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구판절판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엔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 -7쪽

한때 내가 목표로 여겼던 삶의 지점들은 이제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먼 곳으로 물러나 있었다. 대신 그곳에 닿을 때까지만 수용하기로 했던 굴욕들이 내 삶을 통째로 채워버린 것이다. 오 년. 자그마치 오 년이었다. 순간 끝장을 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14쪽

노인들의 부부싸움은 오래된 고무줄 같다. 끊어질 듯하면서도 절대 끊어지지 않고, 질기고, 우스꽝스러우며 흐느적거린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절대 원위치에 탄력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늘어난 자리에 헐겁게 멈춰 있다. 부부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가 바뀌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닫게 되지만 끝내 그걸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싸움은 며칠 동안 개정과 폐정을 반복하며 꾸준히 이어졌다. -41쪽

동물이 다시 가길 원치 않았던 우주로, 인간들은 끊임없이 되돌아가요. 우주에 다녀온 뒤 다음 비행을 포기했던 비행사는 지금껏 단 한 명도 없었죠. 그건 인간만이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살기 때문일 거예요. 내가 선택한 대로 사는 인생이죠. 그것마저 없다면 우리의 삶이 무엇 하나 동물보다 나은 것이 있겠어요? -108~9쪽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고모는 부드럽게 웃었다.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네가 나를 보러 와준 것처럼 기대 밖의 좋은 일도 있는 거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 거고. 고모는 그걸 알기 때문에 세상에 빚진 것이 없어."
"그래서?"
"자유지."-145쪽

달은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회색빛이에요. 지구에서 봐온 포근한 노란색은 어디에도 없죠. 흑백의 모래더미를 바라보고 있으면 간혹 제가 달에 있는 건지 시골의 채석장에 있는 건지 잘 구분되지 않아요. 팀원들 중 몇몇은 그 때문에 자신들의 환상이 깨져버렸다고 투덜거리기도 하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달의 진짜 빛깔이 어떨지 그 누가 알 수 있겠어요? 화성에서는 달이 분홍색으로 보일 수도 있고 금성에서는 녹색으로 보일 수도 있죠. 외계인에게는 파란색으로, 물고기들에게는 주황색으로 보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요. 그저 바라볼 뿐이죠. 하지만 이 세계가 오해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떠올려보면 분명히 신은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고, 그분을 향해서 큰 소리로 노래라도 불러드리고 싶어요. 지구를 벗어나면 우주, 또 우주를 벗어나면 무엇이 있을지 저는 상상조차 할 수 없거든요.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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