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풍경

 

 

 

 

세잔느는 " 풍경이 내 가운데서 성찰하고, 나는 그 의식이 된다 "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세잔느의 눈이 생빅투와르 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풍경 생빅투와르 산이 화가 세잔느의 눈을 바라본다는 뜻이다. 바라본다는 것은 바로 보여진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수없는 풍경에 부딪히며 살아가고 있다. 그 무한한 풍경 가운데의 어느 한 순간의 풍경이 느닷없이 어느 순간의 나와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거의 신비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언젠가 어느 명승지에서 오히려 풍경을 만나지 못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단지 일반적인 아름다운 경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 경치들은 나의 시각을 자극했지만 그것들은 그냥 흘러가버렸다. 내가 이름 없는 한 풍경을 만나게 되는 것은, 내가 풍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어느 순간의 나를 주박하고 마는 것이다. 

- 허만하 < 낙타는 십리밖 물냄새를 맡는다 > p20~21 -

2.상처

 

 

 

 

나에게,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내 초로(初老)의 가을에, 상처라는 말은 남세스럽다.그것을 모르지 않거니와, 내 영세한 필경(筆耕)은 그 남세스러움을 무릅쓰고 있다.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상처를 통해서 풍경으로 건너갈 때, 이 세계는 내 상처속에서 재편성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을 가열하게 확인시킨다.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언어는 마치 쑥과 마늘의 동굴 속에 들어앉은 짐승의 울음처럼 아득히 우원하여 세계의 계면(界面)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이 세계가 그 우원한 언어의 외곽 너머로 펼쳐져 있는 모습이 내 생애의 불우(不遇)의 풍경이다.

- 김훈 < 풍경과 상처 >  p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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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5-02-25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는 하고 싶은데... 뭐라 입을 뗄지 몰라 하는 저를 보라지요.
님은 풍경에...대해..그렇군요..
저는 음악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지요.. 아주 가끔 있는 일인데요...비 오는 날 사람이 별로 없는 한산한 버스 안에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내가 원래는 이 속(음악)에서 살았는데.. 똑 떨어져... 이 부박한 세상으로 튀어나온 게 아닌가...하는 생각 하지요.... 에고...써놓고보니,,, 에그머니 이게 뭔소리야 싶어 부끄럽네요 ^^;;

잉크냄새 2005-02-2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옮기기는 했지만 읽을때 끄덕끄덕 하면서도 온전히 저의 느낌이 되어 살아나지는 않더라고요. 어떤 극적인 전환점이 있던지, 더 오래 나이들어 보아야 슬며시 그런 느낌이 다가올라나 싶네요. 이상하죠. 비내리는 버스차창밖의 풍경은 남녀노소를 떠나서 그런 묘한 기분으로 다가오거든요. 이십대 초반에는 비가 내리면 가끔 버스를 타고 목적지없이 흘러가곤 했죠.^^

미네르바 2005-02-25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의 두 책을 참 좋아하지만,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지금보다도 더 나이를 먹고, 더 삶의 경험이 풍부해지면 제대로 이해할까요? 그래도 가까이 두고 가끔씩 펴 보는 책들이네요.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 분명 상처를 경유해서 바라본 풍경은 다르게 해석되겠지요. 그럼, 상처없는 풍경은 심심할려나??? ^^

잉크냄새 2005-02-2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풍경과 상처>는 지금 읽고 있는데 글이 어렵네요. 악전고투하며 읽고 있는데 진도가 잘 나가지 않고 있어요.

파란여우 2005-03-05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의 글을 읽는 자체만으로도 상처죠..하지만 글은 잘 쓰잖아요
잉크님! 책을 읽으시면서 부디 상처 받지 마시길^^

잉크냄새 2005-03-08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을 읽으면서도 저자나 주인공에게 완전히 몰입되는 경우는 별로 없는것 같습니다. 고로 김훈의 글을 읽는다고 상처받거나 할일은 없을겁니다. 걱정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