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에서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소외된 환경 속에서 스스로를 방치하고 거기에서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삭막해진 세상 속에서의 소외를 하나의 습관처럼 받아들이는 주인공들. 하지만 그들이 절망적이다거나 막장 인생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책 속에 등장한 인물들을 주변에서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80년생이라는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지만 나이에 비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잡혀있는 듯한 느낌을 나는 <달려라 아비>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첫 만남을 가진 것이 약 2년 전. 이번에는 소설집 <침이 고인다>로 좀 더 성숙해진 그녀를 만났다. 기본적으로 <침이 고인다> 속의 주인공들도 <달려라 아비>에서처럼 현실을 살고 있다. 남루하고 비루한 삶. 그리고 그런 생활 속의 비애를 담담하게 수용하고 있는 것도 <달려라 아비>와 비슷하다. 달라진 점이라면 이 책을 지은 김애란도, 책을 읽고 있는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것. 그리고 내가 진심으로 주인공들의 삶에 대해 동조하고 공감하고, 위로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없는 살림에 피아노를 장만하고, 그 피아노를 부(혹은 희망)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은 놀랄만큼 우리 집과 비슷했고, 국문과를 나와 제대로 직장을 잡지 못한 채 떠돌다 결국 공무원 시험에 눈을 돌리는 모습도 나와 비슷했다. 생계를 위해 만두를 만들고, 칼국수를 만드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부업으로 실밥 처리를 해서 밥에서 가끔 실밥이 나오곤 했던 어린 시절이 떠올라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청춘이라는 단어만으로 반짝반짝 거리던 시대는 지났다. 5월의 푸르름 같았던 청춘은 소설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제는 푸르름보다는 물이 차오르는 반지하방같은 절망, 4인실 독서실에서 지내는 듯한 고독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김영하의 <퀴스쇼>에서 그려지는 88만원 세대는 일면 소설같은 느낌을 주는 데 반해,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 속 88만원 세대는 뭔가 따스함을 주는 것 같아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엷은 빛 한 줄기를 본 것처럼 안도감이 들었다. 삶의 구질구질함을 처절하게 보여주지만 김애란은 이들의 모습을 마냥 절망적으로 보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30분 넘게 미로같은 길을 돌며 출구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출구를 찾아내는 것처럼 김애란은 이들이 절망을 딛고, 혹은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이 책의 미덕은 소설 속 등장인물 뿐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도 위로를 받고 다시 삶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 전환이나 할 요량으로 겸사겸사 읽었는데 의외의 잔향을 남겨준 책이었다. 이제 겨우 두 권의 소설집만을 세상에 선보였지만 진심으로 김애란을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좀 더 성숙해진 김애란을 좀 더 성숙해진 내가 만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