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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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모두 태어나 죽음을 맞이한다. 어찌보면 삶이란 죽음을 향한 지리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아득바득 삶을 갈구한다.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과연 우리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 것일까? 삶의 소중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죽음'을 전제로 삶에 대해 풀어가는 책, 바로 이 책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이다. 

  이 책은 에세이라고 하기도, 그렇다고 인문이나 과학 분야라 하기도 모호하다. 끊임없이 삶과 죽음에 대한 명언과 수치가 인용되면서, 한편으로는 아흔이 넘도록 여전히 정력적인 아버지와 쉰이 넘어 서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아들의 이야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죽음과 삶을 대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어쩌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은 두 발로 걷고,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번식'이 아닌 '생존'에 강한 집착을 한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몸에 관한 각종 수치나 통계가 언급되고, 공자나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남긴 경구가 등장하기 때문에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들어간 작가의 가족을 둘러싼 일화를 통해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농구에 대한 이야기나 성(性)에 관한 이야기, 같은 성을 가진 스타와의 관계 짓기 같은 에피소드도 재미있었지만, 최근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가벼운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던지라 '내가 아는 모든 것은 요통에서 배웠다'고 이야기하는 부분(하필 그 내용이 등장하는 순간 물리치료를 받고 있어서 더 그랬을지도;;)과 아버지가 80대 말에 노인회관에서 만난 여자와의 연애담(진도를 나가려고 할 때마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결국 친구로 지낼 수는 없느냐, 섹스는 잊으면 안 되느냐고까지 하는 여자에게 아버지가 "친구를 원한다면 개를 샀겠지"라고 대꾸했다고 한다)이 인상적이었다.

  유년기와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죽음. 4개의 장을 통해 죽음과 노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본문에 언급된 "나는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죽는 법을 배워왔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말처럼 이 책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애써 거부하려 했던 자신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가르쳐준다. 딱히 메시지를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흘러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점점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려 하기보다는 저자의 아버지처럼 인생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이 오히려 행복한 죽음을 위한 방법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트 있으면서도 진지한,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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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5기 신간 평가단을 모집합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1기 때 한 번 활동하고 오랫동안 등 돌리고 있었는데, 4기 신간평가단 도서들에 꽤 괜찮은 책이 많아서 5기에 지원했었더랬다. 평소 같았으면 문학을 지원했을 터인데, 인문학 책을 좀 작정하고 읽어보자는 생각에 인문 파트로 지원했는데, 역시 일주일에 인문서 1~2씩 읽는 것은 녹록치 않더라. 특히나 어지간하면 한 권을 3일 이상 끌지 않는 내게 고역 아닌 고역이었다. 그래도 어쨌거나 강제적으로나마 평소였다면 읽지 않았을 인문서를 꾸준히 읽은 것은 도움이 된 것 같다.

신간평가단 활동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철학도, 시도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져 꺼려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강신주라는 저자를 알게 된 것도 또 하나의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신간평가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다섯 권을 고르기 참 난감했지만, 대충 이 정도.

신간평가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속의 한 구절.


저는 불만합창단의 생기발랄한 공연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그동안 불만을 억누르는 데 익숙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습니다. 지금까지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불순한 행동이었습니다. 갈등을 일으키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세상에 '쓸데없는' 갈등이란 없습니다. 이유가 있으니 충돌이 생기고, 충돌이 생겨야 발전적 해소도 있습니다.


리뷰 마감에 쫓겨 제대로 읽지 못하고 리뷰를 쓴 책도 있어서 아쉬웠던 5기 신간평가단. 6기에는 좀더 열심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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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0-03-31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주일에 1~2권은 정말 벅차셨겠어요. 평소 하는 일도 있는데 말이에요..
6기에도 좋은책 많이 소개해 주세요 :)
그런데 6기엔 어느 분야세요?

이매지 2010-03-31 09:08   좋아요 0 | URL
6기는 문학으로 갈아탔어요 ㅎㅎ
문학은 일주일에 3권도 읽겠는데, 인문은 ㅠ_ㅠ

후애(厚愛) 2010-03-3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기는 문학이군요. 기대가 되는데요. 자주 놀러와서 봐야겠어요.^^
열심히 하시고 화이팅입니다~!!

