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에 읽었던 <김영하 여행자 도쿄>가 실망스러워서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도 그냥 사진으로만 채워져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한예종의 교수로 있었고, 자신의 이름을 건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간간이 TV에 얼굴을 내비치기도 하면서,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기도 하는 등 김영하는 가장 바쁜 작가로 살아갔다. 누가 보기에도 성공한 작가의 삶을 살았던 그가 돌연 대학 교수와 라디오 진행이라는 안정된 환경을 버리고 시칠리아로 떠난다. 당연 독자는 '대체 왜?'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자신이 가졌던 것들을 버리고 시칠리아로 떠나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인간 김영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고 많은 도시 중에 김영하는 EBS에서 세계테마여행을 찍기 위해 다녀왔던 시칠리아에 다시 가기로 결정한다. 이전에는 제한된 일정 내에 촬영을 마치기 위해서 허겁지겁 둘러봤다면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느긋하게 시칠리아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한국에서 자신이 버리고 온 것에 대해 생각한다. 집을 정리하면서 나온 수많은 잡동사니들, 그리고 정리를 하며 가치를 매길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책들.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지만, 그는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팔거나 버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비워간다. 그렇게 모든 것을 비우고 시칠리아를 여행했기 때문인지 그는 한층 여유로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며의 감상이 들어가있고, 뒤이어 시칠리아로 건너가며 겪는 사건들이, 마지막으로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겪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저마다의 색깔이 달라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인간 김영하의 속내를 드러낸 부분이었다면, 시칠리아로 건너가며 겪는 이야기는 입담 좋은 화자가 들려주는 평범한 여행기,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하는 이야기는 정이 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저자의 인문학적 지식이 겸비되어 하나의 안내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여행자> 시리즈에 비하면 훨씬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에세이라고 하기엔 역시 좀 약한 느낌. 이왕이면 다음에는 제대로 된 소설로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칠리아에 대해, 김영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으로 김영하와 함께 시칠리아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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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의 슬픔
테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품절


인간이 어떻게 진화하든, 물질문명이 얼마나 발달하든 간에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며, 그 어떤 과학의 진보도 자연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 나아가 인간 자체를 부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지 나는 미래사회를 다룬 만화를 많이 그려왔지만 우주 저편까지 날아가는, 혹은 작은 벌레 속까지 파고드는 상상력의 기반은, 내 안의 '자연'이었습니다. 압도적인 자연의 기억이, 일에 쫓기는 도시의 생활인이 된 나를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샘물처럼 적셔주고 있는 것이지요. -12~3쪽

돌아보면 <우주소년 아톰>을 그리기 시작한 1951, 52년 무렵, 교사와 학부모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일본이 고속열차나 고속도로를 만들어낼 리가 없다' '로봇이 웬 말이냐' '황당무계하다'며 분노했고, 심지어 '테즈카 오사무는 엉터리 만화나 그리는, 어린이들의 적'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계속 그렸습니다. 그 맹렬한 비판의 폭풍 속에서도 만화를 그려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로봇의 격렬한 싸움을 그린다 해도 내 만화의 주제는 항상 자연에 뿌리를 둔 '생명의 존엄'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13쪽

이제까지 미래사회를 다룬 만화를 많이 그려왔지만, 사실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내 대표작이라 불리는 <우주소년 아톰>을, 기술혁신만이 미래의 번영과 행복을 가져온다는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주소년 아톰>은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나는 자연과 인간성을 외면한 채 오직 진보만을 추구하며 질주하는 과학기술이 사회에 얼마나 깊은 균열과 왜곡을 가져오고 얼마나 많은 차별을 낳는지, 또 인간과 모든 생명에게 얼마나 무참한 상흔을 남기는지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로봇공학이나 생명공학과 같은 첨단과학이 폭주하면 어떻게 될까, 행복을 위한 기술이 인류 멸망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22~3쪽

수많은 나라가 저마다의 '정의'를 내걸고 전쟁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정의'란 참으로 편리한 말이어서 국가의 수만큼, 혹은 인간의 수만큼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창한 '정의'의 속뜻은, 노인부터 순진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참한 살육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눈앞에서 자신의 아이와 부모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던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쳐올 죽음이 두려워 다른 이를 죽여야만 했던 병사들도.
전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육체의 상처 이상으로 치유되기 힘든 것입니다. 이런 일은 이제 우리 세대에서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어린이들이 건전한 비판정신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환경을 재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53-4쪽

이 세상에 '한심한 아이'나 '나쁜 아이'는 없습니다. 만약 그런 딱지가 붙은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들을 그런 식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어른들의 정신이 궁핍한 것입니다. 언뜻 보기에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아이일지라도, 그 내면엔 어른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반드시 있습니다. 저마다의 아이들 속에 숨어 있는 그 보물과도 같은 재능을 발굴해 낼 수 있도록, 어른들은 보다 깊고 따스한 시선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58~9쪽

