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룸 1
루퍼트 홈즈 지음, 양인숙 옮김 / 시와사회 / 2006년 3월
품절


사람들은 떠들어대서 당황하고 창피해할 일에 대해선 마음속으로만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들에 대해선 좀처럼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인 나는 그런 것들을 발설함으로써 독자들에게는 듣는 즐거움을 주고, 작가인 나에게는 당뇨병 환자가 피하 주사에 반감을 갖지 않거나 복서가 날카로운 강타를 두려워하지 않게되듯이 당혹감과 모욕감을 쉽게 무시해버릴수 있도록 단력하는 것이 나의 직업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페이머스 작문' 기법을 가르치는 '페이머스 작가양성학교'에 처음으로 원서를 내면서 직업관 서술란에 의무적으로 써넣었던 주술 같은 서술일 뿐, 실제로는 어려운 것이었다.
-13~4쪽

"뉴먼&뉴베리 출판사가 내게 원하는 것은 당신에 대한 책이에요. 하지만 과대광고성 책도 아니고, 중상모략성 책도 아니죠. 내 글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난 주제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요. 모든 결론을 독자에게 맡기죠."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균형 잡힌' 걸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은 과대광고성 책을 좋아하죠. 사실 독자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의 결론에 도달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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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7-12-26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으로도 있군요- 영화만 봤었어요 ㅋ

이매지 2007-12-26 00:59   좋아요 0 | URL
북토피아에 책시사회로 올라왔길래 겸사겸사 보고 있어요 ㅎ
영화도 보려고 했던 참이라.
뭐 평들은 별로지만요 ㅎㅎ
 
비밀의 계절 2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구판절판


유령은 우리 꿈을 통해서 나타난다. 왜냐? 꿈을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아득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사멸한 별빛이 투사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4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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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 봤을 때는 독특한 표지(화면보다는 실제가 낫다.)와 함께 두께에 압도됐는데, 정작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니까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책이었다. 1992년 '까치글방'에서 한 번 출간된 적 있는 책으로 번역을 손봐 다시 출간된 것으로 도나 타트의 데뷔작이다. 현재 영화 판권이 기네스 펠트로의 남동생인 제이크 펠트로에게 넘어가 진행중이라고 하는데, 책을 읽고 나니 영화로 만나는 이 책은 어떨 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고전을 인용하기를 좋아하고, 그리스어, 라틴어 등을 일상 대화에 녹여 사용하는 햄든 대학교의 고전어과 학생들. 뭔가 현실과는 동떨어져보이는 이들의 틈에 캘리포니아에서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듯 햄든으로 온 리처드가 끼어들게 된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된 그리스어에 의외로 매혹된 리처드는 본격적으로 고전어학과 수업을 수강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찾아간 고전학과 담당 교수인 줄리언 모로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이 (겨우 다섯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아 받아줄 수 없다고 거절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고전어학과 학생들의 논쟁에 끼어들어 능력을 인정받아 고전어학과에 등록하게 된다. 다른 곳이었다면 절대 얽히지 않았을 다섯 명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 리처드. 겉으로 보기엔 모두 리처드를 배려해주지만 리처드는 알게모르게 소외감을 느끼며 생활한다. 그리고 하나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리처드는 친구들과 한 배에 올라타게 되는데...

  미스터리로 따지자면 이 책은 도서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철저히 가해자의 입장에서 쓰여지고 있는 이 책을 읽노라면 왜 그 인물을 없앨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처음에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시간을 할애한다면, 중반 이후부터는 그들을 둘러싼 첫번째 비밀이 밝혀지고, 리처드와 그들 사이에 놓여있는 장벽이 무너지며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강둑이 무너지며 서서히 공포가 밀려온다.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공범이 되어버린 화자는 사건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도, 그렇다고 멀리서 수수방관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끊임없이 죽은 친구의 환영에 시달리게 된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사건과 관련된 이들은 경찰이나 FBI의 수사망이 아닌 자신 마음에 존재하는 '추억이라는 불리는 유령'과 살아가는 현실에 서서히 파멸해간다. 

