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살인게임 2.0 밀실살인게임 2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 왕수비차잡기>를 읽고는 하루라도 빨리 <밀실살인게임 2.0>을 만나고 싶었다. 'To be continue'라는 여운만 남긴 채 끝나버린 전작. 과연 이들의 뒷 이야기는 어떻게 그려질지 무척 궁금했다. 조금 간격을 두고 읽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밀실살인게임 왕수비차잡기>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하에 생각보다 빨리 <밀실살인게임 2.0>을 집어들었다.

  한 남자가 2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다. 범인은 범행 동기에 대해 게임이라고 횡설수설 이야기하며 92, 912, 928, 1013, 1024, 1104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몇 개의 숫자를 나열하고는 그 뒤로 입을 다물어버린다. 우연히 이 정보를 입수한 두광인, 044APD, aXe, 잔갸군, 반도젠 교수, 이 다섯 명의 악동은 또 한 번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밀실살인게임을 시작한다. 원한이 있어서, 딱히 죽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죽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자신이 고안한 트릭을 선보이기 위해, 심사숙고해 밀실살인을 만들어내고 이를 동료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하나의 게임으로 살인을 행해는 다섯 악동. 전작이 궁금증을 남기며 끝났기에 당연히 전편의 뒷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의 허를 찌르듯 죽었다고 생각한 044APD가 등장하지를 않나, 중간중간 뭔가가 탁탁 걸리는 느낌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런 찜찜함도 잠시. 곧 이들의 밀실게임에 또 한 번 빠져들어갔다. 

  밀실살인의 고전이라 할 수 있을 법한 눈덮인 산속의 이중 밀실이라던가, 토막살인, 예고살인, 리얼타임 살인 등 이번에도 갖가지 트릭으로 만들어진 게임이 등장한다. 보통 전편만한 속편이 없기 마련이지만, <밀실살인게임>의 경우에는 전편에 비해서 더 과감해지면서 전편과는 비슷하면서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전편은 아무래도 첫 권이다보니 더 충격적인 부분도 있어서 윤리적인 면에서 비난을 피하기 힘들었지만, 이번 이야기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음에도 그 점에 있어서는 더하면 더했지 전편보다 덜하지 않는다. (연작이긴 하지만) 단편 특유의 담백하다거나 아기자기한 맛은 덜하고, 특유의 잔인함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우타노 쇼고는 정신없이 <밀실살인게임 2.0>에 빠져들게 했다. 사건 자체도 그렇지만 1권의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부분 또한 우타노 쇼고답다는 생각이 들며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인터넷이라는 매개 속에서 인간다움이나 윤리는 내려놓고 오직 쾌락과 유희를 즐기는 다섯 악동. 실제로 이런 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오싹할 것 같지만 그래도 자꾸 만나다보니 어쩐지 자꾸만 정이 간다. 현재 일본에서 <밀실살인게임>의 세 번째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는 우타노 쇼고. 거침없이 이어지는 그의 밀실 이야기가, 다섯 악동의 이야기가 또 한 번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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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살인게임 2.0 밀실살인게임 2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2월
구판절판


밀실을 만드는 것도 그렇습니다. 바늘이나 실, 얼음을 사용하면 이제 와서 무슨 짓이냐며 미스터리 팬들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겠죠. 하지만 실제로 밀실에서 타살 시체가 발견된 경우에 범인이 과연 어떻게 밀실을 만들었는가 하면,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열쇠를 빼앗아 문을 잠근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얼마나 시시합니까. 수수께끼도 아니거니와 트릭도 아니죠. 너무 썰렁해서 웃음도 안 나옵니다. 또한 실제로 밀실을 만든다고 하면 그 이유는 대부분 시체 발견을 늦추기 위해서, 혹은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서죠. 이 얼마나 좀스럽습니까. 마치 공금을 유용하고서 벌벌 떠는 공무원 같지 않습니까? 리얼이라고 불리는 세상은 왜 이리도 재미가 없는지 원. '밀실'이라는 단어의 신비성을 모독하고 있어요.-122쪽

