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982년생 작가. 80년대에 태어난 작가를 만나는 것은 이제는 낯선 일도 아니지만 아직까지 괜시리 질투가 난다. 변변한 글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있는 내게(사실 달리 소설을 써보겠다는 생각도 없지만) 문학상에서 당당하게 인정받고,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물론, 그 재능도 부럽지만. 어쨌거나 시기심과 궁금증을 안고 다소 얇은 이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문학에서도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등장인물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박주영의 <백수 생활 백서>에서는 아예 책만 읽는 자발적 백수가 등장했다면 이 책 속에는 정말 글을 쓰고 싶은데 번번이 언론고시에서 고배를 마시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자그마치 5년, 차라리 1차부터 안됐다면 공부를 더 하면 되지만 3차시험인 작문시험에만 가면 미끄러지는 상황. 주인공은 굴욕으로 가득찬 삶을 더는 견딜 수 없어 자살을 결심하고, 감기약 200알을 구입하여 온다. 하지만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 전 할머니에게 불려가 미국에 있는 가출한 고모를 만나고 오라는 임무를 맡게 된다. 엉겹결에 밀명을 받고 떠나게 된 주인공. 그 곳에서 고모를 만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돌게 되는데...

  이야기는 주인공인 은미의 이야기와 고모가 할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이 있어요?"라는 첫 문장은 이 소설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은미는 기자가 되어 글을 쓰며 사는 삶을 꿈꾸고, 은미의 친구인 민이는 여자로의 삶을 꿈꾼다. 그리고 인간은 여러가지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꿈꾼다. 저마다의 목표에 환상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현실은 마치 노랗게 보이는 달의 원래 모습처럼 회색빛이다. 목표에 도달했을 때 그에 대해 '차라리 꿈으로 남았으면 좋았을 걸', '환상이 깨져버렸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고 자신의 삶을 찾은 사람, 예를 들어 고모의 경우에는 그 현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꿈꿔온 것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그리고 도달은 했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에 실망했을 때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 그것이 이야기의 끝에서 은미의 머리에 보송보송하게 난 솜털처럼 내 마음에도 조금은 자라게 된 것 같다.

  작가가 처음 써보는 장편 소설이라고 하는데 처음치곤 제법 매끈한 느낌이 들었다. 구성도 나쁘지 않았고, 문체도 걸리는 느낌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젊은 작가라 그런지 왠지 깊이감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글에 대한 재능은 있지만 아직 연륜이 쌓이지 않은 작가의 손에서 나온 글이기에 그렇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하고, 그 경험들이 바탕이 되어 작가 내면의 깊이가 생긴다면 이 글보다 훨씬 좋은 글을 써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젊은 작가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탈적이고 개성있는 글쓰기(나쁘게 말하면 일단 튀고 보는 글쓰기)는 아니었지만, 젊은 작가만의 감각과 애정은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글을 만날 수 있을까 조금은 기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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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이 2007-08-27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작가의 신선함을 만나 보고 싶네요.^^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이면 그 상 이름값은 할테죠?
잘~ 읽고 가요. 추천도!!!

이매지 2007-08-27 21:54   좋아요 0 | URL
에고고. 추천 감사합니다 :)
이 책도 방출할 것 같은데 쬐금만 기다려주세요 ㅎㅎ

나란히 2007-09-03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아지 그림 정말 웃겨요. ㅎㅎ

이매지 2007-09-04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웃기다니 -_ㅜ
나름 진지한 강아지라구요! ㅎㅎㅎ
 
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구판절판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7쪽

한때 내가 목표로 여겼던 삶의 지점들은 이제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먼 곳으로 물러나 있었다. 대신 그곳에 닿을 때까지만 수용하기로 했던 굴욕들이 내 삶을 통째로 채워버린 것이다. 오 년. 자그마치 오 년이었다. 순간 끝장을 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14쪽

노인들의 부부싸움은 오래된 고무줄 같다. 끊어질 듯하면서도 절대 끊어지지 않고, 질기고, 우스꽝스러우며 흐느적거린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절대 원위치에 탄력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늘어난 자리에 헐겁게 멈춰 있다. 부부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가 바뀌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닫게 되지만 끝내 그걸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싸움은 며칠 동안 개정과 폐정을 반복하며 꾸준히 이어졌다. -41쪽

