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는 김수로가 출연한다는 사실에 왠지 코믹물일 것 같아 꺼렸는데, 하도 남친님께서 보라고 닦달을 해서 보게 된 영화. 내 예상과 달리 코믹한 부분은 별로 없었고, 오히려 아이러니한 상황이 주는 긴장과 은근한 감동이 쏠쏠했던 영화. 

  평범한 샐러리맨인 동철. 하지만 은행에서 빚까지 내서 투자한 주식이 홀랑 망해버리고, 결국 그는 사채를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채 이자 갚은 것도 그에겐 쉽지만은 않은 일. 여느 때처럼 사채 이자를 갚기 위해 달려간 곳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만호를 만나게 된다. 절박한 마음에 한 아이를 납치한 두 사람. 하지만 아이의 부모는 100번이 넘게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아 유괴는 실패한다. 그리고 만호는 자신감이 붙었는지 새로운 목표물을 찾아 계획을 세우고 동철을 끌어들이려 한다. 일은 겨우 성공했으나, 동철에게 "네 딸을 유괴했다"는 전화가 걸려오며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간다. 딸이 유괴되도 자신도 유괴범이기때문에 신고를 할 수 없는 동철. 어떻게든 몸값을 제대로 받아내서 딸을 구하려고 하는데... 과연 그는 무사히 몸값을 받아 딸을 구해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사실 엄밀히 따지면 코미디 영화가 아니다. 그렇지만 김수로라는 배우의 이미지때문인지 코미디 영화로 홍보가 된 듯하다. 만약 이 영화가 좀 더 내용에 충실하게 홍보를 했더라면 관객이 좀 더 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사채와 유괴라는 사회적 소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현실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주인공에 기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박장대소하는 코미디는 아니지만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적 성격이 강하다. 물론, 그런 부분도 많이 나오는 편은 아니라 이도 저도 아닌 느낌도 줬지만...


  이 영화 속에는 사실 알고보면 꽤 괜찮은 배우들이 등장한다. 최근 인기상승중인 이선균이 만호로 등장하고, 오만석은 흥신소 사장으로, 연기파 배우인 오광록은 그들이 납치한 고등학생의 아버지로 나온다. 때문에 각각의 캐릭터들은 대체로 안정되어 있다. 그렇기에 별 거부감없이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이야기는 끝으로 향하면서 긴장은 풀어지고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강한 부정(父情)에 대해 보여주기 시작한다. 딸을 구해내기 위해 온갖 고통을 감내하는 아버지, 그리고 남편과 아이가 없으면 못산다고 이야기하는 아내. 이런 다소 작위적인 요소들이 아쉬움이 남았지만, 은근한 긴장감과 함께 현대 사회에서 가장의 위치(혹은 역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생각보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영화. 단순히 웃고 넘기기엔 주인공들을 둘러싼 현실이 너무나 씁쓸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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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인생을 바꾼다
한진규 지음 / 팝콘북스(다산북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 공부를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왕이면 잠을 좀 줄이면 공부를 더 많이 할 수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때문에 잠을 조금 줄여보면 되려 더 피곤해서 공부를 못하고, 그렇다고 잠을 너무 많이 자면 또 그 나름대로 이거 너무 많이 잔 거 아닌가하는 생각에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고, 수면에 대해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전문 수면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수면 전문의가 먼저 우리 일상 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실례를 유형별로 구분해 보여준다. 그 이후에는 수면에 대한 기본적인 생리 현상과 전문 지식에 대해 설명해놓고 있다. 실례는 샐러리맨 편, 전문직 편, 학습 및 교육편, 가족편으로 나누어 실어놓고 있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는 많은 직장인들, 코골이때문에 부대의 구박덩이가 된 군인, 밤 늦게까지 깨어 있다가 몇 시간 못 자고 학교에 가는 학생들 등.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사례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어떤 수면 장애를 겪고 있는지, 그리고 숙면을 취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취해야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예전에 대학 병원 이비인후과에 진찰을 받기 위해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코골이때문에 병원을 찾아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예 수면 다원 검사(수면 중 몸에서 나오는 생리적, 물리적 신호를 측정해서 갖가지 수면 질환과 장애를 찾아내는 검사법으로 수면 중 이상 행동 및 장애의 요인을 찾는 가장 안전하고 유용한 방법이라고 한다)를 하기 위해 하룻밤 병원에서 지낸다는 사실에 신기해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는 과연 숙면을 취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며, 만약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그런 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이 책에서는 숙면을 취하면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잠을 자지 않고 오랫동안 공부를 한다고 해서 결코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을 읽고 내게 적절한 수면 시간을 찾아 좀 더 건강하고 질적으로 풍부한 수면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면때문에, 혹은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아 생활이 힘들다면 이 책을 통해 과연 나의 생활 습관은 무엇이 잘못 된 것인지 한 번쯤 반성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시해준 6가지 숙면 법칙을 소개해본다.