시체 발견을 늦추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자살 위장도 아니죠. 밀실을 만들고 싶으니까 만드는 겁니다. 밀실을 만드는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이죠. 필연성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지. 캔버스와 마주한 고흐가 실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겁니까? 그려도 팔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붓을 계속 쥐고 있던 데 필연성이 있습니까? 있다고 하면, 작가의 마음이 그리 하기를 원했다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밀실살인은 혼의 발로, 즉 예술입니다.
밀실살인 게임은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발생할 법한 사건을 창작해서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이번처럼 기분전환을 위한 문제라고 해도 말이에요. 삽차로 쿵쾅? 웃기지 마세요! 우아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지 않습니까. 우리의 사명은 낭만의 복권입니다.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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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 하 영원의 아이
덴도 아라타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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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좋은 작품임에도 뭔가 맞지 않아 독자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절판되버리고 마는 책들이 있다. 그렇게 사라진 책 중에는 소리소문 없이 간혹 헌책방에서나 만날 수 있는 책도 있지만, 절판된 후에야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재발간 희망 리스트에 오르는 책도 있다. 일본문학 작품에 있어서 그렇게 많은 이들을 애태운 작품은 '관 시리즈'와 이 작품 <영원의 아이>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붕대클럽> <고독의 노랫소리>와 <애도하는 사람>을 읽으며 언제쯤 <영원의 아이>를 만날 수 있을까 오매불망 기다려왔다. 기존에 살림에서 출간되었을 때는 3권 분량으로 출간되었던 책이 북스피어에서는 2권의 두툼한(!) 책으로 묶여 나왔다. <영원의 아이>를 읽은 근 일주일. 출퇴근하며 읽으라 어깨도, 손목도 고생했지만, 무엇보다 세 아이들의 아픔과 인생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17년 전 저마다의 사정을 품고 후타미 소아 병원에 모인 아이들. '동물원'답게 저마다의 상처를 드러내주는 동물의 이름으로 서로를 대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구원이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으며 살아간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회의 악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하는 부모에 의해 학대를 당한 아이들. 누군가는 그 때문에 어둠을 두려워하고, 누군가는 그 때문에 자신이 더럽고 냄새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누군가는 온 몸에 담뱃자국을 숨긴 채 살아간다. 자신을 위해주는 사람도, 자신을 보호해주는 사람도 없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스스로를 지켜야만 했던 아이들. 후타미 소아 병원에서 만난 구사카 유키, 나가세 쇼이치로, 아리사와 료헤이는 그렇게 의지할 곳 없는 상황 속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스스로를 구원하려 한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고 17년 뒤. 간호사, 변호사, 형사로 성장한 이 세 사람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인연이 닿는다. 여전히 17년 전 과거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세 사람.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속죄'하며 애써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살아가던 세 사람의 재회가 이뤄지며 그들이 가까스로 붙잡고 있는 세상은 흔들리고, 다시 그들은 과거에 얽매이게 되는데…. 

  <고독의 노랫소리>에서는 제목 그대로 '고독'에 대해, <애도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삶과 죽음'에 대해, <붕대 클럽>에서는 '상처'에 대해 써내려갔다면 <영원의 아이>는 '아동학대'에 대해 그려낸다. 그동안 접한 텐도 아라타의 책이 성격도, 글의 분위기도 제각각이지만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상처 받은 이들을 다루는 시선만큼은 따뜻했다. 무참하게 짓밟힌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래도 "살아 남았기 때문에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고, 인생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기회도 찾아온다고, 열심히 잘해"왔다고 등장인물들을 가슴에 품어주는 듯한 모습에 나 또한 저절로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모든 폭력이 그렇지만 어른에 비해 저항할 힘이 떨어지는 아이를 상대로 한 폭력은 무참하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마치 제 멋대로 다룰 수 있는 애완동물을 다루듯 아이의 존엄성과 자유를 깡그리 박탈해버리는 부모의 모습에 가슴이 아릿했다. 

  세 사람 뿐만 아니라 <영원의 아이> 속에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 때문에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하다보면 아무리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이라 해도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휑하게 찬바람이 부는 겨울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느리지만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리라. 내용도 내용이고, 분량도 분량이다보니 중간중간 힘들어졌지만 그럼에도 한번쯤 읽어볼만한, 아니 읽어봐야 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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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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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김윤식 선생님의 평론집 <다국적 시대의 우리 소설 읽기>에서 동아시아 근대문학의 관련성을 루쉰과 이광수를 통해 읽어가는 글을 접했다. 이광수의 <무정>이야 비교적 쉽게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루쉰의 <아Q정전>은 워낙 어릴 때 읽었던 탓인지 '내가 아큐를 위하여 정전을 쓰려고 한 것은 벌써 일이 년' 어쩌고 하는 첫 문장 정도만 기억날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각나지 않았다. 평론을 통해 몇몇 단면을 만나봤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 조만간 다시 <아Q정전>을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만 한 채 아큐를 잊고 지냈다. 그러던 차, 판지를 덧댄 독특한 표지와 멋진 판화가 잘 어우러진 <아Q정전>을 접하고는 반가움에 읽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날품팔이를 하는 아Q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점점 혁명이라는 시대적 흐름으로 전개되는 <아Q정전>은 분량은 짧지만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어떤 내력을 가진 사람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고, 그저 웨이좡 마을의 사람들이 필요할 때만 찾게 되는 그런 아Q. 하지만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놀라운 정신승리법으로 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동네 과부인 우어멈에게 찝쩍거리다가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그동안 무시하던 왕털보에게 욕을 퍼부었다가 손찌검을 당하는 등의 굴욕을 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겪은 굴욕을 비구니 같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풀다가 결국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하는 수단으로 혁명을 꿈꾼다. 하지만 그가 꿈꾼 혁명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 채 그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아Q도 진작에 혁명당이라는 말을 들었고 더구나 올해는 혁명당의 목을 베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몰라도 혁명당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고 반란은 그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줄곧 옛말 그대로 "심히 싫어하고 통절히 증오했다". 그런데 이제 혁명당 때문에 사방 백 리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인 나리가 이렇게 벌벌 떠는 것을 보고는 혁명에 조금 솔깃한 마음이 생겼고, 더군다나 웨이좡의 어중이떠중이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니 아Q는 더더욱 신이 났다.
'혁명도 좋은 것이구나.' 아Q는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것들을 혁명해버리자. 그 나쁜 것들! 가증스러운 것들!…… 그래. 나도 혁명당에 가담해야지.' -p. 80
 
