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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ㅣ 증명 시리즈 3부작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인간의 증명』을 읽었을 때만 해도 이 책은 단순한 ‘퍼즐’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 흑인의 죽음, 사회적으로 덕망 있는 한 가정, 아내가 실종된 남자.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퍼즐의 조각처럼 보였던 세 사건이 차곡차곡 맞춰서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을 때의 즐거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통찰이 눈에 띄었던 책이었다. 이미 읽었던 이야기지만, 새로운 번역으로 접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증명 삼부작’의 첫 권으로 『인간의 증명』을 시작했다.
도쿄의 고급 레스토랑 엘리베이터에서 한 흑인이 칼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된다. 피해자의 신분은 금방 밝혀졌지만 범행현장도 동기도 모든 것이 제대로 된 실마리 없이 막막하기만 하다. 간신히 범행현장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낡은 밀짚모자를 발견하지만 이 가느다란 실마리를 붙잡고 무네스에는 보이지 않는 범인을 쫓기 시작한다. 여기에 두 개의 사건축이 교차한다. 남편의 병 때문에 생계를 위해 화류계에 뛰어든 아내가 다른 남자가 생긴 낌새가 느껴져 수상히 여기던 차에 아내가 연락도 없이 사라지자 아내의 행적을 쫓는 오야마다의 이야기와 정치가인 아버지와 가정문제 평론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철부지처럼 살아가다 범죄까지 저지르는 교헤이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세 개의 이야기축은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아귀가 맞으면서 하나의 큰 그림이 완성된다.
한 번 읽었던 작품이기 때문에 대강의 얼개는 알고 있었지만, 다시 읽는 『인간의 증명』은 새로웠다. 원래 이 작품이 이렇게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지닌 작품이었나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돈은 그야말로 제 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람 사이를 오가고, 인간은 무기물로 변한다. 오로지 돈만이 존재한다. 아무도 그 사실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람들은 인간보다 물질을 믿게 된다”라는 식으로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 대해 짚기도 하고, “애초에 요즘 엄마들은 조기교육이다 뭐다 해서 너무 조급하게 굴어. 아이의 재능은 언제 어디서 싹을 틔울지 모르는 일이야. 어릴 적부터 억지로 등을 떠밀어도 부모 마음대로 되라는 법은 없지. 대부분 부모의 허영과 이기심으로 아이를 경쟁시키는 거 아니겠니. 내가 보기에 치원, 국민학교 때부터 등수로 아이들을 줄 세우며 우쭐해하는 부모는 키우는 동물이 재롱떠는 걸 가지고 내가 잘났네, 네가 잘났네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야”라는 식으로 어린 시절부터 무한경쟁사회로 내몰리는 아이들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자신의 실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개인주의나 도덕적 해이, 희박해지는 인간미 등에 대해 곳곳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가 1970년대임을 감안할 때 사회를 바라보는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혜안에 탄복할 뿐이다.
사건 자체를 따라가다보면 사건의 해결이 너무 우연에 기댄 감도 있고, 미국으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감정적인 면도 있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이런 다소간의 아쉬움을 각각의 캐릭터가 완전히 상쇄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미군에게 짓밟혀 죽음에 이른 뒤 인간을 미워해 인간에 대한 반발감에 형사가 된 무네스에부터 아이들을 자신의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는 야스기 쿄코, 결국은 응석을 부리고 있을 뿐인 철없는 도련님 교헤이, 실종된 아내를 찾기 위해 아내의 내연남과 일시적으로 손을 잡는 오야마다, 할렘 출신의 형사 켄 등 각각의 인물은 저마다의 욕망과 가치관이 확고하다. 때로는 "인간이란 동물은 누구나 파헤쳐보면 '추악'이란 원소로 환원된다. 아무리 고매한 도덕가, 성숙하고 덕망 있는 성인의 가면을 쓰고 우정이나 자기희생을 역설하는 자라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기 보신의 주판을 튕기고 있다"는 무네스에의 생각처럼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이 책 속에서 '추악'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제각각 추구하는 바는 다를지 몰라도 저마다 자신의 주판을 튕겨 자신의 욕망을 좇는 사람들의 모습은 1970년대나 2010년대나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더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세월의 흐름에 묻히지 않고 『인간의 증명』은 지금까지 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끊임없이 재생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에 너무 감정에 호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방식 또한 작가 나름의 '인간의 증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 그 '인간의 증명' 때문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