무척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마저도 아름다웠노라는 식으로 포장되는 것, 이것이 추억의 본질입니다. 추억이란 본래 그리움이 만드는 것이어서 재미 없는 일은 떠올리지 않는 법이지요. 아무리 괴로운 기억도 지나고 나면 그리운 삶의 한 토막으로 한없이 감상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것이 자기 혼자만의 그리움이라면 문제 될 게 없지만, 개인사의 형태를 띰으로써 마치 보편적인 사회현상인 것처럼 바뀌어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그 옛날 전쟁중에는 이랬지. 아, 그때가 좋았는데' 하던 것이 '훌륭한 전쟁이었어. 누가 뭐래도 위대한 시대였다고'와 같은 위험한 발언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61~2쪽

어린이는 어른들이 진실한 메시지를 보내주기를 기다립니다. 또 그것을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감수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호기심 또한 가장 왕성할 때인데, 그러고 보면 현대의 어린이들은 몹시 안타까운 환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그들만의 암묵적인 룰이 있어서, 어떤 정보가 어린이들 사이에 확산되면, 예를 들어 '슈퍼마리오'같은 게임이 나와서 크게 유행하거나, 또는 텔레비전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새로 시작한 경우, 그것을 모르는 아이는 완전히 따돌림을 당해 아이들 사회에서 밀려나고 맙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모두가 그것을 사거나 보고서 또래집단 안에 들어가려 노력하지요. 그 결과,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똑같은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상업주의를 조장하고 선동하는 어른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퍼붓는 일방적인 정보가 어린이들을 규격화된 인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64~5쪽

주위에 정보가 넘쳐흐르는 시대, 스스로 정보를 취사선택할 힘이 없는 어린이들이 하릴없이 정보 중독에 빠져드는 오늘이야말로 어린이들에게 유익한 것만을 제공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그러한 것을 손에 쥐여주기보다는, 어린이들 스스로가 재미를 느껴 직접 접해보고 유익함을 알게 되는 식이 더 바람직하겠지요.
우리의 메시지를 쉽고 재미있게 전하고 싶습니다. 어린이들은 권위적이거나 고리타분하거나 어려운 것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66~7쪽

사람들 모두가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쓸모없고 부정적인 시간을 보낼 때도 많지요. 살면서 또 아까운 세월을 허비했구나, 하고 가슴을 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요. 인간은 번뇌가 많아 수많은 방황과 고민 속에서 살아갑니다. 한참 후에 잘못을 깨닫고 반성할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젊은 시절에는 젊음의 에너지를 분출하기에도 바빠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젊어서부터 노화와 죽음을 내다보고 전전긍긍하며 시간에 얽매여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 어린이와 젊은이들이 젊은 힘을 한껏 발휘해내는 충실한 삶이란 무엇인지, 인생의 진정한 기쁨은 어디에 있는지 깊이 성찰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85~6쪽

전쟁중에 수도 없이 겪은 일이지만, 정보는 제공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도록 비판적인 안목을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카탈로그 문화'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은 정보나 뉴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그것을 해석하고 음미하려 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젊은이들에게는 정보를 취사선택하고 분석하여 상황에 맞게 활용해나가는 능력이 요구될 것입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현상 자체는 나쁠 게 없지요. 정보는 끊임없이 공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정보를 과신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87~8쪽

판에 박은 듯 획일적이고 정형화된 인생을 각자의 개성을 가미해 독특한 것으로 변화시켜나갈 때 우리는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번이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인생은 단 한 번뿐인 유한한 것입니다. 굳이 좁은 울타리 안에서 숨 막히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산을 넘어, 바다를 건너, 국경을 초월해 다양한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많은 것들을 발견해나갔으면 합니다. 다른 세계를 유랑하며 적극적으로 발견하고 배울 때, 비로소 우리는 자기 나라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119~120쪽

무미건조한 빌딩숲을 거닐며 행복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뒷골목을 걷다보면 여러 가지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그것이 곧 놀이인 것이지요.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살 수도 있고, 주인장과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그런 아늑한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실용적인 편의점이나 빨래방, 자동판매기만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누지 못하는 까닭도 어쩌면 그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124~5쪽

인간의 '선'이 항상 '악'보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먼저 나아갔으면 합니다. 생명의 비밀에 다가간다는 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인류의 염원일 것입니다. 하짐나 그 비밀의 수수께끼가 풀리건 풀리지 않건,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것입니다. 인간이 생명의 신비에 지나치게 매달린 나머지 생명 자체를 멸망시키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38~9쪽