  사실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첫 번째 사건의 경우에는 비현실적이라 모호하게 그려지고, 두 번째 사건의 경우에는 그저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뿐 화자 스스로가 언급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애초에 모든 범죄가 공개되고 범인도 알고 있기에 반전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단순히 사건 자체만 두고 본다면 꽤 밍밍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글을 읽어가게 만드는 것은 치밀한 심리 묘사이다.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혹시나 사건에 대해 섣부르게 입을 열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난 뒤에는 혹시나 경찰이 눈치채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이들은 끊임없이 긴장하게된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술이나 마약, 수면제 등에 의지해보기도 하지만 그들의 불안과 공포는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 간에 균열이 일어나 서서히 무너져내려가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책을 읽고 있는 내게도 어떤 불안감이 생겨 내가 책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책 속에서 이들과 함께 서서히 공포에 질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한 몰입감과 대화로 인한 빠른 전개. 그리고 책을 넘길 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조여오는 정신적인 압박이 인상적이었던 책이었다. 이런 책을 데뷔작으로 쓴 작가라면 다른 작품들을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단순히 사건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까지도 모두 공범으로 만들어버리는 책이 아닐까 싶다. 

 
  덧) 전체적인 내용은 마음에 들었지만, 몇 군데 번역상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웠다. 예를 들어, 대화 부분에서는 구어체와 문어체가 섞여있었고, 홈즈와 왓슨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홈스와 웟슨이라고 표기되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뭐 홈스, 웟슨 정도는 그럴 수도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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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2-25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해자의 입장에서 쓰여진 추리소설이라 흥미가 가네요.
이매지님 크리스마스네요. 즐거운 날 되세요. ㅎㅎ

이매지 2007-12-25 20:53   좋아요 0 | URL
가해자라고 하기도 뭐하고 공범자라고 하기도 뭐한 화자라서
오히려 재미있는 책이었어요 :)
바람돌이님도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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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연극이나 희곡에 별로 관심은 없지만 귀에 익은 작품들이 몇 있다. 그 중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게 바로 이 작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일 것이다. 지금도 꾸준히 무대에 올려지고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이 작품을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번역되서 나오는 게 없어 못 읽어봤는데 이제서야 출간되어 읽기 시작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한 때는 꽤 부유했던 남부 출신의 블랑시가 모든 것을 잃고 동생인 스텔라를 찾으며 시작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된 블랑쉬. 하지만 극락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그 곳에서 블랑쉬는 스텔라와 그의 남편인 스탠리를 만난다. 스탠리와 블랑시는 빈번히 부딪히게 되고, 우연한 기회에 블랑시의 진짜 과거를 알게 된 스탠리는 그녀의 과거를 폭로해 블랑시의 마지막 희망까지 앗아간다. 

  다소 동물적인 모습을 보이는 스탠리도 흥미로운 인물이었지만, 이 극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역시 주인공 블랑시다. 돈과 직업, 그리고 명예까지 모두 잃은 블랑시, 하지만 그녀에게는 묘하게 현실 능력이 부재한다. 예전과 같은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없음에도 끊임없이 편안한 생활을 추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낮게 평가한다. 어쩌면 그녀가 과거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위해 동생을 찾아왔을 때에도 그녀의 그런 현실에 대한 인식이 발목을 잡았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자신에게 좋을 대로 현실을 해석해버리고, 자신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애써 눈을 피하는 블랑시의 태도는 우리 모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학력위조처럼 자신을 그럴싸하게 보이게 하고 싶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해 결국 그 거짓말의 수렁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처럼 블랑시의 행동은 우리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욕망, 그리고 자신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덫에 발목이 잡혀버린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곡에 대한, 혹은 작품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서인지 오히려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고 무릎을 쳤다. 비단,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상징물 뿐만 아니라 '종이갓'이나 '포커게임'과 같은 세세한 요소들에 감춰진 의미들이 인상적이었다. 선입견이 생겨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겠지만 작품 해설을 먼저 읽고 작품을 읽는 것도 좋을 듯 싶었다. 지금도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 작품이라 연극 혹은 영화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 지 궁금하다. 왠지 청순한 이미지의 비비안 리가 그려내는 블랑시는 어떤 느낌일 지도 기대된다. 희곡은 몇 편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작품의 무게와는 관계없이 이 작품만큼은 여느 희곡보다 눈 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라 더 흥미롭게 읽어갈 수 있었다. 기회가 닿으면 테네시 윌리암스의 다른 희곡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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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구판절판


인생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암흑의 균열 같은 '운명의 틈'이 과연 문학 밖에도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이 문학작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실 속에서도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 삶의 어두운 균열이 바로 운명의 틈새인 듯하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병적인 집착이 바로 그것인 듯하다.
아 무아. 리스투아르 뒨 드 메 폴리. (나의 어리석은 인생 이야기).-23쪽