   

  <아Q정전>은 혁명과 그 흐름에 휩쓸린 한 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혁명의 허구성을 그린다. 이전 사회에서도 배제당한 아Q는 혁명을 꿈꾸지만 혁명당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Q 같은 하위계급은 혁명에서도 주체가 되지 못하고 혁명 전과 다름 없이 무시당하고 배제된다. 얼핏 <화랑의 후예>를 생각케 하는 아Q. <아Q정전>으로 그의 이름을 앞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이야기 속에서 그가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아Q가 아닌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이다. 루쉰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결국은 정신적으로 승리하고 마는, 때로는 동정심을 유발하고, 때로는 쓴웃음을 짓게 하는 아Q의 모습을 통해, 그의 공허한 승리를 통해 다시금 진정한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독자를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닌, 혁명이 일어나도 그 놈이 그 놈인 세상을 견뎌야 하는 수많은 아Q를 위한 위로. 어쩌면 루쉰이 <아Q정전>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민중의 계몽이 아닌 위로가 아니었을까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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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쥐벽서 사건과 우리의 아Q
    from 루쉰, 투창과 비수의 문장들 2011-07-13 12:20 
    스스로 모독하다! 최진호(수유+너머 연구원) 아Q는 ‘한때는 대단했고’ 견식도 높았으며 게다가 ‘진정한 일꾼’이니 제대로라면 거의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에겐 약간의...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원은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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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이라는 제목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표지 때문에 눈이 갔던 책. 어쩐지 손으로 표지에 있는 지문을 쓰다듬하다가 이야기가 손다이크 박사가 등장하는 첫번째 이야기임을 알고는 덥석 집어들었다. 과학수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손다이크 박사의 명성은 그간 익히 들어왔지만 오래 전에 모셔놓기만 한 <노래하는 백골>은 어쩐지 내키지 않아 미뤄오던 차에 드디어 그의 첫 등장을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지문감식이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귀금속 거래업자 혼비가 의뢰를 받아 금고에 넣어놓은 다이아몬드 원석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증거는 종이 위에 선명하게 찍힌 피 묻은 엄지손가락 지문. 이 지문은 혼비의 조카 루벤의 것으로 밝혀지지만 루벤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너무나 명백해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이 사건에 손다이크 박사는 의문을 가지고 증거의 허점을 찾아나선다.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은 사실 사건 자체를 지켜보는 것보다는 손다이크 박사를 만난다는 즐거움이 앞선다. 종이에 찍힌 지문이 과연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둘째 치고, 너무나 명백해보이는 사건에 대해 의심을 품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손다이크 박사의 모습은 셜록 홈즈를 떠올린다. 셜록 홈즈의 모험담을 왓슨이 서술하는 것처럼 손다이크 박사의 친구인 저비스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점 또한 셜록 홈즈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셜록 홈즈가 시니컬한 괴짜 스타일이라면 손다이크 박사는 그보다 배려심 있고 따뜻한 성품이라는 점이 달랐고 손다이크 박사의 캐릭터도 밋밋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셜록 홈즈의 아류가 아닌 손다이크 박사를 손다이크 박사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현대 추리소설들의 자극적인 면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등장인물들도 선과 악의 구분이 명백하지 않은 데다가 메인 캐릭터인 손다이크 박사도 강한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원석 도난이라는 사건 자체도 크게 구미를 당기는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을 빛나게 하는 것은 고전의 맛이다. 셜록 홈즈를 읽었을 때의 맛, 엘러리 퀸을 읽었을 때의 맛처럼 담백하지만 유머러스하고, 어쩐지 인간다움이 느껴지는 그런 맛이 이 책에는 담겨 있었다. 독자를 속이고 사건을 비트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렇게 따뜻하지만 분석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익을 쫓으며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만나는 고전 미스터리는 편안한 소파에 앉아 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초창기 과학수사의 모습과 따뜻한 추리소설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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