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빗 (반양장)
존 로날드 로웰 톨킨 지음, 이미애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호빗> 개봉에 맞춰서 <반지의 제왕>이나 다시 한 번 연달아 볼까 하다가 그냥 <호빗>에만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라기보다는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볼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없어서) 원작부터 읽기 시작했다. 작은 판형에 4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분량이라 처음에는 우습게 봤는데 이 안에 실로 많은 모험이 그려져 있어서 일주일 넘게 붙잡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지의 제왕』 은 이 정도 분량의 책이 영화 한 편이었다면 『호빗』은 이걸 영화 세 편으로 쪼갰으니 말이다. 『반지의 제왕』 이전의 이야기라지만 그 또한 본 지가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했고 골룸과 간달프 정도만 '아, 반갑네' 하면서 거의 백지 상태로 읽었지만 어느샌가 나도 호빗과 함께 '뜻밖의 여정'을 시작했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언덕에서 평온한 생활을 해온 골목쟁이네 빌보. 여느 날처럼, 모험이라고는 거리가 먼 아침을 맞이한 빌보 앞에 간달프가 나타난다. 간달프는 빌보에게 모험 어쩌고 하는 말을 꺼냈지만 모험보다는 가능하면 하루에 저녁 식사를 두 번 하고, 가끔 이웃들과 함께 파티를 하며 웃고 떠들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즐기기 좋아하는 평범한 호빗인 빌보는 황급히 그 자리를 뜬다. 하지만 기껏 간달프를 쫓아냈나 싶었더니 그날 저녁식사 시간에 빌보의 집에 난쟁이들이 찾아온다. 영문도 모른 채 손님을 맞이한 빌보. 엉겁결에 그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면서 빌보는 난쟁이들이 자신들의 땅과 보물을 차지하고 있는 스마우그를 찾아 떠나는 길임을 알게 된다. 그러다 간달프가 자신을 이 모험대의 일원으로 지목했음을 알게 되고, 등 떠밀리듯 난쟁이들과 함께 외로운산을 향해 떠난다. 자신의 마을을 벗어나본 적도 없는 빌보가 상상도 못했던 모험과 만남이 이렇게 시작되는데……


  따지고 보면 스마우그의 보물을 되찾기 위한 단순한 모험담인 『호빗』은 이후 『반지의 제왕』의 주요 소재인 '절대반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사실 절대반지가 아니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국 『호빗』과 『반지의 제왕』은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 <호빗: 뜻밖의 모험>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결국 스마우그의 보물을 손에 넣은 뒤 변해가는 난쟁이들의 모습은 절대반지를 잃고 분노하는 골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물질적인 부에 비교적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 빌보다. 어쩌면 이 부분이 간달프가 빌보(그리고 이후에 프로도)를 선택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보석 같은 물질적인 부보다는 자신이 가진 일상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소박한 마음씨 말이다. 아무튼 『반지의 제왕』보다 등장인물도 작고 서사의 구조도 훨씬 소소한 모험담인 『호빗』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투는 없었지만, 중간중간 대사나 상황 때문에 빵빵 터지는 구석이 있어서 영화와 다른 의미에서 재미있었다. 이야기 초반에 화자는 "이 이야기는 어떻게 해서 골목쟁이 집안의 한 호빗이 모험을 하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행동과 말을 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가 이웃의 존경을 잃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얻기도 했다. 글쎄, 그가 결국 무엇을 얻었는지 어떤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라고 운을 띄우는데, 그의 말처럼 책을 다 읽자 빌보가 결국 얻은 것은 돈이나 타인의 존경(혹은 명예)이 아닌, 소박한 일상의 행복이 아니었을까 싶어졌다.


  원작을 다 읽고 내친 김에 영화까지 봤는데, 원작과 영화는 닮은 점도 있었지만 몇몇 설정이 달라서 비교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원작에서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운명의 이끌림에 따라 모험을 시작했던 빌보가 영화에서는 스스로의 결심으로 모험을 시작한다는 설정이나, 원작에서는 비중이 미미했던 참나무방패 소린의 비중이 늘어난 점, 그리고 무엇보다 난쟁이들의 전투력이 원작보다 향상되었다는 점 등이 눈에 띄었다. (원작에서는 허구한 날 도망다니기 바쁘던 난쟁이들이 영화에서는 결과야 어떻든 간에 이만하면 그래도 '용사'가 아닌가 싶은 정도였다.) 원작에 각색을 더하고, 『호빗』 외에 번외 이야기까지 살을 붙여 영화는 (다소 드문 경우지만) 원작보다 더 보는 재미가 있었다. 3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이 끝날 때쯤에는 어여 연말이 와서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간만에 영화도 원작도 재미있는 작품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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