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감동에 휩싸이면 눈물을 흘리나요?

이틀전 리뷰를 하나 올리고 먼저 올리신 분들의 리뷰를 몇개 찾아보니 그 책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떤 분은 펑펑 울고, 어떤 분은 슬며시 눈시울을 적시고, 어떤 분은 베개를 적시고... 난 보통 가슴이 답답하리만치 무엇인가가 치밀어오르면 눈물샘으로 올라가기 전에 자리를 뜨거나 담배 한개비로 놀란 가슴을 달랜다. 무엇인가 목구멍을 틀어막으며 올라오는 불덩이가 느껴져도, 잘난 이성탓인지, 메마른 정서탓인지 무의식중에 스스로를 통제하는 모양이다.

아마 그때가 대학 4학년때인것 같다. 학교 주변의 어느 만화방, 서른 몇편에 달하는 이두호의 < 임꺽정>의 거의 마지막을 읽을때였을것이다. 잡초같은 민초들이 하나둘 스러지고, 임꺽정의 동지들마저 하나둘 서글픈 운명을 맞이하는 장면이었다. 조금씩 가슴속에 꿈틀대던 불덩어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기 시작했다. 욱욱거린다는 표현이 맞을라나. 가슴은 우나 눈물은 흘리지 않고, 가슴은 통곡하나 목울대를 울리지 않는다.

라면발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한 젓가락 떠올린 면발이 채 끊기기도 전에 치밀어오른 불덩이에 놀라 그릇속으로 풍덩 빠졌다. 칙칙한 만화방 한구석에서 욱욱거리며 라면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모습이 참 꼴물견이었으리라. 지방에서 올라온 고학생에게 라면 한그릇이 일용할 양식이었을 시절, 라면발이 팅팅 불어 라면찜이라고 명명할 요리가 탄생할때까지 그렇게 한구석에서 볼쌍사나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었을 무렵, 나를 감싼 것은 우습게도 임꺽정의 감동도 아니고 라면발에 대한 분노였다. 우동도 아닌것이 팅팅 불어가지고.

책을 읽다 눈물을 흘리는 분들의 감정, 그것이 사뭇 궁금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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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4-20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나의 라임 오랜지 나무'였던가? 그게 좀 울컥했어요. 책 보고 잘 안 울게되더라구요. 요즘엔 TV가 나를 가끔 울리죠. 괜찮게 만든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보면 그래요. 근데 라면 먹구 싶당...ㅜ.ㅜ

chika 2005-04-20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느낌 저도 알 것 같아요. 목이 막히는 것 같아 도저히 뭔가를 목 안으로 집어넣는다는 것이 고문같은 그 먹먹함. 이건 '감동'과는 또 다른 감정인거 같아요.
저는 감동을 받으면 눈물을 흘려요. 말하자면, 날으는 교실에서 유스투스 선생님과 마르틴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같은데서요. 그냥 눈물이 나오던디요? ^^;;;;

물만두 2005-04-20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로맨스 소설 읽고 울고 슬픈 만화보고 울고 닥터스보고 울고... 그래서 배드엔딩은 절대 안봅니다... 최근에는 800만가지 죽는 방법을 보고 마지막에 매트 스커더가 자신이 알코올중독자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paviana 2005-04-20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임오렌지 나무보고 많이 울었답니다.아니 울고 싶은일 있으면 그책 부러 펴서 그냥 실컷 울고는 했죠..

2005-04-20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05-04-20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에 젖은 라면을 먹어보지 못한 자...인생을 논하지 말랑께롱...(앗...너무 상투적인가요?) 민초들의 애환을 이야기한 작품들에...저도 곧잘 울컥합니다...
저도 민초니까요..

잉크냄새 2005-04-2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고등학교때 친구가 그걸 읽고 우는걸 보고 사내놈이 운다고 면박을 준 기억이 나네요.

치카님 / 그 먹먹함...울분, 감동, 벅참, 분노... 그런 감정들의 복합적 요소인것 같아요.

물만두님 / 전 지금까지 연애소설은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네요. 800만가지 죽는 방법...귀가 솔깃해지는 제목입니다.

