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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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즐기는 비결은 무엇보다도 '속독 콤플렉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책을 빨리 읽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책을 빨리 읽으려다보면 자연히 빨리 읽을 수 있는 얄팍한 내용의 책으로 손이 가기 마련이다. 반대로 천천히 읽으려 한다면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내용이 있는 책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물론 무턱대로 천천히 읽으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말했듯, 여느 일과 마찬가지로 독서에도 역시 비결이 있다. 결코 어렵지만은 않은 그 비결을 터득한다면, 독서는 그것을 모르고 닥치는 대로 문자를 좇을 때보다 더 즐겁고 의미 있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인격적으로도 성장시켜줄 것이다. -9쪽

정보의 항상적(恒常的) 과잉공급사회에서 진정한 독서를 즐기기 위해서는, '양'의 독서에서 '질'의 독서로, 망라형 독서에서 선택적 독서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26쪽

한 달에 책을 백 권 읽었다느니 천 권 읽었다느니 자랑하는 사람들은, 라면 가게에서 개최하는 빨리 먹기 대회에서 십오 분 동안 다섯 그릇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속독가의 지식은 단순한 기름기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으며, 쓸데없이 머리 회전만 둔하게 하는 군살이다. 결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소량을 먹었어도 자신이 진정으로 맛있다고 생각하는 요리의 맛을 감칠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미식가로 존경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도 단 한 권, 단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음미하고 충분히 매력을 맛본 사람이, 독자로서 더 많은 지적인 영양을 얻을 수 있다. -32~3쪽

단적으로 말해 속독은 '내일을 위한 독서'이다. 우리는 바로 다음날 회의를 위해 속독술로 대량을 자료를 읽어내고, 오늘의 화제를 위해 바쁜 아침 시간에 신문을 죽 훑어본다.
그에 반해 슬로 리딩은 '오 년 후, 십 년 후를 위한 독서'이다. 그것은 오늘, 혹은 내일 바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긴 안목으로 보았을 때에는 틀림없이 한 사람의 인간적인 깊이를 더해주고, 진정으로 그의 몸에 꼭 맞는 교양을 제공해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존경하는 이 역시 그런 사람이다.-33쪽

'오독'에도 종류가 있다. 단순히 말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빈곤한 오독'이요, 슬로 리딩을 통해 심사숙고한 끝에 '작자의 의도' 이상으로 흥미 깊은 내용을 찾아내는 것은 '풍요로운 오독'이다.
확실히 사람들이 제멋대로 착각할 때에는, 의외의 창조성이 발휘되는 법이다. -62~3쪽

책을 읽는 또 하나의 기쁨은 타자와의 만남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의 생각을 보다 유연하게 만드는 것. 이를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자유로운 '오독'을 즐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자의 의도'를 생각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이는 슬로 리딩의 비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65쪽

그러는 동안 미시마를 통해 만난 다른 작가에게 빠져들어서, 이번에는 나 자신의 독서 취향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고, 그것을 교정할 수 있는 책을 고르도록 주의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나는 독서의 기쁨을 알았고 나 자신의 취향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깨달은 것은, 어느 한 작가가 쓴 작품의 배후에는 엄청나게 광대한 말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연결고리가 어느 한곳만 끊어졌어도 그 작품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말이라는 것은 지구 규모의 매우 큰 지(知)의 구체(球體)이며, 그중 극히 작은 한 점에 빛을 비추는 것이 한 권의 책이라는 존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의 작품은 여태까지의 문학이나 철학, 종교, 역사 등의 방대한 말의 축적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책을 서둘러 '앞으로'만 읽어나갈 것이 아니라, 보다 '깊게' 읽어야 한다고 발상을 전환할 수 있지 않을까? -71~2쪽

