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초 이야기 - 할머니 탐정의 사건일지
요시나가 나오 지음, 송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절판


시골생활의 궁색함은 빤히 얼굴을 아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쳐진, 사슬로 만든 거미줄을 서로 잡아당기는 데 있다. 조금이라도 새로운 것이나 다른 것을 시도하려면 무겁게 칭칭 얽매인 쇠사슬을 풀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진을 빼야 한다. 실제로 소우의 결혼이나 이혼 때, 고쿠라야를 신축할 때에도 우는 사람, 화내는 사람, 웃는 사람, 점을 치는 사람 등이 친척이나 친구가 아닌데도 마구 몰려들었다. 당사자가 원한다면 모를까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거리와 세대가 바뀌어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소원해진 지금이 소우로서는 편했다. -20~1쪽

남의 일에 쓸데없는 걱정을 하다 치매노인으로 의심받은 데 대한 억울함에 오른쪽으로, 놀림감이 된 데 대한 창피함으로 왼쪽으로 돌아눕다, 결국에는 손자뻘 되는 경찰에게 이성을 잃고 화를 낸 데 대한 한심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각오도 하고 나름 자부심도 있었건만 결국 그건 나만이 늙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지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고기와 야채를 써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53쪽

근육은 운동으로 파괴된 조직을 재생시켜 강하게 만들지. 생각해보면 우리 정신도 마찬가지야. 때로는 번거롭게 느껴지는 사람들과의 교제나 타인과의 충돌을 반복하면서 기반이 생기고 무거운 것도 들 수 있는 힘도 키워지지. 운동을 하면 근육통이 생기지만, 그것을 무서워하기만 하면 자꾸 약해지기만 해. ……잊어버리고 있었어. 나도 그런 걸. -164쪽

테이블 옆 쓰레기통에 버려진 주먹밥이 썩어가고 있었다. 소우는 이건 도우미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애써 못 본 척했다. 본래 그 쓰레기통은 못 쓰는 종이만 넣던 것인데, 지금도 유키노의 몸상태가 좋았다면 귤껍질 같은 것도 주방의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 친구의 성격을 아는지라 자칫 자신이 청소를 해주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자신의 자잘한 실수나 실패를 깨닫고는 쓸쓸히 미소 짓는 유키노의 모습을 되도록이면 보고 싶지 않았다.
소우는 유키노가 탄 배의 뱃머리가 조금씩 각도를 바꿔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껏 함께 흘러왔던 여러 사람들이 이렇게 서서히 돌아서 결국엔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고, 결국 상대도 자신도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 전사한 오빠의 군복 입은 모습을 처음 보던 날, 열일곱에 죽은 여동생이 병상에서 어른스런 표정을 보여주었던 저녁 무렵, 결국 이혼하게 된 남편을 잠도 자지 않고 기다리던 수많은 밤에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1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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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08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 탐정이라 와 궁금하네요

이매지 2011-05-08 12:01   좋아요 0 | URL
따뜻한 탐정이예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