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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 하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는 일본드라마를 썩 좋아하지 않았는데 최근 일본드라마에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찜해놓은 작품들은 모이무라 세이치나 마츠모토 세이조,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었다. 되도록 원작을 읽고 그 감흥이 식기 전에 드라마를 봐야지하고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인간의 증명은 드라마부터 보게 되어 내심 실망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골격만 동일하고 세부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드라마와 다른 점이 상당히 많아서 책은 책대로,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에는 세가지 축이 존재한다. 가장 중심에 놓이는 것은 도쿄 중심부의 호텔의 엘리베이터에서 죽은 흑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의 이름은 조니 헤이워드. 그가 왜 일본에 오게 되었는지, 일본에서 무엇을 하였는지에 대한 정보도 베일에 싸여있다. 이에 인터폴을 통해 미국측에 조니에 대한 정보를 요청해 조니가 '키스미'에 간다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조니의 것으로 추정되는 시집을 한 권 발견하고, 그 안에서 키스미에 대한 단서를 잡아낸다. 간신히 생긴 수사의 끈으로 무에스에와 요코와타리 형사는 가느다란 끈을 이어잡으며 범인의 진상을 향해 다가간다.
한 편에서는 정치가인 남편을 둔 야스기 교코의 이야기가 놓인다. 가정 안에서 아이들과의 불화없이 사는 법에 대해 수필을 쓴 그녀는 실상 대외적인 모습에만 신경쓰는 무심한 엄마에 불과하다.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듯하고 번듯해보이는 가정. 하지만 속은 썩을대로 썩어 있을 뿐이다. 그 가정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들.
마지막 축은 아내의 실종을 접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다. 건강이 좋지 않아 일을 쉴 수밖에 없었던 오야마다. 아내는 오야마다의 약값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호스티스로 일하기 시작한다. 남편으로 달갑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인 오야마다지만 얼마 전부터 그녀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긴 것 같은 낌새를 느낀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가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아내의 애인과 함께 도망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미심쩍은 상황. 이에 오야마다는 아내의 애인을 찾기 시작하고 그와 대면한다. 하지만 그 역시 그녀의 행방을 몰라 걱정하던 차. 자체적으로 조사를 시작한 두 사람. 그리고 범인의 정체를 알아내고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경찰측에서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선뜻 손을 대지 않으려 한다. 이에 범인을 직접 잡아넣기 위해 두 남자는 묘한 동맹을 맺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퍼즐의 조각처럼 보였던 것들이 차곡차곡 맞춰져 마침내 하나의 완성된 퍼즐로 완성됐을 때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증명이라는 이름답게 이 책 속의 사건은 인간의 본성을 두고 일종의 증명을 하고 있다. 과연 겉으로 냉정해보이고 한 치의 틈도 없어보이는 인간에게 인간다운 면모는 남아있는가?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내면은 얼마나 다른가. 인간의 내면은 속으로 얼마나 썩어문드러질 수 있는가 등에 대해 잘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 아닌가 싶었다.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던 인물이 드라마에서는 등장하기도 하고(무에스에의 소꿉친구나 야스기 교코의 선거 관련 인물.야스기 교코의 젊은 시절을 알고 있는 소마 하루미 등), 몇몇 설정이 다르기도 하고(드라마에서 야스기 교코는 몸이 불편해진 남편을 대신해 선거에 출마하고, 오야마다는 몸이 불편해 휠체어 신체를 지고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조니 살해사건에 대한 수사를 위해 무에스에가 직접 미국으로 떠나기도 한다) 인물의 성격도 좀 더 극적으로 개선되서 책보다 더 극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책도 나름대로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먼저 봐서 그런지 드라마쪽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모이무라 세이치의 다른 작품들도 접해보려고 하는데 과연 어떨런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