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로잡는 얼굴들 - 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은 생추어리 동물들의 초상
이사 레슈코 지음, 김민주 옮김 / 가망서사 / 2022년 9월
평점 :
삶은 사람의 인생을 축약한 줄임말로써 쓰여진 단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삶을 인간의 범주로 한정하고 생명 가진 모든 존재에게도 삶이 존재할 것이란 생각을 오래도록 하지 못했다. 인간이 동물에게 삶을 부여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고통과 쾌락의 유무였다. 철학자 데카르트의 이성의 시대에도 이성은 오히려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척도로 여겨지기도 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고통을 느낀다.' 어쩌면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 대한 번민에서 비롯된 자기 합리화였을 수도 있다. 벤담과 다윈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이성과 별개로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각인되기 시작했고 동물권과 동물 복지 등 현대적 의미의 권리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인간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동물을 반려, 실험, 축산동물로 구분해보자. 반려 동물은 아직도 학대와 파양의 문제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삶을 보장받으며 권리와 복지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다. 실험 동물도 부족하나마 고통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며 불필요한 실험의 근절과 인공 피부 등 대체 실험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느린 걸음이나마 그 첫 발은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축산동물은 아직도 요원하다. 가장 큰 이유는 고기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앞에 그들의 권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제품으로서 인식되기에 그들에게 늙음은 사치고 낭비이며 비효율이다. 사료값으로 대변되는 재료비와 미식으로 포장된 식탐 앞에 그들은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저 단기간에 살찌우기가 목표인 제품으로 인식된다.
이 책에 소개되는 동물들은 대부분 축산동물이다. 우연찮게 도살의 위기에서 벗어나 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게 된 동물들의 초상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죽음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던 사진작가 이사 레슈코는 마침내 늙음을 맞이한 그들에게서 인간과 같은 삶의 존엄을 느끼고 카메라를 들었다. 그들의 삶을 존중해 그들이 삶의 안식처를 허락하기 전까지, 그들과 같은 눈 높이로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며 곁을 내어줄 때까지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그들이 눈빛으로 곁을 허락한 순간 자연광에 의지하여 그들의 늙음을 카메라에 담아 내었다. 그들에게도 늙음은 삶의 축복이었다. 허락되지 않던 늙음을 간직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고통과 쾌락 외에 그들의 삶에 하나를 추가하고 싶다. 늙음.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들도 늙어간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을 하나의 존재로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생명 가진 것들은 늙어갈 권리가 있다.
어떤 동물도 지각 있는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우리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지각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이 개별성과 고유성이 있는 존재로서 지능과 감정을 발휘하기 위해 반드시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지능과 감정을 지녀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p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