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에 읽었던 <김영하 여행자 도쿄>가 실망스러워서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라는 부제가 달린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도 그냥 사진으로만 채워져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한예종의 교수로 있었고, 자신의 이름을 건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으며, 간간이 TV에 얼굴을 내비치기도 하면서,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기도 하는 등 김영하는 가장 바쁜 작가로 살아갔다. 누가 보기에도 성공한 작가의 삶을 살았던 그가 돌연 대학 교수와 라디오 진행이라는 안정된 환경을 버리고 시칠리아로 떠난다. 당연 독자는 '대체 왜?'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자신이 가졌던 것들을 버리고 시칠리아로 떠나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인간 김영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고 많은 도시 중에 김영하는 EBS에서 세계테마여행을 찍기 위해 다녀왔던 시칠리아에 다시 가기로 결정한다. 이전에는 제한된 일정 내에 촬영을 마치기 위해서 허겁지겁 둘러봤다면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느긋하게 시칠리아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는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한국에서 자신이 버리고 온 것에 대해 생각한다. 집을 정리하면서 나온 수많은 잡동사니들, 그리고 정리를 하며 가치를 매길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책들.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지만, 그는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팔거나 버리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비워간다. 그렇게 모든 것을 비우고 시칠리아를 여행했기 때문인지 그는 한층 여유로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에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며의 감상이 들어가있고, 뒤이어 시칠리아로 건너가며 겪는 사건들이, 마지막으로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겪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는데 저마다의 색깔이 달라서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의 이야기가 가장 인간 김영하의 속내를 드러낸 부분이었다면, 시칠리아로 건너가며 겪는 이야기는 입담 좋은 화자가 들려주는 평범한 여행기, 시칠리아를 여행하며 하는 이야기는 정이 넘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저자의 인문학적 지식이 겸비되어 하나의 안내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여행자> 시리즈에 비하면 훨씬 괜찮았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에세이라고 하기엔 역시 좀 약한 느낌. 이왕이면 다음에는 제대로 된 소설로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시칠리아에 대해, 김영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이 책으로 김영하와 함께 시칠리아로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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