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엄지손가락 지문
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지음, 원은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이라는 제목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표지 때문에 눈이 갔던 책. 어쩐지 손으로 표지에 있는 지문을 쓰다듬하다가 이야기가 손다이크 박사가 등장하는 첫번째 이야기임을 알고는 덥석 집어들었다. 과학수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을 법한 손다이크 박사의 명성은 그간 익히 들어왔지만 오래 전에 모셔놓기만 한 <노래하는 백골>은 어쩐지 내키지 않아 미뤄오던 차에 드디어 그의 첫 등장을 이렇게 만나게 되었다. 

  지문감식이 도입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귀금속 거래업자 혼비가 의뢰를 받아 금고에 넣어놓은 다이아몬드 원석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증거는 종이 위에 선명하게 찍힌 피 묻은 엄지손가락 지문. 이 지문은 혼비의 조카 루벤의 것으로 밝혀지지만 루벤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 너무나 명백해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이 사건에 손다이크 박사는 의문을 가지고 증거의 허점을 찾아나선다.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은 사실 사건 자체를 지켜보는 것보다는 손다이크 박사를 만난다는 즐거움이 앞선다. 종이에 찍힌 지문이 과연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둘째 치고, 너무나 명백해보이는 사건에 대해 의심을 품고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는 손다이크 박사의 모습은 셜록 홈즈를 떠올린다. 셜록 홈즈의 모험담을 왓슨이 서술하는 것처럼 손다이크 박사의 친구인 저비스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점 또한 셜록 홈즈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셜록 홈즈가 시니컬한 괴짜 스타일이라면 손다이크 박사는 그보다 배려심 있고 따뜻한 성품이라는 점이 달랐고 손다이크 박사의 캐릭터도 밋밋하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셜록 홈즈의 아류가 아닌 손다이크 박사를 손다이크 박사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현대 추리소설들의 자극적인 면에 익숙해진 독자라면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등장인물들도 선과 악의 구분이 명백하지 않은 데다가 메인 캐릭터인 손다이크 박사도 강한 캐릭터는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이아몬드 원석 도난이라는 사건 자체도 크게 구미를 당기는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붉은 엄지손가락 지문>을 빛나게 하는 것은 고전의 맛이다. 셜록 홈즈를 읽었을 때의 맛, 엘러리 퀸을 읽었을 때의 맛처럼 담백하지만 유머러스하고, 어쩐지 인간다움이 느껴지는 그런 맛이 이 책에는 담겨 있었다. 독자를 속이고 사건을 비트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이렇게 따뜻하지만 분석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괜찮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이익을 쫓으며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만나는 고전 미스터리는 편안한 소파에 앉아 쉬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초창기 과학수사의 모습과 따뜻한 추리소설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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