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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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특선'되었다고는 하나 별로 틀선된 것 같지 않다. 다른 채널에서 하는 것들 역시 너무 유명해서 이미 오래전에 보았거나, 흥행에 실패한 뒤 헐값에 팔린 영화가 대부분이다. 가끔 케이블 티브이에서 개봉된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영화를 틀어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브라운관으로 들어오는 즉시 낡아버렸다. 사내는 별로 재밌지도 않은 영화를 광고까지 끼워 토막토막 잘라 내보내는 케이블 티브이의 방영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것은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무엇을 망가뜨리는 일이었다. 비록 안방이 극장은 아니더라도, 로미오가 독약을 들이켜는 순간 스팀 청소기가 나오고, 가위손이 사랑에 빠진 순간 몸매 교정용 거들이 나오는 것은 야비해 보였다. 사내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둥글게 말아 올리며 '내가 예전에 본 걸 왜 또 보고 있지'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않고 그 장면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100~1쪽

노량진에는 머무는 사람보다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혹 오래 머물더라도 사람들은 그곳을 '잠시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도, 재수생 언니도, 민식이도, 총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는' 곳에서의 생활, 관계가 어떤 것인지를. 나는 거리나 지하철에서 나와 같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다. -137~8쪽

K-59. 오래전 내 책상 번호. 1999년의 나는 어떤 공간이나 시간이 아닌 번호 속에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때가 내겐 어떤 떳떳한 한 시절로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때만큼만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그때만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때보다- 아는 게 많아졌기 때문이다. -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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