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 살에는 

                - 이 외수 -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 살에는
선잠결에 스쳐가는 실낱같은 그리움도
어느새 등널쿨처럼 내 몸을 휘감아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몸살이 되더라

떠나 보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세상은 왜 그리 텅 비어 있었을까
날마다 하늘 가득한 황사바람에

목메이는 울음소리로 가슴 터지도록 불러보고
나는 휴지처럼 부질없이
거리를 떠돌았어

사무치는 외로움도 칼날이었어...

밤이면 일기장에 푸른 잉크로
살아온 날의 숫자만큼
사랑 이라는 단어를 채워넣고

눈시울이 젖은 채로 죽고 싶더라
눈시울이 젖은 채로 죽고 싶더라

그 투명한 내 나이
스무 살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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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청춘이란 말을 들으면 손톱이 푸르게 물든다.

지금도 청춘이란 말을 내뱉으면 입 안에 푸른 빛의 향기가 난다. 

뺨 위의 눈물 자국마저 투명하여 속이 훤히 들어다보이던

내 나이 스무살과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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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5-1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외수의 글을 많이 좋아하는 자는 아닙니다만....가끔...그의 글 중에...마음에 파고드는 것들을 몇몇 구절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위의 시는 음...피끓는 청춘이란 표현이 무색하리 만치구뇽... 아 근디... 님은...아직 청춘 아니십니까.??..어제도 어그제도 1년전에도 10년전에도...스물살과 같은 마음은 살고 계셨던거 아니었더랬습니까??


제가 최근에 읽게 된..이외수의 다음 시 한 편을 님의 서재에 도배하고 조용히 물러납니다~~!




근심은 알고 나면 허수아비다.

곡식이 익어가는 들판으로 가서 허기를 채우려면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 밖에 없는 복병들이다.

하지만 어떤 참새라도 그 복병들을 근심할 필요는 없다.

허수아비는 무기력의 표본이다.

망원렌즈가 장착된 최신식 장총을 소지하고 있어도

방아쇠를 당길 능력이 없다.

자기 딴에는 대단히 위협적인 모습으로 눈을 부릅뜬 채

들판을 사수하고 있지만,

유사이래로 허수아비에게 붙잡혀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어버린 참새는 한 마리도 없다.

다만 소심한 참새만이 제풀에 겁을 집어먹고 스스로의

심장을 위축시켜 우환을 초래할 뿐이다.

나는 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스무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서른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나는 마흔 살에도 근심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의 근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렸을까..

지금은 흔적조차도 찾을 길이 없다. 근심에 집착할수록

포박은 강력해지고,

근심에 무심할수록 포박은 허술해진다.

하지만 어떤 포박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린다.

이 세상 시계들이 모조리 작동을 멈춘다 하더라도 시간은 흐른다.

지금 아무리 크나큰 근심이 나를 포박하고 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소멸하고야 만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런데 내가 왜 시간이 흐르면 1백 퍼센트 소멸해 버리는

무기력의 표본,

허수아비에 대해 근심하겠는가


--이외수 산문집<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에서-


미네르바 2004-05-11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푸른 생선처럼 펄떡이던 스무살, 그리고 이십대...
그 스무살을 다시 만나면 난 다르게 살까?

잉크님은 이미 스무살을 살고 계신 듯한데요...^^*

stella.K 2004-05-11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이외수의 책 만지작거렸는데.

얼마전에 읽은 그 책이요.

그림 꼭 잉크님 같아서 올렸어요. 빨리 등푸른 생선 잡아 오세요. 어서요~!


호밀밭 2004-05-11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시울이 젖은 채로 죽고 싶더라

이 말 무언가 울림이 있네요. 요즘은 이상하게 감성이 많이 사라진 듯했는데 이외수의 글은 죽은 듯한 감성을 일깨우는 무언가가 있네요.
그런데 전 <아라한 장풍 대작전>에 나온 이외수의 모습이 조금 생각나네요. 이외수가 영화에 그렇게 출연한 것은 혹시 스무 살 적의 못다 이룬 꿈이 남아서는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봅니다.

잉크냄새 2004-05-12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등푸른 생선처럼 펄떡이던 스무살은 우리들 모두의 가슴속에 남아있었군요.

갈대 2004-05-1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잠결에 스쳐가는 실낱같은 그리움도
어느새 등널쿨처럼 내 몸을 휘감아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몸살이 되더라

아아...ㅠ_ㅠ

다연엉가 2004-05-12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무살이라 꿈같군요.

비로그인 2004-05-12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 즈음은 빌어먹을이라 했거늘...
우리의 스물은....아...

치유 2004-05-13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푸른 스무살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나이때는 그 나이가 그렇게 좋은 것도 모르고 지나갔것만...
이제 지금의 나이에 더욱 충실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