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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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김윤식 선생님의 평론집 <다국적 시대의 우리 소설 읽기>에서 동아시아 근대문학의 관련성을 루쉰과 이광수를 통해 읽어가는 글을 접했다. 이광수의 <무정>이야 비교적 쉽게 기억해낼 수 있었지만 루쉰의 <아Q정전>은 워낙 어릴 때 읽었던 탓인지 '내가 아큐를 위하여 정전을 쓰려고 한 것은 벌써 일이 년' 어쩌고 하는 첫 문장 정도만 기억날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생각나지 않았다. 평론을 통해 몇몇 단면을 만나봤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 조만간 다시 <아Q정전>을 읽어봐야 하겠다는 생각만 한 채 아큐를 잊고 지냈다. 그러던 차, 판지를 덧댄 독특한 표지와 멋진 판화가 잘 어우러진 <아Q정전>을 접하고는 반가움에 읽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날품팔이를 하는 아Q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되어 점점 혁명이라는 시대적 흐름으로 전개되는 <아Q정전>은 분량은 짧지만 술술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어떤 내력을 가진 사람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고, 그저 웨이좡 마을의 사람들이 필요할 때만 찾게 되는 그런 아Q. 하지만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그는 놀라운 정신승리법으로 세상을 거침없이 살아가는 인물이다. 동네 과부인 우어멈에게 찝쩍거리다가 호되게 당하기도 하고 그동안 무시하던 왕털보에게 욕을 퍼부었다가 손찌검을 당하는 등의 굴욕을 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이 겪은 굴욕을 비구니 같이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게 풀다가 결국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하는 수단으로 혁명을 꿈꾼다. 하지만 그가 꿈꾼 혁명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 채 그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

   
  아Q도 진작에 혁명당이라는 말을 들었고 더구나 올해는 혁명당의 목을 베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몰라도 혁명당은 반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고 반란은 그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생각해 줄곧 옛말 그대로 "심히 싫어하고 통절히 증오했다". 그런데 이제 혁명당 때문에 사방 백 리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거인 나리가 이렇게 벌벌 떠는 것을 보고는 혁명에 조금 솔깃한 마음이 생겼고, 더군다나 웨이좡의 어중이떠중이들이 허둥대는 꼴을 보니 아Q는 더더욱 신이 났다.
'혁명도 좋은 것이구나.' 아Q는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것들을 혁명해버리자. 그 나쁜 것들! 가증스러운 것들!…… 그래. 나도 혁명당에 가담해야지.' -p. 80
 
   

  <아Q정전>은 혁명과 그 흐름에 휩쓸린 한 사내의 이야기를 통해 혁명의 허구성을 그린다. 이전 사회에서도 배제당한 아Q는 혁명을 꿈꾸지만 혁명당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Q 같은 하위계급은 혁명에서도 주체가 되지 못하고 혁명 전과 다름 없이 무시당하고 배제된다. 얼핏 <화랑의 후예>를 생각케 하는 아Q. <아Q정전>으로 그의 이름을 앞세우고 있지만 사실상 이야기 속에서 그가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는 아Q가 아닌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이다. 루쉰은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결국은 정신적으로 승리하고 마는, 때로는 동정심을 유발하고, 때로는 쓴웃음을 짓게 하는 아Q의 모습을 통해, 그의 공허한 승리를 통해 다시금 진정한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독자를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닌, 혁명이 일어나도 그 놈이 그 놈인 세상을 견뎌야 하는 수많은 아Q를 위한 위로. 어쩌면 루쉰이 <아Q정전>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은 민중의 계몽이 아닌 위로가 아니었을까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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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쥐벽서 사건과 우리의 아Q
    from 루쉰, 투창과 비수의 문장들 2011-07-13 12:20 
    스스로 모독하다! 최진호(수유+너머 연구원) 아Q는 ‘한때는 대단했고’ 견식도 높았으며 게다가 ‘진정한 일꾼’이니 제대로라면 거의 ‘완벽한 인간’이 되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그에겐 약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