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계절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
도나 타트 지음, 이윤기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구판절판


인생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암흑의 균열 같은 '운명의 틈'이 과연 문학 밖에도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이 문학작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실 속에서도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런 것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내 삶의 어두운 균열이 바로 운명의 틈새인 듯하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내 삶을 다채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병적인 집착이 바로 그것인 듯하다.
아 무아. 리스투아르 뒨 드 메 폴리. (나의 어리석은 인생 이야기).-23쪽

우리 내부의 저 집요한 목소리가 왜 이렇듯이 우리를 괴롭히는가? 이 목소리가 바로 우리에게 우리의 살아 있음, 우리가 타고난 필멸의 팔자, 우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바로 이런 것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삶에 항복하기를 두려워하고, 우리 존재를 살아 있는 다른 어떤 것보다 비참하게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바로 고통이 아니던가? 어린 시절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 세계와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라는 것, 우리의 혀가 마르고 무릎에 상처가 나도 어느 누구, 어떤 존재도 우리의 고통에 동참할 수 없다는 것, 우리의 고통, 우리의 아픔은 우리만의 것임을 깨닫는, 참으로 무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어떤 사람도 진정으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 자신 혹은 자아라고 하는 것을 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75쪽

우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성에 의한 통제기능을 상실한다는 것은 우리같이 이성의 통제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여기에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문명화한 모든 사람들(우리뿐 아니라 고대인들까지도)은 생래적인 동물적 자신의 일방적인 억압을 통하여 문명화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이 방 안에 있는 우리는 그런 그리스인, 그런 로마인들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우리는 의무, 신심, 충성, 희생, 이러한 것들을 강박증처럼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것들이 우리 현대인들의 입맛에는 끔찍한 것들이 아니겠는가. -82쪽

불면증만큼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 혹은 사람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종종 나는 새벽 네시까지 그리스어 책을 읽었다. 그러노라면 눈이 따갑고, 머리가 어지럽기가 일쑤이다. 물론 그 시각의 먼머스 홀에 불이 켜져 있는 방은 내 방뿐이었다. 그리스어에 정신이 집중되지 않아 알파와 베타가 삼각형과 쇠스랑 같아 보일 때면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 전부터 즐겨 읽던 소설이어서, 혹 내 기분을 좀 바꾸어줄 수 있을까 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두고 틈날 때마다 읽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우울한 상태에서 그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한 일은 겨우 개츠비와 나 사이의 비극적 유사성을 찾아내는 것 정도였다. -137쪽

내가 알기로,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개성이 확립될 즈음에는 대단히 결정적인 어떤 준비 시기가 있는 듯하다. 내게 그 시기는 햄든에서 맞은 첫 가을학기였다. 그때의 일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때 내 몸에 붙은, 옷이나 책이나 심이저는 음식에 대한 취향-다분히 고전어과 친구들과 같은 수준에서, 혹은 웃도는 수준에서 몸에 붙인-까지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내게 그대로 남아있다. -158쪽

지내놓고 회상하기는 쉽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오로지 나 자신의 평화에만 관심을 두느라고 이상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나 자신만의 평화를 찾기는 찾았던가? 당시에는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이상한 것으로 보이더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그렇다. 당시의 나에게, 인생은 상징적 거미줄, 우연의 일치, 기묘한 징조, 음산한 전조로 이루어진 것일 뿐이었다. 내가 보기에 모든 것은 정확하게 아귀가 맞은 채로 돌고 또 돌고 있었다. 은밀하고도 자애로운 신의 섭리는 드러나되 차등을 두면서 드러났다. 나는 이 무서운 진실 앞에서 전율했다. 날마다 아침이 오듯이 이러한 섭리(나의 미래, 나의 과거, 나의 총체적인 삶의 모습)는 언제나 내 앞에 어른거렸다. 그런 느낌이 나를 괴롭힐 때면 나는 늘 침대에 꼿꼿하게 앉아 머리를 싸쥐고는 했다. -174쪽

어떤 사건이 생기고, 그 사건을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갑작스럽고 또 이상할 경우, 사건의 당사자는 기이하게도 초현실적인 느낌에 사로잡히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될 경우 행동은 꿈에서 본 것인 양 하나씩 하나씩 끊어져 보이게 된다. 그러면 손의 움직임 하나하나, 말이 된 문장 하나하나가 영원을 가득 채우는 느낌을 준다. 그 경우 하찮은 것, 작은 것-가령 풀줄기에 앉은 귀뚜라미, 나뭇잎 뒤의 엽맥 같은-은 확대되면서 배경으로부터 선명한 초점으로 다가선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호수에서 풀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돌아갈 때 내가 경험했던 초현실이다. 현실이기에는 너무나 선명한 그림 같았다. 자갈 하나하나, 풀잎 하나하나가 내 눈에는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하늘은 너무 푸르러 우러러볼 수가 없었다. -183쪽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위선은 옛날 사람들에 비해 정도가 심하다. 이 미국 땅에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그들은 돈만 없을 뿐 모든 점에서 자기네들과 같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심으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플라톤의 <공화국>에 나오는, 정의에 대한 정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 있나? 어떤 사회에서 정의로움이 가능한 것은, 사회의 각 계급 조직이 제자리에서 기능하고, 각 계급 조직에 속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만족하고 있을 때뿐이다. 이런 사회의 경우, 자기의 위치에서 신분상승을 꾀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공연히 비참해지기만 할 뿐이다. 현명한 가난뱅이들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현명한 부자들 역시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371쪽

이런 사소한 일이 계획 전체를 망치게 할 수 있어. 우리가 평상시와 다름없이 행동하는 한 우리를 눈여겨볼 사람은 없어. 사람들은 말이야. 자기가 본 것의 90퍼센트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오로지 10퍼센트에만 주의를 기울일 뿐이지. -4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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