동물이 다시 가길 원치 않았던 우주로, 인간들은 끊임없이 되돌아가요. 우주에 다녀온 뒤 다음 비행을 포기했던 비행사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죠. 그건 인간만이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기 때문일 거예요. 내가 선택한 대로 사는 인생이죠.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이 무엇 하나 동물보다 나은 것이 있겠어요? -108~9쪽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고모는 부드럽게 웃었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
"그래서?"
"자유지."-145쪽

달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회색빛이에요. 지구에서 봐온 포근한 노란색은 어디에도 없죠. 흑백의 모래더미를 바라보고 있으면 간혹 제가 달에 있는 건지 시골의 채석장에 있는 건지 잘 구분되지 않아요. 팀원들 중 몇몇은 그 때문에 자신들의 환상이 깨져버렸다고 투덜거리기도 하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달의 진짜 빛깔이 어떨지 그 누가 알 수 있겠어요? 화성에서는 달이 분홍색으로 보일 수도 있고 금성에서는 녹색으로 보일 수도 있죠. 외계인에게는 파란색으로, 물고기들에게는 주황색으로 보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저 바라볼 뿐이죠. 하지만 이 세계가 오해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떠올려보면 분명히 신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분을 향해서 큰 소리로 노래라도 불러드리고 싶어요. 지구를 벗어나면 우주, 또 우주를 벗어나면 무엇이 있을지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거든요.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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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영화에 대해 알게 된 것은 1편만을 공개한 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총 3편의 작품 중 1편을 공개했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일까? 1편만 봤지만 세세한 배경과 잔잔한 이야기에 끌려 결국 영화까지 보게 됐다. 



  옴니버스 식으로 구성된 영화의 중심에는 타카키와 아카리가 놓인다. 1편에서는 둘의 초등학교-중학교 시절이 그려진다. 아직은 어리지만 둘 사이의 먼가 통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 하지만 아카리가 중학교를 다른 지방에서 다니게 되며 연락이 끊긴다. 하지만 아카리의 편지로 둘은 다시 연락을 시작한다. 느릿느릿 편지가 오가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두 사람. 하지만 타카키도 전학을 가게 되고, 전학 가기 전 둘은 한 번 만나기로 하는데... 2편에서는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타카키를 카나에라는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본다. 상냥하지만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타카키의 모습이 그려진다. 마지막 3편에서는 사회인이 된 후의 타카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끊임없이 아카리를 찾아 헤매는 타카키의 모습. 닿을 수 없는 두 사람의 모습이 엇갈리며 등장한다. 

  이 영화는 배경이나 음악은 영화같았지만 그 내용은 현실적이었다. 만약 더 영화같았다면 멀리 떨어져 지내는 두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겠지만, 이 영화 속의 두 주인공은 결국 만나지 못한 채 가슴에 서로를 묻어두고 아련한 느낌만을 간직할 뿐이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인 초속 5센티미터. 그 느릿느릿한 시간처럼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 간다. 며칠씩 걸리는 편지 교신, 만나기로 한 날 눈이 와 느릿느릿 가는 기차, 그리고 십 년이 지나도 아카리를 잊지 못해 추억을 더듬는 타카키의 모습이 마치 벚꽃이 서서히 궤적을 그리며 땅에 떨어지는 것 같이 아련한 느낌을 줬다. 


  영화를 보고 나니 신카이 마코토의 다른 작품들을 한 번쯤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별의 목소리>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그와 그녀의 고양이>과 같은 작품들도 접해봐야겠다. 극적인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렇기에 되려 내 마음에 돌 하나를 던져 잔잔한 물결을 만들어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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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8-25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등장인물들의 성장 후를 보면 남자는 분명 여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노골적으로 보여지는 반면 여자는 거의 생각을 하는 듯 않하는 듯 하더군요.