정치에서도 '이것이 악이다'라는 명확한 판단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내려집니다. 중국의 4인방(四人幇, 문화대혁명 당시 권력을 휘두른 마오쩌둥의 측근 그룹. 1981년에 사형 등의 판결을 받았다)도 죄를 추궁받고 나서야 비로소 잘못을 규탄하는 논설이 발표되었듯이, 악은 훗날 결과론적으로 규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틀러 추종자는 악이다'라는 인식도 이미 히틀러라는 관념 안에 그가 저질러온 악행의 카테고리가 있어, 그중 하나를 들이대야만 비로소 악으로 수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행기 납치는 악이다, 21면상은 악이다, 탈세는 악이다, 폭력교사는 악이다, 라는 식으로 우리가 잘 아는 악의 공식에 억지로 끼워맞춰 악을 납득시키려 합니다. 이것이 대중을 상대로 하는 픽션의 기본입니다.
모든 인간이 성인군자일 수는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선행뿐만 아니라 악행도 저지르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 없이, 이분법적인 선악 구도에 따라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징후라고 생각합니다. -144~5쪽

만화는 본래 감성의 영역이므로, 리얼리즘에 속박되면 꿈이나 낭만은 사라집니다. 이런 점에서 만화가나 어린이는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유치하다는 이유로 부모나 교사가 그것을 짓밟는 것은 어른들의 파시즘이지요.
모든 지뢰를 제거해주는 대신 실패는 용서하지 않는다. 이래서는 어린이가 성장할 수 없습니다. 갖가지 도전의 기회를 주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품어 안을 수 있는 여유로운 사회, 그리고 어린이가 한번 넘어져도 다시 도전하는 정신을 기를 수 있는 문화적 토양을 만들어가야만 합니다. -154~5쪽

어린이들은 진실한 메시지에는 반드시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감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물며 꿈을 심어주는 재미있는 메시지라면 얼마나 눈을 반짝이며 좋아할까요?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나의 진실한 메시지를 담아 만화를 계속 그려나가려 합니다. -159~160쪽

오랫동안 <우주소년 아톰>처럼 미래를 배경으로 한 만화를 그리다보니 어떻게 이처럼 미래를 생생하게 예측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실은 우리 모두가 늘 미래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If의 발상'이라 부릅니다. 나의 공상은 모두 '만약 ~라면'이라는 발상에서 시작됩니다. 예를 들어 '만약 오늘 비가 오면 집에 어떻게 돌아가지?'라는 걱정을 한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 적어도 그 시점에는 비가 오지 않고 있으니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상상입니다. 즉, 무의식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있는 셈이지요.
꼭 21세기의 사건만이 미래는 아닙니다. 1년 뒤도 미래이고 극단적으로 말해 1시간 뒤도 미래입니다. '만약 비가 온다면?'이라는 가설하에 우리는 '집에 갈 때까지 쫄딱 비를 맞겠군' '택시를 잡을 수 있을까?' '우산을 가져올걸 그랬어'하고 생각합니다. 이미 미래에 대한 훌륭한 상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16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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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는 고양이다 - Goo Goo the Ca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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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누도 잇신 감독도 좋아하지만 우에노 쥬리가 나와서 보게 된 영화. 주인공으로 코이즈미 쿄코를 비롯해서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카세 료, 그저 웃기는 개그트리온 줄 알았던 모리삼중(모리산츄) 등 나름 익숙한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반가웠다.



  키치죠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순정만화 작가인 아사코가 13년간 동거동락했던 고양이 사바를 잃으며 시작된다. 사바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아사코는 한동안 작품활동도 하지 못한 채 슬픔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사코는 용기를 내서 펫샵에 찾아가 새로운 새끼 고양이를 입양하게 되고, 구구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구구는 아사코가 사바에게 가졌던 애정까지 담뿍 받으며 아사코와 생활하게 되고, 구구의 존재로 아사코는 다시 창작을 시작한다. 하지만 다시 생활이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생각되는 순간 아사코는 병에 걸리게 되는데...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고양이가 주인공이 아닐까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영화 속에서 고양이는 주인공 아사코의 정신적 안식처쯤으로 그려질 뿐 생각보다는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간간이 고양이가 화면에 잡힐 때는 너무 귀여웠지만.) 사실 그동안의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들이 그러했듯이 이 영화도 기본적으로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유명 만화가지만 미혼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사코. 그녀의 주변에는 어시스턴트들이 항상 있지만 아사코의 고독을 위로해주는 것은 고양이 뿐이다. 하지만 그저 만화만 그리며 만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고 했던 그녀는 사바의 죽음으로 어떤 변화를 겪고, 구구를 키우게 되면서 구구에게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작은 문을 만들어준다. 그저 갇혀서 자신만의 세계에 살았던 아사코(혹은 사바)가 작은 문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아사코(구구)가 된 것이다. 물론, 그녀의 이런 시도는 암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이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모습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아사코가 성장(?)해가는 모습만 그렸더라면 오히려 좋았을텐데, 중간 중간 오버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예를 들어 아사코를 응원하기 위해 치어리딩하는 장면)이 있어서 아쉬웠다. 뭐 생각해보면 이런 비슷한 장면은 기존에 이누도 잇신 작품에서 본 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킨 것 같아서 아쉬웠다. 중반까지는 괜찮았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살짝 안드로메다행. 지금껏 본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한 번쯤 반려동물을 키워본 이들에게는 옛 생각에 잠기게 해줄 것 같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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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2-20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실망스러웠나 보군요. 그런데 저 위의 고양이 넘넘 귀여워요.
전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싫어하지만 사진으로 보는 고양이는 늘 넘 귀여워요.^^