이매지 2010-03-31 21:59   좋아요 0 | URL
역시 문학이 부담없어서 좋아요 ㅎㅎ
사실 리뷰 쓰기는 인문이 더 쉬울지는 모르겠지만요^^;
후애님 자주자주 뵈어요>ㅁ<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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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정천 가족』을 시작으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거쳐 모리미 도미히코와 세번째 만남. 사실 같은 작가의 책을 거의 연달아 읽는 것은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야금야금 읽으려고 했는데, 마침 모리미 도미히코의 신작도 2권이나 나오고 해서, 『밤은 짧아~』에 등장한 인물이 나온다는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를 읽기 시작했다. 

  대학 3학년인 주인공. 2년간의 대학생활을 돌아보건대 이성과의 건전한 교제도, 학업 정진도, 육체 단련 등 유익한 일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이성으로부터 고립, 학업 방기, 육체의 쇠약화 등 깔지 않아도 되는 포석만 족족 깔아대며 시간을 허비한다. 문득 돌아보니 1학년 때 눈에 들어온 4개의 동아리 중 다른 곳에 들어갔더라면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고, 인생의 방해꾼 오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가 펼쳐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지만 운명의 검은 실로 묶어져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주인공은 오즈를 만났을 것이고, 오즈는 온힘을 다해 주인공을 괴롭혔을 것임을 각각 다른 동아리에 들었다는 설정의 네 개의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아주 오래 전(찾아보니 1994년)에 방영한 '인생극장'이라는 코너가 떠올랐다. A와 B라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각각을 선택할 경우 일어났을 일들을 보여주는 프로였는데, 한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던 프로로 기억한다. 만약 A를 선택했더라면, B를 선택했더라면 하는 설정 자체는 비슷하지만,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는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기보다는 어떤 것을 선택했더라도 인생은 그렇게 굴러가게 되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각 화의 시작과 끝이 같고, 중간에 들어가는 내용만 약간씩 다른 독특한 구성이라 사실 첫번째 이야기를 다 읽고, 두번째 이야기를 읽을 때만 해도 '이거 앞에 나온 건데 내가 착각한 건가' 싶었는데, 장난스러운 작가의 속임수(?)임을 알고 유쾌해졌다. 영화 동아리 '계'에 들어갔어도, 제자 구함이라는 전단지에 이끌렸어도, 소프트볼 동아리 '포그니'에 들어갔어도, 비밀기관 '복묘반점'에 들어갔어도 주인공은 대학 생활을 하며 만나야 할 사람을 모두 만나고, 겪어야 하는 일은 모두 겪는다. 물론, 네 가지의 선택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굴러간다면 재미없는 법. 각각의 이야기만으로도 재미있었지만, 네 가지 이야기를 모두 합할 때 수수께끼 같은 아이템(예를 들어, 암중전골이나 찰떡곰맨)을 이해할 수 있어서 한층 더 재미있었다.  
 
  『밤은 깊어 걸어 아가씨야』에 나오는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읽었는데, 술 취하면 상대방의 얼굴을 핥는 하누키씨와 텐구 스승인 히구치가 등장하는데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서 '어이' 하고 잠시 아는 척만 하고 스쳐 지나가서 아쉬웠다. 그래도 한 권 한 권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을 읽다보니 그가 소설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교토도 점점 익숙해지는 느낌이고, 그만의 분위기에도 빠져드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읽고 나니 어쩐지 집밖에 나가서 고양이라면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고, 『해저 2만리』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어차피 인생 이렇게 흘러갔을 거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리'라는 달관(?)의 자세가 되어버렸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을 읽고 다소 얼간이가 된다 해도, 어떠랴. 어차피 이것도 내 나름의 사랑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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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4-03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독특하네요. 이런 책 좋습니다.ㅎ