1.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서 밤을 일찍 맞자. : 건강을 유지하려면 늘 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휴일에도 마찬가지) 아침에 해를 본 뒤 15시간이 지나면 멜라토닌이 뇌에서 분비되어 잠이 오게 된다.

2. 낮에 충분한 햇빛을 온몸 가득 받자 : 낮에 충분하게 햇빛을 보면 밤에 많은 양의 멜라토닌이 분비되어 쉽게 잠이 와서 깊은 잠을 잘 수 있다. 잠을 잘 자려면 햇빛과 친해지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햇빛은 수면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3. 야간 운동은 절대 금물 : 운동 자체는 혈액 순환을 좋게 만들어 주고 긴장감도 떨어트려 주어서 잠자는 데 도움을 주지만 잠자기 5~6시간 전에 운동을 끝마쳐야 한다. 저녁 시간이나 밤늦게 하는 운동은 결과적으로 잠드는 시간을 늦추는 것이므로 운동은 되도록 낮에 하는 게 좋다.

4. 무리하게 자려고 노력하지 말라. : 잠은 자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달아난다. 가능하면 침대 가까이에 있는 시계를 치우고 밤을 맞지하자. 자꾸 시계를 보면 마음만 초조해질 뿐이다.

5. 자기 전에 미리 생각을 정리하자 : 너무 생각이 많거나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은 그 자체가 각성 호르몬인 콘티솔을 자극하게 되어 쉽게 잠들지 못하게 만든다. 잠자기 딱 3시간 전에 '걱정의 시간'을 만들어 걱정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고 그 이후에는 깨끗이 잊자.

6. 잠이 오기 쉬운 몸을 만들자 : 체온이 내려가면 졸음이 찾아온다. 각성 작용이 있는 음식과 기호품을 피해야 한다. 담배도 불면을 부르는 요인을 만든다. 자기 전에 배가 너무 고플 경우에는 연한 두부나 따뜻한 우유, 달걀, 바나나를 조금 먹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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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silyelim 2007-08-04 0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면을 취하는 방법을 곡 알고 싶은데 이 책이 도움이 될까요?

이매지 2007-08-0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숙면을 왜 못취하는지에 따라 다르긴 한데, (코골이, 무호흡 등등 많더라구요)
일단 자기가 왜 숙면을 못 취하는지에 대해서는 파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문제가 있을 때 고치는 거라면 역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지만요 :)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한 번쯤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꺼예요 ^^
 