파비아나님 / 아! 역시 라임오렌지 나무...제제 였던가요. 그 꼬마말이죠.

속삭이신님 / 자기연민은 아닌것 같아요. 그냥 님의 가슴시린 추억이죠. 저도 가끔 서글픈 페이퍼를 보면 푹 가라앉아요. 마흔이 넘은 큰누나는 지금도 드라마를 보면 눈물을 주륵주륵 흘려요. 제가 그렇게 놀려도 말이죠.

복순이언니님 / 앗! 님도 눈물젖은 라면을 먹어보셨나요. 울분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저도 그런 대목에서 울컥해요. 그리고 두주먹을 불끈 쥡니다.^^

플레져 2005-04-2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전에 김인숙의 브라스 밴드를 기다리며 (단편) 를 눈물로 읽었답니다.
전엔 아주 지루하다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죽음, 이란 명제가 나날이 슬프게만 느껴져요. 예전엔 막연히 두렵다는 생각을 했거든요...ㅎ

2005-04-20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weetmagic 2005-04-20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히 저는 어제 사전펴보다가 핑핑 울었어요.
점심 이라는 글자 옆에 포스트 잇에
" 우리 이쁜 매직아 ~ 내 꿈 그만 꾸고 밥먹으러 가장 " 라고 적혀 있었거든요
그때가 너무너무너무 그리워서 울었어요
-- 책 하곤 상관 없지만 ㅠ.,ㅠ;;

잉크냄새 2005-04-2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 님을 키운 팔할이 눈물이라고 하셨잖아요. 제 생각에는 가장 눈물이 많은 서재 주인장중 한분이 아니실까 해요.

속삭이신님 / 전 클래식이랑은 좀 멀어요.ㅎ.. 라면에 눈물은 빠뜨리지 않았답니다. 그냥 혼자서 팅팅 불어버렸죠.

매직님 / 아! 찡하네요. 흔적들,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 어느 순간 묘한 곳에서 운명처럼 마주치는 흔적앞에서 울컥한 경험이 있다죠.

겨울 2005-04-21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주체를 못할만큼 줄줄, 비처럼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 주변에 누군가 있으면 민망할 정도죠. 생애 최초로 책을 읽으며 운 기억은 인어공주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장면에서였어요. ^^

잉크냄새 2005-04-21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 / 님의 리뷰나 페이퍼를 읽으면서 그런 감상적인 면을 소유하신 분일거라는 생각이 들곤했죠. 전 인어공주가 칼을 들고 물로 뛰어든 걸로 생각이 들까요. 다른 인어공주인가요?^^

파란여우 2005-04-2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언제였던가.....
아주 오래전 일이군요.
지금은 왠만해서는 눈물도 흘리지 않는, 아니 눈물이 나지 않는.....
아, 제발 제 눈에 물좀 흐르게 해주세요!!!^^

미네르바 2005-04-2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을 읽으면서 가장 눈물을 흘렸던 것이, 인어공주였고(어른이 되어서도 인어 공주를 읽으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어요), 눈물 뿐만 아니라 엉엉 소리까지 내면서 읽은 책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였고, 최근에도 어떤 동화를 읽다가 눈물 흘렸고,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 주다가 그만 목이 메어서 잠시 멈춧 멈춧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며... 눈물이 많아서 탈이죠. 그런데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사는 이유 중에는 눈물이 많은 것도 한 몫 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어요(읽었나?)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표출해 내서 가슴에 쌓인 것이 적다나? 그럼, 여자들의 수다도 한몫하겠지요?

잉크냄새 2005-04-2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 님의 감수성을 익히 알고 있거늘 어찌 눈물이 없다 하십니까? 퇴근길의 나무와 텅빈 논밭에서 님의 눈물을 수도 없이 보아왔답니다.

미네르바님 / 님도 눈물이 많으시다는 것을 글을 통해 자주 접해왔지요. 전 장수는 못하겠는걸요. 가슴속은 시커멓게 타도 눈물을 흘릴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