이매지 2009-02-20 01:09   좋아요 0 | URL
저야 워낙 좋아하는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그나마 봤지만,
그냥 고양이 영화를 기대하고 보는 분들은 실망하실 것 같더라구요.
(포스터만 봐서는 영락없는 고양이 영화니;;)
저도 고양이는 아직 한 번도 못 키워봤지만,
사진으로 보면 정말 너무 귀엽죠 :)

스파피필름 2009-02-2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며칠 전 봤는데 고양이가 주인공이 아니더라구요 ㅠㅠ

Mephistopheles 2009-02-20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바는 아사코다. 아사코는 구구처럼 진화한다. 그렇지만 사신이 왠말이냐!

딱 이런 영화였습니다.

이매지 2009-02-20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파피필름 / 저도 그 점에서는 실망했어요 ㅠ_ㅠ
메피님 / 사신이 왠말이냐. 에 저도 한 표. 그 아저씨는 뭔가 했어요 ㅎ
 
[샘플]프리메라 페이셜 필링 필름지 60매
샘플
평점 :
단종



  피부가 민감해서 필링 잘못하면 얼굴이 빨개지는데 우연히 집에 프리메라 필링 샘플이 있어서 살짝 겁을 내면서 사용해 봤는 생각보다 괜찮더라구요. '프리메라'라는 브랜드가 낯설어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알고보니 아모레퍼시픽에서 나오는 방판 제품이더군요. (아마 집에 있는 건 설화수나 헤라 사면서 샘플로 온 듯.)

  일단 다른 샘플지같은 경우에는 한 번 쓰기에 양이 좀 많아서 나눠서 쓰게 되서 불편하기도 하고,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제품은 딱 한 번 쓸 수 있는 양이 들어 있어서 오히려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 저같이 필링이라면 겁부터 내는 분들께 고맙게도 엄청 순한 제품이구요, 알갱이도 큰 편이 아니라 부담없는 것 같아요. 뭐 이렇게 하는 둥 마는 둥 하는데 효과가 있을까 싶어도 필링하고 세안을 하면 확실히 얼굴이 보들보들해져서 좋더라구요. 마사지 시간도 1분 정도 밖에 안되서 아침에 급할 때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 같네요.

  자극이 없으면서도 어느 정도 각질 제거 효과가 있는 필링제품을 찾으신다면 꽤 괜찮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도 집에 있는 거 다 쓰고 나면 필름지로 재구매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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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 The Clan of Dog-God Household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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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원래는 나나코가 나오는 2006년판 이누가미 일족이 보고 싶었는데, 어찌어찌하다가 구하게 된 게 1976년에 나온 이치가와 곤 감독의 <이누가미 일족>이었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원작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아서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이 영화로 당시 요코미조 세이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이해가 될 정도로 흥미진진하게 봤다. (그해 일본 흥행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고.)



  정식 부인없이 세 여자에게서 낳은 세 명의 딸. 그리고 세 명의 아들이 있었던 사헤 옹. 하지만 그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은인의 딸이었던 타마요에게 모든 재산을 주되 자신의 아들 가운데 한 아이를 골라 결혼을 해야한다는 충격적인 유언장을 남겨놓은채 죽는다. 이후 타마요와 결혼하기 위해 세 아들은 경쟁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한 명씩 한 명씩 괴이한 방식을 죽어가기 시작한다. 



  <이누가미 일족>은 영화로 3번, 드라마로 5번이나 만들어질 정도로 꽤 오랜기간 사랑받았고, 어쩌면 요코미조 세이시를 일본 추리소설에 있어서 한 기둥이 되게 만들어준 작품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이전에 smap의 멤버인 고로가 출연한 드라마로 먼저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어서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인데 스토리를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기괴함과 안타까움을 갖게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스토리는 나름 매력이 있어서 재미있게 봤지만 한 편으로는 전후 일본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본의 전쟁에 나가 싸울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이 생각나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오히려 옛날 영화라 그런지 <이누가미 일족>이 풍기는 기괴한 분위기가 더 잘 전달된 것 같은 영화였다. 나나코가 나오는 2006년판도 한 번 보면서 1976년판과 비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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