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背景(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을 헤메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
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姿勢(자
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
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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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를 띄운 것이 4년전의 일인것 같다. 괜히 목련꽃을 넣어 보냈던가. 남루하고 초라한 봄의 끝을 알리는 편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별을 편지로 보내지 않았으니 다 즐거운 편지였으리라. 그리운 누군가에게로 전해진 편지는 그리움에 쉬이 우표가 떨어졌으리라.

찬바람 쌩쌩 훈련소 동초 근무 화장실 백열등 아래서, 덜컹 덜컹 자세도 잡기 힘든 비내리는 경춘선 뒷자리에서, 눈부신 목련꽃 그늘 아래서....그리운 이에게로 보낼 사연이 무에 그리 많았던지.

늦은 사무실, 펜을 잡고 몇자 끄적여본다. 그리운 이름 하나조차 불러볼 여유 잃고 사는건지 헛헛하다가, 나이 든다는 건 그리움 간직할 가슴한켠조차 비우지 못하는건지 서글프다가, 그래도 내게도 즐거운 편지를 쓰던 추억이, 에머랄드빛 우체국 창문앞의 발걸음이 가벼워지던 추억이 있음에 슬며시 미소짓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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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가끔 그런 글 쓰던 날들이 있어 지금 그래도 행복함을 느낍니다.

paviana 2006-03-29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카드 보내고 얼마전에 편지를 한통 보내려고 온 집안을 다 뒤졌는데 편지지가 한개도 없더라고요. 참 메마르게 살고 있어요.

비로그인 2006-03-29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멋줴이~
근데요, 목련꽃 하얀 이파리를 넣을 땐 싱싱하지만 받을 땐..그니까 받는 사람 입장에선..똥색으로 고마 시들어..왠 천조각인가 하진 않을런지..그래요, 많이 그리우신 게죠? 며칠 후에 제 앞으로 즐거운 편지 한 통이 도착하겠군요. 잉크님 맘 다 안다구요! 어찌할 수 없는 제 맘도 알아주시길..ㅠ,.ㅠ

플레져 2006-03-29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맘 알아주실때 제 맘도 덤으루다가 알아주시면.........될듯 ^^
(맘 속에선 안되겠니? 라고 쓰고 싶었으나~~~ㅎㅎ)

Laika 2006-03-2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 간 친구가 이메일 끄트머리에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었던 너의 편지가 그리워~" 라고 썼길래. 오랫만에 편지를 썼어요. 그런데, 왜 예전과 달리 그리 쓸말이 없는지...
큰 글씨로 허~한 마음 채워 넣어보냈지요.

stella.K 2006-03-2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럴수가...로맨티스트였군요. 어쩌면 좋아요. 흐흑~!

잉크냄새 2006-03-29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 소중한 추억은 곧 행복감인가 봅니다.
파비아나님 / 무섭도록 두껍게 느껴지던 규격편지지를 다 써 보겠다고 벼르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 편지지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복돌이님 / 참, 표현을 하셔도 똥색이 뭐요. 님 맘은 아는데, 워낙 편지를 쓰지 않아서요.^^
플레져님 / 아우, 님들 맘 잘 알지요.
라이카님 / 작년이었죠. 달라이라마가 계신 티벳의 멕그리드 간즈 ( 맞나 모르겠네요 )에서 날아온 한통의 엽서를 참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스텔라님 / 로맨틱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죠.^^

파란여우 2006-03-2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답장 빨리 못해 드려서 죄송해요.
보내주신 편지지에 아롱다롱 새겨진 하트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몰랐어요
저도 꽃편지지 고르느라 늦는거 다 아시죠? 호호.ㅋ^^

stella.K 2006-03-3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런...잉크님이 여우님께 친필 편지를 보내셨단 말씀이옵니까? 잉크님 여우님을 너무 좋아하시는가 봅니다. 질투나옵니다. >.<;;

잉크냄새 2006-03-3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복돌님보다 한술 더 뜨시는군요. 마지막 편지를 보낸 4년전에는 여우님을 알지도 못했거늘...ㅎㅎ 그래도 뜬금없는 답장이라도 보내주세요.
스텔라님 / 여우님이 자칭 뻥9단 이라는 걸 아시면서...

icaru 2006-03-30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쯤 잉크냄새 님의 즐거운 편지 속 주인공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염소키우며~ 그렇게... ~~

비로그인 2006-03-3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염소..흥! 두 분이 그렇고 그런 사이란 말이죠? 이참에 알라딘 말이죠. 업종을 바꿔버려요! 결혼이벤트회사루요!! 제 생각이 기발 & 기특하지 않습니까!? 음하하하..

잉크냄새 2006-03-31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카루님 / 어, 이카루님까정~~~~
복돌이님 / 님 생각이 가발 & 가당찮지 않습니까? 음하하하..

파란여우 2006-03-31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뻥이란 무엇일까
주는 걸까, 받는 걸까
줄 때는 꿈 속 같고, 받을 땐 허망해라
뻥에 살고오~~ 뻥에 울며~~ 살아온 살아온 세월~~~~월월~~~

잉크냄새 2006-04-04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 월월~ 은 그 유명한 견공들 메리/쫑/해피의 울음이 아닌지요.^^

2006-04-06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연우주 2006-04-15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으로 뒷북이지만, 글 참 좋네요. 감상에 빠지고 싶은 그런 화사한 봄.. 입니다.

잉크냄새 2006-04-17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 어디로 갔을까요. 빨리 찾아보세요.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길....
우주님 / 봄은 그런 계절인가 봅니다. 감상에 빠지고 싶은 날들의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