  로맨틱 영화를 언급할 때면 꼭 한 번씩 언급되곤하는게 바로 이 영화 <러브 어페어>다. 사실 간략한 스토리만 살펴봐서는 왜 이 영화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일단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사람들이 이 영화를 최고로 꼽고, 또 몇 번이고 다시 보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은퇴한 풋볼 선수인 마이크 갬브릴. 그는 바람둥이로 유명하지만, 방송계의 거목인 린 위버와 약혼을 발표하며 바람둥이 생활을 청산하나 싶다. 하지만 호주행 비행기를 탄 그에게 한 여자(테리 멕케이)가 나타나게 되며 상황은 바뀐다. 또 다시 바람기가 발동한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서로 약혼자가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짧은 만남으로 끝이 나는건가 싶었던 것도 잠깐, 불행인지 다행인지 비행기 엔진이 고장나 그들은 조그만한 산호섬에 비상착륙하고 그 곳에서 배를 타고 타히티로 향하게 된다. 그렇게 며칠 간을 함께 보낸 두 사람. 그저 불장난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결국 마이크는 자신의 진정한 짝이 테리라고 느끼고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을 달라고 한다. 3개월 뒤 엠파이어 스테이츠 전망대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 두 사람.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린과 파혼하고 풋볼 코치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마이크, CF 음악을 녹음하기도 하고, 유치원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테리. 그렇게 그들이 만나기로 한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사실 이 영화의 매력은 스토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배를 타고 타이티로 향하다가 테리와 마이크가 숙모를 찾아가는 장면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고, 또 그 곳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던 숙모와 테리의 대화, 그리고 숙모의 피아노 연주와 테리의 허밍과 같은 장면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둘러앉아 i will을 수화로 가르치는 장면이나 배 위에서 춤을 추는 장면 등의 다른 장면들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또 하나, 엔리오 모리꼬레의 음악이 빠졌다면 이 영화는 절반의 완성밖에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엔리오 모리꼬레의 서정적이면서 따뜻한 음악이 함께 어우러졌기에 더 멋진 영화로 탄생한 것이다. 

  약혼자가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만난다는 점에서 자칫 자극적인 설정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지만, 그런 화면없이 깔끔하게 두 사람의 사랑을 다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인상적인 영화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네트 베닝과 워렌 비티, 실제 부부인 두 사람의 출연으로 오히려 더 영화가 플러스 알파가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로맨틱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 봐야 할 영화가 아닐까 싶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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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08-0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참 멋지죠..이 영화를 계기로 둘이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배경도 한 몫 하구요.

이매지 2007-08-03 23:05   좋아요 0 | URL
이 영화 한 3번 정도 봤는데 볼때마다 너무 좋아요 >ㅁ<

가시장미 2007-08-04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어. 나도 다시 보고 싶어. 이 영화.. ^^ 근데, 매지의 사랑은 여전한가?
남자친구 이제 제대할 때 아닌가? ㅋㅋ 오랜만에 와서 궁금해서! 으흐

이매지 2007-08-04 10:01   좋아요 0 | URL
남친님은 벌써 예~엣날에 제대해서
학교 복학한지도 2년이 지났다구 ㅎㅎㅎㅎ
 
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품절


봄날의 저물녘. 대학을 갓 졸업했음에 분명한 젊은이들이 익숙지 않은 존댓말에서 해방되어 긴장이 풀린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다.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고, 신입사원들이 겨우 'ㅇㅇ과 ㅇㅇㅇㅇ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을 수 있게 되는 무렵이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한 계절.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일까? 이렇게 해서 나이를 먹어 가는 걸까? -43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보면 눈 깜짝할 새에 늙어버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게다가 그 일이 시대를 대표하는, 그런 사람은 어차피 몇 안 되는 법이라네. -49쪽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하고 최근 아쓰시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일생에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도 뭔가를 할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거대한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내와 함께 걸으면서. -60~1쪽

복 받은 사람은 종종 오만하다. 복 받은 상태가 당연한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라도 빠졌을 때 맨 먼저 느끼는 감정은 노여움이다. -69쪽

원래 우리 조상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든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맞힌다든지 하는 일을 했다나봐. 옛날에는 그게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점점 그 능력을 잃게 되면서 이단시되게 됐다지. 혈액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백혈구가 몰려와서 먹어치우잖아? 하지만 백혈구에게 무슨 의지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이물질을 감지하면 자연히 접근할 뿐이지. '그것'도 그런 게 아닐까. -101쪽

