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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초 이야기 - 할머니 탐정의 사건일지
요시나가 나오 지음, 송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아기자기한 표지도, "주인공 '소우'를 첫 장면부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존재로 등장시키는 것에 기분 좋은 놀라움을 느꼈다"라는 미미 여사의 심사평도 아닌, '할머니 탐정'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하여 앞뒤 가리지 않고 읽기 시작한 책. 할머니 탐정 하면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미스 마플. 글래디 골드 시리즈처럼 미스 마플을 오마주로 한, 몇몇 할머니 탐정이 등장했지만 영 마음에 차지 않았던 터라 일본의 할머니 탐정이 등장하는 <고운초 이야기>를 만났을 때도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소우 할머니를 처음 만난 그 순간. 어느새 나도 소우 할머니가 운영하는 고쿠라야의 자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그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대대로 잡화점을 운영해오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커피원두와 전통도기를 함께 취급하는 아담한 가게 '고쿠라야'로 업종을 변경한 소우 할머니. 젊은 시절 남편과 이혼하고 세 살 난 아들을 사고로 잃은 불행을 겪었지만 그런 상처 때문인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마음에서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지켜봐주고, 배려해준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누구나 들어와 무료로 커피를 시음할 수 있다는 설정 때문에 소우 할머니가 고쿠라야에서 고운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는 일종의 안락의자형 탐정과가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의외로 소우 할머니는 현장형 탐정으로 때로는 치매 노인으로 내몰리고, 때로는 부치는 체력에 납치를 청부하는 등 어찌됐거나 현장에서 직접 사건을 마주한다.
대개의 일상 미스터리가 그렇듯이 <고운초 이야기> 역시 일상에서 있을 법한 소소한 사건들이 전개된다. 피가 난자하는 사건도, 복잡한 트릭으로 머리를 아프게 하는 사건도 아니지만 소우 할머니가 만나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특별하다. <고운초 이야기>의 사건들이 특별한 것은 그 사건이 소우 할머니의 '관심'이 아니었다면 묻혔을지도 모를 것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여고생들의 유령 목격담을 듣고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가정 폭력의 조짐을 눈치채게 되는 사건을 다룬 첫번째 이야기인 <고운초의 소우 할머니>만 봐도, 소우 할머니는 할머니라는 지위(?)가 주는 적당한 친근함과 오지랖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바로 그 점이 이 책을 소소하지만 사랑스럽게 만든다.
크게 보자면 가족 또는 친구에 대해 다루고 있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착한 미스터리. 점점 삭막해지고,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도 사라지는 요즘 <고운초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줬다. 염세주의적인 면모에 성악설을 지지(?)하는 미스 마플과는 달리 낙천주의적인 면모에 성선설 쪽으로 보이는 소우 할머니. 서로 다른 면모를 보이지만 두 할머니 모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인 듯. 미스 마플과 비교하며 읽어도, 평범하게 일상미스터리를 즐기듯 읽어도 모두 만족할 수 있을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