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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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정천 가족』을 시작으로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거쳐 모리미 도미히코와 세번째 만남. 사실 같은 작가의 책을 거의 연달아 읽는 것은 어쩐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야금야금 읽으려고 했는데, 마침 모리미 도미히코의 신작도 2권이나 나오고 해서, 『밤은 짧아~』에 등장한 인물이 나온다는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를 읽기 시작했다. 

  대학 3학년인 주인공. 2년간의 대학생활을 돌아보건대 이성과의 건전한 교제도, 학업 정진도, 육체 단련 등 유익한 일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고 이성으로부터 고립, 학업 방기, 육체의 쇠약화 등 깔지 않아도 되는 포석만 족족 깔아대며 시간을 허비한다. 문득 돌아보니 1학년 때 눈에 들어온 4개의 동아리 중 다른 곳에 들어갔더라면 인생이 바뀌었을 것 같고, 인생의 방해꾼 오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행복한 캠퍼스 라이프가 펼쳐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하지만 운명의 검은 실로 묶어져 다른 선택을 했더라도 주인공은 오즈를 만났을 것이고, 오즈는 온힘을 다해 주인공을 괴롭혔을 것임을 각각 다른 동아리에 들었다는 설정의 네 개의 에피소드로 보여준다.

  아주 오래 전(찾아보니 1994년)에 방영한 '인생극장'이라는 코너가 떠올랐다. A와 B라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각각을 선택할 경우 일어났을 일들을 보여주는 프로였는데, 한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줬던 프로로 기억한다. 만약 A를 선택했더라면, B를 선택했더라면 하는 설정 자체는 비슷하지만,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는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기보다는 어떤 것을 선택했더라도 인생은 그렇게 굴러가게 되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각 화의 시작과 끝이 같고, 중간에 들어가는 내용만 약간씩 다른 독특한 구성이라 사실 첫번째 이야기를 다 읽고, 두번째 이야기를 읽을 때만 해도 '이거 앞에 나온 건데 내가 착각한 건가' 싶었는데, 장난스러운 작가의 속임수(?)임을 알고 유쾌해졌다. 영화 동아리 '계'에 들어갔어도, 제자 구함이라는 전단지에 이끌렸어도, 소프트볼 동아리 '포그니'에 들어갔어도, 비밀기관 '복묘반점'에 들어갔어도 주인공은 대학 생활을 하며 만나야 할 사람을 모두 만나고, 겪어야 하는 일은 모두 겪는다. 물론, 네 가지의 선택이 모두 같은 방식으로 굴러간다면 재미없는 법. 각각의 이야기만으로도 재미있었지만, 네 가지 이야기를 모두 합할 때 수수께끼 같은 아이템(예를 들어, 암중전골이나 찰떡곰맨)을 이해할 수 있어서 한층 더 재미있었다.  
 
  『밤은 깊어 걸어 아가씨야』에 나오는 인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읽었는데, 술 취하면 상대방의 얼굴을 핥는 하누키씨와 텐구 스승인 히구치가 등장하는데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아서 '어이' 하고 잠시 아는 척만 하고 스쳐 지나가서 아쉬웠다. 그래도 한 권 한 권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을 읽다보니 그가 소설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교토도 점점 익숙해지는 느낌이고, 그만의 분위기에도 빠져드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읽고 나니 어쩐지 집밖에 나가서 고양이라면이라도 먹어야 할 것 같고, 『해저 2만리』도 읽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어차피 인생 이렇게 흘러갔을 거 후회해봤자 무슨 소용이리'라는 달관(?)의 자세가 되어버렸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을 읽고 다소 얼간이가 된다 해도, 어떠랴. 어차피 이것도 내 나름의 사랑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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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4-03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독특하네요. 이런 책 좋습니다.ㅎ

이매지 2010-04-03 22:44   좋아요 0 | URL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데,
오쿠다 히데오 같은 작가를 좋아하신다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꺼예요:)