이매지 2010-04-03 22:44   좋아요 0 | URL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오쿠다 히데오 같은 작가를 좋아하신다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꺼예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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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받아들이세요, 나는 이렇게 말하는지도 모른다.
삶을 받아들이거라, 아버지의 대꾸는 이해되고도 남는다.
대체 어쩌다가, 나는 자연스러운 죽음에 반쯤 홀렸는가? 내 나이 고작 51세인 것을. 영국의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는 말했다. '언제일지 몰라도 반드시 때가 온다. "안녕"이 반기는 인사가 아니라 작별 인사가 되었구나 깨닫는 때가 온다. 그리고 죽음, 그것은 삶이라는 임시직 후에 찾아오는 상근직이다. 이제는 애써 고개를 틀지 않고는 반대쪽을 바라볼 수가 없으니,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머리로야 납득하고 있어도 당장의 현실은 아니었다.'-15~6쪽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와 산모는 산모가 아기에게 공급하는 영양소를 놓고 무의식적으로 승강이를 벌인다. 임신은, 진화생물학자 데이비드 헤이그가 말했듯이, 줄다리기이다. 양쪽이 기를 쓰고 잡아당기기 때문에 줄 중앙에 묶인 깃발이 거의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생존은 전쟁이다.-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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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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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문학을 접하고, 일본 근대문학에 관심을 갖게 될 때쯤 시마자키 도손의 이름을 처음 접했었다. 시인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해 이 작품 『파계』를 통해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가 된 시마자키 도손. 하지만 국내에 단편 정도 소개됐을 뿐이라 제대로 된 그의 작품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마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에 그의 대표작 『파계』가 수록되어 읽기 시작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나름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사로 살아가는 우시마쓰에게는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었으니, 자신이 백정 출신이라는 것. 백정 해방령 이후 신평민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의 차별이 존재하는 시대 속에서 그는 세상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웅크리며 살아가는 쪽을 택해 살아간다. 신평민이 같은 하숙집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에 그를 쫓아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회, 신평민 가운데 빼어난 지식인인 렌타로를 돌연변이 취급하는 사회, 그런 인심을 잘 알고 있었던 우시마쓰의 아버지가 "설령 어떤 경우를 당하더라도,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결코 백정이라고 고백하지 마라. 한때의 분노나 비애로 이 훈계를 잊으면 그때는 사회에서 버려지는 거라 생각해라"라고 신신당부한 사항을 지킨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이런 '숨겨라'라는 훈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세상에 나와 사람들과 얽히며 그는 점차 자신이 백정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또 숨기려 한다. 자신이 신평민이라는 것을 망각할 수 있다면, 차라리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고뇌에 휩싸이는 우시마쓰. 그 와중에 자신과 같은 신평민인 렌타로를 사상적, 인간적 선배로 모시게 되고, 언제까지 비밀이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의 출신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며 우시마쓰는 파계의 유혹에 번뇌하기 시작한다.

  『파계』라는 하나의 작품을 통해 시마자키 도손을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지만, 자연주의 문학이 일본에서는 어떤 식으로 수용됐는가를 살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백정이라는 신분을 감추고 교사로 살아가는 우시마쓰와 유서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 점차 몰락한 집안 출신의 시마자키 도손은 교사로 재직했다는 사실이 어쩐지 비슷하게 느껴져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은 사소설과도 연계가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이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떠나서 『파계』는 작품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었다.