한 권의 책과의 만남은 평생에 단 한 번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길다. '읽고 난 후에 딱 덮어버리는' 한 순간의 독서 대신 '읽고 나서 책장'에 두고 생각하는 독서를 택해 우선은 책을 묵혀둔다. 그렇게 적당한 숙성기간을 거친 후에 다시 한번 그 책을 손에 들어본다. 그 숙성기간이란 물론 자기 자신의 숙성기간을 말한다.
자신에게 정말로 중요한 책을 오 년 후, 십 년 후에 가끔씩 꺼내 다시 읽어보라. 그 인상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성장의 흔적을 실감할 것이다.-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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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1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좋은 글이네요.'그보다는, 아주 소량을 먹었어도 자신이 진정으로 맛있다고 생각하는 요리의 맛을 감칠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미식가로 존경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도 단 한 권, 단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음미하고 충분히 매력을 맛본 사람이, 독자로서 더 많은 지적인 영양을 얻을 수 있다.' 이글이 가슴에 확 닿습니다용^^

이매지 2010-11-14 23:11   좋아요 0 | URL
다독이 꼭 미덕은 아닌 것 같아요 ㅎㅎ 읽고 기억에서 지워진 책들을 생각하면... 아흙. ㅠㅠ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문장편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김철호 지음 / 유토피아 / 2010년 10월
품절


언어는 기호다. 언어는 대상을 가리키는 도구다.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의미라고 한다. 한국어를 구사할 때 우리는 언어가 가리키는 대상, 즉 의미의 세계에만 주목한다. 언어와 의미가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 언어에서 의미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거의 나노초 단위다. 둘 사이에는 너무나도 두껍고 질긴 끈이 이어져 있다. 이걸 끊어내야 한다-영원히는 아니고 잠시 동안만. 자동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언어행위를 자각적이고 의식적인 행위로 끌어올릴 수 있을 때, 바로 이때 언어의식이 생겨난다. 여기서 언어의식이란, 언어(형식)를 의미(내용)에서 떼어내 언어 자체만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12~3쪽

내가 하는 말은 나의 일부이다. 내가 쓰는 글도 나의 일부이다. 나의 말, 나의 글은 나의 정신이자 나의 인격이다. 나의 말과 글은 곧 나 자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남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깨끗하게 하고 옷차림새를 단정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듯이, 남에게 하는 말, 남을 위해 쓰는 글이 남 보기에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향기롭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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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14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도 안 자고 있군요.
난 자다가 일어났지만...^^

이매지 2010-11-14 11:23   좋아요 0 | URL
저는 밑줄 긋고 바로 잠자리로 ㅎㅎ

카스피 2010-11-1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 실력이 밥 먹여주는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방송국 아나운서,출판계..그 다음을 잘 모르겠네요.이매지님 좀 알려주셔용^^

이매지 2010-11-16 15:39   좋아요 0 | URL
어느 분야든 기본적으로 국어 실력이 있어야 밥 먹고 살죠 ㅎㅎ 보고서 같은 거 쓸 때도 필요하잖아요^^
 


11월이 되니 여기저기서 책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한다. 저마다 연말 마지막 배팅을 하는 건지 어쩐지 이때쯤에 정말 신간이 많이 쏟아지는 듯. 나 또한 정신없이 지내다가 이러다가 또 엄청나게 밀려버리겠구나 싶어서 짧게나마 신간 정리.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 문장편. 국어로 밥 벌어먹고 사는 입장에서는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전에 낱말 편도 재미있었지만, 요새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가, 좋은 번역이란 무엇인가를 두고 고뇌(?)하고 있는 터라 도움이 될 것 같다.



정말 쉴새없이 나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책이 이렇게 많이 나오면 평균 미만인 책이 나올 법도 한데, 공장에서 찍어내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여러 주인공 가운데 드라마의 영향인지 유가와에 관심이. 서점에서 실물로 잠깐 봤는데 어두운 배경에 띠지의 은박이 뭔가 세련된 느낌이 들었다.