우리 내부의 저 집요한 목소리가 왜 이렇듯이 우리를 괴롭히는가? 이 목소리가 바로 우리에게 우리의 살아 있음, 우리가 타고난 필멸의 팔자, 우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에 항복하기를 두려워하고, 우리 존재를 살아 있는 다른 어떤 것보다 비참하게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바로 고통이 아니던가? 어린 시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 세계와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라는 것, 우리의 혀가 마르고 무릎에 상처가 나도 어느 누구, 어떤 존재도 우리의 고통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 우리의 고통, 우리의 아픔은 우리만의 것임을 깨닫는, 참으로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도 진정으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 자신 혹은 자아라고 하는 것을 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75쪽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성에 의한 통제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은 우리같이 이성의 통제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여기에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문명화한 모든 사람들(우리뿐 아니라 고대인들까지도)은 생래적인 동물적 자신의 일방적인 억압을 통하여 문명화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 방 안에 있는 우리는 그런 그리스인, 그런 로마인들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우리는 의무, 신심, 충성, 희생, 이러한 것들을 강박증처럼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것들이 우리 현대인들의 입맛에는 끔찍한 것들이 아니겠는가. -82쪽

불면증만큼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 혹은 사람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종종 나는 새벽 네시까지 그리스어 책을 읽었다. 그러노라면 눈이 따갑고, 머리가 어지럽기가 일쑤이다. 물론 그 시각의 먼머스 홀에 불이 켜져 있는 방은 내 방뿐이었다. 그리스어에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 알파와 베타가 삼각형과 쇠스랑 같아 보일 때면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 전부터 즐겨 읽던 소설이어서, 혹 내 기분을 좀 바꾸어줄 수 있을까 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두고 틈날 때마다 읽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우울한 상태에서 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한 일은 겨우 개츠비와 나 사이의 비극적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 정도였다. -137쪽

내가 알기로,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개성이 확립될 즈음에는 대단히 결정적인 어떤 준비 시기가 있는 듯하다. 내게 그 시기는 햄든에서 맞은 첫 가을학기였다. 그때의 일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때 내 몸에 붙은, 옷이나 책이나 심이저는 음식에 대한 취향-다분히 고전어과 친구들과 같은 수준에서, 혹은 웃도는 수준에서 몸에 붙인-까지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게 그대로 남아있다. -158쪽

지내놓고 회상하기는 쉽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의 평화에만 관심을 두느라고 이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나 자신만의 평화를 찾기는 찾았던가? 당시에는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한 것으로 보이더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렇다. 당시의 나에게, 인생은 상징적 거미줄, 우연의 일치, 기묘한 징조, 음산한 전조로 이루어진 것일 뿐이었다. 내가 보기에 모든 것은 정확하게 아귀가 맞은 채로 돌고 또 돌고 있었다. 은밀하고도 자애로운 신의 섭리는 드러나되 차등을 두면서 드러났다. 나는 이 무서운 진실 앞에서 전율했다. 날마다 아침이 오듯이 이러한 섭리(나의 미래, 나의 과거, 나의 총체적인 삶의 모습)는 언제나 내 앞에 어른거렸다. 그런 느낌이 나를 괴롭힐 때면 나는 늘 침대에 꼿꼿하게 앉아 머리를 싸쥐고는 했다. -174쪽

어떤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갑작스럽고 또 이상할 경우, 사건의 당사자는 기이하게도 초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히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행동은 꿈에서 본 것인 양 하나씩 하나씩 끊어져 보이게 된다. 그러면 손의 움직임 하나하나, 말이 된 문장 하나하나가 영원을 가득 채우는 느낌을 준다. 그 경우 하찮은 것, 작은 것-가령 풀줄기에 앉은 귀뚜라미, 나뭇잎 뒤의 엽맥 같은-은 확대되면서 배경으로부터 선명한 초점으로 다가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호수에서 풀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갈 때 내가 경험했던 초현실이다. 현실이기에는 너무나 선명한 그림 같았다. 자갈 하나하나, 풀잎 하나하나가 내 눈에는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은 너무 푸르러 우러러볼 수가 없었다. -183쪽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위선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정도가 심하다. 이 미국 땅에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그들은 돈만 없을 뿐 모든 점에서 자기네들과 같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심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플라톤의 <공화국>에 나오는, 정의에 대한 정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 있나? 어떤 사회에서 정의로움이 가능한 것은, 사회의 각 계급 조직이 제자리에서 기능하고, 각 계급 조직에 속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만족하고 있을 때뿐이다. 이런 사회의 경우, 자기의 위치에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공연히 비참해지기만 할 뿐이다. 현명한 가난뱅이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명한 부자들 역시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371쪽

이런 사소한 일이 계획 전체를 망치게 할 수 있어. 우리가 평상시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한 우리를 눈여겨볼 사람은 없어. 사람들은 말이야. 자기가 본 것의 90퍼센트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오로지 10퍼센트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이지. -4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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