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품절


봄날의 저물녘. 대학을 갓 졸업했음에 분명한 젊은이들이 익숙지 않은 존댓말에서 해방되어 긴장이 풀린 얼굴로 집으로 돌아간다. 새 회계연도가 시작되고, 신입사원들이 겨우 'ㅇㅇ과 ㅇㅇㅇㅇ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을 수 있게 되는 무렵이다. 가슴 한구석이 아릿한 계절.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일까? 이렇게 해서 나이를 먹어 가는 걸까? -43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원치 않는 일을 하지.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보면 눈 깜짝할 새에 늙어버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게다가 그 일이 시대를 대표하는, 그런 사람은 어차피 몇 안 되는 법이라네. -49쪽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하고 최근 아쓰시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이 일생에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기도 뭔가를 할지도 모른다. 자기도 모르게 거대한 역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다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내와 함께 걸으면서. -60~1쪽

복 받은 사람은 종종 오만하다. 복 받은 상태가 당연한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라도 빠졌을 때 맨 먼저 느끼는 감정은 노여움이다. -69쪽

원래 우리 조상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든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맞힌다든지 하는 일을 했다나봐. 옛날에는 그게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점점 그 능력을 잃게 되면서 이단시되게 됐다지. 혈액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백혈구가 몰려와서 먹어치우잖아? 하지만 백혈구에게 무슨 의지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야. 이물질을 감지하면 자연히 접근할 뿐이지. '그것'도 그런 게 아닐까. -101쪽

'도코노'가 지명인가 했더니 그 일족의 총칭이기도 한 모양이야. 여러 가지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짐나 지극히 온후하고 예절을 중시하는 일족이라는 점에서는 이야기가 일치하네. 애초에 '도코노(常野)'도 늘 재야에 있으라는 의미인 모양이더군. 권력을 갖지 말고 무리를 짓지 말고 땅에 녹아들어 살라는 주의라니, 상당히 똑똑한 사람들이 아닐까. 이런 벽지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야. 대륙에서 건너왔는지도 모르지. -116쪽

거울을 봐라. 지금 자기가 얼마나 부끄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잘 봐둬. 자기가 지금 얼마나 시시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지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지? 응? 안 그러냐? 그야 세상에는 시시한 사람이 수두룩해. 그런 사람들때문에 네가 불쾌한 일을 많이 당한 것도 인정하마.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시시한 사람이 되어도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 그런 건 누구보다도 네가 가장 잘 알고 있지 않냐? -150쪽

우리는 빛의 아이들이다. 빛은 어디에나 든다. 빛이 드는 곳에는 풀이 나고, 바람이 불고, 생명이 있는 것은 숨을 쉰다. 그것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누구 덕도 아니다. (중략)
우리는 억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실수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빛이 드는 것처럼, 이윽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중략)
우리는 풀에 볼을 비비고, 바람에 머리칼을 나부끼며, 열매를 따서 먹고, 별과 새벽을 꿈꾸면서 이 세상에서 살자. 그리고 언젠가 이 눈부신 빛이 태어난 곳으로 다 함께 손을 잡고 돌아가자. -153쪽

그런 생각 안 들어?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하잖아. 고등학생은 정말 따분해. 하지만 학교를 안 다니면 일하지 않으면 안 되고 말이야. 사회에 나가도 또 똑같은 일만 반복하지. 아침에 일어나서 버스 타고 회사에 가.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 매일 밥하고 먹고 애 키우고, 내일도 밥 먹을 수 있을까 걱정하고. 내내 똑같은 일만 반복하면서 나이를 먹는 거야. 주위 어른들을 봐도 다들 하나도 재미있어 보이지 않잖아. 그래도 역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182쪽

"케케묵은 말이긴 하지만, 난 '계속은 힘'이라는 말이 좋더라.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 아주 오래오래 계속해야 돼. 이것저것 해보고, 또 해보고, 계속 해봐야 돼. 그냥 잠깐 해보기만 해서 대체 뭘 알 수 있겠어? 다 함께 아주 머나먼 미래를 목표로 계속 걸어야 돼. 안 그러면 내가 여기 있는 의미가 없는걸."
"의미? 의미 같은 게 필요할까? 살아가는 의미 같은 걸 생각하니까 다들 불행해지는 거야."-183쪽

원래 큰일은 눈앞에서 당연한 것처럼 일어나는 거야. 자, 이제부터 큰일이다, 하는 식으로 찾아와주지는 않아. 눈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 눈을 속여가면서 무너뜨리는 거야. 원숭이가 초콜릿에 도토리를 섞어서 파는 이야기 알지? 섞다보니 어느새 오히려 도토리 양이 더 많아졌다, 그런 식인거야. -203쪽

매일을 소중하게 살아. 눈을 크게 뜨고, 귓속도 깨끗하게 후비고, 시야 끄트머리에서 일어나는 일도 놓치지 마. 그러면 자네 등에는 잡초가 안 나. 잡초가 안 나는 사람이 세상에 난 잡초를 뽑을 거야. -215쪽

저희는 일을 해서 돈을 법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하나씩 처리하고 돈을 받아서 그 돈으로 생활합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을 만든다, 물건을 판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술을 연마하기도 하고 지혜를 쥐어짜기도 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가는 눈앞에 있는, 우리 모두의 공통 문제를 해결해서 돈을 받는 게 아닙니까? 정치는 일반인이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자기들이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상합니다. 그들이 만약 우리보다 머리가 좋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합니다. 고용주는 우리입니다.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은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정치를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입니다. 지금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24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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