왜 해리 보슈 시리즈는 1권부터 나오지 않았는가!라고 절규(?)하던 것이 어제 같은데, 이제 어느 정도 해리보슈와 마이클 코넬리에 대한 인식이 쌓여서일까, 1권부터 순차적으로 출간되고 있다. 시리즈의 2권인 <블랙 아이스>가 출간되었고, 조만간 인형사 사건을 쫓는 3권 <콘크리트 블론드>가 나올 예정(11월)이고 연말에는 시리즈 4편인 <라스트 코요테>도 나올 예정이라고. 해리 보슈와 연말을 보낼 수 있어서 햄볶아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인 아유카와 데쓰야의 <리라장 사건>. 일본에서는 본격의 추리소설의 신이라고 불리는 작가라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마쓰모토 세이초, 요코미조 세이시, 에도가와 란포 등의 작품은 많이 번역되었는데, 아유카와 데쓰야의 작품은 다소 늦게 소개된 듯한 느낌도 들지만, 이제라도 만나게 되서 기쁘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태백산맥, 소백산맥 등의 산맥 명칭과 체계를 창안한 인물인 일본의 대표적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의 책. 그가 직접 작성한 컬러 지질단면도와 지질도, 각 읍내의 경관, 산업 등에 대한 소개와 사진 등이 수록되어 있는 책. 어쩐지 일본인이 우리나라의 산맥 명칭을 정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한번쯤 읽어볼 자료적 가치가 있을 듯 싶다.



한국 고전문학의 뒤집어 읽기를 시도한 책.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인 홍길동전, 춘향전, 전우치전, 토끼전 등 13편의 고전을 권선징악과 충효사상을 벗겨내고 그 안에 담긴 폭력과 일탈, 욕망과 위선을 읽어낸다고 한다.




그 외 관심가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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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06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어실력이 밥먹여 준다, 전을 범하다~ 관심 가네요.

이매지 2010-11-06 12:58   좋아요 0 | URL
국밥시리즈는 아이들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예요 :)

유부만두 2010-11-1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정작 청소년들은 국밥이 참고서 같다고 싫어한다지요? ㅋㅋ

이매지 2010-11-10 23:36   좋아요 0 | URL
데런데런. 꼭 그렇게 몸에 좋은 건 싫어한다니까요 ㅋㅋ
 
범죄 수학 범죄 수학 시리즈 1
리스 하스아우트 지음, 오혜정 옮김, 남호영 감수 / Gbrain(지브레인) / 2010년 7월
구판절판


나는 갑자기 일어난 한순간의 통찰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아하"의 깨달음을 매우 좋아한다. 또한 혹독하고 끈질긴 정신적 단련의 결과 다른 사람들이 접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승리감을 사랑한다. 반면 수학이 종종 나의 직관에 도전하고 상식을 완벽하게 뒤집어엎으면서도 변함없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정말 즐긴다. -8~9쪽

사건 분석에서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대장 돕슨이 자신의 부인이 몇 번이나 악수했는지 또는 우리가 아덴 부인이 몇 번이나 악수했는지를 알기 위한 정보가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를 보다 신중하게 생각해 보면, 단 하나의 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어떤 것이라도 중요하다.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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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
강유원 지음, 정훈이 그림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공산당 선언>의 원전에 도전하기를 몇 차례. '지금 유럽에는 하나의 유령이 떠돌고 있다'만 몇 번을 읽었을까. 원전에 도전하는 것을 잠시 포기하고, 일단 우회적으로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을 읽기 시작했다. 실제 강의를 엮은 것인지 말맛이 살아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 써서 조금씩 강유원이 읽어주는 <공산당 선언>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며 어쩐지 노동자란 이리도 서글픈 존재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혼자 읽었을 때는 충분히 '오독'할 수 있는 부분들을 짚고 넘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중간중간 곁가지로 언급하는 이야기들도 좋았고, 그런 점들 때문에 마르크스의 이론이 죽은 이론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공산당 선언>의 전체 내용에 대한 강의가 아니라 주로 첫 챕터인 '부르주아와 프로레타리아'에 대한 내용이었다는 점. 물론 이 책을 읽고 느리지만 조금씩 원전을 읽어보겠다는 의지가 생긴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지만, 강유원이란 프리즘을 통해 <공산당 선언>을 맛만 본 것 같아 아쉬웠다. 어찌되었거나, 이 책을 읽고 나니 마르크스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를 받은 것 같다. 이제는 그의 소개가 헛되지 않게 정말 <공산당 선언>을 읽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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