'도코노'가 지명인가 했더니 그 일족의 총칭이기도 한 모양이야. 여러 가지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짐나 지극히 온후하고 예절을 중시하는 일족이라는 점에서는 이야기가 일치하네. 애초에 '도코노(常野)'도 늘 재야에 있으라는 의미인 모양이더군. 권력을 갖지 말고 무리를 짓지 말고 땅에 녹아들어 살라는 주의라니, 상당히 똑똑한 사람들이 아닐까. 이런 벽지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야. 대륙에서 건너왔는지도 모르지. -116쪽

거울을 봐라. 지금 자기가 얼마나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잘 봐둬. 자기가 지금 얼마나 시시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지? 응? 안 그러냐? 그야 세상에는 시시한 사람이 수두룩해. 그런 사람들때문에 네가 불쾌한 일을 많이 당한 것도 인정하마.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시시한 사람이 되어도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그런 건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냐? -150쪽

우리는 빛의 아이들이다. 빛은 어디에나 든다. 빛이 드는 곳에는 풀이 나고, 바람이 불고, 생명이 있는 것은 숨을 쉰다. 그것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누구 덕도 아니다. (중략)
우리는 억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실수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빛이 드는 것처럼, 이윽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중략)
우리는 풀에 볼을 비비고, 바람에 머리칼을 나부끼며, 열매를 따서 먹고, 별과 새벽을 꿈꾸면서 이 세상에서 살자. 그리고 언젠가 이 눈부신 빛이 태어난 곳으로 다 함께 손을 잡고 돌아가자. -153쪽

그런 생각 안 들어?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하잖아. 고등학생은 정말 따분해. 하지만 학교를 안 다니면 일하지 않으면 안 되고 말이야. 사회에 나가도 또 똑같은 일만 반복하지. 아침에 일어나서 버스 타고 회사에 가.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 매일 밥하고 먹고 애 키우고, 내일도 밥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하고. 내내 똑같은 일만 반복하면서 나이를 먹는 거야. 주위 어른들을 봐도 다들 하나도 재미있어 보이지 않잖아. 그래도 역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182쪽

"케케묵은 말이긴 하지만, 난 '계속은 힘'이라는 말이 좋더라.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 아주 오래오래 계속해야 돼. 이것저것 해보고, 또 해보고, 계속 해봐야 돼. 그냥 잠깐 해보기만 해서 대체 뭘 알 수 있겠어? 다 함께 아주 머나먼 미래를 목표로 계속 걸어야 돼. 안 그러면 내가 여기 있는 의미가 없는걸."
"의미? 의미 같은 게 필요할까? 살아가는 의미 같은 걸 생각하니까 다들 불행해지는 거야."-183쪽

원래 큰일은 눈앞에서 당연한 것처럼 일어나는 거야. 자, 이제부터 큰일이다, 하는 식으로 찾아와주지는 않아. 눈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 눈을 속여가면서 무너뜨리는 거야. 원숭이가 초콜릿에 도토리를 섞어서 파는 이야기 알지? 섞다보니 어느새 오히려 도토리 양이 더 많아졌다, 그런 식인거야. -203쪽

매일을 소중하게 살아. 눈을 크게 뜨고, 귓속도 깨끗하게 후비고, 시야 끄트머리에서 일어나는 일도 놓치지 마. 그러면 자네 등에는 잡초가 안 나. 잡초가 안 나는 사람이 세상에 난 잡초를 뽑을 거야. -215쪽

