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교(12세기 일본 시인)를 읽는 것도, 사가구치 안고(20세기 초 일본 소설가)를 안 것도 봄은 아니었다. 그들이 지닌 벚꽃의 이미지에 압도당한 나는 벚꽃이 피기를 학수고대했다. 그러나 막상 피고 보니 그저 성가실 뿐이었다. 로버트 B 파커를 읽고 맥주가 마구 당겨서 마시고 봤더니 자신은 맥주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사태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처음에 마음을 사로잡은 이미지가 너무 근사한 나머지 실물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긴 나는 벚꽃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소설 줄거리가 꽤 그럴싸해서 본편을 읽어보니 기대에 못 미친다든지, 잘 만든 예고편이 끌려 영화를 보고 실망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18~9쪽
<달려라 아비>에서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소외된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방치하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삭막해진 세상 속에서의 소외를 하나의 습관처럼 받아들이는 주인공들. 하지만 그들이 절망적이다거나 막장 인생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책 속에 등장한 인물들을 주변에서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80년생이라는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지만 나이에 비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나는 <달려라 아비>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첫 만남을 가진 것이 약 2년 전. 이번에는 소설집 <침이 고인다>로 좀 더 성숙해진 그녀를 만났다. 기본적으로 <침이 고인다> 속의 주인공들도 <달려라 아비>에서처럼 현실을 살고 있다. 남루하고 비루한 삶. 그리고 그런 생활 속의 비애를 담담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도 <달려라 아비>와 비슷하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 책을 지은 김애란도, 책을 읽고 있는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 동조하고 공감하고, 위로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없는 살림에 피아노를 장만하고, 그 피아노를 부(혹은 희망)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은 놀랄만큼 우리 집과 비슷했고, 국문과를 나와 제대로 직장을 잡지 못한 채 떠돌다 결국 공무원 시험에 눈을 돌리는 모습도 나와 비슷했다. 생계를 위해 만두를 만들고, 칼국수를 만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부업으로 실밥 처리를 해서 밥에서 가끔 실밥이 나오곤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청춘이라는 단어만으로 반짝반짝 거리던 시대는 지났다. 5월의 푸르름 같았던 청춘은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제는 푸르름보다는 물이 차오르는 반지하방같은 절망, 4인실 독서실에서 지내는 듯한 고독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김영하의 <퀴스쇼>에서 그려지는 88만원 세대는 일면 소설같은 느낌을 주는 데 반해,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속 88만원 세대는 뭔가 따스함을 주는 것 같아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엷은 빛 한 줄기를 본 것처럼 안도감이 들었다. 삶의 구질구질함을 처절하게 보여주지만 김애란은 이들의 모습을 마냥 절망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30분 넘게 미로같은 길을 돌며 출구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출구를 찾아내는 것처럼 김애란은 이들이 절망을 딛고, 혹은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이 책의 미덕은 소설 속 등장인물 뿐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도 위로를 받고 다시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 전환이나 할 요량으로 겸사겸사 읽었는데 의외의 잔향을 남겨준 책이었다. 이제 겨우 두 권의 소설집만을 세상에 선보였지만 진심으로 김애란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좀 더 성숙해진 김애란을 좀 더 성숙해진 내가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영화는 '특선'되었다고는 하나 별로 틀선된 것 같지 않다. 다른 채널에서 하는 것들 역시 너무 유명해서 이미 오래전에 보았거나, 흥행에 실패한 뒤 헐값에 팔린 영화가 대부분이다. 가끔 케이블 티브이에서 개봉된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영화를 틀어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브라운관으로 들어오는 즉시 낡아버렸다. 사내는 별로 재밌지도 않은 영화를 광고까지 끼워 토막토막 잘라 내보내는 케이블 티브이의 방영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무엇을 망가뜨리는 일이었다. 비록 안방이 극장은 아니더라도, 로미오가 독약을 들이켜는 순간 스팀 청소기가 나오고, 가위손이 사랑에 빠진 순간 몸매 교정용 거들이 나오는 것은 야비해 보였다. 사내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둥글게 말아 올리며 '내가 예전에 본 걸 왜 또 보고 있지'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 장면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100~1쪽
노량진에는 머무는 사람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혹 오래 머물더라도 사람들은 그곳을 '잠시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도, 재수생 언니도, 민식이도, 총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곳에서의 생활,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나는 거리나 지하철에서 나와 같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137~8쪽
K-59. 오래전 내 책상 번호. 1999년의 나는 어떤 공간이나 시간이 아닌 번호 속에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때가 내겐 어떤 떳떳한 한 시절로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만큼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때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보다- 아는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147쪽
마침 사용하고 있던 수분크림(켈리워터 버치 하이드로 수딩젤)이 똑 떨어져서 수분크림 하나 사야지하고 벼르고 있던 차에 타 사이트에서 테스터가 되서 베리썸의 24hr 아쿠아 젤크림을 사용하게 됐어요. 베리썸이라는 브랜드는 처음 접해봤는데 소개서를 읽어보니 항산화기능을 가진 제품이더군요. 같이 온 소개서를 샤르륵 읽어보고 드디어 사용 시작. 먼저 제 피부는 T존은 지성이고, U존은 건성인 복합성, 민감성 피부를 갖고 있어요. 봄에는 괜찮았는데 날씨가 더워지니까 자꾸 피지분비량이 많아져서 유수분 밸런스를 맞추는 게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이 제품을 사용하기 전에 볼부분이 유독 건조해져서 거칠거칠한 느낌. (이건 어떻게 필링을 해도 소용이 없더군요.) 그런 상태에서 요 제품을 사용하게 됐는데, 일주일 정도 사용한 뒤에는 피부가 한결 촉촉해졌어요. 지난 번 켈리워터 수딩젤은 여름에 냉장고에 넣어놓고 사용했는데, 이 제품은 신기하게도 그냥 실온에 냅뒀는데도 꽤 시원한 느낌이 들더군요. 어떤 수분크림은 말이 수분크림이지 바르고 나면 답답한 느낌이 들기 일쑤인데, 이 제품은 바를 때는 약간 팩하는 느낌이 나는데 금방 스며들어서 부드러운 피부를 느낄 수 있었어요. 사용 전에 피부 트러블이 갑자기 좀 심해져서 거울 볼 때마다 짜증이 났었는데, 이 제품 사용하고나서는 한층 피부가 진정되서 깜짝 놀랐어요. 일주일 정도 사용한 지금의 피부는 한결 안정됐을뿐만 아니라 새로운 뾰루지도 생기지 않는 상태. 예상외로 대만족!이라고 마무리를 하고 싶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에 대해서도 지적을 하고 갈께요. 일단 케이스가 좀 아쉽네요. 디자인 자체는 이쁜데 플라스틱으로 된 제품이다보니 유리제품보다 뭔가 아쉬운 느낌이 들었어요. 시원해보이는 느낌은 좋았지만 이왕이면 유리로 된 제품이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드네요. 하지만 케이스 문제를 제외하고는 제품 자체만으로 봤을 때는 대만족이예요. 젤과 크림 사이의 질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젤타입 혹은 크림타입의 수분제품을 사용하며 아쉬움을 느꼈던 분들을 모두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이 아닐까 싶네요. 여름에 크림타입은 찐득거리거나 답답해서 싫다는 분들께도 괜찮은 것 같네요.
10월 4일에 일본개봉이라고 하는데, 국내에는 과연 개봉할까? 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