-02-02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찬미님 / 명작입니다. 몸통을 표현하는 동그라미 하나가 빠진것 같아요. 이 노래말고도 " 아침먹고 땡, 점심먹고 땡, ~~~ 아이고, 무서워 해골바가지 " 하면서 그리던 해골도 있었죠.^^
라이카님 / 매일 아침 6시에 시작하는 이벤트는 뭐죠? @@
복순이언니님 / 비듬에 관한 지저분하고 추악한 추억이 있는지라... ( 이미 알고 있을것 같은데요)
플레져님 / 이곳은 여섯식구가 대세를 이루네요. 오메~ 그 영화 제목이 < 오멘 > 이었군요. ^^

미네르바 2005-02-02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정말 6이라는 숫자 네 개를 줄에 꿰어서 흔들면 딸랑딸랑하며 맑은 소리를 낼 것 같네요^^ 그나 저나 박찬미님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그 만화 실력을 여기서도 유감없이 보여주는군요.

잉크냄새 2005-02-03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네르바님 / 맑은 풍경소리가 날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올 겨울중 가장 추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무실 창을 통하여 내다보이는 무채색의 건물과 앙상한 가로수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더 을씬년스럽다. 건물도, 아스팔트도, 잎을 떨군 나무도 무채색의 음산함을 간직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길을 걷는 사람들의 움추린 옷과 시리도록 푸르른 하늘만이 무채색이 아니다.

평양거리를 촬영한 뉴스의 한자락이 떠올랐다. 온통 회색의 거리를 단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지나가던 거리, 언뜻 보이던 강렬한 빨간색이 왠지 부자연스럽던 거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셀수없을 정도의 색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서울의 거리를 떠올렸다. 옷가지들의 색의 다채로움에 무채색이 묻혀져버린 거리, 내형적인 면이야 어떨지 몰라도 가끔 뉴스를 통해 바라보는 서울거리가 온통 회색빛이 아닌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IMF가 터진 직후, 신입사원으로 부도위기의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팀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톨게이트를 빠지자마자 위치한 공장은 온통 회색이었다. 봄이 막 움트기 시작한 직후였지만 잔디밭에 듬성듬성 머리를 내민 초록의 생명들이 그 건물을 덧칠하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 잠시 일행과 떨어진 순간, 왠지 모를 공포와 한기를 느꼈다. 두리번거리며 잠시 짚은 건물벽에서 뿜어져나오던 한기를 잊을 수가 없었다. 종종 걸음으로 재빠르게 달려가며 뒤돌아본 건물의 음산한 복도는 이미 생명이 다해가고 있었다. 사람의 온기, 무생물의 존재를 따스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온기였다. 의욕을 상실한, 지쳐 초라하게마저 느껴지던 그 회사의 사람들의 몸에서 건물은 더 이상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뒤돌아보니 사무실 곳곳이 떠들썩하다. 정신없이 전화기에 매달린 사람들, 시답잖은 농담으로 웃음웃는 사람들, 한치앞도 불안한 현재를 미련하도록 열심히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온기가 있어서 이 건물은 아직 따뜻하다. 사람사는 곳의 떠들썩함, 그것이 어느날보다 귀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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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2-0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 뛰고 난리 법석을 피우면 우리 엄마는 그러시죠
"인제 사람 사는 맛이 난다"
고요...........

미네르바 2005-02-01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젠 떠들썩함이 그리워지네요. 학교에서 4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떠들 때...유난히 그렇게 떠들 때가 있지요. 비오는 날이라던가, 잔뜩 찌푸린 날들...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치고(그래서 종종 목이 쉬지요^^), 교탁을 두드려 보아도 통제가 불가능할 때... 그 때는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지요. 그런데, 방학을 하고 한 달이상 아이들을 보지 못할 땐, 그 시끄러운 소리가 그리워지더라구요. 그 시끄러움 속에는 사람의 온기뿐만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도 나지요? 그 시끄러움은 살아있다는 증거겠지요?

Laika 2005-02-01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엔 특히나 더 이런 따스한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나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따뜻한 보리차나 마셔야겠습니다. ^^

hanicare 2005-02-0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기와 온기.삐죽삐죽 다소 불규칙하고 어수선한 것들이 뿜어내는 입김일까요?
이제는 단정한 것보다 그런 쪽에 마음이 끌리는군요,

2005-02-02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5-02-02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도 회색을 보면 싸늘한 기운을 품고 죽어가고 있던 그때의 그 건물벽이 떠오릅니다. 무채색이란 이런거구나 하고요.
사실 전 회색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 예전에 보물섬에 등장하는 칼잡이가 회색머리였죠. 그때이후로 쭈욱~~ ) 그 건물벽을 만진 이후로 회색에 정이 가지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