저희는 일을 해서 돈을 법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하나씩 처리하고 돈을 받아서 그 돈으로 생활합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을 만든다, 물건을 판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술을 연마하기도 하고 지혜를 쥐어짜기도 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가는 눈앞에 있는, 우리 모두의 공통 문제를 해결해서 돈을 받는 게 아닙니까? 정치는 일반인이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자기들이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상합니다. 그들이 만약 우리보다 머리가 좋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합니다. 고용주는 우리입니다.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은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정치를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입니다. 지금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24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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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그릇 동서 미스터리 북스 153
마츠모토 세이조 지음, 허문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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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몇 년 간 일본의 다양한 추리소설들이 우리나라에도 속속 번역되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모방범>을 비롯해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과 같은 일련의 작품들은 우리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 크게 거부감이 없다. 또한, 추리소설의 매력을 단순히 재미나 트릭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적 병폐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꽤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초에 놓이는 인물이 바로 이 책을 지은 마츠모토 세이쵸이다. 사실 국내에 마츠모토 세이쵸의 작품은 많이 소개된 편이 아니다.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이 <너를 노린다>, <점과 선>, <모래그릇>인데, 어떤 순서로 볼까하다가 가장 평이 안 좋았던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되려 마츠모토 세이쵸의 다른 작품에 기대감이 커졌다. 

  이 책의 중심에는 조차장에서 발견된 한 남자의 시체가 놓인다. 얼굴이 으스러진 채 발견됐고, 만약 발견하지 못하고 기차가 움직였다면 토막토막 잘릴 뻔 한 시체. 기껏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견했지만 그의 신원에 대한 정보는 알기 어렵다. 조사 끝에 알아낸 것은 근처 허름한 바에서 그와 한 젊은 남자가 만나 이야기를 했고, 그들의 대화에서 얼핏 '가메다'라는 단어가 언급됐다는 것. 처음엔 인명이라 생각하고 조사했지만 이 역시 흐지부지. 결국 수사는 종결이 되고 임의수사로 넘어가게 된다. 이에 담당 형사인 이마니시는 혼자서 그 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기 시작하고, 도무지 관련이 없어보이는 몇 개의 실마리를 잡아 한 걸음씩 느리지만 범인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정체가 드러난 범인. 과연 그는 왜 그런 범행을 저질렀을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아직 이 책을 보지 않은 독자라면 부디 나처럼 작품해설을 먼저 읽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여느 때처럼 작품해석부터 읽었다가 범인의 실명까지 거론해버려 기운이 빠져버렸던. 하지만 이미 범인을 알고 있어도 범인의 행각보다는 이마니시의 수사가 중심에 놓이기때문에 어쩌면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일본에서는 영화와 드라마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하니 이 책을 읽고 관심이 생긴다면 관련 작품들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할 듯 싶다. (나도 2004년에 나온 드라마 '모래 그릇'을 곧 볼 예정이다.)

  사실 마츠모토 세이쵸의 작품을 처음 접해보는 것치곤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파 추리소설이라고 하지만 이 책의 소재인 '한센병'에 대한 부분은 크게 다뤄지지 않고 있어 '이 정도를 과연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좀 더 이 부분에 대해 깊게 파고 들었다면, 혹은 좀 더 범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이 작품은 전적으로 이마니시 형사가 혼자 발로 뛰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이 벽에 부딪힐 때면 갑자기 이마니시가 우연한 계기로 돌파구를 마련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동생과 아내의 대화를 듣다가 돌파구를 발견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신문을 보다가, 어쩔 때는 밥먹으면서 옆 테이블의 대화를 듣다가 사건의 실마리를 잡기도 한다. 이건 뭐 한 두 번 일 때는 괜찮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이어지니 '이번에 또야?'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또한 애초에 왜 이렇게 이마니시가 이 사건에 매달리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 분명치 않아 아쉬웠다. 만약 이게 이마니시가 퇴직하기 전 담당한 마지막 사건이라면 이해가 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사회파 추리소설이니만큼 트릭을 밝혀내는 데에는 별로 치중하지 않았지만, 여기서의 트릭은 '과연 이런 게 가능할까?'싶었다. 이 책만으로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었지만 과연 <점과 선>이나 <너를 노린다>는 어떤 충격(?)으로 다가올런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더불어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마츠모토 세이쵸의 작품들을 드라마로라도 한 번쯤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모래그릇>을 비롯해 <검은 가죽 수첩>, <짐승의 길>, <나쁜 녀석들>, <푸른 묘점>, <파도탑>, <손가락> 등등 꽤 많은 드라마들이 제작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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