이매지 2007-08-25 18:18   좋아요 0 | URL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는 말이 생각났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결혼을 준비하는 여자 앞에서.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메피님의 영향도 있어요 ㅎㅎㅎ

비로그인 2007-08-25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면 하나만으로도 짱먹을수 있는 애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강추합니다 :)

이매지 2007-08-25 21:52   좋아요 0 | URL
생각난김에 다운받아야겠군요 ㅎㅎㅎ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지만 내가 본 작품들은 거의 최근 작품들 뿐이었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을 보면서 작품 자체의 재미도 있었지만 감독의 이후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다소 단순한 스토리에 뭔가 촌스러운 느낌도 들었지만 환경에 대한 메시지와 함께 위기에 처한 바람 계곡을 구해내는 긴장감도 느낄 수 있었다.

  거대 산업 문명이 붕괴한 뒤, 황폐해진 대지와 썩은 바다로 뒤덮인 지구. 여기에 유독한 독기를 뿜어내는 부해까지 날로 확장되어 간다. 부해가 되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살아가기 힘든  상황. 그런 상황에서 아직 바람 계곡은 그나마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르메키아의 대형 비행선이 바람 계곡에 추락하게 되고 그 비행선에서 거신병의 알이 발견된다. (거신병은 불로 7일간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태워버렸다고 함) 얼마 지나지 않아 거신병의 알을 찾기 위해 토르메키아 함대가 오고 바람 계곡은 그들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거신병을 깨워 무기로 쓰려고 하는 토르메키아 군을 막기 위해 페지테국에서 오무 무리를 바람 계곡으로 보내게 되고, 나우시카는 오무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지는데...

  간단한 스토리지만 이야기는 환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저지른 실수때문에 점차 독에 잠식되어가는 지구. 그런 지구를 살려보겠다고 인간은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경을 더 파괴하고 회복하지 못할 상태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인간의 이기심에 환경 회복은 이용될 뿐 실질적인 대안은 되지 못한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 한 걸음씩 멸망의 길로 가고 있을 뿐. 자연과의 공존과 정복, 그 선택은 인간의 몫이지만 책임또한 인간의 몫으로 돌아온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우시카는 부해가 스스로 자연을 정화하기 위해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된다. 인간이 아닌 자연 스스로가 세상을 정화시키고 있었다. 자연을 마음으로 대하는 나우시카. 그녀의 진심이 분노에 찬 오무도, 차츰 부해에 잠식되가는 대지에 살고 있는 인간도 포용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약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지만 현대 사회에 주는 교훈은 여전한 것 같다. <원령공주>랑 비슷한 느낌이라 <원령공주>를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라면 더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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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8-25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야자키 애니의 첫번째로 감상을 했던 작품이고 아직까지 이 애니는 여전히 명작입니다.^^

이매지 2007-08-25 13:03   좋아요 0 | URL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이랑 라퓨타를 꼽으시더군요.
라퓨타도 봐야할텐데 그건 또 언제 볼라나 -ㅅ-;;
 
거침없이 빠져드는 역사 이야기 -경제학 편 청소년을 위한 교양 오딧세이 1
황유뉴 지음, 이지은 옮김 / 시그마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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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에 행정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행정학이 정해진 범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접 학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중에서 경제학적인 부분과 관련된 공부를 하다가 한 번쯤은 경제학 흐름에 대해 정리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차에 이 책을 만나게 됐다. 

  이 책은 경제학의 흐름을 빠르게 훑어갈 수 있게 굵직굵직한 학자와 사건 중심으로 되어 있다. 그 때문에 나처럼 한 번 빠르게 흐름을 정리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괜찮겠지만, 깊이있게 경제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이 본다면 지나치게 수박 겉핥기 식의 책이 아닐까 싶다. 각각의 이론도 설명을 한다기보다는 교과서를 보는 것처럼 딱딱한 느낌이 들어서 그 점 또한 아쉬웠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경제학에 대해 짚어가고 있기 때문에 다소 얇은 책에 지나치게 많은 내용이 들어간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개별적인 이론에 대해 한 번씩 공부한 뒤에 이 책으로 마무리 정리를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다. 경제학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끽해야 3장 남짓에 내용을 담으려니 역시 너무 간략했다. 또한, 작가가 중국인이기때문인지 알게모르게 중화중심적인 사상이 묻어나는 것 같아 읽으면서 찝찝한 생각도 들었다. 보다 깊이있고 균형감각 있는 입문서가 아니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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