  우리나라도 물론 백정을 천대했지만(우리나라의 경우도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형평사 운동이 일어나 백정이 해방되었다는 공통점도 있을 듯) 이 소설 속에서 백정을 대하는 모습은 우리가 노비를 대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분제가 타파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언성을 높일 때면 '상놈의 자식'이라는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자신과 다른 모습(장애인 혹은 노숙자 같은)을 한 사람들에게는 무서우리만큼 차갑게 대하는 우리의 모습도 우시마쓰가 맞선 세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 신분제는 결국 외형상 사라진 것일뿐 우리 개개인의 내면에는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속에서 우시마쓰는 두 인물 사이에서 번뇌한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고향을 떠나 최대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목장에서 홀로 살아가고, 죽어서도 고향 사람들에게는 부고를 알리지 말라고 한 우시마쓰의 아버지, 그리고 신평민의 신분이 드러나 학교에서 쫓겨나자 오히려 활발한 저술 활동과 연설을 통해 세상과 맞서 싸우는 렌타로, 우시마쓰는 끊임없이 아버지가 가슴속에 새긴 '숨겨라'라는 계율을 의식하면서도 렌타로에게만은 자신이 신평민임을 밝혀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렌타로의 죽음을 통해 우시마쓰는 마침내 자신의 삶을 억눌렀던 계율을 깨고, 세상에 당당히 자신이 '백정'임을 밝힌다. 그의 아버지가 생각했던 대로, 파계 이후 그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은 달라졌다. 하지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듯 그의 앞에는 새로운 삶이 열린다. 백정임을 감추고 살아왔던 날들과는 다른 새로운 삶이. 그가 이후 어떤 일을 겪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끝없는 어둠 속으로 침잠한 교사 시절과는 달리 학생 시절로 돌아가 좀더 홀가분하게 당당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의 선배 렌타로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역자가 해설에서 언급했듯이 『파계』는 차별받는 부락민의 문제를 취급한 사회문제로도, 봉건적인 가족제도로부터의 자아해방을 다룬 소설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를 꼭 부여하지 않아도, 사범학교 시절부터 우시마쓰와 절친하게 지내 같은 학교에 재직중인 긴노스케, 무능한 아버지 게이오신, 그리고 가난 때문에 절에 맡겨진 그의 딸 오시호, 양녀인 오시호에게 눈독을 들이는 렌겐 사의 주지와 여색을 탐하는 주지 때문에 속앓이를 하는 그의 아내, 어떻게든 생활을 꾸려가려고 하지만 무능한 남편 때문에 히스테릭해진 게이오신의 아내, 재력 때문에 신평민의 딸과 정략적으로 결혼하고 아내의 신분을 속이는 다카야기, 우시마쓰나 긴노스케를 내쫓고 자신의 조카를 1인자로 끌어올리려는 교장 등 다양한 인물이 그려내는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아직 많은 작품이 소개되지 않아 안타깝지만, 아쉬운대로 그의 단편이라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그리 두껍지 않았지만 담백함 속에서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충격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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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3-29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는 무겁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가 좋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특히 주인공의 학교 동료교사들 묘사한 것이 재밌었지요.저는 헌책방에서 본 정음사판 번역본으로 읽었어요.나가노 산골 자연풍경 묘사도 좋았습니다.올 봄 가기 전 또 읽어봐야겠네요.네 번 정도 읽은 것 같습니다.

이매지 2010-03-29 22:4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 말씀처럼 주제는 무거운데 인물 묘사나 배경 묘사가 매력적이라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아요 :) 저도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한 번 읽어보려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손이 <파계> 이후 이 작품에서 가졌던 문제의식을 좀 더 밀고갔다면 일본근대문학의 모습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더러 생각해봅니다. <파계> 이후에는 가정사(<家>)와 같은 신변잡기적 소재를 벗어나지 못하거든요. 이후 사소설이 일본문학의 주류가 되구요.
작가의 이후 행적을 보면 그 걸출함이 외려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이매지 2010-04-13 15:3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일본 근대문학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도손의 <파계> 이후 이야기도 흥미롭네요. 한편으로는 도손의 신변잡기적 소설도 조금은 궁금하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3 16:53   좋아요 0 | URL
저는 사소설과 자연주의 문학을 비판적으로 보는 터라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줄 압니다.

시마자키를 번역하고 연구하는 노영희 교수의 시마자키 번역서가 몇 권 있네요. <春>과 <家>가 번역되어 있는데요. 뒤의 책은 '민문고'란 데서 번역되어 있는데, 구하기가 힘들어요. <클 준비>란 단편이 창비세계문학전집 일본편에 실려 있습니다. 말 꺼낸 김에 저도 읽어봐야겠네요^^

이매지 2010-04-13 23:48   좋아요 0 | URL
말씀해주신 책들 도서관에서라도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저도 일단 파고세운닥나무님처럼 <클 준비>를 먼저 읽어봐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